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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사각지대-21

청계천세운상가만큼 많은 애환과 역사를 지닌곳도 없을것이다
한때는 핵폭탄까지 조립할수있을정도로 기술력이 빼어난곳이라는 소문이 나돌던 곳이기도했지만 이제는 그명성이
용산의 전자상가와 서부국제전자타운 그리고 테크노마트라는 놈때문에 세운상가가 아닌 삼류상가라는 소리까지
듣고있지만 아직까지 공인되지않은 언더그라운드 기술자들이 모래알같이 널려있는곳또한 세운상가만의 장점이다
양지쪽 보다는 음지쪽의 상품들이 진을치고있고 각종 범죄에 이용되는 기술또한 세운상가에서 퍼져나오는것이다

"젠장 이제는 이짓도 못해먹겠네"

조그만 전파사 간판을 단 세운상가 골목 안쪽에 자리잡은 두평남짓한 좁은 사무실에 컴퓨터 앞에 앉아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인상을 찌뿌린 사내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간판만 전파사 간판을 달았지 하는 주업무는 해킹과 뒷조사등 흥신소업무를 주로 하고있는 이곳의 주인이자
종업원인 사내는 최근들어 월세조차 내지 못할지경에 이르자 짜증이 났던것이다

개나소나 컴퓨터를 다루다보니 예전과는 틀리게 전화번호 추적부터 통화내역조회까지 어디서들구했는지
흥신소 자체내에서 처리하다보니 자신에게까지 오더가 내려오지 않는것이다
그것은 수익과 바로직결되고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 가게문 여는것도 점점 싫증이 나는것이다
맘만 먹으면 은행전산실에 들어가 휴먼계좌에 쌓여있는 돈들을 자기계좌로 간단하게 옮길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내지만 전과자라는 소리듣기싫어 아직까지 나쁜맘 한번 품은적없이 곧게 살아보려고 애썼는데 요즘에들어
자꾸 마음이 흔들리는것이다.

"젠장 돈이나 있어야 다방 가스나하고 노닥거리기나하지"

재털이에 담배를 비벼끈 사내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날씨도 그렇고 사무실이라고 꼬딱지 만한곳에서 앉아있어봐야 요통만 더 심해진다는생각에 슬슬 마실나갈준비를하고있는데

"때르릉..때르릉"

구석에 덜렁거리며 메달려있는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간만에 일거리들어오나보다싶어 사내는 부리나케 수화기를 귀에 갖다대었다
그러나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내의 눈은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전화기를 냅다 컴퓨터옆으로 던지고는
정신없이 가게문을 닫고는 어디론가 뛰어갔다.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은 환승역이 다 그렇듯 하루종일 수많은사람들로인해 북적거렸다
승강장앞에 서있는 작업복을 입은 사내는 겨울도 아닌데 양손에 벙어리장갑을 끼고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한 눈초리로 쳐다보았지만 사내는 주위사람들 시선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씨익 웃어주었다

바로앞에도착한 전철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자 사내는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때문일까 전철안은 땀냄새를 비롯 요상한 냄새로 가득차있었다
의자옆 난간쪽에 등을 기대고 창을 바라보고있던사내의 눈에 제법 돈깨나 있음직한 여자의 핸드백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벙어리장갑안에서 손가락이 꿈틀거리자 사내는 이를 악물었다.

벌써 이년이 지났는데 가끔 자기도 자제하지 못할정도로 충동이 느껴지는것이다
번개라는 이름을 이년전 겨울 땅바닥에 묻고 이를 꽉물며 참고 살아왔는데 아직까지 충동이 생기다니 사내는
자신의 벙어리장갑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속에서 꿈틀거리는 자신의 손가락이 악마처럼 느껴졌기때문이다

집에 도착한 사내는 자신을 부르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아직까지 전화를 놓지않고 세상과 등을지고 살아가는 사내에게 그나마 가끔 시골에서 주인집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노모의 소식만이 사내에게 유일한 기쁨이었다
흥청망청 하루에 몇백씩 쓸때도 있었지만 사내는 지금 피와땀을 흘려가며 조금씩 버는돈을 전부 시골 노모에게 보내기때문에
몇푼안한다는 전화들여놓는것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2년이 지난 아직까지 주인집 신세를 지는것이다

"총각?"

"네 아주머니"

"아까 총각찾는 전화왔었는데...잠깐만 있어봐..어디이름하고 연락처 적어놓은게 있는데"

사내는 자신을 찾는다는 전화가 왔다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2년동안 자신을 찾는 사람은 없었던것이다.

"내가 눈이 어두워서..가만보자..여기있네"

사내를 향해 주인집여자가 조그만 종이를 내어보였다
그종이를 받아들고 종이위에 적혀있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아든 사내는 눈이 더이상 커질수없을만큼 커지더니
그대로 대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35층짜리 생명보험 건물외벽 유리창에 사내하나가 밧줄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혼자서 유리를 닦고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인지 사내의 몸은 좌우로 흔들거리며 위태로워보였다.
안전장치를 하고 내려오긴하지만 매번 사내는 항문에서 똥이 쏟아질것 같은 느낌에 몸을떨었다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불경기에 이만한 보수를 주는 일자리가 없다 싶어 이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해가 바뀌었다.
한때는 영화판에서 성공할것이라 이를 악물고 충무로에 뛰어든적도있었지만 돌아오는것은 배고픔과 멸시
허무 그리고 좌절뿐이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배우겠다는 욕심에 엑스트라로 한번씩 출연할때 빼놓고는 조명부터 특수분장.효과
등등 영화판에서 전천후로 써먹을만한것은 죄다 배웠지만 얼굴하나만가지고는 출세를 할수없다는 사실을
사내는 피눈물을 흐리며 느꼈던것이다.
영화판을 뛰쳐나와 한때 독고다이로 제비노릇을 하며 유부녀등을 치는 그런일도 했던 사내는 말그대로 조직
의 사내들에게 사지가 절단될 그런 지경에까지 빠진후 지금 이고층 유리닦이로 새생활을 시작하고있는것이다
사내는 사무실 안에서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움직이는 회사원들의 모습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다
자신의 작업복에 코를 한번 문지르고는 유리를 닦기시작했다.
좌측에 두개만 더닦으면 오늘 할당량은 다 채우는것이다.
힘이난 사내가 정신없이 유리를 닦고 작업복을 갈아입고 계단을 내려올무렵 주머니에있던 낡은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고 전화기를 귀에대고 수화기너머 목소리를 확인하던 사내는 자신의 작업복이 담겨있는
가방과 작업통을 옥상에 던져버리고 정신없이 계단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밀리오레를 비롯 디자이너클럽 거평프레야 동평화시장 청평화시장 동대문종합상가 등등 대형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선 동대문운동장 주변은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흥인시장 뒤쪽에 한무리의 지게꾼들이 모여있었고 그중에 두사람이 눈에 띄었다
한사람은 씨름선수 이봉걸을 연상시킬정도로 체격이 거대했고 그사내와 장난을 치고있는 또다른사내역시 체격이
좋았지만 지게를 지고있는건지 지게가 사람을 지고있는건지 분간 않가게 키가 작았던것이다

남대문에서 처음 지게꾼 벌이가 좋다고 해서 들어갔던 두사내는 텃새도 텃새지만 남대문에서 또와리를 틀고있던
조직들과의 마찰에 새로뜬다는 동대문으로 자리를 옮긴지 벌써 열달정도가 됐다.
친구인 두사람의 체격조건에 처음보는사람들은 마냥 신기해 하며 쳐다보았다.
키차이가 나도 너무나는 두사람이 친구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나 열달동안 하루도 거르지않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남보다 먼저출근해서 커피를 뽑아오는 두사람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두사람에게 한번이라도 짐을 맡겼던 장사꾼들은 개인적으로 두사람에게 일을주어
벌이또한 다른사람과 비교가 되지않았다
남보다 벌이가 좋다보니 사람사는동네라 시셈이 없을수없고 두사람도 다른사람들 도마위에 오르락 내리락
거렸지만 어려운사정이있는 사람들한테는 돈아끼지 않고 내놓은 심성때문인지 열달이 지난 지금은
동대문지게꾼들 사이에 유명인으로 불리워졌다
거기다 매일매일 내던 자리세명목의 갈취당하던 돈도 두사람덕분에 요즘은 내지않고있으니 기게꾼들에게두사람은
복덩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두사내에게도 요즘들어 고민아닌 고민이 생긴것이다.
동대문을 거점으로 하고있는 광주목천파 조직에서 두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조직가입을 권유하고있는것이다
남대문에서도 같은 일때문에 동대문쪽으로 자리를 옮긴것인데 여기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일어나고있으니
겨우 자리를 잡았다 싶었는데 또 어디를 가야하나 싶은 생각에 두사내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직에 들어오라며 목천파에서 자신들이 하고있는 지게꾼 구역에는 아예 발걸음도 안하고 먼저 호의를
보이며 조직가입과 동시에 동대문쪽 관리를 맞긴다며 힘든 지게일을 하지말고 좀 편하게 살라며 지속적으로
추파를 던졌고 점점 두사내도 차라리 자신들이 동대문관리를 하면 어려운사람들 편의를 봐줄수가있지않을까
싶은생각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조직이 어디 애들 놀이터마냥 자기 하고싶은데로 할수있는곳이 아니라는것을 알기에 지금까지 닦아놓은
자신들의 땀이 어린곳을 또 떠나야한다는 생각에 하루종일 두사내의 기분은 가라앉아있었다

지게를 길에 세워두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체격큰 사내의 뒷주머니에서 부르르 떨리는 음이 터져나왔다
워낙시끄러운 동네가 돼서 항상 진동으로 해놓고 다니는데도 전화가 걸려올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뒤로하고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내는 옆에서 땅바닥에 담배재를 비벼끄고있던
키작은 사내의 목덜미를 잡고는 불끈들어 옆에 정차해있던 택시의 문을 거칠게 열었다.



일산으로 가는 도로는 뻥뚫려있었다
뒤에 앉은사내는 대낮부터 얼마나 마셔댔는지 완전히 뻗어서 헛소리까지 지껄이고있었다
어제 꿈을 잘꾼탓인지 남들 개시도 못하는데 자기만 두탕째 뛰는것이다
허기사 시간이 일러서 출근할 사람도 없을테지만 암튼 오늘만같으라고 중얼거리며 운전하는 사내옆으로 스피드건으로
속도측정하는 교통경찰이 눈에 들어왔지만 가운데손가락을 올리며 악셀을 더욱 힘차게 밟았다

머리쓰는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내였지만 이상하게 한번가본곳은 그 뒷골목까지 훤하게 꿰는바람에 서울부터
부산까지 신도시빼놓고는 골목 골목 모르는곳이 없는 사내인지라 대리운전하는 다른동료들 사이에 백과사전으로
불리우고있었고 자신도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할수있는지 거울을 볼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대리운전도 이력이 붙어서 그런지 할만하다 싶었는데 갈수록 요금이 내려가는바람에 예전에 한탕으로 뛸거를 두탕은
뛰어야 수지를 맞출수있는 현실이 사내에게는 싫었다.
예전에 하던 나쁜일을 다시 할수는없겠지만 가끔 아주가끔은 몸속 깊은곳에서 충동이 일어나 그때마다 더욱더
일에 열중했던것이다

사내에게는 전국지리를 달달꿰고있는 특기말고도 예전에 나쁜짓할때써먹던 주특기가 따로있었다
약품이라면 화공약품부터 마약까지 모르는게 없을정도로 그방면에는 도가텃다고할정도로 잘알고있었다
그런데도 한번을 경찰서 근처에 가본적이 없을정도로 철두철미했고 그랬기에 그렇게 나쁜짓을 많이하고다녔는데도
아직까지 전과한번없이 말짱한것이다
물론 이제는 착실하게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예전 아주예전에편하게 벌었던 그때가 생각이날때면 사내도 당황스러운것이다

흥얼 흥얼 노래를 부르며 가속페달을 밟고 호수공원쪽으로 우회전해갈무렵 운전석옆자리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신호대기하며 전화를 받던 사내는 차를 우측길가쪽에 세우고는 뒤에서 자고있는 사내의 호주머니에서 4만원을꺼내
챙기고는 비상등을 켜놓고 차에서 내린후 반대방향에서 오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창민은 다행히도 수첩안에 있던 사람들하고 대부분 연락이 닿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사람 꼭 통화하고 싶었던 사내는 아직 연락이 닿질 않았다
그러나 한달에 한번은 집에 온다는 가족의 말에 창민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꼭 전해달라는 부탁을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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