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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말 - 4부3장(2)





오열을 하면서 안겨있던 유미가 조금씩 진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지영이 덧붙였다.


“그런 마음은.. 아주 소중한 거란다…”




“난.. 이제.. 내가..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괜찮아.. 희성이라면 틀림없이.. 널 받아줄 거야”




“그럴 리 없어요.. 그런 심한 짓을 하고.. 그렇게나 배신하고… 상처를 줬는데.. 그런 나를…”




“유미 넌 알고 있잖아.. 희성이가 어떤 애인지.. 그 아이라면..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거야”




죄책감에 짓눌려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기 직전의 유미로써는 그 말이 믿을 수가 없었다.




“… 희성이한테 용서 받고 싶어요.. 다시한번 희성이와… 하지만..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전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그저… 하지만.. 어떻게 하면… 뭐라고 용서를 빌면… 차라리 이대로.. 모르겠어요… 희성이에게 뭐라고 할지… 어떤 얼굴로… 아.. 누가 좀 가르쳐 줘요.. 나.. 어떻게 하면…”




끝없이 눈물만이 흘러 내렸다.




“유미야…”




부드럽고 따뜻한.. 마치 모든 것을 감싸 안는듯한 목소리였다. 옛날.. 채원과 현우를 향했던 것과 같은, 얼어붙은 세상을 녹여줄 것만 같은 온화한 봄 햇살 같은 눈빛이었다.




“희성이를 만나면, 네 마음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기만 하면 돼..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 내 마음이요?”




“그래.. 넌 충분히 잘 버텼어. 이제 더 버티지 않아도 괜찮아.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필요 없어.. 자.. 이제 좀 쉬자.. 힘을 빼고… 지금은 그냥 푹 쉬도록 해”




지영은 유미의 등을 쓰다듬으며 지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에게 부탁했다.




“아저씨.. 뒤쪽에 있는 책장에 브랜디가 있어요.. 좀 준비해 줄래요?”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지혜가 자신이 하겠다며 일어섰지만 지영이 말렸다.




“괜찮아.. 아저씨.. 브랜디에.. 좀 넣어주세요…”




지영의 의도를 알아차린 남자가 익숙한 듯이 브랜디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수면제의 효과로 유미는 금방 잠이 들었다. 쇼파에 누워있는 유미에게 지혜가 담요를 덮어주고 곁을 지키고 있었다. 까칠해진 유미의 얼굴을 미안한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맞다.. 파일 고마워요.. 훑어 봤어요”




지영은 가져온 가방에서 한권의 파일을 꺼내더니 남자 옆에 앉아 페이지를 넘겼다.




“짧은 시간 안에 여기까지 조사할 줄은 몰랐어요”




남자가 따라 준 브랜디 잔을 손에 든 지영이 호박색 액체를 한모금 넘겼다.




“아가씨도.. 이젠 제법 마실 줄 아는 걸요? 옛날엔 맥주 한모금에도 얼굴이 빨개지더니..”




“아저씨도.. 참… 그동안 채원이한테 많이 배운 걸요.. 어때? 지혜도 한잔 할래?”




“…아뇨.. 전 괜찮아요”




“정리를 좀 하자면.. 이쪽 일은 생각보다 간단 했어요… 우리 팀을 동원해서 경찰들 기록을 조사하면 되는데 뭐. 이 친구.. 옛날에 약품위생법 위반으로 한번 달려 들어갔던 전력이 있더라구요.. 생각보다 빨리 신원이나 출신지를 알 수 있어서.. 사람한번 보낸 걸로 끝나던걸 뭐.. “




“그래요? 그럼.. 부탁했던 김에 하나 더 부탁해도 될까요?”




지영이 파일을 덮었다.




“물론.. 뭐든지 후후”




“이 아가씨.. 생각보다 좀 더 심각해 보여서요… 일정 기간.. 안심할 수 있는 곳에서 좀 살펴봐야 할 거 같거든요.. 현우랑 이 아가씨 가족한테는 내가 연락해둘 테니까.. 지금 곧 별장으로 좀 옮겨줬으면 싶어요”




“그러지 뭐.. 눈을 떴을 때 눈 앞은 온통 바다 뿐일 거야.. 뭐해? 다들 가자고.. “




젊은 남자들에게 지시를 내린 남자에게 하나 더 덧붙였다.




“아, 그리고.. 그 개목걸이.. 유미가 깨기 전에 좀 빼주세요”




“오케이~”




“이런 건.. 주인님에게 부탁해서 상으로 받아야지.. 안그래? 지혜야?”




“네?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




지혜는 지영이 말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지영은 장난스럼게 웃었다.




“뭐.. 조만간에 알게 될 거야.. 신년부터 이게 무슨 일이람..”




말을 마친 지영이 아침 햇살이 밀려드는 창가에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저기.. 선생님 하나 여쭤봐도 돼요?”




“어떤 거?”




“저.. 유미 선배가 지훈이한테 도망치지 못한 이유… 정말 선생님이 아까 말한 그 이유에서일까요?”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저 무서워서 그랬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이유에서일 수도 있지.. 예를 들자면.. 사실은 유미가 그 지훈이란 아이를 좋아했을 수도 있고..”




“네? 설마.. 그럴 리가…”




“그럼 그 반대는 어떨 거 같아? 어쩌면.. 자신을 좋아할지도 모르는 느낌 때문에.. .. 잘 표현하지 못하는… 어쩌면.. 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부드러운 모습을 다시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했을 수도 있겠지.. 만약 지혜 너였으면 어땠을 거 같아?”




“음… 글쎄요… 어쨌든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뭐.. 어떻든 이유 같은 건 아무래도 괜찮아.. 그것보다.. 중요한 건 희성이랑 유미 둘이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니까”




“…그렇네요…”




지혜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교수실의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 지혜에게 지영이 말을 건냈다.




“지혜는 제발 무리한 짓은 하지 마.. 아저씨들이.. 아파트를 지키고 있지 않았으면 혼자서 그 지훈이라는 애 집으로 쳐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어? 그거.. 아주 위험한 일이거든..”




“아. 집에 갈거면 데려다 줄게”




하지만 지혜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조용히 닫히는 문을 보며 지영은 혼자말을 중얼거렸다.




“다들.. 서툴다니까…”




다시 창문을 향해 눈이 부신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간에,, 신경쓰게 만든다니까…”




그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는 중얼거림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영은 잠자고 있던 희성을 두들겨 깨우고는 갑작스러운 숙제를 하나 던졌다.




“네가 유미를 사랑하는 이유를 고찰하고 레포트로 정리해 와. 30매 이내로 기한은 일주일. 아, 유미는 내가 안전한 곳으로 옮겼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지만 레포트가 맘에 안들면 못만나게 할 테니까.. 제대로 쓰도록.. 알았지?”




그렇게 숙제를 던지고 있는 지영의 목소리를 듣고 잠이 깬 채원은 지영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언제 왔어? 보고 싶었어.. 안아 줘…”






해가 저물고 가로등이 켜진 거리를 따라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유미가 사라진지 꼬박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짐작이 가는 곳을 뒤져 보았지만 유미의 모습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짐작이 간다고 해도.. 집과 학교.. 그리고 병원이 전부였다. 자신이 유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더 찾아볼 곳이 없었다. 어차피 곧 돌아 올 것이라고.. 자존심을 세워도 보았지만 욕실에서의 모습이 떠 올라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걷고 있는 지훈의 앞으로 많이 본 듯한 여자가 걸어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엇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혜였다.




“이거 지혜 아냐?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지훈아.. 어.. 어디 갔었어?”




찾고 있던 사람이 말을 걸어오자 지혜는 깜짝 놀란 듯 했다.




“뭐.. 심심해서.. 여기저기.. 아 그것보다 좀 물어볼 게 있는데..말야”




“나도 얘기할 게 있어”




공원 안쪽 산책로를 따라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았다. 이미 주위는 어둠이 내려 가로등만이 주위를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한겨울의 공원을 찾는 사람들도 없었다.




“있잖아.. 지훈아.. 언제까지 이럴 생각이야? 너.. 유미 선배 찾고 있었지?”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 보며 지혜가 말을 걸었다. 차가운 공기 탓에 하얗게 입김이 내뱉아지고 있었다.




“암캐 한마리가 도망간 거 뿐이야. 그년은 이미 조교가 끝난 년이니까.. 도망갈 수 있을 턱이 없다고.. 언젠간 돌아오게 되어 있어.. 걱정 같은 건 안해도 돼”




“거짓말.. 걱정되니가 찾아 다닌 거 아냐?”




“이게 말끝마다.. 하나하나.. 그것보다.. 너 유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지? 또 얻어 터지고 싶지 않으면 알고 있는대로 똑바로 불어”




“안다고 해도.. 알려 줄 수 없어”




“뭐라고?”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째려보는 지훈에게 지혜는 지지 않고 쏘아 붙였다.




“지훈이 네가 잘못된 일을 계속 하는 한 절대 협력하지 않을 거야”




“방해하지 말라고 틀림 없이 얘기 했을텐데?”




남자라고 해도 겁을 먹을 정도로 강하게 몰아붙였다.




“이제 지훈이 네가 더 이상 누구도 상처를 주는 거 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까불지 말고 빨랑 불란 말야”




“이제 제발 그만해. 언제까지… 유미선배랑 희성오빠를 언제까지 괴롭일 셈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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