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마을 - 10부
10부
여전히 따가운 햇살은 오늘도 어김없이 현우의 머리위로 열기를 내리며
한낮의 자룡골을 달군다.
어느덧 그 넓었던 잡목밭이 황갈색 배를 드러낸 채
현우의 뒤로 펼쳐져 있고 마무리를 하는 듯 현우는 돌담으로 경계선을 놓으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시꺼멓게 그을린 상체위로 방울거리며 땀이 흘러내리고 숙였던 상체를 들면서
이마의 땀을 수건으로 훔치는 모습이 이제는 영락없는 농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휴..우…어렵긴 했어도 ..잘..마무리가 된 것 같네….”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이 개간한 밭을 보며 미소를 띄우고는 한동안을 멍하니 선 채.
한달여의 시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노력한 고단한 노동을 생각한다.
손바닥에 물집이 배였다가 터지고를 몇번이나 반복하며 밭을 일궜는지 …
수건을 머리에 얹고는 나무밑으로 다가가 앉으며 밭을 가꾸기까지의 마음의 고생을 되새겨본다.
나무위로 한쌍의 종달새가 날아와 앉으며 현우를 반기 듯 울어대고
나무로 빽빽한 숲속에선 매미들이 합창을 들으며 고생뒤의 기쁨을 만끽한다.
현우는 넓게 펼쳐진 황토빛 밭을 보며
겨울초에 입맛을 돋구는 김장배추를 심어 싱그럽고 속이 꽉찬 배추들을 수확하는 공상에 잠기어 행복한 시간에 젖어 있었다.
싱그러운 풀내음과 조금은 열기를 띄고 있지만 살랑이는 바람결을 느끼며 마냥 행복한 듯
미소를 띄운 채 풍성한 느낌을 갖는다.
소롯길을 돌아 아른거리는 햇살사이로 세명의 인영이 길을 오르는게 보이고
멈춰진 듯 정적속의 나무밑으로 그림자가 되어 들어선다.
“어…형이…또…잠자네…??…”
치기어린 목소리의 진우였다.
가는눈을 떠가며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현우는 자신의 앞에 어느새 다가왔는지
밀짚모자를 쓴 까무잡잡한 소년을 보고는 눈이 뜨이며
“어…언제왔어….??….”
“낄낄낄….거봐….형은 맨날 잠만 자는데….”
영주댁을 보며 마치 고자질이라도 하는듯 얘기를 해댄다.
“이눔이….니 형은 쉬는거여….저걸…봐….형이 몇날 몇일을 땀흘려 가며 가꾼거….”
영주댁이 꿀밤이라도 때리는 듯 흉내를 내자
키득거리며 햇빛속으로 진우는 달려나가고
밭을 가로 지르며 뛰어 다닌다.
아직 치기 어린탓인지 여름이 되자 냇가로 놀러다니는 손자땜에 진우를 쫒아다니는 영주댁이 불안스러운 눈빛으로 진우를 향해 고함을 지르고
“이눔아…뛰덜마라…할미가 니눔땜에 ..온전한데 읎다…그 눔하고는….쯔쯔쯔…”
쫒지를 못하겠다는 듯 손을 저으며 나무그늘로 들어서고
혜숙은 지고 온 대바구니를 열고는 요기거리를 내어 놓는다.
현우의 옆으로 다가앉는 영주댁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려…고생 많았다……인제… 뭐를 ..심을 셈이냐..??…”
현우의 무릎을 어름쓸며 영주댁이 물음을 던진다.
미소띤 얼굴로 영주댁을 바라보며
“배추를 심을 생각이예요…”
“………??…….”
“밭….가득 배추를..심어….할머니께 드릴께요….”
“…배…추…..”
기쁜 듯 고개를 끄떡이며 영주댁은 만족한 웃음을 짓는다.
총명해 보이기도 하였지만 혼자서 이 너른밭을 개간하고 여기에 배추를 심겠다는 생각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혜숙도 영주댁의 물음에 호기심이 인 듯 눈을 현우에게 돌리고
‘배추’라고 대답을 하는 말을 듣고는 잠시 현우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떡인다.
사실 전쟁통에 물자부족에 허덕이다보니 마을에서는 모든게 자급자족을 할 수밖에 없었고
폐허가 된 농작물이 많아서인지 마을에서 나가는 농작물은 좋은 가격에 읍내로 팔려나갔다.
수확만 좋으면 재배한 작물은 파는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김장철을 맞춰 싱싱하고 속이 꽉찬 배추를 내놓는다면 더 많은 수확이 될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덧 마을에 적응하며 자기몫을 하는 현우가 두 사람의 눈에는 든든해 보인다.
영주댁의 만족은 훨씬 큰 듯
혜숙이 차리는 밥상을 하나하나 챙기며 현우가 음식을 먹도록 배려를 한다.
한달여 전 현우의 방황으로 영주댁은 몇일을 앓아 눞고는
현우가 밭일을 다시 시작하여 어느 정도의 진전을 보이자 한동안을 현우의 곁에 붙다시피하여 지냈다.
손주가 떠나버리기라도 할 듯 두려운건지 영주댁의 정성은 현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영주댁을 진정시키느라 현우는 밭일을 할때를 빼고는 집밖으로 나가보지를 못할 정도였고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살거라는 다짐을 매일 하다시피하여 영주댁을 겨우 달랠 수 있었다.
혜숙과는 아직도 어색한 행동이 이어지고 있었고
혜숙 역시 현우를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현우 또한 죄스러운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혜숙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고
가끔씩 눈이라도 마주칠라면 서로가 민망해지는지 얼굴을 돌려버렸고 꽤 오랜시간을 어색한 타인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슬쩍 혜숙을 비켜보며 현우는 영주댁에게로 시선을 돌리고는 다소 민망한 듯 얘기를 이어간다.
아직은 농사를 제대로 지어본 적이 없어서 자신감으로 얘기하는 것을 아는지 영주댁은
그래도 흐뭇한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떡이고는 현우에게 기쁨을 표시한다.
도란도란 조손간의 대화가 이어지며 웃음 핀 여름한낮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 낮의 태양의 뜨겁던 열기를 거두며 석양으로 내려지고
뒷뜰의 마당에서 녹슬었던 농기구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던 현우에게 영주댁이 다가온다.
오후내내 뒷뜰의 그늘진 구석에서 농기구들을 만지작거리는 손자가 궁금했던지
얼굴로 손부채를 저으며 다가와 앉는다.
“그려…인자…우리 손주도 농사꾼이 다 되었구먼..”
영주댁을 보며 밝게 웃는 현우는
어느덧 집안의 가장과 같은 역할을 할수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지 손을 놀리면서도
여유있는 웃음을 짓는다.
“아직…더운데..뭐하러 나오셨어요..??..”
“집안에만…있으니까…답답도 하구만…어여…마무리나 짓거라…나랑…다녀올데가 있으니…”
“……??…..”
뜬금없이 영주댁이 현우와의 나들이를 얘기한다.
왠일인지 궁금해지는 현우는 영주댁만을 바라보며 다음얘기를 기다렸지만 가보면 안다는 식으로 영주댁은 손사래로 일의 마무리를 재촉한다.
광문을 열어 농기구를 정리하고 허리를 편 현우는 영주댁의 재촉으로 뒷뜰을 벗어나 안채로 들어가고 따라들어가는 영주댁의 걸음이 예전과는 다르게 역동적으로 보였다.
마루로 나서는 현우는 생전 처음 입어보는 양복이 어색한지 자꾸만 손을 올리며 목어름을 쓰다듬고 옷이 이상하지는 않는지 이쪽저쪽으로 살피는 영주댁은 뭐가 그리좋은지 입을 귀에걸며 연신 웃음을 떠트린다.
“우리 손주놈이지만 어따 내놔도 흠이 없다….껄껄껄…”
혜숙이 현우의 바지단을 펴고 하얀 와이셔츠에 맨 넥타이를 바로 잡으며 외출의 마무리를 돕는다.
양복이 좀 작은 듯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쑥한 인상과도 어울리게 보여 큰키와 남자다운 면모를 돋보이게 한다.
외삼촌의 입던 옷을 손을 보아 말쑥하게 차려입고 마루로나선 모습은 영주댁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고 혜숙은 자신이 옷 매음새를 갖춰주며 남편을 배웅하던 생각에 마음 한쪽이 아련하게 젖어옴을 느낀다.
고등교육까지 받은 남편은 어쩌다 일이있어 읍내를 나설때면 항상 자신이 가다듬은 이옷을 차려입고 손을 흔들며 의젓하게 대문을 나서곤 했지만 어느새 남편의 빈자리를 이제는 조카인 현우가 차지하며 점점 잊혀져가는 남편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혜숙의 마음을 모르는지 영주댁은 현우의 차려입은 모습을 추켜세우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재너머 윤진사의 손주딸과 맞선을 약속하고는 손꼽아 오늘을 기다려왔던 영주댁의 마음은
벌써 혼사를 앞둔 사람처럼 들떠있었고 오래간만에 새 식구를 받아들인다는 기쁨에 젖어서인지 서글퍼지는 혜숙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가는 한숨을 내쉬는 혜숙을 아까부터 흘낏거리며 쳐다보던 현우는 자신으로 인해 점점 더 마음의 상처를 입는 혜숙이 안쓰러웠다.
착찹해지는 마음은 자신의 실수만 없었다면 위로라도 했을텐데 아무런 표현을 못한 채
처마끝만을 쳐다보며 마무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혜숙은 단정해진 현우의 옷매음새를 마무리하며 허리를 펴고 일어서며 현우를 쳐다본다.
영주댁도 야속했지만 그 동안을 마음고생으로 힘들게한 현우가 더 야속했다.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줄줄 알았지만 아무런 말없이 얘기도 없이 오늘까지 이어왔지만
현우의 맞선을 앞둔 상태라 왠지모를 야속함이 그녀를 어둡게 한다.
그늘진 안색의 혜숙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선반위의 구두를 내려놓으며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우와 영주댁이 대문을 나서기 시작하고 멀리서 해지는 석양이 두사람의 멀어지는 사이로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늦은밤이 돼서야 영주댁과 현우가 대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서고
방에서 혜숙이 나오며 마중을 한다.
마루로 올라선 영주댁이 아무런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마당에 우두커니 선 현우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혜숙의 눈에 궁금해지는 마음이 보였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하겠다는 듯 시선만을 안방으로 돌린 채 서있을 뿐이다.
착찹해진 마음은 현우를 고뇌에 젓게한다.
뼈대있는 가문에 외손주이지만 자신의 출생이 현실을 어둡게 했다는 자괴감도 들었다.
부모님이 살았다면 그래도 혈통있는 집안의 자손이 될 수 있을테지만 조실부모한 입장이라
장정이 귀한 세대임에도 외면을 당했다는게 현우를 아프게 한다.
기대를 가지고 들뜬 마음으로 재너머 마을에 갔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윤진사네는 문밖에 조손을 세워둔 채 문전박대를 하고 말았다.
현우보다는 더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지 영주댁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한마디 말도 않은 채 굳어진 얼굴로 돌아왔고
현우 역시 자신의 처지가 영주댁의 손아귀를 벗어나면 천애의 신세가 되리라는 서글픈 생각에 한숨만 쉬어 댄다.
어색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느끼는지 혜숙이 슬며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현우는 아무런 생각없이 마당에 우두커니 선채 영주댁의 들어간 안방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잡안의 분위기가 겨울처럼 냉냉하게 보낸지가 며칠인 것 같다.
하루종일 뒷뜰에서 토끼집을 만들며 소일을 하던 현우에게 혜숙이 다가온다.
“저…..현우야…..”
어색한지 몇번을 주억거리던 혜숙이 말문을 튼다.
“……예….무슨….??..”
현우 역시 말을 건내기가 어색한 듯 힘겹게 입술을 띄고 대답을 한다.
현우의 눈을 똑바로 보지못한 채 혜숙이
“탱자나무 있는집… 성수네 집에…일손이 부족하다고…좀..전에 사람이 왔는데….”
“예……제가 갈께요…”
품앗이 하는게 마을의 풍속이 되다시피하여 일손이 딸리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있었다.
탱자나무집 성수네도 아들만 둘을 남겨둔 채 성수아버지가 전쟁에 나갔고 아직은 나이어린 두형제는 일손을 도울만한 여력이 없었다.
이번 여름에 참외를 갈아 수확을 하고 있지만 여러집에서 많은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도와줄 짬이 없는것들 같았다.
읍내까지 운반도 해야하고 수확이 끝나면 밭을 갈아주어야 하는 일도 현우가 맡아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어느새 왔는지 네다섯살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은 채 마루에 걸터앉은 아낙이 영주댁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마루로 올라서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누고는 영주댁의 옆으로 현우가 앉는다.
제법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어린소년을 보며 현우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어디보자…니가…성수니…??…”
낮설어서인지 아낙의 뒤로 몸을 감추며 소년이 고개를 끄떡이며 현우의 모습이 신기한지
눈을 떼지를 않는다.
어색해진듯한 분위기를 띄워서인지 아낙이 고개를 끄떡이며
“예….이녀석이 우리 집안의 가장이예요…아빠 몫을 할려면 한창 더 있어야 겠지만…”
현우의 눈에 햇빛을 많이 받아서인지 까무잡잡한 피부와 억세세 보이는 손이 다소 투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장정이없는 마을에 거의 비슷한 처지들이라 자신을 가꾸는 부녀자들은 없는 듯 하고
갸름한 얼굴에 오똑한 코가 밉상스런 얼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우야…..느그…외삼촌 있을적에 그려도 …야덜집에서 우릴…많이…도왔다..그려서..
우리도….어려울적…은혜는 갚아야..한다….인자…니가..삼춘몫으로..도리를 해야할껏 같다...”
“예…할머니…”
“그려…그려….”
영주댁이 간만에 현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인다.
몇일동안 마음이 고통이 컸는 듯 아직도 웃음이 보이지는 않지만 마을의 어른으로서 도리를 잃지않으려는 자세는 현우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동안 풀어죽어 있던 현우도 기지개를 켜듯 온몸에 힘이 넘쳐남을 느끼며 아낙으로부터
할일과 고생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고개를 끄떡여간다.
다음날부터 현우는 성수네 밭으로 나갔고 생각보다는 힘이든 듯 이른 아침부터 땀에 젖은 채 열심히 지게를 지고있었다.
마을아낙 몇몇이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참외를 수확하고 현우는 참외를 지게가득 채우고는
수레로 옮겨담기를 반복한다.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아래서 노오란 참외를 먹는게 별미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현우에겐 참외가 먹거리로 보이는게 아니라 밭을 일굴 때 나르던 돌덩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것 수래가득 참외가 쌓여지고 자신의 채워넣은 몇 개의 수레를 보며 허리를 펴서 웃음을 짓는다.
옆에 다가온 성수엄마가 현우를 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어느때보다 참외가 달게 익은 것 같아요..이렇게만…잘 자라주면…좋겠는데…호호호…”
“예….제가 보기에도..군침이 도네요…”
노랗게 익은 참외를 보며 성수엄마가 자랑스러운 듯 얘기하고 현우도 적당한 대답으로 성수엄마를 격려한다.
까무잡잡한 피부지만 초롱하게 빛나는 눈으로 기쁨을 가득담은 채 조잘조잘 얘기를 나누며 거리감이 없어진 것 처럼 생각이 들었다.
이마에 송송 맺힌 땀방울이 볼위로 흘렀지만 성수엄마는 아랑곳없이 수레의 참외를 만져가며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
현우도 곧 자신의 가꾼 수확물을 가꾸면 이럴것이라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자식을 어름쓸 듯 성수엄마는 자신의 농작물을 소중하고 정성스럽게 정리하고는 밭너머 풀밭에 매어논 소에게로 걸어간다.
현우와 성수엄마가 수레를 끌고 읍내로 향했고
수레를 끄는 소들을 이끄는 것도 현우에게는 고역이었다.
평소에 해보지 못해서인지 자꾸만 옆으로 빠지려는 소를 밀고 끌면서 진땀을 흘리는 현우의 모습을 보면서 성수엄마는 뭐가 그리 재밋는지 깔깔대며 웃는다.
읍내까지의 여정동안 성수엄마는 내내 웃음으로 현우를 당혹케했고 포기할려는 마음이 극에 달할 때 멀리 읍네로 들어가는 버드나무 군락이 보여져 간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마로 흐르는 땀을 닦아가고 이제야 길을 찾은 듯 소들이 말없이
길을 걸어 나갔다.
제법 커보이는 장터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한다.
전쟁통에도 도시와는 다르게 많은 물건들이 현우의 눈에 들어오고 생기있는 상인들의 목소리에도 활력이 넘쳐 흐르는 듯 들렸다.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을 누비며 어느덧 커다란 점포의 앞으로 소들을 이끌고 성수엄마가 앞장을 서고 주위를 둘러보며 현우가 따른다.
네대의 수레행렬을 지켜보던 많은눈이 수레로 시선이 모아지고 잘익은 참외를 바라보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온다.
오십대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오고는 수레를 둘러보며 상품의 가치를 확인하고는 성수엄마를 안으로 들이고 현우도 미적거리며 성수엄마를 따른 채 가게안의 흥정을 구경한다.
겨울쯤이면 성수엄마의 자리에 현우가 서서 배추값을 흥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거래의 과정에 눈과 귀를 모으게 하는 것 같다.
좋은 토질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달게익은 참외이다보니 상인도 예전과는 다르게 아낙에게
가격을 제시한다.
한동안의 흥정을 끝으로 상인이 큰소리로 흥정을 마침을 선포하고
아낙은 기쁜 듯 현우를 보며 고개를 크게 끄떡여간다.
아마도 좋은 가격을 받아서 기쁜지 사람들이 없었으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듯 기쁨에 겨워한다.
허리춤에서 전대가 끌러지고 상인은 손에 침을 뭍혀가며 꽤 많은 지폐를 세어가고
성수엄마는 상인의 손길을 따라 셈을 바라본다.
두툼한 전대속에 돈이 담겨지고 헐렁한 바지속에서 전대가 메어짐을 마친 성수엄마가 몇번의 고개숙임을 끝으로 가게를 나서 수레로 다가갔다.
현우는 성수엄마의 일련의 행동을 보면서 보기보다는 야무진 아낙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자로서의 부드러움도 가진 어머니의 외형을 보는 듯 감탄이 서려 나왔다.
점포의 일꾼들이 수레를 비워가는 동안 성수엄마와 현우는 시장을 구경하고 몇가지의 물건을 고른 후 시장의 구석진 국밥집으로 들어섰다.
“휴우…그래도..고생끝에..참외를 ..팔았지만 그래도 섭섭도 하네요…”
“다행이에요…좋은..가격으로..참외를 넘겼으니…”
“호호호…들어가요….남정네들 같이..우리도..흥정을..마쳤으니…국밥에..탁주이라도…한잔..해야…줘…”
“예에…??…”
“호호호…왜요..??..여자는…먹지…말란..법…있나요…?.”
앞장서서 국밥집으로 들어서는 성수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당당해 보였고
다소 주눅들 듯 현우가 성수엄마를 따른다.
성수엄마의 뒤를 따르며 국밥집으로 들어서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메운 채 술과 음식들을 먹고 있었고 아마도 작물들을 내다 판듯한 모습의 농사꾼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자리 중간중간을 아낙들이 차지한 것도 현우의 눈에는 이색적으로 보였지만 전쟁통에 부상을 당한 듯 팔다리가 없는 젊은이들도 몇몇 보여 안타까움도 생겼다.
자리를 둘러보며 서있자 어느새 자리를 잡았는지 성수엄마가 팔을 잡아끌고는 구석진 자리로 앉는다.
“..왜요..??…누구…아는..사람이라도…있어요..??..”
“아…아뇨…그냥…구경..좀…하느라….”
“호호호….감나무댁 총각이 순진하다고…하더니만…진짜가…보네…호호호…”
“……..??….”
“마을 아낙들..사이엔…감나무집…총각이야…단연…이야기거리로….최고지….호호호…”
어설픈 행동에 순진하다고 생각들을 했는지 성수엄마가 놀리듯 얘기를 한다.
다리를 다쳐서 마을에 들어오면서부터 많은 시선을 받았고 성실한 모습에 아마도 아낙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는지 성수엄마가 들리는 얘기들을 얘기한다.
성수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현우는 씁쓰레한 웃음을 띄우지만 성수엄마는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대며 얘기를 한다.
“호호호…순진해서…여자..손도 못 잡아 봤다고 하던데…맞아요..??..”
“예에….??…누가….”
현우의 얼굴의 당혹감에 서리자
성수엄마의 눈길이 은근해지며 얘기 해보라는 듯 짓굳은 표정을 짓는다.
마침 국밥집 주인이 한 주전자의 탁주와 국밥을 내오고 대화가 끊긴다.
성수엄마는 대접가득 한사발의 탁주를 현우의 앞으로 내밀고 자신도 한사발 가득 탁주를 따르고는 현우를 보며 마시라며 자신이 먼저 입을 대어간다.
이외로 가녀린듯한 목덜미가 몇번의 울림을 하며 탁주를 마셔가고
“크으….좋다…맜있네…”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는 현우를 보며 씨익 웃음을 머금고는
“마셔봐요…목에..칼칼한게..쑤욱…내려가고…기분이..좋아져요…”
잔을 든 채 멀건 술을 바라보던 현우가 사발을 입에대고 벌컥거리며 탁주를 마신다.
한사발의 탁주를 한모금에 비워버리자 성주엄마의 얼굴이 놀란 듯 현우를 쳐다보고는
“아유…술은 제법 하네….옛수…한잔….더….”
텁텁하고 신듯한 술맛이 현우의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갈증을 푸는대는 그런데로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레 잔을 내민다.
한잔..두잔..하면서 어느덧 꽤 마신 듯 현우의 얼굴이 벌겋게 보였다.
성수엄마도 두어잔을 마신 것 같은데 멀쩡한 얼굴로 현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국밥집을 나선다.
해가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두사람은 마을로 향했고 파장도 멀지않은 듯 하나둘씩 장을 떠나는 모습들이 보여졌다.
여전히 따가운 햇살은 오늘도 어김없이 현우의 머리위로 열기를 내리며
한낮의 자룡골을 달군다.
어느덧 그 넓었던 잡목밭이 황갈색 배를 드러낸 채
현우의 뒤로 펼쳐져 있고 마무리를 하는 듯 현우는 돌담으로 경계선을 놓으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시꺼멓게 그을린 상체위로 방울거리며 땀이 흘러내리고 숙였던 상체를 들면서
이마의 땀을 수건으로 훔치는 모습이 이제는 영락없는 농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휴..우…어렵긴 했어도 ..잘..마무리가 된 것 같네….”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이 개간한 밭을 보며 미소를 띄우고는 한동안을 멍하니 선 채.
한달여의 시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노력한 고단한 노동을 생각한다.
손바닥에 물집이 배였다가 터지고를 몇번이나 반복하며 밭을 일궜는지 …
수건을 머리에 얹고는 나무밑으로 다가가 앉으며 밭을 가꾸기까지의 마음의 고생을 되새겨본다.
나무위로 한쌍의 종달새가 날아와 앉으며 현우를 반기 듯 울어대고
나무로 빽빽한 숲속에선 매미들이 합창을 들으며 고생뒤의 기쁨을 만끽한다.
현우는 넓게 펼쳐진 황토빛 밭을 보며
겨울초에 입맛을 돋구는 김장배추를 심어 싱그럽고 속이 꽉찬 배추들을 수확하는 공상에 잠기어 행복한 시간에 젖어 있었다.
싱그러운 풀내음과 조금은 열기를 띄고 있지만 살랑이는 바람결을 느끼며 마냥 행복한 듯
미소를 띄운 채 풍성한 느낌을 갖는다.
소롯길을 돌아 아른거리는 햇살사이로 세명의 인영이 길을 오르는게 보이고
멈춰진 듯 정적속의 나무밑으로 그림자가 되어 들어선다.
“어…형이…또…잠자네…??…”
치기어린 목소리의 진우였다.
가는눈을 떠가며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현우는 자신의 앞에 어느새 다가왔는지
밀짚모자를 쓴 까무잡잡한 소년을 보고는 눈이 뜨이며
“어…언제왔어….??….”
“낄낄낄….거봐….형은 맨날 잠만 자는데….”
영주댁을 보며 마치 고자질이라도 하는듯 얘기를 해댄다.
“이눔이….니 형은 쉬는거여….저걸…봐….형이 몇날 몇일을 땀흘려 가며 가꾼거….”
영주댁이 꿀밤이라도 때리는 듯 흉내를 내자
키득거리며 햇빛속으로 진우는 달려나가고
밭을 가로 지르며 뛰어 다닌다.
아직 치기 어린탓인지 여름이 되자 냇가로 놀러다니는 손자땜에 진우를 쫒아다니는 영주댁이 불안스러운 눈빛으로 진우를 향해 고함을 지르고
“이눔아…뛰덜마라…할미가 니눔땜에 ..온전한데 읎다…그 눔하고는….쯔쯔쯔…”
쫒지를 못하겠다는 듯 손을 저으며 나무그늘로 들어서고
혜숙은 지고 온 대바구니를 열고는 요기거리를 내어 놓는다.
현우의 옆으로 다가앉는 영주댁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려…고생 많았다……인제… 뭐를 ..심을 셈이냐..??…”
현우의 무릎을 어름쓸며 영주댁이 물음을 던진다.
미소띤 얼굴로 영주댁을 바라보며
“배추를 심을 생각이예요…”
“………??…….”
“밭….가득 배추를..심어….할머니께 드릴께요….”
“…배…추…..”
기쁜 듯 고개를 끄떡이며 영주댁은 만족한 웃음을 짓는다.
총명해 보이기도 하였지만 혼자서 이 너른밭을 개간하고 여기에 배추를 심겠다는 생각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혜숙도 영주댁의 물음에 호기심이 인 듯 눈을 현우에게 돌리고
‘배추’라고 대답을 하는 말을 듣고는 잠시 현우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떡인다.
사실 전쟁통에 물자부족에 허덕이다보니 마을에서는 모든게 자급자족을 할 수밖에 없었고
폐허가 된 농작물이 많아서인지 마을에서 나가는 농작물은 좋은 가격에 읍내로 팔려나갔다.
수확만 좋으면 재배한 작물은 파는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김장철을 맞춰 싱싱하고 속이 꽉찬 배추를 내놓는다면 더 많은 수확이 될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덧 마을에 적응하며 자기몫을 하는 현우가 두 사람의 눈에는 든든해 보인다.
영주댁의 만족은 훨씬 큰 듯
혜숙이 차리는 밥상을 하나하나 챙기며 현우가 음식을 먹도록 배려를 한다.
한달여 전 현우의 방황으로 영주댁은 몇일을 앓아 눞고는
현우가 밭일을 다시 시작하여 어느 정도의 진전을 보이자 한동안을 현우의 곁에 붙다시피하여 지냈다.
손주가 떠나버리기라도 할 듯 두려운건지 영주댁의 정성은 현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영주댁을 진정시키느라 현우는 밭일을 할때를 빼고는 집밖으로 나가보지를 못할 정도였고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살거라는 다짐을 매일 하다시피하여 영주댁을 겨우 달랠 수 있었다.
혜숙과는 아직도 어색한 행동이 이어지고 있었고
혜숙 역시 현우를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현우 또한 죄스러운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혜숙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고
가끔씩 눈이라도 마주칠라면 서로가 민망해지는지 얼굴을 돌려버렸고 꽤 오랜시간을 어색한 타인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슬쩍 혜숙을 비켜보며 현우는 영주댁에게로 시선을 돌리고는 다소 민망한 듯 얘기를 이어간다.
아직은 농사를 제대로 지어본 적이 없어서 자신감으로 얘기하는 것을 아는지 영주댁은
그래도 흐뭇한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떡이고는 현우에게 기쁨을 표시한다.
도란도란 조손간의 대화가 이어지며 웃음 핀 여름한낮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 낮의 태양의 뜨겁던 열기를 거두며 석양으로 내려지고
뒷뜰의 마당에서 녹슬었던 농기구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던 현우에게 영주댁이 다가온다.
오후내내 뒷뜰의 그늘진 구석에서 농기구들을 만지작거리는 손자가 궁금했던지
얼굴로 손부채를 저으며 다가와 앉는다.
“그려…인자…우리 손주도 농사꾼이 다 되었구먼..”
영주댁을 보며 밝게 웃는 현우는
어느덧 집안의 가장과 같은 역할을 할수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지 손을 놀리면서도
여유있는 웃음을 짓는다.
“아직…더운데..뭐하러 나오셨어요..??..”
“집안에만…있으니까…답답도 하구만…어여…마무리나 짓거라…나랑…다녀올데가 있으니…”
“……??…..”
뜬금없이 영주댁이 현우와의 나들이를 얘기한다.
왠일인지 궁금해지는 현우는 영주댁만을 바라보며 다음얘기를 기다렸지만 가보면 안다는 식으로 영주댁은 손사래로 일의 마무리를 재촉한다.
광문을 열어 농기구를 정리하고 허리를 편 현우는 영주댁의 재촉으로 뒷뜰을 벗어나 안채로 들어가고 따라들어가는 영주댁의 걸음이 예전과는 다르게 역동적으로 보였다.
마루로 나서는 현우는 생전 처음 입어보는 양복이 어색한지 자꾸만 손을 올리며 목어름을 쓰다듬고 옷이 이상하지는 않는지 이쪽저쪽으로 살피는 영주댁은 뭐가 그리좋은지 입을 귀에걸며 연신 웃음을 떠트린다.
“우리 손주놈이지만 어따 내놔도 흠이 없다….껄껄껄…”
혜숙이 현우의 바지단을 펴고 하얀 와이셔츠에 맨 넥타이를 바로 잡으며 외출의 마무리를 돕는다.
양복이 좀 작은 듯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쑥한 인상과도 어울리게 보여 큰키와 남자다운 면모를 돋보이게 한다.
외삼촌의 입던 옷을 손을 보아 말쑥하게 차려입고 마루로나선 모습은 영주댁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고 혜숙은 자신이 옷 매음새를 갖춰주며 남편을 배웅하던 생각에 마음 한쪽이 아련하게 젖어옴을 느낀다.
고등교육까지 받은 남편은 어쩌다 일이있어 읍내를 나설때면 항상 자신이 가다듬은 이옷을 차려입고 손을 흔들며 의젓하게 대문을 나서곤 했지만 어느새 남편의 빈자리를 이제는 조카인 현우가 차지하며 점점 잊혀져가는 남편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혜숙의 마음을 모르는지 영주댁은 현우의 차려입은 모습을 추켜세우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재너머 윤진사의 손주딸과 맞선을 약속하고는 손꼽아 오늘을 기다려왔던 영주댁의 마음은
벌써 혼사를 앞둔 사람처럼 들떠있었고 오래간만에 새 식구를 받아들인다는 기쁨에 젖어서인지 서글퍼지는 혜숙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가는 한숨을 내쉬는 혜숙을 아까부터 흘낏거리며 쳐다보던 현우는 자신으로 인해 점점 더 마음의 상처를 입는 혜숙이 안쓰러웠다.
착찹해지는 마음은 자신의 실수만 없었다면 위로라도 했을텐데 아무런 표현을 못한 채
처마끝만을 쳐다보며 마무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혜숙은 단정해진 현우의 옷매음새를 마무리하며 허리를 펴고 일어서며 현우를 쳐다본다.
영주댁도 야속했지만 그 동안을 마음고생으로 힘들게한 현우가 더 야속했다.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줄줄 알았지만 아무런 말없이 얘기도 없이 오늘까지 이어왔지만
현우의 맞선을 앞둔 상태라 왠지모를 야속함이 그녀를 어둡게 한다.
그늘진 안색의 혜숙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선반위의 구두를 내려놓으며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우와 영주댁이 대문을 나서기 시작하고 멀리서 해지는 석양이 두사람의 멀어지는 사이로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늦은밤이 돼서야 영주댁과 현우가 대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서고
방에서 혜숙이 나오며 마중을 한다.
마루로 올라선 영주댁이 아무런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마당에 우두커니 선 현우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혜숙의 눈에 궁금해지는 마음이 보였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하겠다는 듯 시선만을 안방으로 돌린 채 서있을 뿐이다.
착찹해진 마음은 현우를 고뇌에 젓게한다.
뼈대있는 가문에 외손주이지만 자신의 출생이 현실을 어둡게 했다는 자괴감도 들었다.
부모님이 살았다면 그래도 혈통있는 집안의 자손이 될 수 있을테지만 조실부모한 입장이라
장정이 귀한 세대임에도 외면을 당했다는게 현우를 아프게 한다.
기대를 가지고 들뜬 마음으로 재너머 마을에 갔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윤진사네는 문밖에 조손을 세워둔 채 문전박대를 하고 말았다.
현우보다는 더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지 영주댁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한마디 말도 않은 채 굳어진 얼굴로 돌아왔고
현우 역시 자신의 처지가 영주댁의 손아귀를 벗어나면 천애의 신세가 되리라는 서글픈 생각에 한숨만 쉬어 댄다.
어색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느끼는지 혜숙이 슬며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현우는 아무런 생각없이 마당에 우두커니 선채 영주댁의 들어간 안방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잡안의 분위기가 겨울처럼 냉냉하게 보낸지가 며칠인 것 같다.
하루종일 뒷뜰에서 토끼집을 만들며 소일을 하던 현우에게 혜숙이 다가온다.
“저…..현우야…..”
어색한지 몇번을 주억거리던 혜숙이 말문을 튼다.
“……예….무슨….??..”
현우 역시 말을 건내기가 어색한 듯 힘겹게 입술을 띄고 대답을 한다.
현우의 눈을 똑바로 보지못한 채 혜숙이
“탱자나무 있는집… 성수네 집에…일손이 부족하다고…좀..전에 사람이 왔는데….”
“예……제가 갈께요…”
품앗이 하는게 마을의 풍속이 되다시피하여 일손이 딸리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있었다.
탱자나무집 성수네도 아들만 둘을 남겨둔 채 성수아버지가 전쟁에 나갔고 아직은 나이어린 두형제는 일손을 도울만한 여력이 없었다.
이번 여름에 참외를 갈아 수확을 하고 있지만 여러집에서 많은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도와줄 짬이 없는것들 같았다.
읍내까지 운반도 해야하고 수확이 끝나면 밭을 갈아주어야 하는 일도 현우가 맡아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어느새 왔는지 네다섯살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은 채 마루에 걸터앉은 아낙이 영주댁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마루로 올라서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누고는 영주댁의 옆으로 현우가 앉는다.
제법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어린소년을 보며 현우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어디보자…니가…성수니…??…”
낮설어서인지 아낙의 뒤로 몸을 감추며 소년이 고개를 끄떡이며 현우의 모습이 신기한지
눈을 떼지를 않는다.
어색해진듯한 분위기를 띄워서인지 아낙이 고개를 끄떡이며
“예….이녀석이 우리 집안의 가장이예요…아빠 몫을 할려면 한창 더 있어야 겠지만…”
현우의 눈에 햇빛을 많이 받아서인지 까무잡잡한 피부와 억세세 보이는 손이 다소 투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장정이없는 마을에 거의 비슷한 처지들이라 자신을 가꾸는 부녀자들은 없는 듯 하고
갸름한 얼굴에 오똑한 코가 밉상스런 얼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현우야…..느그…외삼촌 있을적에 그려도 …야덜집에서 우릴…많이…도왔다..그려서..
우리도….어려울적…은혜는 갚아야..한다….인자…니가..삼춘몫으로..도리를 해야할껏 같다...”
“예…할머니…”
“그려…그려….”
영주댁이 간만에 현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인다.
몇일동안 마음이 고통이 컸는 듯 아직도 웃음이 보이지는 않지만 마을의 어른으로서 도리를 잃지않으려는 자세는 현우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동안 풀어죽어 있던 현우도 기지개를 켜듯 온몸에 힘이 넘쳐남을 느끼며 아낙으로부터
할일과 고생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고개를 끄떡여간다.
다음날부터 현우는 성수네 밭으로 나갔고 생각보다는 힘이든 듯 이른 아침부터 땀에 젖은 채 열심히 지게를 지고있었다.
마을아낙 몇몇이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참외를 수확하고 현우는 참외를 지게가득 채우고는
수레로 옮겨담기를 반복한다.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아래서 노오란 참외를 먹는게 별미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현우에겐 참외가 먹거리로 보이는게 아니라 밭을 일굴 때 나르던 돌덩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것 수래가득 참외가 쌓여지고 자신의 채워넣은 몇 개의 수레를 보며 허리를 펴서 웃음을 짓는다.
옆에 다가온 성수엄마가 현우를 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어느때보다 참외가 달게 익은 것 같아요..이렇게만…잘 자라주면…좋겠는데…호호호…”
“예….제가 보기에도..군침이 도네요…”
노랗게 익은 참외를 보며 성수엄마가 자랑스러운 듯 얘기하고 현우도 적당한 대답으로 성수엄마를 격려한다.
까무잡잡한 피부지만 초롱하게 빛나는 눈으로 기쁨을 가득담은 채 조잘조잘 얘기를 나누며 거리감이 없어진 것 처럼 생각이 들었다.
이마에 송송 맺힌 땀방울이 볼위로 흘렀지만 성수엄마는 아랑곳없이 수레의 참외를 만져가며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
현우도 곧 자신의 가꾼 수확물을 가꾸면 이럴것이라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자식을 어름쓸 듯 성수엄마는 자신의 농작물을 소중하고 정성스럽게 정리하고는 밭너머 풀밭에 매어논 소에게로 걸어간다.
현우와 성수엄마가 수레를 끌고 읍내로 향했고
수레를 끄는 소들을 이끄는 것도 현우에게는 고역이었다.
평소에 해보지 못해서인지 자꾸만 옆으로 빠지려는 소를 밀고 끌면서 진땀을 흘리는 현우의 모습을 보면서 성수엄마는 뭐가 그리 재밋는지 깔깔대며 웃는다.
읍내까지의 여정동안 성수엄마는 내내 웃음으로 현우를 당혹케했고 포기할려는 마음이 극에 달할 때 멀리 읍네로 들어가는 버드나무 군락이 보여져 간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마로 흐르는 땀을 닦아가고 이제야 길을 찾은 듯 소들이 말없이
길을 걸어 나갔다.
제법 커보이는 장터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한다.
전쟁통에도 도시와는 다르게 많은 물건들이 현우의 눈에 들어오고 생기있는 상인들의 목소리에도 활력이 넘쳐 흐르는 듯 들렸다.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을 누비며 어느덧 커다란 점포의 앞으로 소들을 이끌고 성수엄마가 앞장을 서고 주위를 둘러보며 현우가 따른다.
네대의 수레행렬을 지켜보던 많은눈이 수레로 시선이 모아지고 잘익은 참외를 바라보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온다.
오십대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오고는 수레를 둘러보며 상품의 가치를 확인하고는 성수엄마를 안으로 들이고 현우도 미적거리며 성수엄마를 따른 채 가게안의 흥정을 구경한다.
겨울쯤이면 성수엄마의 자리에 현우가 서서 배추값을 흥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거래의 과정에 눈과 귀를 모으게 하는 것 같다.
좋은 토질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달게익은 참외이다보니 상인도 예전과는 다르게 아낙에게
가격을 제시한다.
한동안의 흥정을 끝으로 상인이 큰소리로 흥정을 마침을 선포하고
아낙은 기쁜 듯 현우를 보며 고개를 크게 끄떡여간다.
아마도 좋은 가격을 받아서 기쁜지 사람들이 없었으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듯 기쁨에 겨워한다.
허리춤에서 전대가 끌러지고 상인은 손에 침을 뭍혀가며 꽤 많은 지폐를 세어가고
성수엄마는 상인의 손길을 따라 셈을 바라본다.
두툼한 전대속에 돈이 담겨지고 헐렁한 바지속에서 전대가 메어짐을 마친 성수엄마가 몇번의 고개숙임을 끝으로 가게를 나서 수레로 다가갔다.
현우는 성수엄마의 일련의 행동을 보면서 보기보다는 야무진 아낙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자로서의 부드러움도 가진 어머니의 외형을 보는 듯 감탄이 서려 나왔다.
점포의 일꾼들이 수레를 비워가는 동안 성수엄마와 현우는 시장을 구경하고 몇가지의 물건을 고른 후 시장의 구석진 국밥집으로 들어섰다.
“휴우…그래도..고생끝에..참외를 ..팔았지만 그래도 섭섭도 하네요…”
“다행이에요…좋은..가격으로..참외를 넘겼으니…”
“호호호…들어가요….남정네들 같이..우리도..흥정을..마쳤으니…국밥에..탁주이라도…한잔..해야…줘…”
“예에…??…”
“호호호…왜요..??..여자는…먹지…말란..법…있나요…?.”
앞장서서 국밥집으로 들어서는 성수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당당해 보였고
다소 주눅들 듯 현우가 성수엄마를 따른다.
성수엄마의 뒤를 따르며 국밥집으로 들어서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메운 채 술과 음식들을 먹고 있었고 아마도 작물들을 내다 판듯한 모습의 농사꾼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자리 중간중간을 아낙들이 차지한 것도 현우의 눈에는 이색적으로 보였지만 전쟁통에 부상을 당한 듯 팔다리가 없는 젊은이들도 몇몇 보여 안타까움도 생겼다.
자리를 둘러보며 서있자 어느새 자리를 잡았는지 성수엄마가 팔을 잡아끌고는 구석진 자리로 앉는다.
“..왜요..??…누구…아는..사람이라도…있어요..??..”
“아…아뇨…그냥…구경..좀…하느라….”
“호호호….감나무댁 총각이 순진하다고…하더니만…진짜가…보네…호호호…”
“……..??….”
“마을 아낙들..사이엔…감나무집…총각이야…단연…이야기거리로….최고지….호호호…”
어설픈 행동에 순진하다고 생각들을 했는지 성수엄마가 놀리듯 얘기를 한다.
다리를 다쳐서 마을에 들어오면서부터 많은 시선을 받았고 성실한 모습에 아마도 아낙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는지 성수엄마가 들리는 얘기들을 얘기한다.
성수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현우는 씁쓰레한 웃음을 띄우지만 성수엄마는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대며 얘기를 한다.
“호호호…순진해서…여자..손도 못 잡아 봤다고 하던데…맞아요..??..”
“예에….??…누가….”
현우의 얼굴의 당혹감에 서리자
성수엄마의 눈길이 은근해지며 얘기 해보라는 듯 짓굳은 표정을 짓는다.
마침 국밥집 주인이 한 주전자의 탁주와 국밥을 내오고 대화가 끊긴다.
성수엄마는 대접가득 한사발의 탁주를 현우의 앞으로 내밀고 자신도 한사발 가득 탁주를 따르고는 현우를 보며 마시라며 자신이 먼저 입을 대어간다.
이외로 가녀린듯한 목덜미가 몇번의 울림을 하며 탁주를 마셔가고
“크으….좋다…맜있네…”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는 현우를 보며 씨익 웃음을 머금고는
“마셔봐요…목에..칼칼한게..쑤욱…내려가고…기분이..좋아져요…”
잔을 든 채 멀건 술을 바라보던 현우가 사발을 입에대고 벌컥거리며 탁주를 마신다.
한사발의 탁주를 한모금에 비워버리자 성주엄마의 얼굴이 놀란 듯 현우를 쳐다보고는
“아유…술은 제법 하네….옛수…한잔….더….”
텁텁하고 신듯한 술맛이 현우의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갈증을 푸는대는 그런데로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레 잔을 내민다.
한잔..두잔..하면서 어느덧 꽤 마신 듯 현우의 얼굴이 벌겋게 보였다.
성수엄마도 두어잔을 마신 것 같은데 멀쩡한 얼굴로 현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국밥집을 나선다.
해가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두사람은 마을로 향했고 파장도 멀지않은 듯 하나둘씩 장을 떠나는 모습들이 보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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