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폭우(狂風暴雨) - 7부 9장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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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폭우(狂風暴雨) - 7부 9장

- 9 -



수환은 경과를 듣고 나니 중훈의 일이 궁금해진다.



“현성아, 중훈이는?”



현성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녀석들의 각본을 그대로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새롭게 삶을 시작하려는 그녀에게 그것을 너무 큰 충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마음 같아선 이미 몸을 버린 자신과 은영을 포기하더라도 수환만은 중훈을 위해, 아니 새 삶을 살아가려하는 그녀를 위해서 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잔챙이 악당들의 간계는 너무도 치밀한 듯하다. 녀석들과 한 패라던 윤정마저도 속이고 환락의 도구로 만들어 버린 녀석들에게서 자신들이 헤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그나마 중훈이 체육관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면 다행이지만, 이 녀석들의 모양을 보아하니 그런 것들은 사전에 차단되었을 것이다. 자신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온다면, 막힌 시내에서 녀석들을 쫓아올 방도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여기는 자신이 다시 찾아 오라해도 힘들만치 큰길에서 떨어진 폐가. 녀석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 것을 대답으로 대신했다.

그러는 사이 사육신 놈들은 번갈아 가며 윤정과 은영을 괴롭히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 가하면, 어디서 난 비디오카메라인지도 가져와 촬영을 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게, 그녀들의 얼굴과 치부는 고스란히 들어나게…….



한편 관장은 의외의 대결 결과에 넋이 반 쯤 빠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분위기가 이상하여 살펴보니 중훈은 호걸을 따라간 다음이다. 주변의 정황을 들어보니 호걸이란 녀석이 뭔가 꼼수를 부린 것 같아 뒤를 쫒아 나가보지만 이미 중훈은 보이지 않았다.



중훈이 폐가에 도착한 것은 30분 뒤. 호걸이 도착하여 경적을 울리자 폐가는 잠시 조용해졌다. 호걸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더니 비웃으며 중훈을 안내한다.



“들어가시죠? 완빤찌!”



중훈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문을 열자 방 안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보기 민망할 정도가 폭행을 당한 흔적이 역력한 윤정과 은영, 겁에 질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수환, 그리고 얼굴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현성에 까지 이르자 그의 눈에서 불이 튄다. 그가 방 안으로 달려들자 양 옆에서 각목이 날아든다. 이미 예상을 했던 듯 중훈은 가볍게 각목들을 피했다. 주먹을 뻗으려 했지만, 천호와의 격투에서 부은 손을 당장에 쓰기는 힘들 것 같다. 그는 파괴력 때문에 좀처럼 쓰지 않는 발을 날려 두 녀석을 벽에 쳐 박았다. 다시 수환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사육신 중 한 녀석이 그녀의 목에 날이 퍼런 사시미 칼을 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뒤따라 들어온 호걸이 입을 열었다.



“왜 좀 더 해보시지 그랬어? 그럼 간만에 깍두기 국물 구경하는 건데, 하핫! 근데 정우야, 뭐하냐?”



저돌적인 중훈의 공격에 잠시 당황했던 정우는 고갯짓으로 해 나머지 녀석들에게 중훈을 구타할 것을 명했다. 그리고서는 중훈에게 한마디 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반항하면 알지?”



잠시 후 중훈도 현성과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게 되었다. 악당들은 자신들의 피날레를 준비하고 있었다. 구석에 있던 수환을 잡아 일으켜 호걸의 앞으로 데려온 것이다. 호걸의 손이 그녀의 가녀린 얼굴을 따라 턱을 지나가자 그녀는 사시나무 떨 듯 움칫거리며 겨우 말을 꺼낸다.



“얘들아 이러면 안 되잖아? 제발 이러지마! 우리 입 다물 테니까 빨리 중훈이랑 현성이 병원 보내게 우리 좀 풀어줘.”



그녀는 호걸의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 그러나 호걸의 반응은 당연하다는 듯 냉담했다.



“웃기고 있네. 너희들 아무데도 못 가.”



수환은 다시 용기를 내었다.



“그래? 그럼 나 혼자 남을게. 쟤들은 보내줘. 응? 제발 부탁이야.”



그녀의 짧은 경험으로도 이 악당들의 마지막 유희가 자신에게 이르러 있음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자신의 삶은 지난 번 중훈을 처음 만난 그날 이후 없었던 것으로 생각해왔던 그녀로서는 지금의 삶은 중훈에게 빚진 것이었다. 아니 그 빚이 아니더라도 중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녀였다. 그러나 수환이 모르는 것은 그들의 저면에 깔려있는 복수심이었다. 녀석들은 그녀를 깔아뭉개고 싶은 것이 아니라 중훈의 여자를 깔아뭉개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지랄. 오라버니가 좋은 구경 시켜줄 테니깐, 우리 이쁜이 가만히 좀 있어줄래?”



호걸은 그녀의 옷을 찢어발겼다. 수환은 두려웠지만 은영과 호걸의 경우를 지켜본 후라 반항을 하지는 않았다. 반항해 보았자 중훈에게는 혹독한 구타가, 자신에게도 그에 못지않을 결과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눈물로 호걸에게 호소를 할 뿐이다.

그 때쯤 중훈도 구타의 충격에서 벗어나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의 애절한 부탁을 지켜보는 중훈은 자신이 한심스러워 지고 있었다. 수환을 구하지 못한 자신이 싫었고, 강남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웬만한 이름난 고교 주먹들과 완타치를 쪼개고도 한 번의 패배도 없었던 그가 여자의, 그것도 자신을 지킬 힘도 없는 여자의, 무엇보다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애원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잔챙이들에게 있어 칼이란 위협용이라는 것을 현성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사람을 찔러보지 않은 칼은 무용지물이라는 것도. 그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각목 세례를 받아 몸이 곤죽이 되긴 했지만 다행이 부러진 곳은 없고, 힘을 쓰기에는 크게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등 뒤로 묶인 밧줄인데 아무리 힘을 써 봐도 젖혀지지 않는다. 일본 포르노 매니아인 호걸이 아예 풀지도 못하게 등 뒤로 묶인 손과 발을 함께 묶어 버린 까닭이다. 그가 현성에게 다가가 밧줄을 풀려고 했으나 그를 감시하던 정우가 각목질을 하며 둘을 떼어 놓았다.



그 때였다. 수환의 비명이 폐가 안을 메웠다. 아무리 반항하지 않으려 해도 처녀성의 파괴는 충격이었을 터. 호걸은 수환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앙상한 그녀의 가슴을 짓이기더니 거칠게 그녀의 모든 것을 학대하였다. 녀석의 비정상적으로 큰 물건이 그녀의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본 중훈의 눈에 핏발이 서더니 결국은 실핏줄이 터지며 피눈물이 흘렀다. 입을 벌려도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몸을 바둥거려봤자 돌아오는 것은 몽둥이 뿐이다. 그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반항을 하건만 무엇 하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그녀가 당하는 것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연약한 그녀가 호걸을 거쳐 사육신과 나머지들의 욕심을 채워주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중훈은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잔챙이들은 여전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고, 자작 포르노를 찍기 여념이 없었다.



두 시간의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간 후 호걸 일당이 사라지자 겨우 몸을 추스른 윤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헝겊더미에서 용케 자신의 몸을 가리던 옷가지들은 찾아낸 그녀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폐가를 빠져나가 버렸다. 자신의 복수는 성공했지만 호걸패거리에게 배신까지 당한 그녀는 이 자리에 있어 봤자 좋은 꼴을 못 본다. 평생 이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아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윤정이 사라지고 얼마 후 은영과 중훈이 거의 동시에 정신을 차렸다. 아니 중훈은 눈은 뜨고 있었으나 정신적인 공황상태에서 겨우 의식의 끈을 잡은 것이다. 은영은 먼저 자신의 옷을 입고 수환의 옷을 입혔다. 그리고 나서는 현성과 중훈의 밧줄을 풀어주었다. 거동이 가능해진 중훈의 눈에 호걸이 남긴 듯 한 쪽지가 보인다.



‘이 봐! 완빤찌! 덕분에 잘 놀았고 좋은 사진이나 포르노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말은 친근하지만 속뜻은 이 일을 까발리면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겠다는 협박. 중훈은 분노로 몸을 떨지만 그의 등을 두드리는 은영을 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그는 수환의 상태를 살폈다. 겨우 생의 끈을 잡은 그녀가 이런 모진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수환은 세 명 째가 지나고서는 이미 혼절해 버린 상태였었다. 호걸들은 윤정에게서 수환의 상세를 들었음에도 중훈에 대한 증오에, 일그러진 복수심에 그렇게 수환을 유린한 것일 테다.

중훈이 수환을 업고, 은영이 현성을 부축해 겨우 병원에 도착한 것이 늦은 저녁께 였다. 현성이야 그렇다 치고 수환이 문제였다. 현성은 병원비만 정리하면 끝이지만 수환의 경우는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게다가 여자의 몸이다. 녀석은 고민을 했다. 부모님이나 누구하나 말할 곳이 없는 녀석이 연락할 데라곤 관장 밖에 없다.

관장은 안 그래도 중훈을 걱정하고 있었던 터라 음성 메시지를 넣은 지 20분이 되지 않아 응급실로 달려왔다. 중훈은 솔직하게 모든 정황을 얘기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녀석은 알고 있었다. 관장은 몇 가지를 더 묻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중훈을 쳐다보던 관장이 말했다.



“우선은 수환이네에 연락을 취하자꾸나. 그리고 경찰에 신고는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나도 고민이구나. 신고를 하자니 여자애들 때문에 힘들 것 같고, 안 하자니 그런 쓰레기들을 그냥 놔둔다고 생각하니 열 받고…….”



중훈은 어이가 없다.



“관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신고를 안 하다뇨?”



관장도 호걸들의 악행에 분노가 치솟는지 몸을 격하게 떨면서도 세상물정을 모르는 중훈을 타일러야 했다. 그는 성폭행이 친고죄라는 것을 설명해줘야 했다. 친고죄의 설명은 들은 중훈은 입이 다물어졌고, 관장에게서 수사과정이라든지 현장 검증의 과정을 들은 중훈의 표정은 침울해져만 갔다. 비단 호걸일당이 찍은 비디오와 사진이 아니더라도 유교 사상에 찌든 대한민국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의 입장은 법적인 처우를 무시하더라도 갱생의 여지를 두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납치, 집단폭행 등의 특가법의 적용을 받는다하여도 초범(初犯)인 녀석들의 형량은 길어봤자 5년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에 중훈은 말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잠시 후 중훈은 관장에게 수환의 부모에게 연락을 취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일단 오늘은 이렇게 병원에서 지내고 내일 수환을 돌려보내자는 것이다. 다행이 수환은 반항을 크게 하지 않아 성폭행 당한 흔적 이외에는 큰 외상도 거의 없는 상태라 그의 말을 좆아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나머지들도 지금 상태로 집에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은 몰골이다. 일단 수환이 정신을 차리면 그녀를 달래는 것이 급선무이니 친구들과 같이 있는 것이 좋을 듯하다. 관장도 솔직히 수환의 부모에게 무엇이라 말할까 고민을 했었다. 사실을 말할지 돌려서 말할지. 하지만 중훈의 눈이 예사롭지 않게 빛나는 것을 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에 중훈을 말리고도 싶었지만, 자신이 그 입장이었다면 똑같을 것 같다. 중훈은 은영에게 부탁을 해 수환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수환이 은영의 집에서 자고 간다는 거짓말을 하게 했다. 다행이 수환네에서 자주 병문안을 갔었던 은영의 점수가 후했던 것인지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관장이 보호자로 서명을 하고 그들을 2인용 병실 두 개를 얻어 들어가 몸을 누일 수 있었다. 변두리 병원이라 자리가 좀 있었던 모양이다. 중훈과 현성은 어느 정도 주변이 정리되자 죽은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심한 구타를 당했으니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용한 것이다. 은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새벽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야 했다. 수환이 겨우 정신을 차려서는 비명을 질러댄 까닭이다. 잠에서 깨어 그녀를 달래기를 몇 번, 아침이 되어서야 조금 진정이 된 수환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중훈과 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몰랐다.



12시가 지나서야 중훈이 정신을 차렸다. 중훈이 옆 병실에 들어서자 수환이 수척해진 얼굴로 녀석을 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숙여 눈물을 흘렸다. 중훈이 마음이 착잡해지며 은영을 불러냈다. 관장과 현성에게 잠시 수환을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중훈은 은영을 데리고 인근 백화점으로 갔다. 거기서 중훈은 수환이 입었던 것과 똑같은 옷가지를 골라냈다. 수환이 입은 옷은 은영이 함께 쇼핑하며 코디 해준 것이라 상표까지도 똑같은 것을 살 수 있었다. 은영의 옷도 새로 구입해준 그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중훈은 은영에게 부탁을 했다. 며칠간만 수환과 함께 있어달라고……. 은영은 수환의 일이 따지고 보면 자신과도 무관하지 않기에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수환의 집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임기응변은 은영의 몫임을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녀가 그 정도로 눈치 없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중훈은 알고 있었다.

그녀들을 수환의 집으로 보내고 난 후 중훈은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하나씩 찾아가 요절을 내고 싶지만, 사진과 비디오가 문제였다. 아니 한 두 녀석이 그랬다면 현성과 자신이 하나씩 처리할 수 있을 테지만, 놈들의 숫자는 여덟 명이나 된다. 아버지에게 부탁을 하면 자신보다 확실한 일처리를 해주실 덧 같지만, 어차피 복수는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단순히 받았던 것을 돌려주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 할 것 같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것은 굳이 좋은 일에만 국한되는 표현이 아니었다. 녀석은 말로 주는 것이 아닌 가마로, 섬으로 되돌려주고 싶었다. 아이큐 150이 넘는 녀석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은영이 수환의 집에서 나온 것은 그 일이 있고 일주일 뒤의 일이다. 그 중간에 수환은 한 번도 중훈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고 은영이 돌아간 후에도 그랬다. 하지만 중훈은 묵묵히 운동을 하며 그녀의 연락을 기다릴 뿐이다. 그녀의 연락이 온 것은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보충수업과 운동을 마치고 들어가는 녀석의 호주머니에서 삐삐가 울렸다. 호출된 번호는 지난 날 수환이 입원해있던 병실이다. 중훈은 공중전화로 달려갔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의 그녀는 몇 달 전의 병약한 모습 그대로인 것이 여름 동안 맘고생이 여간 아니었을 것. 그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그래도 운신하는 데는 지장이 없어 보이는 것이 조금이나마 그의 마음을 놓이게 하였다.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녀석을 끌고 병원 앞마당을 찾았고, 가벼운 포옹과 짧은 입맞춤으로 녀석의 걱정거리를 날려주었다. 이후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병실로 돌아왔을 때는 11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수환의 어머니는 이미 간병인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수환은 중훈을 복도 건너의 빈 병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잠시 저어하던 중훈은 그곳에서 그녀의 가녀린 육체가 그렇게도 뜨겁게 타오를 수 있다는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그녀를 - 맨살의 그녀를 처음 안던 날 얼떨떨한 기분으로 잠이 겨우 든 녀석이 다음 날 아침에 처음으로 받은 연락은 그녀가 옥상에서 투신했다는 소식이었다. 힘겹게 살아온 그녀는 그와의 마지막 밤을 끝으로 스스로 생을 접었던 것이다. 사체 부검 결과 그녀의 몸에서 발견된 정사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그 상대가 중훈이라는 판명 덕에 다혈질인 그녀의 오라비가 중훈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며 날뛰는 턱에 중훈은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녀석은 현성의 자취방에서 수환의 장례식 동안 술을 마셨다. 2박3일을 술을 마신 그는 먼발치에서 그녀의 뼛가루가 날리는 것을 보고서야 집에 들어 올 수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녀석의 책상에는 수환이 보낸 편지와 소포가 놓여있었다.



‘중훈아 안녕? 이렇게 말하긴 지금 이글을 읽고 있는 너에게 할 말이 아닌가? 헤헤... 나도 조금 악취미가 있나봐? 사람 놀래키는 악취미!!!

어젠 좀 놀랐지? 그냥 나 너에게 한번 안기고 싶었어. 그러면 내가 깨끗해질 것도 같고, 그냥 너에게 빗진 게 있는데 그냥, 그래서... 하무튼 그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니까... 너도 좋아서 한 거라고 나도 알고 있을게.

그리고 실은 그날 나 너랑 헤어지려고 했었다. 그냥 내가 미워져서, 못된 내가 미워서 니 옆에 가기 싫었었는데... 그냥 네가 다쳤다는 얘기에 따라나선 내가 잘못이지. 맘 먹은 데로 방에 들어가 몇 시간 울면 해결될 문제였는데... 뭐 다 지난 일인데 뭐... 그러니까 너도 잊어줬으면 해.

참 같이 보낸 소포가 궁금하지? 그거 내 일기장이야. 학교를 자주 가지 못하니까 할 수 있는 숙제가 그것 말곤 없었거든... 솔직히 다른 공부도 하나도 기억 안 나니깐 헤헤... 그런데 내가 가기 전에 중훈이에게 줄 수 있는 게 몇 가지나 있을지 생각해봤는데 별로 없더라구. 그래서 이거라도 주면 네가 가끔씩은 나 기억해줄라나 싶어서 말야. 너 만나기전에는 잠을 자면 하루씩 이틀씩 잠이 들어버려서 꿈이라는 걸 꿔 본 적이 없었는데 너 만나고 부터는 꿈이라는 걸 꿀 수 가 있었거든. 그래서 한 번씩 네가 꿈에 보이는 날은 다음 날 꼭 일기장에 꿈 이야기를 적어두곤 했었어. 그리고 꿈에서 너랑 있었던 일은 거의 다 해봤고 어제 일만 남았었는데 그것도 인제 해결됐고... 그러니 이 일기장이 땅에 묻히기보다는 중훈이가 가져주는 게 맞겠지?

간단하게 적고 끝낼려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네? 이만 줄일게...

잘 자고 나중에 봐. 행복해야 해.



악취미를 가진 못된 기집애가...’



두서없는 글이지만, 그가 그녀의 배려를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복수도 원하지 않았고, 그저 중훈이 자신이 없던 일상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편지지 여기저기에 늘어 붙은 눈물자국이 중훈의 시야에 포착되었지만 그녀의 문체는 친한 친구에게 하듯 밝음 그 자체였다. 그의 눈에서 흘린 눈물이 편지지의 그녀의 것과 합해지면서 중훈의 억장은 무너지는 것 같다.



“수환아~~!! 엉엉~~!!”



눈물 사이로 비집고 나온 조용하고도 피 서린 절규가 그의 방안을 가득 메웠다.





P.S. : 7장은 10부로 생각했었는데 차마 불쌍한 수환이 당하는 장면까지는 쓸 수가 없어 9부로 마감할 수밖에 없네요.

그리고 중훈과의 정사씬도 과감히 삭제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응응응을 기다리시지만 차마 수환을 - 비록 소설 속의 한 캐릭이지만- 야설의 도마에 올리기에는 제가 아직 때가 덜 탄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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