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 때 꾼 묘한 꿈.ssul
어차피 묻힐 거 같지만 그냥 생각난 김에 써봄.
이 이야기는 내가 대입 전쟁을 치르고 있던
고3 시절에 꾼 꿈에 대한 썰이다.
꿈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원정대가 마족의 섬으로 쳐들어가서
섬 중앙의 마왕성에 있는 마왕을 족치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였다.
난 지금도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를 굉장히 좋아하고
(물론 시중에 나도는 양산형 판타지에는 환멸을 느낄 따름)
어릴 때부터 환상계열 꿈을 많이 꿔왔던 터라
이 꿈을 꾸는 동안에는 전혀 위화감 같은 걸 느끼지 못했다.
또한 배경 설명을 조금 하자면
난 당시 수시 1차 2차에 모두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순천향대 의대에 지원하는
정신나간 짓거리를 했다가 모조리 탈락하고
정시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 연세대 공학부에 지원한 상태였으며
모든 입시 과정이 끝나고 발표만을 기다리던 때였다.
당시 내 내신점수는 서울대 계산법 환산 99.8점이었고
수능은 언수외 1등급 과탐에서 1/2/1/2 가 나온 상태였다.
당연히 그 당시 성적표가 지금 있을 리가 없으니 인증은 ㄴㄴ해
똑똑한 놈들은 대충 내가 이제부터 무슨 이야기 할지 감이 왔을듯.
아무튼
꿈이 시작되었을 때
원정대는 이미 마족의 섬에 도착한 상태였다.
특이한 것은 판타지스럽지 않게
원정대의 인원은 모조리 인간 남성이었던 것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하나같이 용맹한 사람들이었고
나 또한 그런 용맹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지체할 것 없이 거침없이 인간형 몬스터들을 쓰러트리고
거대생물들도 공략해가며
순조롭게 저 멀리 보이는 마왕성을 향해가고 있었다.
어떤 괴물이 와도 우리를 막을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이제 절반쯤 왔을까.
천지가 진동하더니 땅 속으로부터 거대한 지네 한마리가 기어 올라오더니
마왕성 주변을 몸으로 한 바퀴 휘감아 방벽을 만들고는
머리를 들어 우리를 위협했다.
그건 정말로 무지막지하게 컸다.
요르뭉간드르가 실존한다면 그런 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63빌딩의 굵기만한 몸통이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아득하게 이어져 있었고
그 수많은 다리 하나하나가 남산타워만한 위용을 떨쳤다.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내 빈곤했던 상상력은 그 전투 장면까지는 재생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지네는 독액을 내뿜고 다리를 휘두르며 공격했지만
마왕성을 감싸느라 운신이 제한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몸통 한 마디를 완벽히 파괴하는데 성공했으며
그 결과 지네가 죽어버렸다는 것 정도밖에는 알 수 없었다.
원정대는 다들 힘겨워 했지만
승리의 기쁨에 취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누가 먼저였는지도 모르게
이 전사들은 승리의 상징으로 저 거대 지네를 삶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 역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그 의견에 동조했다.
우리의 뇌리에서 이미 마왕을 척살한다는 임무 따위는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도톰하니 살이 올라 맛있는 지네 고기를
한 입 가득 베어물고 잠에서 깨어났다.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아쉬운 탄성을 내뱉으며.
그 3일 뒤에 입시 결과가 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연세대에 다니고 있다.
지금까지도 난 가끔 이 꿈이 생각나곤 한다.
만약 내가 지네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마왕을 쳐죽일 수 있었다면...
3줄 요약
1. 고등학교 성적 쩔어서 정시 서울대랑 연대 지원함
2. 발표를 앞두고 판타지 꿈 꿨음
3. 마왕 안 잡고 중보스 잡고 깼는데 연대만 합격 통보 (서울대 불합격)
사진 수정 다 해놓고 이름 안지워서 조땔 뻔 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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