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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향기(香氣) - 13부

 

 

 

 

 

우..다리가 후달거린다...온몸의 근육이 다 풀려버린 듯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아 나는 그저 축 늘어진 오징어 마냥 책상에 엎드렸다. 진짜 오늘 하루 재수 없다... 아침부터 네크로맨서 한테 걸려서 기합까지 받고..

겨우 끈질기게 나를 붙들고 늘어지던(?) 지하철의 여성을 떼어놓고 초고속 내가패써처럼 달려온 나는 결국 단 1분의 차이로 컷트라인에 걸려 재수 없게도 그날 보초를 서기로 했던 선생이 잠들면 진짜 시체로 만들어 버린다는 동광 최고의 악명 네크로맨서 선생 마수에 빠져 무려 30분 이상을 기합을 받고 나서야 교실에 들어올수 있었다.

벌써 2교시가 지난 시간 이었지만 지옥같은 기합의 후유증은 가시기는 커녕 점점 더 커져 온몸을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만들어갔다.

아...진짜 오늘 재수 옴 붙은 날이다..아침엔 치한으로 몰려 뺨맞고(물론 해명되긴 했지만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다..) 그 다음엔 그 이상한 여자때문에 안 받아도 될 기합까지 받고...하아..진짜..끔찍하다..아직 하루의 반도 안지나갔지만 이 끔찍한 하루가 얼릉 끝났으면 하고 생각했다.

탁. 책상위에 턱을 붙이고 두팔을 아래로 축 늘어뜨린채 시체처럼 엎드려있던 내 눈앞에 정체불명의 캔 음료 하나가 놓여지자 나는 이상한 마음에 눈동자만을 굴려 위를 바라보았다.

<뭐해??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축 늘어져서...>

내 책상 앞에서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언제나 처럼 어깨까지 내려오는 윤기나는 검은 머리를 찰랑 거리며 귀여운 앞머리를 옆으로 곱게 넘겨 핀으로 꼽은 그녀는 뒤의 의자에 등을 기대며 책상에 내려놓은 음료를 내밀었다.

<마셔..>
<어..고마워...>

늘어진 몸을 추슬러 눈앞에 있는 음료수를 받아든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눈앞의 그녀를 바라보았다.. 왠..일이지?? 얘가 먼저 말을 걸고??

<괜찮아??>
<응?? 뭐가??>
<아니...아까 아침에 수학 선생한테 기합 받았잖아...그거 괜찮냐고..>

봤나보네?? 하긴 이 좁은 학교에서 그런것 쯤이야 금방이지...

<아...괜찮아...라고 말하고 싶은데..죽을 것 같아...힘들어서..마치 몸 안의 정기를 다 뺏긴 느낌이야...>

다 죽어가는 표정을 지으며 앓는 소리를 하자 그녀가 재밌다는 듯 가볍게 미소를 지어갔다.

<그래도 안 죽은게 어디야..네크로맨서 한테 걸려서 시체 안된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걸??>
<그런가??크크>

확실이 그렇긴하지... 이 선생한테 걸려서 멀쩡한 모습으로 간 놈은 없으니까..

네크로맨서...우리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마주치길 꺼려하는 악명의 수학교사..
이름은..뭐 모른다..내가 들어올 때부터 학교에선 네크로맨서라고 불리우고 있었으니까..이름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 선생이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 같이 꿀밤 한번 먹여도 선생을 폭행죄로 고소하고 머리 한번 쓰다듬었다고 성희롱으로 고발하는 시대에 그런 짓은 없어진지 오래니까.. 그런 시대에 발 맞춰 이 선생은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문제 학생들을 응징했다. 상담을 가장한 정신적은 기합을 통해서 말이다..

하하..그게 무슨 기합이냐고?? 모르시는 말씀.. 네크로맨서의 기합은 다르다 마치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법한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흑마법사의 얼굴을 한 그와 단둘이 상담실에 앉아봐라..같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감이 조성된다.. 거기다 얼굴과 지극히도 매치되는 음산한 목소리로 끊이지 않는 설교로 귀와 정신을 자극하면 그때부터 고통은 시작된다. 가만히 앉아 얘기를 듣고만 있는데도 뭔가에 혼이 빨려나가는 사람처럼 힘이 없어지고 기력이 사라져나가는 것이 정말 이 선생이 악마는 아닐까 하고 생각 되어질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진다. 아마..3시간 동안 그와 상담을 한 학생이 다음날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서 학교에 못나왔다는 소리도 있었지?? 그 정도로 그의 주술(우리는 그렇게 부른다..악마의 주술이라고..)은 강력하고도 위험한 것이었다.

뭐...그에 비하면 나는 양호한 편이지..적어도 실려가진 않았잖아..

<근데 이건 웬거야??>

내 앞에 놓여 진 음료수를 들고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냐는 듯 물어보았다.

<그냥...너한테 고마워서...>
<고마워?? 뭐가??>
<크크....그런게 있어...>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나를 보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영문을 몰라 멀뚱이 바라보았다. 언뜻 언뜻 립글로즈를 바른 듯 반질거리는 분홍빛 입술 사이로 보이는 가지런한 하얀 치아가 곱게 빛나는 모습이 상당히 보기 좋았다. 여고생 다운 풋풋함이라고 할까??

<어젠 왜 일찍 들어갔어??>
<어제??>
<응..찜질방에서...일찍 집에 간거 아니었어??>
<아니..나 늦게까지 찜질방에 있었는데..>

그지...누나가 집에 끝날때마다 한번더 하자고 하자고 달겨드는 통에 새볔까지 방에서 나오지도 못했는데..난 진짜 누나가 그렇게 밝히는 여잔지 그날 처음 알았다. 잠깐 쉴라치면 다가와서 다시 조르고 힘없어서 아무것도 안할라고 해도 혼자 위로 올라와서 움직이는 데 아..진짜 그 끊이지 않는 스테미너와 욕정에 두손 두발 다들었다. 덕분에 오늘 태어나 처음으로 늦잠까지 잤다. 그 꿈에 그리던 그 5분의 유혹이라는 늦잠을...

<그래?? 그럼 경품추천 못봤어??>
<경품추천?? 아..그거..못봤어...사정이 있어서..>
<사정??>
<응..뭐 그런게 있어..>

누나랑 위에서 그 짓하고 있었다고는 말 못하지..

<근데 그건 왜??>
<응?? 어...그럼 모르겠네??>
<뭘??>
<나 어제 경품에 당첨 됐거든..>
<경품??>
<어...일등 해가지고 김치 냉장곤가 받았거든...>
<우와..진짜??>

나는 좀전의 정신적인 피로감도 잊어버린 채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와..내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신기하네..사람이란게 이상한게 내 주위에 경품으로 뭘 탔다고 하면 신기한 기분에서 그 사람이 신비해 보이기 까지 할때가 있다. 지금의 내 상태가 그랬다.

<야...좋겠다...신기하네..그런게 되는 사람이 있구나..내 주위에도...좋겠다..야..>
<뭐..좋긴 좋지...엄마가 큰일 했다고 용돈도 올려 주셨으니까 여러모로 좋긴해..>

뭔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약간의 이상함을 느꼈다.
왜 저러냐?? 덩실덩실 어깨춤을 춰도 모자를 판에..

<근데 표정이 왜그래?? 별로 좋아하는 표정이 아닌데??>
<아니..그게...이걸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뭔가 꺼내기 힘든 말인지 얼굴 가득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의 기색을 띄우는 그녀는 꽤나 곤란한 얼굴이 었다. 뭔데 그러냐??

<왜?? 뭐 때문에 그러는데??>
<그게..니 번호가..44번 맞지??>
<내 번호?? 어..맞지..>

당연히 기억난다..그 재수 없는 숫자를 어떻게 잊겟는가..누나랑 나랑 연신 그 번호를 건네준 카운터 아줌마를 씹어댔는데..

<근데 그건 왜??>
<사실은..내가 일등이 바로 나온게 아니거든..처음에 다른 번호가 당첨이 됐는데 그 사람이 안 나와서 재추첨에서 내가 당첨 된건데..>

잠시 숨을 돌리듯 말을 멈춘 그녀의 모습에 나는 조금씩 뭔가 불길한 기운이 내 몸을 엄습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이 기분 나쁜 느낌은...뭔가 무서운 말이 들려올 것같은 기분이다...

<그게..하아...44번...바로 니 번호였어..>

쿵!!

말이 끝나는 동시에 머리 위로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내 뇌리를 때리는 느낌이 들며 내 머릿속을 하얗게 퇴색시키며 부셔나갔다. 지...지금 무슨 소리 한거야 얘가??

<그..그러니까 니가 지금 한말은...>
<어..원래 대로 라면...강혁이 니가 받았어야 하는 거지...>

쾅쾅!! 머리위로 얹어진 돌덩이 위로 연속적으로 두 개의 돌덩이가 떨어지며 다시한번 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어 갔다. 재수없는 번호라고 했다..죽을 사자가 두 번이나 있으니까 전혀 안될 꺼라고 생각했다...근데...됐단다..아니..됐었단다...내가 없어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하하..하하...>
<저...기..괜찮아??>

뭔가 혼이 빠져 나간듯 한 나의 얼빠진 모습에 신경이 쓰이는 듯 그녀가 허리를 숙이며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날 바라본다.

<어머...너 얼굴에서 식은 땀나...>
<괜찮아...그냥 좀...아까 상담 받은 후유증이 남아서 그래..신경쓰지마..>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간신히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진 머릴 추스르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켜갔다. 여기서 경품 못받은것 때문에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꼴을 보일순 없어..사나이 갑빠가 있지...그렇게 쪼잔하게 보일순 없다...그래두..너무 충격이 크다..이번건..

<근데..1등 상품이..김치 냉장고라고??>
<어...딤챈가 뭔가..암튼 좋은 거라고 했어..>

디..딤채?? 그 유명한 더 푸르딩딩 딤채?? 나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려가자 그녀는 다시한번 걱정스러운듯 나를 바라보았다.

<너..진짜 괜찮아??>
<아..진짜 괜찮아...뭐 그런거가지고..그럴...수도 있고..저..럴수도 있지...>
<그렇지?? 휴..다행이다 난 또 니가 충격 먹을까봐 약간 걱정했는데...미안한 마음도 들고..>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차마 울상을 지을수는 없었기에 조금씩 일그러져가는 얼굴을 억지로 피고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뭐...그런거 가지고...정 그러면 나중에 경품탄 기념으로 맛있는 거나 사주던가..하하..>
<뭐 그 정도야..어려운일 아니지..니 덕분..이라고 말하긴 좀 미안하지만 암튼 덕분에 용돈도 올랐으니까...언제든 말만해..먹고 싶은 거 있으면 한달 용돈을 다 털어서라도 쏠 테니까..크크>

걱정 말라는 듯 주먹을 불끈 쥐며 호기롭게 외치는 그녀의 모습에 나의 가슴은 점점 더 새까맣게 타들어만 갔다. 내...덕분이란다..내 덕분에..내가 안간 덕분에..

그녀 앞에서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해 끝까지 어색한 웃음을 유지한 나는 그녀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마자 책상에 엎드려 이를 악물고 가슴을 쥐어뜯어 갔다.

내 딤채~~~라고 연신 외쳐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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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건너편 동네 똘이 아줌마네에서 반상회를 가졌을때 일 이었다. 여느때처럼 동네 아줌마들과 친목(?)을 다지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한 나는 우연히 그 집에서 그 유명하다는 더푸르딩딩 딤채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세련된 색감에 김치 냉장고 같지 않은 날렵한(?) 디자인..거기다 편리한 수납공간..
나는 그 뛰어난 기능과 화려한 외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런 것이 세상에 있었다니...
그것은 나에겐 커다란 충격이었고, 새로운 세상이었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정말로 갖고싶다.. 멈추지 않는 구매욕과 소유욕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없었다.

<누나..우리 김치 냉장고 하나 사자..>

반상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누나에게 바로 작업을 걸어갔다. 딤채 획득 작전을..

<김치 냉장고?? 갑자기 무슨 뜬금 없는 소리냐??>
<갑자기가 아냐..전부터 생각했는데 우리집에도 그 고급 클래스의 가전제품이 필요 할것 같아..이제 여름인데 물건도 빨리 상하고 그러잖아... 그럴때 이 김치 냉장고만 있으면 만사 OK.. 음식 상할 걱정 없고 오히려 싱싱하게 유지도 되고..얼마나 좋은데..>

마치 물건 홍보하는 사람처럼 미리 준비한 가전제품 책자까지 펴가며 누나에게 열띤 의견을 내놓는 내 모습에 누나는 잠깐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갔다.

<너 오늘 반상회 날이었냐??>
<어?? 어...그건 왜??>
<그래..그럼 그렇지...요번엔 또 누가 김치냉장고 샀데??>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쇼파에 등을 기댄채 나를 바라본다.

<아..아냐...그냥 전부터 생각한거야...그리고 또 라니..내가 언제 그랬다고..>
<야...너 기억 안나냐?? 저번에도 뒤집 미달이네 엄마가 트롬 세탁기 샀다고 바로 집으로 와가지고 세탁기 사자고 한거??>
<내..내가 그랬나??>
<어..너 매번 그랬어...꼭 반상회 날만 되면 와가지고 뭐사자 뭐사자 하고...>
<그런거 아...냐..암튼 이번엔 틀려..이게 얼마나 좋은거냐면..>
<안돼!>

칼로 무짜르듯 미처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내말을 잘라버린 누나는 듣기 싫다는 듯 눈앞에 놓여있는 신문을 펼쳐들며 딴청을 피워 갔다.

<누나...그러지 말고 내 얘기 좀 만 들어봐 이게 얼마나 좋냐면 음식의 신선함이 오랜시간 유지 될수 있도록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여름에도 걱정 없..>
<난 상한것도 잘 먹어..그러니까 필요없어..>
<그.그럼..김치...우리 김치 냉장고에 넣어가지고 먹다가 금방 쉰적 많았잖아..그러니까...>
<그걸로 니가 볶음밥 해주잖아...난 그게 더 좋아...>
<진짜...이거 하나 사면은 공간 수납 걱정 없다니까..내부도 엄청 커가지고...거기다 넣으면..>
<지금도 냉장고 텅텅 비었잖아...뭔 공간이 필요해..>

젠장...살림도 안하는 여자가 뭐 이렇게 자세히 아냐...뭐라고 할말이 없게 만드네...

<누나...그래도..>
<야..우리 두명 밖에 안사는 집에 무슨 김치 냉장고야...그런건 사치야 사치..>
<그럼 누나 맨날 찬장에다 양주 모으는건 사치 아니냐?? 누가 먹는 다고 그런걸 모아??>

양주 모으기...바로 술을 사랑하는 우리 누님의 유일한 취미이자 괴벽이다..언제부터 모으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하나의 찬장을 가득 채워 멋들어지게 거실 한쪽에 전시해논 상태였다. 저것만 팔아도 김치 냉장고에다가 덤으로 김치통까지 사겠다!!

<야...그건 다르지..그건 내 돈으로 내가 산거잖아..>
<그런게 어딨어?? 누나가 벌었으니까 누나맘대로 쓴다니...>
<꼬우면 너도 벌든가...>

윽....치사하다...직장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돈 못버는 날 이렇게 핍박하다니...솔직히 나도 안다..이 집에 김치 냉장고는 무리라는 걸..누나나 나나 집에서 밥먹는 건 아침 빼고 어쩌다 먹는 저녁뿐..거의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오는 상태였다. 그런 집에 김치 냉자고라니..내가 생각해도 조금 무리이고 사치였다. 하지만...저 여편네가 저렇게 나오니 나 역시도 오기가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낮에 봤던 그 화려한 디자인의 푸르딩딩 오리지날 딤채가 내 눈앞에 어른 거려와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좋아...그렇게 나온다..이거지..그럼 나도 돈 줘..>
<응?? 무슨 돈??>
<나 맨날 집에서 살림하잖아..그에 대한 보상은 해줘야지..>
<용돈 주잖아..>
<그건 틀리지..난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급여를 줘...이래뵈도 내가 꽤 고급 인력이라고..>
<못주겠다면??>
<뭐..그땐 파업에 들어가야겠지...내 뜻이 관철될때 까지..>
<그 말은??>
<말 그대로야..아무것도 안하겠다고...빨래도 밥도 청소도..암것도 안할꺼야..>
<호오?? 그래??>

보던 신문을 접고는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시선에 나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며 단호한 얼굴로 마주 바라보았다. 어때 이렇게 나오니까...무섭지??그러니까..어서..사준..다고..말해..

<맘대로해..>
<엉??>
<맘대로 하라고..청소를 하든 안하든 빨래를 하든 안하든..신경안쓸테니까...>

할 말이 끝났다는 듯 신문으로 눈을 돌린 누나의 모습에 나는 잠시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저..저 여자가 왜 저렇게 배짱을 부리지??

<지..진짜 안한다?? 나 정말 파업 할꺼야..>
<글세 맘대로 하라니까...>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젓는 누나. 그래.. 좋다구 나도 화나면 무섭다고...누가 이기나 보자..

그러나 승부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 버렸다. 단 이틀 만에..잠시 잊고 있었다. 그 옛날의 과오를..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치우는 사람이 없는 집이 단시간내에 얼마나 지져분해 질수 있는지...내가 선포한 대로 나는 집안일에 일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빨래도 청소도 설거지도.. 그에따라 자연스레 집은 조금씩 원래의 깨끗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흉가의 모습을 띄어가기 시작했다. 단 이틀만에 온 산처럼 쌓여버린 누나의 빨래들과 몇벌의 내 빨래들...누나가 먹어치운 뒤에 나온 엄청난 양의 그릇들과 식기들...구석 구석 생긴 거미줄(난 진짜 처음 알았다..이틀만에도 그렇게 거미줄이 생길수 있다는 것을..그땐 몰랐지만 누나의 계략으로 심어논 거미줄이라는 걸 나는 뒤늦게야 알수있었다.) 아버지가 지으시고 엄마가 꾸미시고 내가 가꾸던 아름다운 우리의 집이 그렇게 조금씩 폐허로 변해가는 모습에 나는 더 이상 내 뜻을 유지 할수 없었다. 결국 나는 울음을 삼키며 누나에게 항복을 선언 할 수밖에 없었고 누나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승리자의 미소를 띄우며 승자의 입장에서 협상을 시도하였고 결국 딤채 획득을 위한 나의 파업은 단 이틀 만에 나에게 용돈 감봉이라는 엄청난 타격을 준 뒤에야 힘없이 끝나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누나 앞에서 김치 냉장고에 김자도 꺼내지 않았지만 잊지는 못했다.
아니 잊을수 없었다. 매일 광고가 나올때마다 아픈 마음을 추슬러야 할 정도로 나의 가슴속에 박힌 투석처럼 딤채는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대들은 본적이 있는가?? 가끔씩 티브이에 나와 더푸르딩딩 딤채를 외치던 지진희군의 모습을... 사람들은 왜 딤채만 쓸까?? 행복한 집에선 왜 딤채만 쓸까 하고 연신 궁금해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언제나 엄청나게 끓어오르는 구매욕을 간신히 억눌러야 했다. 지금 으로서는 그 꿈의 가전기구를 사기엔 여유가 되지 않았기에.. 그래도 언제나 바랬고 언제나 원했다..편리하고 넓은 수납공간에 음식을 최적의 상태에서 오랫동안 신선하게 유지시켜 주는 뛰어난 보존기능에 김치를 알맞게 익게 해주는 숙성기능까지.. 한 가정의 살림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지고 싶어할만한 소비자 만족도 1위의 그 딤채를..

그런데..그런데!! 그 딤채를...놓쳐버리다니!! 그것도 공짜로 얻을 기회를!! 나는 아직도 정신적이 공황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채 책상에 엎드려 그 재수 없었던 번호 44번을 연신 되뇌이며 통곡할수 밖에 없었다. 하아...오늘이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오늘 너무 힘든 날이다..아까의 터진 일과 지금의 이 새로운 충격.. 모든 것이 나에겐 힘든일 뿐이었다..

하아...정말 이보다 재수 없는 하루가 있을까?? 혹시나 여기서 더 나쁜일이 터지진 않겠지..신이 있다면 정말 그러진 않으실꺼야...암...양심이 있으면 그러지 않겠지...근데 옆에 누가있나??

나는 언뜻 느껴지는 기척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갔다. 눈앞에는 비쩍마마른 한명의 남자가 서있었다.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와 얄팍한 인상을 하고 있는 그는 더없을 정도로 음산한 눈초리로 엎드려있는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바로 지금이 수학시간이라는 걸...그리고 그 담당이 아까도 말했던 그 악명 높은 네크로맨서 라는 걸...

<배짱이 좋구나...감히 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니...>

마치 칠판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나지막히 내뱉는 그의 모습에 나의 심장이 조금씩 옭져여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저...그..그게...>
<호오...거기다...수학시간에 국어책까지??>

엥?? 선생의 말에 나는 놀란 눈을 하며 책상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고등 국어!! 라고 버젓이 적혀있는 책이 떡하니 나와있었다. 아마도 정신없는 상태에서 아무거나 꺼내다가 나온것이리라...

<하하...저 선생님..그게...>
<니가 아까의 상담만으로는 좀 모잘라랐던 모양이구나....이토록 보란듯이 나에게 요청을 해오는 걸 보니...>

삭막한 얼굴에 얇은 미소를 띄우며 소름끼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리는 것을 느꼈다. 발뺌도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나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었고 나는 그 지옥의 입구에서 들어갈 시간만을 기달리며 덜덜 떨고 있는 나약한 어린 양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재수없는 오늘을 저주하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아....제발..그만...날 좀 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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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머피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잘못되어 가는 일은 어김없이 잘못되어 간다는 법칙으로 엎친데 덮친격 설상가상 등으로 바꿔 부를 수 있는 온갖 재수없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난 다는 그 법칙.. 맨날 숙제 안해서 혼나다가 처음으로 숙제라는 걸 해봤는데 그날 검사 안하고 넘어갈 때...그 다음날 열 받아서 숙제한 거 놓고 갔더니 그날 검사해서 오지게 혼날 때..등등 어쩌다가 겹쳐서 일어나는 그런 재수 없는 일들을 흔히들 사람들은 머피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지금 교실 밖에서 잔뜩 피폐해진 얼굴을 하고 힘없이 서있는 나는 문득 그 법칙을 생각해내며 이 묘하게 재수 없는 하루를 그저 한숨을 내쉬며 한탄만 해갔다. 수학책만 폈놨어도..그녀한테 그 얘기만 안 들었어도..아니 어제 누나랑 거기서 계속 그 짓만 안했더라도...무엇보다 오늘 지하철만 안탔어도.. 지금과 같은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별 의미도 없는 후회를 해가며 연신 지친 얼굴로 교실 벽에 몸을 기대어 두 팔을 축늘어뜨린 나의 모습은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낙오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만큼 나의 정신과 몸 마음은 피폐해질데로 피폐해져 있었고 나에게 일어난 이 모든 재수없는 일들이 날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증명하고 있었다.

렛잇비..렛잇비...언제나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나의 주문도 한꺼번에 몰아닥친 이 상황에서는 별 효력이 없었다.

하아...어떻하냐..방과후 네크로맨서와 상담이라니...진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상담실이라는 그 밀실에서 그 흑마술사와 함께 있어야 하다니..생각만해도 두려움에 소름이 돋는다.

<학생 지금 뭐하는 거지??>

오싹한 마음에 몸을 떠는 내 등뒤에서 갑작 스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오늘 하루 종일 놀라기만 했던 나는 뭔지 모를 지금의 상황에서도 흠칫 몸을 떨며 움츠려갔다.

<저..그게..>
<보아하니까 벌서는 것 같은데...손 똑바로 못 들어??>

짐짓 엄하게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나를 꾸짓는 소리에 나는 뒤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번쩍 하고 손을 들어갔다. 진짜..오늘 나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정말 소심의 극치를 달린다..

<이거..벌서면서 딴생각이나 하고 안되겠네...지금부터 구령에 맞춰 앉았다 일어섰다를 실시한다..>
<네??>
<못들었나?? 하나 하면 않고 둘 하면 일어서는 거다.. 하나..>

뒤에서 들려오는 구호 소리에 나는 황급히 무릎을 구부려 제자리에 앉아다가 다시 구호에 맞춰 일어서 갔다. 헥헥...그렇게 몇 번을 정신 없이 했을까 순간 뒤에서 킥킥 대며 웃는 목소리에 나는 조금씩 의아함을 느껴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서..선생님...>

그 곳에서는 환한 느낌의 노란빛 원피스에 어깨에 작은 미니 가디건을 걸친 선생님이 서 있었다. 언제나 처럼 조신하고 귀여운 느낌으로 멋들어지게 코디한 선생님은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인지 봉긋 솟아오른 가슴팍에는 수업 자료가 들려 있었다.

<크크...이제 알았어?? 야..난 금방 들킬줄 알았는데..의외로 잘속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입가에 고운 손을 가져가 연신 큭큭 거리며 웃어대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망연자실 멍하니 서 있을수 밖에 없었다. 이걸 좋아해야 돼...말아야돼...다른 선생한테 안들켜서 좋은 것 같긴 한데..이 여자한테 이런 꼴 보인건 그렇게 좋은 건 아니란 말야..

<왜 그래?? 마치 간이라도 떨어진 사람처럼..그렇게 놀랬어??>
<예...조금..놀랬어요...>
<에이...뭐 그런거 가지고 놀래...그냥 장난친건데...>

하하...지금 내 상태에선 옆에 솥두껑하나 떨어지는 소리만 나도 기겁을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이런 장난은 심신이 허약해진 나에겐 극약이나 마찬가지야!!

<벌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벌 똑바로 안서내고 하면서 나타나 봐요..당연히 놀라지...>
<그러게..벌 제대로 서면 그 럴일 없잖아..안그래??>
<그거야..그렇지만...>

하아..진짜 오늘 여러모로 말발이 밀린다...

<그건 그렇고 왜 나와있는거야?? 지금 무슨 수업시간인데??>

풍만한 가슴팍에 수업 교재를 끌어안고 내 옆에 서서 교실 벽에 등을 기대는 선생님은 의아한듯 나를 바라보았다. 도톰한 귓불에 걸린 귀여운 느낌의 달 귀걸이가 선생님을 상큼한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간다.

<수학 시간인데..좀 일이 있었어요..>
<수학이라면...아..고 선생님?? 근데 무슨일??>

네크로맨서의 성이 고씨였나?? 모르고 있었다...

<그냥..그런게 있어요...>

뒷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 나는 대충 얼버무려 갔다. 말 못하겠다..수학 시간에 국어책 펴놓고 공부하다가 걸려서 쫓겨났다는 거.. 쪽팔리잖아..

<선생님은요?? 지금 수업 없으세요??>
<나?? 어..오늘은 진도가 좀 빨리 나가서 일찍 끝냈어...>
<아..>

좋겠네..그 반 녀석들...하아..우리 반은 끝날라면 아직 멀었는데...이 네크로 맨서의 교육사전에는 일찍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절묘하게 정시간을 꽉채워서 가르치거나 종이 친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끝내곤 한 적이 많았기에 이 수업시간에는 자습이나 자유시간 등등의 여가는 전혀 없었다.

<근데..너 어디 아파?? 얼굴이 안 좋아보여...>
<네?? 아뇨..괜찮아요...>
<아냐..얼굴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게 아파 보이는데..>

내 힘 없는 얼굴을 한번 더 유심히 바라보던 선생님이 얼굴 가득 걱정의 빛을 띄우며 나의 몸을 이리저리 훑어 보았다.

<진짜로 어디 아픈거야?? 감기 걸린거야?? 아님...몸살??>

뭐가 그렇게 걱정인지 호들갑스럽게 내 몸 이리저리를 들추며 물어오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어갔다.

<진짜로..괜찮아요..그냥 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래요..>
<기분이 안 좋아?? 왜 뭐 기분 나쁜 일 있었어??>
<그게....그런게 있어요..>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말을 퍼득 스치는 생각에 다시 목구멍으로 삼키며 말을 얼버무려 갔다. 경품에서 딤채 못타서 몸살났다는 말을 어떻게 하나... 남자가 가오가 있지..그리고 선생님한테 이상한 얘기 꺼내서 걱정끼치고 싶지도 않고..

<왜 무슨 일 있었는데??>
<하하..별일 아니에요...>

내 앞에서 여전히 뭔가 큰일이라도 생긴 사람처럼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선생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그 웃음에 뭔가 어색함을 느낀 것일까?? 한동안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은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며 슬며시 웃음을 지어보였다.

<뭐..그래 니가 별일 아니라면 아니겠지..>

억지로 묻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런 선생님의 배려에 나는 고마움을 느끼며 이번에는 진심이 섞인 미소를 비쳐보였다.

<너 지금 할 일 없지??>
<네??네...지금은..>

벌서는 거 밖에..할일이 없지.. 내 대답에 뭔가 결심한 듯 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음...지금이 4교시지??>
<네...>
<그리고 다음시간이 점심시간이지??>
<네..아마도..>
<그럼 우리 어디 좀 가자..>
<엥?? 지금요??>
<어.지금.>
<네?? 하지만 지금은 수업 시간인데..>
<너 어차피 지금 수업도 안 받잖아...상관 없지 않아??>

뭐 그렇긴 하지만...그래도..나 학생인데..저렇게 말하면 내가 엄청나게 불량한 놈 같잖아..

<아직 선생님도 안에 계시고..그리고 보시다시피 저는 벌서고 있는 입장이고...>
<아...맞다 그랬지??>

까먹고 있었던 거냐??

<그럼..잠깐만 기다려봐..>

나에게 뭔가 당부하 듯 손가락으로 까닥 거리며 가르키던 선생님은 나를 지나쳐 교실의 앞문으로 다가갔다. 어이...거긴 왜 들어가나?? 똑똑.. 교실 문을 노크한 선생님은 이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괴성처럼 울려퍼지는 함성소리. 마치 연예인 콘서트장에 주인공이 출연하기라도 한 듯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터져 나와 교실을 너머 복도에까지 울려갔다. 아주 지랄들을 해라..지랄들을..미친놈들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담팅이를 반기는 아이들의 목소리 중에 연신 굵은 목소리로 터져나갈 듯이 표효 하는 목소리는 아마도 자칭 담팅이 남편 경호 자식 일 것이다. 제일 튄다...저 자식..저 정도면 진짜 민폐다...무슨 공룡 울음소리도 아니고..

그리고 몇분 후 끊이지 않는 환호성을 뒤로 하고 선생님이 교실에서 나오셨다. 그리고 바로 끊어지는 소음 소리..마치 그런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던 것처럼 교실과 복도는 그저 조용한 정적만으로 가득해졌다. 아마도..네크로맨서가 주문을 외웠겠지...

<자..가자..>

언제 왔는지 내 옆에 서 나를 이끄는 선생님.

<네?? 하지만 지금...수업..>
<괜찮아..내가 고 선생님한테 말씀 드렸어..잠깐 너 좀 빌린다고..>

에?? 빌려?? 내가 무슨 비디오냐?? 빌리게??

<선생님이 허락 하셨어요??>

이상하다...수업시간엔 물도 못 마시게 하고 화장실도 못가게 하는 그런 선생이 네크로 맨선데...더군다나 나는 이따가 상담까지 받아야할 중죄인 인데...

<뭐..별 말 없이 허락하시던데..데려가서 쓰고 싶은 만큼 쓰라고..>

하하...내가 무슨 물건이냐?? 쓰고싶은 만큼 쓰라니...근데..이러고 가면 혹시 이따 안가도 되나??

<아...그리고 선생님이 너한테 전하래...이따가 학교 끝나고 방과 후에 보자고..진지하게 얘기나 하자는데..아주 차분하고 길게...>

그럼 그렇지..그 인간이 잊어버릴 리가 없지.. 에휴...괜히 좋아했다.

<자..이제 됐으니까 가자..>

내 팔을 잡아끌며 날 이끄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을 한 채 걸음을 떼어갔다.

<저..어디로 가는데요??>
<응?? 좋은데.>

좋은데?? 옥상 갈려고 하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선생님은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아니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도대체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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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 식으로 선생님이 날 끌고 온 곳은 옥상도 상담실도 아니었다. 그곳은 2층 구석에 위치한 교육 자료 창고로서 여러 가지의 교육 자재와 자료, 도서 등이 나열 되 있었다. 한동안 제대로 치우지 않았는지 이리저리 약간 어지로운 느낌으로 지도, 책자 같은 것들이 안을 채우고 있었다.

여기가..좋은 데야?? 먼지만 수북히 쌓여있고 산만하고 종이냄새밖에 안나는데?? 생각보다 취향이 좀 특이한데..

내가 한동안 입구쪽에 서서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앞서 저 안쪽으로 들어가려던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뭐해?? 이쪽으로 와..>

손을 들어 까닥 거리며 오라는 듯 손짓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그제서야 발을 옮겨갔다. 안쪽에 뭐가 또 있나?? 선생님을 따라 책을 꽂아논 책장의 틈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익숙하지 않은 어둠이 나를 반겼다. 저 옆쪽과는 다르게 책자로 막혀있는 이 공간은 커텐이 걷혀있지 않았기에 상당히 어두워 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갔다. 뭐가 이렇게 껌껌해..

촥..

내 마음을 알았는지 뭔가가 걷히는 소리가 들려오며 어두운 공간 가득 밝은 빛이 들어찼다.
빛이 훤이 들어차자 실내의 정경이 훤히 들어왔고 생각과는 다른 뜻밖의 실내의 모습에 나는 잠시 감탄을 발했다. 맑은 햇빛이 들어차는 실내에는 이쁜 원형 식탁이 핑크빛 체크무늬의 이쁜 식탁보에 덮여 있는 채로 예쁜 의자와 함께 창가 옆에 놓여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졌다. 이 썰렁한 공간에 고작 그거 하나였지만 그 하나 만으로도 마치 이 이 삭막한 교육 자재실이 하나의 멋드러진 까페가 되어 멋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걷어진 창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보이는 저 풍경은 연인들과 함께하면 멋진 곳이라는 책자에나 나올 정도로 상쾌하고 운치 있는 정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정경에 이끌리듯 걸음을 옮기며 창가로 다가갔다. 쏴아악~~ 내가 창가 앞에 서서 바깥을 내다 보자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스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앞에 서있는 아름드리 나무의 사이를 헤치고 들어오는 바람인지 콧속 가득 향긋한 나뭇잎의 향이 느껴져 온다. 그 상큼한 숲 내음에 나는 한번 숨을 들이키며 천천히 내쉬어 간다. 끊이지 않는 긴 여운처럼 가늘지만 확실하게 피부로 느껴지는 시원한 산들바람이 내 몸과 마음을 간지럽혀 오는 것이 온몸이 차분하게 가라 앉는다.

<좋지..여기??>

언제 왔는지 내 옆에 서서 살포시 미소짓는 선생님의 두 손에는 금방 타온 듯한 따끈따끈한 커피가 들려져 있었다. 커피까지 있네..참..완전 까페구만..

<예...>

나에게 두 손의 들려있던 커피중 하나를 내미는 선생님에게서 잔을 받아든 나는 짤막하게 대답해 갔다. 아직까지 기분이 다운 돼서 그렇게 대답한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다는 말밖에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다른 수식어도 다른 미사여구도 필요 없었다. 그냥..그냥 좋았다.
불어오는 바람도 느껴지는 숲 내음도..눈으로 보이는 저 아름드리나무의 경치도..

<근데 여긴 또 어떻게 아신거예요??>
<여기?? 그냥 우연찮게 알게 됐어..자료 좀 찾을게 있어서 들어왔다가 너무 어두워서 커튼을 걷었더니 바깥이 너무 멋있는 거야...그냥 두기 너무 아까워서 내가 개조 좀 했지..수위아저씨 한테 부탁해서 열쇠도 얻고 식탁도 구해서 멋 좀 내보고..커피 타서 먹을 수있게 커피포트랑 그런것들도 가져다 놓고..몇가지 고쳐 봤는데 해놓고 보니까 너무 멋있더라고..크크>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만족스러운듯 주위를 둘러보며 미소를 짓는 선생님의 얼굴에는 큰일을 성공적으로 치루고 난 뒤의 성취감이 가득 비춰왔다. 참..은근히 독특한 여자다..이런 데를 개조할 생각을 하다니..

<옥상에다...이번엔 교육 자재실이라...뭐 또 더 있어요??>
<응?? 어 몇 군데 더 있어..아직 안 보여준데가..>
<더 있어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참 이 여자는 무슨 학교 다니면서 이런데만 찾아 다녔나..찾을 데가 있긴 있어 근데?? 이런 삭막한 학교에??

<어...한 서너군데 더 있는데..나중에 데려가 줄게..>
<나중에요?? 그냥 지금 알려주면 안되요??>
<안돼..미리 알면 신비감이 떨어지잖아..재미도 반감 되고..나중에 선생님이 직접 데려가 줄테니까..>
<그런게 어딨어요...그냥 알려 줄라면 알려주지..치사하게...>
<치사해도 어쩔수 없어...재미를 위해 잠시만 참으세요..>

내 콧등을 가볍게 치며 타이르듯 말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듣는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돌려 갔다. 맘대로 해라...

<너 근데 그거 알아?? 이 아름드리 나무에 전설 있는 거??>
<전설이요??>
<응..이 아름드리 나무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땅속에 파묻으면 그 사람과 사랑이 이루어진데..>
<엥?? 거짓말..그런게 어딨어요..>
<아냐..진짜야..너 저번에 결혼하신 미술 선생님 알지?? 그 분도 여기다 사진 묻고 결혼에 성공하신 거잖아..>
<진..짜요??>
<그럼 진짜라니까..>

다시한번 확인하듯 물어오는 대답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대답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신기한듯 아름드리 나무를 바라보았다. 미술선생이 여기에다 사진을 묻고 결혼을 했다고??
미술선생.. 우리 학교에서 네크로 맨서 다음으로 악명이 높은 여자 선생으로 그녀의 별명은 이름 보다는 애칭인 오크 걸로 불리우는 선생이 었다. 여자답지 않은 우람한 근육의 팔뚝과 울그락 불그락 한 얼굴의 소유자인 그녀는 미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학교에 퍼졌을 때는 무슨 천지개벽이라도 한것은 아닐까 하고 한동안 떠들썩했을 정도로 아무도 그녀의 결혼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짜 선생님의 말이 사실이라면...저건 요물이다...아니..기적을 일으키는 나무다..
나는 다시 한번 믿기지 않는 다는 눈으로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아름드리 나무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봐왔던 나무 였지만 이 얘기를 듣고 나니 뭔가가 달라져 보인다.

<와...대단하네요...우리 학교에 이런게 있었구나..>

뜻밖에 알게된 놀라운 전설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지?? 이런거 티브이 특종 같은데나 서프라이즈 같은데 올리면 대박일텐데..>
<네..그렇겠네요..사진을 묻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라...멋있어요..>

티브이 에서난 나올 법한 그런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본보기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나는 웬지 모르게 들뜬 마음이 되어 멍하니 나무를 바라보았다.

<크크..>

문득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나는 시선을 돌려 선생님을 바라 보았다. 내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뭔가 이상한 마음이 들어 어깨에 손을 얹고 살며시 흔들어 갔다.

<선생님...어디 아프세요?? 갑자기 왜??>

아무대답도 하지않는 선생님 하지만 선생님의 어깨의 떨림이 점점 더 심해져 갔다. 뭔가..이상하다..이 여자...우는 건가?? 왜??

<크크큭...>

웃는 거구나...명백한 웃음소리였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지만 간간히 새어나오는 웃음 소리...근데 왜 웃는 거야?? 혹시...

<지금 뻥치신거예요??>

내 말에 더욱더 크게 가녀린 어깨를 떨어가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의 표정은 조금씩 일그러져 갔다. 뻥이군..확실해..어쩐지...이상하다 했어...사랑을 잃어주는 나무라니..

<크크..너 진짜 순진하다...그런 말을 믿냐..>

내가 눈치를 채자 바로 고개를 들고 보란 듯이 재밌다는 듯 웃어보이는 선생님의 고운 눈가에는 얼마나 웃었는지 작은 눈물까지 맺혀있다. 내가 순진한게 아니라 당신이 뻥을 잘치는 거야!! 이 사기꾼아!!

<사랑을 이뤄주는 나무라니..그런게 있을 리가 없잖아...무슨 저 나무가 큐피트의 화살도 아니고..>

말하면서도 연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큭큭 거린다.
이젠 아주 대놓고 놀리는 구나..이게 아주 사람을 가지고 노네..

<뭐예요..그게!! 이상한 장난이나 치고..>
<아니...이상한 장난이 아니라...나는 혹시나 해서 해봤지..설마 믿겠어..하고..근데...믿네..크크..>

속은 나를 놀려대듯 말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의 얼굴은 급격히 빨개져만 갔다. 젠장..오늘 하루 여자한테 당하기만 한다..하아..그래..오늘은 그런날인가 보다..그래도 좀 화난다...

<뭐야?? 화났어??>
<화안났어요..>
<에이..화났는데...쳐다보지도 않는 거 보니까...화 났구나??>

진짜 이 여자가..안났다니까..선생님의 시선을 피해 얼굴을 돌려보지만 내가 고개를 돌릴때마다 같이 고개를 움직이며 얼굴을 들이밀어 내 굳어가는 얼굴을 선생님은 재밌다는 듯 바라본다.

<안났다니까요..>
<화났네..>

확신하듯 말하는 선생님. 내 말은 듣지도 않는 구만..

<그럼 우리 귀여운 제자가 화 났으니까..화를 풀어줘야 겠지??>
<글쎄..화 안났..>

쪽.

볼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과 상큼한 딸기향이 흐릿하게 느껴져 온다.

<뭐..뭐예요??>
<뭐긴...화풀어 줄려고 뽀뽀한거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산데..저번에 내가 누나한테 했던거랑 비슷한 말이네..암튼...

<그게 뭐예요!!갑자기...>
<에?? 싫어??>

솔직히 싫은 건 아닌데..지금 상황이 그거할 상황이냐고...불난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진짜...

<에?? 이번엔 진짜 화났네??>

마치 내 속을 들여다 보기라도 할 듯 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은 장난을 멈출줄 모르는 개구쟁이 악동 같았다. 아..진짜..오늘 왜이래..내 주위에 여자들...

<그래요 저 화났어요!! 가뜩이나 기분 안좋은데 사람 가지고 장난이나치고 맘대로 놀리기나 하고..진짜...됐어요?? 됐냐구요??>
<응...됐어..>

뭔가를 이뤘다는 듯 얼굴 가득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뜻밖의 모습에 나는 잠시 어리둥절하였다. 뭐야?? 되다니??

<그렇게 화내..>
<네??>
<기분 나쁜일 있고..안 좋은 일 있으면 숨기지말고 화내..꾹 속으로 참고 있지 말고..다른 사람 앞에서 못하겠으면 적어도 내 앞에서는 솔직하게 있어..억지로 웃지말고 억지로 좋아보이는 표정 보일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죠..니 기분을 니 마음을...>

손을 뻗어 내 두손을 잡은 선생님은 포근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의 장난기 어린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똑같은 얼굴이었지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

<선생님...>
<그래..나 니 선생님이야.. 그러니까 무슨일이 있거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도 돼.. 뭐 정 말하기 싫으면 그냥 힘든 기색이라도 보여..그럼 선생님이 다 알아서 해줄테니까..>

그래서였나?? 아까전에 장난 친것도 방금 전에 놀린 것도 내가 억지로 웃어서 그런거였나??
참...정말 선생님 같은 여자다. 마음 넓고 이해심 많고..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선생님의 미소에 나는 웬지 모르게 걱정을 끼쳐 드렸다는 죄송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숙여갔다.

<죄송해요..>
<응?? 뭐가??>
<그냥...걱정끼쳐드려서...>
<응..아냐 아냐...니 나이때는 이런저런 일로 고민이 많을 때니까..이해해..그리고 난 좋은걸?? 너에 대해서 자꾸 알아 갈 수 있으니까..니가 화 날때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억지로 웃을때는 어떤 얼굴을 하는지..알게 되서 기분이 너무 좋다.>

얼굴 가득 자애로운 미소를 띄우는 선생님의 모습은 내 어두운 모든 것을 감싸주는 여신같았다. 포근한 미소 하나로 내 마음을 감싸주는 그런 여신. 그리고 순간 선생님의 도톰한 입술이 보였다. 이쁜 분홍빛으로 반짝이며 빛나고 있는 그 입술. 그 여신의 아름다운 입술에 나의 심장은 어느새 심하게 두근거려 왔다. 키스..하고 싶다...근데 웬지 말꺼내기가 쑥스러웠다. 어제 그런일이 있긴 했지만 아직까지 믿어 지지 않았다. 이런 여자가 이런 아름다운 여신같은 여자가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니..믿겨지지 않았고 그냥 마냥 꿈을 꾼것만 같았다. 그래서였는지 키스..하고 싶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나오지가 않았다.

<저..선생님...>
<응?? 왜??>
<저..키스 해도..되요??>

결국 용기를 내어 내뱉은 말에 선생님은 의외라는 듯 한 표정을 짓고는 잠시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응??음.... 안돼.>

새침떼는 표정을 지으며 거절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약간 풀이 죽었다. 역시 어제는 꿈이었나??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는 나에게 선생님이 이마에 손가락을 튕기며 딱밤을 때려온다,

<바보...그렇다고 바로 풀이 죽냐...남자가..거기다 물어보는 것도 한번만 물어보고,,>
<하지만..선생님이 싫다고..>
<여자가 한번은 튕겨야지..바로 승낙하면 남자가 쉽게 질려 한단 말야..>

그런가??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 여자는..

<그리고 그런 건 물어보고 하는 게 아냐...>

어느새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와 나를 올려다 보는 선생님. 두 손을 내 가슴팍에 올려 놓은채
귀여운 강아지가 애교 부리듯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도..>
<어제도 말했잖아... 난 니꺼라고...그러니까 니 맘대로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설마 하루만에 까먹은 거야??>

아..진짜 까먹고 있었다...

<엥?? 진짜 까먹고 있었나보네...와,..너무 한다..나는 큰 맘 먹고 한말인데..당사자는 아예 기억도 못하고 있네..>

귀엽게 한쪽 볼을 부풀리며 토라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이가 먹어가나..그런 걸 까먹게..

<죄송해요..>
<또..또 그런다..너 맨날 나한테 죄송하다고만 하는 거 알아??>

그런가?? 근데 어떻게 맨날 죄송한 일밖에 안 생기는데..

<뭐가 그렇게 죄송한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쓰지마..정 죄송한일이 생기면 죄송하다는 말대신 그냥 이렇게 꼭 안아줘..>

내 팔을 자신의 허리에 두르며 꼭 안기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선생님.

<그리고는 말없이 키스..알았어?? 그러면..다 풀릴테니까...>

뭔가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사랑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에게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이 입술을 가져갔다. 촉촉한 선생님의 입술에 나의 입술이 닿자 언제나처럼 상큼한 딸기향이 가득 전해져 온다. 입술위에 뭐가를 발랐는지 전보다 더 부드러운 느낌이 들며 달콤한 맛이 느껴져 온다. 입 위로 움직이는 내 입술에 맞춰 호흡을 내뱉으며 선생님이 살짝 살짝 움직여가자 훨씬 더 기분 좋은 느낌이 되어 간다. 혀를 넣어볼까 생가도 해봤지만 일부러 넣지는 않았다. 충분히 지금 만으로도 기분 좋고 달콤했기에..그렇게 얼마동안 부드러운 키스를 한 우리는 천천히 입술을 떼어 갔다.

<하아...확실히...실제가 좋네..>
<네??>
<아니...어제 하루 종일 생각했거든...너랑 헤어지고 나서...너랑 손 잡는거, 마주보면서 얘기하는 거, 포옹하는 거, 그리고...키스하는거..>

내 목에 여전히 팔을 두른채 약간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두 볼은 귀여운 새색시처럼 볼에 홍조가 가득해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밤새 생각하고 생각해도 질리지가 않을 정도로 좋았는데..확실히...실제로 하는게 더..좋아..헤헤..>

혀를 쏙 빼물고 귀엽게 웃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참을 수 없는 감동과 동시에 욕정이 밀려 들어 왔다. 이런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내 여자라니..정말...감동이다..품 안에 들어오는 이 작은 몸 안을때마다 기분좋게 문질러져 오는 이 박력있는 젖가슴. 그리고 저 사랑스러운 얼굴과 귀여운 애교..그리고 나를 끊임 없이 두근거리게 하는 이 향기까지...

눈 앞의 여성이 날 위해 존재한다는 그 행복감에 나는 다시한 번 감격하며 선생님의 입술에 입을 비비며 끌어 안아갔다. 선생님 역시 내 입술의 움직임에 전혀 동요 없이 모든 것을 받아 들일듯 입을 벌려 나를 맞아왔다. 창가에선 우리를 감싸주듯 상큼한 숲 내음의 산들바람이 우리를 감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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