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신대물(新大物) - 01
제목: 立志寶錄 新大物
원작: 梶山李之
옮김: 다크린([email protected])
- 1 - 사은회(謝恩會)
졸업식이 앞으로 열흘 후로 다가왔을 무렵에 아라가끼 마사또(荒垣正人)는 학급의 투표에서 사은회 실행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회비를 1천엔으로 올리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작년과 같이 5백엔으로 결정되었다.
졸업색은 140명이다.
거기에 선생이 10명은 출석할 예정이니까 인원은 전부 150명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예산은 7만엔이 되는 셈이다.
이 쥐꼬리만한 예산으로 어떻게 머리를 짜내어 훌륭하게 차려내는가 하는 것이 실행위원의 솜씨라 하겠
다.
각 학급에서 2명씩 모두 6명의 실행위원이 선출되었다.
그 위원 가운데는 아오야마(靑山) 여자대학에 합격한 마에까와 요오꼬(前川陽子)와 음악대학으로 진학하
려는 쓰지 도모꼬(십[책받침부+열십]知子)가 섞여 있었다.
(대학에 진학 못하는 건 나뿐이구나.)
이런 생각에 아라가끼 마사또는 조금 서글펐다.
첫 번재의 실행위원회는 마에까와 요오꼬의 집에서 열렸다.
요오꼬네 집은 동네에서 으뜸가는 외과병원이었으며 살림 집도 철근으로 되어 있었다.
마사또네가 옛날부터 살아온 초가집과는 달리 모두가 서양식이어서 밝고 넓었다.
첫째, 안으로 들어갈 때, 현관에서 신을 벗고 실내와로 바꾸어 신어야 했다.
마사또가 제일 먼저 그 집에 도착했다.
요오꼬는 웬지 눈부신 듯 그를 보며 말했다.
[아라가끼와는 도쿄(東京)에서도 또 만날 수 있겠지?]
[응, 그렇지만 어찌 될는지.]
마사또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오꼬의 꽃집에 취직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꽃집은 요오꼬가 다니게 될 여자대학 근처에 있었으며, 경영자는 마사또가 자라난 마을 출신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매년 고등학교 졸업생 중에서 한두 사람을 점원으로 채용해 주곤 했는데, 올해는 마사또
한 사람만 채용되었다.
[난 도쿄에는 수학여행때와 지난번 시험때 밖에 못 가 봤거든. 그 때문인지 아주 걱정스러워.]
요오꼬가 이렇게 말하자, 마사또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 진노스께(甚之助)가 그때 마침 병으로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사또의 집은 농가다.
그것도 결코 유복한 편은 못 된다.
마사또를 고등학교에 보낸 것만도 고작이라는 정도의 살림살이였다.
요오꼬와 잡담하는 동안, 남은 네 사람도 와서 이야기는 사은회로 옮겨졌다.
[회비는 삼년전부터 5백엔으로 정해졌는데 물가는 삼년전에 비하면 30% 올랐어. 회비를 7백엔으로 올리지 않으면 이건 무리야.]
히도쓰바시(一橋) 대학에 합격한 고무꾸 하루끼(小양[木+京]春樹)는 과거 3년동안의 실태를 조사해 가지고 와서 이렇게 처음부터 비관적(悲觀的)인 의견을 내 놓았다.
[하지만 모두가 5백엔이라고 결정했으니까 그 테두리 안에서 맞추어 나갈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
쓰지 도모꼬가 반박했다.
[과거 3년간의 메뉴는 도대체 어떤 것이었지?]
요오꼬가 물었다.
[응, 그럼 읽어 볼께.]
고무꾸는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메모를 읽기 시작했다.
그에 의하면 과거 3년간의 사은회 메뉴는 다음과 같았다.
-3년전. 생과자 2개, 초콜릿 1개, 사탕 5개, 귤 2개, 축하떡(단 부형의 기증), 주스 1병, 보리차.
-2년전. 비스킷 3개, 사탕 6개, 사과 1개, 스프(단 인스턴트) 1그릇, 마른 오징어 약간.
-1년전. 초콜릿 반개, 사탕 4개, 귤 1개, 생과자 1개, 주스 1병.
[점점 메뉴가 한심해지는군.]
고무꾸가 읽기를 끝내자 지방 대학에 진학하는 후루까와(布留川)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래서 모두 웃어버렸지만 한심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5백엔 회비 중에서 담임을 했던 선생에게는 기념품을 드리는 것이 매년의 관습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선 기념품이군.]
고무꾸 하루끼가 말했다.
과거에 증정(贈呈)된 것을 보면 탁상시계니, 벼룻집이니, 의자와 방석이니 하는 일상 생활과는 그다지 어
울리지 않는 것뿐이다.
[내 의견을 말해도 좋겠어?]
아라가끼 마사또가 말했다.
[그럼! 얼마든지 말해 줘.]
후루까와는 연필을 준비했다.
[사은회 시간은 한시간 정도라고 했지?]
마사또는 다짐을 두듯 물었다.
[그래요. 해마다 그 정도였어.]
요오꼬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학급마다 사인 첩(帖)을 준비했다가 사은회가 진행되는 동안, 각자가 마음대로 쓰고 싶은 걸 써서, 그걸 선생님께 졸업기념으로 선물하면 어떨까?]
마사또의 말에 고무꾸가 친구들을 둘러보며 반대했다.
[적어도 기념품인데, 서툰 글씨를 늘어놓은 사인 첩으론.. 실례야.]
[그럴까?]
쓰지 도모꼬는 곧 고무꾸의 말에 반대하고 나섰다.
[내가 생각하기론 탁상시계나 벼룻집이나, 그런 것보다는 사인 첩이 기념이 될 것 같아. 왜냐하면 한 15년이 지나 보세요. 학급 전원을 모아놓고 사인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테니까.]
도모꼬의 말이 끝나자 요오꼬도 말했다.
[그래요. 아라가끼 군이 말하는 사인 첩이 졸업 기념에는 좋다고 생각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거잖아.]
다수결로 사인첩에 사인해서 드리기로 결정하고, 요오꼬가 거리의 문방구에 전화로 값을 물어보았떠니 가장 좋은 것으로 2천엔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 세 사람에 6천엔이군! 야아, 살았다!]
후루까와는 아주 기뻐했다.
씨름부의 주장(主將)으로 국체(國體)에도 출전했던 일이 있는 후루까와는 대식가(大食家)로 유명했던 것이다.
[사인 펜은 문방구에서 기부해 달래기로 하고, 그러면 남는 돈이 6만4천엔이군.]
고무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봐 아라가끼, 그 뒤는 자네가 중심이 돼서 먹을 것도 좀 결정해 주게. 난 아버지 사무실에 가야 해.]
고무꾸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났다.
고무꾸 하루끼의 아버지는 이 구역 출신 국회의원인데 인기를 어등려는 건지 봄, 가을 두 번 선거구의 주요한 곳에서 문화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도 오후 1시부터 공민관(公民館)에서 강연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고무꾸가 가 버린 다음 후루까와가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저놈은……. 자기의 의견이 통하지 않으면 당장 단독 행동을 한단말야!]
마사또는 씁쓰레하게 웃었지만, 국회의원의 둘째 아들이라고 해서 고무꾸 하루끼에게는 아버지의 힘을 배경삼고 있는 듯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은회에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자리에선 결정하지 못했다.
[마지막 급식(給食) 같지만 회장으로 쓸 강당은 추우니까, 작년처럼 따뜻한 스프 정도는 내놓았으면 하는데.]
[이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었으니까 맥주 작은 병쯤 내놓아도 되지 않겠어?]
라는 둥의 의견도 나와 결국은 요오꼬와 마사또 둘이서 과자며 과일값을 조사하기로 하고 그것으로 몇가지 견본을 만들어, 다음날 밤 쓰지 도모꼬의 집에서 다시금 모이기로 결정했다.
[아라가끼, 문화강연회에 갈거야?]
요오꼬의 물음에 마사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요오꼬가 다시 말했다.
[그럼, 물건 값을 알아보러 가지 않겠어?]
마사또는 요오꼬와 함께 마에까와(前川) 외과병원을 나섰다.
이 병원에는 아버지 닌노스께가 수술로 신세를 진 체 아직 약간의 치료비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마사또는 어쩐지 면목이 없었다.
요오꼬는 배구 선수였을 정도니까 몸집이 크고 더욱이 미인이다.
마사또는 문예부 위원이 되긴 했지만 스포츠는 도무지 문외한(門外漢)이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이 곧잘 <소리개가 매를 낳았다>고 말하는 비유와 같이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단정해서 여자 같은 용모였다. 이른바 미소년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마사또와 요오꼬가 나란히 거리를 걸은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 만큼 동네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사랑하는 사이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반응은 곧 이튿날로 나타났다.
요오꼬의 오빠인 라이따(雷太)가 학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등교하는 마사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잠깐 나좀 봐…….]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사또는 그의 뒤를 따라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렀다.
[야, 아라가끼! 네가 수재고 미소년인지는 몰라도 우리 요오꼬에게 집적거리면 그냥 두지 않겠어!]
마사또는 라이따의 갑작스럽게 을러대는 목소리에 몹시 놀랐다.
요오꼬는 건강하고 밝으며 그런대로 싫지는 않았지만, 마사또가 은근히 사모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쓰지 도모꼬 쪽이었던 것이다.
도모꼬는 어느 쪽인가 하면, 차가운 이지적인 용모였다.
긴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서서 열심히 바이올린을 켜는 도모꼬의 열성적인 표정을 마사또는 좋아했다.
도모꼬는 외교관인 아버지와 음악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냈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유럽에서 살았다고 한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어머니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왔는데, 그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일본어를 가까스로 더듬거리며 말하는데다 전학해 왔다는 약점도 있는 도모꼬를 악동(惡童)들은 곧잘 곯려 주었다.
마사또는 요오꼬의 오빠에게 사은회 준비 때문에 함께 갔을 뿐이었다고 설명했으나 상대는 묘하게 의심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넌 요오꼬가 아오야마의 여자대학에 가게 되니까 허둥지둥 아오야마의 꽃집에 취직했다면서?]
마사또는 조금 서글퍼졌다.
가난한 사람은 무슨 일에서나 멸시를 받는다. 그것이 분했던 것이다.
아라가끼 마사또에게도 사나이의 고집이라는 것이 있었다.
가난하므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은 이미 체념하고 있다. 그러나 도쿄의 <하나겐(花玄)>에 취직했다고 해서 한평생 꽃집 점원으로 일생을 끝마칠 생각은 없다.
하나겐에 취직한 것은 오히려 도쿄로 나가 생활하기 위한 출발점인 것이다.
(학력이 없으면 어때.)
마사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저 사람은 도쿄대학을 나왔다.] 라느니, [저 사람은 게이오(慶應)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는군.] 하면서 학력을 인물의 기량(器量)을 헤아리는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도쿄대학이나 게이오를 졸업한 사람이 모두 장관이나 사장이 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있거니와, 게이오나 와세다(早稻田)를 졸업하고도 아사꾸사(淺草)의 빈민굴이라든가, 오사까의 가마가사끼(釜崎)에서 생활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학력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요는 본인 자신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라가끼 마사또는 도쿄에 나가 하나겐에 근무하게 되면 독학으로 필효한 것을 공부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인생의 결승점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아니다. 인생이란 마라톤이다.
대학을 졸업하려면 4년은 걸린다.
그 동안 마사또는 남보다 먼저 사회에 나와 인생을 공부한다는 것이니까, 요오꼬나 고무꾸보다 4년이나 앞을 달리는 게 되지 않는가.
마사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은회 메뉴에 관계해서는 마사또는 전무후무한 훌륭한 것을 급우들이나 선생들께 대접하여 [과연 아라가끼로군.] 하는 평생토록 간직할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산은 6만4천엔이다.
쓰지 도모꼬네 집에서의 모임에는 고무꾸 하루끼는 출석하지 않았다.
결국 요오꼬와 마사또가 일임하게 되었으며, 도모꼬와 후루까와는 사은회의 스케줄과 회사을 준비하는 쪽을 담당하게 되었다.
쓰지 도모꼬의 집을 나와 요오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서 마사또가 말했다.
[저어, 기부를 받을 수는 없을까?]
요오꼬는 그 당돌한 제안에 무척이나 놀란 모양이었으나, 3년전 사은회에는 축하떡이 기부되었음을 기억해냈다.
[그렇지?]
마사또는 요오꼬를 보고는 말했다.
[국민학교에서 큰 솥을 빌어다가 떡을 넣은 단팥죽을 끓여내면 어떨까?]
[그렇지만 그게 쉬운 일일까?]
요오꼬는 걸음을 멈추었다.
[뭘, 찹쌀이나 팥은 사람들에게서 모아서 하지 뭐. 졸업식 전에 모두 모여서 떡을 만드는 거야.]
[그렇게 하려면 솥을 걸고 시루도 모아 와야 되잖아?]
요오꼬는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응, 장작도 필요하고 절구, 절굿공이도 있어야지.]
[그럼 떡판도 얻어 와야겠네.]
[모두들 졸업할 때, 함께 떡을 만들어서 손수 단팥죽을 만들어 먹은 일은 평생토록 잊지 않으리라고 생각해.]
마사또의 말에 요오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겠어.]
[졸업식을 하는 동안 하급생들의 도움을 받아 큰 솥에 팥을 삶고…….]
[설탕도 들어.]
[그것도 기부로 얻어야지.]
마사또는 웃었다.
[그러면 돈이 남잖아?]
요오꼬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 남은 돈으로 선생님께 술이라도 사 드리면 되지.]
[어머나, 술을?]
[그렇다니까. 될 수만 있다면 남자 선생들에게 술, 여자 선생들에게는 콜라라도 대접하고 싶은걸.]
[그렇게까진 무리야.]
요오꼬는 웃기 시작했다.
[아니, 무리랄게 뭐 있어? 기부만 받을 수 있으면 말야.]
아라가끼 마사또는 머리를 흔들며 천천히 팔짱을 꼈다.
아라가끼 마사또에게 있어 기념할 만한 날이 있었다면, 그것은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뒤의 사은회에서, 그가 파티 위원으로 선출되어 기부를 받을 것을 생각해 낸 때였을 것이다.
사은회라는 모임의 참뜻은 제자가 스승께 가르침을 받은 데 대한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한다는데에 있다. 이른바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있다.
학예회나 운동회와는 다르다.
평소에는 사친회비가 너무 많다고 잔소리를 하는 부형들도 사은회라니까, 이것으로 돈을 내는 것도 마지막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실은 사은회에서 선생님들께 뭐 좀 선물하고 싶은데 3년전과 똑같은 5백엔이고 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난처해서요.]
아라가끼 마사또의 사정에 부형들은 이해하는 듯 대답했다.
[흐흠, 5백엔의 회비론 어쩔 수 없겠지.]
그러면서 5백엔이나 1천엔씩 내주는 것이었다.
140명의 졸업생 집을 전부 다닐 수는 없었으므로 64집을 돌아 다닌 결과, 그 수확은 448,500엔이었다.
현금을 내 줄 수 없는 집에서는 찹살이나 팥, 설탕 등을 기부해 주었다.
사은회는 대성공이었다.
졸업생과 재학생이 모두 모여 떡을 만들었다.
이것만으로도 기념이 될만한 행사였는데 게다가 이 떡을 넣은 단팥죽을 만들어 선생님과 졸업생에게 대접했던 것이다.
모두들 크게 기뻐했다.
강당은 매우 추웠다.
거기에 뜨거운 단팥죽이 나온 것이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도 서슴지 않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릇은 가까운 국민학교에서 빌려왔고, 수저는 그릇 가게의 기부였다.
큰 솥도 국민학교에서 얻어 왔으며, 연료로 쓰는 나무는 목공소에서 기부했다.
절구와 떡판은 과자집에서 얻어 왔는데 그 손료(損料)로 5천엔을 주었다.
선생들에게 두홉들이 청주를 대접했는데도 결국 아라가끼 마사또와 마에까와 요오꼬의 수중에는 48,200엔이 남았다.
[이 돈을 어떻게 하지?]
요오꼬는 깜짝 놀라 말했다.
그러자 마사또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기부를 받았으니까 남았잖아. 그렇게 근심할 것 없어.]
그러나 48,200엔을 마사또가 자기 호주머니에 모두 집어 넣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남았다고 해서 그것을 공표하여 사은회 위원들 마음대로 쓰자는 생각도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요오꼬는 이렇게 물었다.
[48,200엔을 둘로 나무년 24,100엔이 되지.]
[응, 그렇군.]
마에까와 요오꼬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 돈을 둘이 나누지.]
[그래, 24,100엔을 우리 호주머니에 넣어 두고 이 돈을 활용하는 거야.]
[활용하다니, 어떻게?]
[모르겠어?]
[그래. 모르겠어.]
[쓰는 거야.]
[어떻게?]
[쓰는 거라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쓰냔 말야?]
[이를테면 복권을 사도 괜찮겠지.]
[뭐? 복권을?]
[그래, 맞을지 안 맞을지는 그때 그 사람의 운수지.]
[그래, 그렇겠군.]
[요오꼰 복권을 사도록 해.]
[한장에 1백엔이라 치고, 241장은 살 수 있겠군?]
[그렇게 되지.]
[그래서 어떻게 하지?]
[당첨되면 그건 그것으로 족한 거지. 뭐…….]
[맞지 않으면?]
[그것도 그것으로 족하겠지.]
[딴은 그렇군.]
마에까와 요오꼬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 돈을 자본삼아 경쟁하지 않을래?]
[경쟁이라…….]
마사또는 혼잣말로 중얼댔다.
[괜찮겠지?]
[응, 좋아. 하지만 비밀로 해야 해.]
마사또는 크게 끄덕이고는 요오꼬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물론이지.]
[정말 괜찮겠지?]
[그렇대두!]
[그럼 하는 거야!]
[좋아.]
마에까와 요오꼬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한마디..≫
갖고 있는 파본의 글자가 희미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군요.
(한자는 거의 안보여서.....)
나름대로 복구해가면서 글을 쓰니까 시간이 무척 더디군요.
빠를시일내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 계속
원작: 梶山李之
옮김: 다크린([email protected])
- 1 - 사은회(謝恩會)
졸업식이 앞으로 열흘 후로 다가왔을 무렵에 아라가끼 마사또(荒垣正人)는 학급의 투표에서 사은회 실행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회비를 1천엔으로 올리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작년과 같이 5백엔으로 결정되었다.
졸업색은 140명이다.
거기에 선생이 10명은 출석할 예정이니까 인원은 전부 150명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예산은 7만엔이 되는 셈이다.
이 쥐꼬리만한 예산으로 어떻게 머리를 짜내어 훌륭하게 차려내는가 하는 것이 실행위원의 솜씨라 하겠
다.
각 학급에서 2명씩 모두 6명의 실행위원이 선출되었다.
그 위원 가운데는 아오야마(靑山) 여자대학에 합격한 마에까와 요오꼬(前川陽子)와 음악대학으로 진학하
려는 쓰지 도모꼬(십[책받침부+열십]知子)가 섞여 있었다.
(대학에 진학 못하는 건 나뿐이구나.)
이런 생각에 아라가끼 마사또는 조금 서글펐다.
첫 번재의 실행위원회는 마에까와 요오꼬의 집에서 열렸다.
요오꼬네 집은 동네에서 으뜸가는 외과병원이었으며 살림 집도 철근으로 되어 있었다.
마사또네가 옛날부터 살아온 초가집과는 달리 모두가 서양식이어서 밝고 넓었다.
첫째, 안으로 들어갈 때, 현관에서 신을 벗고 실내와로 바꾸어 신어야 했다.
마사또가 제일 먼저 그 집에 도착했다.
요오꼬는 웬지 눈부신 듯 그를 보며 말했다.
[아라가끼와는 도쿄(東京)에서도 또 만날 수 있겠지?]
[응, 그렇지만 어찌 될는지.]
마사또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오꼬의 꽃집에 취직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꽃집은 요오꼬가 다니게 될 여자대학 근처에 있었으며, 경영자는 마사또가 자라난 마을 출신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매년 고등학교 졸업생 중에서 한두 사람을 점원으로 채용해 주곤 했는데, 올해는 마사또
한 사람만 채용되었다.
[난 도쿄에는 수학여행때와 지난번 시험때 밖에 못 가 봤거든. 그 때문인지 아주 걱정스러워.]
요오꼬가 이렇게 말하자, 마사또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 진노스께(甚之助)가 그때 마침 병으로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사또의 집은 농가다.
그것도 결코 유복한 편은 못 된다.
마사또를 고등학교에 보낸 것만도 고작이라는 정도의 살림살이였다.
요오꼬와 잡담하는 동안, 남은 네 사람도 와서 이야기는 사은회로 옮겨졌다.
[회비는 삼년전부터 5백엔으로 정해졌는데 물가는 삼년전에 비하면 30% 올랐어. 회비를 7백엔으로 올리지 않으면 이건 무리야.]
히도쓰바시(一橋) 대학에 합격한 고무꾸 하루끼(小양[木+京]春樹)는 과거 3년동안의 실태를 조사해 가지고 와서 이렇게 처음부터 비관적(悲觀的)인 의견을 내 놓았다.
[하지만 모두가 5백엔이라고 결정했으니까 그 테두리 안에서 맞추어 나갈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
쓰지 도모꼬가 반박했다.
[과거 3년간의 메뉴는 도대체 어떤 것이었지?]
요오꼬가 물었다.
[응, 그럼 읽어 볼께.]
고무꾸는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메모를 읽기 시작했다.
그에 의하면 과거 3년간의 사은회 메뉴는 다음과 같았다.
-3년전. 생과자 2개, 초콜릿 1개, 사탕 5개, 귤 2개, 축하떡(단 부형의 기증), 주스 1병, 보리차.
-2년전. 비스킷 3개, 사탕 6개, 사과 1개, 스프(단 인스턴트) 1그릇, 마른 오징어 약간.
-1년전. 초콜릿 반개, 사탕 4개, 귤 1개, 생과자 1개, 주스 1병.
[점점 메뉴가 한심해지는군.]
고무꾸가 읽기를 끝내자 지방 대학에 진학하는 후루까와(布留川)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래서 모두 웃어버렸지만 한심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5백엔 회비 중에서 담임을 했던 선생에게는 기념품을 드리는 것이 매년의 관습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선 기념품이군.]
고무꾸 하루끼가 말했다.
과거에 증정(贈呈)된 것을 보면 탁상시계니, 벼룻집이니, 의자와 방석이니 하는 일상 생활과는 그다지 어
울리지 않는 것뿐이다.
[내 의견을 말해도 좋겠어?]
아라가끼 마사또가 말했다.
[그럼! 얼마든지 말해 줘.]
후루까와는 연필을 준비했다.
[사은회 시간은 한시간 정도라고 했지?]
마사또는 다짐을 두듯 물었다.
[그래요. 해마다 그 정도였어.]
요오꼬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학급마다 사인 첩(帖)을 준비했다가 사은회가 진행되는 동안, 각자가 마음대로 쓰고 싶은 걸 써서, 그걸 선생님께 졸업기념으로 선물하면 어떨까?]
마사또의 말에 고무꾸가 친구들을 둘러보며 반대했다.
[적어도 기념품인데, 서툰 글씨를 늘어놓은 사인 첩으론.. 실례야.]
[그럴까?]
쓰지 도모꼬는 곧 고무꾸의 말에 반대하고 나섰다.
[내가 생각하기론 탁상시계나 벼룻집이나, 그런 것보다는 사인 첩이 기념이 될 것 같아. 왜냐하면 한 15년이 지나 보세요. 학급 전원을 모아놓고 사인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테니까.]
도모꼬의 말이 끝나자 요오꼬도 말했다.
[그래요. 아라가끼 군이 말하는 사인 첩이 졸업 기념에는 좋다고 생각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거잖아.]
다수결로 사인첩에 사인해서 드리기로 결정하고, 요오꼬가 거리의 문방구에 전화로 값을 물어보았떠니 가장 좋은 것으로 2천엔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 세 사람에 6천엔이군! 야아, 살았다!]
후루까와는 아주 기뻐했다.
씨름부의 주장(主將)으로 국체(國體)에도 출전했던 일이 있는 후루까와는 대식가(大食家)로 유명했던 것이다.
[사인 펜은 문방구에서 기부해 달래기로 하고, 그러면 남는 돈이 6만4천엔이군.]
고무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봐 아라가끼, 그 뒤는 자네가 중심이 돼서 먹을 것도 좀 결정해 주게. 난 아버지 사무실에 가야 해.]
고무꾸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났다.
고무꾸 하루끼의 아버지는 이 구역 출신 국회의원인데 인기를 어등려는 건지 봄, 가을 두 번 선거구의 주요한 곳에서 문화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도 오후 1시부터 공민관(公民館)에서 강연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고무꾸가 가 버린 다음 후루까와가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저놈은……. 자기의 의견이 통하지 않으면 당장 단독 행동을 한단말야!]
마사또는 씁쓰레하게 웃었지만, 국회의원의 둘째 아들이라고 해서 고무꾸 하루끼에게는 아버지의 힘을 배경삼고 있는 듯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은회에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자리에선 결정하지 못했다.
[마지막 급식(給食) 같지만 회장으로 쓸 강당은 추우니까, 작년처럼 따뜻한 스프 정도는 내놓았으면 하는데.]
[이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었으니까 맥주 작은 병쯤 내놓아도 되지 않겠어?]
라는 둥의 의견도 나와 결국은 요오꼬와 마사또 둘이서 과자며 과일값을 조사하기로 하고 그것으로 몇가지 견본을 만들어, 다음날 밤 쓰지 도모꼬의 집에서 다시금 모이기로 결정했다.
[아라가끼, 문화강연회에 갈거야?]
요오꼬의 물음에 마사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요오꼬가 다시 말했다.
[그럼, 물건 값을 알아보러 가지 않겠어?]
마사또는 요오꼬와 함께 마에까와(前川) 외과병원을 나섰다.
이 병원에는 아버지 닌노스께가 수술로 신세를 진 체 아직 약간의 치료비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마사또는 어쩐지 면목이 없었다.
요오꼬는 배구 선수였을 정도니까 몸집이 크고 더욱이 미인이다.
마사또는 문예부 위원이 되긴 했지만 스포츠는 도무지 문외한(門外漢)이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이 곧잘 <소리개가 매를 낳았다>고 말하는 비유와 같이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단정해서 여자 같은 용모였다. 이른바 미소년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마사또와 요오꼬가 나란히 거리를 걸은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 만큼 동네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사랑하는 사이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반응은 곧 이튿날로 나타났다.
요오꼬의 오빠인 라이따(雷太)가 학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등교하는 마사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잠깐 나좀 봐…….]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사또는 그의 뒤를 따라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렀다.
[야, 아라가끼! 네가 수재고 미소년인지는 몰라도 우리 요오꼬에게 집적거리면 그냥 두지 않겠어!]
마사또는 라이따의 갑작스럽게 을러대는 목소리에 몹시 놀랐다.
요오꼬는 건강하고 밝으며 그런대로 싫지는 않았지만, 마사또가 은근히 사모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쓰지 도모꼬 쪽이었던 것이다.
도모꼬는 어느 쪽인가 하면, 차가운 이지적인 용모였다.
긴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서서 열심히 바이올린을 켜는 도모꼬의 열성적인 표정을 마사또는 좋아했다.
도모꼬는 외교관인 아버지와 음악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냈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유럽에서 살았다고 한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어머니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왔는데, 그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일본어를 가까스로 더듬거리며 말하는데다 전학해 왔다는 약점도 있는 도모꼬를 악동(惡童)들은 곧잘 곯려 주었다.
마사또는 요오꼬의 오빠에게 사은회 준비 때문에 함께 갔을 뿐이었다고 설명했으나 상대는 묘하게 의심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넌 요오꼬가 아오야마의 여자대학에 가게 되니까 허둥지둥 아오야마의 꽃집에 취직했다면서?]
마사또는 조금 서글퍼졌다.
가난한 사람은 무슨 일에서나 멸시를 받는다. 그것이 분했던 것이다.
아라가끼 마사또에게도 사나이의 고집이라는 것이 있었다.
가난하므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은 이미 체념하고 있다. 그러나 도쿄의 <하나겐(花玄)>에 취직했다고 해서 한평생 꽃집 점원으로 일생을 끝마칠 생각은 없다.
하나겐에 취직한 것은 오히려 도쿄로 나가 생활하기 위한 출발점인 것이다.
(학력이 없으면 어때.)
마사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저 사람은 도쿄대학을 나왔다.] 라느니, [저 사람은 게이오(慶應)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는군.] 하면서 학력을 인물의 기량(器量)을 헤아리는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도쿄대학이나 게이오를 졸업한 사람이 모두 장관이나 사장이 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있거니와, 게이오나 와세다(早稻田)를 졸업하고도 아사꾸사(淺草)의 빈민굴이라든가, 오사까의 가마가사끼(釜崎)에서 생활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학력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요는 본인 자신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라가끼 마사또는 도쿄에 나가 하나겐에 근무하게 되면 독학으로 필효한 것을 공부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인생의 결승점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아니다. 인생이란 마라톤이다.
대학을 졸업하려면 4년은 걸린다.
그 동안 마사또는 남보다 먼저 사회에 나와 인생을 공부한다는 것이니까, 요오꼬나 고무꾸보다 4년이나 앞을 달리는 게 되지 않는가.
마사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은회 메뉴에 관계해서는 마사또는 전무후무한 훌륭한 것을 급우들이나 선생들께 대접하여 [과연 아라가끼로군.] 하는 평생토록 간직할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산은 6만4천엔이다.
쓰지 도모꼬네 집에서의 모임에는 고무꾸 하루끼는 출석하지 않았다.
결국 요오꼬와 마사또가 일임하게 되었으며, 도모꼬와 후루까와는 사은회의 스케줄과 회사을 준비하는 쪽을 담당하게 되었다.
쓰지 도모꼬의 집을 나와 요오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서 마사또가 말했다.
[저어, 기부를 받을 수는 없을까?]
요오꼬는 그 당돌한 제안에 무척이나 놀란 모양이었으나, 3년전 사은회에는 축하떡이 기부되었음을 기억해냈다.
[그렇지?]
마사또는 요오꼬를 보고는 말했다.
[국민학교에서 큰 솥을 빌어다가 떡을 넣은 단팥죽을 끓여내면 어떨까?]
[그렇지만 그게 쉬운 일일까?]
요오꼬는 걸음을 멈추었다.
[뭘, 찹쌀이나 팥은 사람들에게서 모아서 하지 뭐. 졸업식 전에 모두 모여서 떡을 만드는 거야.]
[그렇게 하려면 솥을 걸고 시루도 모아 와야 되잖아?]
요오꼬는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응, 장작도 필요하고 절구, 절굿공이도 있어야지.]
[그럼 떡판도 얻어 와야겠네.]
[모두들 졸업할 때, 함께 떡을 만들어서 손수 단팥죽을 만들어 먹은 일은 평생토록 잊지 않으리라고 생각해.]
마사또의 말에 요오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겠어.]
[졸업식을 하는 동안 하급생들의 도움을 받아 큰 솥에 팥을 삶고…….]
[설탕도 들어.]
[그것도 기부로 얻어야지.]
마사또는 웃었다.
[그러면 돈이 남잖아?]
요오꼬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 남은 돈으로 선생님께 술이라도 사 드리면 되지.]
[어머나, 술을?]
[그렇다니까. 될 수만 있다면 남자 선생들에게 술, 여자 선생들에게는 콜라라도 대접하고 싶은걸.]
[그렇게까진 무리야.]
요오꼬는 웃기 시작했다.
[아니, 무리랄게 뭐 있어? 기부만 받을 수 있으면 말야.]
아라가끼 마사또는 머리를 흔들며 천천히 팔짱을 꼈다.
아라가끼 마사또에게 있어 기념할 만한 날이 있었다면, 그것은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뒤의 사은회에서, 그가 파티 위원으로 선출되어 기부를 받을 것을 생각해 낸 때였을 것이다.
사은회라는 모임의 참뜻은 제자가 스승께 가르침을 받은 데 대한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한다는데에 있다. 이른바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있다.
학예회나 운동회와는 다르다.
평소에는 사친회비가 너무 많다고 잔소리를 하는 부형들도 사은회라니까, 이것으로 돈을 내는 것도 마지막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실은 사은회에서 선생님들께 뭐 좀 선물하고 싶은데 3년전과 똑같은 5백엔이고 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난처해서요.]
아라가끼 마사또의 사정에 부형들은 이해하는 듯 대답했다.
[흐흠, 5백엔의 회비론 어쩔 수 없겠지.]
그러면서 5백엔이나 1천엔씩 내주는 것이었다.
140명의 졸업생 집을 전부 다닐 수는 없었으므로 64집을 돌아 다닌 결과, 그 수확은 448,500엔이었다.
현금을 내 줄 수 없는 집에서는 찹살이나 팥, 설탕 등을 기부해 주었다.
사은회는 대성공이었다.
졸업생과 재학생이 모두 모여 떡을 만들었다.
이것만으로도 기념이 될만한 행사였는데 게다가 이 떡을 넣은 단팥죽을 만들어 선생님과 졸업생에게 대접했던 것이다.
모두들 크게 기뻐했다.
강당은 매우 추웠다.
거기에 뜨거운 단팥죽이 나온 것이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도 서슴지 않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릇은 가까운 국민학교에서 빌려왔고, 수저는 그릇 가게의 기부였다.
큰 솥도 국민학교에서 얻어 왔으며, 연료로 쓰는 나무는 목공소에서 기부했다.
절구와 떡판은 과자집에서 얻어 왔는데 그 손료(損料)로 5천엔을 주었다.
선생들에게 두홉들이 청주를 대접했는데도 결국 아라가끼 마사또와 마에까와 요오꼬의 수중에는 48,200엔이 남았다.
[이 돈을 어떻게 하지?]
요오꼬는 깜짝 놀라 말했다.
그러자 마사또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기부를 받았으니까 남았잖아. 그렇게 근심할 것 없어.]
그러나 48,200엔을 마사또가 자기 호주머니에 모두 집어 넣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남았다고 해서 그것을 공표하여 사은회 위원들 마음대로 쓰자는 생각도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요오꼬는 이렇게 물었다.
[48,200엔을 둘로 나무년 24,100엔이 되지.]
[응, 그렇군.]
마에까와 요오꼬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 돈을 둘이 나누지.]
[그래, 24,100엔을 우리 호주머니에 넣어 두고 이 돈을 활용하는 거야.]
[활용하다니, 어떻게?]
[모르겠어?]
[그래. 모르겠어.]
[쓰는 거야.]
[어떻게?]
[쓰는 거라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쓰냔 말야?]
[이를테면 복권을 사도 괜찮겠지.]
[뭐? 복권을?]
[그래, 맞을지 안 맞을지는 그때 그 사람의 운수지.]
[그래, 그렇겠군.]
[요오꼰 복권을 사도록 해.]
[한장에 1백엔이라 치고, 241장은 살 수 있겠군?]
[그렇게 되지.]
[그래서 어떻게 하지?]
[당첨되면 그건 그것으로 족한 거지. 뭐…….]
[맞지 않으면?]
[그것도 그것으로 족하겠지.]
[딴은 그렇군.]
마에까와 요오꼬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 돈을 자본삼아 경쟁하지 않을래?]
[경쟁이라…….]
마사또는 혼잣말로 중얼댔다.
[괜찮겠지?]
[응, 좋아. 하지만 비밀로 해야 해.]
마사또는 크게 끄덕이고는 요오꼬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물론이지.]
[정말 괜찮겠지?]
[그렇대두!]
[그럼 하는 거야!]
[좋아.]
마에까와 요오꼬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한마디..≫
갖고 있는 파본의 글자가 희미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군요.
(한자는 거의 안보여서.....)
나름대로 복구해가면서 글을 쓰니까 시간이 무척 더디군요.
빠를시일내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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