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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술사 제 10 부

최면술사 제 10 부

 

“저,저기 혹시 바쁘시지 않으면 저랑 식사라도...!”

 

“하아...! 지금 뒤에 줄 서있는 것 안보이세요?! 다음 분!”

 

“아...!”

 

 조심스러운 어떤 남자의 목소리와 짜증이 가득한 혜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하! 그렇게 된 거구나?’

 

 그런 둘의 대화를 들은 나는 지금 이 말도 안 돼는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겨울방학 전까지만 해도 ‘절벽미인’이라는 소릴 듣던 혜림이가 나로 인해 글래머를 넘어 폭유가 되어 나타나자 절벽일 당시에도 나름 인기가 있었던 혜림이에게 남자들이 몰려온 것이다.

 그 덕분에 혜림이는 지금 짜증이 가득한 상태고.

 

‘한마디로 이것들이 지금 혜림이한테 수작 부리려고 온 것들이라는 말이지?’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괜히 화가 났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내 여자를 넘보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위기의식과 분노가 치민 것이다.

 뭐, 혜림이가 너무 예쁘다보니, 그리고 나로 인해 뭇 남성들이 로망으로 생각하는 거유미인이 되다보니 벌어진 일이지만 그걸 가지고 혜림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저,저랑 사귀어주세요!”

 

“하아..! 정말..! 저 이미 임자 있다는 말 못 들으셨어요?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아,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자신이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남자들이 잘못된 거다.

 물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사람 없고,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 확실하게 거부하는데 달라붙으면 확실히 잘못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미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넣어 경기종료가 된 상황에 백날 공을 차봐야 골로 인정 안 해준답니다. 자! 다음..,!”

 

 그리고 저렇게 꿋꿋하고 확실하게 남자들의 접근을 막아내는 혜림이에게 화를 낼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또 다시 한명의 남자를 처리한 혜림이가 다음 분을 외치다가 나를 발견하곤 언제 짜증을 냈냐는 듯 화사하게 웃었다. 덕분에 주변은 물론 줄을 서 있던 남자들의 표정이 헤벌쭉 헤졌으나, 그런 것쯤이야 가볍게 무시할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진우야-!”

 

 혜림이가 나를 발견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날듯이 뛰어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 많은 인파로 재현되는 모세의 기적 속에 그 누구의 제지도 없이 나에게 달려온 혜림이는.

 

와락-!

 

“보고 싶었어...!”

 

 얼른 내 품에 안겨왔다.

 그런 혜림이의 행동에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나를 죽일 기세로 쳐다봤지만 나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왜 이제 왔냐는 듯 내 품에 기대어 나를 올려다보는 혜림이를 향해 나직하게 말하며.

 

“나도...!”

 

“으응...!”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연인들처럼 혜림이를 껴안고 혜림이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평소라면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절대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나도 그렇고, 혜림이도 그렇고 서로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보란 듯이 키스를 한 것이다.

 덕분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뜨거운 키스를 나누게 된 우리는 한참동안이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키스를 나누다가 허탈한 듯, 그리고 부러운 듯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천천히, 그리고 잘 보란 듯이 입술을 떼어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은 뭐야? 원래 이렇게 안 바쁘잖아?”

 

“으응...! 그게...나한테 작업 걸려고 온 사람들인가봐...”

 

“흐음...!”

 

 그리곤 주변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들을 쓰윽 훑어보곤. 내 시선을 슬쩍 피하는 이들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다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우리 혜림이가 예쁘긴 하지. 그래서 내가 결혼반지 끼라고 했잖아.”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그러자.

 

“나,나도 끼고 싶은데...진우 너도 알잖아. 나 금속알레르기 있어서 악세사리 못하는 거...”

 

 그 뜻을 용케 알아차린 혜림이가 울상을 지으며 내 말을 받아쳤다.

 그런 혜림이의 모습에 기특하기도 하고, 우리가 자신들을 속이는 줄도 모르고 벙찐 표정을 짓는 남자들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말을 이었다.

 

“에휴..! 그놈의 금속알레르기...! 정말 짜증난 다니까...”

 

“그러게...”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주변을 쓰윽 훑어보자 그제야 혜림이가 데이트신청 등을 거절한 이유를 알게 된(사실은 나와 혜림이의 연기에 속을 거지만) 남자들이 쭈뼛거리며 자리를 떴다. 물론 개중에는 미심적은 눈길로 우릴 바라보며 자리를 뜨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소수 일뿐이었다. 게다가.

 

-한! 시!

 

“앗! 점심시간이다! 언니! 저 이이랑 같이 점심 좀 먹고 올게요.”

 

“으응! 그러렴...!”

 

 혜림이가 오후 1시를 알리는 핸드폰소리에 반색하며 한때 내가 혜림이의 명찰로 착각했던 ‘박순희’라는 명찰을 차고 있는 동료에게 그렇게 말하며 나를 이끌고 직원휴게실로 향하자 그마저도 발길을 돌렸다.

 그 덕분에 무사히(?)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혜림이와 나는.

 

-끼이익...! 철컥!

 

“풋! 푸하하하하!” 

 

“쿡! 아하하하!”

 

 직원휴게실의 문이 닫히기 무섭게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들이 했던 일들과 그것에 속아 알아서 떨어져나간 이들이 떠올라 웃음을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 40 회: 만남, 그리고... -->

 

황당한 에피소드 끝에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나와 혜림이는 혜림이가 싸온 도시락을 들고 교내의 공원으로 가서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지금은.

 

“우응...! 일하기 싫다아...!”

 

“에이! 별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뭐가 싫다고 그러는 거야?”

 

“으읏! 그,그치만 그냥 멍 때리고 있는 거 은근히 힘들다고!”

 

“...나랑 섹스를 못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그건...!”

 

“으이그! 하여간에 음란하다니까, 우리 혜림이는...!”

 

“으응...♡!”

 

 혜림이가 업무를 보는 창구에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확실히 혜림이와 했던 연기가 제대로 먹혔는지 도서관내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을 뿐 아니라. 혜림이에게 작업할 목적으로 도서관에 들어오려는 남자들이 혜림이와 딱 붙어서 알콩달콩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니 발걸음을 되돌렸기에 이렇게 예전처럼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뭐, 물론 정말 도서관에 목적이 있어서 들어온 사람들 때문에 큰 목소리를 낼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예전으로, 아니 예전보다 더욱 친밀한 사이가 되어 혜림이와 도서관에서 이러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했던 나는 내 말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당황하는 혜림이에게 입을 맞추며 그녀의 허벅지를 슬그머니 쓰다듬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손이 더욱 은밀한 곳을 파고들 수 있게 다리를 벌리는 혜림이었으나.

 

“후훗! 안 돼. 이유는...알고 있지?”

 

 나는 야릇한 신음소리를 나직하게 내며 다리를 벌리는 혜림이의 허벅지만을 쓰다듬을 뿐. 좀 더 안쪽까지 손을 대지 않았다. 아직 혜림이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나뿐만 아니라 혜림이도 알고 있기에 그렇게 말하자 혜림이가 볼을 부풀리며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치,치사해...!”

 

“치사해도 어쩔 수 없어. 괜히 상처가 덧나는 것보다 나으니까.”

 

“히이잉...!”

 

 하지만 나는 여느때와 달리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혜림이를 생각해서였다. 

 그런 내 말에 내가 정말로 자신과 섹스를 안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혜림이가 이내 울상을 지었고, 나는 그런 혜림이의 표정에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그런 표정 짓 지마. 혜림이, 네가 참는 것 만큼 나도 참고 있으니까.”

 

“으응...?”

 

“자...”

 

“아...!”

 

 그런 내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혜림이의 모습에 나는 혜림이의 손을 잡아 내 바지춤으로 이끌었다. 그러자 내 옆에 달라붙어 있다시피 한 혜림이의 커다란 가슴이 내 팔뚝에 비벼질 때마다, 살짝 풀어헤쳐진 블라우스 사이로 그 뽀얀 속살이 보일 때마다 불끈거리는 내 페니스를 느낀 혜림이가 나직한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푹 숙였다. 혜림이가 내 몸을 원하듯 내가 자신의 몸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끄러워진 것이다. 

 

“이제 알겠지?”

 

“으응...!”

 

“그러니까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우리. 혜림이가 다 나을 때까지만...”

 

“다 나으면...?”

 

“후훗! 알면서...”

 

“아이잉~♡!”

 

 그 덕분에 더 이상 투정부리지 않고, 그저 가벼운 스킨십만으로 만족하게 된 혜림이는 사랑스럽게 얼굴을 붉히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 왔다. 그런 그녀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혜림이가 뭔가 생각나는 게 있는지 퍼뜩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곤.

 

“아참! 그러고 보니 그 책은 어쨌어?”

 

“아,아...! 그거? 태워버렸지.”

 

“잘했네, 우리 진우...!”

 

“그래, 그렇긴 한데...”

 

“.......?”

 

 ‘이름 없는 고서’를 어떻게 했는지 물어왔다.

 그런 혜림이의 모습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다가.

 

‘그러고 보니 혜림이는 책에 대해선 알지만 내가 최면술을 얻은 걸 모르는구나?’

 

 문득 어젯밤 책을 불태우고 최면술을 얻었던 기억이 떠올라 살짝 고민했다.

 그 사실을 혜림이에게 말하느냐 마느냐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혜림이가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최면술에 얽힌 대략적인 이야기를 알고 있을뿐더러 내가 불면증에 걸린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정도로 나를 깊게 사랑하기에 그것을 믿고 그냥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사실은 말이야...”

 

 그 덕분에.

 

“하아...! 완전히 혹 떼려다가 혹 붙인 경우네...”

 

“뭐, 그렇지...”

 

“.......”

 

“.......”

 

 나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들은 혜림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을 불태움으로써 최면술과 채음진경에 대한 것들을 잊으려고 했는 아예 최면술이 내 머리에 박혀 버렸기 때문이다. 뭐, 최면술을 얻었다는 것에 만족하며 송유라를 실험대상으로 삼아버린 나는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인지 모르겠지만 혜림이는 아무래도 나쁜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나 말 없이 있었을까.

 

“그래서...이제 어떻게 할 거야?”

 

“으응?”

 

 혜림이가 진지한 얼굴로 물어왔다.

 그 모습에 도대체 왜 이렇게 혜림이가 진지일색으로 나오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그런 내 표정을 본 혜림이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진우, 네가 불면증을 벗어나려면 단순히 여자한테 최면을 거는 것뿐만 아니라, 상호간에 정신적 교류가 필요하다면서. 그걸 쉽게 말하면 네가 최면으로 이성으로 하여금 단순히 호감을 넘어선 애정이란 감정을 가져야한다는 말이잖아.”

 

“아...!”

 

 내가 간과하고 있던 부분을 지적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혜림이가 어째서 이렇게 진지하게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혜림이는 나의 연인으로서 나와의 관계가 소원해 질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혜림이의 말을 들은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혜림이 몰래 최면술을 실험한다는 명목으로 송유라를 안기도 했고, 채음진경을 익히지 않아도 불면증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자신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혜림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네가 겪고 있는 불면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기 때문에 네가 굳이 최면술을 써서 불면증을 벗어나야만 하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네가 최면술로 불면증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그런 너의 행동으로 인해 너를 좋아하게 될 여자들 사이에서 내가 너에게 잊혀질까 두렵기도 하고.”

 

“........”

 

“하지만 너의 연인으로서, 그리고 너를 사랑하는 여자로서 네가 힘들어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전에도 말했듯이 난 얼마든지 네 최면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어. 그리고 네가 날 끝까지 사랑하고, 버리지만 않는다면 네게 다른 여자가 생기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야.”

 

“.......”

 

 한마디로 내가 최면술로 불면증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있지만 내가 원한다면 얼마든 내 뜻을 존중해 이해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런 혜림이의 말을 들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혜림이가 고맙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왔는데 굳이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까지 불면증을 벗어나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한번 그런 유혹을 떨쳐냈었던 내가 또 다시 이런 고민에 휩싸인게 한심하기도 했고.

 생명의 위협이 없어지는 바람에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혜림이 네가 솔직하게 말했으니까 나도 솔직하게 말할게”

 

“응...”

 

“나 단 한순간만이라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자고 싶어.”

 

“........”

 

 이미 불면증을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이 가득한 상황.

 나는 결국 최면술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런 내 말을 들은 혜림이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마음을 다잡았는지 올곧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알겠어. 그렇다면...진우, 네 뜻을 존중해줄게.”

 

“이해해 줘서. 고마워, 혜림아...”

 

 그것은 최면술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혜림이의 말을 들은 나는 혜림이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돼.”

 

“으응..?”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내 말에 반문하는 혜림이.

 나는 그런 혜림이에게.

 

“항상 내 곁에서 내가 잘못된 곳을 향해 달려가지 않도록 지켜봐줘, 그리고 지금처럼 조언해줘.”

 

“진우야...”

 

 진심을 담아 언제나 내 곁에 있어달라고 말했다.

 그런 내 말에 혜림이는 조용히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춰왔다.  

 

 

 

 

<-- 41 회: 만남, 그리고... -->

 

내가 혜림이에게 한 말은 단순히 내 감정의 표현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면도 없지는 않지만, 나는 정말로 혜림이가 언제나 지금처럼 나에게 조언을 해주고, 내가 길이 아닌 곳으로 향하면 옆에서 날 지도해주길 바랬다.

 그래서 나는 혜림이가 내가 얻게 된 최면술을 알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했고, 그 일환으로 내가 송유라를 통해 습득한 최면술의 모든 것을 알려줬다. 물론.

 

“헤에~? 그게 정말이야?”

 

“그럼, 정말이지. 내가 혜림이, 너한테 거짓말 하겠어...”

 

“으읏...!”

 

 혜림이는 쉽게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자기도 최면을 경험한 것으로 모자라, 가슴을 키우기까지 했으면서 내 말을 못 믿는 눈치인 혜림이의 모습에 나는 ‘인간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는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사실인 바. 게다가 나와 함께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기에 혜림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혜림이가 얼굴을 붉히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그치만 정말 믿기 힘든 말이잖아. 염파라거나, 염사, 그리고 독심술에 염력이라니. 그걸 누가 믿겠어.”

 

 그래도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 혜림이의 말을 들은 나는.

 

“하긴 그렇지...”

 

“그렇지?”

 

“응.”

 

 혜림이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나도 최면술을 처음 얻은 어제. 그것을 믿지 못해 송유라에게 실험을 해봤으니까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어떻게 하면 혜림이가 내 말을 믿을까 생각하다가.

 

“있잖아. 혜림아.”

 

“으응...?”

 

“그럼, 한번 경험해볼래?”

 

“에...? 뭐를? 아! 최면술 말하는거야?”

 

“응...”

 

 백번 말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난번의 일도 있고 해서 나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살짝 긴장한 채 혜림이를 쳐다봤다.

 그런 나와 달리 혜림이는.

 

“좋아! 그러자.”  

 

“으응?!”

 

“나한테 그 최면술이라는 걸 사용해봐. 진우야.”

 

 그때의 안 좋은 기억은 모두 잊었는지 거부감 없이 덥석 승낙했다.

 그런 혜림이의 모습에 잠시나마 긴장했던 내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기도하고, 그렇게 크게 데였는데도 또 내가 자신을 상대로 최면을 거는 것을 받아들이는 혜림이의 모습이 살짝 어이가 없었다. 

 그런 내 생각을 알기라도 한 건지 혜림이는.

 

“아이 참~! 그때는 놀라고 당황해서 그런거고, 지금은 다르잖아. 그리고 어차피 난 진우 네건데. 진우 네가 나한테 나쁜 짓을 할리도 없고. 안 그래?”

 

“그,그야 그렇지.”

 

“호홋! 그러니까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마음 편히 해. 날...네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까...♡”

 

“........!”

 

 그렇게 말해왔다.

 언제나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혜림이의 대담하고 저돌적인 그 말에 나는 놀라는 한편, 혜림이의 말대로 그때와 지금은 확실히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나에게 몸을 맡기는 혜림이를 향해 싱긋 미소지었다.

 

“하긴, 그러네. 이제 혜림이는 내 여자지?”

 

“그러엄~♡”

 

“그래. 그런데...”

 

“........?”

 

“널 내 마음대로 해도 좋다니...정말 응큼하다니까. 우리 혜림이.”

 

“에,에헤헤! 들켜버렸네...?”

 

 그리곤 예전처럼 이곳에서 최면을 걸어 자신과 야한 짓(?)을 해줬으면 하는 혜림이의 마음을 눈치 채고 핀잔을 주자 혜림이가 얼굴을 붉히며 은근슬쩍 자신의 커다란 가슴을 내 몸에 밀착시키는 한편 그 농염한 몸을 내게 기대왔다. 그런 혜림이의 행동으로 인해 욕정이 들끓었지만 그것을 애써 억누른 나는.

 

“으이그! 정말 머릿속에 그런 것 밖에 없지?”

 

-딱!

 

“히이잉! 아파...!”  

 

“엄살 그만피우고, 자, 지금부터 시작할테니까 잘 봐.”

 

“으응!”

 

 혜림이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고는 나에게 맞아 엄살을 피우는 혜림이에게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진지한 모습으로 돌아온 혜림이가 두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혜림이의 모습을 보며 정신을 집중한 나는.

 

핑-!

 

‘헤에~! 이게 혜림이의 사고구나. 으음! 대부분이 나랑 연관된 거네, 그리고...’

 

-딱!

 

“아얏! 이번엔 왜 때려?!”

 

“네 머릿속에 온통 섹스생각 밖에 없어서 때린다. 왜?!”

 

“뭐,뭐..?! 

 

 극히 일부분만 빼놓고 머릿속에 온통 나와 섹스할 생각뿐인 혜림이의 사고를 읽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쥐어박았다.

 지금이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나와 섹스를 할까 궁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혜림이의 생각에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하자 혜림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아! 설마 지금 혹시...!”

 

“그래. 독심술로 네 생각을 읽는 중이야.”

 

“헤에~!”

[그,그럼, 내가 지금 진우의 자지를 만지고 싶다는 것도 아는 거야?]

 

“쯧! 당연히 알지!”

 

“아앗! 정말인가 보네?”

 

“그럼!”

 

 내 말뜻을 알아듣고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혜림이의 사고가 읽혀 들어왔지만 송유라 때와는 달리 나에게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게 아니라서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혜림이의 모습에 새삼, 혜림이가 나를 대하는 것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미소를 지었고,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우읏! 지,진우 너! 대,대체 무슨 생각을 읽고 있길래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뭐,뭐야 이거... 처음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까 진우한테 내 속마음을 읽히고 있는 거잖아!? 나는 진우, 마음을 모르는데! 이건 불공평하고!] 

 

 뭔가 오해한 혜림이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발끈하며 불공평하다며 속으로 투덜댔다.

 나는 그런 혜림이의 모습에 살짝 당황하는 한편,

 

“아,아니 그냥. 혜림이 네가 언제나 나에게 진심이었구나. 해서...”

 

“우읏...! 다,당연하지! 난 언제나 너만을 좋아했는걸?”

[뭐,뭐야..! 그런거야? 부,부끄럽게...!]

 

“으응, 그래, 그래. 그나저나...”

 

‘독심술은 일방적으로만 이뤄지나? 내 생각을 혜림이나, 타인에게 읽게 할 수는...’

 

 ‘불공평하다’는 혜림이의 말을 듣고 내가 혜림이의 생각을 읽는 것처럼, 혜림도 내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하! 이게 독심술을 응용한 정신교감이라는 거구나...?”

 

“에? 정신교감?” 

 

“아,아 잠깐만...!”

 

 송유라를 상대로 실험할 때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생각하자 머릿속의 지식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당시에 이 지식이 떠오르지 않은 이유는 아무래도 내 생각이나 속마음을 송유라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아서였나 보다. 아무튼 그 덕분에.

 

[어때? 이러면 공평하지?]

 

“에...? 이,이거 설마...!”

 

[응! 혜림이, 네가 나만 네 생각이나, 속마음을 읽는 건 불공평하다고 해서, 네가 내 생각과 속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나한테서 뿜어져 나오는 염파를 내 사고회로에 연결했어. 뭐, 말하자면 정신교감이라는 거지.]

 

“아,아...!”

[그렇구나...! 그러니까. 이게 진우의 생각...이라는 거네?]

 

[응.]

 

 내 의지가 허락하는 한 특정대상에 한해서 생각과 속마음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정신교감술’을 깨닫게 된 나는 혜림이와 정식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이,이거 굉장해...! 진우의 마음을 알고,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 진우랑 섹스를 할 때보다 훨씬 기분 좋아... 뭐랄까...정신이 충만해지는 느낌? 사랑이 완벽하게 충전되는 듯한...그런 기분...진우, 너도 느끼고 있는거야?]

 

[으응...! 느끼고 있어. 정신교감이라는 거...정말 굉장한거네...]

 

 그 덕분에 단순히 서로의 몸만이 하나가 되었던 섹스와는 달리, 몸도 마음도 서로에게 녹아들어 온전한 하나가 되고, 점점 더 서로가 서로를 갈구하게 되어 서로를 원하고 원해 완전히 서로에게 연결되었고, 그것을 통해 느껴지는 정신적인 만족함, 그리고 충만함이 색다른 쾌감을 몰고 왔다.

 이를 테면 정신적인 사랑, 즉, 플라토닉 러브를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으응? 자,잠깐! 이게 뭐야!]

 

[응? 왜 무슨 문제 있어?]

 

[문제?! 당연히 있지! 대체 송유라는 어떤 년이야?!]

 

[헉?!]

 

[진우, 너! 솔직히 대답해! 얼른!]

 

 정신교감에 취해 혜림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허락한 탓에 혜림이에게 송유라의 존재를 들켜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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