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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함락 제 6 화

부인함락 제 6 화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내 옆에 누운 채로 곤히 자고 있는 서 민영의 모습이 들어왔다.

 

‘얘가 왜 내 옆에서 자고 있는 거지?’

 

분명히 어젯밤, 잠에 들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서 민영, 이 여자가 제멋대로 한밤중에 내 방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정말이지 골 때리는 여자가 아닐 수 없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내쫓아버리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곤히 자고 있는 여자를 일부러 깨워서 방 밖으로 내쫓아 버릴 만큼 내 마음이 모질지 못 했다. 

서 민영 또한 이런 내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몰래 방 안으로 기어들어온 것일 테고 말이다.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내 옆에서 쥐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서 민영을 바라보았다.

 

“…….”

 

이렇게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문득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그 때는 항상 이렇게 둘이서 같이 잠을 잤었는데…….’

 

정말로 귀여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몸 하나는 엄청나게 야해서,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전부 다 쾌감으로 받아들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재밌으면서도 신기해서, 서 민영에게 온갖 행위를 시켰었다. 강의 도중에 자위를 시켜보기도 했고, 도서관에서 몰래 섹스를 하기도 했었다. 때때로 한 밤중에 알몸으로 골목을 돌아다니게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이런 내 요구를 서 민영은 군말 없이 따랐다. 아니, 오히려 즐거워하며 내게 그 이상의 행위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좀 더 대담하게, 과감하게 하자면서 말이다. 그 순간, 나는 이건 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엄연히 정도라는 게 있었다.

그때서야 아차 싶어진 나는 서 민영에게 제지를 가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결국 나는 서 민영을 감당하지 못 해, 그녀와 헤러지고 말았다. 아니, 애당초 내가 서 민영과 사귀었던 걸까? 솔직히 말해서 헷갈린다. 분명 처음에 사귈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와 서 민영은 분명히 연인 관계였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어긋나버렸다.

실제로 서 민영은 나와 헤어진 날, 울기는커녕 발정난 암캐처럼 새로운 남자를 찾아 클럽을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나란 존재는 남자친구가 아닌 그저 섹스를 위한 자위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관계를 과연 연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였다. 그건 연인 관계가 아니었다. 그저 한 쌍의 짐승이었을 뿐이다.

 

“우으응.”

 

잠꼬대라도 하는 모양인지, 서 민영이 자그맣게 몸부림치며 내 손을 꽉 부여잡았다. 

정말이지 이렇게 가만히 두고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여자다. 전혀 야하지도 않고, 전혀 색스럽지도 않다.  

그저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로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더럽히고 싶다는 검고 더러운 욕망이 울컥 하고 치솟는다.

 

“…….”

 

게다가 마침 발기해있는 상태라 그런지, 자연스레 성욕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하복부를 뻐근하게 만들고 있었다.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니까.’

 

라고 생각한 나는 발기한 남근을 꺼내 서 민영의 입 안으로 슬며시 밀어 넣었다. 

설마 깨물지는 않겠지?

 

“우으, 응.”

 

다행히도 그녀는 내 물건을 자연스레 받아주었다. 본능인지 아니면 이런 행위를 너무나도 많이 했기 때문에 생긴 버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쭈읍, 후응.”

 

하지만 빠는 힘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차라리 가슴 사이에 남근을 끼우고서 비비는 게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입 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하자 급격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축축하면서도 미끌거리는 것이 딱 내 취향이었다. 

나는 천천히 허리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하으, 으, 응.”

 

어느샌가 생리현상은 성욕, 그 자체로 변해있었다. 

남근으로 단단하면서도 매끄러운 입천장을 한동안 문지르던 나는 이윽고 다음 표적으로 눈을 돌렸다. 

허리를 살짝 숙이자, 말랑거리는 혀가 남근의 끝부분이 맞닿았다. 이에 귀두로 슬슬 문지르자, 그녀는 마치 이를 반기는 것처럼 혀로 내 남근을 감싸며 조금씩 물건 전체를 빨아 당기기 시작했다.

 

“응……. 츕……. 응, 츕…….”

 

그리고 그 세기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졌다. 쭙쭙 거리며 빠는 것이 흡사 어린 아이가 자기 손가락을 빠는 것만 같았다. 

 

“으응, 으읍, 응, 응……. 으응.”

 

슬쩍 허리를 뒤로 빼자, 급격하게 빠는 힘이 강해졌다. 이에 아예 밀어 넣자, 쑥 하고 밀려들어간다. 큰일이다. 중독되어 버릴 것만 같다. 이런 거에 맛들이면 안 될 텐데……. 스스로를 꾸짖으며 애써 참아보려 하지만 허리가 절로 움직이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후읏, 으. 응.”

 

그렇게 행위를 반복하자, 그녀의 입술로부터 흘러나온 군침이 베개를 축축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응, 응……. 으으응……. 으응…….”

 

이제껏 받아본 펠라치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처음부터 어느 정도 흥분되어 있었던 상태였기에 사정감이 빠르게 치밀어 올랐다.

 

“윽, 이런…….”

 

솟구치는 사정 욕구에 서둘러 남근을 입 밖으로 빼보려 해보지만, 민영은 그것을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으흡……. 응, 으읍……. 응, 응, 으으읍.”

 

내가 뒤로 물러나면 뒤로 물러날수록, 더더욱 강하게 내 남근을 빨아 당겼다. 심지어 혀를 뾰족하게 만들어, 요도구를 쿡쿡 찌르기까지 했다. 그 자극이 어찌나 아찔하던지, 나도 모르게 무심코 사정을 해버릴 뻔할 정도였다.

 

“크읏.”

 

이 이상으로 버티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나는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으으응, 으으응.”

 

하지만 내가 완전히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민영이 우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행동에 혹시라도 깨어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만약에 깨어있었다고 한다면 고개를 흔드는 것 대신에 나보고 안아달라고 말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래도 이 여자는 입으로 빠는 것보다 아랫입으로 빠는 걸 더 좋아하니까 말이다.

 

“흐읍.”

 

짧게 숨을 들이켠 나는 도로 남근을 그녀의 입 안으로 밀어 넣어주었다.

 

“응, 으흡, 으응, 응.”

 

그러자 그녀는 약간 웃는 듯한 얼굴을 하며 좋아했다. 정말이지 알기 쉬운 여자다. 

잠시 그녀의 입 안을 탐험하듯이 물건을 움직이던 나는 문득 볼의 부드러운 안쪽으로 첨단을 가져다대어 보았다.

 

“흐으, 응.”

 

돌연 측면 쪽에서 느껴진 압박감에 민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도로 남근을 반듯하게 돌려놓으려는 듯이 입을 오물거려 내 물건을 자극했다. 정말이지 훌륭한 자극이다. 나도 모르게 감탄 섞인 신음을 흘릴 만큼 말이다.

 

“응, 응. 할짝, 츄웁……. 흐으응……. 으읍……. 응…….”

“윽!”

 

이처럼 내가 신음하고 있는 사이에 민영이 혀를 삐죽 내밀어 귀두 첨단을 강하게 찔렀다. 예기치 못 한 공격에 허리 안쪽이 쑤신다. 아아, 정말이지 최악이다……. 그런데도 기분 좋다. 이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으읍……. 츄룹, 츕…… 츄…….”

 

연신, 지분거리며 내 남근을 빠는 민영의 행동에 아랫배가 후끈후끈 거려왔다. 이걸 보고 뼈가 녹는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정기가 빨린다고 해야 하나……. 뭐가 어쨌든 굉장히 기분 좋은 감각이다.

 

“응, 으응. 으읍, 읍……. 하읍. 흐아, 응.”

 

한껏 움츠러든 입술이 남근의 몸통을 빨았다가 밀어내기를 반복했다. 마치 막대사탕을 빠는 것처럼 말이다. 현란하기 그지없어,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사람들이 왜 이런 장면을 보고 흥분하는 건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으으읍……. 으읍, 으으응…….”

 

재차 흡입하는 순간, 물건 전체가 부드럽게 감싸이더니 찌릿찌릿 저려온다.

 

“응, 응, 으으응, 츄웁……. 응, 흐응……. 응…….”

 

한 번, 두 번, 세 번, 횟수를 거듭할수록 절정의 기미가 한 없이 가까워진다.

 

“흐응, 으응, 응, 으으응, 으으으으으응……. 츄웁.”

 

서서히 기분이 고조되는 것이 느껴졌다. 

선택의 기로다. 여기서 억지로 물건을 빼느냐, 아니면 민영에게 이런 행위를 했다는 것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사정을 하느냐…….

 

‘감수해야하나.’

 

솔직히 말해서 이 쾌감, 이대로 그만두기엔 너무나도 아까웠다.

 

“으으응 으응, 읍. 응, 흐응, 으응…… 츄웁.”

 

입 안에 사정하기로 결정을 내린 나는 재차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흡입 타이밍에 맞춰, 최고의 쾌감을 얻을 수 있도록 민영의 입 안으로 남근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그녀의 입 안에 고여 있던 군침이 내 물건과 맞부딪치며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으으응, 으응. 읍, 응…… 츕. 하응, 으응……. 츄웁.”

 

이따금씩 깨물기도 했는데, 그 고통마저도 나에겐 너무나도 감미로웠다.

 

“흐으, 읏. 으응.”

 

세밀한 애무 속에서 치아과 혀 그리고 입술의 감촉이 한데 어우러졌다. 더불어 내 허리 놀림 또한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분명 깨어나고 말 것이다. 물론 사정을 하기로 결심을 한 이상, 서 민영에게 들킬 걸 각오하긴 했지만……. 이왕에 하는 거, 들키지 않은 쪽이 훨씬 좋지 않겠는가?

 

‘들킨 순간,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오늘 하기로 한 부인과의 데이트는 포기해야 될지도 몰랐다.

 

“응, 으읍, 흐으응……. 응, 응……. 츕, 츄웁……. 하음, 읍……. 으으으응, 으으으으으응…….”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이었다.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였다. 이 여자의 입 안에 사정을 하되, 깨우지 않는 방향으로 말이다.

 

“츕, 하응, 응. 으으응.”

 

내가 점차 움직임을 느슨하게 하자, 그에 반비례하듯이 흡입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좀처럼 나오지 않는 모유에 어미를 재촉하듯이, 귀두에서 새어나오는 얼마 안 되는 쿠퍼액을 열심히 핥고 빤다.

 

“응, 으읍. 츕, 츕, 츄웁…….”

 

요도로부터 새어나오는 그것을, 계속해서 혀로 찔러서 받아 마신다.

 

“크읏!”

 

그 감각이……. 속된 말로, 겁나게 좋았다. 마치 서큐버스에게 정기가 빨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대로 혼이 나가버리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날 정도였다.

 

“앙, 으읍. 읍……. 츕, 츄읍…….”

 

무의식중에 내 사정 기미를 알아챈 모양인지, 흡입력이 한층 더 강해졌다. 이젠 쿠퍼액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모양이다. 

쿠퍼액 따위가 아닌 정액을 원해하는 모습이다. 갈구한다고 해도 좋았다.

내가 허리를 빼며 들이마시고, 밀어 넣으면 혀를 써서 자극한다.

 

‘요물, 요녀……. 진짜 이 소리 밖에 안 나오네.’

 

타고난 색녀다. 새삼 서 민영이란 여자에게 감탄한 나는 윽 하고 신음성을 내뱉었다. 

슬슬 한계다. 한계의 8부능선을 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한폭탄으로 따지자면 폭발 10초 전이다.

 

“가만히 있어. 내줄테니까.”

 

그렇게 속삭이자, 알아들은 건지 민영의 볼이 이완되었다.

 

“츕, 츕……. 으으응, 츄웁.”

 

거의 진공상태나 다름없는 입 안을 유린하며 사정감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나는 귀두 부분을 혓바닥에 딱 붙이고서 단번에 사정했다. 

 

“으으으읍, 응!”

 

탁 하고 뿜어져 나온 백탁의 액체가 그녀의 입 안을 끈적끈적하게 적시며 식도 안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츄웁, 츕, 츄웁.”

 

연신 목젖을 달싹이며 침과 섞어서 꿀꺽꿀꺽 삼킨 민영은 요도에 남은 것들까지 전부 빨아내려 했다. 

 

“윽!”

 

그 엄청난 쾌락에 절로 현기증이 났다. 최고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육변기로서는 최고의 여자임이 틀림없었다. 다만 남자를 너무 많이 밝힌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실제로 내가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는 정도의 성욕이었다면, 분명 지금도 여전히 사귀고 있었을 것이다.

내 여자친구로서, 혹은 내 아내로서 말이다. 

 

“후.”

 

짧게 숨을 토해낸 나는 살짝 허리를 움직였다.

 

“읍……. 으응.”

 

목의 안 쪽에 귀두가 닿은 순간, 나는 남은 정액을 모조로 쌌다. 그러자 민영은 기쁜 듯 연신 하얀 목을 움직이며 꿀꺽꿀꺽 잘도 삼켜댔다.

 

“후우.”

 

이 만족감에 탁 하고 숨을 내뱉은 나는 남근을 빼내었다. 

그 후, 근처에 있는 물티슈 몇 장을 뽑아 남근을 깨끗이 닦고는 민영의 입 주변도 마저 닦아내어주었다. 

맨들맨들거리는 입술이 참으로 보기 좋다.

 

‘그래도 깨지 않았네.’

 

그렇게나 한바탕 했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잠에 취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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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함락]

 

‘시간이…….’

 

여전히 잠에 취해있는 서 민영을 놔두고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7시 10분. 이 시간이라면 아직 부인의 남편도 출근하지 않았을 것이다. 

몸을 일으킨 나는 옆집과 마주하고 있는 벽 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소란스럽네.’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모양인지,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발소리와 함께 달그락 거리는 식기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아, 저기……. 여보.”

 

불현듯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수십 년 만에 듣는 것처럼 감미롭게 들려왔다. 정말로 달콤하다. 저 목소리로 내 이름을 울부짖으며 신음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뭐야?”

“아, 그게…….”

 

냉담하기 그지없는 남편의 목소리에 그만 기가 죽어버린 모양인지, 부인의 목소리가 한 없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꽤나 중요한 용무인 모양인지, 부인은 애써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동창 모임이 있는데…….”

“동창 모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부부 동반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와서요. 혹시 시간이 괜찮으세요?”

“나 바쁜 거 몰라? 당신 혼자 가.”

“……”

 

남편의 매몰찬 태도에 부인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 했다. 하지만 이번 부부 동반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모양인지, 부인은 애써 용기 낸 목소리로 입을 열어 재차 부탁했다.

 

“이번에도 나가지 않으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다들 당신 얼굴도 궁금해 하고요. 이제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잖아요?”

 

이렇게까지 부인이 애타게 부탁해오자, 남편의 마음도 흔들리는 모양인지 이 이상으로 그의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

말 그대로 무거운 침묵이 집 안 가득 가라앉았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문득 남편이 말문을 열어 답해주었다.

 

“그래, 토요일이라고 했지? 시간 내볼게.”

“정말이요?”

“그래, 그러니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

“네!”

 

기어코 남편의 허락을 받아낸 부인은 무척이나 기뻐해하며 크게 소리쳐 답했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부 동반 모임에 나가는 게 뭐가 그리 힘든 일이라도 저리도 생색을 내는 건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자기……. 어디?”

 

그 때, 바로 뒤 쪽에서 민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아.”

 

이런 내 말에 그녀는 벽 쪽에 붙어서있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암, 좋은 아침.”

 

오른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며 맵시 있게 하품을 한 그녀는 부스스한 모습으로 내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정말이지 무방비한 모습이다. 흐트러진 셔츠 사이로 분홍빛 속옷이 훤히 보인다. 잠시 속옷에 시선이 팔렸던 나는 이내 애써 무심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헛기침을 했다.

 

“그래.”

 

이리 대꾸한 나는 민영의 안색을 살폈다. 

좋아, 다행이도 들키지 않은 모양이다.

 

“웬일이야, 자지가 내 인사를 다 받아주고……. 그나저나 목이 왜 이렇게 메이지. 콜록, 물이나 마셔야지.”

 

라고 말한 그녀는 몇 번 기침을 하더니 물을 마시기 위해서 방을 나갔다. 

눈치가 느린 건지 아니면 정액에 하도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기가 자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 하고 있었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한데…….’

 

아무리 정액에 익숙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입 안에서 단내 대신에 정액 냄새가 풀풀 난다면 눈치 챌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사정을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정액 냄새가 사라질 리가 없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문득 불길한 예감 하나가 들었다.

만약에 서 민영, 저 여자가 한 밤중에 내 방 안으로 기어들어와 펠라를 했다면? 펠라를 하고서 내 옆에서 잤다면……. 다음 날 아침, 자기 입 안에 정액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설마.’

 

라고는 생각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럼 내가 먼저 당한건가?’

 

이러한 생각에 나는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골 때리는 여자다.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냉장고 앞에 서서 물을 마시고 있는 서 민영의 뒷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잘록한 허리 밑으로 자리 잡은 토실한 엉덩이가 연신 탐스럽게 흔들리며 내 시선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렇게 가만 두고 보면 정말로 잘 빠진 미녀다. 

들어갈 곳 들어가고, 나올 곳 나온 그런 서구적인 미녀 말이다.

 

‘너무 음탕해서 문제지.’

 

음탕하다 못 해 서큐버스 급이다. 

남성의 정기를 남김없이 빨아 마시는 그런 소악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건가.’

 

입을 다신 나는 의자에 앉았다.

 

‘아니, 딱 한 명 있었지.’

 

일순 서 민영의 뒷모습 위로 부인의 뒷모습이 겹쳤다. 

남편에게 헌신할 줄 알며, 가정에 충실한 아내. 심지어 결혼을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른 남자라곤 전혀 몰랐던 순진한 여성이기까지 했다. 미인에 스타일도 발군, 여기에 성격도 좋다. 딱 내 취향이었다.

 

‘……지금 여기에 부인이 있었다면…….’

 

날 위해서 한창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부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부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결국엔 욕정을 이기지 못 하고 덮치겠지. 부인의 등 뒤로 다가가 허리를 꽉 붙잡은 뒤에 음부 안으로 남근을 밀어 넣는 것이다.  

 

‘좋은데.’

 

어서 빨리 부인을 내 집으로 들이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는다.

 

‘……집으로만 들이면, 매일 같이 귀여워 해줄 텐데…….’

 

이런 식으로 민영의 뒤태를 빤히 쳐다보며 상상의 나래에 빠져있는데, 문득 그녀가 부끄러운 듯이 양 볼을 붉히며 내 쪽으로 뒤돌아섰다.

 

“뭐야?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뭘?”

“다 보이거든? 무지 엉큼한 얼굴을 하고서……. 근데 말이야, 남의 몸을 가지고서 다른 여자를 생각하진 말아줬으면 좋겠거든? 그거 엄청 기분 나빠.”

 

내가 자기 몸을 가지고서 부인을 상상하고 있었단 걸 눈치 챈 모양인지, 민영이 엄청나게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꾸짖었다. 여자의 감이란 건, 참 무섭다. 나는 지은 죄가 있었기에 얌전히 그녀의 꾸중을 받았다. 

 

“그나저나 물은 다 마신거야?”

“응, 다 마셨어.”

 

라고 말한 민영은 빈 잔을 개수대 안쪽에 내려놓았다. 

그 모습에 나는 흠 하고 목청을 가다듬은 뒤에 입을 열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김 이혁, 그 남자랑 데이트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괜찮지?”

“토요일에?”

“그래, 이번 주 토요일. 가능하면 최대한 오래……. 일요일까지 붙잡아준다면 더 좋고.” 

 

이러한 내 말에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았어. 그럼 자기는 나한테 뭐 해줄 거야?”

“그 남자를 데리고 있었던 시간만큼 놀아줄게. 어때?”

 

내 제안이 다소 의외였던 모양인지,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 한 채 입을 열었다.

 

“진짜? 너무 서비스가 과한 거 아냐?”

“그 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잘 붙잡고 있으란 뜻이야.”

 

확실히 중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주 토요일은 다름이 아닌 부인의 동창회였다. 심지어 부부 동반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김 이혁이 부인과 했던 약속을 어긴다면? 부인은 혼자서 쓸쓸이 동창회에 참석하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자기 혼자만 빼고서 모두가 부부로 나온 것이다.

제아무리 부인의 성격이 좋다고는 해도, 그런 창피를 당하고도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설혹 참는다고 하더라도 남편에 대한 실망감만큼은 감추지 못 할 것이다. 

 

‘겨우 남아있던 정나미도 다 떨어져 나가겠지.’

 

결정타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김 이혁과 이 예나, 두 사람의 부부 관계는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부인을 차지 할테고 말이다.

 

“그나저나 나 배고픈데, 아침 어쩔 거야?”

 

그러다 문득 민영이 내 앞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집에 먹을 거 없으니까 나가서 사먹어.”

“나 혼자?”

“뭐 문제라도 있어?”

 

라고 묻자 그녀가 불만스레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내가 요리해 줄 테니까 재료 좀 사와.”

 

이리 말한 민영은 식탁 위에 올려져있는 포스트잇 하나를 뜯어선 그 위에 필요한 식재료를 적기 시작했다. 

대충 훑어보니 카레라도 만들어 먹으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확실히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로 카레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그렇게 포스트잇에 필요한 것을 다 적은 그녀는 자랑스레 내게 건네주었고, 그것을 받아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아직 마트가 열 시간은 아닌 것 같았지만 천천히 걸어가면 얼추 개점 시간에 맞을 것만 같았다.

 

“응?”

 

이처럼 문을 열고 밖으로 나자,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부인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엘리베이터 앞까지 남편을 배웅해준 모양이었다. 

참으로 복 받은 남자라고 할 수 있었다.

혀를 끌끌 찬 나는 부인 쪽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예나 씨?”

“꺅! 아, 세, 세현 씨?”

 

내 부름에 부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내지르더니, 곧바로 나를 알아보곤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리고는 이제 있었던 일을 무의식 중에 떠올린 모양인지, 양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시선을 내렸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아, 세현 씨. 저번에 있었던 건, 정말로……. 고마워요.”

 

부인은 여전히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로 내게 감사를 표했다.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해하는 그 모습조차도 굉장히 사랑스럽다. 게다가 목선을 따라 부드럽게 내려가는 검은색 머리카락은 정말로 매력적이다. 저 고운 머리카락 위로 내 정액을 뿌려주고 싶다. 정액으로 더럽혀진 부인의 모습, 정말로 보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분기점은 이번 주 토요일이다. 그 때를 잘 이용해서 어떻게든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부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 할 수 있었다.

 

“고맙긴요. 그 때는 저도 즐거웠습니다.”

 

이 말에 부인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그런가요……. 아! 그나저나 세현 씨도 출근하시는 건가요?”

“설마요. 그냥 장 좀 보려고 나가는 겁니다. 게다가 오늘 점심 때, 같이 백화점에 가기로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까? 설마 잊으신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잊지 않았어요!”

 

짓궂은 내 말에 부인은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 부인과 한 점심 약속, 그건 단순히 밥을 먹는 게 아닌 같이 쇼핑을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복도에서 있었던 일 이후 부인이 내게 이런 부탁을 한 게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오늘 들은 동창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얼핏 이해도 되었다.

아무래도 부인은 동창회에 입고 나갈 옷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부인이 입고 있는 옷들은 하나 같이 검소하고, 그리 화려하지 않은 값싼 옷들뿐이었으니 말이다. 

동창회에 입고 나간다면 무시당하기에 딱 좋은 옷차림이었다.

 

“그럼 오늘 점심 때,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시간은 언제가 좋으세요?”

“세현 씨가 편하실대로 해주세요.”

 

이런 부인의 대답에 나는 잠시 시간을 계산해보았다.

 

‘부인과 만나기 전에 민영을 내쫓아야하니까…….’

 

괜히 민영을 집 안에 들여놓았다가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구태여 집 안에 우환거리를 둘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이리 생각한 나는 민영과 아침 식사를 한 후, 내쫓는 시간까지 모두 계산해서 입을 열었다.

 

“12시는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11시로 하자고 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12시라고 한 이유는 역시 서 민영, 그 여자의 존재로부터 기인했다. 내쫓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고, 더불어 잘 못 했다간 또다시 한바탕 치러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겠지만 말이다. 

부인을 만나기도 전부터 힘을 다 빼놓을 순 없으니까……. 라고는 생각하지면 여전히 자신은 없다.

 

“네, 그럼 그 때까지 준비해놓을게요.”

 

다행히도 내가 말한 시간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부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수긍해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12시에 찾아가겠습니다.”

“네, 그럼 그 때 봬요.”

 

이렇듯 약속 시간을 정한 나는 부인의 마중을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12시라…….’

 

지금 내 머릿속은 부인과 섹스할 일로만 가득 차있다. 

부인과 어떻게 섹스를 할 것인가, 어디서 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흥분되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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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함락]

 

서 민영이 부탁한 요리 재료들을 사들고서 집으로 돌아오자, 평소와는 다른 달콤한 냄새가 내 코끝을 자극하며 나를 반겨주었다. 특히나 밥을 짓는 구수한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져 있어서 군침이 절로 고일 지경이었다.

 

‘그러고보니 집에서 밥을 지어 먹는 건, 꽤 오랜만이네.’

 

평소엔 근처 식당에서 사먹거나, 간단히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했으니 말이다. 

그마저도 귀찮으면 시켜먹었다.

 

“왔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민영이 후다닥 뛰어나와 나를 반겼다. 

새삼스레 느끼는 거지만, 그녀는 정말로 아름답다. 잡지에서나 볼 법한 모델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이 겉모습에 결코 현혹 되서는 안 된다. 

그녀는 나와 헤어진 뒤에 몇 십, 아니……. 어쩌면 몇 백 명에 달하는 남성들과 침대에서 굴렀을지도 모르는, 그런 닳고 닳은 여자이니 말이다.

정도, 마음도, 그 무엇도 주어선 안 된다.

 

“그래, 전부 다 사왔어.”

 

이리 말한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은 뒤에 현관문을 닫고 부엌으로 향했다.

 

“수고했어. 아침부터 고생이지?”

 

그러면서 슬쩍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민영의 태도에 나는 냉담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고생은 무슨…….”

“헤에, 이거 든든한데?”

 

이런 내 대답에 장난기라도 생긴 모양인지, 그녀는 짐짓 과장된 몸짓으로 내 등을 두드렸다. 

애교스런 몸짓, 이렇게 보고 있으니 정말로 사랑스럽다. 전혀 불쾌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기에 불쾌했다.

불쾌하지 않기에 불쾌하다.

 

“밥이나 해.”

 

신경질적으로 말한 나는 대뜸 그녀에게 요리 재료가 가득 담겨 있는 봉투를 내밀었다.

 

“네, 네.”

 

이에 그녀는 대답과 동시에 봉투를 건네받은 뒤에 나를 곧장 올려다보며 물었다.

 

“……뭐, 예의상 묻는 거긴 한데……. 혹시 따로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참 일찍도 배려해준다.

 

“먹고 싶은 게 있었다면 장보면서 다른 것도 사왔겠지.”

“하긴, 그것도 그러네.”

 

라고 말한 그녀는 실없이 웃어보이고는 부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벌써부터 피곤하네.’

 

어깨를 축 늘어트린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향수 냄새가 내 콧속을 파고들어왔다. 진한 향수 냄새.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자극적인 냄새는 아니었다. 그냥 은은하면서도 진하게 남는 냄새였다. 

이 냄새를 맡으니, 신기하게도 피곤함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냥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집 안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뭐랄까, 혼자 있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그저 집 안에 여자 한명을 들였을 뿐인데, 이렇게 다르게 보이다니……. 솔직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이래서 다들 결혼하는 건가?’

 

이처럼 내가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 사이, 민영은 당근, 감자며 각종 야채들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긴 다음에 깍둑썰기를 하고 있었다.

제법 능숙하게 해내는 것을 보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다른 놈한테 해줬던 걸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와 헤어진 뒤에 다른 남작의 집에서 나에게 해주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요리를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을 터져 나왔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마치 내가 그녀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바보 같긴.’

 

이리 생각한 나는 의자에 앉았다.

 

‘……저 여자가 다른 남자와 뭘 했던 나와는 상관없잖아. 나한테는 예나 씨 밖에 없다고……. 하아, 어서 빨리 예나 씨를 내 여자로 만들어야 될 텐데…….’

 

이런 식으로 잡념에 잠겨있는데, 어느덧 야채를 모두 다 다듬은 민영이 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기를 볶기 시작했다.

 

“후추 어디 있어?”

“후추?”

“응, 좀 쳐두게.”

 

그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후추를 꺼내주며 물음을 던졌다.

 

“보통은 허브라던가, 생강을 쓰지 않나?”

“난 후추가 더 좋아.”

 

라고 답한 그녀는 팬에 볶은 고기 위로 후추를 두어 번 뿌리고는 당근과 양파 등을 넣어서 다시 볶았다. 

그 후, 어느 정도 야채가 익자 국 냄비에 볶은 고기와 야채들을 담아 넣은 뒤에 물과 카레를 부었다.

 

“자,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카레가 눌어붙을 수도 있었기에 민영은 여전히 냄비 앞에 서서 국자로 저어주고 있었다.

 

‘현모양처감인가…….’

 

정도가 넘는 음탕함만 뺀다면 말이다. 

흠 잡을데 하나 없는 신붓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민영을 품평하는데, 문득 그녀가 뒤돌아서며 퉁명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흐음, 뭐야?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왜 아까부터 계속 그렇게 힐끔힐끔 쳐다보는 거야?”

“응? 아, 그게…….”

 

그렇게 잠시 말끝을 늘린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있는 그대로 말하기에는 상당히 껄끄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상대가 헤어진 전 여자 친구라고는 하지만 음탕하니, 다른 남자의 집에서 요리해줬느니, 음탕하지만 않으면 현모양처감이니……. 이런 말을 하는 건 다소 실례가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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