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느낄수 있을까? - 1장
원문책; Sexual Assault: Will I Ever Feel Okay Again? by Kay Scott
한 여성이 강간을 경험한뒤에 심리적인 상처를 치유한다는 수기를 번역했습니다. ^^
수기의 성격상 그 내용이 그렇게 에로틱하지는 않습니다만...네이버3에 올리는것인만큼 좀 보강을 할 생각도 있습니다. (쉽진 안겠죠.)
앞으로 즐거운 감상되시길...
1장 - 나의 이야기
우리가족의 2년된 퓨마 자동차가, 내가 여름방학을 보낼 저소득층 거주지역을 구분하는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문득 그곳에서는 우리가 타고있는 자동차가 많이 튀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저소득층 거주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정부의 생활보조금으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러한 생각이 든것이다. 그러나 우리차 앞에 잇달아 보이는 검은색의 커다란 뷰익과 새로나온 썬더버드 스포츠카가를 보고는 내 생각이 틀린것임을 알았다. 어떻게 이곳 사람들이 이렇게 비싼 자동차를 탈 여유가 있을까? 아마도 이 주민들은 그렇게 형편이 나쁜것만은 아닌것 같았다.
나의 짧은 생각에...저소득층 거주지역의 생활환경은 아주 나쁠 것이라 보았다. 또한 나는 어렸을때(로버트 테일러의 집들이 정부에 의해서 세워지기 전에), 시카고 남쪽의 빈민촌을 자동차로 지나간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옆의 빌딩과 똑같은 높다랏고 좁은 빌딩들 사이로 햇빛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어두컴컴한 건물사이로 쇠로 만들어진 계단과 계단손잡만 휑하니 있고... 층층마다 도르레 빨래줄로 옆건물과 연결되어 걸려진 세닥물들 걸려있고...줄줄이 똑같은 집들...그리고 가끔씩 보도블록의 단단한 세맨트를 뚫고 힘들게 서있는 가로수들... 그러한 것들이 이곳 주민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잘 상징했었다.
7-8년전 내가 어린아이였을때... 한때 시카고의 슬램가를 본것만으로, 위의 저소득층 거주지역의 생활을 상상해온 것이다. 지금 나는 컸고 세상은 변한다.
잡생각을 떨쳐 버리고 정신을 차린뒤 창문 넘어로 주위환경을 살펴보았다. 음... 나의 첫인상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황량해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가 탄 자동차가 바클레이 거리의 코너를 돌았을 때는, 3층의 벽돌 건물들이 줄지어있어 정부의 서민층 주택 공급계획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주택들은 적어도 겉모습 만큼은 반반하였고 규격화 되어있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더 코너를 돌아 바로 그리스울드 거리에 멈추었다. 그 코너로부터의 두번째 집... 1802번지 바로 거기였다! 내 아버지는 주위의 남겨진 공간에 차를 주차했다. 나는 차에서 가장 먼저 내렸고 내 엄마 아빠 내 여동생도 순서대로 내렸다.
차옆의 보도블럭 위로 8-9세 정도 보이는 세명의 소년들이 걸어오는것이 보였다. 평범한 아이들 이였지만 어딘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어떤것이 빠진....스케이트 보드, 야구글러브. 수건에 말려진 수영복...등등 그들은 어떠한 놀이 기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마치 인생을 다산 노인처럼 힘없이 어슬렁 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문득, 나는 우리가 볼일을 보고 돌아왔을때, 우리자동차의 휠캡이 그대로 달려있을지 걱정스러워졌다.
나는 갑자기 이곳에 나를 알아보는사람이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퀼리안 목사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나는 배속에서 꾸르륵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랬다. 갑자기 내 흥분과 기대는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신경이 날카로와져있었다. 이 빈민촌에서 나는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을까? 나의 룸메이트는 어떤 아이일까? 나는 이곳에서 어떤일을 하게될까? 나에게 여기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가 사는 도시근교의 사람들은 " 너에게 좋은 경험이 될거야, 진짜 세상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게될 것이다." 이렇게 말할 것이 틀림 없었다. 이런 생각이 더해지자 내 신경질은 더 참기 어려웠고, 나는 한번에 모조리 경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퀼리안 목사의 대문에는 노랑색의 웃은얼굴 그림이 있었고, 그 밑에 이와같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웃으며 삽시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니는 이것으로 잠깐 기분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편안한 느낌은 없었다. 하느님은 나를 여름방학동안 이곳에 지내도록 인도하였고. 나에게 지금은 어떤 다른 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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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여름방학동안 보석가게에서 일하는것 보다 더 의미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은지 두달이 채 안된 어떤날이였다. 내가 다녔던 대학에는 누구나 명상과 기도를 할 수있는 공간이 있었다. 이 장소는 마음이 저절로 안정되는 곳이라서 나는 방과후 자주 들리곤 했다. 어느날 오후에도 금년 여름방학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도록 신에게 묻기위해 나는 거기에 들렸다. 기도를 드리고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학교 게시판을 나도 모르게 살펴보게 되었다. 그중 어떤 광고가 내 눈을 확 사로잡았다.
구인: 금년 여름방학동안 시골 교회에서 일할 두명의 여학생 구합니다. 학교 목사실에 참여원서 비치되어 있으니 관심 바랍니다.
내가 방금 한 기도에 대하여 신의 대답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지 안았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찬 느낌을 받아서, 나는 곧장 학교 목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나는 지원서류를 다 준비하여 제출하였고, 연락이 오기를 기도하면서 기다렸다. 만약 이일이 신의 뜻이라면 나는 뽑힐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며칠뒤 시골 교회의 목사인, 성 퀼리안씨가 나를 포함한 25명의 지원학생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학교에 방문했다. 정말로 나는 뽑혔다!! 이 모든일은 너무 빨리 진행이 되었고 .이 일을 지원했다는 사실 조차 부모님에게 채 알리지도 못한 상태였었다.
함께 뽑힌 디에나는 이번 여름방학의 내 룸메이트이다. 비록 우리들이 같은대학에 다니고 있어도, 우리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 시골 교회에서 함께 일하며 디에나에 대해서 알게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사랑을 그곳 주민들에게 함께 나누어 줄 것이다. 나는 지금것 예수를 진심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렇다. 예수의 사랑을 필요로하는 사람은 그곳 주민들 중에도 많을 것이다. 아마도 금년 여름은 아주 보람찬 여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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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꼭때기 옥탑방으로 들어가려면 퀼리언 신부가 사는 높고 좁은 벽돌집의 뒤쪽으로 돌아가야 했다. 룸메이트 디에나와 나는 3층 건물의 꼭대기의 옥탑방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5칸의 계단을 올라야만 했다. 옥탑방의 볼품없고 뭔가 부족한 현관문이 덩그러니 있었다. 들어가면 바로 부엌쪽으로 연결이 된 문이 있었고, 여기에는 싱크대와 작은 냉장고 그리고 가스랜지가 놓여 있었다. 말이 부엌이지... 이 부엌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서 우리는 설겉이를 할때는 욕실에 있는 커다란 욕조을 이용했야 했다. 또한 부엌에는 찬장이 없어서... 토마토 스프에서 부터 빨래감까지 이 모든것을 허술한 붙박이 장속에 넣어두곤 했다. 우리의 두개의 싱글 침대는 기울어진 옥탑방의 천장때문에 힘겹게 들어가 있었다. 다행이 침대사이의 좁은 공간에 우리들이 고물 전화기를 둘 테이블을 놓을 수는 있었다.
옥탑방의 시원하게 뚫린 창문 밖을 바라보는것은 마치 도심 주택가의 하늘위에 앉아있는 것과 같았다. 작은 나무 하나만이 유리창 바로 밑의 도로를 살짝 가리고 있었다. 우리는 매일 사람들이 출퇴근 하는것을 볼 수 있었다. 아침에 맨 먼저 터셔츠와 짧은 청바지를 입고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 아버지는 교육자로서 항상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하셨는데...여기의 사람들은 더럽고 땀에 젓은 옷을 입은채로 남자와 여자들이 하나둘씩 출근을 하고 있었다. 마치 죄수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곳에는 빨래를 널 공간이 부족해서 그런지 온 동내 길거리에 빨래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직장이 대부분은 근방에 있기때문에, 출근할때는 항상 검은색 점심 도시락이나 작은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대개 아침의 출근 시간이 끝날 무렵해서 남자들 몇명이 각자의 집앞에 모이곤 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고,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한면 대부분의 여성들도 아침일찍 작업복을 입고 가까운 공장에 일하러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없을때 어디에 맞겨져 있을지 궁금했고. 며칠뒤에 이 아이들은 집안에 혼자 남겨진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어린아이들 중에 내가 만난 토미라는 아이에 대해서는 아주 기억이 선명하다.
디에나와 나는 집집마다 방문하여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는 서민아파트의 3층에 올라와 있었다. 3층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은 나의 차례였다. 나는 집안에서 텔레비젼 소리가 나는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나는 노크를 더 세게 했다. 그러자 문이 살짝 밀려졌고 작은 틈으로 조그마한 눈동자가 우리를 엿보고 있었다.
"안녕? 내 이름은 케이, 그리고 이쪽은 디에나. 네 이름은 뭐니?"
대답이 없었다.
"예야, 너희 엄마 집에 계시니?"
"........"
나는 옆에 있는 디에나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혹시 영어를 못하는것은 아닐까?"
"habla espanol?"
그 아이는 나를 기분나쁘게 쳐다보기만 했고. 시간이 갈수록 내 기분은 불쾌해졌다.
"알았다. 우리 이만 갈께~"
"우리 이번엔 이 집으로 할까?"
디에나가 맞은편 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내가 노크를 했더니 한명의 중년의 여성이 답해왔다.
"안녕하세요? 저히는 설문조사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4-5살된 아이들 찾는데, 혹시 주위에 그러한 아이가 있는지요?"
"잘 모르겠어. 이 빌딩에는 그런 어린애는 없는것 같아."
"혹시 맞은편 집의 사람에 대해서 아세요?"
"조금은 알지"
"그짐에는 아이가 몇명 있는것 같은데요?"
"아니야. 토미라는 아이 혼자 있다."
"토미가 몇살 정도 되었는지 아세요?"
"그는 8살이야. 그의 엄마는 여기에 없지. 그 엄마는 병원에 일하러 간지 2주일 정도 되었어"
"네... 그의 아버지는 어디 가셨나요?"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고, 아마도 6개월 이상은 본적이 없어..."
"토미는 계속 혼자서 지냈군요."
"그렇지 뭐, 가끔씩이지만 내가 보살펴 줄기도 해"
"네... 좋은일 하시네요. 음... 그가 8살이면 그는 초등학교 2-3학년 정도 되겠습니다."
"아니야. 토미는 학교에 안가. 그의 엄마가 학교에 보내지를 않았지."
"아니, 학교에 한번도 안갔다는 말씀이세요?"
"그래, 엄마도 학교에 보내지 않았지만, 학교에서도 토미에 대해서 의무교육을 하려 들지 않았지"
"아주머님, 토미의 성이 무엇인지 좀 알려주세요."
"피어스.야"
"감사합니다. 도움말씀 주셔서 너무나 감하해요."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8살된 어린아이가 학교에 한번도 간적이 없다는것이... 그리고 집에 혼자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는 퀼리안 목사에게 토미에 대해서 알려주었고, 그는 토미가 학교에 다닐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직접 방문하여 설문조사를 함으로서, 우리는 저소득층 주거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많이 알게되었다. 이 마을에서 5마일 떨어진 곳에는 미시간주의 큰 호수가 있다. 그러나 아이들 대부분 호수공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 아이들의 삶은 단절이 되어있었고 그들에게는 즐겁게 놀만한 어떠한 것도 없었다.
이곳에서는 마약은 물론이고 알콜중독의 문제 또한 심각하였다. 대부분의 10대 청소년들은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주말에는 맥주파티까지 하는 실정이였다. 난 지금것 술을 마셔본 일이 없다. 또한 내 가족들 모두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족이 거주하는 곳의 청소년들은 술을 마시더라도 은밀히 몰래 마시곤 한다. 이곳에는 청소년의 음주가 공공연히 드러나있다. 그것도 바로 길거리에서!!
어느날이였다. 마을 공터에서 나와 디에나가 몇몇의 어린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때 어떤 녀석이 다가왔다.
"내 맥주 한모금 마실래?"
"괞찮아."
"왜그래? 내가 맥주 한모금 마시자는데 불쾌하냐?"
"아니, 난 음주는 안해."
"너가 맥주를 마시지 못한다고?"
그는 나의 팔을 붙잡고는,
"한모금 마시던지 아니면 나는 네 머리위에 맥주를 부어버릴거야!"
나는 그을 바라보면서 당차게,
"마음데로 해. 난 맥주샴푸가 네 머리에 더 좋을것 같은데!"
다행이 나의 재치있는 말로, 그는 웃으면서 기분을 풀었다. 비단 이일 뿐만 아니라, 이 마을의 음주문제는 내가 이 도시에 머무는동안 계속적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우리의 계획중 하나는, 길거리에서 문제에 노출된 아이들을 보호할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였다. 우리가 운영하는 카페앞의 커피를 마시는 공간은 그러한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여러번 이곳에 올 수 있었다. 카드놀이를 하거나, 음악을 듣고, 음료수를 마시고, 이곳에서 서로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길거리에서는 청소년이 많이 모여있으면 비행청소년으로 오인되어 경찰의 제제를 받곤 했는데...이곳에서는 그러한 일은 없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친하게 지냈다. 우리도 그들과 아주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그중 특히 루디는 나와 마음을 터놓는 아이였다.
"난 정말.. 경찰서 같은 덴 가본 적이 없다구.."
루디가 자랑하듯 말했다.
"오..루디, 가봤잖아.. 누구나 한두번 쯤은 (경찰서에) 간다구.."
"난 정말 아니래두.."
"경찰서에 정말 가본 일이 없어? 거짓말 하지마, 임마.. 너가 거짓말 하는 거 다 알아."
"알았어.. 알았다구. 갔었어.. 오토바이 등록하러. 하지만 그때 빼곤 정말로 가본 적이 없어."
어떤 아이들이 옆에서 웃으며 그에게 무안함을 주기도 했지만, 사실 그들 모두는 어떤 아이들 보다도 루디를 잘 따랐다. 루디는 사려가 깊은 아이로 이곳 거리아이들의 정신적인 우두머리였다. 그리고 우리는 파워가 있는 루디의 영향으로 이 모임의 운영에 큰 도움을 받고있었다.
우리는 이 장소가 예수님에게 기도하는 신성한 장소였지만, 루디를 포함하여 많은 청소년들이 일요일날마다 이곳에 오기를 바랬다. 어떤 일요일에은 25-30명의 아이들이 모이기도 했었다. 비록 우리가 하는일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는 별로 없지만, 신은 세상 모두에게 사랑을 나누어주고 있다는것을 몸소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선교활동을 하는것을 퀼리안 목사에게 배울수 있었다. 퀼리안 목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진실한 사람으로 알려져있었다. 그는 가정을 가지고 있었고, 세명의 아이들을 두고 있다. 그는 단순하고 순박한 사람이였지만 결고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빈민가의 교회의 미래에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웃 주민들이 힘들어 할때 보살펴주면서,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스스로 실천하며 예수의 사랑을 그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4년동안 꾸준이... 우리들이 여름방학동안 빈민촌의 모든 주민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보여는것은 바램일 뿐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있었다.
2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