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香氣) -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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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왜 이렇게 볼만한 영화가 없는 거야?? 영화를 만드는 거야 마는 거야??
오랜만의 휴일을 이용해 그동안 못 즐겼던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 비디오 가게를 찾았던 나는 결국 허탕만 친 채 투덜거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누나 회사 안 보내는 건데..
한번 더 한번 더를 외치며 계속 달라붙는 누나를 계약 파기라는 협박까지 해가며 쫓아 낸게 못내 아쉬운 기분이 드는 나였다. 하지만 어차피 지나간 일 후회 해봤자 소용 없었기에 나는 이내 아쉬움을 접었다.
근데..오늘 뭐하냐?? 오랜만에 집 안 일도 없는 한가한 날인데..잠깐 놀러나 갈까? 아니지..그것도 같이 갈 여자친구라도 있어야지..혼자가면 그게 무슨 궁상이야.. 그럼 애들이나 불러서 놀까?? 아니다 경호 그 자식은 오늘 대회라고 했고 딴 놈들은 아마 지들 여자친구랑 데이트나 하고 있을 테고.. 아~오랜만의 휴일 인데 이렇게 할 게 없냐..새삼 느끼는 거지만 한강혁 너 왜 이렇게 사냐?? 한심하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매일 매일을 죽을둥 살둥 발버둥 치며 휴일만을 기다리지만 막상 그때가 오면 할 게 없다.. 진짜 슬픈 인생이다..
나는 밀려들어 오는 한숨에 땅이 꺼져라 숨을 쉬며 눈앞의 돌멩이를 걷어 찼다.
발에 차인 돌멩이가 또르르 땅위를 굴러가고 그 돌을 따라 가던 내 시야에 하나 커플이 잡혔다.
뭐야..저 년놈들..길거리에서 연애질 하고 있는 거냐?? 지금 누구 염장 지르냐??
눈 앞의 커플은 명백히 거리 중앙에 서서 남들 보란 듯이 마주 서서 도란 도란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하얀 민소매 블라우스에 하늘색 주름진 치마를 입은 잘빠진 미녀와 의젓하고 허우대 좋은 사내. 누가 봐도 선남선녀의 이상적인 커플이었다. 참 이쁘고 잘생긴 것 끼리 논다..
근데 좀더 자세히 보니 웬지 커플이라고 하기엔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여자는 웃고는 있었지만 얼굴 가득 난처하다는 기색이 역력했고 남자는 그에 상관없다는 듯이 여자에게 끝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마치 추근덕 거리는 남자처럼.. 그리고 나의 시선이 남자를 떠나 여자에게 멈췄다.
근데..저 얼굴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인데...맞어...저 여자...
확실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여자였다. 근데 왜 저 여자가 여기 있지?? 이 동네 사나??
그리고 저 사람은 애인?? 내가 알기론 애인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서 있을 때 순간 여자의 고개가 내 쪽을 향했다. 내가 있는걸 알고 고개를 돌린지는 모르겠다. 그냥 우연히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고 여자 역시 내가 누군지 생각 하는 듯 잠시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날 아나?? 하긴.. 모를 리가 없지 근데..
그리고 이윽고 생각 났다는 듯 앗 하는 표정을 지는 그녀. 날 알아본 것 일까?? 그녀가 천천히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왜 이쪽으로 오냐...그냥 모른 척하고 가지...아이 씨..모르겠다 그냥 아는척이라도 하자..
<안녕하..>
거의 내 앞에 다다른 그녀를 향해 나는 인사를 하기 위해 허리를 숙이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그녀가 나의 행동을 저지하며 빠른 움직임으로 내 옆에 다가왔다. 그리고 재빠르게 내 팔에 팔짱을 끼고는 나에게 밀착했다. 순간 푹신한 감촉이 감긴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뭐..뭐야..이 시츄에이션은..??
<선생님....무슨..윽>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나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무슨 일 인지 물어보려 했지만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통증에 말을 삼켜야만 했다.
(잠깐....잠깐만 내가 하자는 대로 해줘..)
살며시 내 귓가에 울리는 달콤한 속삭임. 나는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이어 아까의 그 남자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멀리서 볼 때는 그냥 짐작만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확실히 잘 생겼다.. 깔끔하고.. 매너있게 생겼고... 확실히 남자는 남자인 내가 봐도 인기있게 생겼다 할 정도로 잘생긴 타입이었다. 근데..선생님이랑 무슨 관계지?? 좀 심각해보이는데..
<강주씨..이 사람은 누구죠??>
<아...이 사람이 좀 전에 제가 말한 제 애인이예요..>
애인?? 누가?? 내가?? 언제부터?? 뜬금없는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 보려던 나는 다시금 느껴지는 옆구리의 통증에 고개를 원위치 시켜갔다. 아이씨....좀 살살 좀 꼬집지.. 살 페이겠다..
<애인이라뇨...이 사람이요??>
선생님의 말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제서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 보았다. 천천히 기분 나쁜 시선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던 사내는 갑자기 뭐가 우스운지 킥킥 대기 시작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아직도 잘 모르는 나였지만 그것이 나를 향한 비웃음이었다는 건 확실하게 느낄수 있었다. 이 자식 봐라.. 은근히 재수없네...다시 보니까 잘생기지도 않았네... 농약 먹은 족제비처럼 생겨가지고...
내 굳은 표정을 읽은 것일까,, 그 자식은 그제서야 웃음을 멈추고 선생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직도 웃긴지 얼굴엔 비웃음이 가득 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내 꼴이 지금 말이 아니긴 하다.. 대충 입고 나온 면 티에 집에서 나 입을 법한 줄무니 반바지.. 거기다 질질 끌고 나온 슬리퍼.. 감지도 않아 헝클어진 더벅머리.. 옆집 사는 백수 형이 봤다면 새로 들어 온 신입인지 알고 피시방 가자고 할 정도의 몰골이었다.
그래도 그렇지...사람을 대놓고 비웃네..이게 아직 인성교육이 덜 됐구만..
<강주씨... 제가 지금 당자 사귀자는 것도 아니고 같이 차나 한번 마시자는 건데...이렇게 까지 하시다니..좀 섭섭합니다..>
<이렇게 라뇨?? 전 엄연히 애인이 있는 사람이고 지금 애인이 바로 옆에 있어요.. 너무 한건 그쪽 아닌가요??>
<애인 이라뇨...이 사람이 애인 이라는 말입니까??>
<네!! 제 애인 이예요!>
<후후..거짓말을 하시는 건 좋은데 상대를 잘 고르셨어야죠..제가 충분히 납득 할 수 있게요..>
다시 한번 기분 나쁜 시선으로 나를 깔보듯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확실히 날 무시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열라 기분 더럽네...내가 이딴 자식한테 이런 꼴을 당해야 돼??
<어디서 이런 돼지도 않는 놈을 갔다 놓고는 애인이라고..>
분명히 들렸다.. 돼.먹.지.도.않,은.놈. 아...혈압 오른다... 그냥 한판 붙어??
짝!!
그때였다. 강한 따귀소리와 함께 그 사내의 얼굴이 확 돌아 간 것은.. 사내는 자기가 맞은 것이 믿을수가 없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내 옆에 있는 선생님을 바라 보았다.나 역시 눈앞의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 멍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 보았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무서운 얼굴로 눈 앞의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무례하군요!! 당신이 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죠??당신이 뭔데 겉모습만 보고 남을 판단하는 거냐고요?? 당신이 뭔데??!!>
마치 설교하듯 매섭게 남자를 질책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남자는 창피한 듯 얼굴을 붉게 물들여 갔다. 여자에게 맞은 것이 분하고 치욕스러운 듯 단정한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다.
쪽팔리지...나 같아도 그러겠다.. 길 거리에서 여자한테 뺨 맞았는데..
의외로 참을성이 있었던 것일까?? 아님 눈 앞의 미녀에게 차마 화를 낼수 없어서 였을까..
남자는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며 호흡을 가다듬어 갔다. 하긴 내봤자 지 얼굴에 침뱉기지..
<크윽...제가...좀 무례했던 것 같군요..사과 드리겠습니다.>
<사과는 저한테가 아니라 제 애인 한테 해야죠..>
<아..네...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죄송합니다...>
자식..인사를 할 려면 얼굴 좀 피고 해라..뭐 하인한테 인사하는 양반 놈도 아니고..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하는 거 티내냐??
확실히 사내의 얼굴은 나에게 사과한다는 것이 치욕스러운 듯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제가 실수한건 그렇다 치고.. 강주씨.. 저 솔직히 강주씨 좋아 합니다..아니 사랑 합니다!!>
<아직도..그런 소릴..>
<애인이 있다구요?? 옆에 저 사람이 애인이라고요?? 하지만 전 그 말 못믿겠습니다. 몇 주동안 강주 씨를 봐왔지만 저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걸 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한테도 강주씨한테 애인이 있다는 얘길 들어본적도 없고요..그래도 저 사람이 강주씨 애인 입니까??>
추궁하듯 물어보듯 그의 얼굴엔 확신의 빛이 뚜렷했다.
아주 조사를 단단히 해오셨네.. 그나 저나 어쩌나..우리 선생님 다 뽀록 나게 생겼네..
그냥 당신이 싫어요~~ 하면 될 거 가지고..왜 이렇게 하시나..머리만 아프게..
가끔가다 그런 여자 있다. 분명히 자기 맘에 들지 않는데도 확실히 말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기대를 갖게 만드는 사람..자기 딴에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라고 그러는데 웃기는 소리다. 감정이 더 커지기 전에 잘라 버리는게 그 사람에게 덜 상처를 주는 일이다. 그건 그냥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거나, 지금의 상황이 재밌어 즐기는 것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하니까..그리고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니까..
뭐 지금 선생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도 딴엔 남자가 쉽게 단념 할 수 있도록 생각해서 하는 일일 테니까..근데..문제는...왜 그 사이에 내가 껴야 하냐고..머리 아프게...
<그럼 어떻게 해야 믿으시겠어요?? 뭐 증명서이라도 떼다 드릴까요??>
그런게 있기나 한거야??
<그냥 전 사실을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강주씨의 진짜 애인이라면 전 이 자리에서 깨끗이 강주씨를 포기하겠습니다. 앞으로 귀찮게 한다거나 쫓아다닌 다거나 그런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정말이죠??>
<네..남자답게 포기 하겠습니다!!>
<그럼 똑똑히 보세요!! 이게 그 증거니까요!!>
뭘 보라는 거...읍!!
순간 내 고개가 홱 돌아가며 내 얼굴 위로 무언가가 덮쳐왔다. 그리고 동시에 입술에 느껴지는 촉촉한 느낌.. 누나의 입술과는 또 다른 부드러운 감촉이 내 입술을 타고 얼굴 전체로 퍼져 간다. 상큼한 딸기향이 코를 타고 흘러들어온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내 입술을 누르고 있던 부드러운 무언가가 사라지고 천천히 선생님의 얼굴이 떨어져갔다.
지...지금 뭐가 지나갔냐...?? 나는 내 입술을 범하고 당당하게 남자를 향해 외치는 선생님을 그저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어때요..뭐 더 보여줘야 할 게 남았나요??>
여기서 뭘 더 보여 주실라고 그러 소리를 해??
<아...아닙니다...이제...됐습니다..지금까지 귀찮게 한점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앞으로는 절대 귀찮게 하는 일 없을 겁니다.>
<당연 그래야죠..저도 다신 그쪽 보는 일 없었으면 하네요..>
의외로 잔인하네...우리 선생님..그런 말은 저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요..
<네...그리고...애인분께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아까의 무례..죄송합니다..>
<아..아뇨...그럴수도 있죠..뭐...하하...>
아까와는 다르게 진심어린 얼굴로 사과하는 남자의 모습에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그냥 확 불어버려?? 나 이 여자 몰라요 하고.. 아니다..그냥 보내는게 낫겠다. 맘에 없는 사람 붙잡고 늘어지는 것만큼 흉한 것도 없으니까..그냥 여기서 단념시키는게 남자를 위한 길일것이다.
<그럼..전 이만...>
힘 없이 등을 돌린 그는 터덜터덜 어깨를 축 늘어 뜨린 채 우리의 눈앞에서 멀어져 갔다.
아...좀 기분이 찝찝하네..그렇게 나쁜 놈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뭐..그건 그렇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선생님을 바라 보았다. 선생님은 아까의 남자가 다시오는 건 아닐까 내 팔짱을 꼭 킨 채 남자가 걸어간 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좀 놓지?? 팔뚝에서 뭉클거리는 게 느낌이 이상하잖아..
<저기...선생님...이제...팔..좀...>
<아!! 미안...미안해..>
그제서야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을 안 것일까.. 다급하게 팔을 빼며 얼굴을 숙이는 선생님은 거듭 나에게 사과했다.
<미안해..많이 놀랐지?? 갑자기 내가 그래서...>
<예...조금... 근데 저 남자는 누구예요??>
<아... 삼주 전에 선 본 남자.. 내가 맘에 든다고 사귀어 보자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막 쫓아 다녀.. 근데 앞으로는 안 그럴 것 같다.. 지금 저러고 가는 거 보니..>
당연하지...바로 눈 앞에서 보란 듯이 키스를 했는데...나 같아도 포기하겠다..
의외로 잔인했어..당신...
<근데..너무 심하셨던거 아니예요?? 따귀까지 때리시고...>
<아..그거.. 그건 맞아도 싸. 자기가 뭔데 자기 맘대로 남을 무시하고 깔보는 거야!!
그것도 우리 귀여운 제자를 그건 내가 절대 용서 못해!!>
<그래도...선생님이 좋아서 그런 것 같던데..나쁜 사람 같지도 않아 보였고..>
좀 재수가 없어서 그렇지...
<뭐..그런 것 같긴 한데 사람 마음이 자기 맘대로 되는 거겠니..그냥 싫으면 싫은 거지..안그래??>
<하긴..그렇죠..>
맞는 말이다..사람을 자기 의지대로 좋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아무리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아무리 그 사람이 나에게 잘 해준다고 해도 내가 아니면 아닌거니까..그건 누가 옆에서 부추기고 강요해도 어쩔수 없는거니까..뭐 그래서 사람이라는 게 재밌긴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과 전혀 예상치 못한 감정을 가지고 전혀 예상치 못한 삶을 사는 것 그게 인생의 묘미고 인생의 작은 즐거움이 아닐까??
<근데...기분 나빴어??>
<뭐가요??>
<아니...아까...그거...키...스...>
아이씨...쪽팔리게 그냥 넘어가지..왜 그런걸 물어 보시나?? 대답하기 곤란하게..
<그냥...그랬어요...>
<그냥 그랬어?? 어..이상하다..>
<뭐가요??>
<아니...나 같은 미인이랑 키스를 했는데 반응이 그냥 그랬어요가 다잖아...이상해...>
이거..은근히 공주병 있는 거 아냐?? 뭐 확실히 공주 취급 받을 만 하지만..
눈 앞의 이 여성 즉 우리 담팅이 이강주 선생님은 확실히 미인이라고 불릴 만큼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이다. 이쁜 여성이 가져야할 가장 큰 포인트인 큰 눈과 그 눈을 가득 메우는 호수 같은 검은 눈망울과 갸름한 얼굴.. 어깨까지 내려오는 세미롱의 갈색 머리는 세련된 선생님의 외모와 잘 어울렸고 가끔씩 웃을때 마다 보이는 귀여운 보조개는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키도 적당히 컸기에 몸매 역시 좋아 보였다. 한마디로 미인이라는 얘기다.
<농담이야..농담..그렇게 쳐다보니까 선생님 무안해질라고 한다...>
<아...죄송해요..>
<됐어.. 근데..어디 가던 길이야??>
<아.. 예..집에 가는 길이예요..비디오 빌릴 라고 나왔거든요..>
<그래?? 집이 여기서 가까운가 보네??>
<네..여기서 두 블록만 가면 되거든요..>
<그래??>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뭔가 고민하듯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중얼거리던 선생님은 갑자기 나를 보며 외쳤다.
<나두 가자!!>
<네??>
나는 내가 잘못 들은건 아닐까 다시 한번 되물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확실하게 대답하는 선생님.
<니 네집..나두 가자고!!>
<저희집이요??>
<응..니네집..>
<저희 집엔 왜..??>
<음...그냥 가정방문 겸해서 가는 거지..선생이 학생이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간다는 데 더 한 이유가 필요해??>
요즘에 가정 방문하는 학교 교사가 어딨냐고.. 무슨 학습지 해??재능 교육도 아니고..가정 방문은 무슨.. 뜬금없이...
<아니..그래도 그렇게 갑자기...>
<원래 모든 일은 갑자기 이루어지는 가야..이른바 불시 검문!! 가자!! 앞장서..어여...>
잡아 끌 듯 내 팔을 잡고 길을 재촉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어쩔수 없이 걸음을 옮겼다..뭐 혼자 휴일 보내는 것 보단 났겠지..
<아!! 그리고 집에 가기 전에 마트 좀 들렸다가자..>
<마트는 왜요??>
<남의 집에 가는데 뭐라도 사가지고 가야지..그냥 빈손으로 갈순 없잖아..실례되게..>
이렇게 갑자기 오는 것 자체가 실롑니다.
<괜찮은데...>
<아냐아냐..내가 안 괜찮아..암튼 어여 가자..>
놀이동산 놀러가자는 어린아이처럼 내 팔을 잡고 질질 끌고가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이내 떨떠름한 마음을 접었다. 뭐..그래!! 이쁜 선생님이 가정방문도 해준다는데 맛있는거나 만들어줘야겠다.
<선생님 뭐 좋아하세요??>
<나??그냥 이것 저것 다 잘 먹어..잡식성이거든..>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건요??>
<음...닭 종류??>
<아..그래요..>
<근데 그건 왜??>
<아뇨..그냥요..>
메뉴는 닭도리탕이 좋겠네..이따가 몰래 닭 한 마리 사야겠다.
마트 안은 주말이어서 그런지 상당히 어수선했다. 여기저기서 장을 보러 나온 아줌마들이 바구니를 들고 각 코너를 돌고 있었고 여기 저기서 세일이네 모네 하면서 시끄럽게 방송을 해대고 있었다. 마트로 들어간 우리는 물건을 담을 바구니를 들고 마트 안을 걷기 시작했다.
<저기..봐봐..시식 코너다.. 절루 잠깐만 가자..>
<네??저긴 왜요??>
<시식코너는 장 보기의 백미라고..몰라??>
그런 백미가 어딨냐?? 내 4년 동안 장을 봤지만 그런 말은 첨 듣는다.
나를 끌고 시식코너로 다가간 선생님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 벙글 거리며 이쑤시개를 들고 음식을 집어 먹었다. 마치 그 모습이 군것질하는 어린애 같아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참나..얘도 아니고..
<이봐요.. 새댁.. 이게 요번에 새로 나온 신상품이라우..어때 맛좋지??>
푸근한 인상을 가진 아줌마가 연신 시식 음식을 먹고 있는 선생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거 저한테 하신 말씀이예요??>
<그럼 여기 새댁 밖에 더 있어?? 아님 남편한테 새댁이라고 부를까??>
남편?? 새댁?? 설마 이 아줌마 지금 우릴 부부로 보는 건가??
<두 사람 부부 아냐??>
<그렇게 보여요??>
<응..딱 그렇게 보이는데..봐봐 사이좋게 손까지 잡고 있고..>
밑을 내려다 보니 아줌마의 말대로 선생님과 나는 다정하게 손을 잡은 채 나란히 서 있었다. 아까 선생님이 시식코너로 날 끌고 올 때 잡은 손이 었으리라.. 잡은 손을 보자 그제야 내 손을 감싼 여린 손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져 왔다. 에이씨..어쩐지 손에 좀 땀나더라...나는 천천히 선생님의 손에 잡힌 내 손을 빼내려고 했다. 순간 내 손을 잡은 선생님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나는 빼내려던 손을 다시금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랑이라도 하듯 잡은 손을 올리는 선생님.
<아주머니..보는 눈 있으시네요~어때요 우리 신랑 잘 생겼죠??>
어이어이..이봐요..아깐 애인이라고 하더니 이번엔 신랑 입니까.. 몇 시간 만에 애인 생기고 부인 생기고 참..나중엔 애까지 낳겠네요..
<음..괜찮긴 한데...아무리 봐도 여자가 아깝네..아까워..>
얼굴 가득 정말 아까워 정말 아까워를 연발하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아줌마에게 나는 약간의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아니..아깝기는 누가 아까워...나는 파릇 파릇한 영계고..이쪽은 이제 막 저물어져 가는 꽃인데..이 아줌마 보는 눈이 영 꽝이 시네...
<어이구..신랑은 너무 그렇게 기분 나빠하지 말아..마누라 이쁘다는 소리니까..>
<그래..자기야..내가 이뻐서 그런건데..자기가 이해해..>
기분 안나쁘게 생겼습니까?? 그리고 이 여자는 왜 한술 더 떠서 이래?? 당신이 더 얄밉소..
<그래..마누라 이쁘니 얼마나 좋겠어..남자는 모름지기 이쁜 마누라 얻어서 알콩달콩 살아야돼..>
<그럼요~ 자기도 들었지?? 자긴 복 받은 거래..>
아...더이상 못들어 주겠다.. 여기 있다간 나중에 애기 몇 명 날 껀 지 2세 얘기까지 나오겠다..
<저..그럼 많이 파세요..>
<저기..그냥 가게??>
<예.. 별로 땡기지가 않네요..>
나는 내 손을 감싸고 있던 선생님의 손을 살며시 뿌리치고는 시식코너를 걸어 나왔다. 그러자 뒤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었으니..
<남편이 화 났나 보네..>
<그런가 보네요.. 좀 잘 삐지거든요...죄송해요 담에 사러 올께요..그럼 많이 파세요..>
그냥 여기서 내빼 버려?? 어차피 우리집이 어딘지도 모를 테니까 찾아오지도 못 할테고..
아니다..월요일날 학교에서 또 볼 텐데 뭐..아이구..내 팔자야..어떻게 된게 내 주위에는 저런 여자 밖에 없냐..
<화났어..자기??>
언제 왔는지 내 옆에 바짝 다가온 선생님은 나를 보며 킥킥 거렸다.
<그만하세요..>
<왜그래 자기??>
<그만 하라구요..>
<알았어..자!기!야!!크크크..>
<진짜!! 재밌어요?? 그렇게 제자 놀려 먹는게??>
<몰랐는데..은근히 재밌다...자주 해 봐야겠는데..>
진짜 이걸 때릴수도 없고..선생만 아니면 진짜..어후...
<근데 어떻게 너랑 나랑 부부로 봤을까?? 우리가 잘 어울리나??>
<모르죠..저 아줌마가 그냥 상술로 한 말인지..>
<에이~설마...>
<선생님이 아직 이 세계를 잘 몰라서 그러시는데 이 세계는 잠시 정신만 놓고 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물건 얹어서 팔아버리는 그런 세계라고요..가차 없어요 진짜..>
<너 너무 부정적이다..>
당신이 한번 시장 바닥에서 한 4년 굴러먹어봐..이렇게 안되나...
<암튼 담부턴 그런 장난 치지 마세요..>
<왜?? 기분 나빴어??>
<좋을 리가 없잖아요..멀쩡한 총각이 유부남이 됐는데..누구 혼삿길 망칠라고 작정 한 것두 아니고..>
<혼삿길 막히면 내가 책임 지면 돼지..>
<사양합니다..>
<엥?? 무슨 소리야?? 아까 아줌마가 한 말 못 들었어?? 선생님 같은 마누라 얻으면 복받는 거라고 했잖아..>
<전 연상은 싫어요...>
<참나...가리는 것도 많다..>
<아무거나 먹으면 체하거든요..>
<뭐야?? 내가 아무거나 라는 얘기야??>
<뭐 좋으실대로 생각 하세요..>
뚱한 표정을 짓는 선생님을 뒤로 하고 나는 능청스런 얼굴로 걸어 나갔다.
크크크..한방 먹였다..그러니까 날 너무 물로 보지 말라구.. 이래뵈도 우리 아줌마랑 평생을 개싸움만 하고 살아온 난데.. 어디서 까부시나..좀 더 배워 오세요..
어느덧 무사히 장보기가 끝나고 우리는 마트를 나왔다. 마트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기에 우리는 몇 분 안 가 금방 집에 도착했다.
찰칵.
열쇠를 따고 들어가자 아까 나왔던 그대로의 거실이 눈에 들어온다.
나 빼고 들어올 사람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자..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여기가 저희 집입니다..>
<그럼..실례하겠습니다..>
나의 안내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들어와 힐을 벗은 선생님은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거실로 발을 들였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 사온 음식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어갔다.
<장 보느라고 힘드셨을 텐데 저기 쇼파에 앉아서 좀 쉬고 계세요..뭐 마실거라도 드릴까요??>
<응..아무거나 줘...>
처음 온 제자의 집이 낯설어서인가?? 쇼파에 앉아서도 선생님은 어색한 몸짓으로 집안을 둘러 보고 있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컵에 따라 선생님에게 가져갔다.
<여기...주스 좀 드세요..>
<응..고마워..근데 집이 생각보다 크네??>
<네..옛날에 부모님이랑 같이 살던 집이 거든요..그래서 그래요..>
<아..이 큰집에서 누나랑만 사는 거야??>
<뭐..그렇죠...>
<음...근데 집이 상당히 이쁘다..>
<그죠?? 저희 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집이예요..>
<아버지가??>
<네..건축가 셨거든요..어머니한테 프로포즈 할 때 선물하신 집이예요..>
<그래??멋있네..너희 아버지..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집을 짓는다라..아무나 못하는 건데..>
<네..아버지가 좀 그런 구석이 있으세요..어머니를 끔찍이 좋아 하셨거든요..>
<그래...그럼 너도 나중에 커서 너희 아버지처럼 부인 한테 끔찍하게 잘하겠네??>
<뭐..그건 두고 봐야죠..>
<하긴...아까 하는 거 봐선 끔찍하게 잘하기는커녕 끔찍하게 못하겠더라...>
어이어이...이런 식으로 아까의 복수를 하나...선생이란 사람이 의외로 치사한데??
주위를 둘러보던 선생님의 시선이 벽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에 머물렀다.
<저 분들이야?? 너희 부모님들??><네..>
<좋으신 분들 같으셔...>
<맞아요..좋으신 분들이세요..어머니는 다정하시고 아버지는 인자하시고..>
<많이..좋아했나보네?? 부모님을..>
<뭐..그렇죠..저한텐 세상에서 젤 소중한 분들이시니까..>
이해가 간다는 듯 쥬스 한 모금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던 선생님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쥬스를 내려놓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다.
<저기...저번엔 선생님이 미안했어..>
<뭐가요??>
<저번에..상담에서...미쳐 모르고 물어본거..명색이 담임인데..그것도 상담하면서 그런것도 모르고 하다니...기분 나빴지??>
아...그러고 보니 그런 적이 있었구나.. 어젠가 그젠가..상담할 때..까먹고 있었는데..
<자책하지 마세요...전 신경 안 쓰니까요..그리고 선생님은 잘 할라고 하시다 그러신 거잖아요..쉽지 않잖아요.. 아이들 생활기록부며 성적이며 성격이며 외우는 거..>
<어떻게 알았어?? 내가 외우면서 한거??>
<상담 중에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었잖아요..원래 자료 같은 거 펴놓고 하는게 정상인데..선생님 은 그렇지 않으셨어요..물 흐르듯이 마치 제 자신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차분하게 하셨으니까..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웬만한 사전 지식 없이는 힘들거든요..>
확실히 그렇다. 반 애들 이름 다 외우는 것도 귀찮고 힘든 일 일 텐데 거기다 생활기록부며 성격, 성적 등 그런 세세한 것 까지 외우기는 정말 웬만한 노력과 정성 없이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전혀 막힘없이 부드럽게 상담을 리드해 갔고 나 역시도 그때 편안하게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런 노력만으로도 눈앞의 우리 담팅이가 얼마나 좋은 선생인지 그리고 우리를 위해 애쓰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뭐 마무리에서 조금 삐끗하긴 했지만 그건 어쩌다가 생긴 실수니까 넘어가고..
<후...그럼 뭐해...어설프게 하다가 제자한테 상처만 줬는데...>
<상처 안줬어요...뭐..좀 기분나쁜게 있었다면 모를까..>
<기분 나쁜거??>
<음..말해도 되요??>
<응.. 듣고 싶어...>
<음...그 눈빛이요...지금도 약간씩 보이고 있는 그 눈빛..너무 불쌍해...어린 나이에..저렇게 되다니...불쌍해...어떻게 하지..라는 동정 섞인 눈빛이요..>
<내가 그랬어??>
<네...그것도 상당히 심하게..>
<아..미안해..나도 모르게 그랬나봐..>
<아뇨..이해해요...선생님 입장에선 당연한 거니까..>
<그래도...미안...>
정말 미안한 듯 어색하게 날 보며 웃는 선생님은 웬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그러게..내가 말하기 싫댔잖아..그렇게 맘 아픈 얼굴로 쳐다보지 말라고..
<교사라는 직업이 정말 쉬운 직업만은 아닌 것 같아..>
<많이... 힘드세요??>
<제자 앞에서 이런 말하기 창피하지만 좀 그렇네.. 부임 한지 얼마 안되서 담임까지 맡아서 그런지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힘에 부치는 것도 많고..얘들한테 좋은 선생인지도 모르겠고...>
<선생님은 잘하고 계시잖아요...열심히 얘들 챙겨주시고..친해지려고 노력도 하시고..>
<그거야..얘들이 워낙 착하니까..그렇게 되는 거고..모르겠어..내가 좋은 선생인지..>
<음...다른 건 몰라도 애들은 선생님 정말 좋아해요..그럼 좋은 선생 아닌가요??>
<치..빈말은..>
<진짜예요..얼굴 이쁘다고...>
<그게 뭐야.. 뭐..그런 거라면 이해가 가긴 가네..내가 좀 한 미모 하긴 하지..역시 우리 반 애들이 보는 눈은 있어..>
정말로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떫은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은근히 병있는 것 같다. 공주병... 좀 겸손할 줄 알아라...담부터 칭찬하기가 싫어진다..
나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시간을 보니 이제 4시를 약간 넘었다. 음..그럼 밥이나 차려 볼까??
<선생님..배 고프시죠??>
<응?? 아냐 괜찮아..>
꼬르륵~~
갑자기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소리에 둘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소리 근원지인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눈 앞에서는 민망했는지 얼굴을 붉힌 선생님이 턱을 긁적이며 어색한 표정으로 귀엽게 웃고 있었다.
<하하...점심을 안 먹었더니.....>
<기다리세요 금방 밥차려 드릴께요.>
<응..>
많이 창피한가 보네...말끝까지 흐리고.. 귀여워 귀여워..
부엌으로 들어간 나는 본격적으로 요리에 들어갔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난 요리할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든다는 것, 또 그 누군가가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행복해하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나 역시도 행복해지는 것 모든 것이 나에겐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근데..나 이러다가 진짜 가정주부 아니지..가정주부(家庭主夫) 되는 거 아냐?? 뭐..그것도 나름대로 즐겁겠지..
얼마안가 요리가 완성되고 나는 선생님을 부르기 위해 거실로 갔지만 쇼파 위에 앉아있던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셨지?? 가방은 여깄는걸 보니까 집에 가신 것 같지는 않고..
<선생님~~선생님~~ 밥 다 됐어요...>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었다.
혹시 2층에 계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자 내 눈에 열려져 있는 문이 보였다. 저긴 내 방인데..
<선생님~ 혹시 여기,,, 계시네....>
방안으로 들어가자 내 침대위에 누워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의 장보기가 피곤했던 것이었는지 아님 침대에 누워서 맘이 편해져서 였는지 선생님은 세상 모르게 편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밥 차려 달라더니 배고픈 것 도 모르고 자고 있네.. 근데..여긴 언제 올라 온거야??
나는 침대의 머리맡에 앉아 아기처럼 자고 있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갈색의 부드러운 머리가 아름답게 침대위로 흐트러져 있었고, 하늘색 치마 밑으로 가늘고 뻗은 긴 다리가 가지런히 모여져있다. 숨 쉴 때마다 단추께의 레이스가 달린 민소매 블라우스로 덮여있는 아름다운 가슴이 한번씩 한번씩 아래위로 올라갔다 내려온다. 참 이쁜 여자는 자는 것도 이쁘다.. 이러니까 못생긴 것들이 이쁜 여자만 보면 죽일라고 그러지..
근데...너무 무방비 한거 아냐?? 아무리 제자라지만 남자 침대에서 이렇게 나 잡아 잡슈 하고 자고 있는건..
그리고 그때 눈 가득 옷 위로 드러나 풍만한 가슴의 굴곡이 들어왔다. 누워 있었지만 선생님의 가슴은 그 멋진 형태를 유지한 채 매력적인 모양을 여실히 뽐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천천히 그곳에 손을 뻗어갔다.
부스럭...
갑작스레 뒤척이는 움직임에 나는 급히 뻗은 손을 뒤로 거두며 놀란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지만 잠결이었는지 감긴 눈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정신 차리자..넌 변태가 아냐 변태가 아냐..그래 정신 차리자...안되겠다 우선 이 여자부터 깨우자..
<저..선생님 선생님.. 일어나세요..밥 다됐어요..선생님...>
어깨를 흔들며 불러 보지만 깊이 잠들었는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자기 집 인줄아나... 잘려면 숙박비나 내고 자라고..
<선생님..선생님..>
순간 어깨를 흔들던 내 손을 선생님의 하얀 손이 잡아왔다. 나는 놀란 나머지 손을 빼보려 했지만 선생님은 가녀린 손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내 손을 꼭 쥔 채 놓아주질 않았다.
<가지마...제발...>
마치 떠나가는 누군가를 붙잡고 슬퍼하는 사람처럼, 멀어지는 누군가에게 애원하는 사람처럼 선생님은 그렇게 슬픈 목소리로 내 손을 꼭 잡은 채 중얼 거렸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당황하고 있던 나는 선생님의 감긴 두 눈을 타고 한줄기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분명 그것은 눈물이었다.
<제발..제발...나만 두고 가지마...>
뭐가 그리 슬픈걸까?? 뭐가 그리 아픈걸까?? 마치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아파서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가지 말란 말만 되풀이하는 선생님. 그 아픔이 슬픔이 꼭 잡은 손을 타고 나의 가슴까지 닿아 내게 전해져 온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선생님의 눈물로 젖은 눈가를 닦어갔다. 의식하고 한 일은 아니었다. 언제나 처럼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내 손이 선생님의 뽀얀 볼을 부드럽게 쓰다 듬어갔다.
<아무데도 안가요..아무데도..그냥 여기.. 여기 있을께요..>
나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것일까?? 조금씩 선생님의 애닲은 중얼거림은 천천히 잦아 들어갔고 이내 다시 세상모르는 아이처럼 잠들어 갔다. 내 손 만은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잡은 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깐 몸을 뒤척이던 선생님은 천천히 감은 눈을 떠갔다.
<일어나셨어요??>
<아...미안...내가 깜박 잠이 들었나보네..>
<아뇨..괜찮아요..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그런가보네...얼마나 잔거야??>
<한.. 20~30분 정도?? 얼마 안주무셨어요..>
<잠깐 방 구경 좀 한다는게 침대에 앉으니까 졸음이 왔나봐..남의 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미안..>
<뭘요..밑에 밥 차려 놨어요..언능 인나서 밥 드세요..>
<그래..알았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던 나는 내 손을 당기는 느낌에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여전히 내 손과 선생님의 손이 마치 붙어버린 것 처럼 꼭 붙어 있었다.
<내가 언제 잡고 있었지...미안...잠결에 잡았나보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손을 놓는 선생님. 나는 그런 선생님의 모습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가볍게 웃음만 지었다.
<아..맞다..나 니 방에서 이상한거 발견했어..>
<이상한거요??>
<응.. 이거..침대 밑에 있더라..크크>
이게 뭐냐는 듯 웃으며 뭔가를 꺼내드는 선생님. 나는 그 손에 들려있는 무언가를 보고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저..저게..왜 저깄는 거야?? 분명히 경호 자식이 보고 가져갔을 텐데..언제 놓고 간거야?? 그리고 왜 하필 저기 있는 거냐고??
<소라 AV 콜렉션?? 이게 뭐야?? 크크크..>
<그..그거..그냥 잡진데...>
<아..그래?? 근데 무슨 잡지 길래 여자만 나와 있어?? 그것두 홀라당 벗은 여자만...>
<그..그게...>
선생님의 손에 들려있는 그 책의 표지에는 선생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교복을 걸친 듯 만 듯한 여자가 자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보란 듯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온통 일어네?? 혹시 일어 공부해??크크>
다 알면서 묻기는...우선 뺏자...그리고 나서 생각하자..
나는 빠른 움직임으로 스텝을 밟아 책으로 손을 뻗어갔다. 내 움직임을 알았던 것일까 그보다 빠르게 선생님의 손은 책을 뒤 편으로 감춰버렸고 내 손은 그저 허공만 갈라갔다.
<에이...안되지 이럼...>
<주..주세요..그거...>
<히히..갖고 싶으면 뺏어봐..>
귀엽게 웃으며 이리저리 장난치듯 손에 든 잡지를 흔드는 선생님. 나는 필사적으로 팔을 뻗어 잡지를 채 보려 했지만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피하는 선생님의 움직임에 좀처럼 뜻을 이루지 못햇다. 지쳤던것일까?? 열심히 손을 뻗던 나는 갑자기 중심을 잃고 넘어져 갔고 침대에 앉아 있던 선생님은 덮쳐오는 나를 미처 피하지 못한 채 같이 침대로 쓰러져 갔다.
아이고...뭐야..이거..어딨어 잡지...
필사의 의지로 잡지를 찾기 위해 손을 더듬거리던 나는 순간 무언가 잡히는 느낌에 옳다쿠나 하고 손에 힘을 줘 갔다.
뭉클..
잡지가..잡으면 뭉클했나?? 원래 바스락 소리가 나야 정상 아냐??
뭉클..뭉클..
두 번 세 번 손에 쥔 무언가를 마져 봐도 느껴지는 것은 떡 주무르는 것 같은 느낌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손에 잡힌 뭉클 거리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하하....저게 왜 내 손에..있냐..아니지..내 손이 왜 저기 저러고 있냐..
잡지를 향해 뻗은 손은 언제 올라갔는지 선생님의 가슴위로 올라가 부푼 젖가슴을 한 움큼 움켜주고 있었다.
<저기...선생님...이건..>
팍!!
순간 내 얼굴을 강타하는 무언가에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나는 눈을 감아야 했다.
<조용히 입 다물고.. 손 뗀 다음 빨딱 일어나...>
살기어린 선생님의 말에 아무 말 하지 않고 갓 들어온 신병처럼 번개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젠장..젠장..엿 같다...아니 가도 어디 글로 갔냐..
한동안 방안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 무릎만 꿇고 안절부절 앉아 있었다. 화나셨나?? 왜 무섭게 암말도 없냐..아이씨..다리 저려 죽겠네..
<가자!!밥 먹으러!!>
정적을 깨고 울리는 선생님의 밝은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흠칫 몸을 떨었다.
<네??>
<배고프니까 밥먹으러 가자고..밥차려 놨다메??>
<아...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멍하니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순간 걸음을 멈추고 등을 돌리는 선생님.
<그리고..이건 압수다..담임으로서 학생이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일은 차마 볼 수가 없구나..>
<그..그거!! 교육용인데...>
나도 몰래 튀어나온 말이었다. 미친...너 같으면 믿겠냐?? 그럼 자위는 예습이냐??
훗.
선생님도 내 말이 웃겼는지 픽하고 웃으신다.
<웃겼다..요번건.. 아무튼 독학은 안돼.. 잘못 배우면 큰일나거든..나중에 선생님이 제대로 가르쳐 줄께. 그때까지 이건 압수.>
어..어..그냥 가면 어쩌냐...그리고...가르쳐 준다니..뭘?? 그것도 직접??
아~~ 모르겠다..신경 끌란다..뭐 어떻게든 되겠지..밥이나 먹으러 가자..
근데...다리가 저려서 못 일어나겠다.. 젠장...
코에 침을 바른 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일으켜 세운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거실로 내려갔다.
오랜만의 휴일을 이용해 그동안 못 즐겼던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 비디오 가게를 찾았던 나는 결국 허탕만 친 채 투덜거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누나 회사 안 보내는 건데..
한번 더 한번 더를 외치며 계속 달라붙는 누나를 계약 파기라는 협박까지 해가며 쫓아 낸게 못내 아쉬운 기분이 드는 나였다. 하지만 어차피 지나간 일 후회 해봤자 소용 없었기에 나는 이내 아쉬움을 접었다.
근데..오늘 뭐하냐?? 오랜만에 집 안 일도 없는 한가한 날인데..잠깐 놀러나 갈까? 아니지..그것도 같이 갈 여자친구라도 있어야지..혼자가면 그게 무슨 궁상이야.. 그럼 애들이나 불러서 놀까?? 아니다 경호 그 자식은 오늘 대회라고 했고 딴 놈들은 아마 지들 여자친구랑 데이트나 하고 있을 테고.. 아~오랜만의 휴일 인데 이렇게 할 게 없냐..새삼 느끼는 거지만 한강혁 너 왜 이렇게 사냐?? 한심하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매일 매일을 죽을둥 살둥 발버둥 치며 휴일만을 기다리지만 막상 그때가 오면 할 게 없다.. 진짜 슬픈 인생이다..
나는 밀려들어 오는 한숨에 땅이 꺼져라 숨을 쉬며 눈앞의 돌멩이를 걷어 찼다.
발에 차인 돌멩이가 또르르 땅위를 굴러가고 그 돌을 따라 가던 내 시야에 하나 커플이 잡혔다.
뭐야..저 년놈들..길거리에서 연애질 하고 있는 거냐?? 지금 누구 염장 지르냐??
눈 앞의 커플은 명백히 거리 중앙에 서서 남들 보란 듯이 마주 서서 도란 도란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하얀 민소매 블라우스에 하늘색 주름진 치마를 입은 잘빠진 미녀와 의젓하고 허우대 좋은 사내. 누가 봐도 선남선녀의 이상적인 커플이었다. 참 이쁘고 잘생긴 것 끼리 논다..
근데 좀더 자세히 보니 웬지 커플이라고 하기엔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여자는 웃고는 있었지만 얼굴 가득 난처하다는 기색이 역력했고 남자는 그에 상관없다는 듯이 여자에게 끝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마치 추근덕 거리는 남자처럼.. 그리고 나의 시선이 남자를 떠나 여자에게 멈췄다.
근데..저 얼굴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인데...맞어...저 여자...
확실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여자였다. 근데 왜 저 여자가 여기 있지?? 이 동네 사나??
그리고 저 사람은 애인?? 내가 알기론 애인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서 있을 때 순간 여자의 고개가 내 쪽을 향했다. 내가 있는걸 알고 고개를 돌린지는 모르겠다. 그냥 우연히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고 여자 역시 내가 누군지 생각 하는 듯 잠시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날 아나?? 하긴.. 모를 리가 없지 근데..
그리고 이윽고 생각 났다는 듯 앗 하는 표정을 지는 그녀. 날 알아본 것 일까?? 그녀가 천천히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왜 이쪽으로 오냐...그냥 모른 척하고 가지...아이 씨..모르겠다 그냥 아는척이라도 하자..
<안녕하..>
거의 내 앞에 다다른 그녀를 향해 나는 인사를 하기 위해 허리를 숙이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그녀가 나의 행동을 저지하며 빠른 움직임으로 내 옆에 다가왔다. 그리고 재빠르게 내 팔에 팔짱을 끼고는 나에게 밀착했다. 순간 푹신한 감촉이 감긴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뭐..뭐야..이 시츄에이션은..??
<선생님....무슨..윽>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나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무슨 일 인지 물어보려 했지만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통증에 말을 삼켜야만 했다.
(잠깐....잠깐만 내가 하자는 대로 해줘..)
살며시 내 귓가에 울리는 달콤한 속삭임. 나는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이어 아까의 그 남자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멀리서 볼 때는 그냥 짐작만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확실히 잘 생겼다.. 깔끔하고.. 매너있게 생겼고... 확실히 남자는 남자인 내가 봐도 인기있게 생겼다 할 정도로 잘생긴 타입이었다. 근데..선생님이랑 무슨 관계지?? 좀 심각해보이는데..
<강주씨..이 사람은 누구죠??>
<아...이 사람이 좀 전에 제가 말한 제 애인이예요..>
애인?? 누가?? 내가?? 언제부터?? 뜬금없는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 보려던 나는 다시금 느껴지는 옆구리의 통증에 고개를 원위치 시켜갔다. 아이씨....좀 살살 좀 꼬집지.. 살 페이겠다..
<애인이라뇨...이 사람이요??>
선생님의 말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제서야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 보았다. 천천히 기분 나쁜 시선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던 사내는 갑자기 뭐가 우스운지 킥킥 대기 시작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아직도 잘 모르는 나였지만 그것이 나를 향한 비웃음이었다는 건 확실하게 느낄수 있었다. 이 자식 봐라.. 은근히 재수없네...다시 보니까 잘생기지도 않았네... 농약 먹은 족제비처럼 생겨가지고...
내 굳은 표정을 읽은 것일까,, 그 자식은 그제서야 웃음을 멈추고 선생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직도 웃긴지 얼굴엔 비웃음이 가득 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내 꼴이 지금 말이 아니긴 하다.. 대충 입고 나온 면 티에 집에서 나 입을 법한 줄무니 반바지.. 거기다 질질 끌고 나온 슬리퍼.. 감지도 않아 헝클어진 더벅머리.. 옆집 사는 백수 형이 봤다면 새로 들어 온 신입인지 알고 피시방 가자고 할 정도의 몰골이었다.
그래도 그렇지...사람을 대놓고 비웃네..이게 아직 인성교육이 덜 됐구만..
<강주씨... 제가 지금 당자 사귀자는 것도 아니고 같이 차나 한번 마시자는 건데...이렇게 까지 하시다니..좀 섭섭합니다..>
<이렇게 라뇨?? 전 엄연히 애인이 있는 사람이고 지금 애인이 바로 옆에 있어요.. 너무 한건 그쪽 아닌가요??>
<애인 이라뇨...이 사람이 애인 이라는 말입니까??>
<네!! 제 애인 이예요!>
<후후..거짓말을 하시는 건 좋은데 상대를 잘 고르셨어야죠..제가 충분히 납득 할 수 있게요..>
다시 한번 기분 나쁜 시선으로 나를 깔보듯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확실히 날 무시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열라 기분 더럽네...내가 이딴 자식한테 이런 꼴을 당해야 돼??
<어디서 이런 돼지도 않는 놈을 갔다 놓고는 애인이라고..>
분명히 들렸다.. 돼.먹.지.도.않,은.놈. 아...혈압 오른다... 그냥 한판 붙어??
짝!!
그때였다. 강한 따귀소리와 함께 그 사내의 얼굴이 확 돌아 간 것은.. 사내는 자기가 맞은 것이 믿을수가 없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내 옆에 있는 선생님을 바라 보았다.나 역시 눈앞의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 멍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 보았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무서운 얼굴로 눈 앞의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무례하군요!! 당신이 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죠??당신이 뭔데 겉모습만 보고 남을 판단하는 거냐고요?? 당신이 뭔데??!!>
마치 설교하듯 매섭게 남자를 질책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남자는 창피한 듯 얼굴을 붉게 물들여 갔다. 여자에게 맞은 것이 분하고 치욕스러운 듯 단정한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다.
쪽팔리지...나 같아도 그러겠다.. 길 거리에서 여자한테 뺨 맞았는데..
의외로 참을성이 있었던 것일까?? 아님 눈 앞의 미녀에게 차마 화를 낼수 없어서 였을까..
남자는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며 호흡을 가다듬어 갔다. 하긴 내봤자 지 얼굴에 침뱉기지..
<크윽...제가...좀 무례했던 것 같군요..사과 드리겠습니다.>
<사과는 저한테가 아니라 제 애인 한테 해야죠..>
<아..네...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죄송합니다...>
자식..인사를 할 려면 얼굴 좀 피고 해라..뭐 하인한테 인사하는 양반 놈도 아니고..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하는 거 티내냐??
확실히 사내의 얼굴은 나에게 사과한다는 것이 치욕스러운 듯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제가 실수한건 그렇다 치고.. 강주씨.. 저 솔직히 강주씨 좋아 합니다..아니 사랑 합니다!!>
<아직도..그런 소릴..>
<애인이 있다구요?? 옆에 저 사람이 애인이라고요?? 하지만 전 그 말 못믿겠습니다. 몇 주동안 강주 씨를 봐왔지만 저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걸 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한테도 강주씨한테 애인이 있다는 얘길 들어본적도 없고요..그래도 저 사람이 강주씨 애인 입니까??>
추궁하듯 물어보듯 그의 얼굴엔 확신의 빛이 뚜렷했다.
아주 조사를 단단히 해오셨네.. 그나 저나 어쩌나..우리 선생님 다 뽀록 나게 생겼네..
그냥 당신이 싫어요~~ 하면 될 거 가지고..왜 이렇게 하시나..머리만 아프게..
가끔가다 그런 여자 있다. 분명히 자기 맘에 들지 않는데도 확실히 말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기대를 갖게 만드는 사람..자기 딴에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라고 그러는데 웃기는 소리다. 감정이 더 커지기 전에 잘라 버리는게 그 사람에게 덜 상처를 주는 일이다. 그건 그냥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거나, 지금의 상황이 재밌어 즐기는 것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하니까..그리고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니까..
뭐 지금 선생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도 딴엔 남자가 쉽게 단념 할 수 있도록 생각해서 하는 일일 테니까..근데..문제는...왜 그 사이에 내가 껴야 하냐고..머리 아프게...
<그럼 어떻게 해야 믿으시겠어요?? 뭐 증명서이라도 떼다 드릴까요??>
그런게 있기나 한거야??
<그냥 전 사실을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강주씨의 진짜 애인이라면 전 이 자리에서 깨끗이 강주씨를 포기하겠습니다. 앞으로 귀찮게 한다거나 쫓아다닌 다거나 그런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정말이죠??>
<네..남자답게 포기 하겠습니다!!>
<그럼 똑똑히 보세요!! 이게 그 증거니까요!!>
뭘 보라는 거...읍!!
순간 내 고개가 홱 돌아가며 내 얼굴 위로 무언가가 덮쳐왔다. 그리고 동시에 입술에 느껴지는 촉촉한 느낌.. 누나의 입술과는 또 다른 부드러운 감촉이 내 입술을 타고 얼굴 전체로 퍼져 간다. 상큼한 딸기향이 코를 타고 흘러들어온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내 입술을 누르고 있던 부드러운 무언가가 사라지고 천천히 선생님의 얼굴이 떨어져갔다.
지...지금 뭐가 지나갔냐...?? 나는 내 입술을 범하고 당당하게 남자를 향해 외치는 선생님을 그저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어때요..뭐 더 보여줘야 할 게 남았나요??>
여기서 뭘 더 보여 주실라고 그러 소리를 해??
<아...아닙니다...이제...됐습니다..지금까지 귀찮게 한점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앞으로는 절대 귀찮게 하는 일 없을 겁니다.>
<당연 그래야죠..저도 다신 그쪽 보는 일 없었으면 하네요..>
의외로 잔인하네...우리 선생님..그런 말은 저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요..
<네...그리고...애인분께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아까의 무례..죄송합니다..>
<아..아뇨...그럴수도 있죠..뭐...하하...>
아까와는 다르게 진심어린 얼굴로 사과하는 남자의 모습에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그냥 확 불어버려?? 나 이 여자 몰라요 하고.. 아니다..그냥 보내는게 낫겠다. 맘에 없는 사람 붙잡고 늘어지는 것만큼 흉한 것도 없으니까..그냥 여기서 단념시키는게 남자를 위한 길일것이다.
<그럼..전 이만...>
힘 없이 등을 돌린 그는 터덜터덜 어깨를 축 늘어 뜨린 채 우리의 눈앞에서 멀어져 갔다.
아...좀 기분이 찝찝하네..그렇게 나쁜 놈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뭐..그건 그렇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선생님을 바라 보았다. 선생님은 아까의 남자가 다시오는 건 아닐까 내 팔짱을 꼭 킨 채 남자가 걸어간 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좀 놓지?? 팔뚝에서 뭉클거리는 게 느낌이 이상하잖아..
<저기...선생님...이제...팔..좀...>
<아!! 미안...미안해..>
그제서야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을 안 것일까.. 다급하게 팔을 빼며 얼굴을 숙이는 선생님은 거듭 나에게 사과했다.
<미안해..많이 놀랐지?? 갑자기 내가 그래서...>
<예...조금... 근데 저 남자는 누구예요??>
<아... 삼주 전에 선 본 남자.. 내가 맘에 든다고 사귀어 보자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막 쫓아 다녀.. 근데 앞으로는 안 그럴 것 같다.. 지금 저러고 가는 거 보니..>
당연하지...바로 눈 앞에서 보란 듯이 키스를 했는데...나 같아도 포기하겠다..
의외로 잔인했어..당신...
<근데..너무 심하셨던거 아니예요?? 따귀까지 때리시고...>
<아..그거.. 그건 맞아도 싸. 자기가 뭔데 자기 맘대로 남을 무시하고 깔보는 거야!!
그것도 우리 귀여운 제자를 그건 내가 절대 용서 못해!!>
<그래도...선생님이 좋아서 그런 것 같던데..나쁜 사람 같지도 않아 보였고..>
좀 재수가 없어서 그렇지...
<뭐..그런 것 같긴 한데 사람 마음이 자기 맘대로 되는 거겠니..그냥 싫으면 싫은 거지..안그래??>
<하긴..그렇죠..>
맞는 말이다..사람을 자기 의지대로 좋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아무리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아무리 그 사람이 나에게 잘 해준다고 해도 내가 아니면 아닌거니까..그건 누가 옆에서 부추기고 강요해도 어쩔수 없는거니까..뭐 그래서 사람이라는 게 재밌긴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과 전혀 예상치 못한 감정을 가지고 전혀 예상치 못한 삶을 사는 것 그게 인생의 묘미고 인생의 작은 즐거움이 아닐까??
<근데...기분 나빴어??>
<뭐가요??>
<아니...아까...그거...키...스...>
아이씨...쪽팔리게 그냥 넘어가지..왜 그런걸 물어 보시나?? 대답하기 곤란하게..
<그냥...그랬어요...>
<그냥 그랬어?? 어..이상하다..>
<뭐가요??>
<아니...나 같은 미인이랑 키스를 했는데 반응이 그냥 그랬어요가 다잖아...이상해...>
이거..은근히 공주병 있는 거 아냐?? 뭐 확실히 공주 취급 받을 만 하지만..
눈 앞의 이 여성 즉 우리 담팅이 이강주 선생님은 확실히 미인이라고 불릴 만큼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이다. 이쁜 여성이 가져야할 가장 큰 포인트인 큰 눈과 그 눈을 가득 메우는 호수 같은 검은 눈망울과 갸름한 얼굴.. 어깨까지 내려오는 세미롱의 갈색 머리는 세련된 선생님의 외모와 잘 어울렸고 가끔씩 웃을때 마다 보이는 귀여운 보조개는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키도 적당히 컸기에 몸매 역시 좋아 보였다. 한마디로 미인이라는 얘기다.
<농담이야..농담..그렇게 쳐다보니까 선생님 무안해질라고 한다...>
<아...죄송해요..>
<됐어.. 근데..어디 가던 길이야??>
<아.. 예..집에 가는 길이예요..비디오 빌릴 라고 나왔거든요..>
<그래?? 집이 여기서 가까운가 보네??>
<네..여기서 두 블록만 가면 되거든요..>
<그래??>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뭔가 고민하듯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중얼거리던 선생님은 갑자기 나를 보며 외쳤다.
<나두 가자!!>
<네??>
나는 내가 잘못 들은건 아닐까 다시 한번 되물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확실하게 대답하는 선생님.
<니 네집..나두 가자고!!>
<저희집이요??>
<응..니네집..>
<저희 집엔 왜..??>
<음...그냥 가정방문 겸해서 가는 거지..선생이 학생이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간다는 데 더 한 이유가 필요해??>
요즘에 가정 방문하는 학교 교사가 어딨냐고.. 무슨 학습지 해??재능 교육도 아니고..가정 방문은 무슨.. 뜬금없이...
<아니..그래도 그렇게 갑자기...>
<원래 모든 일은 갑자기 이루어지는 가야..이른바 불시 검문!! 가자!! 앞장서..어여...>
잡아 끌 듯 내 팔을 잡고 길을 재촉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어쩔수 없이 걸음을 옮겼다..뭐 혼자 휴일 보내는 것 보단 났겠지..
<아!! 그리고 집에 가기 전에 마트 좀 들렸다가자..>
<마트는 왜요??>
<남의 집에 가는데 뭐라도 사가지고 가야지..그냥 빈손으로 갈순 없잖아..실례되게..>
이렇게 갑자기 오는 것 자체가 실롑니다.
<괜찮은데...>
<아냐아냐..내가 안 괜찮아..암튼 어여 가자..>
놀이동산 놀러가자는 어린아이처럼 내 팔을 잡고 질질 끌고가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이내 떨떠름한 마음을 접었다. 뭐..그래!! 이쁜 선생님이 가정방문도 해준다는데 맛있는거나 만들어줘야겠다.
<선생님 뭐 좋아하세요??>
<나??그냥 이것 저것 다 잘 먹어..잡식성이거든..>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건요??>
<음...닭 종류??>
<아..그래요..>
<근데 그건 왜??>
<아뇨..그냥요..>
메뉴는 닭도리탕이 좋겠네..이따가 몰래 닭 한 마리 사야겠다.
마트 안은 주말이어서 그런지 상당히 어수선했다. 여기저기서 장을 보러 나온 아줌마들이 바구니를 들고 각 코너를 돌고 있었고 여기 저기서 세일이네 모네 하면서 시끄럽게 방송을 해대고 있었다. 마트로 들어간 우리는 물건을 담을 바구니를 들고 마트 안을 걷기 시작했다.
<저기..봐봐..시식 코너다.. 절루 잠깐만 가자..>
<네??저긴 왜요??>
<시식코너는 장 보기의 백미라고..몰라??>
그런 백미가 어딨냐?? 내 4년 동안 장을 봤지만 그런 말은 첨 듣는다.
나를 끌고 시식코너로 다가간 선생님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 벙글 거리며 이쑤시개를 들고 음식을 집어 먹었다. 마치 그 모습이 군것질하는 어린애 같아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참나..얘도 아니고..
<이봐요.. 새댁.. 이게 요번에 새로 나온 신상품이라우..어때 맛좋지??>
푸근한 인상을 가진 아줌마가 연신 시식 음식을 먹고 있는 선생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거 저한테 하신 말씀이예요??>
<그럼 여기 새댁 밖에 더 있어?? 아님 남편한테 새댁이라고 부를까??>
남편?? 새댁?? 설마 이 아줌마 지금 우릴 부부로 보는 건가??
<두 사람 부부 아냐??>
<그렇게 보여요??>
<응..딱 그렇게 보이는데..봐봐 사이좋게 손까지 잡고 있고..>
밑을 내려다 보니 아줌마의 말대로 선생님과 나는 다정하게 손을 잡은 채 나란히 서 있었다. 아까 선생님이 시식코너로 날 끌고 올 때 잡은 손이 었으리라.. 잡은 손을 보자 그제야 내 손을 감싼 여린 손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져 왔다. 에이씨..어쩐지 손에 좀 땀나더라...나는 천천히 선생님의 손에 잡힌 내 손을 빼내려고 했다. 순간 내 손을 잡은 선생님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나는 빼내려던 손을 다시금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랑이라도 하듯 잡은 손을 올리는 선생님.
<아주머니..보는 눈 있으시네요~어때요 우리 신랑 잘 생겼죠??>
어이어이..이봐요..아깐 애인이라고 하더니 이번엔 신랑 입니까.. 몇 시간 만에 애인 생기고 부인 생기고 참..나중엔 애까지 낳겠네요..
<음..괜찮긴 한데...아무리 봐도 여자가 아깝네..아까워..>
얼굴 가득 정말 아까워 정말 아까워를 연발하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아줌마에게 나는 약간의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아니..아깝기는 누가 아까워...나는 파릇 파릇한 영계고..이쪽은 이제 막 저물어져 가는 꽃인데..이 아줌마 보는 눈이 영 꽝이 시네...
<어이구..신랑은 너무 그렇게 기분 나빠하지 말아..마누라 이쁘다는 소리니까..>
<그래..자기야..내가 이뻐서 그런건데..자기가 이해해..>
기분 안나쁘게 생겼습니까?? 그리고 이 여자는 왜 한술 더 떠서 이래?? 당신이 더 얄밉소..
<그래..마누라 이쁘니 얼마나 좋겠어..남자는 모름지기 이쁜 마누라 얻어서 알콩달콩 살아야돼..>
<그럼요~ 자기도 들었지?? 자긴 복 받은 거래..>
아...더이상 못들어 주겠다.. 여기 있다간 나중에 애기 몇 명 날 껀 지 2세 얘기까지 나오겠다..
<저..그럼 많이 파세요..>
<저기..그냥 가게??>
<예.. 별로 땡기지가 않네요..>
나는 내 손을 감싸고 있던 선생님의 손을 살며시 뿌리치고는 시식코너를 걸어 나왔다. 그러자 뒤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었으니..
<남편이 화 났나 보네..>
<그런가 보네요.. 좀 잘 삐지거든요...죄송해요 담에 사러 올께요..그럼 많이 파세요..>
그냥 여기서 내빼 버려?? 어차피 우리집이 어딘지도 모를 테니까 찾아오지도 못 할테고..
아니다..월요일날 학교에서 또 볼 텐데 뭐..아이구..내 팔자야..어떻게 된게 내 주위에는 저런 여자 밖에 없냐..
<화났어..자기??>
언제 왔는지 내 옆에 바짝 다가온 선생님은 나를 보며 킥킥 거렸다.
<그만하세요..>
<왜그래 자기??>
<그만 하라구요..>
<알았어..자!기!야!!크크크..>
<진짜!! 재밌어요?? 그렇게 제자 놀려 먹는게??>
<몰랐는데..은근히 재밌다...자주 해 봐야겠는데..>
진짜 이걸 때릴수도 없고..선생만 아니면 진짜..어후...
<근데 어떻게 너랑 나랑 부부로 봤을까?? 우리가 잘 어울리나??>
<모르죠..저 아줌마가 그냥 상술로 한 말인지..>
<에이~설마...>
<선생님이 아직 이 세계를 잘 몰라서 그러시는데 이 세계는 잠시 정신만 놓고 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물건 얹어서 팔아버리는 그런 세계라고요..가차 없어요 진짜..>
<너 너무 부정적이다..>
당신이 한번 시장 바닥에서 한 4년 굴러먹어봐..이렇게 안되나...
<암튼 담부턴 그런 장난 치지 마세요..>
<왜?? 기분 나빴어??>
<좋을 리가 없잖아요..멀쩡한 총각이 유부남이 됐는데..누구 혼삿길 망칠라고 작정 한 것두 아니고..>
<혼삿길 막히면 내가 책임 지면 돼지..>
<사양합니다..>
<엥?? 무슨 소리야?? 아까 아줌마가 한 말 못 들었어?? 선생님 같은 마누라 얻으면 복받는 거라고 했잖아..>
<전 연상은 싫어요...>
<참나...가리는 것도 많다..>
<아무거나 먹으면 체하거든요..>
<뭐야?? 내가 아무거나 라는 얘기야??>
<뭐 좋으실대로 생각 하세요..>
뚱한 표정을 짓는 선생님을 뒤로 하고 나는 능청스런 얼굴로 걸어 나갔다.
크크크..한방 먹였다..그러니까 날 너무 물로 보지 말라구.. 이래뵈도 우리 아줌마랑 평생을 개싸움만 하고 살아온 난데.. 어디서 까부시나..좀 더 배워 오세요..
어느덧 무사히 장보기가 끝나고 우리는 마트를 나왔다. 마트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기에 우리는 몇 분 안 가 금방 집에 도착했다.
찰칵.
열쇠를 따고 들어가자 아까 나왔던 그대로의 거실이 눈에 들어온다.
나 빼고 들어올 사람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자..누추하지만 들어오세요..여기가 저희 집입니다..>
<그럼..실례하겠습니다..>
나의 안내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들어와 힐을 벗은 선생님은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거실로 발을 들였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 사온 음식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어갔다.
<장 보느라고 힘드셨을 텐데 저기 쇼파에 앉아서 좀 쉬고 계세요..뭐 마실거라도 드릴까요??>
<응..아무거나 줘...>
처음 온 제자의 집이 낯설어서인가?? 쇼파에 앉아서도 선생님은 어색한 몸짓으로 집안을 둘러 보고 있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컵에 따라 선생님에게 가져갔다.
<여기...주스 좀 드세요..>
<응..고마워..근데 집이 생각보다 크네??>
<네..옛날에 부모님이랑 같이 살던 집이 거든요..그래서 그래요..>
<아..이 큰집에서 누나랑만 사는 거야??>
<뭐..그렇죠...>
<음...근데 집이 상당히 이쁘다..>
<그죠?? 저희 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집이예요..>
<아버지가??>
<네..건축가 셨거든요..어머니한테 프로포즈 할 때 선물하신 집이예요..>
<그래??멋있네..너희 아버지..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집을 짓는다라..아무나 못하는 건데..>
<네..아버지가 좀 그런 구석이 있으세요..어머니를 끔찍이 좋아 하셨거든요..>
<그래...그럼 너도 나중에 커서 너희 아버지처럼 부인 한테 끔찍하게 잘하겠네??>
<뭐..그건 두고 봐야죠..>
<하긴...아까 하는 거 봐선 끔찍하게 잘하기는커녕 끔찍하게 못하겠더라...>
어이어이...이런 식으로 아까의 복수를 하나...선생이란 사람이 의외로 치사한데??
주위를 둘러보던 선생님의 시선이 벽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에 머물렀다.
<저 분들이야?? 너희 부모님들??><네..>
<좋으신 분들 같으셔...>
<맞아요..좋으신 분들이세요..어머니는 다정하시고 아버지는 인자하시고..>
<많이..좋아했나보네?? 부모님을..>
<뭐..그렇죠..저한텐 세상에서 젤 소중한 분들이시니까..>
이해가 간다는 듯 쥬스 한 모금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던 선생님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쥬스를 내려놓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다.
<저기...저번엔 선생님이 미안했어..>
<뭐가요??>
<저번에..상담에서...미쳐 모르고 물어본거..명색이 담임인데..그것도 상담하면서 그런것도 모르고 하다니...기분 나빴지??>
아...그러고 보니 그런 적이 있었구나.. 어젠가 그젠가..상담할 때..까먹고 있었는데..
<자책하지 마세요...전 신경 안 쓰니까요..그리고 선생님은 잘 할라고 하시다 그러신 거잖아요..쉽지 않잖아요.. 아이들 생활기록부며 성적이며 성격이며 외우는 거..>
<어떻게 알았어?? 내가 외우면서 한거??>
<상담 중에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었잖아요..원래 자료 같은 거 펴놓고 하는게 정상인데..선생님 은 그렇지 않으셨어요..물 흐르듯이 마치 제 자신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차분하게 하셨으니까..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웬만한 사전 지식 없이는 힘들거든요..>
확실히 그렇다. 반 애들 이름 다 외우는 것도 귀찮고 힘든 일 일 텐데 거기다 생활기록부며 성격, 성적 등 그런 세세한 것 까지 외우기는 정말 웬만한 노력과 정성 없이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전혀 막힘없이 부드럽게 상담을 리드해 갔고 나 역시도 그때 편안하게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런 노력만으로도 눈앞의 우리 담팅이가 얼마나 좋은 선생인지 그리고 우리를 위해 애쓰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뭐 마무리에서 조금 삐끗하긴 했지만 그건 어쩌다가 생긴 실수니까 넘어가고..
<후...그럼 뭐해...어설프게 하다가 제자한테 상처만 줬는데...>
<상처 안줬어요...뭐..좀 기분나쁜게 있었다면 모를까..>
<기분 나쁜거??>
<음..말해도 되요??>
<응.. 듣고 싶어...>
<음...그 눈빛이요...지금도 약간씩 보이고 있는 그 눈빛..너무 불쌍해...어린 나이에..저렇게 되다니...불쌍해...어떻게 하지..라는 동정 섞인 눈빛이요..>
<내가 그랬어??>
<네...그것도 상당히 심하게..>
<아..미안해..나도 모르게 그랬나봐..>
<아뇨..이해해요...선생님 입장에선 당연한 거니까..>
<그래도...미안...>
정말 미안한 듯 어색하게 날 보며 웃는 선생님은 웬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그러게..내가 말하기 싫댔잖아..그렇게 맘 아픈 얼굴로 쳐다보지 말라고..
<교사라는 직업이 정말 쉬운 직업만은 아닌 것 같아..>
<많이... 힘드세요??>
<제자 앞에서 이런 말하기 창피하지만 좀 그렇네.. 부임 한지 얼마 안되서 담임까지 맡아서 그런지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힘에 부치는 것도 많고..얘들한테 좋은 선생인지도 모르겠고...>
<선생님은 잘하고 계시잖아요...열심히 얘들 챙겨주시고..친해지려고 노력도 하시고..>
<그거야..얘들이 워낙 착하니까..그렇게 되는 거고..모르겠어..내가 좋은 선생인지..>
<음...다른 건 몰라도 애들은 선생님 정말 좋아해요..그럼 좋은 선생 아닌가요??>
<치..빈말은..>
<진짜예요..얼굴 이쁘다고...>
<그게 뭐야.. 뭐..그런 거라면 이해가 가긴 가네..내가 좀 한 미모 하긴 하지..역시 우리 반 애들이 보는 눈은 있어..>
정말로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떫은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은근히 병있는 것 같다. 공주병... 좀 겸손할 줄 알아라...담부터 칭찬하기가 싫어진다..
나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시간을 보니 이제 4시를 약간 넘었다. 음..그럼 밥이나 차려 볼까??
<선생님..배 고프시죠??>
<응?? 아냐 괜찮아..>
꼬르륵~~
갑자기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소리에 둘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소리 근원지인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눈 앞에서는 민망했는지 얼굴을 붉힌 선생님이 턱을 긁적이며 어색한 표정으로 귀엽게 웃고 있었다.
<하하...점심을 안 먹었더니.....>
<기다리세요 금방 밥차려 드릴께요.>
<응..>
많이 창피한가 보네...말끝까지 흐리고.. 귀여워 귀여워..
부엌으로 들어간 나는 본격적으로 요리에 들어갔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난 요리할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든다는 것, 또 그 누군가가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행복해하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나 역시도 행복해지는 것 모든 것이 나에겐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근데..나 이러다가 진짜 가정주부 아니지..가정주부(家庭主夫) 되는 거 아냐?? 뭐..그것도 나름대로 즐겁겠지..
얼마안가 요리가 완성되고 나는 선생님을 부르기 위해 거실로 갔지만 쇼파 위에 앉아있던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셨지?? 가방은 여깄는걸 보니까 집에 가신 것 같지는 않고..
<선생님~~선생님~~ 밥 다 됐어요...>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었다.
혹시 2층에 계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자 내 눈에 열려져 있는 문이 보였다. 저긴 내 방인데..
<선생님~ 혹시 여기,,, 계시네....>
방안으로 들어가자 내 침대위에 누워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의 장보기가 피곤했던 것이었는지 아님 침대에 누워서 맘이 편해져서 였는지 선생님은 세상 모르게 편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밥 차려 달라더니 배고픈 것 도 모르고 자고 있네.. 근데..여긴 언제 올라 온거야??
나는 침대의 머리맡에 앉아 아기처럼 자고 있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갈색의 부드러운 머리가 아름답게 침대위로 흐트러져 있었고, 하늘색 치마 밑으로 가늘고 뻗은 긴 다리가 가지런히 모여져있다. 숨 쉴 때마다 단추께의 레이스가 달린 민소매 블라우스로 덮여있는 아름다운 가슴이 한번씩 한번씩 아래위로 올라갔다 내려온다. 참 이쁜 여자는 자는 것도 이쁘다.. 이러니까 못생긴 것들이 이쁜 여자만 보면 죽일라고 그러지..
근데...너무 무방비 한거 아냐?? 아무리 제자라지만 남자 침대에서 이렇게 나 잡아 잡슈 하고 자고 있는건..
그리고 그때 눈 가득 옷 위로 드러나 풍만한 가슴의 굴곡이 들어왔다. 누워 있었지만 선생님의 가슴은 그 멋진 형태를 유지한 채 매력적인 모양을 여실히 뽐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천천히 그곳에 손을 뻗어갔다.
부스럭...
갑작스레 뒤척이는 움직임에 나는 급히 뻗은 손을 뒤로 거두며 놀란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지만 잠결이었는지 감긴 눈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정신 차리자..넌 변태가 아냐 변태가 아냐..그래 정신 차리자...안되겠다 우선 이 여자부터 깨우자..
<저..선생님 선생님.. 일어나세요..밥 다됐어요..선생님...>
어깨를 흔들며 불러 보지만 깊이 잠들었는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자기 집 인줄아나... 잘려면 숙박비나 내고 자라고..
<선생님..선생님..>
순간 어깨를 흔들던 내 손을 선생님의 하얀 손이 잡아왔다. 나는 놀란 나머지 손을 빼보려 했지만 선생님은 가녀린 손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내 손을 꼭 쥔 채 놓아주질 않았다.
<가지마...제발...>
마치 떠나가는 누군가를 붙잡고 슬퍼하는 사람처럼, 멀어지는 누군가에게 애원하는 사람처럼 선생님은 그렇게 슬픈 목소리로 내 손을 꼭 잡은 채 중얼 거렸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당황하고 있던 나는 선생님의 감긴 두 눈을 타고 한줄기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분명 그것은 눈물이었다.
<제발..제발...나만 두고 가지마...>
뭐가 그리 슬픈걸까?? 뭐가 그리 아픈걸까?? 마치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아파서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가지 말란 말만 되풀이하는 선생님. 그 아픔이 슬픔이 꼭 잡은 손을 타고 나의 가슴까지 닿아 내게 전해져 온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선생님의 눈물로 젖은 눈가를 닦어갔다. 의식하고 한 일은 아니었다. 언제나 처럼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내 손이 선생님의 뽀얀 볼을 부드럽게 쓰다 듬어갔다.
<아무데도 안가요..아무데도..그냥 여기.. 여기 있을께요..>
나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것일까?? 조금씩 선생님의 애닲은 중얼거림은 천천히 잦아 들어갔고 이내 다시 세상모르는 아이처럼 잠들어 갔다. 내 손 만은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잡은 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깐 몸을 뒤척이던 선생님은 천천히 감은 눈을 떠갔다.
<일어나셨어요??>
<아...미안...내가 깜박 잠이 들었나보네..>
<아뇨..괜찮아요..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그런가보네...얼마나 잔거야??>
<한.. 20~30분 정도?? 얼마 안주무셨어요..>
<잠깐 방 구경 좀 한다는게 침대에 앉으니까 졸음이 왔나봐..남의 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미안..>
<뭘요..밑에 밥 차려 놨어요..언능 인나서 밥 드세요..>
<그래..알았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던 나는 내 손을 당기는 느낌에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여전히 내 손과 선생님의 손이 마치 붙어버린 것 처럼 꼭 붙어 있었다.
<내가 언제 잡고 있었지...미안...잠결에 잡았나보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손을 놓는 선생님. 나는 그런 선생님의 모습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가볍게 웃음만 지었다.
<아..맞다..나 니 방에서 이상한거 발견했어..>
<이상한거요??>
<응.. 이거..침대 밑에 있더라..크크>
이게 뭐냐는 듯 웃으며 뭔가를 꺼내드는 선생님. 나는 그 손에 들려있는 무언가를 보고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저..저게..왜 저깄는 거야?? 분명히 경호 자식이 보고 가져갔을 텐데..언제 놓고 간거야?? 그리고 왜 하필 저기 있는 거냐고??
<소라 AV 콜렉션?? 이게 뭐야?? 크크크..>
<그..그거..그냥 잡진데...>
<아..그래?? 근데 무슨 잡지 길래 여자만 나와 있어?? 그것두 홀라당 벗은 여자만...>
<그..그게...>
선생님의 손에 들려있는 그 책의 표지에는 선생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교복을 걸친 듯 만 듯한 여자가 자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보란 듯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온통 일어네?? 혹시 일어 공부해??크크>
다 알면서 묻기는...우선 뺏자...그리고 나서 생각하자..
나는 빠른 움직임으로 스텝을 밟아 책으로 손을 뻗어갔다. 내 움직임을 알았던 것일까 그보다 빠르게 선생님의 손은 책을 뒤 편으로 감춰버렸고 내 손은 그저 허공만 갈라갔다.
<에이...안되지 이럼...>
<주..주세요..그거...>
<히히..갖고 싶으면 뺏어봐..>
귀엽게 웃으며 이리저리 장난치듯 손에 든 잡지를 흔드는 선생님. 나는 필사적으로 팔을 뻗어 잡지를 채 보려 했지만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피하는 선생님의 움직임에 좀처럼 뜻을 이루지 못햇다. 지쳤던것일까?? 열심히 손을 뻗던 나는 갑자기 중심을 잃고 넘어져 갔고 침대에 앉아 있던 선생님은 덮쳐오는 나를 미처 피하지 못한 채 같이 침대로 쓰러져 갔다.
아이고...뭐야..이거..어딨어 잡지...
필사의 의지로 잡지를 찾기 위해 손을 더듬거리던 나는 순간 무언가 잡히는 느낌에 옳다쿠나 하고 손에 힘을 줘 갔다.
뭉클..
잡지가..잡으면 뭉클했나?? 원래 바스락 소리가 나야 정상 아냐??
뭉클..뭉클..
두 번 세 번 손에 쥔 무언가를 마져 봐도 느껴지는 것은 떡 주무르는 것 같은 느낌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손에 잡힌 뭉클 거리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하하....저게 왜 내 손에..있냐..아니지..내 손이 왜 저기 저러고 있냐..
잡지를 향해 뻗은 손은 언제 올라갔는지 선생님의 가슴위로 올라가 부푼 젖가슴을 한 움큼 움켜주고 있었다.
<저기...선생님...이건..>
팍!!
순간 내 얼굴을 강타하는 무언가에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나는 눈을 감아야 했다.
<조용히 입 다물고.. 손 뗀 다음 빨딱 일어나...>
살기어린 선생님의 말에 아무 말 하지 않고 갓 들어온 신병처럼 번개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젠장..젠장..엿 같다...아니 가도 어디 글로 갔냐..
한동안 방안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 무릎만 꿇고 안절부절 앉아 있었다. 화나셨나?? 왜 무섭게 암말도 없냐..아이씨..다리 저려 죽겠네..
<가자!!밥 먹으러!!>
정적을 깨고 울리는 선생님의 밝은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흠칫 몸을 떨었다.
<네??>
<배고프니까 밥먹으러 가자고..밥차려 놨다메??>
<아...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멍하니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순간 걸음을 멈추고 등을 돌리는 선생님.
<그리고..이건 압수다..담임으로서 학생이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일은 차마 볼 수가 없구나..>
<그..그거!! 교육용인데...>
나도 몰래 튀어나온 말이었다. 미친...너 같으면 믿겠냐?? 그럼 자위는 예습이냐??
훗.
선생님도 내 말이 웃겼는지 픽하고 웃으신다.
<웃겼다..요번건.. 아무튼 독학은 안돼.. 잘못 배우면 큰일나거든..나중에 선생님이 제대로 가르쳐 줄께. 그때까지 이건 압수.>
어..어..그냥 가면 어쩌냐...그리고...가르쳐 준다니..뭘?? 그것도 직접??
아~~ 모르겠다..신경 끌란다..뭐 어떻게든 되겠지..밥이나 먹으러 가자..
근데...다리가 저려서 못 일어나겠다.. 젠장...
코에 침을 바른 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일으켜 세운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거실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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