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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보고싶다 - 단편

-보고싶다-

-제1부 : 첫발을 내디디며-

세상이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어깨에 맨 가방의 무게가 평소보다 둔탁한 감을 주고 있었고, 발걸음마저도 빨라지고 있었다. 부산하고 복잡했던 일과를 뒤로하고, 비행기에 올랐을 때에는 조금 서두르기도 했고,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들떴던 것도 사실이었다. 비행기로 출장을 여러 번 갔다 왔음에도 이렇게 장기간을 통해 가족과 떨어져 보기는 처음인 고로, 나 스스로 조금은 긴장되고도 있었다.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보딩 패스를 검사하는 게이트에 줄을 서기도 전에, 나는 마지막으로 집사람에게 공중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나 이제 비행기 탈 거야. 운전 중이지?’

‘응, 그럼 잘 다녀와. 건강 조심하구, 그리고, 잊지마? 행여 백마 타보려고 꿈쩍 댔다간 알지?......응…..백마? 그 말은……..아빠 혼자서 놀이동산 놀러 가지 말라고 조심 시키는 거야. 애들이 귓구녕은 밝아 가지고……나 운전 중이야. 끊을게. 호텔에 도착하면 전화해. 시간에 구애 받지 말구.’

아내의 백마 타령에 아이들이 뒤에 앉아 있다가 물었던 모양이다. 에이즈 무서워서 어디 백마의 백짜나 들이댈 수 있남?

‘그건 그렇고, 당신도, 알지? 나 없는 동안…….말 안 해도….’

‘으이그, 고작 먼 길 떠나는 마당에 그런 얘기나 하고…..아무튼 알아줘야 돼. 자기나 몸 조심해. 나야 애들 복작대는데, 무슨 일이나 있을라고? 당신 없으니, 저녁 찬거리 눈 부라리게 신경 쓸 것도 없고, 와이셔츠 줄줄이 다릴 필요도 없으니, 편해서 좋구먼….그리고, 참, 빨래거리는 어쩔 거야?’

‘어쩌긴 몽창 들고, 다시 돌아오는 거지.’

‘그러지 말고, 그 뭐냐, 빨래방 같은 거라도 있으면 가서 되는대로 빨아서 입어, 괜시리 맞지도 않는 옷 나부랭이, 짐 가방 꿰져라, 돈 버려 가면서까지 사서 입고 다니지나 말고….알았지? 그럼 끊는다?’

‘알았어. 고생해. 나 그럼 간다잉! 사랑해, 여보…..’

‘나두!’

언제나 사랑한다는 말을 매정하리만큼 아끼는 아내. 그래도 나두라는 한 단어 속에 녹아있는 아내의 그 사랑을 나는 깊이로 짐작한다. 그 운율과 톤에서 전해져 오는 아스라하고 푸근한 든든함. 그것은 굳이 사랑이라는 흔한 어구로 표현 될 수 없는 운치였으니까. 말소리가 잠겨 버릴 정도의 굉음이 비행기의 엔진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서서히 활주로를 타며, 진로를 잡아 나가는 좌석에서 나는 후진을 할 수 없다는 비행기의 아이러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엔진의 폭음이 고조되면서 갑자기 청룡열차를 타고 강하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가슴을 누르면서 비행기는 이륙을 위해 몸을 떨었다. 이윽고, 속이 울렁 하는 느낌과 함께, 비행장의 활주로가 어둠 속에 불 켜진 장난감처럼, 점점이 멀어지는 고도로 치달으면서, 나는 애써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아찔한 감을 잊으려는 듯이, 손에 들고 있는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매일 대하는 신문의 기사들, 그저 그렇고, 뻔한 얘기들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습관적으로 펼쳐 드는 그 버릇을 버리지는 못한다. 눈으로 훑고는 있어도,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복잡하기만 했고, 이내 끝마치지 못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안전벨트가 풀리는 실내등의 싸인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이어, 기장의 인사말과 비행브리핑이 끝나는 것과 함께, 안전 벨트를 풀라는 신호등이 켜졌다. 사람들은 완전히 어두워진 창 밖의 풍경으로 인해 영화나 음악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곧바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다. 나는 옆 좌석의 양해를 구해가며, 가방에 넣어 놓았던 전자수첩과 서류철을 꺼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있게 될 세미나에 대한 사전 숙지를 위함 이었다. 전자수첩을 뒤져가며, 그 동안 출장을 위해서 정리해 두었던 각종 메모를 꺼내보면서 나 나름대로의 기록을 이어가면서도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밤이 깊어지기도 전에 태평양 바다 위에서 날은 밝을 것이고, 한낮 즈음에 도착하게 될 케네디 공항….나는 잠을 청하기로 했다. 꺼내 놓았던 서류와 자료들, 그리고, 전자수첩을 넣기 전에 나는 도착에서부터 이어질 일정에 대한 계획표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사흘간 뉴욕에 있다가 캐나다 토론토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입국하게 되는 머나먼 장정…..한 곳에 머물기 바쁘게, 다음 이동 도시로 향하는 비행기의 예약확인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정 이었기에 나는 기록된 일정 안에 그 부분을 끼워 넣었다. 마지막으로 전자수첩을 덮기 전에 도착할 곳에서 연락해 볼 친구들에 대한 전화번호와 주소를 다시 훑어 보았고…….

‘글쎄, 일정이 빡빡해서 연락할 수 있을까 몰라. 다들 사는 데 바쁠 텐데…..’

불편한 자리였지만 나는 이게 밤이겠거니 하면서 눈을 감았다. 벌써 옆 자리의 여자는 잠에 곯아 떨어졌는지, 몸을 덮고 있는 담요를 한껏 목 위로 치켜대고 있었다. 서울로 치면 한 밤중의 시간,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있음으로 해서, 몸은 나름대로의 생체리듬을 잃고 있는지, 잠이 들만 하면, 화장실로 나를 불러 세웠다. 얼굴은 퉁퉁 부어가고, 발은 저려오는 비행기 여행의 괴로움…..언간새 깜빡 졸다 보니, 열어 놓은 창 틈 사이로 햇살이 비쳐 들어오기 시작하고…..그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들이 벌써 착륙을 앞두고 있었다. 시간을 현지에 맞추어 고치면서 썸머 타임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그 단순한 시간 계산도 버벅대고 있었다. 선회하던 비행기가 안전하게 활주로를 밟으면서 좌석의 중간 중간에 있던 외국인이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한국 사람들은 당연히 무사히 착륙해야 하는데, 박수는 뭔 박수라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다 보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평과 비평에 익숙해 있고, 남에게로 향하는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그런 기성세대…….누가 쫓아 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비행기에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언제나 밀치고 줄의 맨 앞에 서야 직성이 풀리는 버릇……그게 나였다, 아니 우리들이라고 해야 옳았다. 검색 대에 서서 여권에 도장을 받으면서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치를 달린다는 미국의 첫 관문에서부터 다른 인종에 대한 묘한 배척감을 느꼈다. 그들 나름대로 교묘하게 위장된 인종차별의 흥건한 냄새…..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자신들은 그 흔하디 흔한 외국 여행 한번 못해 보고 살아가건만, 너희 것들은 무슨 영광으로 이렇게 비행기씩이나 떡 하니 타고, 남의 나라 대문을 두드리냐는 투의 질문……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평생에 다시 볼 인간들도 아니고, 내가 그들에게 반감을 품는다고 뼛속 깊이 습성화 되어, 겉으로 트집 잡기 어려운 그들만의 인종차별에 대한, 표현상의 노하우를 걸고 넘어지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 너른 규모에 놀라고, 넘치는 사람으로 인해, 나는 정신이 쏙 빠져나가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 사람들을 향해 들려있는 수 많은 피켓을 무심코 하나하나 살피면서, 나는 나를 찾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에 피식 하고 웃음을 짓고 말았다. 머나먼 곳에서 동명이인 일지라도 내 이름이 적혀 있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나를 아는 사람은 그 어디에고 없었다. 나는 이미 예약된 호텔로 가기 위해, 가판대 에서 관광할 때도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 뉴욕의 시내 지도를 하나 샀다. 가방을 들고, 나는 천천히 지도를 보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갔다. 품속에서 열 시간이 넘도록 잠자고 있던 담배와 라이타….나는 가을 하늘처럼 높고 푸른 케네디 공항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는 드디어 미국에 온 것이었다. 희뿌연 담배 연기와 함께, 치미는 어지럼증…..마치 담배를 처음 배울 때와 같은 그 울렁거림….평소와 다르게 가슴 속 저 끝까지 칼 끝처럼 파고드는 연기는 그 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매력일 수 있었다. 나는 담배를 끝까지, 손 끝을 오그려 가며, 꽁초가 아까운 모냥새로 입술 끝이 지져지는 것 같은 뜨거움을 달래가며, 마지막 한 모금까지, 필터와 연초가 만나는 부분이 빨아들이는 열기로 인해, 조금 녹을 때까지 연기를 빨아 마셨다. 담배를 비벼 끄면서, 입안에 괴는 침과 함께, 밤사이 텁텁했던 입안에서 담배의 찌든 냄새까지 겹쳐져, 이루 말할 수 없는 역겨움이 밀려들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사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다시 가방을 들고, 택시라도 타고 호텔에서 팁이라도 주려면, 얼마간 환전을 해야 했기에 공항 안으로 다시 들어갔지만, 이미 나와 함께 내린 승객들은 마중 나온 사람들을 만나, 공항을 이미 빠져 나가고 있었으며, 이제는 다른 곳에서 도착했을 법한 모양새의 승객들이 출구로 쏟아져 나오고….

‘어?.........’

나는 공항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나와 마주친 그녀도 나를 보고 그 자리에 못 박히듯이 멈추어 선 것은 물론 이었고….그녀 였다.


-제2부 : 조심스런 발걸음-

그녀의 곁에는 수려한 용모의 금발 머리 남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그 남자를 고개가 꺾어지도록 올려다 보면서(무척 키가 큰 장신의 남자), 유창한 독일말로 내 소개를 했다. 내미는 그 남자의 손이 무척이나 컸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은 외국인이라는 어설픈 경계심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으며, 그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녀와 나누는 독일 말과 달리, 나에게는 영어로 인사를 하였다. 내가 머쓱해하자, 그는 애써 생각해 냈다는 표정으로, 어눌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라는 한국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와 동시에 나도 조금은 누그러지는 분위기로 멋쩍게 웃음을 나누었다.

‘뉴욕에는 어떻게?.....’

‘응, 학술 세미나가 있어서 말이야. 잠시 있다가 캐나다로 가야 되고, 거기서 샌프란…..’

‘캐나다요?’

‘응, 왜?’

‘저 지금은 거기 살아요. 그것도 토론토에…..’

‘그래? 그거 잘 됐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한국에서 온 퍼포먼스 극단의 난타라는 공연을 보려고요. 여기 제목은 한국에서 얘기하는 거랑 좀 다르지만…..’

‘남편이 능력이 좋은가 봐…..먼데까지 와서 공연도 보고…’

‘뭘요….외국에서 살다 보면 공간과 거리에 대한 가시영역이 넓어지는 편이에요. 차로 10시간 이내라면 가깝다는 생각을 우선 해요.’

‘살고 있다는 토론토랑 뉴욕은 어느 정도 거리가 되지?’

‘차로 한 14시간 정도? 쎄게 밟으면 1시간 반 정도는 줄일 수 있죠. 하지만 차를 타고 온 적은 없어요. 언제나 올 일이 있으면, 이렇게 남편이 비행기랑 렌터카를 모두 예약해 놔서 별 불편 없이 두,세 시간 안에 뉴욕 시내에 들어가죠. 그런데, 일행이 있으세요?’

‘아니, 그냥 가려다가 얼마 정도 환전을 하려고 다시 공항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지….바쁠 텐데, 먼저 들어가. 연락처나…..아니, 여긴 참 뉴욕이지……’

‘어느 호텔에 계실 예정 이세요? 어디 예약한 곳이라도……’

‘글쎄, 같은 곳이 아니면 초행길에 만날 수나 있겠어?’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녀는 내가 묵는 곳으로부터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의 호텔에 위치할 예정이었다. 나와의 대화를 빠짐없이 독일말로 전달하자, 남편이라는 사람도 표정이 밝아지면서 나에게 오늘 저녁, 공연이 끝나고, 술이나 한잔 하자고 까지 선약을 넣었다. 공항 입구에서 나와 그녀, 그리고, 처음 본 파란 눈의 남편은 구석의 의자에 앉아, 그렇게 20여분이 넘도록 얘기를 나눴다. 남편은 산업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라고 했고, 사는 것도 그런대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독일에서 만났으며, 박사학위를 받고 Job Market에 나가자마자, 손을 뻗어 온 곳이 캐나다의 대학 이란다. 미국 보담야 보수나 대우 면에서 척박하지만, 조용하고, 그런대로 시끄럽지 않은 것이 미국의 뉴욕이나 LA처럼 한인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선택의 이유 중 하나였다고 했다. 그렇지만, 캐나다에 올 당시와 다르게 이제는 조기 유학의 붐에 편승해서 물밀듯이 한인들이 들어 오고 있어서 조만간 자신이 사는 곳도 뉴욕이나 LA와 같은 짝이 날 거라면서 한숨을 폭 내쉬기까지 했다. 그녀와 나는 서로가 호텔의 호수가 적힌 메모지를 건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의상 이었겠지만,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만나자는 그녀의 말 끝에서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 깊이 뚝뚝 떨어지는 외로움이 느껴지고 있었고, 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그녀의 파스텔 톤 니트와 스커트가 그 색감과는 다르게, 을씨년스러이 보이기만 했다. 남편의 학교 수업 일정 때문에 이틀 먼저 뉴욕에 왔다는 그녀…..나는 두 사람을 따라 주차장으로 가면서도 내내 손에 쥐어진 그 메모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오래 전에 보았을 때보다 조금은 통통해진 듯한 얼굴과 분위기……

‘식구들은 요?’

‘잘 있지….. 애는 잘 크고?’

‘네.’

나와의 대화를 전달하면서 슈나이더 라는 이름의 남편은 이상하다는 듯이 내게 질문을 했는데, 어째서 한국 사람들은 오랜 만에 만난 사람들끼리, 포옹이나 입맞춤이 없나 하는 것이었다. 그건 그랬다. 유달리 스킨쉽에 강한 외국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그렇게 무뚝뚝한 민족일 수 없을 테니까. 공식적인 신체접촉을 자제하는 민족성이 자칫 관계모색에 서투른 부류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처음으로 가져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독일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섞어가며 구사해서, 보는 나로 하여금 부러움을 자아내게 했다.

‘제 영어 이름은 에이미 에요. 좀 이상하죠? 한국말처럼 들리기도 해서 남편에게 이 말을 한국 사람에게 잘못하면 엄마라는 뜻이 된다고 했어요. 깔깔깔…..’

운전을 하는 남편도 대강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맞장구를 치며, 웃어 주었다. 공연은 저녁 8시라고 했고, 10시반 쯤, 내가 묵고 있는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서, 두 사람은 나를 차에서 내려 놓은 뒤,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이제는 한국 사람이라고 보기보다, 외국사람에 더 가까운 모습과 언어 등에서 약간의 이질감마저도 느꼈지만, 그것이 머나먼 타국에서의 생활에 있어서 향수를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런대로 받아들일 만 했다. 언제나 아시아 지역만을 출장을 나오다가 이렇게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 발을 딛고 보니, 무척이나 신기한 것이 많았다. 우선 나를 가장 쪽 팔리게 했던 것은 공중 화장실의 변기였는데, 내가 한국 사람으로서 그렇게 작은 키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기에 앉는 순간, 바닥에서 달랑 들려 올려져 댕그랑거리는 두 발 때문이었다. 비싸기는 오지게 비싼 반면, 코딱지 만한 구조를 갖고 있던 일본의 호텔과 비교해 보면, 미국의 분위기는 운동장에 가까웠다.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라는 의미에서 방향을 잘 틀어 잡은 호텔방의 전망구조였지만, 911사태로 사라진 쌍둥이 빌딩이 없는 뉴욕의 도시 풍경은 어쩐지 허전한 감을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밀려오는 졸음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일정은 너무나 타이트 했고, 나는 짐을 풀기도 전에, 캐나다로 향할 비행기의 탑승 컨펌을 먼저 해야 했고, 참석해야 할 세미나 장소에 대해서도 지도를 보며, 숙지를 해야 했다. 서울처럼 지하철을 이용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얘기로 겁도 나고 있어서 되도록 이면, 택시를 이용하고자 계획을 잡았다. 시차 적응을 위해서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참아가며,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고, 호텔 주변을 다녀보기로 한다. 편의점에 들어서는 순간, 눈에 띄는 누드잡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나는 되는대로 몇 권과 물, 음료수, 그리고, 이름 하야 양담배도 한 갑 사가지고는 가게를 나왔다. 무거운 짐을 든 채로 다니기에는 너무 많은 시선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음료수를 마시면서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서울 같으면 어림도 없을 기가 막힌 잡지…..인터넷의 붐으로 인해 점차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누드잡지사들……학생 시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흠모와 애정 어린 대상이었던 그 누드잡지들도 이제는 여인들의 나체로 성이 차지 않는, 독자들을 향해, 본격적인 포르노 섹스씬 으로 잡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끝내주는 미모의 여성을 무지막지한 좇으로 마구 쑤셔대는 장면이 예전에 보던 그 아름다운 칼라로 적나라하게 까발려져 있는 잡지들….그것은 나에게 미국이라는 나라가 던져주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어느 잡지를 보아도, 예전에 숨어서 보던 조잡한 인쇄상태와 천한 색감의 저질 빨간책과 달리, 누드 잡지가 강점으로 내세우는 일급 모델을 유린하는 거포의 함성은 나 같은 구세대의 눈에는 이게 왠 떡이냐라는 심정으로 밖에는 해석되고 있질 않았다. 그 수려한 칼라와 보지의 속살 주름과 씹물의 질척임 하나하나까지 샅샅이 확인이 되는 그 해상도의 사실감, 보지를 장쾌하게 꿰뚫는 그 말좇 들의 툭툭 불거진 핏줄이 금방이라도 잡지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은 생생함. 나는 정신 없이 잡지에 빠져 있었다. 나는 외국에 나와 있다는 생각도 잠시 잊은 채, 잡지를 손에 든 채로 이미 발기되어 버린 내 좇을 옷 위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전화가 울렸다.

‘Hello?’

‘저에요……여기 로비에요, 내려 오실 수 있어요?’

나지막한 톤의 그녀 목소리 였다.


-제3부 : 미련 속으로-

나는 로비로 내려가면서 제대로 옷을 차려 입었는지 망설이고 있었다. 사무적인 복장만을 챙겨오고, 나머지는 줄곧 호텔에 처박혀 있을 생각에 별로 준비해오지 못한 편의 복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는 로비에 있을 그녀를 찾아 발걸음을 빠르게 옮겨갔다. 그녀가 나를 보며, 먼저 손을 든다. 언제 갈아입었는지, 공항에서 볼 때와 다른 그녀의 옷차림….

‘하나도 안 변한 거 같아요.’

‘그래? 괜히 놀리는 거지? 남편은?’

‘티켓을 바꾸러 갔죠.’

‘티켓은 왜?’

‘장기공연 한다고 되어 있는데, 굳이 만날 사람도 있는 상황에 볼 필요 있겠느냐구요. 참 좋은 사람 이에요.’

‘그래도 그렇지.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아니에요. 남편도 수 천 번이 넘도록 들어온 내 얘기 때문인지, 아까 호텔에서 같이 샤워 하는데,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이상하죠? 만난 일도 없는데…’

‘그렇긴 하네. 그럼, 저녁 스케줄은 어떻게 하려고…..’

‘남편은 내일 아침 비행기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어요. 저더러 좋은 시간 같이 보내다 오라고까지 했거든요.’

‘기왕이면 같이 있지. 괜히 나 때문에 불편해진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에요. 남편은 그런 일들에 매우 관대한 편이에요. 부부의 틀을 깨지 않는 상황하에서 서로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스스로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이를테면, 해로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믿는 사람이에요. 한국 같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제가 사는 곳에서 저랑 남편은 Swinger Club(부부교환모임)에 같이 들어 있기도 해요. 같이 가서 즐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각자 혼자 가서는 싱글의 기쁨을 맛보면서, 밤을 새우고 돌아오기도 해요. 그런 이벤트 후에는 왠지 예전보다 서로를 아끼고 가까이 하고 싶은 생각이 더 치미는 거 있죠? 이해가 가요?’

나는 대답도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스와핑 이네, 삼섬 이네 하는 것들이 사회의 지탄을 받아오는 마당에, 프리섹스를 구가 하면서도 부부로서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간다는 사실에 나는 괜한 부아까지 치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진짜, 이렇게 같이 있어도 돼?’

나는 의심 많은 인간이었다. 아니, 소심하다고 해야 할지…

‘제가 오늘 좋은 곳으로 안내할게요. 뉴욕에 있는 Swinger부부가 소개한 곳인데, 꽤 괜찮아요. 한국에도 있죠, 유람선?’

그녀와 나는 저녁이 어스름 할 때까지 근처의 스타벅스 커피 점에서 마주 앉아,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애는 누가 봐주는 사람이 있나?’

‘그럼요, 돈만 있으면, 한국 사람 같지는 않아도, 믿고 맡길 수 있거든요. 내년이면 벌써 킨더 가든에 들어갈 나인데…..’

벌써 유치원에 갈 나이…..세월이 무심하게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모는 차를 타면서, 렌터카 이기는 했어도 감회가 새로운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그녀는 차를 몰아 유람선이 출발한다는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에, 가방을 열어봐 달라고 했다. 가방 속에는 여남은 개의 CD가 들어있었고, 그녀는 붉은 색깔의 CD를 틀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청아한 반주로 귓가를 때리는 그 음악….그녀가 좋아하던 그 노래였다.

‘아직도 이걸 듣고 다녀?’

‘그럼요. 저 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깃든 노랜데, 버릴 수가 있어야지요.’

길거리의 현란한 네온사인을 뒤로 하며, 곧바로 서있는 건물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하늘을 덮고 있는 빌딩숲 사이로 나는 음악을 들으며,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차들로 뒤덮여 있었지만, 어쩐지 스스로 군중 속의 고독을 실감하는 분위기가 싫지는 않았다.

‘외롭거나, 한국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없어?’

‘독일에 있을 때는 종종 그랬죠. 그러다 슈나이더를 만나고, 그 이가 너무 잘해 줘서 이제까지 나라를 바꿔 가면서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더라고요. 남편도 신기해 하긴 해요. 자기는 고향에서 먹던 호밀 빵 이랑, 흑맥주, 그리고 거친 메쉬포테이토(삶은 감자를 으깬 요리)가 간절할 때가 있는데, 저보고는 그런 때가 없느냐고 하대요. 뭐 꼭 다 잊은 사람처럼 사는 건 아니에요. 인터넷으로 한국의 드라마를 볼 때, 나오는 라면 먹는 장면이나, 자장면….. 그런 거 보면서 한번 가 봐도 좋겠다라는 생각, 하나도 안 했다면 거짓말 일 거에요.’

그녀가 잠시 멈추어 선 교차로에서 머리를 목 뒤로 쓸어 넘겼다. 하얗게 드러나는 그녀의 길고, 여린 그 그림자들….멀리 보이는 선착장의 주차장이 보이는 지점에서 그녀는 뻘쭘히 앉아 있는 나의 손을 지그시 쥐어 보았다. 차가 정차하고, 나에게 그 너른 풍경에 혹시나 차를 찾기 힘들지나 않을까 라는 걱정마저도 들게 하는 곳이었다.

‘……많이 보고 싶었어요……’

‘………’

나는 대답을 하질 못했다. 어둑해진 차 안에서 그녀는 예전과 다름없이 과감한 돌진으로 옆자리에서 안전벨트도 풀지 못한 채, 결박 당하는 것 같은 자세로, 그녀의 입맞춤을 받아 들이고 있는 나를 한없이 입술로 더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우자가 허락한 시간이라는 해방감이 안겨다 주는 안락함 이랄까? 나나 그녀나 그 용이한 자유로움에 마구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외국에 살아서 일까? 그녀는 입술이 닿는 것 만으로도 감흥이 오를 대로 오를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타액이 흥건한 혀를 내 입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녀는 차의 시동을 끄고, 벨트를 끄른 뒤에, 나의 가슴 쪽으로 상반신을 완전히 기울여, 혀를 내 입 속에 밀어 넣으면서 한 손으로는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떨리는 그 손끝의 감촉은 여전했다. 그녀는 밖에서 누가 볼 수도 있는 상황을 전혀 인식하질 않고 있었으나, 나는 아무래도 그런 개활지에서의 진한 애정공세에는 별로 익숙해 있지 않은 고로, 자세가 단단히 굳어 있었다. 그런 나의 심정을 눈치 챘는지, 그녀가 황급히 내게서 몸을 떼고 말았다.

‘아직도 조심하시는 건 여전하시네……깔깔…. 외국에서는 길거리에서 키스를 하건 말건, 주시하거나, 주목하는 사람이 없어요. 너무 긴장하시네?’

‘넌 어떻고?’

‘저도 맨 처음에는 한국 사람 티를 있는 대로 다 내고 살았죠. 그렇지만, 남편의 리드로 이제는 웬만한 문제에 대해서는 가시를 세우진 않아요. 어서 서두르죠. 8시가 아마 마지막 배일 거에요.’

그녀가 앞장 서서 나를 인도했다. 유람선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격이 떨어지는 감도 없질 않았지만, 배는 그런대로 있어줄 만 했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밀쳐 들어오는 갑판에서 나와 그녀는 검게 넘실거리는 강 물결을 내려다 보면서 난간에 기대고 있었다. 저 멀리에는 아직도 일들을 하는지, 강 주변의 건물들에는 불들이 켜져 있었고, 어떤 건물은 어떤 패턴을 만들면서 실내의 불이 켜져 있었다. 한강 주변에 여의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 촌만 보아오던 풍경과는 자못 다른 감이었다. 그녀는 나의 어깨에 살포시 고개를 기대어 오고, 한 팔은 이미 나의 팔짱을 끼워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힘을 주고 있었는데……

‘인연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이렇게 머나먼 타국에서 그것도 바늘귀 같은 타이밍에 만나게 된다니…..’

‘그러게나 말이야. 근데 춥지 않아? 아까 보니깐 머리도 다 말리고 나온 거 같지 않던데….’

‘마음이 급해서 그럴 수가 있어야지요. 호텔에서 정신 없이 옷도 벗은 채로 거울을 보면서 머리만 털고 있으니, 남편이 뒤에 붙어 서서, 마구 들이대지 않겠어요? 시간도 없는데, 짜증도 났지만, 나를 이렇게 보내준다는 그 고마움에 세면대에 기대서는 그냥 뒤로 엉덩이를 사정없이 밀어줬죠. 남편은 그 질투 비슷한 느낌이 너무 좋다나 봐요.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다른 사람에게 넋을 잃고 있다는 그 상황….. 그로 인해 불같이 열정이 솟구친대요. 게다가 그 이후에는 언제나 자신을 향한 넘치는 애정을 담고서 돌아올 거라는 기대감이 자신을 언제나 건강하게 만든다고 해요. 참 별나죠?......손 좀 줘 봐요.’

나는 멋 모르고 팔짱을 낀 팔과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아무런 거침없이 그 손을 자신의 바지춤 안으로 밀어 넣었다. 미끈하고 만져지는 그녀의 보짓살……예전에 보았던 그 털은 이미 간데 없고, 매일 면도를 하는지, 까실 한 감촉만이 손끝에 남았다.

‘놀랍죠? 슈나이더의 정액이에요. 기어이 자신의 스펌(정액)을 제 보지에 담고 가라고 하대요. 아마 모든 벌어질 일들을 내다보고 있지 싶어요. 냄새 좀 맡아봐요……’

나는 얼결에 그녀의 바지춤에서 빼낸 손가락을 코에 대 보았다. 화한 비누냄새와 더불어, 어둠에도 비쳐 보이는 그 번들거리는 손가락……그것은 남편의 정액에서 풍기는 독특한 밤꽃 내음이라기 보다는 나와 그녀의 사이에 지금도 놓여 있는 미련의 여운 이었다.

-제4부 : 뒤를 돌아보지마!-

건너편에서 마주 오던 배 위에는 파티를 하는지, 한껏 드레스와 턱시도로 차려 입은 사람 들이 밴드의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독특하죠? 결혼식 피로연을 저렇게 하기도 해요. 밤에 보니까 더 멋이 있네. 안 그래요?’

‘응.’

항상 무뚝뚝한 나의 대답. 나는 강바람에 말라 들어가는 그녀의 씹물을 손가락 사이에서 비비며,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뉴욕에서는 얼마나 계실 거에요?’

‘사흘 있다가 토론토로 가야 돼. 그리고, 거기서 5일 정도 있다가, 샌프란시스코로 바로 떠날 계획이야. 그곳에서는 일주일 정도 있다가 서울로 갈까 해.’

‘시차적응도 하기 전에 돌아 가시겠네요?’

뜬금없는 그녀의 존대……

‘서울에서 알고 있는 계획과는 한 3일 정도 차이가 나지. 서울에서 다시 출근하기 전에 좀 쉬려고 말이야. 일을 빨리 끝내고, 나도 좀 쉬어야지, 몸이 예전 같질 않단 말씀이지.’

‘그래도 그렇지…..그럼…….제가…….. 동행해도 되요?’

‘동행이라니?’

‘지금 보면 또 언제 만날 수 있겠어요? 그러니, 지금부터 같이 다니면 어떨까 싶어서…..’

‘남편에게 그럼 안돼. 오늘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애도 엄마를 기다릴 텐데, 너무 밖으로 돌면…….그리고, 그건 내가 받아들이기 그렇네….. 이렇게 얼굴이라도 봤으니, 난 대만족이야.’

그 이후로 배를 내릴 때까지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턱을 괴고, 구비치는 검은 강물을 바라다 볼 뿐, 내뿜는 담배연기가 바람에 사라지듯이, 그녀의 입에서 재잘대던 분위기를 순식간에 앗아가는 바람에, 나도 뻘쭘 하기는 했다. 그런 반면에 배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걸어 오면서도 그녀는 팔짱을 풀질 않았다.

‘토론토에서…..다시 볼 수 있을까요?’

‘글쎄…..’

그녀의 팔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팔짱을 통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출발하기 하루 전쯤은 가능하지 않을까? 너 살고 있는 것도 볼 겸, 저녁식사라도 초대하지, 어때? 애기 얼굴도 보고……’

‘하루는 너무 짧은데…… 우리 집에 방도 꽤 많아요. 토론토에서 아예 저희 집에 계셔도 되는데……..’

‘아니야, 폐 끼치고 싶은 마음 없어. 그리고, 오늘 이렇게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토론토에서 남편 얼굴을 다시 대할 수 있을는지 자신도 없구…..’

하지만, 진정한 속마음은 그렇질 않았다. 우연치고는 너무 짜인 것 같은 상황 속에서의 조우 였건만, 나는 한국을 떠나왔다는 생각에, 여행 내내, 그녀가 곁에 있어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 곱씹고는 있었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서도…..

‘좀 천천히 몰아, 사고 나겠네……’

호텔로 가는 그녀의 자동차는 과속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아까워요. 이렇게 만나기는 정말 힘든 일인데….’

그녀는 운전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내 내 손을 붙들고 있었다. 손등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촉촉한 땀과 체온…..이젠 떨림이 많이 멈추어 있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승강기에 올라서면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내 발걸음을 앞에서 끌어댔다. 나는 한참이고, 방 앞에서 카드 키로 몇 번의 오 동작으로 인해, 애를 먹고 있었다. 마치, 불륜을 저지르려고 모텔에 들어서서 떨리는 호흡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그런 커플들처럼 말이다.

‘줘 봐요. 제가 해 볼게요.’

그녀는 능숙한 동작으로 쉽사리 문을 열고 들어가 입구에 카드를 끼우고, 불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거 보라는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황급히 나가느라 치우지 못한 섹스 잡지의 적나라한 장면이 침대 위에 널려져 있었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 잡지를 들어 흥미로운 눈초리로 넘겨대고……

보지마…..그냥 심심해서 산 건데…..’

‘아직까지 여전 하시네. 저렇게 널려놓고 감상하시는 버릇은…..’

그녀는 깔깔 웃으며, 마실 것을 달라고 하면서 침대에 벌렁 나가 누웠다. 나는 그녀를 놔 두고 화장실로 들어가 참았던 오줌을 신나게 쏴대고 있었다. 순간 벌컥 열리는 문. 나는 바지를 올리지도 못하고, 마저 오줌을 눌 수 밖에 없었기에, 그녀는 나의 곁에 서서 내가 오줌을 누는 모습을 쪼그려 앉아 보고만 있었다.

‘변하지 않았네.’

내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마지막 오줌 방울을 털어내기 무섭게 그녀는 내가 바지를 치켜 올릴 사이도 없이, 내 좇과 불알을 저울에 올려 놓듯이, 손바닥에 받쳐 올리면서 고개를 가까이 했다.

‘오줌 눴잖아! 더러운데……’

‘괜찮아요. 이렇게 보는 것도 정말 오랜 만이네….나 빨아봐도 되죠?’

나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눈을 감질 않고 있었다. 혓바닥으로 쓸어대는 그 감촉이란 것이 마치 물컹거리는 해삼으로 좇을 휘감는 것 같았다. 일일이 침을 발라가며, 좇대의 주위를 맴도는 그녀의 정성…..불알은 이미 그녀의 손에서 온기를 머금고 축 늘어지기 시작했고, 바지가 다리에 걸려 있다는 사실도 나는 잊고 있었다. 그녀는 확실히 능숙해져 있었다. 눈도 제대로 맞추질 못하던 그녀가 이제는 내 좇을 가지고, 자기 하고 싶은 만큼 빨아대고, 핥아먹는 그 여유스러움……목젖이 불거져 나올 정도로 내 좇을 깊이 입 속으로 넣고서 숨을 참는 순간의 이어짐…... 아마도 구역질이 나올 법도 한데, 그녀는 오히려, 기도를 막고 있는, 삼키기라도 한다면 꿀꺽 넘어갈 것 같이, 치명적으로 깊게 삽입되어 있는 내 좇을 미동도 없이, 온 입으로 삼키고 있으면서 마냥 행복해 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거머쥐었다. 나는 흡사 손잡이를 쥔 것처럼, 그녀의 두피가 그 머리카락에 딸려 다니며,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한 채, 그녀의 입이 꿰져라 좇을 들이댔다. 맛난 음식을 먹는 것처럼 입 안에 내 좇을 머금고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그녀…….변한 모습이 오히려 예전의 기억을 새롭게 상기시키는 묘한 생동감……나는 그 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절대 돌아가서는 안 되는 그 뒤안길을 의식하면서……..

-제5부 : 잠이 들 수 있을까?-

내 좇을 사정없이 빨아대던 그녀가 아무런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찡그리는 표정으로,

‘이렇게 쪼그려 있자니, 쥐가 날 것 같네….. 방으로 가요.’

나는 욕실을 나가면 벗게 될 옷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치켜 올리는 우스꽝스런 짓을 하고 있었다. 착실하게 벨트까지 다시 매고, 욕실을 나섰을 때, 야경이 호화스러웠던 실내의 창가는 커튼으로 굳게 닫혀 있었고, 그녀는 환한 실내의 조명을 가로막으며, 옷을 곱게 벗어내고 있었다. 아이를 낳은 몸매 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랫배에는 군살 하나 없었다. 예전 보다 더 도드라지고, 선이 고와진 유방……젖꼭지의 검은 빛이 역력하고, 발딱 돌출되어 있기 까지 했다. 껴 입었던 옷을 후회하면서 나 역시 그녀와 보조를 맞추어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는 침대로 가지도 않고서 거울을 힐끔거리며, 팬티를 내리자 마자, 튕겨져 나오는 내 좇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힘들게 집어 넣고, 또 꺼내시네?’

‘이거야, 원……’

그녀가 먼저 침대에 누웠다. 가랭이를 천천히 벌리면서 두 손으로 보지를 활짝 열어 재끼는 그녀의 과감성에 나는 할 말을 잊고 있었다. 내가 무릎을 꿇고서 그녀의 보지에 얼굴을 들이대려는데,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내려다 보면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보지에서 흐르는 묘한 냄새를 맡으면서 내 신경은 도대체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곧 이어, 그녀는 씩씩거리는 호흡까지 섞어가면서 수화기에 대고 유창한 독일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마도 슈나이더 인 모양 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볼 수가 없었다. 딴 사람의 아내 보지에 얼굴을 쳐 박고 있는 지경에, 남편과 통화하는 그 상황을 눈으로 살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나의 알량한 자존심…. 그러나, 그 심정과 반하여, 내 혓바닥은 통화를 방해할 정도로 그녀의 입에서 한숨을 토해놓게 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통화가 불가능 했던지, 그녀는 전화기를 내려 놓고, 완전히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신음과 한숨을 교대로 쏟아놓았다. 그녀의 보지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살집이 잡히질 않던 대음순은 이미 검게 변해 있었고, 타오르는 불꽃처럼 일렁이기까지 했던 그 씹털은 뿌리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깨끗이 면도되어 있는 것 하며, 살 속에 파묻혀 형체도 없던 그 공알은 이제 땅콩만한 크기로 바뀌어 내 혓바닥의 추임새를 기다리고 있었다.

‘흑흑…..으으.. 많이 변했죠?’

‘아니, 쩝쩝… 예전 그대론데 뭘…….물이 많이 나오는 거 외에는…..’

‘슈나이더도 그걸 무척 좋아해요. 윽윽윽….자기가 지금까지 섹스 해본 외국 여자들은……흑흑……. 몇 번 쑤시다 보면, 윤활제라도 바르지 않고서는……억억억……. 뻑뻑해서 맛이 가시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나 봐요…..처음부터 끝까지, 시트가 다 젖도록 흘러내리니…….’

그건 그랬다. 벌써부터 그녀의 보지에서는 물이 줄줄 흘러 내리면서 똥꼬를 타고 시트를 적시고 있었기에……나는 그게 혹시 내 침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의 변화 중에 독특한 것은, 역동적인 씹구녕의 내침이 그것이었다. 마치 씹구녕 속의 속살을 토해 놓는 것처럼, 내가 그녀의 공알을 씹어 돌릴 때마다, 아랫배가 움찔 거리면서 씹 속살이 밖으로 훌러덩 밀쳐 나오는 그 장관…..마치 씹 안의 이물질을 토하려는 본능처럼 보이기도 했다. 귀가 멍멍해 지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빨고 핥는 사이, 공중에서 버둥대던 그녀의 사타구니가 양쪽에서 쾌감의 지리리함을 참지 못하고, 나의 관자놀이를 온 힘을 다해 옥죄는 그 타이밍 때문이었고…….그녀의 다리는 허공에서 춤을 추다 못해, 이제는 공중으로 쭉 편 채로 발끝을 온 힘을 다해 내뻗고 있다. 그러던 그녀가 난데없이 벌떡 상체를 일으키더니, 나의 가슴을 밀쳐 나를 뒤로 벌렁 나가 눕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내 몸 위로 냉큼 올라 타서는 이미 발기될 대로 발기된 내 좇 위로 히프를 가르며, 체중을 실어왔다.

‘예전 보다 많이 헐렁할 거에요. 이젠 섹스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서….클럽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저를 가지려고 다른 남편들이 길길이 날 뛴다구요, 알아요?’

그녀의 자랑…..그러나, 그 말이 왠지 슬퍼 보였다. 그건 그녀의 운명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면, 나만의 오만이었을까? 나만 사랑할 거라면서 눈물을 흘리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있는데, 그 자랑이 무슨 소용이나 된다고…….나무토막 같던 그녀의 허리는 이제 다르게 변해 있었다. 상체를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전후좌우로 날렵하게 틀어대는 그 매끄러운 휘돌림……처녀 때의 탄력 대신 이제는 물결치는 살집의 울렁거림이 더 섹시해 보이는 그녀의 나이였다. 그런 와중에 내 좇은 그녀의 보지 속에 갇혀 세상구경도 못한 채, 숨이 막혀가고 있었고….

‘좇이…..좇이……에전 보다 더 딱딱하고 살찐 것 같네…..윽윽….허리가 지글지글 해…..아….. 나 어쩌면 좋아…….이대로 죽어 버렸으면 좋겠네……..아……아….아…..’

그녀의 휘돌림이 이제는 떡방아로 바뀌고 있었다. 철퍼덕, 철퍼덕 대며, 내 아랫도리를 향해 살을 부딪쳐 오는 그 살가움…..그녀 였다. 얼마 전 개그맨이 TV에서 하던 것 같은 그 무술 동작과 흡사한 그녀의 개구리 뛰기….그 철퍼덕의 소음 속에는 그녀와 내 살의 마주침도 있었지만, 진저리 나도록 흘러대는 그녀의 씹물도 한 몫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윽윽……윽윽….. 하나도 안 변했어. 그때랑 똑같아……어쩜 이렇게 이쁠까?’

‘아니…..이젠 그렇게까지 얘기해 주다니….. 나 너무 행복해요…..나의 이런 모습을 싫어하면 어쩌나 해서…..’

‘싫어하긴, 세상에서 내가 제일로 다시 만나고 싶었던 사람인데,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어도 이쁘다고 했을 껄?’

그녀는 그 말에 힘을 얻었는지, 더욱 거시게 아랫도리를 흔들며, 요분질에 집중하고,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좌우로 활짝 까 재끼면서, 손가락은 은근슬쩍 항문 주위를 쓰다듬었다.

‘쑤시고 싶어요? 그럼, 그렇게 해요. 나 그거 좋아해요. 슈나이더도, 다른 남편들도 내 보지랑 똥꾸녕에 한꺼번에 같이 박는 거, 엄청 좋아한다니까요!’

그녀의 보지 속으로 내 좇이 쑤셔질 때마다 움찔거리던 그녀의 항문 속으로, 나도 용기를 얻어 손가락을 쑤셔 넣어본다.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옥 죄어드는 그녀의 괄약근……그러나, 이내, 그 방비는 무너지고, 똥이 터져 나올 듯이, 그 구멍은 동굴처럼 벌어져 다물 줄 모르게 변해갔다. 나는 그녀 보고 엎드리라는 말도 하질 않은 채, 강제로 몸을 쓰러트린 뒤에 돌려 세웠다. 침대의 발 쪽으로 벽에 부착된 거울 속으로 미쳐가는 두 남녀의 광란이 물결치고 있었다. 그녀는 풀린 눈을 가까스로 열어가며, 내 자신이 그녀의 보지 속에 좇을 담그며,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낱낱이 살피려고 안간힘을 쓰고, 나 또한 그녀의 보지 속으로 튼실한 좇대의 리드미컬한 쑤심을 선사할 때마다, 일그러지며 터져 나오는 교성을 하나라도 표정과 함께 기억하려는 듯, 초점을 거울 속에서 잃지 않았다.

‘윽윽윽윽……으으… 보고 싶었어… 꿈에서라도…..’

‘저도요…. 정말 그리웠어요…..슈나이더가 당신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적도 있었어요….윽윽…..’

‘이렇게라도 만나니……얼마나 좋은지….. 사랑해…..사랑해……사랑해….’

‘사랑하고 있어요…..사랑해요….도대체 어째서 잊을 수가 없는 건지….’

너무 많은 횟수를 토해 버린 사랑한다는 그 흔한 입발림……그건 사랑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섹스를 통하기는 했어도 엄연히 존재하는 추억의 애절함에 대해서는 서로가 깊이 공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날 밤, 나와 그녀는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새벽이 지나, 아침이 될 때까지, 더 이상 기진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할 만큼 서로를 탐닉하면서 시간을 보내 버렸다. 창 밖으로 을씨년스러운 경찰차의 싸이렌 소리와 함께 나와 그녀는 잠이 달아난 채로, 벌거벗은 몸도 아랑곳 하질 않고, 커튼을 젖힌 채, 창 밖을 보면서 아스라히 떠오르는 뉴욕의 아침 햇살을 멍하니 느끼고 있었다.

‘오늘 힘들어서 어떻게 하려구…..’

‘괜찮아……하는 세미나란 게 다 그렇지….이젠 이골이 나서리…..어서 호텔로 돌아가야지. 슈나이더가 기다리다 눈 빠졌겠다.’

‘아직 시간 있어요….쪼끔만 이러고 있다가요….얼마나 이런 시간을 기다렸는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에 있어주었으면 한 게…….’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

벌거벗은 내 등을 뒤에서 껴 안고 있는 그녀의 두 팔이 다시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평생을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제6부 : 샐러드, 좋아하세요?-

나와 그녀는 밤사이 흠뻑 젖은 땀과 체액을 씻어 내면서 욕실에서 다시 한번 섹스를 했다. 그녀의 보짓살은 이미 부을 대로 부어서 비누칠을 하지 않고서는 삽입이 어려울 정도 였고, 젖꼭지는 멍울이 도드라져, 건드리면 깜짝 놀랄 정도로 아프다고 했다. 온 몸의 곳곳은 내가 남긴 키스 마크로 얼룩 대고 있었지만, 그녀는 욕실에서 섹스를 할 때 조차 내색하질 않았다. 그저 충실히 내가 실컷 박을 수 있도록 보지를 벌려 주면서 어서 박아달라고 애원하는 것은 어제 밤과 변함이 없었기에 나는 그저 그런 줄로만 알고 내리 박아대기만 하고 있었다. 또 한번의 격정적인 섹스가 끝나니, 핑 하니 어지러움 증을 느끼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그녀는 샤워기를 틀어 자신의 보지에서 내 좇물이 줄줄 흐르는 와중에서도 내 몸을 씻어 주느라 자신을 돌보질 않고 있었다.

‘난 괜찮아. 너도 어서 씻어야지……’

‘괜찮아요. 또 언제 보겠어요! 이렇게 내가 씻겨주고 싶었어요.’

그녀는 가끔 내 몸을 씻다 말고, 샤워기를 자신의 얼굴에 대고 뿌렸다. 나는 짐작하고 있었지만….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하면서, 그녀는 나를 세워 놓고는 아주 길게, 그리고 깊숙하게 내 좇을 입 속 가득 머금고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목구녕 쪽으로 내 좇을 삼켜갈 듯이 다가서고….그녀의 얼굴에서는 물기가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죽었던 좇이 일어서자, 그녀의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또다시 나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내 둔부와 허리를 둘러 두 팔로 휘감은 채, 고개를 앞뒤로 흔들면서 내 좇을 그녀의 목구녕 속으로 들이박기 시작했다. 구역질도 안 나는지, 그녀는 용케 내 좇의 쑤심을 감당하고 있었고, 나는 나오지도 않을 좇물 이었지만, 끝끝내, 그녀에 대한 작별인사처럼, 점점이 좇물을 그녀의 목 안으로 흘려 보냈다.

‘이제 됐네. 저 씻고 나갈게요. 먼저 옷 입어요. 바쁠 텐데……’

나는 사실 몸을 움직일 힘도 없었지만, 그런 상태를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녀를 모독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고, 나는 보통 때보다 더 활기찬 모습을 오버해가며, 옷을 갈아입는 그녀의 뒤에 서서 브래지어의 후크도 채워주고 있었다.

‘이제 갈 시간이네…..또 만날 수 있을까요? 토론토에 오시면 꼭 전화하세요….. 어느 호텔에 있을 거에요?’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전화하고 싶다고, 다시 만나고 싶다고 얘기 하려던 것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집주소와 전화번호, 핸폰 번호까지, 호텔 메모지에 적어서 나에게 건네며…….

‘토론토에서 꼭 한번 집에 모시고 싶어요. 그냥 저녁식사 한다고 생각하고…. 안 되요? 애기 얼굴도 보고…….’

‘시간 내 볼게….장담은 못하구……..어여 가!…. 남편 기다리겠다.’

그녀는 돌아서다 말고 나에게 다시 와락 안겨왔다. 미련한 수도꼭지…..그녀는 아직까지 욕실에서 틀어놓은 물기를 얼굴에서 닦아내지 못하는가 보다.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주머니 안에 있는 그녀가 남긴 메모지를 꺼내 보았다. 그녀의 가지런한 글씨……나는 뉴욕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그 쪽지를 아마 백 번은 더 봤을 것 같다. 토론토에 내리면서 나는 일부러 그 쪽지를 잊은 척, 지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 전날 아침에 나는 도저히 세미나에 참석할 수도,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머리를 쥐어 박았다. 미련한 팔푼이 같으니라구…….

‘따르릉……따르릉…….’

메모지에 적힌 대로 번호를 눌렀지만, 전화는 자동응답기로 연결되고, 나는 곧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역시 전화는 자동응답기로 바뀌었고, 나는 그냥 하던 버릇처럼, 남편이 들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질 못하고, 한국말로 메시지를 남기기로 마음 먹는다.

‘응, 나야. 나…….. 내일, 오후 비행기로 떠나……. 그냥 전화해 봤어…….. 집에 없는 모양……’

그러나, 그와 동시에 누군가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저에요…..저!…. 전화 받았어요…..너무 기뻐서 혹시나 했는데…..’

‘난 또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제가 데리러 갈게요. 지금 거기 어디에요? 콜러 아이디에는 쉐라톤 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다운타운의 리치몬드 스트리트에 있는 거 말하는 거에요? 맞죠? 내가 금방 갈게요.’

나는 알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거지? 그녀는 30분만에 로비에 도착했다. 나를 보고 달려 와서는 가슴팍에 마구 안기는데, 나는 혹시라도 사람들이 볼까 봐 멀뚱하게 서서 그녀를 맞았다. 눈에 눈물까지 촉촉해진 그녀……..뉴욕에서 보고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나에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아무래도, 외국 여행이 가져다 주는 자유로움이 원인이 아닌가 싶었다.

‘왜 그래? 죽은 사람 살아 돌아온 것 처럼…..사람들이 볼라!’

‘보면 쫌 어때서….어서 가요. 아예 호텔 체크 아웃 하지 그래요? 오늘은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제가 내일 피어슨 공항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어서요…..’

‘그럼…..그럴까?....그래도 될까?’

나는 마지못해 다시 짐을 챙겨서 내려왔다. 호텔을 그녀의 차로 나서는데, 그녀는 너무나 씩씩해 있었다.

‘돈벨리로 갈게요. 그게 더 빨라요. 지금 이 시간엔…..’

‘돈벨리가 뭔데?’

‘남북간 도심 고속도로에요. 저희 집은 메이저 멕켄지 라고 토론토 북쪽이라서 조금 한산하긴 해도 조용해요.’

그녀는 차를 몰면서 다시 CD를 튼다. 귀에 익은 그 노래……연속해서 몇 번을 녹음 했는지, 아무리 선곡을 해도 CD를 바꾸지 않는 한은 그 노래뿐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디가 어딘지 방향감각도 없이, 나는 촌놈처럼 그녀의 차에 타고 앉아 멀뚱 허니, 창 밖만 바라다 볼 뿐이었다.

‘남편한테는 얘기 했니?’

‘아까 오면서 전화 했죠. 너무 좋아 하더라구요. 오늘 저녁에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만사 제쳐 놓고 일찍 들어온다고 했죠. 얼마나 기뻐 하던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 남자 였다. 자기의 아내와 저지른 섹스의 분탕질이 온 몸에 남은 것을 목도했을 것이 분명한데도, 나의 방문을 기꺼워 하다니…..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오고 나니, 길가로 펼쳐진 광활한 주택단지는 나를 매료 시켰다. 지평선이 보인다는 사실은 나를 무척이나 고무시켰다. 언제나 좁아터진 땅 덩어리에서 복작댈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탁 트인 대지를 대하니, 그들의 생활이 어째서 자유스러운지 공감이 가기도 했다. 골목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담장이 없이 이어진 주택가의 모습. 바로 그것 이었다. 그 어느 집도 담장이 없었으며, 현관이 바로 대문인 개방사회의 철저한 표본…..서울의 도둑들이 봤더라면 군침이 돌다 못해 혓바닥이 땅에 닿을 지경일 것이었다. 차를 세우고, 집에 들어가자 마자, 보인 것은 너른 주방에 한 가득 펼쳐져 있는 음식 재료 였다. 아마도 음식 준비를 하다가 내 전화를 받고서 부리나케 달려 온 모양이었다.

‘음식 만드는 중이었어?’

‘조용조용! 애가 지금 자요. 아주머니가 2층에서 재우고 있어요. 낮잠 잘 시간이거든요. 이제 곧 킨더가든도 가야 할 텐데, 저렇게 잠이 많아서 어쩌나 싶기도 해요.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이렇게 벌려 놓고 튀어 나갔지 뭐에요?’

‘무슨 음식을 하려고 했는데?’

‘샐러드 좋아하죠? 내가 오늘 스테이크랑, 샐러드 대접할게요. 저 이래 뵈도 요리 잘해요…..’

샐러드라….

‘샐러드는 그이도 무척 좋아해요. 사람들 사는 모습 같다나요? 여러 종류의 야채가 뒤섞여도 드레싱을 잘 골라서 버무려 주면, 맛이 기가 막힌 게 그렇대요. 여러 사람이 엉켜 살면서도 섹스라는 드레싱을 잘 섞어주면, 행복이 오는 것처럼 말이죠…..’

-제7부 :그녀는 예뻤다-

나와 그녀는 발걸음 소리를 죽여가며, 2층으로 올라갔다. 한국 할머님 한 분이 아이를 재우고 있었다. 나와 그녀를 보고, 미소로만 화답하고, 무슨 손짓 인가를 하면서 두 사람을 방에서 내 보냈다.

‘아이가 정말 이쁘네…..’

‘그렇죠? 남들도 그래요. 고슴도치 같지만…..’

‘근데, 그 수신호는 뭐래?’

‘아, 그거요? 오늘 아주머니께서 애를 데리고 집에 가서 주무신다는 말씀이세요. 제가 아까 그렇게 해주실 수 있는지 물어 봤었거든요. 손님도 오고, 애가 잠도 안자고 밤 늦게까지 설칠 것 같아서…..’

‘그렇다고 애까지 쫓아내고, 내가 면목이 있나?’

나는 속으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아기에게, 특히나 슈나이더 에게 더욱 미안했다. 하루였지만, 내가 있을 방에 짐을 내려 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 입으려는데, 그녀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가만 있어봐요. 이 옷이 맞을까 몰라?’

그녀가 갖고 온 옷은 남편의 것이었는데, 턱없이 커서 혀만 쯧쯧 찰 뿐이었다. 나는 갖고 온 옷을 그냥 입겠다고 하자, 우선 빨래 감부터 있냐고 성화였다. 남편이 오려면 시간도 많은데, 집안에 세탁기와 건조기도 있으니 냄새 풍풍 나는 옷, 다시 깨끗한 쪽으로 골라 입을 생각하지 말고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괜찮은데…..’

‘아니에요. 우리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서양 사람들은 특히나 냄새에 민감해요. 어여 내 놓으세요. 그리고, 이 목욕 가운 입고, 따라 내려 오세요. 세탁기는 지하에 있거든요.’

나는 속옷까지 홀랑 벗은 채로 목욕가운을 걸친 채, 그녀를 따라 내려왔다. 세탁실은 지하에 있었고, 중앙집중식 냉난방 기기로 인해 그 안의 소음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 세탁기와 건조기 앞에는 담배 재털이와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여기가 제 향수를 달래주는 곳이에요. 슈나이더는 담배를 안 피워요. 그래서 저만 이렇게 훠니스룸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죠. 처량맞게 생각되어서 울적해지기도 하지만, 오늘은 그렇질 않네요. 어서 앉으세요.’

그녀는 수북한 빨래 감을 세탁기에 넣고서, 세제를 넣은 뒤에, 세탁기를 작동 시켰다. 그리고는 나에게 담배를 권했다. 한국 담배와 틀리게, 쌩뚱 맞은 길이로, 만들다 만 것 같은 길이의 담배….. 그러나, 피워보니, 끝내 입안이 텁텁해 지는 것 보담은야, 알맞을 때 끝이 나서 그런대로 괜찮은 담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앉아 있는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목욕 가운의 사이로 손을 쑤욱 집어 넣는다.

‘다신 못 보는 줄 알았네….’

그녀가 웃으면서 목욕 가운의 앞섶을 열어 재치고, 한 손에는 담배, 한 손에는 내 좇을 쥐고 흔들었다.

‘담배를 피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거야 원……’

나는 그녀에게 눈을 흘겼다. 그러나, 그녀는 담배 연기와 더불어 내 좇을 입에 물었다. 고개를 흔들 때 마다, 추운 겨울날, 그녀의 콧김처럼 담배연기가 코로 밀려 나오는 모습은 희한한 광경 이었다. 나는 천천히 가랑이를 벌려 목욕 가운이 그녀의 오랄을 성가시지 않도록 벌리면서 도와 나갔다.

‘언제나 먹어 보지만, 정말…..쭙쭙…. 국물 맛이 끝내줘요….’

나는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의자의 뒤로 기댄 자세에서 나의 고개는 이미 뒤로 젖혀져 있었고,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그녀의 육탄공세는 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입안은 뉴욕에서처럼 다시 나의 좇으로 채워지고, 그 입안과 목구녕은 좇물의 지천으로 변해 갔다. 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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