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엔젤 3
다크엔젤 3
아까는 그렇게 말을 길게 하던 녀석이 짧은 질문을 던진다. 차라리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좋았을 것을 칼리엘은 너무 순진했고 실은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
다.
"당신과는 상관없잖아요!"
실이 대꾸했다.
"상관이 없다니 당연히 상관이 있지."
"무슨.."
"그거야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입으로 말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아가씨들한테
집적대던 우리가 그 별로 잘나지는 않은 것 같은 마법사에게 당하고서 다시 아가씨들
에게 집적대려 하는 이때에 그 녀석의 거취가 궁금함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가 아
니겠나?"
"저 병가지상사란 무슨 뜻이죠?"
음 방금 그 질문은 당연히 칼리엘이다.
"그러니까 당연한 일이라는 소리다."
"저 혹시 실패는 흔히 있는 일이니 낙심할 것 없다라는 말 아니었나요?
이 명쾌한 대답 역시 칼리엘의 말이다. 건달 다섯 명은 자신들의 틀린 어휘의 사용까
지 지적하는 칼리엘의 당당한(?) 모습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뭐 상관없다. 어쨌든 우리하고 같이 가자."
역시 말은 길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건달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저 두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는가. 그리고 말이 필요 없이 카리엘과 실은 그것을 거부했고 그들은 실과
칼리엘을 억지로 잡으려 했다.
"가라. 윈드 프레일(Wind Frail)."
나지막한 진언. 억지로 실과 칼리엘의 길목을 막았던 건달들은 그렇게 하늘을 구경할
수 있었다. 빗자루에 쓸린 쓰레기처럼 바람에 휩쓸려 날려간 그 건달들의 차이점은 그
중 둘은 유경험자이고 셋은 무경험자라는 것밖에는 없었다.
"레그나!"
실과 칼리엘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뒤에 있는 사내는 그녀가 예상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저 누구시죠?"
"이런 예상하셨던 사람이 아니라서 실망하신 모양이군요. 저는 지나가다 하찮은 것들
이 숙녀 분들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해서 감히 나섰습니다. 저의
이름은 라인 트레이서(Line Tracer)라고 합니다."
사내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햇빛에 반짝이는 그의 머리카
락은 금발이었다.
"감히 아름다운 아가씨들의 앞을 가로막고 막돼먹은 행동을 하려 하다니.. 자신의 주
제를 모르는 자들이군요."
적당한 음량과 음색을 갖춘 부드러운 목소리의 사내였다. 그의 출현은 정말로 그녀들
이 예상하고 있던 바가 아니었기에 실과 칼리엘은 당황하고 있었다. 그나마 실이 먼저
인사를 했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저는 당연히 해야 할 바를 행하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네?"
"혹시 이 근처에 포보스라는 분의 집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이 마을에서 사설학원
같은 걸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주저하는 듯한 말투 끝에 머리를 쓸어 넘기며 보기 좋은 미소를 짓는 라인 트레이서의
행동은 그를 순수한 여행자처럼 보이게 했다.
"아 포보스씨요. 저 그분을 알아요. 지금쯤이면 학교에 계실 거예요."
실은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네? 정말 다행이군요. 생각보다 마을이 커서 찾기 어려울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렇게 쉽게 아는 분을 만나다니.. 그럼 어디로 가야되는 지 여쭈어도 되겠지요."
잠시 생각을 하던 실이 말했다.
"음.. 별로 멀지 않으니까 저희가 같이 가 드릴게요."
"그렇게 까지 해주실 필요는... 어디로 가야되는 지만 가르쳐 주시면.."
"아니요. 저희를 도와주셨는 걸요."
"그러면 잠시 폐를 끼치겠습니다."
라인 트레이서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뭘요."
화사한 미소로 화답하는 실 프라인.. 햇빛을 받은 새하얀 이가 반짝였다. 그리고 엉성
하게 쓰여진 소설처럼 이야기는 굴러가기 시작했다.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이기에 별 말 없이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앞만 보고 걷던 그
들의 침묵을 라인이 주저하는 듯한 모양새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두분의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요?"
"네. 제 이름은 실 프라인이고요. 이쪽은 칼리엘."
실도 어색한 침묵은 싫었기에 부드럽게 대답했고, 칼리엘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인사
를 대신했다. 실이 대답하고 서로 할 말이 없는 시간이 잠시 지나 이번엔 실이 먼저
입을 열었다.
"포보스씨는 참 좋으신 분이에요. 왕립학술원에 계시다가 고향에 있는 불쌍한 아이들
을 돕고 싶으시다고 1년 전에 바란치로 돌아오셨으니 까요. 그런 분이 우리 마을에 계
신 분이라는 건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포보스씨와는 어떤 관계시죠?"
"아 예.. 학술원에서 같이 연구하던 동료입니다."
라인은 대답을 하면서도 쑥쓰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네에? 그렇게 나이 많아 보이시지는 않는데....."
"학자라고 꼭 나이가 많아야 되는 건 아니죠."
"그렇군요.. 저 나이가?"
"열 아홉입니다."
"와 저랑 두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대단하시네요."
"뭘요."
드디어 대화가 스스럼없이 이어지려는 때인데 어느새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해 버렸다.
"아. 벌써 다 왔네요. 여기가 포보스씨가 계시는 학교예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크군요.."
실이 손가락으로 가르친 건물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지도 않았다. 낮은
담에 둘러싸인 아담한 정원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16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건물
이 서 있다. 간소한 디자인의 철문 옆에는 [에리나 사설학원]이라는 패가 달려있다.
서로 약간은 친해지려 할 듯한 분위기였기에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할 일을 다 했기
에 실은 이별의 인사를 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께요."
"네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냥 발길을 돌릴 것 같던 실이 머뭇거리다가 질문을 던졌다.
"저 혹시 포보스씨댁에 머무르실 건가요?"
"네 한동안 그럴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뵐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말 놓으세요. 저보다 나이도 많으시잖아요.."
"네? 하지만........."
"그쪽이 저도 편하니까요"
실이 권유를 계속하자 라인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그러죠. 아가씨도 저에게 말을 놓는다는 조건으로요."
"어머. 어떻게.. 그럼 부르기도 불편한 걸요."
"그냥 오빠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라인오빠...?"
실이 진짜로 오빠라고 부르자 라인의 얼굴은 순진한 소년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고. 고마웠어 실. 그리고 칼리엘씨도 감사했고요. 그럼 전 이만."
화사한 웃음을 입가에서 지우지 않으며 실과 칼리엘을 향해 손을 흔들고 라인은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실과 칼리엘이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라인은 얼굴을 풀었
다. 아무 감정도 담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저 말많은 여자 애보다는 칼리엘이라는 쪽이 흥미가 가는 걸.."
라인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때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맵시 있게 기른 콧수염이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중년사내가 창문을 열고는 그를 보고
있었다. 학교라고는 하지만 수업은 이미 다 끝난 듯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지?"
"저는 포보스라고 합니다만 댁은 누구신지?"
실에게는 학술원 동기라고 했었지만 라인은 포보스라는 사람을 지금 처음 봤다. 그는
포보스가 몸을 내밀고 있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런가? 당신이 포보스였나?"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당신한테는 별로 볼일이 없는데.. 당신의 이름에 볼일이 있어."
"무슨 말씀이신지?...... 윽!"
라인은 포보스와 가까워지자 말자 그의 이마를 잡았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캐스팅을 했다.
"프렌드(Friend), 메뉴팩츄어링 메모리(Manufacturing Memory). -너의 앞에 있는 자.
라인트레이서는 왕립학술원 동기였다.- 크리에이트 리플렉트 어픈 더 패스트 캐릭터(C
reate reflect upon the past Character)"
별다른 주문이나 손동작도 없이 시동어만으로 라인은 연달아 세개의 마법을 사용했다.
그것도 전부 높은 써클(Circle)의 정신계마법이었다. 포보스는 뇌로 파고든 라인의
마력에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정신을 차렸
을 때 왕립학술원시절의 친하게 지내던 동료 라인 트레이서가 자신 앞에서 특유의 무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람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꼈다.
=============
"거기는 우리 엄마가 포보스씨를 위해서 지어주신 학교야.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을 담
아 포보스씨도 학교 이름을 엄마 이름으로 했어. 그 이후로도 엄마는 꾸준히 그 학교
를 지원해주고 계셔. 그래서 나도 몇 번 포보스씨를 만나봤는데 정말 재밌고 상냥하신
분이야. 방금 그 동료라는 라인 트레이서라는 오빠도 그렇지?"
"......"
실이 함께 걸어가며 주저리주저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건만 칼리엘은 가벼운 웃
음으로 대꾸할 뿐이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천상에서 내려온 수호천사라는 칼리엘..
그 굉장해야 할 존재는 말하는 것이 힘에 겨운 듯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다음에 나올 때는 마차를 타고 나오는 게 좋겠어. 그 멍청한 레그나를 따라나왔다가
별로 한 일도 없이 다리만 아프잖아."
"........"
이미 익숙해져서 대꾸를 바라지 않는 듯 실의 주절거림은 칼리엘이 대답을 하지 않음
에도 멈추지 않는다.
"와 집에 다 왔다. 근데 레그나는 벌써 와 있을까? 다시는 나타나지 말고 그 술집서
술에 빠져 죽었으면 좋겠다."
"..........."
그러나 아니샤가 열어준 문으로 집에 들어선 실은 바람 빠지듯 새어나오는 작은 신음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소리는 현관 근처에 있는 에리나의 집무실에서 흘러나왔다.
"으응. 하아......"
실은 그 신음소리에 활기찼던 표정을 지우고 슬픈 눈으로 아니샤와 칼리엘을 쳐다봤다
. 익숙한 목소리가 내는 신음, 그녀는 쾌활함으로 위장하여 현실을 피할 수는 있었으
나 바꿀 수는 없었다. 아니샤는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는 얼굴을 돌려 실의 시선을 피
했다. 칼리엘은 실의 손을 잡았다.
"어서 올라가요. 그러면 신음 소리도 들리지 않을 테니까요."
쓸쓸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연 칼리엘의 손에 이끌려 실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
고 그때 그 신음 소리의 주인인 아니샤는 뜨겁게 달아오른 눈으로 레그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레그나님.....하앙"
에리나는 뜨거운 시선으로 레그나를 쳐다보았다. 에리나는 레그나의 손을 잡아 자신의
치마 속으로 집어넣었다.
"하아. 레그나님. 저 팬티..... 입지... 않았어요....."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그녀의 보지는 이미 젖어 있었다.
"레그나님만 생각하면.. 바로 젖어버려서.. 입고 있을 수가 없어서...."
"..........."
"어서.. 해주세요."
에리나는 애원하는 표정으로 레그나에게 매달리며 보지를 그의 손에 비벼댔다.
"그래."
"아아...."
에리나는 그를 방 가운데 쇼파로 이끌어 기쁜 듯한 표정으로 옷을 벗었고 스스로 레그
나의 옷도 벗겨내었다. 그녀의 보지는 이미 흥분으로 많은 애액이 넘쳐 활짝 핀 꽃이
꿀벌의 침입을 기다리듯 레그나의 굵고 딱딱한 자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넣는다."
"아하앙.. 빨리. 빨리.. 넣어주세요.."
에리나는 쇼파에 누워 자신의 애액으로 빛나는 꽃잎을 손가락으로 벌렸고 레그나는 별
말없이 보지 안으로 자지를 집어넣으며 자신의 체중을 싫었다.
"아하우웃!"
"웃. 쿠우.."
에리나의 보지는 먹이를 문 조개처럼 레그나의 자지를 꼬옥 깨물었고 온천수처럼 뜨거
운 애액이 둘 사이의 틈으로 흘러 나왔다. 뜨겁고 옴죽거리는 온천이었다. 레그나는
그곳에 자신을 담근 채로 그 느낌을 즐겼다. 엄마의 젖을 빠는 아기의 입처럼 수축하
는 에리나의 보지에 레그나는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아후웃.. 저.. 레그나님.. 뭐.. 하시는 거....하앙... 빨리....... 움직여.........
주세요."
"음.. 아아."
레그나는 보지 깊숙히 들어가 있는 자지를 꺼냈다가 다시 푸욱 찌르는 것으로 움직임
을 시작했고 에리나도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질척한 애액의 소리가 둘의 움직임에
맞추어 방안에 울렸다. 에리나는 레그나가 움직일 때마다 커다란 신음소리를 냈다.
"후아앙. 으읏.... 하아! 아앙 좋아요. 레그나님... 하앙.."
"후훗. 뭐가 그렇게 좋지?"
"아앙. 으으응 기분이..좋아요. 말로는... 아항.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그건.. 레그나님이.. 제 안에서 움직여 주시니까.. 하응"
"하앙 더 움직여 주세요. 후응 제발.. 더.. 저는 레그나님의. 하아앙. 것이니까.. 기
분이.. 좋으실 때까지..."
레그나의 허리가 상하로 들썩일 때마다 에리나의 쾌락은 더욱 커졌다. 그녀는 레그나
의 등에 손톱을 박으려는 것처럼 세게 부둥켜안았다.
"우웃."
레그나는 자지에서 느껴지는 분출감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 안돼요. 머.. 멈추면.. 안돼.."
에리나는 혼자서라도 허리를 움직이려 애쓰며 레그나에게 사정했다.
"안돼요.. 레그나님.. 제 안에 싸실 때까지 멈추시면 안돼요..
"..........."
에리는 계속해서 레그나의 움직임을 재촉했고 레그나는 그녀의 요구에 따라 천천히 움
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보지는 질척한 소리와 함께 레그나의 자지와의 틈으로 대량
의 애액을 쏟아냈다.
"아아앙.. 하아... 좋아......우웅. 하아앗!"
에리나는 보지를 조이며 레그나의 정액을 재촉했다.
"으윽. 에리나....."
서로의 육체가 부딪히는 소리가 묘한 상승음을 일으켜 방안을 가득 채웠다.
"아앗... 핫...아앙 느껴요...... 저.. 저는 이제.. 한계가... 아앙 와요... 하아앗!"
"윽"
에리나의 보지가 급격히 수축하며 레그나의 자지를 사정없이 조였고 레그나도 절정에
도달했다.
"쿠욱."
"아... 하아앗. 레그나님? 아하앙. 나왔어요. 안에 아앙 닿았어.. 하아앙..."
에리나는 레그나의 자지에서 분출한 정액이 자신의 질벽을 여러 번 때리는 것을 느끼
며 다시 한번 절정에 도달해 버렸고 정액을 내뱉은 자지도 천천히 힘을 잃어가며 에리
나의 보지 안에서 그 말랑말랑한 본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앙.. 나왔어요.. 레그나님이.. 여기에......."
에리나는 음란한 만족감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
"인간에게는 일곱 가지 미덕이 있어. 그중 첫째는 분노, 그 감정이야말로 모든 감정
중에서도 가장 인간을 행동적으로 만드는 원동력이며 끊임없이 세상을 보다 좋은 방향
으로 변혁시키는… 것. 그중 둘째는 질투, 유능한 인물일수록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질
시를 받게 되지. 바꿔 말하면 그 인물의 우수함을 나타내는 가장 알기 쉬운 계측기.
또한 남녀 사이에서도 자신의 자손을 후세에 올바르게 전하기 위한 견제. 그중 셋째는
게으름, 자신의 몸을 쉬게 하려는 욕구는 동물이 자신의 컨디션을 최고 상태로 유지
하려는 위험신호 같은 것… 쉬고 싶을 때에는 죽을 때까지 쉬어. 이것이야말로 자연계
의 건강관리 대원칙. 그중 넷째는 폭식, 인간이 언제 자신의 직업을 잃고 기아 상태에
될 것인가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므로 먹고 싶을 때에는 먹을 수 있을만큼 먹어야
해. 그중 다섯째는 강한 욕구, 식욕, 성욕, 수면욕 같은 욕구는 전부 본래 동물이 자
연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 불가결한 감정이며 이런 욕구를 추구한다는 것은 동물로
서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지 강한 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 이런
것들을 얻길 포기한 동물은 단지 도태될 뿐.. 그중 여섯째는 교만, 강자가 자신이 강
하다는 것을 주위에 대해 알리려는 것은 강자로서의 당연한 의무이며 이를 게을리하면
자신의 위치를 노리는 새로운 도전자와 계속 싸워야만 하는 귀찮은 일이 생기지. 말
하자면 자신보다 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에 대한 최저한의 매너.. 그중 일곱째는 욕정,
모든 동물에게 있어서 자신의 종족을 보다 많이 번영시키려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하나.. 누군가에게 욕정을 느껴 아이 만들기를 노력하고 자신의 친족을 증식
시켜 가는 것이야말로 7개의 미덕 중에서도 가장 존중받아야 할 감정"
"대체 왜 그런 이상한 노래를 흥얼거리는 거면서 거실에 낙서를 하는 거야!"
술집을 갔다 온 다음 날. 레그나는 아침부터 송진가루를 아니샤에게 구해오라고 시켰
다. 그리고는 아침을 먹은 후 지금 거실에 카페트를 들어내고 송진 가루를 뿌려 이상
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실은 레그나가 무슨 짓을 벌이려는 지 불안해서 옆을 떠나지
않은 채 방해를 했다.
"네가 옆에서 쫑알대는 소리가 들려서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노래를 부
른 거야."
"뭐라고!"
"어차피 칼리엘만 없었으면 미쳐버렸을 계집애 따위가 시끄럽게 굴지 말고 방에 가서
칼리엘 시중이나 들고 있으란 말야."
"뭐가 어째!"
실은 화르륵 분노에 불타올랐다. 그때 조용한 목소리가 둘 사이를 끼어 들었다. 그 목
소리의 주인공은 레이나인이었다.
"이건 마법진인가요? 레그나님."
"뭐 비슷해. 하지만 인간들의 마법진과는 좀 다르고 생명나무를 기반으로 한 변형된
팬타그램이라고 할 수 있지?"
"팬타그램? 그게 뭐죠?"
"알 것 없어."
"귀찮으니까 실이나 데리고 사라져. 그리고 이 근처에 아무도 오게 하지마."
"네 레그나님."
저런 퉁명스러운 대꾸라면 당연히 화를 내야 될 법하건만 레이나인은 순순히 레그나의
말에 복종했다.
"실 아가씨.. 칼리엘님 곁에 계실래요? 어차피 보고 계셔봤자 소용없잖아요. 칼리엘님
이 깨어나시면 같이 산책이라도 나갔다 오시면 마음이 풀리실 거예요."
"알았어요."
레그나가 나타난 지 몇 주일 실의 마음은 더 없이 황폐해져 있었다. 견딜 수 없을 정
도로 외로웠다.
"모두 싫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실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칼리엘이 누워 있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고귀한 권천사 프린시펄리티즈중의 한명인 칼리엘은 지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천
사로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데에 힘을 쓴 것의 부작용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작용하는 것. 도움이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직접적으로 인간의 심성에
개입하는 것은 천사들이 절대 깨서는 안될 금기. 그러나 칼리엘은 실의 파괴되었던 정
신을 천사의 힘을 이용해 회복시켰기 때문에 그녀는 능력의 상당부분을 잃어버렸고 깨
어 있는 시간조차 얼마 되지를 않는다. 실은 방에 들어오자 마자 의자를 가져와 칼리
엘 옆에 앉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옅게 남색 빛을 띠는 칼리엘의 머리카락은 해뜨기 직전의 새벽하늘과도 같은 색이었고
, 긴 속눈썹이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애처롭게 작은 떨림을 반복했다.
"칼리엘......"
실은 가만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천사.. 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칼리엘의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그 시간 레그나는 팬타그램이라고 하는 그림을 거의 완성해 가고 있었다. 커다란 원을
먼저 그리고 그 안에 사각형을 그리고 또 그 안에 삼각형을 기본으로 그려 넣은 후
세세한 선과 여러 언어로 쓰여진 주문들을 그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튼을 쳐서 어
둡게 만든후 팬타그램 주위에 열세개의 촛불을 켰다.
레그나는 그 옆에 서서 조용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By my sacred name, through the Presence of my Oversoul and the Eternal Earth De
ities, I invoke the Earth Night Power into this container of salt and now place
the salt upon the earth to mark the boundary of my sacred circle. May the Presen
ce of my Oversoul and the Eternal Water Deities fill this water and container an
d endow it with the Water Night Power."
주문이 이어지면서 팬타그램이 옅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Let this oil be made sacred and filled with the Power of the Night. Let the Pre
sence of the Oversoul and Night Spirit touch it with their might, courage, solit
ude, and darkness. For the oil is now sacred and made for anointing the summon o
f a Night Magician."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팬타그램을 감쌌다. 그러나 그 빛이 감싼 가운데에는
모든 걸 삼켜버릴 듯한 어둠이 차츰차츰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주문은 완성되었고 레
그나는 그가 바라는 것을 말했다.
"나 여덟 개의 날개를 가진 타천사 레그나 루시페르가 하나로부터 시작되어 셋으로 나
누어 졌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계약을 이행하나니, 열려라. 문이여. 오너라 기다리는
자여. 나로부터 이름을 지음 받은 자. 너희의 이름은 앰네시아일 것이다."
빛에 둘러 싸여 갇혀 있는 것 같던 어둠이 그 빛의 장벽을 뚫었다. 세찬 바람이 주위
를 둘러 싼 촛불을 꺼버리고 그 암흑이 모든 것을 덮어버릴 듯 퍼져 버렸다. 모든 소
리를 흡수해버린 듯한 고요함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그리고 암흑은 천천히 흐려져 빛
이 그 실체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뭐야.. 실패한 건가? 그럴 리가..."
레그나의 허탈한 목소리와 한숨이 그 짙은 정적을 헤쳤다. 그 순간 옅어져 가는 암흑
사이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뭐지?"
"저어..?"
레그나의 목소리만이 있어야 할 공간에 조금은 허스키한 여자목소리가 났다. 레그나는
놀랐다.
"뭐야 성공한 거였나? 안테로?"
"설마.... 레그나님?"
아직 시야는 어두웠지만 인간이 아닌 레그나에게는 팬타그램 가운데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두개의 인영이 아주 느리게 인식되었다.
"뭐냐. 소환되자 마자 인사를 해야 될 거 아냐. 안 그래도 모자란 마력으로 무리를 해
서 불러왔는데 설마가 뭐야 설마가."
"레그나님 살아 계셨군요.. 크윽!"
감격에 찬 목소리였다. 그러나 몸을 일으키려던 그 그림자는 일어서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안테로 다친거냐?"
"살아 계셔서 정말 다행.. 저보다는 리트로가.. 더.."
"대체 뭐야! 라이트(Light)"
레그나는 빛을 불렀다. 그는 악마이기 때문에 어둠 따위 때문에 주위를 보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지만 마계의 문을 열기 위해 생성한 혼돈에 가까운 암흑상태에서는
주위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주문에 따라 거실 중앙에 작은 빛의 구가 생겨 주
위를 밝혔다.
빛에 구로 인해서 팬타그램 안의 그림자는 사람의 형체를 확실하게 띄었고 그들을 확
인한 레그나는 낮은 신음성을 흘렸다. 몸 곳곳의 상처에서 난 피로 범벅이 되어 검은
색의 오라를 조금씩 흘려보내고 있는 매혹적인 검은머리 소녀의 품에는 하얀 종이보다
도 창백한 얼굴의 청순한 아름다움을 가진 소녀가 정신을 잃고 안겨 있었다. 레그나는
재빨리 그녀들에게 다가가 부축하고는 물었다.
"뭐냐.. 안테로 왜 너의 아스트랄이이 찢어져 오러가 새어나올 정도의 상처를 입은 거
지? 그리고 리트로는 왜? 마력을...."
"페르제바브........."
레그나가 안테로라고 부른 소녀는 힘겹게 하나의 이름을 내뱉었다. 그 이름을 들은 레
그나의 미간이 분노로 떨렸다.
"그 파리새끼가 감히.. 너희를 이렇게 다치게 한건가?"
"레그나님이 천사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희는 믿지 않았
지만... 그리고 그 직후에 판도에모니움에는 많은 일이 있었어요.. 가드리엘님이 유폐
당하셨고 사탄께서도 힘을 잃으셨어요. 벨제뷔트님이 모든 정권을 장악하셨고 페르제
바브님.. 아니.. 그 더러운 파리새끼는 저희를......."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좋아.. 나머지는 나중에 듣겠다. 너는 이제 쉬어라.. 리트로
는 내가 치료하마."
레그나는 그녀의 눈물이 맺힌 눈썹에 살짝 키스하며 말했고 그녀는 가볍게 몸을 떨었
다.
"정말 감사... 그리고 살아 계셔서 정말 다행...."
그녀는 레그나의 어깨에 기대어 안심한 듯 눈을 감았다.
=========================
"뭐지 이 느낌은?"
칼리엘 옆을 지키고 앉아 있던 실은 등줄기를 스치는 오한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그
리고 곧바로 칼리엘이 게슴츠레한 눈동자를 비비며 깨어났다.
"칼리엘 일어났어?"
"그런데 이건 무슨 일이죠? 마치 마계에 있는 것 같은 이 음울한 끈적거림은?"
칼리엘은 일어나자 바로 집안에 가득한 이상한 기운에 대해 물었다.
"나도 몰라... 레그나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모양이지.."
실은 상관없다는 듯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칼리엘은 전혀 상관없지가 않은 듯 자리
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당장 그에게 물어봐야 겠어요."
칼리엘은 이불을 옆으로 내치고는 완전히 일어났다. 손을 옆으로 가볍게 흔들자 그녀
의 옷과 대기가 섞이는 듯 하더니 어느새 평상복을 만들어내었다. 칼리엘은 그대로 문
을 열고 나갔다.
"천사는 참 편하구나......"
실은 처연한 아쉬움과 소외감을 담아 그렇게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죠?"
칼리엘은 나는 듯이 뛰어 레그나가 자신의 방으로 쓰고 있는 손님방문을 열고 급하게
그를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레그나가 어울리지 않게 검지손가락을 입가에 대는 조용
함을 바라는 무언의 요구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조용하게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마계의 느낌이.. 어! 그녀들은?"
칼리엘은 침대에 나란히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서로 이질적이지만 닮은 미모의 두 여
성을 발견하고 의문을 표시했다.
"내 부하들...."
레그나의 목소리는 의외로 착 가라앉아 슬픈 기운을 띠고 있다.
"당신... 그들을 부르기 위해 마계의 문을 열었던 건가요?"
"그래."
칼리엘은 흥분을 식히지 못하고 무의식중에 언성을 높였다.
"그런 식으로 인간계의 개입을 더 늘리려고 하다니!"
"그런 게 아냐. 아무 뜻 없이 불렀을 뿐.. 그런데.."
"그러고 보니 다친 건가요?"
그제야 칼리엘은 그녀들의 상태를 눈치챘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도 조금은 부드러워
졌다.
"그래....."
"마계에 무슨 일이라도?"
"지금은 시끄러우니까 나가. 필요하다면 나중에 설명해주지."
웬일로 고분고분히 대답을 해주던 레그나였지만 역시 레그나는 레그나였다.
"..............."
칼리엘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앰네시아들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방문을 닫고 나갔다.
"칼리엘....."
어느새 곁에 다가온 실이 가만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칼리엘은 실을 돌아다보았다.
실은 눈가에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칼리엘.........."
"왜 그러죠?"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색한 공기가 둘 사이를 떠돌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그렇게 지났
을까 실이 갑자기 생각난 듯 말을 걸었다.
"칼리엘 심심하지 않아?"
"네?"
"어제 만난 라인 트레이서라는 사람 기억하지."
"네."
"거기 놀러가 볼까? 그 사람 수도 학술원에 있었다니까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알 꺼
야."
"그 그런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괜찮아.. 그 사람이 찾던 포보스씨네 나도 자주 놀러갔었어. 그러니 괜찮을 꺼야..
칼리엘 가보자.."
"전 별로......."
칼리엘이 거절의 의사를 표시하자 억지로 지었던 듯한 실의 밝은 표정은 침울해졌다.
"난 맘에 안 들어... 이런 거."
"네?"
"이렇게 아무 이유도 없이 어색한 거 말야.. 그러니까..... 가보자."
실은 칼리엘의 손목을 잡고 끌어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