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여자 (7)
7.
진명 형은 귀공자 타입이다. 어릴 적부터 궁색한 걸 모르고 커서일 것이다. 군대에서 고만고만한 제복 차림으로 똑같이 비천하게 살아갈 때에도, 초코파이와 십 분의 숙면에 목숨을 걸던 시절에조차 그는 뭔가 달랐다. 그가 초코파이나 십 분의 숙면 앞에 추잡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똑같이 추한 꼴을 보이면서도, 눈앞의 것에 정말로 급급한다기보다는 그렇게 망가지는 자신을 내심 즐기며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 그에게는 있었다. 단지 잘생긴 얼굴때문에 그래 보인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나는 그가 싫었다.
사람들은 나더러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인텔리라고 한다. 따라서 매사에 초연하고, 세속적인 일들을 한 차원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인상이 새겨져있다고 말한다. 그런 내가 정작 군대에서는 얼마나 추하였는지 아는가? 그 안에서 나는 남들 앞에서 목놓아 울었고, 고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어릿광대가 되었으며 바깥에서의 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산악행군 때 바지에 똥을 지린 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치욕이다...... 그렇게 비참해 있을 적에 그는 다 안다는 양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고, 초코파이라도 하나씩 챙겨와 (다른 고참들 등쌀에)짬밥을 놓치고 허기진 기세에 걸신들린 양 먹어대는 나를 웃으며 내려다보았다. 자기 역시 밥이 없을 땐 어쩌고저쩌고...... 내가 보기에 그는 나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결코 나처럼 망가지는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곱상하지만 여성스러운 외모에, 몸매 역시 왜소한 편이다. 월세방 시절 아내와 이삿짐을 나르면, 일하러 온 아저씨들이 아내 쪽이 훨씬 힘을 쓸 것 같아 보인다며 농을 해댔었다. 반면에 진명 형은 우아한 인상이면서도 균형 잡힌 몸매에 여기저기 알통도 보기 좋게 발달했고, 남자답고 서글서글한 외모가 믿음직해 보인다.
수염때문인지도 모른다 - 고, 가끔 생각했다. 겨드랑이에조차 체모가 듬성듬성한 나에 비해 그는 하루만 면도를 걸러도 얼굴 언저리가 귀밑까지 새까매지는 체질이었다. 그런 얼굴을 매일매일 깔끔하게 면도하고 다녔다. 단단하게 살이 잡힌 얼굴에 새파란 면도자국...... 고참들이 나를 갈구고 진명 형을 총애한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했다. (지금은 농담처럼 말하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서글픈 생각이었다)
그런 진명 형이 내 아내를 보자마자 눈빛을 바꾸었다. 그리고, 내 법적인 아내라는 걸 모르기 때문일 테지만, 내 앞에서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수작을 걸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진짜 미인이신데요!”
양평 별장에서, 차에서 내리는 아내를 향해 그가 던진 첫마디가 그랬다. 곁에는 진명 형의 친구지만 사실상 고용인 비슷한 역할을 하는 병수 씨가 무표정한 낯빛으로 서있었다. 내 아내로 인해 하루사이에 몰라보게 젊어졌던 병수 씨는 반년 사이에 원래의 궁상맞고 늙어뵈는 인상으로 고스란히 돌아와 있었다. 어쩌면 진명 형이 옆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는 반년 전 살까지 섞었던 내 아내를 똑바로 쳐다 보지조차 못하였다.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것까지도 상전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라도 하는 양.
아내로 말하자면 반년 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처럼, 아니 그때 이상으로 얼굴이 굳어 있었다. 진명 형이 살갑게 (저 인간은 여자에게 오버질을 해대며 추파를 던질 때조차도 우아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대해줄수록 더욱 온몸이 얼어붙는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내 아내이자 최고 명문대의 박사과정 고학기인 그녀가, 이곳과 저 낯선 사람들에게는 나와 바람이 난 노처녀, 그것도 한번에 한 남자로는 좀체 만족을 못하는 색녀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그 역할에 적응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였고, 그래서 입을 닫고 최대한 소극적으로 임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그녀의 의도와 달리 다른 이들에게는 대단히 차갑고 도도한 인상으로 비친다. 그녀의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와 차가워 보이는 미모, 독특한 카리스마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겁먹어 있을 수록 오히려 그 앞에 주눅이 들어하는 것이었다.
6월, 별장 근처의 신록은 화사한 것을 넘어 시퍼런 독기로 꿈틀대는 중이었다. 주위가 온통 눅눅하였다.
뜨락에서 간단히 차 한잔을 한 후, 우리는 진명 형이 권하는 ‘근사한 데’로 나가기로 하였다. 진명 형의 차를 타고서.
진명 형은 떠나기에 앞서 운전석 창을 통해 병수 씨에게, 우리가 나가있는 동안 별장에 이러저러한 것을 준비해 놓으라고 말하였다.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나도 아내도 혼자 남는 병수 씨에게 빈말로라도 같이 가자는 이야기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병수 씨는 무표정한 얼굴로 응수했다. 실제로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겠지만, 어찌 보면 상전의 지시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진명 형은 과분하리 만치 우리를 대접해 주었다. 길가 어딘가에서 귀신 같이 찾아낸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집의 최고급 메뉴로 - 동시에 내 아내를 위해.
진명 형은 언제나 내가 많이 부러웠다고 토로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특히 내 학력을, 변변찮은 학교를 나와 집안 재산으로 유유자적 세월을 낭비하는 자기 신세와 견주어 가며 - 내게는 ‘게다가 이런 미인도 데리고 다니고 말입니다’란 소릴 꺼내기 위한 핑계로도 보였지만.
양평 근처의 길가에 이렇게 경치가 수려한 장소들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진명 형은 능숙한 관광가이드나 택시기사 마냥 우리에게 봉사해 주었다. - 서글서글한 웃음을 아내 쪽으로 붙박으면서.
별장에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주점에서, 아내는 진명 형의 썰렁한 재담에 입을 가리고 웃었다. 만일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더 큰소리로 웃고, 그에게 더 스스럼없이 대하였을 것이다. 내가 짐짓 피로한 시늉으로 대화에서 물러난 사이에 아내는 그의 너털웃음앞에 고개를 수그리고 미소지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볼을 발그레 물들이고서. 이쯤 되면 진명 형도 아내가 보기만큼 오만하거나 차가운 성격이 아니란 걸 웬만치 짐작하고 있었으리라.
“승현이(내 이름) 녀석 비실거리기는...... 전 아래층에 있을 테니까, 쉬었다가 선영 씨(내 아내의 이름이다) 혼자서라도 내려오세요. 아까 말씀드린 술 담그는 비법 알려드릴 테니까.”
“예, 봐서요.”
진명 형이 아내를 향해 예의바른 기사처럼 인사를 남기고, 내게는 목례 한번 까딱이며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방문을 닫기 전 그의 발길이 병수 씨의 방을 향하고 있다는 걸 눈 여겨 보아두었다.
“당신 진짜 피곤한 거야?”
아내가 묘한 시선으로 내게 물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잠깐 사이를 두고서야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짓는다.
“안 그랬으면 진명 형이 실망했을 테니까.”
“무슨 소리야?”
“잘 알면서.”
아내는 심각한 얼굴로 내 낯빛을 살폈다. 나는 잔잔한 미소 그대로이다. 한동안 눈치를 보다가, 내가 적어도 화를 내고 있지는 않다고 받아들인 듯했다.
“얘기하려고 했어. 미안...... 너무 뜻밖이라서, 게다가 저쪽이 너무 자연스럽게 굴어서...... 저 사람 선수 아냐? 정말 깜짝 놀랐어.”
“미안할 것 없어. 내게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고...... 그리고 저 인간, 선수 맞아. (웃는다)”
사실은 조금 놀랐다. 진명 형이 아내에게 건 수작 때문이 아니라,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가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그 후에도 그토록 내 앞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였던 아내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와 다른 경우, 다른 상황이었다면 나 역시 까맣게 모르고 넘어갈 수 있었으리라.
“내가 왜 하필 이리로 데려왔을 거라 생각해? 뭐 하러 당신이 내 와이프란 걸 숨기지? 당신이 이번 달에 피임약을 빠지지 않고 먹어야 했던 이유가 있다고.”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다. 오늘은, 언젠가 말한 아내의 ‘그 주기’, 그녀가 특별히 성적으로 예민해지는 시기의 첫날인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그녀에게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당신, 설마 내가......”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바깥 풍경은 완전히 어두웠지만, 1층에 켜놓은 불빛으로 인해 뜨락 언저리까지는 환하게 내려다보였다.
“주점에서 부르스를 출 때, 그 사람이 내 엉덩이에 손을 올렸어. ‘손을 원래 이렇게 두는 거예요’ 하면서 내 손을 올바른(?) 위치에 대고, 그 담에 말이야...... 난 깜짝 놀랐지만 당신이 가만히 있기에 그대로 놔두었지. 여기선 당신 마누라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아내가 말했다.
“그 남자는 거길 만지거나 주무르지 않고, 진짜 전통적인 자세이기나 한 것처럼 손을 댄 채 가만히 있더라. 스탭을 아주 잘 밟았고...... 그러다가 잊어먹을 만하니까 갑자기 내게 입을 맞췄어. 놀라서 당신 쪽을 곁눈질했지만, 마침 자리에 없었어.”
“다른 데를 만지거나 아랫도리를 비비지는 않던?”
나는 여전히 창밖에 눈을 둔 채다.
“아니. 그러지는 않았어. 근데 내 입술을 열고, 혀로 내 앞니를 슬슬 건드릴 즈음에, 갑자기 아랫도리를 확 뒤로 빼더라. 그때까지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착 달라붙어 있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그때, 아 이 사람이 섰구나...... 하고 알게 됐지.”
“그래서 이빨을 열었구나? 그 남자 혀를 받아들였지.”
“응...... 그렇게 되었어.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과연 강진명이다. 군 시절 털어놓던 경험담들이 구라가 아니었던 거군!
“당신...... 내가 진명 씨랑 잤으면 좋겠어? 그래서 데려온 거야?”
아내의 목소리가 진지하였다.
“당신은? 당신 보기에 진명 형이 어떤 것 같아?”
“글세, 잘 모르겠어. 당신이 원한다면...... (여기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아내는 내가 원하는 게 그런 대답이 아니란 걸 천천히 눈치챈 것 같다) 나도 그 사람이 싫지는 않아. 좀 너무 선수 같기는 하지만, 그렇게 구는데도 밉지 않더라. 귀여운 데가 있는 사람 같아...... 그치만.”
“잘할 것 같긴 하지? 병수 씨랑 비교하면 어떨까?”
아내의 놀란 표정이,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더라도 훤히 보였다.
“진명 형이랑 하고싶어? 오늘 밤 여기서, 병수 씨가 보는 앞에서.”
아내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리 와봐.”
나는 아내를 창가로 불러냈다. 그리고 뜨락 쪽을 가리켜 보였다.
“저게 누구인 것 같아?”
“누구 말야? 하나는 진명 씨고, 다른 쪽에 있는 건 병수 씨잖아. 왜 저기서들 저러고 있지?”
“싸우고 있는 거야.”
내가 말했다. 아내가 나를 돌아본다.
“왜?”
“남자이기 때문이지.”
이렇게 말하고, 너무 포괄적인 설명 같아서 조금 덧붙이기로 했다.
“둘 다 당신을 갖고싶어 하거든. 그래서 싸우는 거야. 아마 둘이 서로 알게 된 이후에 저렇게 대놓고 싸운 일이 없었을걸.”
아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오늘 병수 씨가 좀 이상한 거 못 느꼈어? 당신은 잘 모를 수도 있겠군. 여기 별장에서, 병수 씨가 원래 그렇게 눈에 띄는 사람이 아냐. 진명 형이 병수 씨한테 뭔가를 부탁할 적엔, 이것저것 설명할 필요 없이 몇 마디 툭 던지면 알아서 모든 게 해결되었지. 우렁각시나 구둣방의 난쟁이들처럼 말야. 근데 오늘은 진명 형이 하나하나 잔소리를 해야 했고, 아까는 언성까지 조금 높였다고. 어지간해서 그러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내가 말했다.
“왜였을까? 병수 씨 입장을 생각해봐. 그 사람은 반년 전에 당신을 가졌지. 그날 밤은 정말 대단했어. 저 사람이 당신 같은 여자를 그렇게 마음대로 할 기회가 있었을까? 그런 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있을까? 저이는 그날 너무 신이 나서, 하룻밤만에 십 년은 젊어진 것 같았다고. 당신도 기억하지? 헌데 그 일을 진명 형이 어떻게였는지 알게 된 거야. 그리고선 곧장 우리를, 아니 당신을 여기 초대했지. 어째서 그랬을까?”
아내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다.
“어쩌면 처음에 병수 씨가 좀 착각을 했을지도 몰라. 진명 형이 당신을 여기 부른 게, 병수 씨를 위한 배려였다고, 뭐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좀 들떴을 수도 있어. 헌데 진명 형은 그런 병수 씨 앞에서 노골적으로 당신을 꼬셨잖아. 병수 씨 입장에선 그냥 자기 여자를 가로채는 게 아니라.”
“난 병수 씨 여자가 아냐.”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던 하룻밤의 추억을 더럽히게 되는 거야. 미칠 것 같았겠지...... 저 둘이 저러기 시작한 건, 병수 씨가 평소처럼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무슨 얘긴지 알겠어? 저 두 사람은 오늘 일로 영영 사이가 벌어질지도 몰라.”
“어떡하지? 하지 말까?”
상기되었던 얼굴이 이번에는 핏기를 잃었다. 그리고 잠시 궁리하는 듯하더니.
“역시 진명 씨를 받아주면 안 되겠다. 당신한테 미안한 것보다도, 나 때문에 괜히 저 두 사람 의가 상하잖아.”
“그랬다간 정말로 의가 상할걸. 당신이 안 해주면 말이야. 이번엔 진명 형 입장을 생각해보라고. 당신은 그 사람 혀까지 입안에 받아들여주었지? 한번뿐이 아니었어. 아까 당신이 화장실 갔을 때, 진명 형이 조금 사이를 두었다가 따라 나갔던 것 알아. 당신은 조금 늦게 돌아왔지. 주점 화장실 근처가 좀 으쓱해서 무섭단 소릴 하기도 했고.”
“말하려고 했어. 그때는-.”
“가만있어봐. 그랬는데, 인제 당신이 완전히 자기 손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이제 와서 당신이 몸을 사린다면? 틀림없이 병수 씨가 훼방을 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걸? 진명 형은 당신이 병수 씨랑 그랬다는 걸 안다니까. 그럼 어떻게 되겠어? 두 사람 사이가 온전할까? 근데 유감스럽게도 병수 씨는 여기 아니면 딱히 갈 데가 없어 보인단 말이지. 진명 형이랑 틀어지면 생계 자체가 어려워질걸.”
아내가 사색이 되었다.
차마 입을 열어 말하지도 못한 채, ‘어쩌면 좋지?’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만 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서 오히려 심통이 날 지경이다.
“방법은 있어. 당신한테 달린 거지.”
나는 언제나와 같이 그녀에게, 그녀 스스로 생각해내지 못하는 해법을, 모범답안을 일러주기로 한다.
그렇게 운을 떼고선 짐짓 딴전을 피우며 뜸을 들이자, 그녀는 내 손목을 잡으며 답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농담처럼 입을 연다.
“두 사람 다한테 대 줘. 공평하게 말이야.”
다시금 아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처음엔 그저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입 맞추기 시작했던 거였다. 그러던 것이 나 역시 꽤 흥분이 되어 버렸다. 곳곳을 더듬었고, 옷자락을 들추었다. 아내는 콧소리를 내며 내 품안으로 녹아들었다. 그녀의 깊숙한 곳은 벌써부터 주체할 수 없을 만치 축축하다.
“벌써 이렇게 되다니. 누구 때문이야? 누구한테 더 끌리지? 진명 형이랑 병수 씨, 어느 쪽한테 먼저 대 줄 거야?”
“당신이야.”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제일 좋아. 당신하고 하고싶어. 내려가고 싶지 않아. 그냥 여기서, 당신이 해주면 안 돼?”
“안 돼. 여태까지 얘기했잖아. 아래층에서 두 사람이 벌써 기다리고 있다고. 세부 계획을 세우고 연습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그러면 안 돼지.”
그렇게 말하면서 아내의 몸을 떼어냈다. 내 손끝에는 그녀의 분비물이 끈끈하게 묻어있다.
“난 당신이 필요해.”
아내가 말했다.
“하다못해 당신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하란 대로 할게. 저 두 남자한테 대 주고, 벌려주고, 빨아주고......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할게. 대신 옆에 있어 줘. 곁에서 내 손을 잡아 줘. 날 봐줘. 내가 저 남자들한테 더럽혀지는 곳에 함께 있어 줘. 내가 지나치게 망가지지 않도록 지켜 주었으면 좋겠어.”
“망가질 수 있는 데까지 망가지고, 마음껏 더럽혀지도록 해. 내가 아니라, 저 자들이 시키는 대로.”
내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가 서러운 콧소리를 낸다.
아내의 등을 떠밀듯이 문가에 데려다놓고, 잠시 망설이다 덧붙이기로 했다.
“나도 당신을 원해. 굉장히 많이...... 당신이랑 하고싶어.”
내가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해 보자. 내가 평소에 하고싶었던 게 있어. 한번쯤 그런 식으로 당신이랑 하고 싶었지. 그렇게 해 주겠어?”
“뭐든지, 하라는 대로 할게.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당신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아주 깊숙이...... 단, 그러기 전에 그 안이 푹 젖어 있었으면 좋겠어. 다른 남자의 정액으로.”
아내의 어깨가 육안으로 식별될 만치 세차게 떨린다.
“다른 남자들의 정액을 채워놓은 구멍에, 내 것을 넣어보고 싶어. 다른 남자들의 씨앗으로 가득한 곳에 내 것을 섞는 거야. 다른 남자의 손길이 지나간 몸을 안고, 그 자들이 더럽게 해놓은 곳을 내 혀로 닦아주고 싶어. 이미 당신을 가진 남자들이 느긋하게 비웃으며 바라보는 앞에서.”
“내려가. 그리고 그들한테 네 몸을 벌려 줘. 저것들은 더러운 놈들이야. 남의 여자를 갖고싶어서 평생 친구하고도 의가 벌어지는 추악한 짐승들이지. 그것들한테 네 몸을 열어. 네 모든 것을 허락해 줘. 내가 보고 있을 거야. 그리고 그 놈들한테 더럽혀진 네 몸을 내가 가질 거야.”
그녀는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브레지어를 걸치지 않은 잠옷바람으로, 두 명의 남자들이 기대와 의구심에 찬 채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들 모두를 받아들이기 위해 벌써부터 따뜻하게 물이 오른 자궁을 몸 안에 담은 채로.
그녀를 내려보내고, 난 딱 30분을 기다렸다. 내 평생 가장 긴 30분이었다. 고행하는 심정으로, 극기(克己)의 정신을 최대한 발휘하였다. 딱히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오래 참을수록 그 후의 쾌락은 더욱 압도적이리란 걸 알았다.
처음 한 십분 간은 아래층으로부터 간간이 소리가 들렸다. 약간 부자연스럽게 떠들썩한 웃음소리라든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소리가 끊겼다.
따라 내려가거나 들여다보지 않은 것은 쾌락을 증폭시키기 위함과 아울러, 스스로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진명이! 그것도 그가 하인처럼 부리는 병수 씨 앞에서 잘난 척, 노골적으로 아내를 더듬는다면, 내 아내의 몸을 탐한다면 - 견딜 수 있을까? 행여 도중에 꼴사납게 나서서, 나 자신이 벌여 놓은 게임을 망치는 거나 아닐지?
아내는 내 자랑이었다. 내게는 과분하게 아름답고, 순수한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진명 형 앞에서...... 그가 군 시절부터 자랑스레 떠벌이던 여성 편력의 일부가 된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굴욕적일 정도로 그에게 매달리고 극진하게 봉사하던 여자들을 나는 혐오했었다. 그런데 이제 내 아내가!
한계였다. 때려죽인다 해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휘청거렸다. 문을 열었다. 계단으로 나섰다. 발소리를 죽이고.
아내의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지만 적나라한 음성이었다. 나는 언젠가와 같이 계단에 쭈그려, 도둑처럼, 난간 사이로 아래를 훔쳐보았다. 내 여자가 그들에게 농락당하는 모습을.
그것은 생각 이상으로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어디서부터 봤어?”
“병수 씨가 너랑 하고 있을 때부터. 그 사람을 먼저 받아들인 거야? 진명 형이 첫 타자를 양보했다니 놀랍네.”
“응. 모든 걸 병수 씨가 먼저 했어. 내가 그렇게 하도록 했어. 진명 씨 앞에서 주눅 든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거든. 그 사람이 먼저 나한테 키스하고, 먼저 내 몸을 만지고, 먼저 내 서비스를 받도록 했어. 게다가......”
“왜 그래? 말해봐. 괜찮으니까.”
“진명 씨가 내게 손을 댈 땐...... 먼저 병수 씨한테 허락을 받게 했어. 마치 내 몸이 병수 씨의 것인 듯이. ‘병수 씨, 이 사람한테 입맞춰도 될까요?’, ‘진명 씨가 내 젖가슴을 만지게 해도 괜찮을까요?’, ‘진명 씨한테 다리를 벌려주고 싶어요. 그래도 될까요? 당신이 먼저 아는 이곳을, 진명 씨가 보게 해도 괜찮을까요?’ 이렇게...... 당신 화났어?”
“아니, 나는 괜찮아. 화가 난 건 (그녀의 손을 끌어당기며)여기야. 미칠 것 같다. 당신은 정말 대단해. 잘해주었어.”
“당신 말대로 했을 뿐이야.”
“그래서...... 병수 씨한테 먼저 해달라고 했어? 당신 거기를 가리키면서, 병수 씨가 먼저 그 안에 들어와 달라고 부탁한 거야?”
“아니. 그러지는 않았어. 사실은...... 진명 씨랑 먼저 하고싶었어. 왜냐하면 진명 씨 얼굴이 무서워 보일 정도로 흥분해 있었거든. 누군가가, 그렇게까지 나를 원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그래서 진명 씨한테 먼저 열어주고 싶었지. 하지만 그러려면 병수 씨한테 허락을 받아야만 했어.”
“하지만 허락해주지 않았군.”
“응. 허락해 줄 수 없다고, 자기가 먼저 해야겠다고 했어. 그 사람답지 않게 강압적이었지. 내게 욕을 했어. 그리고 잔소리 말고 자기한테 먼저 대라고 했어. 자리에 엎드려서 엉덩이를 들고, 문을 열고, 자기가 먼저 입성(入城)할 때까지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어.”
“그래서 그렇게 했어?”
“응.”
병수 씨가 내 아내를 뒤에서 범하고 있었다. 격한 움직임이었다. 아내는 쿠션에 얼굴을 묻은 채 그가 움직이는 대로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진명 형은 그 옆에서, 화장실 앞에 줄을 선 사람 마냥 하릴없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내 자리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화장실 앞에서 발을 구르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일 터였다.
병수 씨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내가 나오기 이전에 얼마동안이나 피스톤질을 하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내 아내의 안에 제 모든 것을 쏟아 넣었다.
이번 달에 아내는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콘돔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
고로 내 아내의 질구로, 자궁으로 다른 남자의 씨가 뿌려지고 있었다. 내 몸이 겨드랑이부터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다른 남자의 정액이 아내의 몸 속 깊은 곳으로 주입되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양이, 어느 정도의 깊이까지 침입해 들어갔을 것인가.
병수 씨는 곧장 뒤로 주저앉았다. 자세가 그닥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그 자리에 엎드려 잠시 숨을 골랐다.
다음은 진명 형의 차례였다. 나는 그가 그대로 내 아내에게 달려들리라고 생각했다. 엎어진 그대로 몸을 바로 할 사이도 없이 덮칠지도 모르겠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옆의 소파에 주저앉은 채 꿈적도 하지 않았다. 예상외의 상황과 광경에 압도되어 버린 듯했다.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뭐야, 그 새 벌써 한번씩 순번이 돌아간 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를 일으켜 세운 건 병수 씨였다. 그가 아내의 귓전으로 무어라 속삭였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순간 어떤 예감으로 내 심장은 심하게 두근거렸다.
아내가 진명 형에게 다가갔다. 아니, 기어갔다. 그것도 벌거벗은 채, 병수 씨의 정액을 아랫도리에 잔뜩 담은 그대로 말이다. 진명 형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목소리는 내 자리에서 잘 들리지 않았다. 진명 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내가, 진명 형의 바지춤을 제 손으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병수 씨가 또 무언가 말하였다. 아내는 거기에 응하듯 보기 흉하게 고개를 든 진명 형의 사타구니를 애무하고, 거기 입을 맞춘다. 진명 형이 고개를 젖히며 세차게 반응한다. 병수 씨가 다시금 무어라 아내를 재촉한다.
나는 더 견딜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뭔가 생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그저 몸이 시키는 대로 하였을 따름이다.
내가 내려갔을 때 아내는 몸을 일으켜 진명 형의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놀랍게도 아내 스스로 그의 물건을, 제 사타구니에 맞추었다. 그리고 주저앉았다. 탁한 신음소리와 함께 그의 입술에 제것을 가져가면서, 아랫배를 맞춰 버렸다. 그의 물건은 너무 쉽게 아내의 안으로 들어갔다. 하기야 그랬을 것이다. 병수 씨가 토해 놓은 것이 이미 그녀 안에 그득이 풀칠되어 있었을 테니까. 진명 형의 물건은 그것을 따라 그대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되었으리라.
제일 먼저 나를 발견한 건 병수 씨였다. 그가 놀라 겁먹은 얼굴로 몸을 떨었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소파 위와 내 얼굴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 다음에 나를 본 건 진명 형이었다. 아내의 어깨 너머로, 그녀가 정신없이 위아래로 움직일 적에.
그가 다소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어떠한 얼굴로 그들에 임했을까? 알 수 없다. 그곳에는 거울이 없었고, 있었다 해도 거기 눈을 둘 새가 없었을 것이다. 내 눈은 열에 달뜬 양 움직이는 아내의 알몸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래로부터 자극이 온 듯 진명 형이 눈을 질끈 감았다. 신음을 토하였다. 그러더니 다시 눈을 뜨고, 나를 향해 슬그머니 한 손을 들어 보였다. 주먹을 쥔 채,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손.
나는 그를 향해 씨익, 광기 어린 미소를 보여주었다.
가장 늦게까지도 나를 발견하지 못한 건 내 아내였다. 그녀는 눈을 감고, 제 동작에 한없이 몰입되어 있었다. 진명 형의 몸에 제 알몸을 부비고, 그의 입술을 제것으로 헤집었다. 진명 형이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는 데에 온몸으로 반응하였고, 점점 더 듣기에 민망한 소리로 볼륨을 높이는 것이었다. 슬쩍 내려다본 그들의 접합부에서는 진명 형의 우람한 성기가 갖가지 분비물에 범벅되어 반짝이며, 벌써 다른 한 남자의 정액으로 더럽혀진 아내의 구멍을 힘차게 왕복하는 중이었다.
p.s 제 성격에 뜸들이기는 무슨... -_- 다음 편도 이번줍니다. 아마도 목요일 정도.
글구, 보기에 불편하지는 않을런지? 줄을 걍 다 붙여보았습니다. 군데군데 띄우는 게 지저분해 보여서... 어떨런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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