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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에는 피앙세 2화

방과 후에는 피앙세 2화

 

히 생각해보자.

  방문을 여니 실내는 캄캄했다. 어느새 밖은 완전히 어두워진 모양이다. 익

숙한 손동작으로 벽의 스위치를 누르고, 어두컴컴한 방안을 걸어 침대로 다

가간다. 작은 점등관이 깜박거린 후, 실내에 조명이 켜진 순간, 나는 놀라서 

크게 비명을 질렀다.

「뭐……, 뭐, 뭐야~!?」

  침대 위에는 술냄새를 풍기는 전라의 여성이 무방비로 누워있다.

  성숙하고 다이나믹한 곡선을 그리는 약한 갈색 살결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긴 머리카락을 묶은 포니테일이 매혹적인 육체와 균형을 이루지 못한 느낌

도 들지만, 편안하게 자는 얼굴은 귀여운 소녀 그 자체였다.

「누, 누, 누구야!? 다른 사람 방에서……, 게, 게다가, 왜 알몸으로……」

  실내를 새삼 둘러보니, 의복이고 속옷이고 모두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혹시 이 사람이 미즈키씨가 말한『미리』라는 사람인가?

「우, 우선, 진정해!」

  나는 나 자신과 사타구니의 분신에게 말하고, 눈을 감으며 깊이 심호흡을 

해보았다.

「으응……. 후아……아아아아아아~……. 아아~, 타다시다!」

  느닷없이 섹시한 코맹맹이 음성이 들렸다.

「엑!?」

  눈을 뜨자 침대 위의 여성이 상반신을 일으키고, 잠이 덜 깬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그 얼굴은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지만, 의식이 알몸 쪽으로 가버

려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흐응, 으응, 안녕~」

  균형 잡히고 풍만하며 아름다운 유방이 흔들린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하복부에는 조금 짙은 편이 수풀이 우거져 있다. 헤어누드 잡지 그 자체인 

모습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진짜 여자! 직접 만질 수도 있는 거리

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나는 필사적으로 사타구니를 달래며 스스로를 진

정시키려 애썼다.

「아……. 저어, 혹시, 미, 미리씨라는 사람입니까?」

「벌써 내 이름을 기억해 주었네. 기뻐요. 미리, 감격!」

  기억해주다니, 난 방금 들었을 뿐인데, 무슨 잠꼬대야? 아니 잠꼬대가 아

니라, 완전히 취해 있어!

「그, 그래서, 그 미리씨가 왜 이런 곳에 있습니까?」

「으응, 후후후, 우리 피앙세니까 당연하잖아요?」

「그, 그건……. 이, 이런, 미리씨, 무슨……!?」

  유혹하는 듯한 얼굴로, 미리씨가 다가온다. 그것도 침대 옆에 우뚝 선 내 

하반신을 향해!

「이름을 기억해 준, 보, 답, 이, 에, 요!」

「보답은 됐으니까. 이런, 진정해요」

「사양하지 않아도 돼요……누나한테, 맡, 기, 세, 요!」

  말하기 무섭게 그녀는 내 허리를 껴안고, 침대 위로 당겨 쓰러뜨렸다.

「히야아아악!!  자, 잠깐!!」

  그렇지만 미리씨는 내 말 따위 듣지도 않았다. 혼자 쑥쑥 청바지 지퍼를 

내리고, 답답한 곳에 갇혀있던 분신을 해방시키려 했다.

  그렇지 않아도 난잡하고 다이나믹한 몸에 흥분했던 물건은, 들로 풀려 나

온 사냥개처럼, 트렁크에서 힘차게 튀어나와 버린다.

「타다시도 참~, 의외로 크잖아」

  미인 누나 타입인 미리씨는, 힘이 솟구치는 내 분신을 만족스러운 듯 바라

보며, 낼름낼름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알콜 냄새가 나는 숨결이, 우산을 펼

친 귀두 끄트머리에 스칠 때마다, 등골에 오싹오싹 떨림이 스친다. 침대에 

밀려 쓰러진 모습인 나는, 그대로 당하고 있었다.

「후후후, 그래, 그래, 이대로 누나에게 맡겨!」

「좋지 않아요! 그만……!?」

  하반신에서 짜릿한 자극이 전해져, 하던 말을 저절로 삼켰다.

  체리보이인 나도, 마스테베이션 경험 정도는 있다. 그래도 그 자극은 예전

에 경험한 어떤 자극보다도 훨씬 선명하고 강렬했다. 발기한 아들놈에게 그

냥 손을 대기만 한 것인데도, 스스로 쥐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갑자기 미리씨가 물건을 아플 정도로 꽈악 쥐었다.

「익!?  아야야야야!」

「타~다시이, 이걸로 여자애를 몇 명이나 울렸을라나?」

  눈의 초점이 나에게 고정되어 있다.

「농담하지 마요! 나는, 도, 도……, 동정……이에……요……」

  발끈해서 반론했지만, 아주 허무하게도 나중 말은 음성이 잠겨들었다. 한

편 미리씨는, 씨익 만면에 미소를 환하게 띠우고, 쥐던 힘을 늦춘다.

「그런가……. 그럼 내가 처음이라 말이지」

  그리고 껍질이 완전히 까지고 만 성난 물건 끄트머리에 부드럽게 키스를 

했다.

「크윽!」

  귀두에서는 애액인 쿠퍼선액이 나오고 있다. 그녀는 그 투명한 점액을 혀

끝으로 핥았다. 축축한 감촉이 과민해진 물건에서 정수리로 치닫는다.

「히악!?」

  내 입은 한심한 소리를 흘리며 헐떡였다. 이러면 누가 남자인지 알 수 없

다. 전신으로부터 힘이 빠지는 감각 속에서, 사타구니만 뜨겁게 맥박치고, 힘

이 들어간다. 머리까지 쾅쾅 울리는 리듬으로, 촉촉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감

싸온다. 미리씨가 내 분신을 핥아대고 있는 것이다!

「아흐……, 으응. 아으으응……」

  그녀도 내 달콤한 소리에 이끌려,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다. 열중하는 증거

다. 점액에 젖은 귀두를 뒤쪽이나 기둥뿌리 부분까지 빠짐없이 혀로 핥고, 

가볍게 댄 손가락도 야릇하게 꿈틀거려 미묘한 자극을 가하고 있었다.

「미, 미리씨! 나……, 이대로 가면, 이제……」

  한계에 가깝다……기 보다, 참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었다. 사정의 욕망에 

몸도 마음도 지배되어, 온몸이 떨린다.

「좋아, 사정해도……」

  미리씨는 물건 핥기를 쉬지 않는 채, 한 손을 트렁크 밑으로 넣었다.

  답답한 공간 안에서, 그녀 손이 음낭을 문지르며 쥔다. 마치 짜내지듯, 흥

분한 분류가 완전히 늘어난 육봉 끝으로 쇄도했다.

「앗! 나, 나온다!!」

  물건이 꿈틀 튀며 분출한 희고 탁한 액체가, 미리씨 얼굴과 손에 후드득 

떨어졌다.

「아앙, 잔뜩 나왔네」

  그렇게 말하며 힘없이 나머지 즙을 흘리는 페니스에 사랑스러운 듯 애무

를 가하며, 볼을 대고 비볐다.

  축축한 감촉이 다시 번뇌를 자극해, 위축되려던 육봉이 불쑥불쑥 팽창하기 

시작한다.

「후후후……. 아직 튼튼한가봐」

  길고 예쁜 눈에서 희미하고 흐린 눈동자가 야릇한 빛을 숨기고 있다.

  나는 이대로 미리씨와 마지막까지 가버리는 걸까? 동정을 잃는 걸까? 섹

스해 버리는 걸까?

  섹스하고 싶은 기분은 태산 같지만,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걸렸다.

「혼전교섭……, 하자……」

  혼전교섭? 그렇구나! 마음에 걸렸던 것은, 그것이었다.

  만일 여기서 섹스를 해버리면, 나는 그녀를 피앙세로 삼게 되는 것이고, 

결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기정사실로 만드는 일에 협력하는 꼴이다.

  그건, 위험하다!

「미, 미리씨, 잠깐! 나, 섹스 따위 한 적도 없고……」

  나는 적당히 변명을 외치며 도망가려고 몸을 미끄러뜨린다.

「괘~앤찮아, 괜찮아. 누나에게 맡기면 돼」

  사타구니에 엎드리며 미키씨는 얼굴을 덮었다.

「미리씨!?」

  아앗! 또 페라치오를 당하는 건가!

  그런데…….

「으응, 누나한테……전부……새액, 새액……」

  뭐지?

「으~응……. 냠냠……」

  잠꼬대……? 미리씨, 잠들어……버렸나……?

  얼굴과 손을 정액으로 더럽힌 채, 미리씨는 내 사타구니를 안고 편안하게 

잠들어 숨쉬고 있었다.

  정조의 위기(?)를 회피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이대로는 가는 건 안돼」

  미리씨를 깨우지 않도록 하며 침대에서 탈출한 나는, 들러붙는 물건을 물

휴지로 닦고, 트렁크 안으로 다시 넣었다.

  흥분은 다소 가라앉았지만, 침대에 털썩 엎드린 미리씨 몸은 보고 싶기는 

하지만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 모포를 덮어 가려주는 편이 좋겠지.

  나는 재빨리 그렇게 한 다음, 나도 예비 모포를 두르고, 벽 근처에 웅크렸

다.

  대체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우울해진다. 이런 때는 빨리 자는 게 제일이다.

  눈을 감아도 뇌리에 박힌 미리씨의 부끄러운 모습과, 몸에 새겨진 페라치

오 감촉이 신경을 들볶았다. 머리도 사타구니도 흥분되어 잠이 오지 않는다.

  바로 저기 침대에는 기꺼이 섹스를 하게 해줄 미인 누나가 무방비로 잠들

어 있다. 나만 작정을 하면, 지금 당장에라도 첫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도……, 손을 댔다가는…….

  하려는 마음과 안된다는 마음이 서로 거듭 다투는 가운데, 나는 괴롭고 긴 

밤을 보내고 말았다.

 

제2장  우울한 일요일

  방안에 갑자기 FM 방송이 흘렀다.

  흐리멍덩한 머릿속에, 『마리코(真理子)의 선데이모닝』 테마곡이 가볍게 

울린다.

「그렇지……. 오늘은 일요일이지」

  조금 더 자자.

  무엇보다 방금 아주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어

떤 것인지 생각나지 않지만, 이대로 잠들면 계속 꿀지도 모른다.

  나는 모포를 감은 채, 침대 위에서 꿈틀꿈틀 움직였다. 리모콘으로 손을 

뻗어, 스테레오 콤포넌트의 볼륨을 줄인다.

  그러다가 퍼뜩 알아차렸다.

  어, 왜 침대에서 자고 있지? 분명 바닥에서 잤을 텐데……?

  머릿속에 미인 모녀의 자극적인 몸이 떠오른다.

  그래. 내가 꾼 꿈은 그 여성들과 농후한 섹스를 하던 꿈이었다.

  꿈의 기억을 더듬자, 사타구니가 긴장하며 꿈틀거렸다. 원래 반쯤 발기상

태였던 듯, 순식간에 아픔을 느낄 정도로 팽창되어 버렸다.

  좋은 꿈이었어~.

  나에게 느닷없이 피앙세가 세 사람이나 생기지. 게다가 미인 미망인이 함

께 있었고, 그 외에도 누군가 있었던 기분인데, 그거야 어찌 됐든, 그 여성들

과 섹스로 날을 새다니, 동정이라면 당연하고 전형적인 몽상이지.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몽정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아니, 아예 꿈을 반찬 삼아 여기서 빼버릴까.

  나는 모포 밑에서 지퍼를 내리고, 트렁크로부터 튼튼한 분신을 당겨 빼냈

다.

  오른손에 뜨거운 육봉을 쥐고, 왼손으로 베갯맡의 휴지를 더듬는다. 그러

자 손가락 끝에 단단한 종이가 닿았다. 휴지가 아닌 것은 분명한데, 뭐지?

  시스템 수첩에서 따낸 듯한 그 종이에는, 난폭한 글씨가 춤추고 있었다.

 『미안! by 미리』

  미리……? 미리라면…….

  내 뇌리에 꿈과는 다른 음란한 광경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미즈키씨로부터 

들은 유언 내용이 귓속에 울렸다.

  어이쿠, 이런……. 어쩌면 좋지?

  피앙세라고……? 결혼이라고……?

  그거, 어제 같은 일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거지.

  물론 앞으로도 계속…….

  꿈속처럼, 그런 일, 저런 일…….

「으~윽, 안돼! 망상에 취해서 현기증이 나겠다!」

  도대체 이대로 있다가는 언제 또 빠져들지 모르고, 일단 집에서 나가 생각

해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물건을 거두어들이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적당히 차림을 갖추고 

집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집에서 나왔지만 뚜렷이 갈 곳도 없다.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중, 배가 꼬르륵 꼬르륵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

고 보니 어제 저녁밥도 먹지 않았다.

  지갑을 보니, 주름투성이 천엔짜리 지폐 한 장과 동전 몇 개가 들어 있다. 

군자금으로는 충분하다.

「가게라도 가볼까……」

  나는 한 달에 몇 번쯤 이용하는 단골 찻집에 가기로 했다.

  그 가게는 동네 메인스트리트 중간 정도, 가로수 길을 면한 곳에 있다. 건

물 자체가 오두막 같이 아담해서,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일요일 오전인 탓인지, 가게 안은 한산했다.

  유선방송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피아노곡이 가게 안에 흐른다.

  나는 카운터 옆의 작은 테이블 자리에 앉아, 카페오레와 낫토 토스트를 주

문했다.

「하아~…….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창밖 가로수 길을 멍하니 바라보며, 몇 번이고 한숨을 쉰다.

  갑자기 나타나 피앙세를 정하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도 정하지 않으면 그 집에서 쫓겨나 버린다.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지?

  입 가득 문 낫토 토스트를 카페오레로 위장 속에 흘려 넣고, 걱정에 잠기

는 내 눈에, 조금 조심스러운 느낌의 귀여운 소녀 모습이 비쳤다.

  단순한 스커트 패션이 얼핏 밋밋한 인상을 주지만, 사랑스러운 얼굴과 풍

만한 가슴이 강렬하게 미스매치되어 보는 자의 눈을 당긴다.

  제일 안쪽 자리에 앉은 그 소녀는, 가지고 있던 문고본 소설을 펴면서, 살

구차를 주문한다.

  그 쪽은 이쪽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지만, 틀림없이 미사씨다.

  하필이면. 이 가게에 오지 않아도 되는데!

「좋지 않아. 지금은 혼자 있고 싶은데……」

  다행히 그녀는 독서에 열중하는 듯, 내가 있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다. 이틈에 장소를 옮기는 편이 무난하겠지.

  카운터 근처에 앉은 것은 정답이었다. 나는 조금 남은 카페오레를 단숨에 

마시고, 재빨리 계산을 끝내고 가게에서 나왔다.

「자아, 어디로 갈까……」

  공복은 채워졌지만, 가진 돈이 적다. 영화관이나 게임센터처럼 돈이 드는 

곳에는 갈 수 없다.

  할 수 없이 근처 공원으로 발길을 향한다.

  아동 놀이터와 야외식물원을 설치한 그곳은, 부지 안에 작은 잡목숲과 언

덕까지 있어, 자그마한 삼림욕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휴일이라도 되면 산보하러 찾아온 남녀노소로 혼잡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언덕 위의 전망대는 데이트에 열심인 커플의 특등석이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날씨도 좋다. 공원 안에는 가족끼리 나온 사람들이 눈

에 많이 띤다.

  나는 그네와 미끄럼틀이 설치된 아동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찻집에서 미사씨를 만나기도 했다. 미리씨나 미키짱이 나오지 않는다고 장

담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니, 어린이 놀이터인 아동 놀이터가 안전하게 

여겨졌다.

  작은 어린애들이 소란스럽게 떠들며 노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생각해본다.

  어린애들 모습에 옛날 내 모습을 겹치며, 그만 과거를 회상하고 말았다.

  양친과 지내던 평화로운 나날……. 그 기억은 이 현재를 비참하게 만들었

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내 사고는 진흙탕에 빠진 듯 무거워지고 있었다.

  더구나 쨍쨍 내리쬐는 봄 햇살을 받자, 수면 부족도 한몫해서 졸음이 온

다.

  너무 심각한 고민은 가끔 현실도피적인 잠을 불러일으킨다. 마감이 닥쳐오

는 작가가, 백지 원고를 앞에 두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고 있었다……하는 

그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도 그랬는지 모른다.

  기분 좋은 햇살이 유혹하는 대로,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무겁게 닫힌 눈꺼풀 속에 오늘 아침 꿈이 얼핏 떠올랐다. 이윽고 그것은 

연속적인 영상이 되어, 새로운 꿈으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상대하는 사람은 칸노 집안 사람들이 아니라, 

웬일인지 급우인 우메하타 요시코였다.

  꿈속의 우메하타는 나에게 박힌 채 몇 번이고 몸을 젖히며 실신해버린다. 

나는 한번도 사정하지 못한 채 끝이 나서, 흥분한 욕망의 배출구를 찾고 있

었다.

  그 때 기억에 있는 음성이 들린다.

「오빠」

  어, 이 음성……?

「타다시 오빠. 어디 있어?」

  틀림없다. 미키짱 음성이다!

  나는 퍼뜩 눈을 떴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동 놀이터와 식물원을 나누는 나

무들 건너편에 다소 어린애 같은 분홍 원피스를 입은 미키짱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나를 찾는 것 같다.

「고……, 곤란해. 이대로 있으면 들키겠다」

  그렇게 되었다간 이야기가 복잡해질 것 같다. 어제 보니, 미키짱은 미리씨

와는 다른 의미에서 적극적이어서 노골적인 행동을 해올 것 같다. 게다가 천

진난만하게……. 그것이 문제였다. 저 애는 자칫하면 울지도 모른다.

  나는 재빨리 도망칠 방법을 생각했다.

  이 근처라면 하천 부지 근처가 적당할까?

  제방을 따라 8킬로미터 정도 자전거도로와 호안(護岸) 녹지가 뻗어 있다. 

훤히 보이는 곳이니, 누가 또 온다면 곧 도망칠 수 있다.

「좋아! 정했으니 레츠고다」

  벤치에서 일어난 나는 마구 달리고 있었다.

  공원에서 하천 부지까지는 걸어서 10분, 달리면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

리였다.

  전력으로 질주한 나는 호안녹지 풀 속에 쓰러진다.

「하아, 하아, 하아!」

  요즘 운동부족인 탓에,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나는 빙글 몸을 돌려, 똑바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공원에서 꾸벅꾸벅 조는 사이,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조금 색이 

바랜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둥실 떠서 흘러간다. 강을 스치는 바람이 기분 

좋다. 하천 부지 여기저기에서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 목소리가 들린다.

「하아~……」

  주위의 느긋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내 마음은 편치 않다.

  사실 어떻게 된 거지?

  피앙세를 정하지 않으면 지금 생활은 몰수당하고 만다. 지금까지 편히 지

내기는 했지만, 느닷없이 심한 요구를 받은 것이다.

  기간도 너무나 짧고…….

  사실 생각해보면 왜 칸노씨는 나에게 원조를 해준 거지? 게다가 왜 자기 

딸과 결혼시키고 싶어 한 거지? 그렇게 모두 미인이니까 나 따위한테는 아

깝잖아!

「하아아~, 진짜 어저면 좋지……?」

  생각한다고 결론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지만,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

으면 현실에 밀려 떠내려갈 것 같다.

  사실 그렇게 되어도 좋다 생각하는 내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는 느낌이 든

다. 단지 스스로 결단하는 것이 싫은 것 같다.

  나는, 정말…….

「앗! 타다시이~」

  갑자기 머리 위에서 음성이 들여왔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니, 둑 위 자

전거도로에 타이트하고 섹시한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미리씨가 서 있었다.

  나는 잠시 망연자실해서 미리씨를 바라보았다.

  어제 본 나체와, 사타구니를 자극한 감촉, 그리고 결과적으로 가버리고 만 

일이, 머릿속에 빙빙 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예의『씨익~』 웃는 미소를 띠우고, 둑에서 내려온다.

  뱀이 노려보는 개구리처럼 얼어붙었던 나는, 억지로 기력을 짜내 아무 방

향으로나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앗! 타다시도 참!! 자, 잠깐 기다려!」

  미리씨가 큰 보폭으로 쫓아온다.

  어디로 도망갈까 생각할 틈도 없다. 아무튼 계속 달릴 뿐이다!

  둑 경사면을 달려 올라가 좁은 자전거도로를 뛰어 넘고, 줄기차게 달렸다.

「타다시도 참, 기다려!」

  미리씨 음성이 쫓아온다. 어제 느끼기에, 그녀는 스포츠우먼 같았으니까, 

내가 이대로 도망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미리씨 기척은 점점 가까워지

는 것 같았다.

「크윽! 어, 어떻게 하지……?」

  문득 산소 결핍인 머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주택가로 도망치

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미키씨는 물러날 게 틀림없어. 따라잡히기 전

에, 빨리 도망치자!!

「이런. 기다리라니까」

「잡힐 거 같아요!?」

  나는 죽기를 작정한 것처럼 보폭을 넓혀, 집장사가 팔려고 지은, 비슷비슷

하게 생긴 가옥들이 잡다하게 늘어선 주택가로 뛰어들었다.

  작은 사각 모퉁이를 이리저리 돌아, 블록에서 블록으로 달린다.

  어지간한 미리씨도, 나와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거리가 

벌어지기만 한다. 이렇다면 도망칠 수 있다.

  나는 생각한 끝에, 그녀를 앞으로 보내기 위해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러자……. 모퉁이를 돌자마자 시노노메학원 제복을 입은 여자애와 정면으

로 마주쳤다.

「어, 와키다군?」

「우왓!」

  황급히 급브레이크를 밟은 나는, 그 애 눈앞에서 가까스로 멈추었다.

「뭐야, 그렇게 놀라게 하지 않아도 되잖아」

  여자애는 우메하타였다.

「놀랜 건 그쪽이잖아. 내참, 나는 이럴 틈이 없어」

  우물쭈물하다가는 미리씨에게 잡힌다! 나는 다시 달리려 했지만, 너무 달

려서 숨이 막힌 것과, 조금 전의 급제동으로 다리가 덜덜 떨려, 전봇대에 몸

을 기대고 말았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도망칠 수 없다.

  그런 나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지, 우메하타가 핀잔을 준다.

「이럴 틈이 없다니, 대체 왜 그래. 그것도 내 집 앞에서」

「뭐? 내 집 앞이라니……. 무슨……?」

「여긴 내 집 앞. 와키타군은 몰랐던 모양이지만……」

「어? 그래? 우메하타 집, 이런 곳에 있었구나」

  나는 전봇대에 기댄 채, 좀 낡은 외관의 2층 주택을 바라보았다.

  골목에 면한 현관 표찰에는 분명『우메하타』라고 적혀 있다.

  납득을 하고 시선을 되돌리니, 우메하타는 조금 뚱한 표정이다.

「이런 곳이라니, 무슨 의미야? 그야 와키타군 집에 비하면 좀 복잡한 곳이

고, 작고 좁은 집이지만……」

「그런 얘기가 아니야」

  왜 삐진 거지? 내 말투가 나빴나?

  그 때 모퉁이 저편에서 음성이 들려온다.

「놓치지 않아~!!」

  미리씨다. 상당히 가깝다. 그렇다면 마지막 수단이다.

「어어, 조금 미안하지만, 잠깐 숨겨주지 않을래? 사정은 나중에 말할 테니

까」

  나는 전봇대에서 몸을 떼고, 이번에는 우메하타에게 조금 기대며 부탁했

다.

「괘, 괜찮기는 하지만……」

「생큐! 은혜는 갚을게」

  나는 우메하타를 재촉해서 미리씨가 모퉁이를 돌기 전에 집안으로 들어갔

다.

  우메하타 집은 지은 지 20년 정도 된 일반적인 집장자 주택이었다.

  3DK 정도 배치에 좁고 급한 계단을 오르니 짧은 복도가 있고, 그 양쪽에 

타타미 여섯 장 넓이인 방이 마주보고 있다.

  나는 우메하타가 재촉하는 대로, 왼쪽 서양식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이 그

녀 방인 모양이다.

「헤에~, 여기가 우메하타 방이구나」

「내 참! 그렇게 빤히 보지 마」

  실내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 또래 여자애 방치고는 조금 살풍경한 느낌

도 들지만, 우메하타 성격이나 품행을 생각하면, 상당히 소녀다운 인상이다.

  사실 내가 여자애 방에 들어간 것은 태어나 처음이기 때문에, 그다지 뭐라 

말할 수도 없기는 하지만…….

「아니, 여자애 방에 들어온 건 처음이라서」

「그, 그렇지만……, 와키다군, 갑자기 숨겨달라고 하니까……. 미리 알았으면, 

더 정리했을 텐데」

「그런 거야? 충분히 정리된 거 같은데……」

  우메하타는 납득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더 이상 어떻게 정리한다는 거지?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 와키다군, 아까 대체 뭐 한 거야?」

  나에게 쿠션을 권하면서 우메하타가 물었다.

「에……?」

「에……? 가 아니잖아. 나중에 설명하겠다고 했잖아」

「어, 그랬나?」

「내참! 시치미 떼지 마. 약속했으니까 해」

  우메하타는 그렇게 말하고, 공부책상 의자에 털썩 앉는다. 조금 전까지와

는 전혀 다른 강경한 태도였다.

  왜 저러지~……. 이래서 여자애는 잘 모르겠어.

「그보다 우메하타는 왜 제복을 입고 있어? 오늘은 일요일이야」

「난 부활동 때문에 학교에 갔다 왔어. 그보다 와키타군 이야기! 자, 빨리 

말하라니까」

  다소 농담 섞인 말투지만, 설명하지 않으면 권총이라도 쏠 기세다.

  내 참. 적당히 속일까? 아냐, 나는 거짓말이 서툴고, 우메하타는 그런 걸 

간파하는 데에 뛰어났다.

  으~음……. 어쩔 수 없나…….

  나는 어제부터 일어난 일을 요약해서 설명했다.

  그렇다지만 물론 어젯밤 미리씨 이야기는 숨겼다. 그런 것을 여자애에게 

설명할 수 있나.

「……그렇게 된 거야. 그렇지만 이 얘기는 오프레코드로 해줘. 만일 학교에 

들키면 난처하니까」

「그랬구나……. 그래서, 아까는 왜 그랬어?」

「그러니까, 아까는 그 피앙세 후보 중 한 사람이 쫓아와서……」

「흐~음, 그런데 왜 와키타군이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묘하게 차가운 태도로 우메하타가 나를 노려본다.

「여보세요, 우메하타……. 그건‥‥」

「하지만, 봐, 기척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피앙세를 결정해라, 아니면 나

가!』라니, 어떻게 된 거야. 그런 건 그야말로 협박이잖아」

  생각도 해보지 않았지만,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아무리 와키타군이 신세를 졌다고 해고, 그런 엉터리 같은 이야기에 넘어

가면 안돼! 와키타군은 와키타군이니까, 자기 의지를 분명하게 가지고, 싫

으면 싫다 말해야지」

  그게 문제야. 억지인 건 충분히 알고 있다. 당사자는 나니까. 그렇지만 그 

세 사람을 앞에 두고 있으면, 거절하는 쪽이 바보 같은 생각이 든다.

  우메하타도 내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그 부분을 푹 쑤셨다.

「아니면……, 혹시, 싫지 않은 거 아냐?」

「싫다거나 싫지 않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이 나이에 피앙세다, 결혼

이다, 그런 말 들어봐야 느낌이 오지 않아」

「그래도……, 그 사람들, 미인이지?」

「그야……, 뭐……」

「사실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우메하타의 추궁은 내 정신을 사정없이 압박한다. 이것이야말로 협박 같

다.

  어쩐지 화가 난 나는 그만 말투가 거칠어졌다.

「그러니까, 그걸 모르겠어! 도대체 우메하타라면 어떻게 할래? 우메하타는, 

결혼 상대를 그렇게 간단히 정할 수 있어?」

「나……, 나는……」

  어지간한 우메하타도 말문이 막힌다. 이야기 초점에서 벗어나는 것도 무시

하고 말한 것이 상당히 효과를 낸 것 같다. 어쩐지 생각에 빠진 것처럼도 보

인다.

  이대로 가면 어색하다. 지금은 사과하는 편이 좋겠다.

「미안, 우메하타……. 단지, 그냥, 내 기분도 알 수 있겠지?」

「응……」

  우메하타가 순순히 끄덕인다. 중학교 시절부터 알던 것에 비하면, 전혀 다

른 사람 같다. 이런 감정이나 태도 변화에서, 사춘기 여자애의 복잡함이 슬

쩍 드러난다.

  나는 공원에서 낮에 꾼 꿈 생각이 났다.

  우메하타도 여자애구나…….

「그만 폐를 끼쳤네. 그럼 슬슬 돌아갈게」

「에……, 벌써 가려고?」

「아아. 해도 기울기 시작했고, 우메하타 집도 저녁 식사 시간이잖아?」

「그렇지만 와키타군 집에는……. 으응……, 뭐하면 우리 집에서 저녁 먹어

도……」

「갑자기 들이닥쳐서, 그럴 수는 없지

「그래도……」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조심스럽게 물고 늘어지는 우메하타에게 웃어 보이며, 나는 힘차게 일어섰

다.

  우메하타가 여자애인 것처럼, 나는 남자애다.

「여, 역시……, 결혼해버리는 거야……?」

  모기 소리처럼 가느다란 음성. 대체 우메하타는 왜 저러지?

  아무리 오지랖이 넓다고, 내 일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텐데. 뭐, 

사는 곳이 없어질 지도 모르는 건 분명 일대 사건이지만.

  그래도 그 상냥해 보이는 칸노 집안 사람들이, 그런 지독한 짓을 하리라고

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웬일인지 낙천적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건 몰라. 단지 난 내 의지를 분명하게 가질 거야. 우메하타가 말한 

대로 말이야」

「그……, 그렇지……. 아까도 말했지만, 와키타군은 와키타군이니까, 자기 생

각대로 하면 좋을 거 같아……」

「아아. 그럼 또 봐. 오늘은 고마웠어」

  묘하게 복잡한 표정을 보이는 우메하타의 눈빛 전송을 받으며 나는 내 집

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바깥은 완전히 저물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내 낙천적인 사고는 구멍 난 풍선처럼 점점 시들

어갔다.

  발걸음이 무겁다. 한걸음씩 디딜 때마다, 납을 삼키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걷고 있자니 집에는 도착해 버린다.

  문 앞에 우뚝 선 나는, 불 켜진 내 집을 올려다보았다.

  우메하타 앞에서는 폼을 쟀지만, 역시 들어가기가 괴롭다.

  낮에 그렇게나 요란하게 도망쳤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친 순간 반드시 무

슨 소리를 할 것 같다. 특히 미리씨는…….

  그런 서늘한 감각이 등골을 스친다. 그것을 뿌리치며 등을 쭉 편다.

「에에~잇! 우물쭈물 해봐야 소용없어. 각오를 하고 들어가자!」

  문을 지나 현관문을 여니, 생글생글 웃는 미즈키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 지금 왔어요……」

「어서 와요. 슬슬 저녁시간이에요」

「아……, 예……」

「그럼, 먼저 식당으로 갈게요」

  미즈키씨는 그렇게 말하고 타박타박 안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그 뒷모습을 

나는 불러세웠다.

「어, 저어……」

「예?」

  끈적끈적한 미망인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본다.

  무의식적으로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우메하타가 말한 대로, 여기서 확

실하게 말하는 거야.

「그, 그………, 나……, 뭐라고 할까……」

  꿀꺽 침을 삼키고, 작정을 하며 계속 말한다.

「칸노씨의 후의는 고마웠고, 지금까지 몹시 신세진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만……. 그래도 아무리 은인의 유언이라 해도, 피앙세를 선택한다는 건, 별개 

문제라고 생각해요」

  조, 좋아! 말했어!

  나는 내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분명 이걸로 상황이 변한

다.

「그러네요……. 타다시씨에게는 일생이 걸린 문제인 걸요」

  조금 우수 어린 음성으로 미즈키씨가 중얼거린다.

  말이 통할 것 같다. 내 몸에서 조금 전까지 쌓였던 납이 사라지기 시작한

다. 그런데…….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주세요」

  나보다 열 살 정도 연상으로 보이는 그녀는, 어른의 여유랄까, 모두 간파

하는 듯한 느낌으로 생긋 미소 짓고, 식당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하아……. 틀렸나……」

  한숨을 쉰 나는 우물쭈물 식당으로 들어가 식탁을 바라보았다.

  이미 준비가 끝나, 미키짱과 미사씨가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가, 감사……」

  나는 한마디 한 다음, 의자에 앉는다. 그러자 타박타박 슬리퍼 소리가 나

더니, 옆의 부엌에서 미즈키씨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럼 먹을까요」

  그녀가 자리에 앉자 식사가 시작된다.

  나는 어색한 동작으로 젓가락질을 하며, 눈앞에 놓인 요리에 손을 댔다.

  느릿느릿 입으로 젓가락을 옮긴 나는, 요리를 한 입 먹은 순간 전신에 전

기가 흐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맛……, 맛있다!

  긴장한 나머지 맛 따위 모를 것 같았는데, 말도 안 된다!  미즈키씨 요리

는 근사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랫동안 가정의 맛이란 것을 보지 못했구나…….

  아니, 그렇다 해도 미즈키씨 요리는 공연히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맛있었

다.

「어쩐지 이거, 굉장히 맛있네요」

「그렇습니까? 고마워요」

「이 요리는 말이야, 파파가 좋아하던 거야. 오늘은 미키도 도왔어」

「헤에~……」

  칸노 집안 사람들은 제각각 추억에 잠기는 듯, 천천히 젓가락을 움직인다.

  나는 나대로 양친이 살아 있을 당시의 저녁식사 풍경이 떠올라, 조금 감상

적인 기분에 빠졌다.

  이윽고 식사도 끝나가려 할 무렵, 갑자기 미즈키씨가 입을 연다.

「그건 그렇고 미리씨, 어떻게 된 걸까?」

「미리 언니는,『작전을 짠다!』그러면서, 방에 있어」

  미키짱 말에 나는 그만 입속 음식을 뿜을 뻔 했다.

「어머, 그래. 못말리겠네, 그 애도」

  그 후에는 두근두근 모두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지만, 이상하게도 낮에 있

었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사실은 내가 어찌 되건 상관없는 건가? 아니면 단지,『피앙세가 되라고 했

으니까,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미키짱이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걸어온다.

「왜 그래, 오빠? 몸이……, 안 좋아?」

「그, 그렇지 않아, 몸은 괜찮아. 어, 봐, 밥도 다 먹었고」

  빈 그릇을 보여준 나는 일단 상냥하게 웃으면서 넘기려 해보았다.

「그래도 오빠, 어제부터 기분이 나쁜 거 같아」

  미키짱의 둥그스름한 눈이 차츰 촉촉해진다.

「혹시……, 미키 일행이, 싫어?」

  그 말은 내 가슴을 푹 쑤셨다.

  원래 연애경험이 전혀 없는 나에게는 자극이 너무 강한 대사였다.

  아니, 그 이전에, 이런 귀여운 애가 눈을 촉촉이 적시고「나 미워?」하면, 

누구나 가슴이 덜컹하리라 생각한다.

  미키짱은 계속 말한다.

「미키는 말이야, 오빠를 아주 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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