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무원, 연인, 여자 - 33부
“콰르릉~쾅~!!!”
어찌된 셈인지 천둥소리가 갈수록 더 요란하다.
번쩍번쩍 빛나는 번개불은 어찌나 공포스러운지….
하지만…하지만….
온 밤 하늘을 순간적으로 무섭게 밝혀가는 번개불과는 도저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눈에서 쏘아지는 저 빛이…..
어찌 저리도…
어쩌면 저렇게도…
오히려 번개불보다 더 무서울 수가 있는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그럴 수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실제로 혜미가 보고 있는 것은 무섭게 새벽의 험상궂은 하늘을 번득거리게 하고있는
번개불보다 더 흉흉스럽고 무섭게 빛나고 있는 성태의 눈빛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그 무서운 성태의 눈빛을 올려다보고 있던 혜미의 눈동자가….
머릿 속에 한가득 급격히 밀려드는 공포로 인해서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두…두려워….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호…혹시 꿈은 아닐까…
제발 꿈이었으면…
아아…제발 꿈이었으면….!!
혜미의 머리 속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쓰러진 상태에서 엉금엉금 뒤로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성태가 아무 말도 없이…
무서운 빛을 뿜으면서도…
술기운으로 인해 다소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그런 혜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혜미가 살짝살짝 쓰러진 상태에서 뒤로 물러나고 있다….
온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자신을 두려움이 가득찬 눈으로 올려다보는 혜미의 모습….
“………………흥!!”
성태의 입에서 코방귀를 뀌는 비웃음 섞인 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혜미의 귀에는 그 짧은 소리가 새벽하늘에 울려퍼지고 있는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왔다.
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좀…괜찮아진 모양이군….”
성태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혜미에게 묻고있는 것인지 혼자서 중얼거리는 소리인지 잘 분간이 되질 않는다.
“네….네…많이 좋아졌어요….”
혜미가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엉겁결에 대답한다.
그러면서 얼른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일어났다.
몸을 일으킨 혜미는 계단 쪽으로 한 두어걸음 슬며시 걸어나갔다.
성태가 그런 혜미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눈빛으로 따라 다녔다.
“괜찮아졌다고…..그거 잘됐군 그래….흥!! 그런데 어쩌지….
나는 별로 좋지가 않은데 말야….!”
“………………”
혜미는 더욱 더 몸이 떨려왔다.
자신이 느끼기에도….그 어느 때보다 오히려 더 떨고 있었다…
성태의 냉정하고 싸늘한 목소리가 혜미의 온 몸을 에워싸는 것만 같았다….
“흥!! 네 마음대로 그 따위 짓을 저지르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던? 속이 후련하던??
너 도대체….흥, 넌 도대체 얼마나 나를 망쳐놔야만 속이 풀리겠냐?”
성태의 차가운 독설이 혜미의 귓 속으로 사납게 휘몰아쳐 들어오고 있다….
성태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으면서…
혜미는 순간…어지러움을 느꼈다…
혜미의 떨고있던 몸이 비틀비틀 거리면서….
머릿 속이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어째서…어째서…
똑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똑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어찌 저리도 공포스러울 수가 있는 것일까….
혜미는 바닥을 향해 고개를 힘없이 떨구었다.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는….부드럽고…따뜻하기만 한데….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는…..
순간 혜미의 눈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는….
너무너무 부드럽고…
너무너무…따뜻하기만 한데…
그래서…그 따뜻한 목소리는…
그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웬지 모르게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어째서…
어째서…
아빠의 목소리는….
아빠의 목소리는….
저렇게 차갑고 냉정하기만 한 걸까…
도대체 어째서….
혜미는 가슴 가득히….
서러운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바닥으로…뚝! 뚝! 하며 혜미의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혜미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는
성태의 모습을 눈물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성태는 냉소 띈 차가운 표정으로 혜미를 응시하다가…
혜미가 갑자기 눈물이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흠칫 하며 표정이 달라졌다.
혜미는 성태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자신의 몸이 더 이상 떨려오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혜미의 눈에 비치는 성태의 모습이….두렵지가 않다….
이젠 두렵지가 않다….
아빠의 모습이 두렵지 않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몹시 무서웠는데….겁이 났는데….
어디론가 도망치고만 싶었는데….
왜 이럴까….
전혀 두렵지가 않아 갑자기….
혜미는 문득 재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재성이 자기를 바라볼 때의 그 따뜻한 눈빛….
전화기 저편에서부터 들려오던 부드럽고 따뜻한 관심이 가득찬 목소리…
사랑한다고 속삭여 줄 때의 그 포근한 행복감….
“그래….!”
두렵지 않아….
두려워 해선 안돼…
이제 더 이상은…두려워해선 안돼…
오빠가 나를 구했듯이….
나도 이젠 나 자신을…나 자신을 구해야만 해…
그리고…아빠도…
혜미는 약간 웅크리고 있던 몸을 서서히 펴 올리고….
성태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성태의 사나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혜미의 눈물이 가득한 눈이….
따뜻하고 부드럽게….서서히 그런 시선으로 변해갔다…
성태는 갑자기 일순간 달라진 혜미의 표정을 보자…
뭔가 알 수 없는 낯선 그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에 묘한 느낌이 몰려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뭐….뭐야…도대체…이 느낌은…!!!
성태는 알 수 없는 당혹감을 느끼며
혜미의 얼굴을 의아스럽다는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제발….”
혜미가 입을 열고 성태에게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있다.
“이젠 그만하세요.”
혜미의 나직하지만 부드러운…하지만 어떤 강한 힘이 가득 배어있는 목소리에
성태의 몸이 흠칫 하고 떨려왔다.
“이제 그만 하세요, 아빠. 우리 이제 더 이상 이래선 안돼요.”
“뭐…뭐야? 너 지금 무슨 소리 하고 있는거야?”
혜미가 성태에게 한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이젠 여기서 끝내야 해요, 아빠.
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뭐??”
성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며 다가서는 혜미를 쏘아본다.
혜미의 표정에는 전혀 두려운 빛이 엿보이질 않는다.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저도 그 사람 좋아해요…
저 그 사람 사랑해요.
정말….그 사람이 너무너무 좋아요…!”
“흥! 뭐야 이거…어이가 없군 그래…그래서 뭘 어쩌라고?
사랑하는 놈이 생겼으니 지금 나더러 축하라도 해달라는거냐 뭐냐???”
성태의 목소리에 비웃음이 가득하다.
또다시 사나운 어조에 목소리를 더 높이며 위협적인 태도로 변해가고 있다.
뭔가 당혹감에 이래선 안되겠다는 위협감을 느끼고
윽박지르자는 자세로 심경의 변화라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혜미의 목소리는 전혀 떨림이 없다…동요되지 않고 있었다.
“네, 그래요.
아빠의 축하를 받고 싶어요.
진심으로 아빠한테서 축하를 받고 싶어요.
왜냐하면…아빠니까요.
저한테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제 아빠니까요…”
뭐야?
짧은 당혹감이 또다시 뇌리를 스치며 성태가 혜미의 얼굴을 쏘아본다.
“그래요…아빠니까요…
저한텐 아빠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저한테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빠 말고는 아무도 없어요…
알아요…
엄마한테서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그래서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러우셨을지…
그리고…그리고…제가 얼마나 그만큼 커다란 미움으로 아빠에게 다가왔는지….
직접 당해보지 않아서 느낄 순 없지만….그래도…알아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요…
제가 아빠한테….아무리 아빠를 위해 뭔가를 희생한다 하더라도….
아빠에게 끝내 보답할 수 없다는 거 잘 알아요…
엄마도 저도…그럴 수 없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하지만…이젠 끝내야 해요….
더 이상은 이래선 안돼요…
그게 제 자신을 위해서도….
아빠 자신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해요.”
혜미는 조금도 멈춤이 없이 평온하고 부드럽고 침착한 목소리로 나직히 말을 이어나갔다.
성태는…
어느덧 사나운 기세가 사라진 채로 묵묵히 그런 혜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혜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음 속에는 뭔가 알 수 없는 묘한 느낌들로 가득한 채로
가슴이 답답해 옴을 느끼고 있었다.
“저 그 사람을 좋아해요…
그 사람 만나고서…
제 모든 것이 바뀌고 있어요…
몸도…마음도…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도요….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란게 어떤 것인지를 깨닫고 있어요.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서로를 감싸안으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깨달아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그렇기 때문에…
저도…이젠 더 이상은 이래선 안돼요…
계속 이렇게….계속 맴돌고 싶지 않아요…
이젠 끝내야 해요.”
성태는 뭔가….
자신의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의 파도가 몰려듬을 느끼고 있다…
당혹스럽다…
당혹스럽다…
도대체 이게 뭐야….이런….
이래선 안된다고 순간 판단한 성태가 차가운 목소리로 혜미에게 쏘아부친다.
“흥!!! 너 지금 정신이 돈거 아니냐?
뭐라고 혼자서 중얼중얼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를 지껄여대고 있으니…
어디서 대단한 놈이라도 하나 물었다 이거냐?”
“아뇨!”
혜미가 힘있는 목소리로 짧게 대답한다.
“아뇨, 아니에요.
그 사람이 대단해서 좋은게 아니에요.
그 사람이 대단해서 좋아하는게 아니에요,
그 사람 저한테 특별히 대단하게 대해준 것도 없어요.
그 사람…평범해서…저에게 너무 평범하게 대해줘서 좋아하는 거에요.
그냥 남들이 모두 그러는 것처럼….그렇게 평범해서 좋아하는 거에요.
대단한 사람은 아빠였지요.
대단한 사람은 성욱 씨였어요.
그리고 대단한 사람은 저였어요.
평범한 사람들은 하지않는,
평범한 사람들은 하려고 생각하지도 않는,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못하는….
그런 짓을 한 사람이 아빠에요,
성욱씨가 저를 그런 식으로 대했어요.
그리고 제가 똑같이 그런 식으로 살아왔어요.
하지만 이젠…그런 거 싫어요.
그런거 이젠 다 흘려보내고 싶어요.
어디론가 멀리멀리 훌훌 털어버리고 싶어요.
이젠 평범해지고 싶어요.
평범한 아빠를 갖고있는…평범한 딸이 되고 싶어요….
평범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그런 평범한 여자가 되고 싶어요…
아빠…저 아빠 곁을 떠나지 않아요…
아빠 곁에 있을거에요….
아빠가 무서웠어요…
아빠가 싫었어요…
아빠가 미웠어요…
아빠가 원망스러웠어요…
그렇게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피하려하고 숨을 생각만 했어요…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두려워하지도 미워하지도 피하지도 숨지도 않을거에요…
아빠 곁에 당당히 남아있을거에요.
그 사람을 사랑하고…그 사람과 함께 해도…
제가 아빠 모실께요…잘할께요…아빠한테 사랑받을께요…
꼭 아빠 맘에 들 수 있는…착한 딸이 될께요…
아빠…그러니 더 늦기 전에…제발 부탁이에요…
이젠 우리 더 이상 이래선 안돼요…
모든 걸 여기서 끝내야만 해요….!!
아빠…할 수 있어요 우린….
지금 이순간부터라도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거에요…
우리가 결심하면…
지금부터 잘할 수 있어요…!”
혜미는 자신도 모르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아빠에게…해보지 못했던….
감히 그래보지 못했던….
마음 속 가득히….
자신이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생소한 말들을….
하지만 진심에 가득찬 목소리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심정으로…
그렇게 성태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성태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그래…맞아…!!
….라고 혜미는 생각했다…
아빠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어…
아빠에게 진심으로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혜미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뜨거운 눈물이 혜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따뜻한 체온을 가득 담은….
따뜻한 진심을 가득 실은….
뜨거운 눈물이…
그렇게 혜미의 눈에서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혜미가 한걸음 더 성태에게 다가서며…
따뜻한 손을 내밀어…
우두커니 서있는 성태의 손을 잡았다…
아빠의 손이 따뜻해….
아아…아빠의 손이 따뜻해….
그래요…맞아요….
아빠…혜미가 잘할께요…
혜미가 꼭 잘할께요…
엄마가 아빠한테 잘못한거….
혜미 때문에 원망스러웠던 아빠의 그 아픔….
제가 다 씻어드릴께요…
제가 보상해드릴께요…
제가…아빠 상처까지 함께…함께 감싸안을께요…
혜미의 몸이 덜썩덜썩하며…떨렸다…
혜미는 그렇게 흐느끼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아빠의 눈을 바라보았다.
성태의 마음 속이….
온통 밀려오는 혼란을 어쩌지 못하고…
어지럽게 떨리고 있었다.
마음 속의 이 급격한 흔들림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이…이런 빌어먹을….
도…도대체…
이게 뭐야….
이게 뭐야 도대체….
이 아이는….
이 아이는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이 아이는….이렇게…이렇게….
성태는 멍하니 자신도 모르게 혜미의 슬픔에 가득 찬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혜미의 눈이…
혜미의 저 눈은….
성태의 눈이 갑자기 경악에 가득찬 채로…커다랗게 떠졌다.
저 눈은….
저 눈빛은….
저…저…
성태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순식간에 거대한….거대한…격정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부들부들….성태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눈…눈!!!
저…저 눈은..!!!
태훈!!!
태훈의 눈이다…!!!
아…안태훈이라는 놈의 그 눈빛이야!!!
성태의 몸이 격정으로 인해 더욱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혜미의 따뜻한 손에 감싸쥐인 성태의 손까지…
함께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저 눈…저 눈…!!!
성태의 머리 속에 한 순간에 과거 어느 순간의 일이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다.
그 날 밤의 일이….
그 날 밤도…그 날 밤…
태훈은 술에 가득 취했어도….
술에 가득 취해 벌겋게 달아올린….얼굴로
눈에….눈에…지금의 혜미처럼 눈물이 가득한 채로…
자신에게…그렇게 말했다…
자기대신…옥임과 혜미를….
자신의 아내와 딸을 행복하게 해달라고….
20여년 전….
옥임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 모든 악몽이 시작되었었다…
옥임을 처음 본 순간부터…
성태는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세상에 태어나….
고아로 자라나면서…
세상의 모든 풍상을 맛보고 자라난 성태에게…
옥임의 첫 모습은…
그 첫 느낌은….
도저히 자기자신의 떨림과 설레임을 주체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고아원 친구인 태훈이 원망스러웠다.
미웠다.
저주스러웠다.
이 놈은….
이 빌어먹을 자식은…
고아원에서 함께 자랄 때부터…
자기와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많이 달랐다…
혼자서 온갖 착한 척은 다하고…
혼자서 온갖 성실한 척은 다하면서…
원장선생님과 고아원 선생님의 칭찬이란 칭찬은 독차지했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나와는 너무 달랐다…
나와는 너무 달랐어…
태훈이 이 재수없는 자식!!!
네 놈의 태어날 때부터 착하고 순하기만 한….
그런 바른생활 사나이의 모습은 나랑은 너무 안맞았어!!!
역겨웠다…질투가 났어!!!
네 놈 따위한테는 질 수 없다…
네 까짓 자식한테는 절대로 안진다…
두고 봐라…
두고 봐라…
난 꼭 네 놈보다 성공한다.
난 꼭 네 놈보다 보란듯이 잘 살거다!!!
떵떵거리면서 그렇게 살거다!!!
네..네놈은 세상을 너무 몰라!!!
세상이 얼마나 참혹하고 냉정한지를….
세상이 얼마나 비열하고 더러운 곳인지를…
네 놈은 몰라!!!
네 깟 놈은 모른다고!!!
이 빌어먹을 우둔한 샌님 같은 자식아!!!
네가 세상을 알아?
넌 몰라 넌 모른다….
너나 나나 세상천지 발 붙일 곳 없는 고아로 자라났다!!!
자, 봐라
태어나자마자 버림 받았다!!!
이게 세상이다.
이게 세상이라구!!!
난 너 같은 우둔한 샌님이랑은 다르다!!!
세상이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세상을 그렇게 대하면서 살아갈거다!!!
그리고 꼭…꼭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내것으로 만들면서 살아갈거다!!!
지지않는다..
지지않아…
난 절대로 지지않는다!!!
특히 너 같은 놈한테는 더더구나…
두고봐라….
두고봐라…!!!
그리고….
이를 악물고 갖은 수모를 버텨가면서…
세상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지독하게 살고 있었다.
미친듯이 앞을 보면서 살고 있었다.
어렵게…성실하게 살아가는 태훈보다 더 열심히…
더악착같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서울에서 힘들게 갓 결혼한 태훈에게…
자신의 일은 잘 풀리고 있다고 자랑하며…
더 돈벌이가 되는 직업을 소개해 주겠다고 생색까지 내 가면서…
그 놈을 강릉까지 불러들였다…
그 놈에 대해 어려서부터 갖고있던 열등감….
속 시원하게 하나하나 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하지만….
빌어먹을!!!
이런 젠장!!!
하늘은….하늘은…
도대체 어째서 하늘은…!!!
옥임 씨 같은 여자를 태훈이 같은 새끼한테 점지어 줘버린거란 말이냐!!!
옥임 씨 같은 여자를….
바로바로….내가 꿈 속에서나 그리던 그런 여자를….
하필이면….
하필이면…
태훈이 같은 병신새끼에게!!!!
태훈이 같은 머저리 새끼에게!!!
옥임이 힘들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다.
옥임이 지쳐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맥이 풀린다.
내 곁에 둘 수만 있다면…
내 곁에 놔 둘수만 있다면…
가져오고 싶다…
내 곁으로 가져오고 싶다…
빼앗아 오고 싶다!!!
내 여자로 만들어 버리고 싶다!!!
옥임의 모든 것을 가지고만 싶다!!!!
옥임아!!!
옥임아!!!
미친듯이 부르짖었다.
술도 마셔보았다.
다른 술집 년들을 품에 안고 그 년들의 몸 속에 내 것을 마구 쑤셔넣으면서,
그 년들의 얼굴 위로 옥임의 쾌감과 희열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포개얹어보았다…
하지만….그런 옥임을 품고 있을 것은….
하필이면 그 머저리 같은 태훈이라는 놈!!!
그…그 새끼가…
밤마다…옥임의 위에 올라타서는…
옥임의 예쁜 얼굴과 그 고운 몸을….
미친듯이 빨고..핥고…
이…이런 젠장…
이런 씨팔!!! 이런 씨팔!!!
태훈이라는 새끼…
죽여버리고 싶어…
죽여버리고 싶다!!!
옥임이 병으로 쓰러지고, 태훈이 성태를 찾아왔다.
기회다!!!
태훈이 놈을 제거하고 옥임이를 내 여자로 만들 수 있는 기회!!!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
아니야, 아니야!!!
이것은…이것은…
저…저…빌어먹을 하늘이…
좋은 일이라곤 태어날 때부터 한번도 내게 주지 않았던
저 지랄같이 빌어먹을 하늘이….
하늘이 내게 실수로 보여준 단 한번의 틈!!!
이 틈을 놓쳐선 안된다!!!
절대로 놓쳐선 안된다!!!
악마와…계약을 해도 좋다!!!
악마가 내민 계약서에 싸인을 찍는다.
기꺼이 찍는다!!!
주저없이 찍는다!!!
성태는 태훈에게 옥임을 살리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큰 돈이 필요할 것이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태훈에게 그 순간 목숨보다 더 필요했던
옥임을 살릴 목돈을 벌 수 있는 방법….
밀수를 권유했다.
밀수거리를 소개해 주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라고 태훈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태훈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아내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집념에 사로잡힌…
태훈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냉철한 이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아주 간단했다.
큰 밀수거리를 소개하고선
아는 이를 통해 경찰에 밀고했다.
현장에서 태훈은 체포됐다.
실형을 선고받았다.
태훈이 주변에서 사라지자,
옥임을 찾아갔다.
재빨리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병마에 시달리던
옥임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옥임을 대신 돌보았다.
옥임을 정성껏 돌보면서 말했다.
태훈이 나쁜 짓을 저지르다가 경찰에 체포될까봐 도주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떤 아는 사람의 소개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도주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만 기다리고 일이 잠잠해지고 안전해지면
그때 다시 태훈을 만날 수 있을거라고 안심시켰다.
옥임과 연락이 전혀 닿지못하자 감옥의 태훈은 초조했다.
미칠듯한 심정에 태훈은 탈옥을 두번이나 시도했다.
그러나 두 번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장발장이 굶주리는 동생을 위해
빵 한조각 훔치다가 체포되어 그 죄로 가혹한 실형을 선고받고,
집에서 자신을 초조하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동생을 위해
탈옥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여 19년의 감옥살이를 했듯이….
태훈 또한 그렇게 형량이 더 얹어졌다.
형량이 더 길어지고 말았다.
태훈이 그렇게 옥임과 혜미를 그리워하며
가혹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무렵,
성태는 옥임에게 태훈의 사망신고서를 내밀었다.
배가 바다에 가라앉아 태훈이 그렇게 희생되고 말았다며…
옥임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통곡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잃었다면서 흐느꼈다.
위조된 사망신고서를 병약한 옥임이 알아볼리가 없었다.
옥임은 어린 혜미를 껴안고서 오열했다.
몇 번이나 정신을 잃고 까무라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성태도 괴로웠다.
괴로워하는…힘들어하는….
옥임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혹시 옥임조차도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여…불안하고 초조했다.
옥임을 지켜야만 한다…
내 여자로 만들어야만 한다…
울지마라, 옥임아…
제발 울지마라…
제발…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내가 지켜줄게….
너를 힘들게 한만큼….
태훈 이상으로…
너에게 잘할게…
성태는 좋은 대도시의 병원으로 옥임을 옮겨 수술을 시켰다.
옥임을 치료하도록 했다.
정성껏 치료했다.
수술과 치료 덕분에….
다행히 옥임의 건강도 나날이 호전되어 갔다.
그리고…결국….
성태는…끝내는 옥임의 마음을 얻었다.
어린 혜미를 위해서라도…
가엾은 혜미를 위해서라도…
옥임은 성태에게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위해 비참하고 외롭게 죽어간 가엾은 남편 태훈에게…
마음 속으로 용서를 빌고 또 빌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옥임은 그렇게 성태의 품에 안겼다.
옥임을 품에 안은 성태는…
즐거웠다…
설레었다…
행복했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진정한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두려웠다…
언젠가 태훈에 의해 이 행복이 깨질까봐…
두려운 마음이 언제나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옥임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거기서 그동안 벌어 모았던 돈과 인맥으로
성태는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했다.
성태의 수완이 좋았고 성격이 모질었기에 다행히 사업은 잘 풀려나갔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인천으로 사업장을 옮기고 서울에도 집을 얻었다.
태훈의 소식은 없었다.
탈옥을 시도하다가 형량이 얹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는 이를 통해 들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태훈이 영원히 사라지기를 원했다…
몸이 바빠지면서
점차 태훈의 일도 깜박하며 잊어갔다.
혜미는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
건강했다.
총명했다.
마음씀씀이가 깊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하지만….
착하고 마음씀씀이가 깊은 혜미의 모습은….
혜미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꺼림칙했다.
혜미의 그런 모습은….
아아…혜미는 역시 나의 피가 아니구나…
….라고 성태가 느꼈다.
그리고 태훈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으로…
성태는 자신도 모르게 어린 혜미에게 더욱 냉정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생겨 잠깐 집으로 들르던 성태의 눈에
혜미가 웬 낯선 남자와 함께 놀이터 주변에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성태는 가슴이 철렁했다.
태훈이었다…
예전의 밝은 모습이 아닌…
사나운 운명에 시달린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자신이 그 사나운 운명 속으로 몰아넣었던 친구 태훈이었다.
저 자식이….
내 어린 시절부터의 증오와 질투의 대상이었던 저 자식이…
마침내…
마침내…복수하러 나타났구나…
나에게서…
옥임을 빼앗기 위해 나타나고야 말았구나!!!
성태는 그날부터 혜미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태훈이란 놈은 어린 혜미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다행히 옥임은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다.
태훈이 자식이 아직 옥임의 앞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옥임은 나와 함께 사는 적지않은 세월동안….
아직도 완전히 나의 여자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옥임의 마음을 그렇게까지 잡지는 못했다…
옥임은 줄곧 전 남편 태훈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성태는 괴로웠다…
태훈에 대한 적개심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옥임까지도 덩달아 원망스러웠다..
“몸은…네 몸은 내 곁에 있어도….
마음만은 여태껏 태훈의 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단 말이냐??
결국…결국…내가 가진 것은….
네 텅 비어있는 몸뚱아리 뿐이란 말이야??
내가..내가…어때서?
내가 도대체 태훈이 놈보다 못한게 뭐가 있어서??
그놈이 뭔데!!!
도대체 그깟 놈이 뭐라고!!!”
태훈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아아…옥임은 다시 태훈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안돼!!
절대로 안돼!!!
성태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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