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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위 포식자 - 13(에필로그)


 



 



에필로그 : 최상위 피식자




“거기에 걸어.”


팔짱을 낀 채로 이현이 벽에 그림을 그는 이들을 쳐다봤다.

그림의 이름은 [빨래가 있는 풍경]이다.



어렵게 찾아낸 진품이다.

저건 이현이 영주에게 주는 약혼 선물이다.



물론 갤러리도 그녀에게 줬다.

그녀의 모친 한 여사에게는 그녀가 원하는 만큼의 돈과 건물을 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리고 갤러리는 영주의 것이 되었다.



그녀는 그곳에 있을 때 가장 빛난다.

그건 변함이 없다.



예전에 그곳을 채우고 있던 작품들은 전부 자금 세탁을 위한 것들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갤러리는 변신 중이다.

그래서 그녀는 요즘 무척이나 바쁘다.



입양 무효 소송은 지난주에 끝났고 호적은 깨끗하게 정정되었다.

더는 그녀와 자신은 [가족]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 그녀와 자신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될 준비를 할 예정이다.

약혼식이 바로 그것이다.



약혼식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다.

이복형제들을 부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약혼식에 참석할 자격을 그들에게는 주지 않았다.

영주가 원하는 소수의 대학 친구들, 그리고 영주의 모친, 그 외에 아주 소소한 친척들이 약혼식에 초대되는 손님들의 전부다.

물론 그렇게 해도 찍을 기자들은 죄다 찍어서 내일 아침부터 온갖 미디어에 오르내리겠지만 말이다.



이건 희대의 스캔들, 스캔들이라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으니 희대의 가십거리다.

양녀 입양으로 남매가 된 이들이 입양 무효 소송으로 남이 된 후에 다시 약혼과 결혼을 거쳐 부부가 된다.

이런 기가 막힌 가십거리를 어디에서 찾겠는가.



“좋군.”



정확히 자리를 찾은 그림을 보며 이현이 비로소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림은 침실의 벽에 걸렸다.

영주와 자신이 함께 사용할 침실의 벽에 저 그림을 걸고 매일 밤 그녀와 함께 저 풍경을 볼 생각이다.

저 그림은 영주도 좋아하지만 이현도 좋아하는 그림이다.



실은, 저 그림의 모작을 빠져들어 갈 것처럼 바라보고 있는 영주가 이현이 본 첫 모습이었다.

그렇게 좋은 그림인가 싶어 이현도 그녀를 따라보다가 그만 빠져들고 말았지만 말이다.



영주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이현은 좋아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제왕이라고 부르지만 진짜 제왕은 따로 있다.

영주는 스스로를 [피식자]라고 부르지만 이현이 보기에 그녀는 최상위 피식자다.

제왕 위에 군림하는 피식자이니 당연히 최상위의 피식자가 아닐까.



[이만큼요?]



자신을 이제 얼마나 좋아하냐고 어젯밤 물었을 때 영주는 괜히 부끄러워하며 손가락 다섯 개를 펴보였었다.

그게 5%인지 50%인지 알 수 없지만,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만큼은 사실이다.



봐라.

자신은 고작 이런 남자다.

한영주라는 여자의 사랑에 목을 매고 있는, 그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가련한 포식자일 뿐이다.



‘오늘은 약혼하고 다음 달에 결혼하고…….’



모든 것이 순조롭다.

부친의 장례식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결혼식을 올린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알지만, 상관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버지는 정부와 함께 놀아나고 있었고,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갓 태어난 정부의 자식을 안고 좋아하던 인간이 부친이었다.



원래 부자는 닮는다고 했던가.

죽은 부친을 닮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그런 비인륜적인 것은 충분히 닮아도 상관없다.

다만 닮지 않을 것은, 부친은 일생 수십 명의 여자와 염문을 뿌렸지만, 자신은 한영주 한 사람이며 족하다는 것 정도다.

한영주면 된다.

자기 삶에서 그녀만이 진품이고, 그녀만이 여자고, 그녀만이 자기 영역 안에 들어와도 되는 피식자다.



[그런데 저를 언제부터 좋아하신 거예요?]



그녀가 그렇게 물어왔을 때 이현은 웃으면서 대답했었다.

가벼운 대답이었지만 그 대답에 담긴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뒤통수를 봤을 때부터.]



진심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의 뒷모습을 봤을 때부터,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녀의 모든 것에 반했고 지금도 여전히 반하고 있다.

굳이 갈 이유가 없었던 갤러리에 몇 번이나 간 것은 전부 그녀 때문이다.

그 공간 안으로, 그 영역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와 자신은 같은 영역을 공유하고 있다.

영역도, 삶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좋았어.”



완벽하게 걸린 그림을 보며 이현이 씨익 웃었다.

오늘 밤 약혼을 기다리는 완벽한 포식자의 가장 사랑스러운 미소였다.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을 자신만의 피식자를 기다리는 무해한 맹수의 미소를 지으며 이현이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아직 주지 못한 약혼반지 케이스가 주머니 안에서 달그락거리고 있었다.

행복한 소리였다.





<최상위 포식자>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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