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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자전거 - 단편

-자전거-



간호사들이 쑤근대는 소리에 나는 귀에 꼽고 있던 i-POD를 뽑아 버렸다. 음악 좀 우아하게 들어 보려는데 도와주는 게 없네 라고 투덜대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이렇게 시끄럽데?’



‘아니오, 김 선생님…’



‘아니긴, 아까부터 시끄러워서 음악을 들을 수가 없네, 도대체 무슨 일이래?’



‘저 그게요, 아니에요….괜한 얘긴데…..’



‘무언데 어서 해 봐요.’



나는 화가 나기도 해서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이러다 또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사람들이 놀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내 사정이야 이제 뻔히 다 아는 거, 안면 까기로 작심해 버렸다. 서울을 떠나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 정신요양원에 온지도 벌써 3주가 다 되어 간다. 특별한 환자들 만이 이송되어 오고, 도심지에 위치한 일반 정신병동에서 안정을 찾기 어려운 케이스가 수두룩 뻑뻑한 이 곳을 자원한 이유는 단지 공기 좋고, 조용하기 때문이란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근무하는 의사들에게 주어지는 사택이 있다는 점이었다. 집에 대한 부담도 없이, 걸어서 다닐 만한 곳에 직장이 버티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좋은 조건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진짜 이유를 대라면 그것은 혼기를 놓친 나의 주변머리가 바로 그것 이었다. 의대를 다니면서도 열씸히 남친 들을 꿰차고 결혼에 보기 좋게 골인하거나 국가고시를 보고 나서 보란 듯이 띵띵한 집안에 시집가던 친구들에 비해서 내성적이고 새침하기 이를 데 없던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변변한 남자 친구 하나 없이 여기까지 와 버린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지 모른다. 가족들을 떠나 온 것도 하루가 다르게 극성을 떨어대는 식구들의 결혼 재촉이 도화선이 되었는지도….



‘저 이런 얘기 들어 보셨어요?’



‘무슨 얘기요?’



‘당직을 설 때, 무슨 이상한 소리 들으신 것 없으시냐구요.’



‘아니요?’



정신병동에서는 밤만 되면 잠도 안자고, 혼자 독백을 한다 랄지, 노래를 계속 부른다든가, 어떤 환자는 벽을 계속해서 쳐대기 때문에 소리에 대해서는 좀 둔감해져 있는 것이 근무하는 사람들의 중평 이었지만, 특별히 소리에 대해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입방아를 찧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런 환자들 때문에 저녁 때에는 환자들의 용태에 따라 안정제의 용량을 조금 변칙적으로 처방 하는 예가 흔했다.



‘그게 좀 이상해서요.’



‘뭐가요?’



‘저 이런 말씀 드리면 좀 뭐하지만, 선생님께서 당직을 서실 때에만 누군가 노래를 부르거든요. 모니터를 살펴 보아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없었고, 모두 잠을 자고 있는 듯 한데, 그 노래는 아침에 선생님이 병원을 나가실 때 까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불려지다가 선생님이 가시거나 간호사가 병동으로 살펴보려 가면 뚝 그치거든요.’



나는 머리칼이 쭈뼛 솟는 것 같았다.



‘그럴리가요? 저는 아직 못 들었는데….’



‘당직 서실 때, 무서우실까 봐 저희가 말씀 못 드렸거든요. 오신지도 얼마 되지 않으시고 해서….별일 아닐 거에요. 간혹 그런 환자들이 있거덩요. 제 옆에 정 간호사도 그런 일이랑 비슷한 걸 겪기도 해서….’



대개 무의식의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은 환자들에게도 오감은 열려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약을 갖고 가는 간호사의 발자국 소리라든가, 목소리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바지를 까 내리고 정확하게 마주치는 순간에 몸을 향해 좇물을 뿌려대고 즐거워 하는 변태적인 환자와의 에피소드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야 뭐, 밤에 리시버 꽂고, 음악 들으면서 책 읽는 것이 전부라 못들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일이 있으면 보고를 하지, 그렇게 뒤에서 소란을 떠나, 떨기를!’



나는 그러면서도 오늘 밤에는 음악을 듣지 말고, 그 노래가 어디서 흘러 나오는지 알아봐야 겠다고 다짐을 했다. 만일 그게 사실 이라면 나도 나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 였다.



‘잠자코 기둘려 봐요. 꼬리가 길면 잡힐 테니…..’



나는 일부러 평소에 하지 않는 순찰을 수간호사와 같이 돌았고, 이상하게도 그 날 밤에는 찍소리 하나 들리질 않고 지나가 버렸다. 아침 나절에 업무 인수인계를 하면서 졸린 눈을 부비고 서 있는데, 정간호사가 어서 집에 가서 눈 좀 붙이고, 오후에 나오라고 성화가 대단 했다.



‘귀신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고, 어제는 조용하게 지나갔죠?’



나는 졸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정간호사에게 되물었다.



‘그러게요….’



평소 퉁명스럽기로 소문난 정 간호사의 대답은 해프닝이 없어서 섭섭했네 하는 눈길 이었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병원 현관을 나섰다. 멀리 보이는 집으로 가던 중, 나는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비퍼 때문에 멈추어 섰다. 핸폰을 꺼내서 전화를 연결하고 보니 정간호사 였다.



‘저…저…..김 선생님…..선생님이 나가시고 나서 복도에 그 노래가 다시 퍼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전화기 들고 복도로 뛰어가 볼께요…..어제 말씀 드렸던 그 C동이요…… 들으실 수 있을 거에요…….들려요?……들려요?…’



그러나, 헐레벌떡 걷는 숨소리와 모깃소리 만큼 작은 잡음들이 전화기를 통해 전달되고 있었지만 나는 구분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임을 정간호사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의문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전화를 끊을 수는 없었다.



‘…….거 참 이상하네. 노래 소리가 이렇게 뚝 끊어지나? 선생님, 그 사이에 뭐 들으신 것 없으세요?’



‘아니요! 전화상으로는 구분도 잘 안가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별일 없으시면 이따 오후에 뵐께요.’



나는 전화를 끊고 집으로 다시 향하고 있었다. 어차피 C동이라고 하면 내 소관이고, 개인 면담 시간에 넌지시, 우회적으로 알아봐도 될 것을, 괜시리 저렇게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그래 왔지만 레지던트 시절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서 제일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서슴없이 누가 깨우지 말고, 한도 없이 잠 좀 자 봤으면 이라는 게 내 소망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였지만 전공 서적에 치이고, 회진 시에 담당 교수에게 지적 받지 않아가며, 표준 케이스 환자에 대한 브리핑 때, 언제나 기본적으로 머리 숙이고 들어야 했던, 그 헛소리에 개나발 떨지 않으려면 잠을 푹 자 둬야 했건만 언제나 쾡한 모습으로, 매일 입고, 책상 위에 쓰러져 잠이 드는 의사 가운 조차, 깨끗이 빨아 입을 경황도 없이 지나가 버린 나의 젊은 시절은 모자란 잠으로 얼룩진 고통의 시간들 이었다고 밖에는 기억되질 않았다. 그에 대한 보상을 여실히 돌려 받고 싶은 것도 사실 이었지만, 이제는 의사에 대한 개념도 많이 바뀐 것이 사실 이었다. 든든한 빽줄로 대학병원에 남지 못하게 되면 그 즉시, 월급쟁이로 변 다른 병원의 보조의로 취직하지 않고는 먹고 살 길이 막연해 지고, 튼튼한 재력도 없고, 목 좋은 자리를 잡지도 못한 개업의들은 다른 직종의 사람들 처럼 파산하기도 하는 그런 직업군 으로 바뀌어 있었다. 너무 많아진 의사는 이제 세일즈맨 같은 형태로 마케팅을 하면서 호객행위를 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내가 왜 그런 쌩고생을 사서 했는지 기가 찰 뿐이었다.



‘띵동, 띵동, 띵띵띵띵….’



나는 잠결에 그 재수대가리 없이 마구 눌러대는 초인종 소리가 꿈 인줄 알고 무시하려 했었다. 이런 구석진 곳에 나를 찾아 올 인간이 도대체 뉘기야? 아! 짜증나 죽겠네, 달게 자고 있는데……



‘누구..세요?’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도 못하면서 문을 열었다.



‘짜잔!’



‘이게 누구야? 진석이 아니니?’



‘고모, 놀랐지롱? 학교 축제 기간이라서 놀러 왔지. 그런데, 그 꼴이 뭐냐? 잠옷이나 제대로 입고 살지… 암튼 선머슴 같은 건 여전 하다니깐….’



나는 그때서야 내가 팬티에 런닝 차림인 것을 알았다. 그 애는 다름아닌 서울에서 신촌밥을 먹고 있는 대학 초년생 조카 진석이 였다. 달랑 노트북 하나 들고, 이곳으로 내려 온 걸 보니 심하게, 그것도 아주 열나 심하게 찐짜 붙으면서, 용돈을 긁어갈 모습처럼 보였다.



‘너 또 용돈 궁해서 내려왔지? 엄마, 아빠가 돈줄을 졸라매디?’



‘대가리가 크고 나니 어디 손 벌릴 곳이 마땅히 있어야쥐, 고모야 아직까정 씽씽, 씽씽글 아니유? 그러니 이렇게 암행차 내려 왔지. 나 한 이틀만 개기다 올라갈게. 올라갈 때 복채나 좀 채워주지? 섭섭치 않게, 어흠….’



‘이건 무슨 지랄 같은 태클? 요게 아주 조폭 수준이네, 너 고모 괴롭히면 국물도 없어? 조년히 컴퓨터나 뚜들기고 잠이나 퍼 자다 올라가, 아님 정말 복채도 없이 지랄을 만들어 준다, 알았지? 고모, 오후에 나가야 돼. 너무 졸리다. 배고프면 알아서 챙겨먹어.’



그 날 오후에 집을 나서는데 나는 조카이긴 하지만 저녁에 들어 올 때는 불꺼진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은 필요한 모양 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또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진석이가 없는 자리는 오기 전보다 더 크고 공허해 보일 거라는 생각이 뒤따르고 있기도 했다.



‘신 간호사 님, 오늘 C동 개인면담자가 누구죠?’



나는 아침의 일도 있고 해서 개인 면담 시에 노래를 부르는 문제에 대해서 과연 누구의 짓인지 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신간호사가 보여준 차트에서 빨간 줄이 그어져 있는 사람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곳으로 이송되어 온 환자 였다. 이름은 신 준호, 나이 31세, 직업 수리공… 그러나, 그의 병실은 다른 곳과 달리 격리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법정에서 실형 대신 치료감호의 처분을 받고, 복역하는 정신질환자 였기 때문이었다. 맨 처음부터 이곳에 있지 않았지만 우리 병원의 치료 내력에 많은 점수를 주었는지, 이곳으로 이송되어 특별감시와 아울러 정신과 치료를 겸해서 받고 있는 중이었다. 간호사들은 그의 내력에 대해서 일편적인 것만을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었지만, 유달리 다른 환자들 보다도 가기를 꺼려 하는 것은 사실 이었다. 맨 처음 그 환자의 챠트와 신상자료를 재판부 로부터 넘겨 받을 때, 나는 숨이 멎는 줄 알고 혼이 났었다. 무려 일곱 명이나 되는 건장한 남자를 엽기적으로 살해한 그는 재판에서 의도적 살의에 의한 살인죄로 사형을 면키 어려 웠지만 말도 못하고, 정신도 완전히 나간 상태라, 재판부도 어쩌지 못하고 치료감호의 처분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는 후문 이었다. 그는 도무지 대화도 되질 않았고, 똥오줌도 못 가렸으며, 단순하게 삼키는 동작도 못해서 호스로 유동식을 직접 주입하는 형편이었다. 앉혀 놓으면 앉은 대로, 세워 놓으면 세워 놓는 대로, 뉘여 놓으면 뉘여 놓는 대로, 고대로 있다가 굶어죽을 위인 이었다. 나는 우선 그를 만나기로 했다. 어차피 들어먹지도 못할 것이고 빨리 끝내고 다른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나의 조급함 때문이었다.



‘안녕하셨어요, 신준호씨?’



대답을 하던 말던 환자와는 언제나 눈을 바로 맞추고 정확히 들리도록 인사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의식이 있던, 의식이 없던 간에 오감을 통해 지속적으로 누군가가 접촉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줌 으로서 환자의 잠재의식과 본능, 저 깊은 곳에 영향력을 전달 할 수 가 있는 것이었다. 동공검사를 하고, 여러가지를 질문 해 보아도 초점 없는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답이 없었다. 나는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병실로 데리고 가라고 일렀다. 내가 괜한 걱정을….그 날 오후를 다 보내고, 일일이 C동의 환자들에게 노래를 불렀냐는 것에 대한 심증을 다구쳤지만 허탕이었다. 힘들고 긴 하루였다. 나는 지친 다리를 끌다시피 하면서 밤이 이슥해서야 병원 문을 나섰다. 아직 소등이 되려면 한참을 있어야 하는 그 즈음이면, 나는 병원을 나와서 되돌아 병동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 불이 켜진 병동, 무슨 공장 같아 보이기도 하고, 저기 멀리 보이는 창문에 누군가 밖을 보며, 검은 실루엣에 싸여 망연히 서 있었다. 앞날에 대한 희망도 없고, 자신이 과연 무얼 하고 있는지 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기어이 늙으막에 가서 정신이 든다면 어떨까? 거울 속에는 못 보던 노인이 앉아서 눈물 흘리고 있는데, 그것이 자기라고 사람들이 말해 줄 때, 아마도 그 사람은 그래도 젊었던 기억으로 미쳐 있었을 때가 더 좋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짤깍’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 온 집안은 쿵쾅거리는 소리로 가히 아수라장 나이트를 방불케 하고 있었다.



‘이게 뭐냐?’



고놈의 진석이가 자신이 들고 온 노트북의 출력포트를 케이블로 TV에 연결하여 내는 소리였다. 화면에는 희안하게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두 사람의 노인이 있었고-아마도 컴퓨터 그래픽 인듯-, 흥겨운 랩이 흘러 나오고 있었는데…



‘고모 왔어? 이거 몰라? 조PD의 그 노래, 이 노래에, 이 춤 못 추면 요새 인간 취급을 못 받는 다니깐? 와, 나이 먹은 인순이 아줌마, 저렇게 노랠 잘하나?’



화면의 춤을 따라 하면서도, 연신 그 벅찬 빠르기의 랩을 잘도 따라 한다.



‘너, 하라는 공부는 않하고, 줄창 이런 것들만 노트북에 다운 받는 거니?’



‘고모두 참, 이런 걸로 하드디스크 평수 좁힐 일 있나? 이거 뮤직비디오만 모아 놓은 싸이트에서 보여주는 거야. 얼마나 좋은데, 최신곡도 얼마나 많고….’



‘그래? 옛날 노래도 있구?’



‘아, 쫌 가만 있어봐, 이 부분이 압권인데, 가만 쫌 있어보지?’



나는 보기에도 웃음이 나오는, 게다가 머리까지 벗어진 40대가 훨씬 넘어가 보이는 중년의 나이에 멋들어지게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화면을 바라 보고만 있었다. 곡이 끝나고, 나는 밥도 먹기 전에 진석이의 노트북에 달겨 들었다.그 싸이트에는 뮤직비디오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언제나 오락 프로그램의 끝자락 에나 감질나게 보여주다가 끝나버리는 그 뮤직비디오가 말이다.



‘진석아, 그 돈이 어마장장 들어갔다는 삘릴린가 뭔가 하는 것도 있니?’



‘아휴, 쉰세대 아니랄 까봐 삘릴리가 뭐유? 이수영꺼 말이지? 있을까 몰라. 그것 보다도 이수영이 내놓은 리바이벌 앨범, 클래식의 뮤직비디오가 짱인데…’



나는 그 목록에서 내가 예전에 너무나 좋아하던 노래의 제목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석아, 고모 이것 좀 틀어주라.’



이윽고, 화면에는 대장금의 여주인공이 차 안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왔다.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차 옆을 지나가고, 여주인공은 소스라치게 누군가를 본듯한 얼굴로 차를 꺾어 따라 가려다 접촉사고를 내고….. 뮤직비디오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하얀 꽃가루가 휘날리는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두 연인의 모습이 엔딩될 때까지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모, 왜 그래, 울어? 우는 거야? 야, 이거 고모 한테 이런 멜로스런 면이 있는 줄 몰랐네. 그만 울고 나 밥이나 줘, 얼릉?, 뛰었더니만 내장이 그만 지랄이네.’



‘아니야, 나, 갔다 올 때가 있어… 진석아, 네가 그냥 아무거나 차려 먹어…’



‘이런, 지랄이 또 어디 있나?’



나는 신경질을 내는 진석이의 푸념도 뒤로 한 채, 미친 듯이 자전거를 몰고 병원으로 다시 달렸다. 아니야, 아닐 거야…..



‘덜컹!’



닫힌 병원문 앞에 서서 나는 인터폰으로 당직을 불렀다.



‘저 김선생 인데요.’



이윽고 문이 열리고 나는 당직 데스크로 달려 올라 갔다. 마침 데스크에는 정 간호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퇴근 하신 거 아니세요? 뭐 잊어버린 것이라도……’



‘아니에요, 아까 개인 면담을 빼먹은 환자가 있어서….저 게이트 좀 열어 주세요.’



‘이 밤에 병실로 직접 가시려구요? 수간호사 부를까요?’



‘아니에요, 별로 위험한 환자 아니니까, 저 혼자 들어가면 되요.’



나는 열쇠를 틀어쥐고, 복도를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불이 커진 복도의 낭하를 타고 가느다란 그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귀신의 곡처럼 들리기도 하고, 마치 흐느낌 같기도 하고…..



‘짤깍’



나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작은 미등만이 보이고, 환자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노래는 그쳐 있었고…..나는 의자를 끌어다 침대 옆에 가만히 앉았다.



‘신준호씨!’



‘신준호씨! 제 말 듣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어요. 아까 창문으로 내다 보던 분이 신준호씨 맞죠? 저도 멋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 했어요. 그 뮤직 비디오가 아니었다면….누가 아니면 혼자 일어서지도, 앉지도, 눕지도 못한다는 분이 어떻게 그 시간에 내가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죠? 이야기 해 봐요. 그리고, 그 노래도 당신이 부르고 있었죠?’



‘……’



‘제 말이 틀렸나요?’



‘제가 정상이면 어떻하실 거죠? 검찰에 다시 고발이라도 하실 셈 이세요?’



나는 온 몸이 얼어 붙는 것 같았다. 넋이 나간 사람이라고 여겼던 그의 입에서 울려 나온 아름다운 목소리. 그것은 심금을 울리는 부드러움이 있었다.



‘아뇨! 어째서 그렇게 꽁꽁 미친 척하며, 숨어 있어야만 했는지 알아야 되겠어요. 나라도….’



‘그냥 미쳐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뻔 했어요. 진짜처럼…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질 않더군요. 맨 처음에는 정말 정신이 나가 있었더랬어요. 그런데, 점차 정신이 들고 보니 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게 드는 제 이중성 때문에 괴로왔구요. 제가 엽기적인 살인마라고 알고 계시죠? 그럴 거에요. 그것도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형들을 그렇게 무참하게 살해한 사람이 바로 저라는 것도…무려 일곱 명이나…..그러나, 그들은 죄 값을 받았던 거에요. 제가 입을 열지 않았던 것은 은하네 식구들의 도움 때문이었지요.’



‘은하는 누구에요?’



‘제 정신이 나가버렸다고 사람들이 그럴 때, 은하 아버님이 면회를 오셨었죠. 그냥 그렇게 미친 채로, 살아 가라구요, 뒷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시면서 저에게 마지막으로 고맙다고 하셨죠. 아마도 짐작 하셨었던 가봐요’



‘고맙긴 뭐가 고맙죠?’



‘은하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애인이었습니다. 저 혼자만의 짝사랑이었지만…….’



나는 그제서야, 그가 홀로 짝사랑 하던 여인의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스토리를 겨우 짐작할 수가 있었다. 자전거를 고치러 오가던 그녀를 대하며, 사랑에 빠진 그가 일곱 놈이나 되는 개돼지보다 못한 짐승들에게 짓밟히고 죽어간 사실에 대해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그 였기에 복수의 칼날도 그 만이 들 수 있었던 것……



‘모두가 내가 잘 아는 형들 이었죠. 언제나 껄렁 대기는 했어도 남을 해치는 법은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이었는데, 그 날은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체인이 빠지는 바람에 비를 쫄딱 맞으며, 이리저리 체인을 손보고 있던 은하의 곁에 그 형들이 다가간 거죠. 여름날, 하늘하늘한 원피스 차림에 비를 홀딱 맞았으니 온 몸에 옷이 들러 붙어 보기에도 사내들의 눈에 불을 붙였을 수는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밤중에, 한적한 곳이었다고 그 가여운 여자를 그렇게까지 해버리다니…..’



‘어떻게 되었는데요?’



‘형들은 자전거를 끌고, 은하의 입을 틀어 막은 채, 뒷편 야산으로 끌고 갔던 모양이에요. 한 사람은 망을 보고, 둘러선 놈들은 은하의 입을, 팬티를 벗겨 틀어막고, 팔과 다리를 붙들어 꼼짝도 못하게 하고서는 밤이 새도록 은하의 몸에 차례대로 몇 번이고 덮쳤다고 나에게 그러더군요. 은하의 보지가 쫄깃 했다느니, 앙탈을 부리다 지가 좋아서 꺽꺽 대며, 신음에다 지랄발광까지 했다는 둥, 무슨 자랑거리 처럼 제 앞에서 주절대는 통에 저는 눈이 확 뒤집어 졌죠. 은하는 살려달라고 분명히 얘기 했을 거에요. 붙들린 손과 발, 팬티로 막힌 입 때문에 반항 한번 못하고 밤새도록 일곱 명이나 되는 놈들에게 줄창 당한 겁니다.’



그는 이제 일어나 앉아 있었다. 어두운 방안 이었음에도 나는 온 사지를 떨고 있는 그를 확실하게 볼 수 있었고…



‘그래서 은하는 죽었나요?’



‘아뇨, 그 이후로 얼마동안 조용했는데, 언제나 가게 앞을 지나는 은하의 그 자전거 타는 모습이 그 이후로 보이질 않는 것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은하 아버님께서 은하의 자전거를 처분해 달라고 갖고 오셨죠. 이제는 더 이상 그걸 보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막 우시는 거였죠. 은하가, 은하가……..’



‘은하가 왜요?’



‘달려오는 전철에 몸을 날렸다고 하대요. ……..아무런 말도 없이………그 자전거를 붙들고 그 날 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날 새벽에 나는 은하의 자전거 바퀴를 떼어 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의 바퀴살을 잘라냈지요. 철사보다 강한 쇠꼬챙이인 그 바퀴살을 한움큼 만들어 그 새벽, 옹기종기 붙어 살고 있는, 그 일곱 놈의 목구녕과 눈깔에 그 쇠심을 줄창 박아버렸던 거죠. ……….제 발로 자수를 한 기억은 없는데……… 아마도 그때는 정신이 획 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다에요.’



그의 복수극은 잔혹하면서도 순식간에 끝을 맺었다. 그 공포스런 긴장감과 사람을 죽인다는, 그것도 일곱 사람이나 되는 사람을 빠른 시간 안에 몽조리 처참하게 죽여야 한다는 죄책감과 중압감은 일시적으로 정신분열 증상을 나타낼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도무지 치료의 효과에 반응하지 않는, 넋 나간 듯한 저의 상태 때문에 이곳으로 후송된 것이죠. 그 날, 저는 눈앞이 다시 환해지는 걸 생전 처음 느꼈습니다. 앰뷸런스에서 내리는 제 앞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는 선생님의 모습과 휘날리는 그 머리결, 그리고, 나를 향해 흘러 드는 그 상큼한 샴푸냄새……저는 은하가 다시 살아 돌아온 줄 알았죠. 운신조차 못한다는 저의 상태라고 알려진 정보 때문에, 그리고 흉악범이라는 이유 때문에, 저에게 살갑게 대해주시는 간호사 분들은 없더군요. 오히려 그게 더 자유스러웠다고 한다면 이상하게 들릴려나? 선생님께서 당직을 서실 때나, 병원으로 출근하시거나 퇴근 하실 때면 저는 무어라도 해드려야 하는데, 해드릴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자전거를 고치러 와서 언제나 버릇처럼 은하씨가 불러대던 그 노래를 생각해 낸 겁니다. 그게 오히려 선생님을 괴롭게 해드렸다면 사과 드릴께요. 이제 제 얘기는 모두 다 했습니다. 검찰에 다시 고발을 하셔도 저는 괜찮습니다. 혼자 노래를 부르며, 선생님이 머리 결을 휘날리시면서…….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모습을 훔쳐 보았던 지난 3주간…… 정말…….정말……..행복했었습니다.’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병실 문을 나왔다. 문을 닫으면서도 나의 뒤편으로는 흐느끼는 그의 애잔한 목소리가 가슴을 치고 있었고….



‘딸깍’



나는 잠겨진 내 방으로 들어갔다. 컴퓨터를 켜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만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찾아 들어간 그 싸이트, 뮤직비디오가 흐르고, 애잔한 이수영의 목소리가 어두운 내 진찰실의 공간을 메우고, 나는 자전거에 올라탄 행복한 두 연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왠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두근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그렇게 보고싶던 그 얼굴을

그저 스쳐 지나면

그대의 허탈한 모습 속에 나 이젠 후회 없으니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나는 평상시 처럼 자전거를 타고 병원을 나섰다.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나는 뒤를 돌아다 보았다. 역시 그는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고, 나는 평소와 다르게 그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언제가 될런지는 몰라도 그를 이 병원에서 내보내도 아무 의심을 하는 사람이 없는 날까지 나는 그에게 이렇게나마 손을 흔들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의 노래를 같이 누워서 죽기 전까지 듣고 싶기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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