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교환 - 32부
캐빈의 자지를 보지에 담은 채 아래쪽의 캐빈을 바라보는 희정의 얼굴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희정을 올린 채 보지안에 화려한 폭팔을 시키고는 그대로 숨을 고른 두 사람은 서로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질투나지 않았어?”
“당연하지요, 아무렇지도 않았음 바보게요?”
“하하, 그래서 더욱 뜨거웠나?”
“아니예요, 좋았어요. 너무나...사랑해요..캐빈..”
“영원히 사랑해. 나의 여인....희정.”
“당신을 만나 참 다행이예요, 행복해요.”
“나도 당신을 만난것이 내 일생의 제일 크고 소중한 일이야. 영원히 당신을 지켜줄게.”
따뜻한 키스를 나눈 후 희정이 천천히 일어서자 캐빈의 정액이 희정의 허벅지를 주르르 타고 흘렀다.
“어머..”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손으로 보지를 막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는 희정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의 미소를 얼굴 가득히 짓고 있는 캐빈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희정이 들어간 화장실로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서 아마도 둘이는 애정 어린 손길로 서로의 몸을 닦아주면서 또 다른 애정 행각을 지속할것 같았다.
“언니는 좋겠다.”
어젯밤의 섹스로 피곤해진 희정이 늦잠을 자고 점심때가 돼서야 밖으로 나오자 따사로운 햇빛을 쬐고 있던 수현이 말했다.
“좋아 보이니?”
“치, 나도 곧 남자 생길거야. 혹시나 빌려달라고 할 생각하지마.”
“호호, 그래 알았어, 혹시 남자 생겼니?”
“아직은 아니야, 나도 형부같은 사람 꼭 만날거야.”
수현의 눈에서 의지가 보였다.
“형부처럼 큰 사람?”
“뭐야. 놀리는거지?”
수현이 희정에게 눈을 흘기면서 이야기를 하자 희정은 즐거운 듯 크게 웃었다.
“그래, 어서 꼭 좋은 사람 만나.”
“음, 그런데 당분간은 안될것 같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좋지 않니?”
“좋긴 좋은데...왠지...”
희정은 수현의 마음을 알것 같았다.
군중 속의 고독..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스타들이 겪는 필수적인 과정일 것이다.
열광적인 팬들의 사랑 뒤에 혼자 남겨질 때 느끼는 쓸쓸함...
그 자신으로 보지 않고 거의 신적인 존재로 취급되기에 앞에서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커다란 환호 다음에 오는 고독과 외로움은 더욱 큰 것이다.
희정은 조용히 수현을 안아 주었다.
“어머, 너!!”
가만히 희정의 품에 안겨있던 수현이 희정의 젖꼭지를 비틀고 엉덩이를 한차례 때린 후에 수영장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호호, 바보. 나 잡아봐라..”
가만히 웃음을 지으면서 바라보기만 하는 희정을 보면서 재미가 없는 듯 수현이 다시 돌아왔다.
“언니, 요즘 바빠?”
“왜?”
“나랑 중국 안 갈래?”
“중국?”
“응, 이번에 커다란 공연이 있거든, 그런데 혼자 가려니 좀 쓸쓸해서, 그리고 쳉 언니도 언니가 보고 싶다고 자주 그러고..”
“그래, 다음주쯤 한번 가 볼까? 마침 투자 문제로 가 볼일도 있고하니..”
영호가 차 문을 열어주자 유희가 웃음을 지으면서 내렸다.
“삼촌, 고마워요.”
그 날 이후로 유희는 영호의 이름을 자주 꺼내는 훈이 때문에 영호를 집으로 초대했고 그 이후 영호는 자주 유희의 집에 들렸다.
그리고 요즘 가끔 희정이 집에서 나오지 않는 날이나 일찍 귀가를 하는 날은 유희의 레스토랑이 끝나는 시간까지 기다려 유희의 집에 들려 훈이와 한동안 놀아주곤 했다.
유희의 문을 열어준 영호는 주차를 시킨 후 아파트의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희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갑자기 여러 사람들의 그림자가 나타나 영호의 앞길을 막았다.
영호는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
남자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뭐지? 나한테 용건이 있나?”
영호의 목소리가 날카로왔다. 유희가 있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 졌다.
“음, 말이 반토막이군, 역시 듣던데로 싸가지가 없군.”
“시비를 걸려는 건가? 원하는게 뭐지?”
“그래, 어차피 길게 말할 필요가 없지. 곱게 말할 때 우릴 따라와라. 그렇지 않으면...”
영호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영호씨...”
유희의 걱정어린 목소리가 영호의 마음을 더욱 심난하게 했다.
“따라가겠다.”
“여자는 건들지 마라,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여전히 팔에 기브스를 한 채 남자들 가운데에서 유희와 영호를 번갈아 보면서 눈에 독기를 품은 형민이 기철의 한마디에 포기한 듯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곧 다시 고개를 든 형민의 눈에선 영호를 향한 강한 적의가 담겨 있었다.
“유희씨, 들어가 있어요. 전화 할께요.”
유희를 향해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영호가 말했다.
“가지.”
기철이 앞장서자 영호가 그 뒤를 순순히 따라갔다.
기철이 영호를 데려간 곳은 예전에 영호가 형민의 팔을 부러트린 바로 그곳이었다.
그 장소를 정한 사람은 분명 복수에 불타는 형민이었으리라...
사람들의 숫자로 인해 좁고 나무들이 무성한 그곳을 지나 쓰레기 소각장 옆의 넓은 공터로 간 형민들은 영호가 원하던 장소까지 오자 영호를 빙 둘러쌌다.
대략 십여명의 체격 좋은 남자들이 영호를 포위라도 하듯 사방을 막아서자 그다지 큰 체격이 아닌 영호는 기철들의 생각에 별거 아닌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냥 꿇어라, 괜히 힘쓰지 말고.”
“............”
영호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싼 패거리들을 면면히 살펴 보았다.
험한 인상들의 떡대들만 모아 온것 같았다.
영호가 말이 없자 기철이 쓴웃음을 지었다.
“꼭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는 놈이 있지.”
기철은 말과 함께 바로 앞쪽에서 인상을 팍팍 쓰고 있던 상태라는 놈의 들을 살짝 밀었다.
상태는 고등학교때 학교전 패싸움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를 전전하다가 기철에게 한번 호되게 당하고 밑으로 들어왔다.
아직 20살의 나이지만 몸이 날래고 힘이 좋아 기철이 아끼는 부하중의 하나였다.
상태는 영호를 보면서 앞으로 나섰다.
곱상한 모습의 영호는 상태에게 있어 해장거리도 되지 않을것 같았다.
“금방 끝내자.”
주먹을 불끈 쥔 상태가 영호를 향해 한 손을 펴서 덤비라는 듯 손짓을 했다.
하지만 영호는 가만히 손을 늘어뜨린 채 편하게 서 있었다.
상태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포기한 것인지 모를 영호의 행동이 김이 빠졌다.
상태는 천천히 영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두 걸음 앞에서 멈춘 후 다시 손을 들어 주먹을 움켜쥐고 자세를 잡았다.
“덤벼, 덤벼.”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태는 천천히 자리에 주저 앉았다.
기철등은 갑자기 상태가 쓰러지자 웅성거렸다.
“뭐야... 저 자식. 왜 그래?”
하지만 아무도 상태가 쓰러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바닥에 널부러진 상태의 코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온것만 보일 뿐이었다.
“저 새끼가 때린것 같은데...너 봤냐?”
“아니, 한발자국 앞으로 간것 밖에 못 봤는데..팔은 그대로 였는데...”
기철은 갑자기 섬뜩했다.
뒤쪽에 있던 형민을 바라보았다.
형민은 기철의 시선을 피해 딴 짓을 했다.
할수 없다는 듯이 기철은 다른 놈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둘...나가봐.”
태훈과 형섭은 고향 친구였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맹세한 사이로 평소도 항상 같이 했다.
심지어 빠구리를 뛸때도...
태훈과 형섭이 영호의 좌우로 자리를 잡고 섰다.
그리고 동시에 영호를 향해 달려 들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 기철등을 향해 시범이라도 보이듯 영호의 몸이 움직였다.
하지만 단 한 동작이었다.
왼쪽 다리로 꽂꽂히 선 채 몸을 옆으로 돌려 태훈을 향해 옆차기를 하는 동시에 오른 손을 뻗었다.
그러자 달려오던 두 사람이 영호의 주먹과 발에 목 부분이 걸린 채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손과 발을 거둔 영호의 행동에 스스륵 바닥을 향해 몸이 가라앉았다.
기철의 눈이 찟어질 듯 부릅떠졌다.
흡사 두 놈이 영호의 발과 주먹에 정확히 맞추어 목을 들이민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두 놈이 바보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기철로서는 영호가 만든 작품이라 생각되었지만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무슨 중국 무협 영화도 아니고 그래도 싸움이라면 한 가닥씩 하는 녀석들이 저렇게 어처구니 없이 무너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철은 상태가 쓰러진 이후 문득 들었던 불안감이 가중되는 것을 느꼈다.
다시 뒤를 돌아 형민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바로 뒤에 있던 형민이 어느새 뒤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쓴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였다.
“한꺼번에 달려 들어라.”
기철의 말에 우왕좌왕하던 나머지 예닐곱명이 영호를 향해 달려 들었고 기철은 곧 태어나 처음보는 장면으 목격할 수 있었다.
여러명의 떡대들이 우르르 달려드는 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영호가 몸을 움직였다.
꺼지듯 아래로 가라앉은 영호의 몸이 다리 하나를 길게 뻗은 채 한바퀴를 돌자 한꺼번에 두 남자가 공중으로 약간 떳다가 땅바닥에 쳐 박혔다.
다시 솟듯 일어선 영호의 몸이 한번 더 회전을 하면서 뻗은 다리가 허공을 향해 유선형의 원을 그렸고 영호의 발에 이마를 스친 다른 한 녀석이 그대로 주저 앉았다.
우르르 몰려 가던 놈들이 주춤했다.
앞쪽의 세명이 숨 한번 쉴 정도의 시간에 쓰러진 모습에 몰려가던 모습 그대로 제 자리에 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세명이 쓰러진 사실보다 남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호였다.
영호의 움직임은 말로 하면 길지만 우아하지만 두 동작의 움직임은 흡사 사람의 동작을 촬영한 후 두배의 속도로 돌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철은 무엇인가 잘못 됬다는 것을 알았다.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기철이 알고 있는 한 그 누구도 이 남자와 싸울만한 사람은 없었다.
웬만하면 수를 믿고 덤벼 보기라도 하겠는데 이건 아니었다.
존경심마저 들었다.
“휴...”
한숨을 내쉬면서 장작처럼 뻗뻗하게 서 있는 부하들의 틈을 비집고 앞으로 섰다.
“뭐라고 할 말이 없군요.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습니다. 저희의 상대가 아니군요.”
기철의 말에도 영호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기철은 침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속이 시커멓게 타는 듯했다.
“비켜.”
영호가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기철이 자기도 모르게 몸을 한쪽으로 비켜 섰다.
나머지 남자들도 주춤주춤 옆으로 갈라 섰다.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던 영호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형민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예전에 자신이 방심했고 설사 그렇지 않았더라도 기철의 힘이면 충분히 영호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런 후에 자신과 똑같이, 아니 양쪽팔 모두를 꺽어놓을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생각대로 되어지지 않자 형민은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형민의 뛰를 모습을 본 영호가 역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철이나 다른 건달들의 눈에는 단순한 뛰기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올림픽의 세단뛰기 선수처럼 한 발자국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게다가 다리를 움직이는 속도는 더욱 빨랐다.
몇발자국 뛰지 않았고 형민보다 늦게 뛰기 시작했는데도 어느새 형민의 앞을 가로 막고 섰다.
그러나 형민은 그 뒤에 있던 영호가 그렇게 앞으로 다가올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흡사 영호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그렇게 돌진해 갔다.
영호의 손이 둥근 원을 그리자 형민도 같이 원을 그렸다.
사람의 몸이 허공에서 원을 그리면서 한바퀴 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형민은 덤블링하는 기계체조 선수와 같은 모습으로 공중제비를 했다.
그리고 형민이 공중에 떠 있는 동안 영호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살짝 형민의 오금을 잡는 듯 했고 형민이 땅에 쳐 박혔다.
이번에는 다리였다.
영호의 마지막 움직임이 형민의 다리를 잡아 몸의 움직임과는 다른 방향으로 다리가 움직이록 했고 그 결과로 다리가 펴진채로 자신의 몸무게와 떨어지는 속도를 감당해야만 했다.
기철과 남자들의 표정이 찡그려지면서 옆으로 돌려졌다.
차마 볼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 그리고 순간 ‘빠각’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 고통의 깊이를 상상하기 싫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으로 갈렸다.
“아아....악..”
형민의 고통에 찬 비명이 두 번째로 공터에 메아리쳤다.
영호는 형민에게 다가갔다.
형민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 차 있었고 다가오는 영호의 모습을 보면서 귀신이라도 본 듯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뒤로 기어 물어났다.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 주세요. 제발...기철형 도와줘요. 제발..”
형민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영호의 발이 형민의 입을 걷어 찼다.
형민은 입안이 온통 허물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영호는 형민을 잠시 쳐다보더니 걸음을 옮겨 기철에게로 갔다.
기철은 다가오는 영호를 바라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는 애써 힘을 주어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섰다.
기철에게 다가온 영호는 잠시 기철을 바라보았다.
“이 일은 없던 일로 하겠다. 하지만 여자에게 손을 댄다면 널 내가 찾아갈 것이다.”
“알았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것이오.”
기철이 나지막한 목소리에 굳은 맹세를 담았다.
기철의 표정을 보면서 그 눈에 찬 결의를 읽은 듯 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의 치료는 알아서 해 주시오, 비용이 필요하다면 연락하시오.”
“아닙니다.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영호는 애써 만류하는 기철의 손에 명함 한 장을 쥐어주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기철은 손에 들린 명함에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기철도 들어본 듯한 IVC라는 회사의 이름과 총무과 남궁영호라는 이름, 그리고 사무실 번호와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냥 직장인이란 말인가..............”
영호가 눈에서 사라지고 난 뒤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던 기철은 손에 든 명함이 아주 큰 보물이라도 되듯이 조심스럽게 품 속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영호가 사라진 그 곳을 쳐다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영호는 나무들 사이를 걸어 다시 유희의 아파트로 향했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했다.
과연 저들을 믿을 수 있을까...
저들이 유희에게 손을 다시 뻗친다면 과연 내가 한 행동은 잘 한 일일까. 오히려 유희에게 해가 되는 일은 아닐까....
하지만 영호의 생각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아파트의 코너를 돌아 유희 아파트의 현관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고 그 여인 역시 영호를 보고는 한달음에 뛰어왔다.
그리고 날듯이 영호에게 안겼다.
“영호씨...흑흑...”
이미 한참 운듯 유희의 눈은 퉁퉁 불어 있었다.
영호는 가만히 유희를 안은 채 등을 토닥토닥 두들여 줬다.
잠시 후 울음을 그친 유희가 영호의 품을 벗어나 영호를 살폈다.
“어디...다친데...는..없나요?”
영호는 두 팔을 들고 다리를 굴러 전혀 다친데 없는 모습을 확인시켜 줬다.
“네, 멀쩡합니다.”
그러자 오히려 유희가 이상하다는 듯 영호를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겁이 날만큼 험상궂고 덩치가 큰 남자들과 함께 간 영호가 멀쩡한게 오히려 이상했다.
“하지만....그 남자들은...”
“하하, 다른 사람과 착각했나 봅니다. 조금 몇가지 물어 보더니 그냥 보내주더군요.”
“아..그랬군요...하지만 그 중 한 남자는...”
“아, 맞다. 그 남자가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했고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영호의 말이 반신반의한 유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 영호가 무사히 들어온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유희는 영호가 남자들에 의해 끌려간 후에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느꼈다.
단순히 안절부절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영호에 대한 걱정에 패닉에 빠질 만큼 정신이 빠진 자신을 보고 나서야 영호에 대한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훈이가 혼자서 기다리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아파트 앞에서 서성거리면서 온통 영호의 걱정에 빠져 있던 것과 영호가 나타나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면서 한달음에 영호에게 달려와 안겨 펑펑 울었던 것...
어느새 남궁영호라는 이름의 이 남자가 자신의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실 그런 감정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혼녀에 자식딸린 여자, 그리고 열 살이나 많은 것들로 인해 억지로 영호에 대한 감정을 그 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런 고민들로 인해 영호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어디에 그런 대담함이 숨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파트로 들어가는 동안 영호의 팔을 꼭 안고 놓지 않았다.
“어..엄마? 아저씨..”
훈이는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현관으로 달려 나왔다.
문이 열리고 영호의 한쪽팔을 꼭 끌어 앉고 있던 유희가 영호의 팔을 슬쩍 놓는 것을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이제 왔어. 아저씨랑..같이..”
유희는 웬지 겸연쩍었지만 당당해지기로 했다.
유희가 영호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그리고 영호의 손가락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집어넣어 깍지를 끼어 단단하게 움켜 잡았다.
그런 유희의 모습을 본 훈이가 입을 크게 벌리면서 두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얼라리 꼴라리, 얼라리 꼴라리..”
생각지도 못한 훈이의 반응에 두 사람은 크게 웃었다.
그리고 영호가 유희의 손을 놓고 훈이를 공중으로 번쩍 들은 후 꼭 품에 안았다.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유희는 무엇보다 중요한 훈이와의 면담을 갖었고 반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어린 유희의 말에 반해 훈이는 아빠가 생긴거에 대해 너무너무 좋아했다.
훈이와의 면담을 성공으로 끝낸 유희는 거리낌 없이 이제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우선 유희는 영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삿짐 센터를 불러 영호의 짐을 모두 집으로 옮기도록 했다.
하지만 딸랑 옷 몇 개와 세면도구가 전부인 영호의 짐을 본 유희는 희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좀 잠깐 만나줄 수 있나요? 영호씨는 데리고 나오시지 마시고요.”
희정은 갑자기 걸려 온 유희의 전화에 당황했지만 유희가 간절한 어조로 말을 하자 거절할 수 없었고 거절할 생각도 없었다.
유희는 왠지 정이 가는 타입이었다.
희정을 만난 유희는 간결하고 확실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고 그런 유희를 희정이 꼭 끌어 안아 주었다.
“유희씨, 영호씨 참 좋은 사람이야. 비록 지금 갖은 것은 없어도 성실하고 아주 착한 사람이고... 꼭 유희씨를 행복하게 해 줄거야.”
“희정씨... 아니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래, 유희야. 내가 언니가 되어 줄게.”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유희가 약간 부운 눈으로 희정을 쳐다보았다.
“이젠 웃자, 다 잘 될거야.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해.”
“고마와요, 언니.”
다시 유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우씨..정말 그럴거야? 좋은날 왜 울어.. 바보같이. 우리 이러지 말고 나가자.”
자신의 팔을 잡아 끌고 밖으로 나가는 희정에게 어디로 가냐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 유희를 보면서 희정이 말했다.
“남편꺼 챙겨야 할거 아냐.”
“아...”
영호의 이삿짐을 보면서 가슴 아팠던 이야기를 잊지 않은 희정의 마음씀씀이에 유흐는 다시 한번 감동했다.
“내가 사줄게, 내 부하니까. 호호.”
“아니예요, 아직 정식 부부는 아니지만 제가 챙길래요.”
희정은 영호의 것을 스스로 챙기고 싶어하는 유희의 마음을 읽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럼 난 내 남편꺼나 사지.. 뭐.”
집에 돌아 온 유희는 이혼 후 비어 있던 한쪽 옷장을 하나하나 채우기 시작했다.
여러벌의 양복과, 셔츠. 그리고 속옷과 잠옷까지...
한참을 그렇게 정리하던 유희가 마지막으로 칫솔 꽃이에 세 개의 칫솔을 새로 꽃았다.
칫솔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엄마, 아빠, 훈.’
희정을 올린 채 보지안에 화려한 폭팔을 시키고는 그대로 숨을 고른 두 사람은 서로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질투나지 않았어?”
“당연하지요, 아무렇지도 않았음 바보게요?”
“하하, 그래서 더욱 뜨거웠나?”
“아니예요, 좋았어요. 너무나...사랑해요..캐빈..”
“영원히 사랑해. 나의 여인....희정.”
“당신을 만나 참 다행이예요, 행복해요.”
“나도 당신을 만난것이 내 일생의 제일 크고 소중한 일이야. 영원히 당신을 지켜줄게.”
따뜻한 키스를 나눈 후 희정이 천천히 일어서자 캐빈의 정액이 희정의 허벅지를 주르르 타고 흘렀다.
“어머..”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손으로 보지를 막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는 희정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의 미소를 얼굴 가득히 짓고 있는 캐빈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희정이 들어간 화장실로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서 아마도 둘이는 애정 어린 손길로 서로의 몸을 닦아주면서 또 다른 애정 행각을 지속할것 같았다.
“언니는 좋겠다.”
어젯밤의 섹스로 피곤해진 희정이 늦잠을 자고 점심때가 돼서야 밖으로 나오자 따사로운 햇빛을 쬐고 있던 수현이 말했다.
“좋아 보이니?”
“치, 나도 곧 남자 생길거야. 혹시나 빌려달라고 할 생각하지마.”
“호호, 그래 알았어, 혹시 남자 생겼니?”
“아직은 아니야, 나도 형부같은 사람 꼭 만날거야.”
수현의 눈에서 의지가 보였다.
“형부처럼 큰 사람?”
“뭐야. 놀리는거지?”
수현이 희정에게 눈을 흘기면서 이야기를 하자 희정은 즐거운 듯 크게 웃었다.
“그래, 어서 꼭 좋은 사람 만나.”
“음, 그런데 당분간은 안될것 같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좋지 않니?”
“좋긴 좋은데...왠지...”
희정은 수현의 마음을 알것 같았다.
군중 속의 고독..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스타들이 겪는 필수적인 과정일 것이다.
열광적인 팬들의 사랑 뒤에 혼자 남겨질 때 느끼는 쓸쓸함...
그 자신으로 보지 않고 거의 신적인 존재로 취급되기에 앞에서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커다란 환호 다음에 오는 고독과 외로움은 더욱 큰 것이다.
희정은 조용히 수현을 안아 주었다.
“어머, 너!!”
가만히 희정의 품에 안겨있던 수현이 희정의 젖꼭지를 비틀고 엉덩이를 한차례 때린 후에 수영장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호호, 바보. 나 잡아봐라..”
가만히 웃음을 지으면서 바라보기만 하는 희정을 보면서 재미가 없는 듯 수현이 다시 돌아왔다.
“언니, 요즘 바빠?”
“왜?”
“나랑 중국 안 갈래?”
“중국?”
“응, 이번에 커다란 공연이 있거든, 그런데 혼자 가려니 좀 쓸쓸해서, 그리고 쳉 언니도 언니가 보고 싶다고 자주 그러고..”
“그래, 다음주쯤 한번 가 볼까? 마침 투자 문제로 가 볼일도 있고하니..”
영호가 차 문을 열어주자 유희가 웃음을 지으면서 내렸다.
“삼촌, 고마워요.”
그 날 이후로 유희는 영호의 이름을 자주 꺼내는 훈이 때문에 영호를 집으로 초대했고 그 이후 영호는 자주 유희의 집에 들렸다.
그리고 요즘 가끔 희정이 집에서 나오지 않는 날이나 일찍 귀가를 하는 날은 유희의 레스토랑이 끝나는 시간까지 기다려 유희의 집에 들려 훈이와 한동안 놀아주곤 했다.
유희의 문을 열어준 영호는 주차를 시킨 후 아파트의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희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갑자기 여러 사람들의 그림자가 나타나 영호의 앞길을 막았다.
영호는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
남자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뭐지? 나한테 용건이 있나?”
영호의 목소리가 날카로왔다. 유희가 있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 졌다.
“음, 말이 반토막이군, 역시 듣던데로 싸가지가 없군.”
“시비를 걸려는 건가? 원하는게 뭐지?”
“그래, 어차피 길게 말할 필요가 없지. 곱게 말할 때 우릴 따라와라. 그렇지 않으면...”
영호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영호씨...”
유희의 걱정어린 목소리가 영호의 마음을 더욱 심난하게 했다.
“따라가겠다.”
“여자는 건들지 마라,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여전히 팔에 기브스를 한 채 남자들 가운데에서 유희와 영호를 번갈아 보면서 눈에 독기를 품은 형민이 기철의 한마디에 포기한 듯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곧 다시 고개를 든 형민의 눈에선 영호를 향한 강한 적의가 담겨 있었다.
“유희씨, 들어가 있어요. 전화 할께요.”
유희를 향해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영호가 말했다.
“가지.”
기철이 앞장서자 영호가 그 뒤를 순순히 따라갔다.
기철이 영호를 데려간 곳은 예전에 영호가 형민의 팔을 부러트린 바로 그곳이었다.
그 장소를 정한 사람은 분명 복수에 불타는 형민이었으리라...
사람들의 숫자로 인해 좁고 나무들이 무성한 그곳을 지나 쓰레기 소각장 옆의 넓은 공터로 간 형민들은 영호가 원하던 장소까지 오자 영호를 빙 둘러쌌다.
대략 십여명의 체격 좋은 남자들이 영호를 포위라도 하듯 사방을 막아서자 그다지 큰 체격이 아닌 영호는 기철들의 생각에 별거 아닌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냥 꿇어라, 괜히 힘쓰지 말고.”
“............”
영호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싼 패거리들을 면면히 살펴 보았다.
험한 인상들의 떡대들만 모아 온것 같았다.
영호가 말이 없자 기철이 쓴웃음을 지었다.
“꼭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는 놈이 있지.”
기철은 말과 함께 바로 앞쪽에서 인상을 팍팍 쓰고 있던 상태라는 놈의 들을 살짝 밀었다.
상태는 고등학교때 학교전 패싸움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거리를 전전하다가 기철에게 한번 호되게 당하고 밑으로 들어왔다.
아직 20살의 나이지만 몸이 날래고 힘이 좋아 기철이 아끼는 부하중의 하나였다.
상태는 영호를 보면서 앞으로 나섰다.
곱상한 모습의 영호는 상태에게 있어 해장거리도 되지 않을것 같았다.
“금방 끝내자.”
주먹을 불끈 쥔 상태가 영호를 향해 한 손을 펴서 덤비라는 듯 손짓을 했다.
하지만 영호는 가만히 손을 늘어뜨린 채 편하게 서 있었다.
상태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포기한 것인지 모를 영호의 행동이 김이 빠졌다.
상태는 천천히 영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두 걸음 앞에서 멈춘 후 다시 손을 들어 주먹을 움켜쥐고 자세를 잡았다.
“덤벼, 덤벼.”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태는 천천히 자리에 주저 앉았다.
기철등은 갑자기 상태가 쓰러지자 웅성거렸다.
“뭐야... 저 자식. 왜 그래?”
하지만 아무도 상태가 쓰러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바닥에 널부러진 상태의 코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온것만 보일 뿐이었다.
“저 새끼가 때린것 같은데...너 봤냐?”
“아니, 한발자국 앞으로 간것 밖에 못 봤는데..팔은 그대로 였는데...”
기철은 갑자기 섬뜩했다.
뒤쪽에 있던 형민을 바라보았다.
형민은 기철의 시선을 피해 딴 짓을 했다.
할수 없다는 듯이 기철은 다른 놈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둘...나가봐.”
태훈과 형섭은 고향 친구였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맹세한 사이로 평소도 항상 같이 했다.
심지어 빠구리를 뛸때도...
태훈과 형섭이 영호의 좌우로 자리를 잡고 섰다.
그리고 동시에 영호를 향해 달려 들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 기철등을 향해 시범이라도 보이듯 영호의 몸이 움직였다.
하지만 단 한 동작이었다.
왼쪽 다리로 꽂꽂히 선 채 몸을 옆으로 돌려 태훈을 향해 옆차기를 하는 동시에 오른 손을 뻗었다.
그러자 달려오던 두 사람이 영호의 주먹과 발에 목 부분이 걸린 채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손과 발을 거둔 영호의 행동에 스스륵 바닥을 향해 몸이 가라앉았다.
기철의 눈이 찟어질 듯 부릅떠졌다.
흡사 두 놈이 영호의 발과 주먹에 정확히 맞추어 목을 들이민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두 놈이 바보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기철로서는 영호가 만든 작품이라 생각되었지만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무슨 중국 무협 영화도 아니고 그래도 싸움이라면 한 가닥씩 하는 녀석들이 저렇게 어처구니 없이 무너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철은 상태가 쓰러진 이후 문득 들었던 불안감이 가중되는 것을 느꼈다.
다시 뒤를 돌아 형민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바로 뒤에 있던 형민이 어느새 뒤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쓴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였다.
“한꺼번에 달려 들어라.”
기철의 말에 우왕좌왕하던 나머지 예닐곱명이 영호를 향해 달려 들었고 기철은 곧 태어나 처음보는 장면으 목격할 수 있었다.
여러명의 떡대들이 우르르 달려드는 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영호가 몸을 움직였다.
꺼지듯 아래로 가라앉은 영호의 몸이 다리 하나를 길게 뻗은 채 한바퀴를 돌자 한꺼번에 두 남자가 공중으로 약간 떳다가 땅바닥에 쳐 박혔다.
다시 솟듯 일어선 영호의 몸이 한번 더 회전을 하면서 뻗은 다리가 허공을 향해 유선형의 원을 그렸고 영호의 발에 이마를 스친 다른 한 녀석이 그대로 주저 앉았다.
우르르 몰려 가던 놈들이 주춤했다.
앞쪽의 세명이 숨 한번 쉴 정도의 시간에 쓰러진 모습에 몰려가던 모습 그대로 제 자리에 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세명이 쓰러진 사실보다 남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호였다.
영호의 움직임은 말로 하면 길지만 우아하지만 두 동작의 움직임은 흡사 사람의 동작을 촬영한 후 두배의 속도로 돌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철은 무엇인가 잘못 됬다는 것을 알았다.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기철이 알고 있는 한 그 누구도 이 남자와 싸울만한 사람은 없었다.
웬만하면 수를 믿고 덤벼 보기라도 하겠는데 이건 아니었다.
존경심마저 들었다.
“휴...”
한숨을 내쉬면서 장작처럼 뻗뻗하게 서 있는 부하들의 틈을 비집고 앞으로 섰다.
“뭐라고 할 말이 없군요.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습니다. 저희의 상대가 아니군요.”
기철의 말에도 영호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기철은 침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속이 시커멓게 타는 듯했다.
“비켜.”
영호가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기철이 자기도 모르게 몸을 한쪽으로 비켜 섰다.
나머지 남자들도 주춤주춤 옆으로 갈라 섰다.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던 영호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형민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예전에 자신이 방심했고 설사 그렇지 않았더라도 기철의 힘이면 충분히 영호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런 후에 자신과 똑같이, 아니 양쪽팔 모두를 꺽어놓을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생각대로 되어지지 않자 형민은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형민의 뛰를 모습을 본 영호가 역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철이나 다른 건달들의 눈에는 단순한 뛰기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올림픽의 세단뛰기 선수처럼 한 발자국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게다가 다리를 움직이는 속도는 더욱 빨랐다.
몇발자국 뛰지 않았고 형민보다 늦게 뛰기 시작했는데도 어느새 형민의 앞을 가로 막고 섰다.
그러나 형민은 그 뒤에 있던 영호가 그렇게 앞으로 다가올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흡사 영호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그렇게 돌진해 갔다.
영호의 손이 둥근 원을 그리자 형민도 같이 원을 그렸다.
사람의 몸이 허공에서 원을 그리면서 한바퀴 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형민은 덤블링하는 기계체조 선수와 같은 모습으로 공중제비를 했다.
그리고 형민이 공중에 떠 있는 동안 영호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살짝 형민의 오금을 잡는 듯 했고 형민이 땅에 쳐 박혔다.
이번에는 다리였다.
영호의 마지막 움직임이 형민의 다리를 잡아 몸의 움직임과는 다른 방향으로 다리가 움직이록 했고 그 결과로 다리가 펴진채로 자신의 몸무게와 떨어지는 속도를 감당해야만 했다.
기철과 남자들의 표정이 찡그려지면서 옆으로 돌려졌다.
차마 볼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 그리고 순간 ‘빠각’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 고통의 깊이를 상상하기 싫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으로 갈렸다.
“아아....악..”
형민의 고통에 찬 비명이 두 번째로 공터에 메아리쳤다.
영호는 형민에게 다가갔다.
형민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 차 있었고 다가오는 영호의 모습을 보면서 귀신이라도 본 듯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뒤로 기어 물어났다.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 주세요. 제발...기철형 도와줘요. 제발..”
형민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영호의 발이 형민의 입을 걷어 찼다.
형민은 입안이 온통 허물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영호는 형민을 잠시 쳐다보더니 걸음을 옮겨 기철에게로 갔다.
기철은 다가오는 영호를 바라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는 애써 힘을 주어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섰다.
기철에게 다가온 영호는 잠시 기철을 바라보았다.
“이 일은 없던 일로 하겠다. 하지만 여자에게 손을 댄다면 널 내가 찾아갈 것이다.”
“알았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것이오.”
기철이 나지막한 목소리에 굳은 맹세를 담았다.
기철의 표정을 보면서 그 눈에 찬 결의를 읽은 듯 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의 치료는 알아서 해 주시오, 비용이 필요하다면 연락하시오.”
“아닙니다.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영호는 애써 만류하는 기철의 손에 명함 한 장을 쥐어주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기철은 손에 들린 명함에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기철도 들어본 듯한 IVC라는 회사의 이름과 총무과 남궁영호라는 이름, 그리고 사무실 번호와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냥 직장인이란 말인가..............”
영호가 눈에서 사라지고 난 뒤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던 기철은 손에 든 명함이 아주 큰 보물이라도 되듯이 조심스럽게 품 속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영호가 사라진 그 곳을 쳐다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영호는 나무들 사이를 걸어 다시 유희의 아파트로 향했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했다.
과연 저들을 믿을 수 있을까...
저들이 유희에게 손을 다시 뻗친다면 과연 내가 한 행동은 잘 한 일일까. 오히려 유희에게 해가 되는 일은 아닐까....
하지만 영호의 생각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아파트의 코너를 돌아 유희 아파트의 현관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고 그 여인 역시 영호를 보고는 한달음에 뛰어왔다.
그리고 날듯이 영호에게 안겼다.
“영호씨...흑흑...”
이미 한참 운듯 유희의 눈은 퉁퉁 불어 있었다.
영호는 가만히 유희를 안은 채 등을 토닥토닥 두들여 줬다.
잠시 후 울음을 그친 유희가 영호의 품을 벗어나 영호를 살폈다.
“어디...다친데...는..없나요?”
영호는 두 팔을 들고 다리를 굴러 전혀 다친데 없는 모습을 확인시켜 줬다.
“네, 멀쩡합니다.”
그러자 오히려 유희가 이상하다는 듯 영호를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겁이 날만큼 험상궂고 덩치가 큰 남자들과 함께 간 영호가 멀쩡한게 오히려 이상했다.
“하지만....그 남자들은...”
“하하, 다른 사람과 착각했나 봅니다. 조금 몇가지 물어 보더니 그냥 보내주더군요.”
“아..그랬군요...하지만 그 중 한 남자는...”
“아, 맞다. 그 남자가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했고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영호의 말이 반신반의한 유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 영호가 무사히 들어온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유희는 영호가 남자들에 의해 끌려간 후에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느꼈다.
단순히 안절부절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영호에 대한 걱정에 패닉에 빠질 만큼 정신이 빠진 자신을 보고 나서야 영호에 대한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훈이가 혼자서 기다리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아파트 앞에서 서성거리면서 온통 영호의 걱정에 빠져 있던 것과 영호가 나타나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면서 한달음에 영호에게 달려와 안겨 펑펑 울었던 것...
어느새 남궁영호라는 이름의 이 남자가 자신의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실 그런 감정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혼녀에 자식딸린 여자, 그리고 열 살이나 많은 것들로 인해 억지로 영호에 대한 감정을 그 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런 고민들로 인해 영호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어디에 그런 대담함이 숨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파트로 들어가는 동안 영호의 팔을 꼭 안고 놓지 않았다.
“어..엄마? 아저씨..”
훈이는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현관으로 달려 나왔다.
문이 열리고 영호의 한쪽팔을 꼭 끌어 앉고 있던 유희가 영호의 팔을 슬쩍 놓는 것을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이제 왔어. 아저씨랑..같이..”
유희는 웬지 겸연쩍었지만 당당해지기로 했다.
유희가 영호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그리고 영호의 손가락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집어넣어 깍지를 끼어 단단하게 움켜 잡았다.
그런 유희의 모습을 본 훈이가 입을 크게 벌리면서 두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얼라리 꼴라리, 얼라리 꼴라리..”
생각지도 못한 훈이의 반응에 두 사람은 크게 웃었다.
그리고 영호가 유희의 손을 놓고 훈이를 공중으로 번쩍 들은 후 꼭 품에 안았다.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유희는 무엇보다 중요한 훈이와의 면담을 갖었고 반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어린 유희의 말에 반해 훈이는 아빠가 생긴거에 대해 너무너무 좋아했다.
훈이와의 면담을 성공으로 끝낸 유희는 거리낌 없이 이제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우선 유희는 영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삿짐 센터를 불러 영호의 짐을 모두 집으로 옮기도록 했다.
하지만 딸랑 옷 몇 개와 세면도구가 전부인 영호의 짐을 본 유희는 희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좀 잠깐 만나줄 수 있나요? 영호씨는 데리고 나오시지 마시고요.”
희정은 갑자기 걸려 온 유희의 전화에 당황했지만 유희가 간절한 어조로 말을 하자 거절할 수 없었고 거절할 생각도 없었다.
유희는 왠지 정이 가는 타입이었다.
희정을 만난 유희는 간결하고 확실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고 그런 유희를 희정이 꼭 끌어 안아 주었다.
“유희씨, 영호씨 참 좋은 사람이야. 비록 지금 갖은 것은 없어도 성실하고 아주 착한 사람이고... 꼭 유희씨를 행복하게 해 줄거야.”
“희정씨... 아니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래, 유희야. 내가 언니가 되어 줄게.”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유희가 약간 부운 눈으로 희정을 쳐다보았다.
“이젠 웃자, 다 잘 될거야.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해.”
“고마와요, 언니.”
다시 유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우씨..정말 그럴거야? 좋은날 왜 울어.. 바보같이. 우리 이러지 말고 나가자.”
자신의 팔을 잡아 끌고 밖으로 나가는 희정에게 어디로 가냐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 유희를 보면서 희정이 말했다.
“남편꺼 챙겨야 할거 아냐.”
“아...”
영호의 이삿짐을 보면서 가슴 아팠던 이야기를 잊지 않은 희정의 마음씀씀이에 유흐는 다시 한번 감동했다.
“내가 사줄게, 내 부하니까. 호호.”
“아니예요, 아직 정식 부부는 아니지만 제가 챙길래요.”
희정은 영호의 것을 스스로 챙기고 싶어하는 유희의 마음을 읽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럼 난 내 남편꺼나 사지.. 뭐.”
집에 돌아 온 유희는 이혼 후 비어 있던 한쪽 옷장을 하나하나 채우기 시작했다.
여러벌의 양복과, 셔츠. 그리고 속옷과 잠옷까지...
한참을 그렇게 정리하던 유희가 마지막으로 칫솔 꽃이에 세 개의 칫솔을 새로 꽃았다.
칫솔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엄마, 아빠,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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