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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신대물(新大物) - 07

제목: 新大物
원작: 梶山李之
옮김: 다크린([email protected])


- 7 - 네 사람의 투기(鬪技)


젊은 처녀에게 있어, 친오빠에게 순결을 짓밟혔다는 생생한 기억만큼 그녀를 불캐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남을 것이다.
밤길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불량배들에게 능욕당했다고 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
마에까와 요오꼬가 뜻하지 않게 아라가끼 마사또를 만났을 때, 가슴이 내려 앉은 것은 당연했다.

(난 마사또에게 바칠 순결을 잃은 깨끗지 못한 여자야.)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는 눈을 내리뜨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마에까와 요오
꼬의 심리적인 미묘한 변화를 즉석에서 알아차란 미즈끼 에이노스께도, 과연 일류 색한(色漢)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응? 왜 그러지?]

미즈끄 에이노스께가 물었다.
요오꼬는 미즈끼를 자기가 다니는 여자대학 강사로만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그렇게 물으면 어떠한
대답이라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말문이 막혀 버린 것이다.
신궁 외원은 따뜻한 봄볕에 싸여, 안개가 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은행나무 가로수의 나뭇가지는 엷은 녹색의 새 앞으로 단장되어 있고, 길 군데군데에는 푸릇푸릇 잔디가
힘차게 자라고 있다.
에이노스께는 마에까와 요오꼬의 팔을 살그머니 잡았다.
요오꼬는 꿈틀 몸을 떨었다.

[산책할 때 쯤은 서로 거북한 입장 같은 건 잊도록 하지.]

에이노스께는 그렇게 말했다.

[네.]

요오꼬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 핸섬하더군.]

에이노스께는 약간 약오른 듯한 어조였다.

[아라가끼 군 말씀인가요?]

요오꼬는 이렇게 묻는다.

[음……. 저런 타입의 남자는 여자들이 너무 좋아해서 몸을 망칠 것 같은데.]

에이노스께는 그렇게 말해서 요오꼬의 관심을 끌려 했다.

[그럴까요?]
[그렇구 말구!]

미즈끼 에이노스께는 확신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그 남자와 교제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어머, 어째서지요?]

요오꼬는 걸음을 멈추었다.

[난 말이지…… 관상을 좀금 볼 줄 알아.]

에이노스께는 빙그레 웃었다.

[저 사나이는 야심가야.]

요오꼬는 그 말에 조금은 놀란 모양이었다.

(어머나! 야심가라니!)

이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으나, 마음에 지피는 점이 없지도 않았다.

[자기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을 사나이의 인상(人相)이야.]

미즈끼 에이노스께는 그렇게 말하더니 충고 비슷한 어조가 되어 말했다.

[그 남자는 틀림없이 자네의 정조를 유린할 거야.]
[제…… 정조를요?]

마에까와 요오꼬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히스테릭하게 웃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런 경우, 그녀의 웃음은 웃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울며 웃는> 그런 것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마에까와 요오꼬에게는 이미 유린당할 정조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백치인 오빠에게 강제로…….

[뭐가 우습지?]

에이노스께는 수상쩍어서 물었다.
요오꼬는 다소 짖궂은 마음이 되어 이렇게 말해 버렸다.

[제 정조는 그이에게 주어 버렸는 걸요.]
[뭐라구? 그 사니이에게?]
[네, 그래요. 선생님.]

요오꼬는 여전히 울며웃기를 게속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저를 바보라고 생각하시나요?]
[으음…….]

에이노스께는 신음소리를 냈다.

[그렇게 경솔한 짓을!]

에이노스께에겐 처녀 이외의 여성은 전혀 아무런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시골 처녀같은 순진한 여대생이 그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처녀란 무럿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이다. 무지(無知)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
하면 남성 자체뿐만 아니라 테크닉의 능하고 졸렬한 것을 모른다.
노인들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기생의 <머리얹기>를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불능이건, 정력 부족이건, 처녀는 이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까, 섹스란 아마 이런 것인가보다 하고 믿어
버리게 마련이다.
에니노스께의 마음 밑바닥에도 그러한 심리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는 성기단소(性器短小)로 고민하고 있는 사나이 중의 한 사람이었으므로 마에까와 요오꼬가 이미 처녀
가 아님을 알자, 갑작스럽게 그녀에게서 마음이 떠나간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마에까와 요오꼬의 거짓말은 그녀를 구해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하나겐의 플라워 교실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가 열린다.
대게 30대에서 50대에 걸친 백인여성으로, 인원수는 20명 안팎이었다.
물론 부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개중에는 텔레 하이만 양(孃)같이, 아직 미혼이며, 19세인 처녀도 있었다.
텔레는 국적이 프랑스였다.
어머니의 유산으로 세계일주를 위해 유럽, 소련, 알래스카 등지를 여행하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러나 빈털터리가 되어 버렸다.
그녀는 도쿄의 일류 프랑스 유리점인 을 찾아가서 요리사를 만났다.
홍콩으로 가는 여비를 어떻게든지 염출(捻出)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자 요리사는 "우리 마담과 의논해 보시오." 하고 조언해 주었다.
그 마담은 여걸(女傑)로 레스토랑, 클럽, 다방 등, 도내에만도 열 몇군데나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년 동안, 내 클럽에 와서 일하도록 해요. 사는 건 고오지 거리의 내 맨션에서 지내면 어떻겠
어요?]

마담 하나이(花町)는 벨테에게 친절을 베풀던 것이다.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고 일주일에 50불(佛;dolla
r)이었다. 한달에 2백불이니까, 반년동안 일하면 1,200불.. 즉, 40여만엔이 된다.
절대로 나쁜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
그녀가 일하는 시간은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였다.
출퇴근은 마담 하나이의 자가용 운전사가 맡아 주었다.
그러나 한창때이므로 그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시간은 처치하기가 곤란했다. 그래서 마담 하나이에게
의논하니까 이렇게 권해 주었던 것이었다.

[하나겐의 플라워 교실 같은 데라도 가 보는 게 어때요?]

그래서 벨테 하아만은 일주일에 한 번, 아오야마의 하나겐에 다니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독일계이므로 그녀는 영국, 독일, 프랑스의 세 나라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러므로 여러나라 여
성들과 섞여 배워도 대화하는데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곳에 사는 백인 여성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워 참고가 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프랑스 여인인 벨테가 이 플라워 교실에 다니게 되면서 한 사람의 일본 청년을 알게 되었다.
내년에 리용으로 유학할 계획이라는 젊은 치과의사였다.
불어를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고하여 교제하게 되었는데 젊은 사람들끼리의 일이었기 때문인지 깊은 관
계를 맺게 되었다.
벨테는 처녀는 아니었지만, 타국 땅에서 친해진 그 치과의사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치과의사는 벨테
로부터 결혼을 강요당하자 파랗게 질려 "리용 유학을 중지하겠다." 라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유학과 결혼
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는 몇 달 뒤엔느 그녀가 홍콩을 거쳐 귀국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유
학한다면 억지로라도 결혼을 강요할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벨테는 너무 상심하여, 플라워 교실의 친구인 어느 부인에게 그 괴로움을 털어 놓았다.
그 말을 들은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젊었을 때 즐겨야 해요. 하나겐에 귀엽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잖아요? 내가 유혹하려 했지만, 당신한테
양보해 줄께요.]

그 귀엽게 생긴 사내아이란 아리가끼 마사또였다.
라틴계의 민족은 일반적으로 그 체격이 자그마하다. 그러니까 아라가끼 마사또의 자그마한 몸빚은 오히
려 벨테에게는 바람직한 것으로 비쳤다고 하겠다.
벨테는 아라가끼에게 호의를 갖게 되었다. 플라워 교실이 없는 날은 마담 하나이에게서 돈을 받아 가지
고 하나겐으로 꽃을 사러 찾아가 "아라가끼…… 무슨 꽃…… 주세요." 하면서 한두마디 하는 일본어로 말을
걸었다.
그러나 아라가끼 마사또는 작업복에 달린 명찰로 자기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전혀
그녀에게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국의 젊은 소년이었다. 그녀는 어떻게든지 자기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
헌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안타까왔다. 말이라는 것은 의사나 사상을 전달하는데는 없어서는 안되
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전달이 불가능한 것이다.
텔레는 초조하여 자기의 아르바이트 장소인 클럽 하나이의 호스테스에게 부탁하여 아라가끼 마사또에 대
한 러브레터를 써 달라고 했다.
그러나 직접 전하기도 부끄러워, 그녀는 플라워 교실의 조수인 미즈끼 요오꼬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이거…… 아라가끼 씨에게 좀 전해 주세요.]

**

미즈끼 요오꼬는 텔레가 내밀어 준 편지를 보자, 언짢은 예감이 들었다.
바로 며칠 전 오빠 에이노스께에게 또 용돈을 뜯길 때였다.

[얘, 아라가끼라나 하는 애송이는 얌전해 보이지만, 상당한 난봉꾼인 모양이더라. 아라가끼에게 열중해
있는 여대생이 그 녀석에게 처녀를 바쳤다고 하더란 말이다.]

에이노스께는 듣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믿어지지 않았다.
아라가끼 마사또가 미소년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색마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하물며
여대생과 관계를 맺다니…….
그런 때에, 수강생인 텔레의 수상한 편지를 손에 넣은 것이다.
미즈끼 요오꼬는 아라가끼 마사또에게 텔레의 편지를 전하지 않고, 슬그머니 자기 집으로 가지고 갔다.
그리고 물이 끓는 주전자에서 올라오는 김을 편지 봉한 곳에 쐬어서 바늘로 살짝 뜯었다.
물론 속에 든 것을 읽기 위해서다.

<나, 텔레 하이만은 일본 말을 잘 할 줄 모르고 또 쓸 줄도 모르기 때문에 친구에게 영어로 이야기해서
이 편지를 대신 써달로고 부탁했어요. 나는 플라워 교실에 다니다가 당신에게 반했어요. 여자인 내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당신이 정말 좋답니다.
나는 19살의 프랑스 사람이에요. 돈을 다 써 버려서, 클럽 하나이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홍콩행 여비를
벌고 있어요. 나나 당신은 모두 노동자니까 신분의 차별은 없어요. 그리고 사랑에는 국경도 없는게 아니에
요? 사랑에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고 해요. 나는 앞으로 석달동안밖에는 이 나라에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
나 남은 석달 동안을 즐기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그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고독한 프랑스 소녀로부터 아라가끼 마사또에게..>

편지를 훑어본 미즈끼 요오꼬는 저 주근께 투성이인 작달막한 프랑스 여자의 뻔뻔스러운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이것은 러브레터라기보다 유혹의 편지가 아닌가. 더욱이 얼마나 대담하고, 창피한 고백이란 말인가!

(역시 마사또는!)

미즈끼 요오꼬는 이렇게 생각했다.
일본의 유부녀들뿐만 아니라, 이제 외국인 미혼여성으로부터 그 유혹의 마수가 뻗힌 것이다.
이것은 큰 일이 아닌가? 요오꼬의 오빠 에이노스께의 말을, 여자대학생의 처녀를 아라가끼 마사또가 빼
앗았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마사또의 경우, 남의 처녀를 뺏었다기보다는 동정을 빼앗겼다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저 프랑스 여자에게 그 사람을 양보할 수는 없다!)

미즈끼 요오꼬는 이렇게 생각했다.
벨테는 절대로 미인은 아니다.
머리카락은 빨갛고, 눈동자는 검으며, 게다가 주근깨 투성이인 얼굴이다. 암내를 풍기며, 몸에 비해 다리
가 굵었다.

(저런 외국인 히피 족에게!)

미즈끼 요오꼬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를 부르득 갈더니 이렇게 결심했다.

(우물쭈물하고 있을 순 없지!)

아라가끼 마사또가 프랑스 여성에게 유혹되는 것을 잠자코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
시 말해서 자신의 육체를 방파제로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얼핏보기엔 이상한 것 같지만, 일종의 모성애의 발동이었다.
그 좋은 예로는 백치인 아들에게 자기 몸을 맡기는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통계상의 수치로도 알
수 있다.
백치이기 때문에 취직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결혼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동물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아
니 정상이상의 성욕은 있다.
그 욕구를 밖으로 향하게 내버려 두게 되면 범죄를 저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여자이고, 자식이 범죄자가 되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래서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하여 자기의 몸을 맡기는 것이다. 흔이 말하는 <모자상간(母子相姦)>인데,
이러한 실정에서 파생(派生)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었다.
미즈끼 요오꼬의 경우는 아라가끼 마사또와 결코 모자간도 누이와 동생 사이도 아니다. 그러나 누이가
동생을 귀여워하는 듯한 마음이 강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몸을 방파제(防波堤)로 한다는 생
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자신의 희생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소녀인 벨테 양보다 먼저 아
라가끼 마사또와 관계하여 자기에게서 멀어질 수 없게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의 발로이기도 했다.
미즈끼 요오꼬는 벨테의 편지를 찢어버리고 새 편지를 썼다.
가짜 벨테의 편지를 만들어 넣을 작정이었다.

**

그날 밤, 가게는 일찍부터 혼잡했다.
비오는 밤이므로 신기한 일이었다. 물론 술집 손님들이란 그런 들뜬 데가 있는지도 모른다.
마담인 스구로 도모꼬는 여러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단골들로부터 이런 소릴 들었다.
[여어, 마담. 더 젊어졌는데, 혹시 인어라도 먹은거 아냐?]
칭찬인지 놀림인지 애매한 말을 들었지만 그녀의 기분은 마구 좋았다.
하얀피를 마실 뿐만 아니라, 아라가끼 마사또의 동뇨(童尿)로 직접 세수를 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은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밤 9시 반쯤이 되니 손님 서너패가 마저 나가고 가게 안이 겨우 조용해졌다.

(휴우, 살았다.)

도모꼬는 이렇게 생각하고 갱의실(更衣室)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가게가 한가할 때는 그렇지도 않지만, 한창 바쁘면 담배도 피울 수가 없어 몹시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사람이란 정말로 제멋대로인 것이다.
가게와 갱의실 사이는 커튼 하나로 칸이 막혀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갱의실에 있어도 가게의 분위기는
역력히 알 수 있다.
방금 또 한패의 손님이 들어온 모양이다.

(오늘 밤엔 정말 바쁘구나.)

도모꼬는 담매를 재떨이에 부벼 껐다.

[마마!]

여자 아이가 갱의실로 들어왔다.

[왜?]
[클런 하나이의 마마와 가께이 전무님이에요.]

클럽 하나이는 긴자에서 일류 중에서도 일류이다.
도모꼬는 투지를 불태우면서 갱의실에서 가게로 나갔다.

[어서 오세요.]

그녀는 직업적인 웃는 얼굴을 지으면서 가께이의 자리로 다갔다.
하나이의 마담음 붉은머리의 주근께 투성인 외국 처녀와 동행하고 있다.

[여어!]

가께이는 매우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도모꼬는 마담에게 눈으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기분이 좋으시군요. 가께이 씨.]
[그래, 아주 유쾌해.]

가께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이고 이렇게 말했다.

[실은, 여기 이 벨테양이 사랑의 고민을 고백했지 뭐겠소.]

가께이는 어학에 능통한 것이 자랑이었다.

[어머나, 큰일이군요. 가께이 씨는 백인여성에게 인기가 있으셔서…….]

도모꼬는 이렇게 말하자 하나이의 마담이 웃었다.

[그런게 아니랍니다. 벨테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꽃집 애송이에요. 가께이 씨가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도모꼬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지레짐작한 것이 우스웠던 것이다.

[뭐가 우습소? 마마! 사랑에는 신분의 차이도 국경도 없어.]

가께이는 약간 뿌루퉁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도모꼬는 사과하고 나서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가께이 씨는 그 사랑의 중개역(仲介役)을 맡으셨나요?]
[그렇지, 편지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말야……. 나 같은 믿음직스러운 나자가 있는데 굳이 아오야
마의 꽃집 애송이 같은 것에게 반한단 말인가?]

가께이 전무는 그렇게 말하고는 껄껄 웃었다.

[네? 아오야마의 꽃집?]

도모꼬는 자기도 모르게 안색이 변했다.
그러자 하나이의 마담이 덧붙이듯 말했다.

[아오야마 큰 거리에 있는 하나겐이라는 유명한 가게라는군요. 이 처녀가 플라워 디자인 교실에 다니거
든요.]

도모꼬는 더욱더 당황했다.
그러나 상대에게 눈치채이지 않으려고, 그녀도 웃음을 짓고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핸섬한가 보죠?]

가께이는 독일어로 벨테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무언가 질문하는 모양이다.
벨테가 대답하자, 가께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이렇게 통역해 주었다.

[음, 핸섬하다는군. 키는 그녀 정도이고 나이는 짐작이만 16,7살 정도라는 거야.]

도모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라가끼 군이구나!)

이 외국인 처녀는 자신에게 소중한 하얀피를 공급하는 귀중한 젊은이에게 열을 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보통 큰일이 아니다.
스구로 도모꼬는 살며시 객성에서 일어났다.
갱의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니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 있다.

(저런 외국인 아이에게 아라가끼의 동정을 줄 수는 없어!)

동정을 잃어버린 마사또의 정액은 미용에 아무런 효과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인생은 드라마>라고 말한 사람은, 서양의 문호(文豪)이지만 인간의 애증(愛憎)과 투쟁이 얽힐 때, 그것
은 더욱 드라마틱한 것이 되는 것이다.
아라가끼 마사또는 하나겐에 우연히 근무하게 됐는데, 그 때문에 미즈끼 요오꼬를 알게 되었고, 그리고
스구로 도모꼬도 알게 되었다.
미즈끼 요오꼬는 마사또의 누님 같은 옹호자의 입장에서 마사또를 바라보았으며, 스구로 도모꼬는 자신
의 미용을 위해서 마사또를 돈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벨테 하이만이라는 프랑스 처녀가 등장했기 때문에, 마사또를 둘러싸고 서로 알지 못하는 미즈끼
요오꼬와 스구로 도모꼬가 불꽃을 튀기게 된 것이다.
또한 그 미즈끼 요오꼬의 오빠인 에이노스께도 마사또의 친구인 여대생으로부터 처녀를 바쳤다는 거짓말
을 듣게 되어, 그녀에게 손을 내밀기를 단념하기는 했지만, 하나겐의 점원인 미소년에게 앙갚음을 할 생각
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라가끼 마사또가 스스로 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이란 싫든 좋든 간에 주위에서 파생
되어 가는 드라마에 끌려들어가는 것이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 일생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 노력여하에
따라 크게 변해 가는 것이다.
일전에 어떤 변호사에게 필자(작가;梶山李之)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 다 사회적인 지위도 재산도 있는 회사 중역 아들이었다.
A는 생일 선물로 어머니로부터 스포츠카를 받았다.
그것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밤길에 사람을 치어 기겁을 해서 집으로 도망쳐 갔다. 그러나 목격자가 있어
A는 체포되어 현재 살인죄로 복역중이다.
B는 용돈에 부자유하지 않으니까, 번화한 환락가(歡樂街)에 드나들게 되어 어느틈에 똘만이들에게서 형
님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느날 밤, 동료들이 부추겨서 여고생을 윤간(輪姦)하는 축에 끼이게 되었다. B는 세 번째에 덤벼들었는
데, 너무 흥분했기 때문에 삽입하지도 못한 채 밖에다가 상정하고 끝나 버렸다. 그러나 윤간이라고 하면 죄
가 중하다. B는 현재 3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케이스를 독자는 어떻게 생가하겠는가?
A가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스포츠카라는 사치스런 선물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며, 살인죄를 저지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가?
또한 B도 용돈이 궁했다면 환락가를 돌아다니다가 똘만이들을 알게 되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부자집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교도소에서 나왔을
때, 아무리 양가집 자제라 할지라도 세상은 교도소에서 나온 전과자들로서 백안시(白眼視)할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자포자기하여 또다시 좋지 않은 길로 달리게 될 것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아라가끼 마사또는 이렇게 해서 자기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 싸인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면한 문제는 그의 <동정>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누가 그것을 차지하느냐 하는 일이었다.

**

아오야마 다까기 거리에서의 쓰지 도모꼬의 생활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아침엔 6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아침식사까지의 한시간 동안은 바이올린 연습을 했다.
그런 다음, 프랑스식 아침 식사를 하고 학교에 간다.
수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면, 두 시간 동안 시라이 가즈꼬의 레슨을 받는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9시까지 또 레슨을 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 목욕을 하고 10시에 취침하는 생활이었
다.
이런 일과(日課) 중에서 특별 교습이 있는 날은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전 중이다.
특히 일요일의 레슨이 엄했다. 그 주일에 배운 것을 복습하여, 틀리거나 막히면 대나무 회초리로 용서없
이 종아리를 맞았다.
도모꼬는 어느 정도의 각오는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 특별 교습을 받아 보니, 과연 녹초가 되는 것 같고
노이로제 증상이 되었다.
시라이 가즈꼬는 그것을 민감하게 알 수 있었는지, 두 사람이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좀 힘드는 것 같구나.]

이렇게 도모꼬에게 말했다. 아마도 도모꼬에게 식욕이 없고, 약간 여위어 보이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
다.

[네, 힘들어요.]

도모꼬는 정직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번 일요일에는 놀러라도 갈까?]

가즈꼬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은 도쿄 교외에 프랑스식의 포도원을 경영하여 포도주를 만들고 있는 프랑스인 부부가 있는데,
매년 봄이 되면 일요일마다 그 포도원에서 페탕크 대회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페탕크란 프랑스 남쪽에서 유행하고 있는 소박한 놀이로, 금속으로 만든 공으로 공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프랑스인은 골프와 볼링의 두가지 재미를 아울러 갖는, 당순하고도 복잡한 놀이라고
자랑하지만…….
코쇼네라는 조그마한 나무 공이 있다.
그것을 던져 놓고 그 코쇼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금속공(손바닥 안에 들어갈 정도의 알맞은 크기)을
던진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물론 팀을 짠 다음 각각 두 개씩의 공을 가지고 겨루게 되는데, 상대편 공을 멀리 하는 것처럼 하면서
적중시키기도 하는, 여러 가지 즐거운 방법이 있다.
시라이 가즈꼬는 페탕크 도구를 가리키면서 게임을 진행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쓰지 도모꼬는 페탕크에 대한 섦여을 들으면서, 어쩐지 스승인 시라이 가즈꼬에게는 세계적인 스케일의
크기가 있구나…… 하고 마음속 깊이 생각했다.
프랑스 남쪽에서 유행하는 비교적 서민적인 놀이 따위는 대부분의 일본 사람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역시 그 외국 땅에 살며 생활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지식인 것이다.
일요일이 되었다.
시라이 가즈꼬는 하녀에게 샌드위치를 만들게 하고, 보온(保溫)물병에 홍차를 담게하여 자기차에 싣게
했다. 그리고 도모꼬와 함께 뒷자석에 올라탔다.

[곧바로 갑니까?]

운전사가 이렇게 물었다.

[아뇨. 하나겐에 들러요.]

가즈꼬는 이렇게 명령하고 있었다.
외국인은 남의 집을 방문할 때에는 꽃을 가지고 가는 습관이 있다.
가즈꼬는 도모꼬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외국에 가는 일도 있을 테니까, 잘 알아 둬요. 우리는 레스토랑이나 요정에서 손님 대접을 하는
것이 대단한 환대라고 생각하지만, 외국인은 자기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것이 가장 큰 대접이에요. 다시
말해서 가족끼리의 접대가 무엇보다도 대단한 환대가 되는 셈이지.]

하나겐에 당도했다.

[선물할 꽃을 사와요.]

가즈꼬는 돈지갑을 도모꼬에게 주며 이렇게 명령하는 것이었다.

[네…….]

쓰지 도모꼬는 그 하나겐에 아라가끼 마사또가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 까닭이 없다. 그러므로 천연스
럽게 가게 앞에 서서 전시된 꽃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어떤걸로 할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랗게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쓰지 양!]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난 곳을 돌아다 보았다.
그곳에는 아라가끼 마사또가 작업복 차림으로 우뚝 서 있었다.

[어머나, 아라가끼 군!]

쓰지 도모꼬는 방긋 웃었다.

[여기서 일해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응, 그렇지만…… 어째서 여기는?]

아라가끼 마사또는 이렇게 물었다.

[지나가는 길인데 꽃을 사오라는 부탁을 받았어.]

도모꼬는 대답했다.

[그래? 그렇지만 약간 여윈 것 같아.]

마사또는 도모꼬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바라보며, 뜨거운 눈길이 되었다.
바로 그때였다.
무언가 영어로 고함을 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가로막고 서는 외국인 여성이 있었다.
붉은 머리에 몸집이 작은 처녀였다.
잘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먼저 주문했다." 라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아임 소오리. 쉬이 이즈 마이 프렌드.]

마사또는 이렇게 설명했다.

[프렌드?]

붉은 머리의 처녀는 도모꼬를 돌아보며, 그녀의 오똑오똑한, 윤곽이 또렷한 얼굴을 바라보더니 화난 표정
으로 "흥!" 하고 코방귀를 뀌었다.
실로 도전적인 눈길이었다.

(아니, 이 사람이!)

도모꼬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질투하고 있는 눈빛인 것이다.

[왜 그러지?]

도모꼬는 상대를 무시해 버리고 마사또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니, 그냥 손님이야…….]

아라가끼 마사또는 씁쓰레하게 웃고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찾아 와선 저렇지도도 않다. 이렇지도 않다 하고 난처하게 하는 싫은 손님이라구.]

그러나 마사또의 말을 들은 그 붉은 머리의 백인 처녀는 다짜고짜로 가는 눈썹을 곤두세우고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이렇게 외쳤다.

[싫은 손님? 미이(나요)?]

클럽 하나이에서 일하고 있는 펠테 하이만은 아마도 동료 호스테스들로부터 "저 사람 싫은 사람이야." 라
든가, "정말 싫은 손님이라니까." 라는 말을 항상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마사또의 그 말
꼬리를 잡아, 자신이 그렇게 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하여 몹시 격노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라가끼 마사또의
실수였다.
더구나 펠테로서는 마사또에게 반해서 매일같이 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의 눈앞에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났고, 더욱이 그 여성은 마사또의 프렌드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약이 바짝 오르는데, <싫은 손님>이라고 마사또가 말했으니 숨이 넘어가도록 화가 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마디..≫
이야기 도중에 원작자인 梶山李之 씨가 종종 자신의 얘길 합니다.
글 자체가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더 재미가 있죠..)
그리고 그때 그때 상대방의 심리를 얘기해 주어 더욱더 재미있습니다.
비록 매혹적인 의성어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저도 굳이 끼워 넣기 싫군요..) 상황이나 배경 등의 묘사가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됩니다.
교과서적에 비유될 정도로 많은 장르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근친, SM, 레즈, 패티쉬 등등...)
그래서 더 뒷 얘기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기대해 주세요~~~ (그나저나 뒷장은 어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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