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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향기(香氣) - 1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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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땀난다.. 턱밑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나는 살며시 한숨을 쉬었다. 가는 한숨이 뜨거운 입김이 되어 내 발등으로 얹혀갔다. 사방에서 느껴져오는 뜨거운 기운이 내 몸을 감싸오고 그 뜨거움에 웬지 모를 답답함이 들어 나는 살며시 인상을 찡그렸다.

<왜?? 힘드냐??>
<어...그냥..좀 덥네...>
<더우라고 들어온건데.. 안 더우면 여기 망하지..>
<하하..그런가??>

그냥 하는 말인데 그렇게 꼭 무안하게 말해야 하냐?? 하오..더운 여름날에 여기서 더 땀뺄라고 하니까 더 덥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아까 전부터 누나가 가고 싶다고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다 못해 협박까지 해 억지로 끌려온 찜질방의 한 방이었다. 눈앞에는 날 이 끔찍한 곳에 억지로 끌고온 누나가 힘들어하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넌..나이가 몇인데 이거 가지고 노인네처럼 그렇게 헥헥 대냐??>
<씨..이런건 나이랑 상관없어.. 체질문제라고...>
<체질?? 뭐?? 허약한 체질??>

말을 해도 참...

<그런게 아니라...난 누나처럼 둔감하지가 못해서 이런 상황에서 예민하게 몸이 반응 한다고..>
<아...그래??>
<그럼!!>
<근데..그런걸 허약하다고 하는거야..크크...>

젠장...말을 말자 말을 말아..

<됏다...근데 누난 어떻게 땀 한방울도 안흘리고 있냐?? 안더워??>
<응?? 뭐..별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말하는 누나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얼굴에 힘든 기색하나 없었다. 저 놈의 여편네는 사막에서 살다왔나.. 이렇게 더운 방에서 땀도 안나..
확실히 누나의 얼굴은 약간 열기에 얼굴이 달아올라 있을 뿐 이렇다하게 땀을 흘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에 반해 나는 지금 땀으로 샤워라도 하는 듯 등은 어느새 내가 흘린 땀으로 흠뻑 젖어 찜질복이 축축하게 달라붙어 있었고 얼굴은 세수하고 수건으로 안 닦고 그냥 나온 사람처럼 물기가 가득 했다. 그리고 그것 보다 더한 것은.. 젠장.. 아랫도리가 축축하니까 기분 열라 더럽다..

<찜질방을 많이 다녀서 그런가.. 첨엔 땀도 조금 나고 그랬는데 요즘엔 하나도 안나..>
<말이 돼?? 찜질방 많이 다닌 다고 땀이 안나게.. 그럼 화장실 많이 간다고 똥이 안나오나??>
<비유를 해도 더럽게..똥은 계속 쌓이잖아...>
<땀도 계속 물 먹으면 나오잖아...몸에 수분이 있는 한 땀은 계속 나오게 되있어..>
<그런가?? 암튼 몰라..요즘엔 안나와..그리고 이상한 게 몸도 되게 가뿐해..힘도 안들고..>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내 앞에서 누나가 팔을 휙휙 내저으며 몸을 움직인다. 움직일때마다 생기는 뜨거운 바람이 내 살갗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아..더워!! 가만히 좀 있어..>

아..더워 죽겠는데 짱나게..이 아줌마 혹시 나 몰래 보약 먹는 거 아냐?? 설마..아니겠지..지도 양심이 있으면 집에서 뼈 빠지게 살림하는 내 생각해서라도 못먹을 꺼야..그래 그럴꺼야..

<아...나 더 못 있겠다..인제 나갈래..>
<야..아직 들어 온지 10분밖에 안 지났잖아..>
<씨.. 더 있다간 탈수증 걸려서 죽겠다..난 그냥 갈래..>

나를 잡는 누나의 손길을 뿌리치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안과는 다른 시원한 공기가 내 몸을 감싸며 열기를 식혀온다. 하아..이제야 살겠다... 안에서 숨 쉴때마다 느껴졌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숨을 들이켰다.

퍽!!

켁켁...

순간 등짝에 작렬하는 갑작스런 통증에 놀란 나는 들이키던 숨에 사래까지 걸려 목을 잡고 기침을 해댔다.

<지 멋대로 나가고..하여튼 말 열라 안 들어요..>

언제 따라 나왔는지 투정부리듯 나에게 툴툴거리는 누나를 나는 쳐다 보지도 못하고 여전히 허리를 숙인채 기침을 해댔다. 목에 뭐가 걸린 듯 이상한 기분이 드는게 기침할때마다 눈물이 날것 같았다.

<콜록..갑자기 치면 어떻게!!>

간신히 목을 진정 시키며 누나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눈을 부라렸지만 범인인 누나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 여자..어디로 내뺀 거야??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자 저쪽에서 뭘 사는지 돈을 내밀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작은 품 가득 계란과 식혜를 들고 온 누나는 내 앞에 자리를 잡으며 앉았다.

계란 사왔네?? 근데...계란은 6갠데 식혜는 하나네..

<머야?? 식혜는 왜 하나야??>
<나 먹을 꺼니까 하나 사왔지...>
<계란은??>
<그것두 나 먹을꺼니까 사왔지..>
<6섯개를 다??>
<어..>
<내꺼는??>
<니껀 니가 사먹어야지..>
<뭐야..치사하게...>
<치사하긴 합리적인 더치페인데..>

무슨 소리 하냐는 듯한 얼굴로 방금 깐 갈색빛의 맥반석 계란을 조금만 입안에 한번에 털어 넣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조금씩 분노가 일었다.

<뭐야 그런게 어딨어.. 찜질방 비는 내가 냈잖아..>
<난 내달라는 소리 안했는데??>

허허.. 이런 식으로 나오네??

<그래도!! 찜질방비는 내가 냈으니까 누나도 사야지!!>
<뭐,,그래...나도 양심이 있으니까..자...>

손에 쥔 계란을 한입 베어 먹고 반쪽을 내미는 누나. 뭐야..그건 먹던거잖아!!

<머야?? 내가 거지냐?? 먹던 걸 먹게!!>
<니가 달라메..싫으면 말고..>

다시 손을 거두며 계란을 한입에 털어 넣고 다시 다른 계란을 들었다. 어느새 계란은 누나가 손에 쥔 계란을 빼고는 단 하나의 계란 밖에 남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다..사온지 1분도 안 지나서 계란 3개를 단번에 까먹다니..보통사람이라면 목 맥혀서 못할일 인데 당사자인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인다.

젠장...솔직히 돈이 없는 건 아니었다. 사먹으면 사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저렇게 얄미운 표정으로 계란을 까고 있는 누나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도~~저히 이대로 물러 설순 없었다.

<정말 안주겠다 이거지??><안주겠다는 게 아니라 니가 사먹으란 거지..>

그게 그거잖아!!

<좋아..알았어..뭐 내가 사먹지...>

나는 체념의 표정을 지으며 계란을 사기위해 몸을 돌려갔다. 그리고 순간 돌던 몸을 다시 가볍게 돌려 부드럽게 스텝을 밟아 허리를 숙여갔다. 보인다.. 눈 앞에 누나의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아직 까지 않은 순 갈색 빛의 맥반석 달걀이 들어왔다. 그 달걀을 향해 나는 손을 뻗어갔다. 잡았다. 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내 팔이 길었으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였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내 얼굴을 덮치는 무언가에 나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채갔는지 눈앞에서는 내가 노리던 계란을 손에 쥔 누나가 실실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누나의 손은 언제 뻗었는지 내 얼굴을 감싸 쥔 채 날 잡고 있었다. 이런 젠장...잡혔다...

그리고 순간 내 머리에 뭔가 닿는 동시에 팍하고 뭔가 깨져 나가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흐흐..계란은 이마로 깨야 맛있지..안그래??>

손에 쥔 계란을 내 얼굴에 내리치고 천천히 껍질을 깐 누나는 이내 조그마한 입에 쏘옥 마지막 계란을 집어 넣어갔다. 입도 조그만게 저 큰 게 얼루 들어갈까 하는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궁금증을 접고 나는 누나의 손에서 얼굴을 떼었다.

<치사하긴...안 먹는다 안먹어...>
<다 먹어서 줄 것도 없어..>
<있으면 줄라고 했어??>
<아니..크크>

어쩜 저렇게 얄미울까...하오...뭐가 좋은지 고운 볼을 다람쥐처럼 잔뜩 부풀리고 귀엽게 웃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얄미운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 귀여운 모습에 나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체념의 표정을 지었다. 그래..내가 참자..저 인간 저러는 거 한 두번도 아니고..이내 나는 어쩔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 앉아갔다.

<응?? 안 사러 가?? 계란??>
<어..그냥 먹기 싫다..>
<왜?? 먹어~~>
<싫어..귀찮고...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사오면 내가 다 먹어줄게 사와라...>

그럴꺼 뭐하러 사오냐??!!

<6개나 홀라당 혼자 다 먹고도 더 들어가??>
<아직 4개는 더 먹을 수 있어..그니까 사와라~>

10개를 먹어?? 보통은 5개만 먹어도 힘들지 않나?? 아무튼...대단한 여자네...

<귀찮아...돈도 없고 먹고 싶으면 누나가 사다먹어..누나 돈으로..>
<야..치사하다 그깟 계란 얼마나 한다고 그러냐??안먹는다 안먹어!!>

그러는 당신은 그깟 계란 얼마나 한다고 그렇게 하셨나?? 토라진 듯 퉁퉁거리는 누나를 외면한 채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로 개업한 집이라 그런지 평일인데도 손님이 많네..
여기저기 가족 온 듯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고 그 틈틈 사이로 다정한 커플들이 보인다. 하이고.. 좋을 때다..참...누구는 여기서 이 망할 누나랑 이렇게 계란 하나가지고 투닥 거리고 있는데 누구는 저기서 사이좋게 서로 계란 까주고 먹여주고 하네..후우..부럽다.. 절로 한숨이 나오네..

<뭘 보는거야??>
<응?? 아냐..암것두.. 근데 경품 추첨 시간이 언제라고 했지??>
<아마..10시 정도에 한다는 것 같았는데..>

누나의 말에 손목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니 그때까지는 아직 1시간 30분 정도 남아있다.
에고..아직 멀었네..그때까지 뭐 한다냐.. 맘 같아선 지금에라도 집에 가서 푹 자고 싶지만 오늘 이 찜질방에서 오픈 기념으로 경품으로 김치 냉장고를 준다기에 나는 어쩔수 없이 마지못해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내가 진짜 경품만 아니면 당장에라도 갔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대에 이런 공짜 살림장만의 찬스를 그냥 넘겨버릴 내가 아니었기에 나는 끈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추첨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번호..몇번이야??>
<응?? 잠깐..>

누나의 물음에 나는 주머니에서 아까 카운터에서 나눠준 경품권을 꺼내갔다.

<음...44번이네..>
<44?? 번호 웬지..재수없다..>
<어..좀 그렇네..>

하하...죽을 사자가 두 번이라..골라도 이런걸 골라줬냐..카운터 아줌마는...

<아마..안되겠지??>
<뭐..봐야지 알겠는데...번호로 봐선 재수 없어서 안되겠다..>
<그럼..그냥 갈까?? 집에..>
<벌써?? 온지 얼마 안됐잖아...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아..나 졸려..그냥 가고 싶어..>
<졸리면 여기..이 누님 무릎 베고 자..>

탁탁..무릎을 치며 나를 바라보는 누나. 뭐야..저 시츄에이션은..또 무슨 짓을 할려고..

<자..언능 베..>
<아냐..됐어..그냥 딴거 베고 잘래..>
<왜?? 그거 보다는 무릎이 훨씬 편하고 좋잖아..일루와..>
<싫어..나 자는 동안 누나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옛날에 나 잘 때 얼굴에 낙서하고 또 코밑에 눈 밑에 치약 바르고 이상한 짓 한거 아직도 기억해...안가..싫어..>

그지..기억한다..하도 자주 그래서 가끔씩 내 얼굴이 그림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으니까..

<안 그럴께.. 지금 치약도 펜도 없잖아..그니까 안심하고 와서 베..>

누나가 빈손이라는 것을 확인 시켜주듯 손을 털어보인다. 확실히 그렇긴 하다..장난을 칠래도 뭔가 도구가 있어야 치는 거니까..뭐..딱딱한 베게 보다는 푹신한 무릎이 낳겠지..나는 이내 마음을 정하고 누나의 무릎에 얼굴을 묻어갔다.

<이상한 장난 치지마..>
<알았어..안심하고 한숨 자..자장가 불러줄까??>

악몽 꿀 일있냐??

<됐어..징그럽게..>

여전히 경계의 마음을 풀지 않은 채 몸을 어색하게 뉘우자 누나가 내 고개를 잡아서 당기며 좀 더 편한자세로 누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대로 베..그래야 나도 안 불편 하니까..>
<알았어..>

누나의 보드라운 허벅지의 살결이 내 볼을 타고 전해져 온다. 누나 특유의 아로마 향이 코를 타고 부드럽게 넘어온다. 아까 찜질방 에서 땀을 흘린 상태였지만 땀 냄새나 여타 이상한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그 포근한 촉감과 향기에 나는 조금씩 경계의 마음이 풀어지며 눈이 감겨갔다. 아이를 재우는 엄마처럼 누나의 여린 손이 내 몸을 토닥 겨려온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잠이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나는 감겼던 눈을 살며시 뜨며 천천히 고개를 평으로 해 누나를 올려다 보니 나를 보고 있던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깼어??>
<어...나 얼마나 잤어??>
<얼마 안 잤어..한 20분 정도...>
<그래??하음....>
<더 자.. 아직 추첨 할라면 멀었으니까..>
<아니..그냥 일어날래..시끄러워서 잠도 안오고...>

나는 누나의 무릎에 묻혀있던 고개를 들어 몸을 일으켰다. 머리를 긁적이며 크게 하품을 한나는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큰 실내는 역전 앞 광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자리를 잡고 앉아 떠들고 있었다. 평일에 이렇게 늦은 시각 까지 있는 것을 보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경품 추첨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하여튼 우리나라는 공짜에 경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뭐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어떤 한 꼬마 여자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분홍색 어린이용 찜질복이 귀엽게 잘 어울리는 그 아이는 나를 보자 이상한 웃음을 지엇다.

날..보고 웃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내 뒤에는 단체로 놀러온 아줌마들밖에 없었다. 여느 아줌마들처럼 연신 입을 움직이며 수다를 떨고 있는 아줌마들은 이렇다하게 웃긴 점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저 사람들 보고 웃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래??>
<어..아니..어떤 꼬마애가 날 보고 웃길래..>
<아..뭐 딴사람 보고 웃었겠지..아님 니가 잘생겨서 좋아서 웃은 걸수도 있고..>
<그런가??>
<그렇겠지..안 그럼 괜히 웃을 이유가 없잖아..안그래??>

순간 말하는 누나의 입가에 약간 미심썩은 웃음이 스쳐 지나갔지만 워낙에 순식간이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런가?? 짜식..어린 놈이 보는 눈이 있네..나 같이 잘생긴 사람도 알아보고..

<하긴 그렇겠다..내가 웃겨서 웃진 않았을 꺼 아냐.. 뭐 이래뵈도 꽤 먹어주는 얼굴이니까..>
<그지~~ 우리 동생 생긴거 하나는 잘생겼지..>

내 말에 맞장구까지 쳐주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또다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이인간이 왜이래?? 괜히 이상하게... 갑자기 안하던 칭찬을 다하고..

<뭐야..누나 왜그래??>
<뭐가??>
<아니..안하던 칭찬을 다하고..이상하잖아..>
<야~~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냐?? 이 누나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얼마나 우리 동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가정적이지, 맘 착하지, 자상하지, 얼굴 잘생겼지 얼마나 좋아하는데..>

누나가 두 손을 모아 가슴께에 올리며 얼굴 가득 진심이라는 듯 오바스러운 목소리로 연신 나를 칭찬했다. 분명 칭찬하는 건데..난 왜 이렇게 오한이 드냐..

<그만..그만..어색하다..그만해..>
<이건 칭찬 해줘도 싫다네..>
<이상하잖아..안하던 사람이 그러니까..징그러..>
<뭐..싫으면 말아라...그럼 앞으로는 그냥 속 좁고 잔소리만 하고 평균치 얼굴 가진 동생이라고만 불러주께..>

그래..그게 났겠다..그게 편해.. 이제야 제자리로 온 거 같다..

<뭐..맘대로 하고 나는 씻으러 갈래..자다 인낫더니 몸이 지뿌등하다..누나는 어쩔꺼야??>
<응?? 나는 좀 더 있다가 들어갈라고..이따가 한 1시간 뒤에 여기서 만나자.>
<1시간씩이나?? 그렇게 오래??>
<원래 여자는 그게 기본이야..>

누구?? 당신?? 당신의 기본은 계란 열개 아닙니까??

<암튼 이따가 한 시간 뒤에 일로와...>
<알았어..>

자리에서 이러선 나는 찬찬히 남탕을 향해 걸어갔다.

<강혁아~~>

뒤에서 나를 부르는 누나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뭐가 좋은지 이상야릇한 웃음을 짓는 누나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얼굴 빡빡 씻어라~~>
뭔소리야..?? 세수하듯 두 손을 모아 위아래로 흔드는 누나의 엉뚱한 행동에 나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남탕으로 들어갔다.. 쓰읍...뭔가 좀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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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원하다... 어릴 적에는 이해가 안갔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 연신 시원하다를 연발하며 순수한 아이들을 뜨거운 열구덩이로 빠뜨리는 어른들의 교묘한 거짓말이... 이렇게 뜨거운 데서 어떻게 시원하다는 말이 나올수 있는건지 참 어른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나서 삶에 찌든 몸을 뜨거운 물에 담구니 나 역시도 어느새 나는 그때 들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따뜻한 물이 내 몸을 휘돌며 몸 안쪽으로 열기가 스며들어와 지친 근육을 이완시켜준다. 웬지 모를 그 나른함에 시원함을 느끼며 나는 그때의 거짓말을 따라하고 있었다.

<시원하다...>

내 앞에서 머리에 수건을 둘러쓴 한 꼬마아이가 세상 다 산 듯한 얼굴을 하며 내가 방금 내뱉은 말을 따라하기라도 하듯 한숨쉬듯 말한다. 이제 고작 해봐야 유치원을 갓 졸업했을만한 그 꼬마의 얼굴은 마치 세상을 다 산자의 여유로움과 연륜이 묻어져 나왔다. 내가 2년전에 갓 익힌 스킬을 이 아이는 저 어린 나이에 가볍게 익혔나보다. 그 어이없는 광경을 나는 어이없이 바라본다. 참 요즘 애들 성숙한건 알았지만... 저렇게 늙은이 같을 줄 몰랐는데.. 뭐..상관 없겟지..

킥킥...

웃네?? 우리 동네 이씨네 할아버지 특유의 나른한 표정을 구사하며 탕의 열기를 음미하고 있던 꼬마가 천천히 나를 바라보더니 금새 어린애의 얼굴로 돌아와 웃기 시작한다.
뭐..그 나이에 걸맞는 웃음은 좋은데 왜 날 보고 웃냐?? 어쭈..이제 배까지 잡네...
슬슬 기분 나빠지기 시작한다..

<꼬마야..지금 나보고 웃는 거야??>
<킥킥킥....>

하하...어린놈이 어른 말씀하시는데 대답도 안한다..하여튼 요즘 애들은 위아래가 없다..

<꼬마야...>
<저..형...혹시..그거예요??>
<응?? 그거??>

갑작스레 나를 향해 무언가를 물어오눈 꼬마의 모습에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게 뭐야??

<아니..그거..변태..크크>
<뭔 소리야..그게??내가 왜 변태야??>
<그럼..왜 얼굴에 화장은 하고 있어요.. 입술은 빨갛고 볼은 핑크빛에 크크..눈썹도 그리고..>

엥?? 무슨..소린가...화장..이라니?? 엉뚱한 아이의 말에 잠시 혼란스럽던 나의 머리에 갑자기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이 망할 아줌마!!

물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연어처럼 탕속에서 뛰쳐나온 나는 빠르게 목욕탕 거울에 얼굴을 비쳐 갔다. 뭐야..이거!! 꼬마의 말대로 였다. 빨간 립스틱에, 분홍색 볼터치, 거기다 이쁘게 그려진 눈썹 누가 봐도 완벽한 화장이었다.

화장하니까 제법 이쁘네...가 아니잖아!!

이 아줌마 얼굴 빡빡 씻으라더니 이거 였구만.. 아까 그 꼬마 여자애가 나보고 웃는 것도 그렇고 탕에 들어와서 나보고 실실 웃던 사람들도 그렇고 이상했어..젠장...내가 미친 놈이지.. 그 악독한 여편네 앞에서 그렇게 무방비한 모습으로 있었으니.. 잠깐 미쳤었어..

그래두 그렇지..어떻게 화장을 하냐.. 그리고 화장품은 어디서 난거야?? 하여튼 대단한 여자라니까.. 암튼 나가서 만나기만 해봐..아주 가만 안둔다..진짜.. 연신 얼굴이 벗겨질 듯 비누칠을 하며 복수의 복수를 다짐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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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언제 올 줄 알고 기다리지..예상보다 40분 일찍 탕에서 나온 나는 하염없이 실내를 걸으며 누나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솔직히 10분은 더 안에서 샤워를 하고 때를 밀어야 정상이었지만 남탕 전원에게 그 꼴을 보인 나였기에 더 이상 안에서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목욕을 할 수는 없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탕에서 나와야 했다. 모든게 그 패악한 누님 때문이야..나오기만 해봐라 내 이걸....그냥....냅둬야겠네...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맨날 당하고 살지만 제대로 복수 한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다..아니..없었다..참...아냐 그래도 이번만은 틀려!! 이번엔 진짜 단단하게 혼쭐을 내주겠어!!주먹을 불끈 쥐며 다시한번 다짐해보는 나지만 가슴 한구석에 크게 자리한 단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뭐..그건 나중에 생각하고..40분을 뭐하고 기다리지?? 주위를 둘러보며 뭔가 할만한 것을 찾았다. 피씨방?? 아니..내가 뭐 게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여기까지 와가지고 컴퓨터 붙잡고 있는 것도 그러니까.. 그건 넘어가고.. 노래방?? 혼자 무슨 노래방이냐..그것도 패쓰..
수영장?? 수영복은 있나?? 역시 패쓰.. 건물 하나를 통재로 써서 그런지 웬만한 놀이 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 찜질방이 었지만 내 맘을 충족 시켜주는 특별한 것은 없었다.
하아..이럴줄 알았으면 빨래나 가지고 올걸..빨래도 꽤 밀렸는데..
시간을 어떻게 때울지 모르는 막연한 마음에 나는 나지막히 한숨을 쉬었다.

팍..

순간적으로 내 어깨에 부딪혀오는 누군가를 나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같이 받아버렸다.
내 몸에 부딪혀왔던 그 사람은 힘이 약한 듯 반작용에 의해 내 몸에서 튕겨나가듯 뒤로 주춤거려갔다. 여자?? 어깨까지 내려오는 고운 검은 머리를 찰랑이는 여자는 이내 몸을 추스르고 나에게 사과의 말을 건넨다.

<죄송합니다..>
<예..아뇨..그보다 괜찮으세요??>
<아..네..괜찮아요..근데....저...혹시...강혁이??>
<네?? 어떻게.....엥?? 넌...>

눈앞에 날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나 역시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떠갔다.

<최...은비??>
<어..아네??>
<어..그지...같은 반이니까...>
<아...아니..나는 니가 내 이름 모르는지 알았어...한번도 이름 불러 본적 없으니까..>
<하하...그랬나??>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는 나를 보며 재밌다는 듯 눈앞의 그녀가 기분 좋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바라본다. 그녀다.. 언제나 내 가슴을 뛰게하고 날 설레게 만드는 그녀.. 최은비..
근데...이상하다...이제 뛸 때가 됐는데.. 언제나 내 시야에만 잡혀도 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든 그녀 였는데..지금은...전혀...뛰질 않는다.. 설레임도.. 두근 거림도.. 이상하다..

<여긴 어쩐 일이야??>
<엉?? 어..그냥 좀 씻으러 왔지..목욕하고 찜질도 할 겸..너는??>
<뭐..나도 좀 씻으러 왔지..목욕도 하고 찜질도 할겸..>

너무도 당연한 물음이 서로 오가고 한동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혼자 온 거야??>
<아니..친구들이랑..너는??>
<나?? 나는 누나랑 같이 왔어..>
<누나?? 근데 왜 너 혼자 있어??>
<누나는 씻으러 들어갔거든...넌?? 친구들은 어딨어??>
<아..뭐..걔네들은 딴데 있어..난 잠깐 따로 나왔고..>
<아..그래...>
<근데..되게 반갑다..이런데서 다 만나고..>
<어..그러네..>

진짜 반가운지 연신 이쁜 얼굴에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나 역시 기분이 좋아져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지금 뭐하고 있던 거야??>
<어?? 아니..누나 기다리고 있었어..이따가 여기서 만나기로 했거든...>
<그래?? 언제 만나기로 햇는데??>
<음...한 40분 후에??>
<아~ 아직 많이 남았네??>
<뭐...그렇지...그래서 나도 뭐할까 고민 하고 있던 중이었고..>
<그럼...우리 같이 있을까??>
<응??>
<아니...나도 심심하거든...혼자 있기 뭐해서..이왕 여기서 만나거 같이 놀면 재미있잖아..>
<아니...너 친구들은...괜찮아??>
<아..걔네...?? 이런말 하기 좀 뭐하지만..걔네..남자 친구가 왔거든...뭐 아직 솔로부대의 일원인 나는 그 커플 부대의 만용을 더 이상 지켜 볼 수가 없어서 그냥 나온거고..이왕이면 혼자인 사람끼리 서로 위로해주며 재밌게..좋잖아??>
<뭐..나야 상관은 없지만..>

솔직히 나야 좋지.. 내가 좋아하는 그녀랑 이렇게 단 둘이서 놀수 있는데... 뭐 이놈의 심장은 정상으로 돌아온건지 고장이 난건지 지랄하지도 않고 이번엔 편하게 그녀랑 얘기를 나눌수 있을 것 같고...

<그럼.. 솔로부대의 동지를 찾은 기념으로 우리 뭐할까??>
<하하..글쎄..>

근데..자꾸 솔로부대 솔로 부대 하네...뭐..상관은 없지만..

<음...밥 먹었어?? 나는 아직인데...>
<어?? 나도.. 아직이야...>

먹었다..솔직히 아까 집에서 오랜만에 해물탕을 끓여서 밥을 2공기나 먹어서 아직도 안꺼졌다. 하지만!! 뭐 더 먹을 수 있다. 그녀가 먹자는데..뭐..

<그럼..우리 밥먹으러 가자..>
<뭐..그러지..>

가볍게 나를 리드하는 그녀를 따라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갔다. 식당 안은 늦은 밤이었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다는 듯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자리를 찾던 우리는 구석에 위치한 빈자리를 찾아 걸음을 옮겨 그곳에 앉아갔다.

<자..뭐가 좋을까??>

오똑한 콧등을 두들기며 벽에 붙은 메뉴판을 둘러보는 그녀. 무언가를 고민 할 때마다 하는 그녀의 습관이다.

<넌 뭐가 좋아??>
<뭐..난 아무거나...좋은데..>
<아무거나라는 여기 메뉴에 없어...확실하게 뭐가 좋아??>

하하..강하게 나오네..

<넌 뭐 먹을건데??>
<음..나는 시원한 물냉면...>
<뭐..그럼 나도 그거..>
<그래 그럼..>

이어 손을 들어 경쾌한 목소리로 아줌마를 불러 주문을 한 그녀는 아줌마가 가져온 물 컵에 물을 따라 나에게 내밀고 자신 역시 물 컵에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셔갔다.

<근데..여기 사람 진짜 많다..>

주위를 둘러 보며 우글대는 사람이 신기한 듯 바라보는 그녀.

<뭐..개업이니까..경품 추천도 있고...>
<그런가?? 하긴 우리 나라 사람들 어디 개업했다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평가단 하는 게 취미니까..>
<그렇지 뭐...>

가게에서 장사가 제일 잘 되는 기간이 있다면 아마도 개업하고 일주일 까지 일것이다..
웬만한 가게라면 1년치의 3분의1을 개업한지 한 1주일 만에 벌어들일 정도로 개업식의 매출은 상당하다. 사람이란게 호기심이 라는게 워낙 강한 종족이라서 어디 뭐가 생겼다, 뭐가 열렸다 하면 할일 제쳐두고 한번은 꼭 가보니까... 뭐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아..너는 경품 번호 몇 번이야??>
<응?? 나 44번..넌??>
<나는 777번..>

하하..극악의 숫자인 내꺼에 비해서 럭키세븐이 세 번이나 들었는 바칭코에서 한번이라도 나오면 소원이 없다는 그 777인가..

<좋네..숫자..>
<뭐...숫자만 좋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그래도 기분은 좋아..헤헤..>

그녀는 손에 쥔 경품권을 만지작 거리며 행운의 숫자에 기분이 좋은 듯 웃는다.
그 꾸밈없는 맑은 미소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학교가 아닌 밖에서 만난 그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웬지 편한 느낌?? 가슴이 두근 대지 않아서 그런것도 있고, 언제나 보았던 교복차림이 아니라 편한 찜질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 걸수도 있지만 웬지 모르게 확실히 전보다는 더 가까워지고 편해진 느낌이다.

<그때는 잘 들어갔어??>
<그때??>
<어...비오는 날...너 비 맞고 갔잖아..>
<아..그때...잘 들어갔지 뭐..>

차에 치였다..라고 말은 못하겠다..아닐지도 모르지만 웬지 그 소리를 하면 그녀가 걱정을 할 것 같았기에..해서 좋은 말도 아니고..

<너는?? 잘 들어갔어??>
<어..뭐..덕분에 나도 잘 들어 갔어 비도 안 맞고..아..맞다...>
<응?? 뭐??>
<너 아까 점심때 어디 간거야??>
<응?? 점심..때??>
<응..우산 갔다줄려고 보니까 없더라고...애들 말 들어보니까 밥도 안 먹고 바로 나갔다고 하던데..>

하하..선생님이랑 옥상에 있었던 때를 말하는 것 같다..아마..

<아..그때..그냥 일 있어서 잠깐 밖에 나갔다 왔어..>
<그렇구나..>

애처럼 젓가락을 입에 문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 도중에 주문했던 냉면이 나오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여기..겨자..>
<응??>
<너 냉면에 겨자 넣는 거 좋아하잖아..>
<어...고마워>

살며시 웃으며 나에게 겨자통을 내미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통을 받았다. 내가 말한 적이 있었나?? 겨자 넣는걸??

<어떻게 알았어?? 내가 냉면에 겨자 넣는거..>
<어...아니 보통 그러잖아..내 주위에서도 그런 사람 많고..뭐 너도 그럴 것 같아서..>

뭔가 어색하게 변명하는 그녀의 모습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별 다르게 캐묻지는 않았다. 뭐 말 그대로겠지..나 말고도 그런 사람은 많으니까..

그렇게 별 무리 없이 식사는 진행 되갔다. 먹으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해갔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냉면은 바닥을 드러내며 끝을 알려갔다.

식사가 완전히 끝나고 계산을 치르고 나오니 어느새 흘렀는지 약속된 시간이 다되고 있었다. 아마 냉면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았다.

<벌써..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제..누나 나올 시간이지??>
<어.. 그렇네...넌 이제 뭐할꺼야??>
<뭐..나야..다시 커플부대 틈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지..히히..>
<괜찮겠어?? 그거 은근히 힘든데..>
<뭐..별수 있겠어..>

어쩔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거리는 그녀를 나는 약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은근히 짜증나는데..진짜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거 진짜 스팀 도는 짓이다. 나는 혼자서 어정쩡하게 있는데 옆에서는 자기야~~자기야~~ 하며 불러대고 안아대고 더듬어 대고, 별 닭살스러운 대사를 연발해 대는 게 진짜 아무리 도를 쌓은 도인이라 해도 쌓아논 도를 일순간에 무너뜨려버릴 엄청난 스킬이 찜질방 연예스킬이다. 몇 년째...솔직히 태어나서 지금까지 언제나 솔로부대였던 나로서도 아직까지 익숙해지지 않는 게 찜질방에서 별짓거리 다하는 커플들인데..이 여린 그녀가 견뎌낼수 있을지 참 걱정이었다. 맘 같아선 계속 같이 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또 얘가 우리 아줌마를 불편해 할 것 같아 그럴수도 없고..참 안쓰럽고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걱정마~~설마 살인이야 나겠어..>

하하..웬지 가능성 있는 말이다..

<그럼 나 갈..어머...>

순간 팍하고 그녀의 뒤쪽에서 무언가 빠르게 지나가고 이어서 그 무언가에 튕겨지듯 그녀의 몸이 앞으로 쏠린다. 갑작스레 놀란 표정으로 내 쪽으로 다가 오는 그녀를 나는 피하지도 못하고 정면에서 몸으로 받아갔다.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자 그녀의 작은 몸이 내 품안에 가득 들어온다. 나의 눈 앞에서 그녀의 찰랑거리는 머리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너풀거리며 흩어져 간다. 졸지에 내 품에 안겨버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상태를 물어갔다.

<괜찮아??>
<어..어..괜찮아...하하..>

내 품에서 황급히 떨어져 어색하게 웃는 그녀. 방금 전 자신의 모습이 조금 챙피했는지 하얀 얼굴이 약간 붉으스름 해진다.

<개념없네...이런데서 뜀박질이나 하고...>
<그..그렇네..하하...고마워..너 아니었으면 망신 당할 뻔 했다..>
<고맙긴 뭐..그냥 서있기만 했는데..>
<저..그럼 나는 이제 가볼께...친구들도 기다릴 것 같고..>
<그래.. 그럼...아!! 그리고 옆에서 키스를 하던 포옹을 하던 상관하지 말고 무시해..우리는 무적의 솔로부대니까!! 솔로 부대 파이팅!!>
<화이팅!!>

내 말에 맞춰 손을 들고 귀엽게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그녀. 은근히 죽이 잘맞는 다 우리..
이내 나에게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그녀를 나는 웃으며 바라 보았다. 흐흐..처음이다..이렇게 오래 얘기 한거..맨날 말도 못하고 지나쳤는데.. 오늘은 꽤 좋은 느낌인걸??

<좋아??>
<악!!>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음산한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언제 왔는지 누나가 멀어진 그녀를 여전히 바라보며 내 뒤에 서있었다.
아이고..간떨어지는 줄 알았네.. 아니..이 여자는 맨날 이렇게 뒤에서 갑자기 소리도
없이 나타나..사람 놀라게..


<뭐야..갑자기!! 인기척이라도 하지.. 놀랐잖아..>
<놀랄게 뭐있는데..뭐 나쁜 짓이라도 했어??>
<나쁜짓은 무슨...언제 온거야??>
<좀 전에 니가 방금 간 여자애랑 포옹하고 있을 때 왔어..>

하하...봤구나..젠장 하여튼 이 인간 타이밍 하나는 기막히다니까..

<포옹은 무슨..하하..그냥 쓰러질뻔 한 거 잡아준거야..>
<아..그래?? 근데 왜 두 사람 눈에 스파크가 튀냐??>

보이냐?? 그런게?? 당사자인 나도 못 본건데..

<무슨 소리야..그냥 잡아준거라니까...>
<그래..그건 그렇다 치고..누구야 쟤는??>
<그냥 반 친구..>
<너 친구 중에 여자라곤 동네 아줌마들 밖에 없잖아..저렇게 젊은 영계를 니가 어떻게 알아..>

하아..솔직히 이런 무자비한 말에도 반박 할 수가 없다.. 사실이니까..하지만!!

<왜 없어!! 나도 학교에 아는 여자에 많다구!!>
<그래..아는 여자애는 많겠지..걔네들이 널 몰라서 문제지..>

진짜...날 너무 잘 안다..이 여자는.. 나 몰래 학교에 스파이를 집어 넣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누군데??요즘 쫓아다니는 애야??>

하아..그래 그 소리 왜 안나오나 했다.. 웬지 나도 반격을 하고 싶어지는데...

<요..요즘 만나고 있는 얘야..>
<만...나고 있는 애??>

못 믿겠다는 듯 한 얼굴로 되물어 오는 누나. 그게 그렇게 못 믿을 소리였나?? 내가 여자 만나고 있다는 게..하하..참..또 슬퍼진다..

<그..그래... 요즘 같이 다니는 여자애야..>

물론 뻥이다.. 좋아하는 건 맞지만 본격적으로 얘기한건 오늘이 처음이다. 같이 다닌 것도 저번이 처음이고.. 먹힐려나..이게?? 의외로 눈치빠른 여잔데..

<거짓말...재 얼굴 보니까 상당히 인기 많은 것 같은데..너랑 놀아줘??>
<뭐...나도 처음엔 그냥 장난 인줄 알았는데 진짜라네...내가 좋데..>

참 나도 우리 담팅이랑 몇일 다니더니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이렇게 능수 능란하게 거짓말을 하는 거 보니.. 좋은건지..나쁜건지..

<진..짜야??>

먹혔다...약간의 의심의 눈빛이 남아있지만 조금씩 믿고 있는 것 같다.

<뭐하러 그런거 가지고 거짓말해..그것도 우리 누나한테..사실이야..>
<그럼 사..귀고..있는 거야??>
<아니..아직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친구보다 조금 특별한 관계라고 할까?? 뭐 나도 싫지는 않고..>
<뭐..그럼 금방이겠네... 원래 여자란게 잠깐 혹했다가 또 금방 바뀌니까..너두 너무 좋아하지 마라..상처받아..>

허허..그래 그렇게 넘기시겠다...그럼 마지막 어택!!

<뭐..키스까지 했는데...>

순간 굳어지는 누나의 얼굴. 제대로 들어갔다. 이건 몰랐지..흐흐

<키..스도 했어??>
<어...그냥 어쩌다 보니까 했어..>
<정말..했..어??>
<그렇다니까..>

팍!!

순간 내 뒷통수에서 느껴지는 벼락같은 통증에 나는 뇌세포 몇백마리가 죽어나가는 느낌을 받으며 머리를 쥐어 싸맸다.

<뭐야 갑자기!!>

뒷통수를 문지르며 내 얼마 안되는 뇌세포를 죽인 장본인인 누나를 노려 보았지만 이내 2타로 날라오는 누나의 주특기인 훅에 나는 또다시 좌뇌에 붙어있던 몇 백마리의 뇌세포가 세상을 떠나는 느낌을 받으며 다시 한번 머리를 쥐어 싸매며 허리를 숙였다. 아..가뜩이나 좋지도 않은 머리..골라서 머리만 치고 있네..

<진짜..뭐하자는 건데!!>

혹시나 추가타가 날라올까 팔을 올려 머리를 보호 한채 다시 고개를 든 나는 사라져 버린 누나의 모습에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잠시 저쪽으로 인파를 헤치고 걸어가는 누나가 보였고 나는 그 뒤를 쫓아 달려나갔다. 진짜 저여자 사람 때리고 도망가는게 아주 버릇 들렸어..

근데 왜 때린 거야??젠장...열라 아프잖아.. 아직도 통증이 느껴지는 뒷통수와 옆통수를 번갈아 문지르며 나는 열심히 누나의 뒤를 쫓았다.

<잠깐...서봐...>

어느새 누나에게 다가간 나는 뒤에서 누나를 불렀지만 누나는 들리지가 않는지 아니면 듣고 싶지 않은지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그저 앞으로만 걸어갔다. 아...짜증나..뭐하자는 거야!!

<아..진짜!! 잠깐 서보라고!!>

누나의 팔을 낚아채듯 잡고 힘을 주어 누나를 멈춰 세웠다. 에고 힘들다..

<하아..뭐하자는 거야..그렇게 때리고 가버리면 어떻게..>
<놔...>
<뭐??>
<손..놓으라고!!>

갑자기 비명을 지르듯 큰소리를 치는 누나는 내 팔을 거세게 뿌리치며 몸을 돌려 나를 바라 보았다. 얼굴 가득 분한건지 슬픈건지 뭔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나를 노려보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뭐야...그 표정은..

<왜..왜 그러는데...>
<나도 몰라..그러니까 건들지마..>

감정을 억누르듯 조용히 말을 내뱉은 누나는 이내 다시 등을 돌려 저만치로 걸어갔다.
아..진짜 왜 저러냐?? 갑자기... 갑작스런 누나의 모습에 나는 머리가 복잡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다시 누나에게로 걸어갔다. 언제 나갔는지 누나는 바람을 쐬기위해 만들어논 발코니로 나가 있었고, 나 역시 누나가 있는 곳으로 몸을 옮겼다. 헥헥...좀만 뛰어도 이렇게 힘드냐..

<하아...누나..대체 왜 그러는데..이유나 좀 알자..>

숨을 헐떡이며 누나에게 조용히 물어보지만 등을 돌린 채 누나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진짜...짜증나게 왜 그래!!>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소리를 치며 누나의 팔을 잡고 거칠게 뒤돌려 세운 나는 순간 멈칫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울고 있었다..큰 눈 가득 눈물을 글썽이며 울고 있었다..

<뭐..야...왜 울어??>
<몰라...>
<응??>
<모른다고!! 왜 눈물이 나는지..왜 화가 나는지!! 나도 모른다고!!>

울먹이듯 소리치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조금씩 당황스러워 졌다. 어느새 주위에는 이상한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 두 사람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누..누나..>
<짜증나 죽겠어..>
<누나...>
<내가 왜 이러는 건지..지금 왜 이렇게 화가나고 아픈건지...모르겠어..그래서 짜증나고 화나..>

결국 글썽이던 두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린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뻗어 갔다. 탁! 순간 내 손을 내치는 누나의 손짓에 나는 손을 뒤로 물리고 누나를 바라 보았다.

<거..건들지마...넌 그냥..아까 그애 한테나 가서 잘해줘...>
<그...애??>
<너 좋아한다는 그애..니가 좋아한다는 그 애한테 가서 포옹도 하고 뽀뽀도 하고 키스도 하고 너 하고 싶은 데로 다하면서 멋대로 하라고!!>

투정 부리듯 나에게 외치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이제야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참나...그런거야?? 설마..했는데...의외네...

<지금...질투..하는거야??>
<뭐..뭐??>
<질투..하는 거냐고...아까 그애 한테..>
<내..내가 뭐!!니가 뭐라고..질투를 해..>

근데 왜 말은 더듬고 당황하십니까?? 몸으로 대답하시나??

<그래?? 난 또 혹시나 했지...내가 걔랑 키!!스!! 했다는 것 때문에 누나가 화난건줄 알고..>
<그..그런 걸로 화낼 리가 없잖아..>
<그래?? 하긴...우리 콧대 센 누나가 나 같은 놈 때문에 화낼 리가 없지..뭐 누나가 정 원한다면 그냥 누나 앞에서 사라져 줄께..누난 말대로 아까 그애한테 가서 뽀뽀도 하고..키스도 하고.. 뭐..잘되면 사귀면 좋지..안그래??>
<사...귀어??>
<뭐..누나가 바라기도 하고..나도 싫지는 않고..그냥 사귀지..뭐...>

조금씩 울상이던 얼굴이 굳어져 간다. 의외로 알기 쉬운 사람이다. 우리 누나..

<그럼..난 간다..이따가 집에서 봐...뭐 뭣하면 내일 들어갈수도 있고..>

등을 돌려 발코니의 문으로 다가가는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 됐는데..

<자..잠깐...>
<응??왜??>
<가지마...>
<왜?? 누나가 가라메..>
<집에...가서 나 야식 줘야지..그러니까 가지마..>
<야식이야 사먹으면 돼지...>
<니가 만든게..맛있어..그러니까...가지마..>
<담에 해주께..오늘은 그냥 사먹어..>

다시 돌려 발코니의 문을 잡는 내 뒤로 한번 더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싫어...가지마..>
<응?? 무슨..소리야??>
<싫다고!! 나 말고 다른 여자가 너랑 같이 있는거!!>

빙고!! 나를 향해 빨개진 얼굴로 소리친 누나를 나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상관 없다메..>
<몰라.. 괜찮을줄 알았는데...니가 누굴 좋아한다고 해도 니가 누굴 만난다고 해도..괜찮을 줄 알았는데..자신 있었는데.....못 보겠어...니가 다른 여자 옆에 있는거..못참겠어..니가 나말고 다른 여자 안고 있는거.. 다 못참겠다고.. 니가 나말고 다른 여자랑 사이좋게 연인처럼 있는거..정말..미칠 것 같다고..흑..>

감정이 격양 됐는지 가늘게 목소리가 떠려온다. 어느새 두 눈에는 다시 눈물이 흘러 두 뺨을 타고 흐른다. 하하..장난이 너무 심했나?? 울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주위에서는 여전히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가끔씩 날 향해 저놈이 여자를 울렸어.. 저 이쁜 여자애를 저 이상한 놈이 울리네..참 주제도 모르고..라는 감정섞인 눈길을 보내온다.. 젠장 역시 나쁜 놈은 난가??

나는 살며시 누나에게 다가가 누나를 끌어 안아갔다. 가벼운 누나의 몸이 당연하다는 듯이 내 품에 안겨 왔다. 내 갑작스런 포옹에 놀란 듯 누나가 울음을 그치고 나를 올려다 본다.

<뭐..뭐야...갑자기..이거 안놔??>
<잠깐만..이러고 있자...여기 좀 추워서...이게 더 따뜻하다..>
<뭐..뭐야...그게..>
<뭐긴...그냥 안고 싶어서 핑계대는 거지...>
<난..싫어..놔...>
<내가..좋아..그러니까..이러고 있자...>

미약하게 바둥거리던 누나는 이내 저항을 멈추고는 내 등에 살며시 팔을 두르며 같이 나를 안아왔다. 찜질방의 더운 온기보다 더 따뜻한 온기가 서로의 몸을 채워가고 그것을 좀더 느끼겠다는 듯이 우리는 서로를 더욱 더 세게 끌어 안아갔다.

<나쁜놈...바람둥이...>
<뭐야..그게..>
<양다리나..걸치고...>

하하..졸지에 바람둥이 까지 되 버렸네..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바람둥이는 너무 심했다..사귄 것도 아닌데..>
<키스도 했다메..그럼 바람 핀거지..>

아..뭐라고 해야 하나?? 사실대로 안말하면 계속 이거 가지고 트집 잡을 것 같은데..

<그거..사실은...뻥이야..>
<뭐??>

놀란 듯 나를 올려다보며 돼 묻는 누나를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뻥...그러니까...거짓말..일종의 구라..라구...>
<키스한게??>
<뭐..그냥 다..몽땅...걔가 날 좋아한다는 것도..걔랑 좋은 관계에 있는 것도..그리고 키스까지 했다는 것도...다..뻥.이지..하하..>

민망하네...내입으로 까발릴려니까..

<진..짜??>
<어..이건 진짜야...걔 얼굴 이쁘게 생겼잖아...날 좋아할 리가 없지..>
<하긴 나도 그건 이상했어..너 같은 그런애가 좋아한다니..있을수 없다고..>

젠장...그렇게 쉽게 인정하면 나는 뭐가 되냐??!!

<뭐..그럼 누난 뭐야...내가 좋다메??>
<뭐...그거야..내가 이상한거고..>

그렇게 까지 해서 나를 깍아 내려야겠냐?? 앙??

<그럼...날 가지고 논거네??>
<뭐..가지고 논 것 까지야..하하..>

누나의 눈꼬리가 올라가며 얼굴에 조금씩 살기가 퍼져 나왔다. 하하..맞겠네..
근데..설마..이 자세에서 때리겠어.. 순간 배에 꽃히는 둔중한 펀치.. 내장이 울리는 듯한 기분에 나는 순간 숨이 멎는 것을 느꼈다. 복부에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속 뒤집어지는 충격에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났다. 젠장...뭐..뭐야..이건..분명히 클린치 상태였는데..방심하고 있어서 미쳐 배에 힘도 못주는 바람에 더 아프다..윽...

<이건...벌이야..한대 더 때릴라고 했는데..이게 생각보다 조금 위험한 기술이라서..한대만 때린다..그래도 아직 다 풀린 건 아니니까 각오하고 있어라..>

위험한 기술이면 아예 쓰지를 마!! 아직도 울렁 거리는 배를 잡으며 간신히 고개를 들어보니 후련하다는 듯이 주먹을 쓰다듬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누나가 보였다.

<왜..그런거야??>
<응?? 아..자꾸 누나가 나 보고 인기 없고 친구도 없고 못난 놈이라고 놀리니까..열받아서 그랬지..>
<내가 그렇게 심하게 놀렸어?? 그런 거짓말까지 할만큼??>
<가능하면 결혼 약속까지 했다는 거짓말 까지 할 만큼 심했어..>
<하하..그 정도로 심했나??>

모르고 있었단 듯 헤헤 거리는 누나의 모습에 이 여자 여기서 더 맘먹고 놀린 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생각해봤다. 어우..끔찍하다..

<화..많이..났어??>
<응?? 어..좀 많이 났어..너 때문에 괜히 울기나 하고..못난 꼴만 보였잖아..>
<헤헤...미안..나도 누나가 그렇게 까지 반응 할 줄은 몰랐어..>
<그래도...다행..이라고 생각해..>
<응?? 뭐가??>
<그 애..너랑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거..다행이라고 생각 한다고..>

진심이라는 듯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모습은 웬지 모르게 편안해 보였다.

<뭐,,너무 안심 하진마..언제 다른 여자가 날 채갈지도 모르니까..>
<누가?? 나 말고 그런 이상한 취향을 가진 여자가 또있어??>

하하..진짜 아까부터 자신을 그렇게 깍아 내리면서 까지 날 그런 취급을 해야겠냐고..
그냥 같이 좋은게 좋으면 안되나??

<호..혹시 알아...또 누가 있을지??>

있다..학교에 한명..우리 선생님...뭐..차마 말하지는 못하겠다..말하면 진짜 날 죽일 것 같아..

<있으면...어떡할꺼야??>
<엉??>
<너 좋다는 여자..있으면 어쩔거냐고..>

진지하게 물어오는 누나의 물음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뭐..내 신조가 오는 여자 막지 않고 가는 여자 끝까지 잡아끈다..인데...뭐 온 여자가 있어야지 말을 하지...

<몰라..생각 해본적이 없어서...하하..>
<눈길...돌리지마..>
<응??>
<다른 여자한테...눈길 돌리지 말라고..>
<무슨 말이야?? 내가 누나 것도 아니고..>
<너..내꺼야..>
<엥??>
<넌..내 남자고 내 동생이고 내 꺼라고..아무 한테도 못줘..>

뭐..야..갑자기..어느새 다가온 누나가 내 목에 팔을 두르며 내 앞에 섰다. 누나의 아름다운 얼굴이 은은한 발코니의 조명 빛에 비치며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그러니까..너는 나만 봐..나만 보고, 나만 사랑하고 나랑만 키스하고, 나랑만 해..>

해?? 뭘...

<알겠어??>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진지한 시선에 압도단한 나는 나도 모르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나 말고 다른 여자랑...하면...진짜...죽일꺼야..>

하하...웬지...등뒤에 식은 땀이 흐른다..덥지도 않은데..

<라고...말하고 싶은데...안되겠지...아무래도??>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당황한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그제서야 무슨일인지 깨달았다. 하하..장난??

<장난..친거야??>
<어...놀랬어??>
<어..조금...많이...>

사실은 살기까지 느껴졌습니다..

<복수야..니가 거짓말한거에 대한...>
<하하..그래??>

복수치곤 좀 살벌했다...

<그래도...반은 진심이야...>
<응??>

누나가 내 목을 감싼채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온다. 씻은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기분 좋은 샴푸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온다.

<나만..봐달라는말...나만보고..나만 사랑하고..나랑만 키스하고..나한테만...해달라는 말..그건.진심..이야..>
<누..나..>
<진짜...첨엔 괜찮을줄 알았어...내가 좋아하니까..그거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근데..아까 니가 그 애랑 같이 껴안고 있는 거 보니까...머릿속이 하얘지더라...아무것도 생각안나는게..마치 세상이 끝나는 것 같더라고...>
<누나..>
<알아..나 니 누난거...근데..가끔씩 그 누나라는 소리가 너무 날 아프게 해...>

슬픈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 보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이제..나 너 아니면 안되나봐...니가 없는 우리 집을 상상할수도 없고 니가 옆에 없는 나를 생각할 수가 없어..그냥...니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나는...>

살며시 내 목을 당기며 끌어 안는 누나의 몸짓에 나는 천천히 몸을 맡겨갔다.

<그러니까 아무데도...가지마...누구한테도 가지마..그냥...나랑 만..있어줘...평생..내 옆에서..>

살며시 내 귓가에 속삭이듯 말하는 누나를 나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매끈한 턱선의 아름다운 옆 얼굴이 내 눈에 비쳐온다. 그리고 이내 누나 역시 고개를 돌리며 나를 바라보고 우리는 천천히 아무 말 없이 입을 맞춰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누나의 달콤한 입술의 감촉은 처음하는 키스마냥 두근거리고 설레 였다. 누나 역시 조심스럽게 내 입술을 느끼듯 입을 움직였다. 나의 팔이 누나의 어깨를 슬며시 감싸고 누나의 손이 내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온다. 누나의 입술이 부드럽게 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빨아오며 달콤함을 선사해준다. 진하진 않지만 사랑스러운 키스.. 주변의 시선은 이제 느껴지지 않았다. 둘만의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느끼면서 입을 움직였다.

<하아...>

달콤한 한숨을 내쉬며 누나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져 나갔다. 기분 좋은 키스에 상기된 얼굴이 참을 수없이 사랑 스럽다.

<많이...늘었네...??>
<응??>
<키스..하는거...많이 늘었어...>
<하하..그래??>

뭔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누나를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많이..해서 그런가...하하..

<좋..았어??>
<어..상당히...두근두근..했어..달콤하고...너무...좋았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누나..은근히 이여자도 부끄럼이 많다.

<그래?? 그럼..한번더...>

고개를 숙인 누나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리며 나는 다시 한번 입을 맞춰갔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다르게 천천히 혀를 집어넣어 부드럽게 누나의 구강을 더듬어 갔다.
혀끝으로 톡톡 건드리는 가하면 이내 혀를 뿌리까지 휘감아 한번 부드럽게 빨아들여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더 혀의 위치를 바꿔가며 누나의 점막을 더듬는다.
달콤한 기교에 누나의 코를 타고 살며시 뜨거운 한숨이 흘러 나온다.

어느새 달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열기를 띄고 있었고, 내 목덜미에 얹은 손은 내 뒷머리를 쓰다 듬으며 문질러 온다.

<파하...잠..잠깐만...>
<응?? 왜??>
<여기...사람...너무 많다..>
<응??>

누나의 말에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언제 모였는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의 농후한 키스씬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하하..진짜네..할 땐 몰랐는데..하고 나니까 쪽 팔리다..

<어떡하지?? 그냥 집에 갈까??>
<아니...집에 가는 건 좀 그렇고...경품 때 까지 시간 있으니까..어디 딴데 가자..>
<어디??>
<저기...위에...방..있어...글로..가자..>
<방?? 거긴 왜??>
<그..그냥..사람 없는 데로 가자..>
<그냥...근처에 돌아다니다가...경품 끝나면 집에 가자..방 들어 갈라면 비싸기도 하고..>
<가자..방..돈은 내가 낼께..>
<그냥..있자니까...돈 아깝게..>
<하..하고..싶어서..그래...>
<어??>
<그거...하고 싶다고...>
<뭔 소리야?? 그거라니..>
<진짜...>

답답하다는 듯 한 얼굴로 누나가 나에게 살며시 다가와 귓가에 속삭인다.

(섹스...하고 싶어...젖었어..밑에...)

순간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나는 당황 스러운 표정을 하며 누나를 바라보았다.
창피한 듯 얼굴을 붉게 물들인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누나의 모습에 나 역시도 조금씩 얼굴이 달아 올라갔다. 미..미쳤어...

<여기서 어떻게 해...>
<그러니까...방에 가자고...거긴 아무도 없잖아...>
<집에..가서 하자..>
<그때까지...못...참겠어....>

촉촉한 눈길로 애원하듯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눈길에 나는 이내 마음을 접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인파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카운터로 가서 방을 잡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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