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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번] 젊은 아내 아연 5장 (1)

【제5장 「발가 벗겨진 후 팬티마저....」】(1)

 

시어머니로부터 또 다시 전화가 왔다.
그 날 아연은 오후에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서, 화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부산으로 시집간 아연의 여고시절 단짝 친구인 미영이 연락을 해왔다.
남동생 결혼식 때문에 서울로 올라온 김에 오랜만에 아연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화장하던 손길을 멈추고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시어머니 목소리는 그저께와는 정반대로 몹시 쌀쌀맞고 차가왔다.

 

 「어제, 은정이한테 테이프 이야기 다 들었다」
 「그..그건……」
 「네 변명 들으려고 전화한 거 아니니 설명하려 들지 마라.
   사람마다 다 달리 생겨먹어서 이런 일로 너한테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 최씨 집안의 일원으로서 생각이 많이 부족하니까

   그런 일이 생겼다는걸 명심해라.
   집안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려니 더 이상은 말 안하겠다.

   몸 처신 똑바로 하거라.
   앞으로는 너한테 연락하는 일은 없을거다.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 믿는다.」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아연은 수화기를 든채로 잠시동안 멍한 상태로 있다가

이윽고 수화기를 내려놓고 화장대로 돌아왔다.

머릿속에서는

 

 앞으로는 너한테 연락하는 일은 없을거다.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 믿는다.

 

라고 하는 시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와 전철을 타고 나서도,
시어머니의 말이 그 차가운  어조와 함께 되살아 왔지만,
조금도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고 있었다.
비록 시부모님들이라 해도 분명 자식과 부모의 관계일것인데
앞으로 연락을 안하겠다니..?!

알아서 판단하라니..?!

 

설마..어머니께서..그럼.....아냐..아니..그럴 리가 없어..
... ... 이..혼... ... ...
 
아연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그 낱말이 떠올라 왔다.
아연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머릿속에서 그 단어를

지워버리려고 애썼지만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그 낱말이 갖는 심각한

의미만이 되살아 날 뿐이었다.
 
약속 장소인 전철역의 개찰구를 나오자 아연은 먼저 찾아낸 미영이
혼잡한 사람들 사이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옛날부터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기분파 친구였다.
미영의 둥글고 붙임성이 있는 웃는 얼굴을 보자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역시 오늘 미영을 만나러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근처 너무 많이 바뀌었네」
 
미영은 원래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마치 시골뜨기 같이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아연은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 소리내어 웃었다.
아연의 아름다운 얼굴이 더욱 빛나 보였다.

 

 「바뀌긴 뭐가 그렇게 바뀌었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

   이 아줌마가..호호호호호」

 

두 명은 잠시 수다를 떨면서 거리를 걷다가 고급 레스토랑으로 가서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미영이 걱정되는 듯이

 

「야..여기 너무 비싸서 안돼」

 

하면서 주저 주저하는 것을 아연이 끌다시피 데려갔다.

 

 「돈 걱정 안 해도 돼. 아줌마...호호호」

 

라고 말하면서 아연은 자기 가슴께를 두드려 보였다.
아연은 우아하고 교양 있는 걸음걸이를 짐짓 유지하며 고급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식사를 하면서 적당히 와인도 곁들이면서  옛날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아연은 근래 들어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언제나 그렇듯이 행복한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가는 법.
너무 시간이 흐른 것에 신경이 쓰여 집에 연락을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난 김에 지배인을 불러 신용 카드를 건네주면서

먼저 계산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직 4살 밖에 안된 지원이지만 원체 활동적이라서 집에 전화가 걸려오면
누구보다 먼저 수화기를 집어들곤 한다. 곧 네 살배기 딸 지원이의

사랑스런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들릴 것이다.
엄마가 금방 들어 갈테니 집에서 얌전하게 말 잘듣고 기다리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전화 벨소리만이 계속 울릴 뿐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시간까지 지원이가 돌아오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이상한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미영에게로 돌아갔다.
지배인이 조금 전 건네준 신용카드를 돌려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배인은 매우 정중하고도 황송한 모습으로 카드를 돌려주면서
이 카드는 사용할 수 없는 카드로 나온다며 아연의 귓전에 속삭였다.
놀란 아연이 그럴 리가 없다며 다시 확인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지배인은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신용 카드를 돌려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옆에 있던 미영이가 황당해 하는 아연에게 물어왔다.

 

 「응?? 아...아무것도 아니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연의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아연이 낸 카드는 부민그룹이 특별히 발행하고 있는 법인카드였다.
부민 그룹의 계열사인 부민캐피탈은 가장 일찍 신용카드 사업에 뛰어들어
당당히 업계1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룸의 부장 이상의 간부직임원들에게는 전원 카드가 발급되었다.
업무상 필요한 접대나 접객은 모두 이 카드로 해결할 수 있다.
보고서나 영수증등의 귀찮은 절차도 일체 불필요 했기 때문에
카드에 대한 직원들의 평판은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
부민 그룹안에서 그 법인 카드를 발급 받을 수있는 신분이 되어서
마음껏 카드를 사용해보고자 하는 꿈들은 중견 관리직 사원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었다.


카드는 그 직급과 직무에 따라 몇가지 종류들이 있었다.
수백만원에서부터 수억원까지 매달 사용할 수 있는 한도액이 서로 달랐다.
사용한 금액만큼 장소, 날짜, 지출 내역등 모든 것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근무정보로 제공되었지만 그 카드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신분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블루 카드보다는 그린 카드를, 그린 카드 보다는 은빛의 실버 카드을,
실버보다는 골드를 부민의 직원들이라면 누구나가 갖고 싶어했다.
아연이 조금 전 지배인에게 건네준 카드는 백금 색의 화려한 카드였다.
그 카드는 부민 그룹의 최고 책임자와 그  가족에게만 발급되는 카드였다.
전국에 이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것말고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카드였지만 사용 금액의
상한이 없는 그야말로 백지수표 같은 카드였다.
그 자체가 부민 그룹의 천문학적인 자산의 모든 것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백화점에 가서 백화점에 있는 모든 상품을 통째로
구매하는 일도 가능한 그런 카드였다. 그런 카드가 사용정지가 되었다는 것은

아연이 카드의 사용자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었다.
즉 아연이 부민 그룹 최씨 일가로부터 추방되어버린 것이다.

 

 「알겠어요. 현금으로 계산할께요」

 

아연은 상한 기분을 억지로 누르면서 지배인에게 말했다.
계산이야 카드로 하던 현금으로 하던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카드가 사용이 안 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앞으로는 너한테 연락하는 일은 없을거다.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 믿는다.

 

라고 했던 오늘 아침의 시어머니의 말이 이렇게 직접적인 형태로

표현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미영과는 역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홀로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아연은 창밖으로 무섭도록
붉은 저녁놀이 지는 것을 왠지 께림칙하고 불쾌한 기분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조금 전 집으로 했던 전화가 신경이 쓰였다.
이 시간이 되도록 아직 지원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가슴속에 작은 파도가 점차 풍랑으로 변해가고 잇었다.

 

  집으로 돌아가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닐까?

 

불안감은 멀리서부터 조금씩 그 소리를 드높이더니 이윽고 소름이

끼치도록 거대한 음향이 되어 아연을 덮쳤다.
그때.. 전철이 맞은 편에서 오는 기차와 서로 격렬한 바람소리를 내지르면서

엇갈려 지나쳤다.
 
아파트에는 예상한 대로 아무도 없었다.
저녁 8시까지 기다렸지만 아무한테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마 남편 준석도 은정이 가져온 그 테이프 내용을 듣고 말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불륜으로 낙인찍히고 만 것이 분하고 괴로웠지만
그런 엉터리 테이프 내용을 듣고서 놀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남편이 평상시처럼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서 준석을 원망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딸아이 지원은 신용카드 사용을 재빠르게 정지시켜놓은

시어머님의 또다른 작품임이 분명했다. 유치원에서 직접 지원을 친가로

데리고 갔을 것이다. 아마도 오늘 아침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던 그 순간에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나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혼자서 서두르고 있는 아연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아연은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마치 모든 일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다 끝마친 것처럼 느긋하게 일어서서 조용히 아파트를 나왔다.


딱히 어딘가를 가고 싶다는 마음에 집을 나선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집에 혼자 남아 있는 그 청승맞은 기분이 싫었을 뿐이었다.

바깥 세상은 이제 완전히 가을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전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한적한 고급주택가의 풀숲 여기저기서
가을의 풀벌레들이 단체로 요란하게 울어대고 있었다.
아연은 이슬을 머금고 있는 향긋한 풀 냄새를 맡으면서 무작정 걸어갔다.
이윽고 전철역이 시야에 들어왔다. 둥글고 허연 달이 역사 위를 비추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 상가지역이라고 할 만한 곳은 역주변이 유일했다.
그나마 떠들썩한 성인오락실의 네온사인이나 편의점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레스토랑이나 찻집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나마도 밤 9시를 지나면 대부분이 가게를 닫아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밤은 너무 너무 조용한 반면 풀이나 나뭇가지 소리는
오히려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아연은 역주변의 상가를 둘러보고 있었다.
아연의 눈에 편의점의 환한 간판이 들어왔다.
물론 꼭 무언가를 사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아연만이 아니라 여자라면 누구나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서
아이 쇼핑하는 것이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 우울한 날이나 마음이 괜시리 무거운 날은 하릴없이 백화점을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작은 스트레스 정도는 날려버릴 수 있었다.

아마 아연도 어딘지 모르게 자신을 안정시키고 싶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무심코 편의점으로 성큼 들어섰다.

편의점 안에는 잡지 코너에 두세 명의 손님들이 서서 책을 읽고 있었고,
젊은 한쌍의 커플이 캔 맥주와 안주를 사고 있었다.
그 젊은 커플은 마치 한 몸인 양 깍지 낀 손을 떼어놓지 않고 은근한

스킨쉽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있었다. 젊은 커플의 튈듯이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귓전을 맴돌면서 아연의 신경을 자극해왔다. 커플의 다정한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아연은 일부러 이것 저것을 살펴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젊은 커플은 아연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카운터에서 계산을 끝내고
편의점을 나가고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떠오른 아이디어였지만 아연은 갑자기 조바심이 나며
그 생각을 꼭 행동으로 옮기고 싶었다. 사장처럼 보이는 남자가 선 채로

잡지를 뒤적이던 손님들에게 다가가 양해를 구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닫을 시간이 다 된 것이다.
편의점이라지만 새벽에 유동인구가 없기 때문에 이곳도 곧 셔터를 내릴 모양이었다.
서서 책을 읽고있던 손님들이 책꽂이에 책을 꽂아놓고 하나 둘 가게를 나가기 시작했다.

아연은 주변 눈치를 살피면서 살그머니 냉장고의 케이스를 열고,
재빠르게 팩 포장의 고기를 몇 개 잡아 입고 있던 윗도리 안쪽에 숨겼다.
장의 정리를 끝낸 사장은 카운터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곁눈질 하면서 아연은 살그머니 가게를 나왔다.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스릴 있고 짜릿하고 멋진 기분이었다.
편의점을 나와 인적이 끊어진 가로수가 양옆으로 펼쳐진 도로를 걸어갈 때
편의점 쪽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기색을 느꼈다.


그냥 달려서 도망갈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의심만 살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한껏 부풀려진 이 좋은 기분을 망치기 싫었다.

 

 「아가씨..잠깐만요」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아연을 쫓아와 앞을 가로막았다.


 「잠시 절 좀 따라 오셔야겠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아연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침착한 목소리였다.

 

 「설마 몰라서 물어보는 건 아니시겠죠?

   괜한 소란 일으키기 싫습니다」
 「... ... ...」


아연의 목덜미가 붉게 물들면서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위압적이었다.
왼쪽가슴에 걸려있는 플라스틱 이름표에는 사장이라는 직함이 쓰여있었다.
아직 젊어 보였다..
30대 초반쯤이나 되었을까? 아니 그보다 더 어릴 수도 있다.

그 나이에 한 체인점의 사장을 맡고 있는걸 보면 능력이나 수완이 좋거나
부모 잘 만난 부잣집 아들일 것이다.
몸집이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운동으로 단련된 다부져보이는 체격이다.
기름기가 번지르하게 도는 얼굴에, 약간 위로 치켜올라간 눈매는
조금은 탐욕스럽고 교활해보이기까지 했다.

 

 「알았어요..잠깐이면 되는거죠?」

 

아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애를 쓰며 방향을 바꿔가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 사장은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는 알바 직원에게

가게문을 닫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아연을 곧바로 가게 안쪽 창고로 데려갔다.

 

가게 안쪽의 창고는 비좁고 어둡고 답답해 보였다.
매입한 물건이 높이 쌓여있었고,

그 사이로 정돈되지 않은 서류와 장부들이 놓여있는 책상과 의자가 있을 뿐이었다.
아연은 그 사무용 책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뒤쪽에서 아연의 요염한 허리선과 풍만한 히프를 느긋하게 감상하며 뒤따라오던

젊은 사장의 입가에 만족스럽다는듯 야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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