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의 눈물 7
피노키오의 눈물 7
차가운 물로 몸을 식힌다.
간지러웠던 그 감각은 조금씩 사그라든다.
동시에 이성이란 것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민다.
“내...내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찬물을 뒤집어쓰자 비이상적인 자신의 행태를 기억하고만다.
“대...대체 왜...”
자신의 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헤프고 음란한 여자였던가?
남자라곤 단영의 인생에서 두 손가락을 넘지 않았다.
깊은 관계로 발전한 것도 지금의 남편 기적과 전남편 대한 뿐이다.
그런데 둘을 생각하자마자 다시 한번 몸은 간지럽고 뜨거워진다.
“이대론... 안 돼...”
또 다시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미친짓을 할까 두렵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이 정염을 잡을 수 있을까?
단영은 궁리하고 궁구한다.
“아읏...”
집에 기적이라도 있다면... 당장 달려들어 그의 물건을 게걸스럽게 탐했을텐데...
하지만 그의 남편은 없다.
그렇다고 밖으로 튀어나가 외간 남자를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다.
그랬다간 정말 대한의 매도를 인정하는 것 같아서... 진짜 음탕하고 음란한... 여자가 아닌 암컷으로 전락해버릴 것 같아서 말이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하앗 아으...”
거칠게 자신의 손으로 음부를 매만진다.
처음하는 자위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는 만족할 수 없었다.
부드럽게 클리토리스와 음순을 쓰다듬어도 오히려 정욕이 더 커져나갈뿐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와락
계속 음부를 매만지면서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가 이루어지기 전.
기적과의 관계를 떠올린다.
그와의 섹스.
뜨거웠던 열락과 손길.
그것을 기억하며 자신의 몸을 어루만진다.
“안 돼... 부족해...”
하지만 갈증은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단영의 머리는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솔루션을 찾는다.
“대...한...”
기적은 아니었다.
기적보다 대한을 떠올릴 때 더욱 불길은 거세어졌다.
이젠 찬물로도 그 불길을 잡을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이상하게도... 대한을 떠올리자 단영의 손길이 더욱 거칠어져 갔다.
“아흑! 아앗!!”
부드럽게 가슴을 매만지는 것이 아닌... 대한이 그러했던 것처럼 힘주어 가슴을 잡았다.
유두를 비비고 꼬집는다.
평소라면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겠지만... 오히려 그 첨단 끝에서 피어나는 기묘한 감각에 신음성을 터트리고 만다.
찰팍찰팍
샤워기의 물소리가 아닌... 끈적끈적하고 음란한 물소리 역시 화장실을 가득 매운다.
음부를 매만지는 것이 아닌... 손가락을 세워 거칠게 내부를 헤집었다.
대한의 거친 움직임을 상기하며 그의 물건이 찔렀던 부분을 집요하게 문질렀다.
“아앗!!!”
그리고 이내 화려한 폭발.
잔뜩 민감해진 몸은 더 버티지 못하고 가늘게 떨려온다.
그와 동시에 그토록 그녀를 괴롭혔던 불길은 사그라든다.
“하아...하아...”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축 늘어져 찬물을 맞는다.
지금까지 찬물 샤워를 했지만... 차가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몸이 뜨거웠기 때문.
하지만 그 불길이 가시자 차가움이 느껴진다.
팽팽했던 긴장감이 해소되고 축 늘어졌던 몸은 차가움으로 인해 다시 조여진다.
“흐윽...”
대체 왜 이런꼴이 되어야 하는지... 기적과의 관계에서도 만족감을 느꼈는데... 이제는 더 그러지 못할 것 같은 예감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정욕의 흔적을 지운다.
유난히 오늘은 바디를 더 많이 짜냈다.
그리고 꼼꼼히 문지르고 또 문지른다.
특히 오늘 남편 기적이 아닌 다른 남자를 받은 질 내부를 이제는 아플 정도로 쑤시고 또 쑤셨다.
쾌락이 가시고 고통이 찾아왔지만... 그것이 정화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집요하게 씻어내었다.
대한의 흔적을 단 한톨도 남기지 않으려고 말이다.
“하아...”
다 씻고 나서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천천히 나와 화장대 앞에 앉았다.
헤어 드라이를 켜 머리를 말리는 순간.
부르르르르
옆에 놓아둔 핸드폰이 진동과 함께 울리기 시작된다.
단영은 그 핸드폰을 보았다.
흠칫.
그곳엔 한번도 이 시간에 전화온 적 없는 번호가 찍혀있었다.
대한. 그의 번호가 말이다.
꾸욱.
자연스럽게 단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걸 받아야 할까? 아니면 말아야 할까?
지금 이시간에 왜 대체 전화를 했지?
전에 그와 했던 계약대로 지금 자신을 부르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지금 문 밖에 있으니 문열라고 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단영에게 반가운 것은 없다.
지금은 낮의 일로 그리고 방금 전의 일로 심신이 지친 상황.
쉬고 싶었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죽은 듯이 자고 싶었다.
그래야 내일도 버틸 수 있을테니까.
피붙이의 죽음을 앞에 두고 늘 긴장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피로감을 누적시킨다.
하물며 느닺없이 찾아오는 불청객까지 있다면 더더욱!
집으로 찾아오는 것도 문제다.
지금 이곳은 기적과 단영 그리고 수란의 보금자리.
그 단란하고 안온한 단영의 마지막 커트라인.
그 안으로 대한을 들여 보낸다면... 정말 기적의 얼굴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여... 여보세요...”
하지만 결국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 그가 어떻게 나올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늘보다 더 강하고 곤란한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아니면 기적에게 전부 알린다고 협박할 수도 있겠지.
가장 심한 것은... 계약의 철회.
대한과 맺었던 1년간의 절대복종.
이것을 불이행했다는 이유로 파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수란은... 끝장이다.
-전화를 받는 것이 늦군.
바로 대한은 단영이 어물쩍거린 것을 탓한다.
“샤..샤워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말 끝이 떨린다.
약간의 진실과 거짓을 섞는다.
눈앞에 대한이 없음에도... 그의 음성만이 이 조잡한 기계를 통해 전해짐에도... 단영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떨려왔다.
-...
“정..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대한이 말을 하지 않자 오히려 더욱 애가 타는 쪽은 단영이다.
침묵은 그 어떤 시그널도 보내지 않았지만 불안한 상상은 수십 배로 증폭된다.
그것은 단영이 철저하게 을의 입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뭐... 상관없지. 앞으로는 째깍째깍 받도록. 네 딸의 안전을 생각하면 뭐가 우선시 되야 할지는... 너도 잘 알겠지?
“아...알았어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꿀꺽...
단영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그가 어떤 요구를 할지 두려웠다.
-내일 아침 일찍 내 집으로 와.
지금 당장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거부감 있는 요구는 마찬가지다.
대체 왜 그의 집으로 부른 것일까?
저번처럼... 자신을 끝도 없이 탐하려고?
그렇게 된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통째로 날아가는 셈이다.
또 다시 수란과 기적에게 뭐라고 변명하지?
전에는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이번에도 그런다면... 기적은 분명히 의심을 할 것이다.
-대답이 없군?
“...몇시까지...”
-어디보자...
대한이 하는 행동이 그려진다.
서재에서 전화를 하는 그. 푹신한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채 뒤돌아 시계를 살핀다.
그리고 이내...
-9시.
너무 이르다.
9시라니... 단영의 일상이 어그러지는 것이 보인다.
단영이 일어나는 시간 6시.
기적의 출근준비와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 7시.
외출 준비를 마치고 병원에 도착하는 시간 8시.
기적과 교대를 하고 수란의 뒷바라지를 하는 시간 9시.
딱딱 정해진 일상이 파괴된다.
9시까지 오라고?
그 먼곳을?
그렇다면 이곳에서 적어도 8시엔 출발해야 한다.
아니 어쩌면 더 빨리 출발해야한다.
아침 시각 러시아워에 휘말린다면 가족의 곁을 지키지도 못하고 대한의 명령을 지키지도 못한채 하릴없이 도로위에 무의미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너무 빨라요! 아침엔 남편과 교대도 해줘야 하고... 수란이도 밥 먹이고 의사 선생님 진료...“
-그래서?
자신의 사정을 항변해보지만 대한의 말에 가로막힌다.
-그거야 네 사정이고. 내가 봐줄 이유라도 있나?
“당신...”
부들부들
절망감과 무력함이 채웠던 자리를 이제는 분노가 대신한다.
단 하나도 봐주지 않고 몰아치는 행태에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던 것들이 전부 사라진다.
배려? 이타심?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잠시나마 단영이 착각한 것이다.
-잘 생각해. 네 딸을 살리기 위해 뭐든지 다 한다고 했잖나? 그 각오과 결심은 어디갔지?아... 지금의 네 딸도... 하루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나?
“아냐!”
단영은 발작적으로 외쳤다.
계속해서 과거를 끄집어내는 대한의 말은 그녀에게 남겨진 상처를 벌린다.
물론 그 상처를 헤집는다고 하더라도... 대한에게 남겨진 상처가 더 크지만 말이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넌 내가 명령한대로 따르면 돼.
그래... 그는 그런 남자였어...
내가 대체 뭘 기대한거지...
하루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단영.
바로 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물을 참는다.
더럽고 서럽다.
자신을 위로해줄 사람은 없다.
오롯이 홀로 버텨야 한다.
-대답.
그렇게 감정을 추스를 시간도 주지 않았다.
“알았...어요.”
단영은 힘겹게 한자 한자 내뱉었다.
약간은 이가는 소리가 섞인 음성.
대한이 모를 리가 없다.
핸드폰 너머 그의 조소가 살짝 들렸다.
그럼에도 단영은 비웃냐고 뭐라고 욕할 수 없었다.
-내일 아침에 보지. 아... 난 시간 약속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사람이라서... 약속을 어기면 많이 실망할거야.
“....”
누구는?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인가?
단영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그와 말싸움을 하면 결국 지는 것은 자신이다.
의미없는 심력낭비를 하기 싫었다.
이젠 내일 아침에 그의 집으로 가야 한다.
그렇다면 기적과 수란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 어떤 변명을 해야 아무일 없이 넘어갈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해 내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럼.
뚝
그리고 대한과의 통화가 끝났다.
“흐윽...”
동시에 터져나오는 눈물.
침대로 쓰러져 베게에 얼굴을 묻는다.
33
“후우...”
단영은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대한의 집 바로 앞.
그의 명령대로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
꾸욱
초인종을 눌렀다.
저택 전체로 퍼져나가는 맑은 종소리.
하지만 반대로 단영의 머리는 복잡하기만 했다.
안에선 반응이 없었다.
단영은 또 눌러보았다.
대한이 자리를 비운 걸까?
오라고 말해놓고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러면 자신은?
그가 올대까지 여기서 대기해야 하나?
제 어미를 찾는 수란을 병원에 내버려 두고?
끼이익
문은 잠기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그가 있을 곳을 찾아본다.
1층은 응접실에 가까운 곳이라 대한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있다면 2층. 침실 아니면 서재일 것이다.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커튼이 쳐져 있지 않았다.
햇살이 안으로 들어와 푸근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 침대 위엔 대한은 없었다.
그렇다면 서재?
조용히 서재로 향한다.
“아...”
있다.
대한이 있었다.
그는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노트북은 켜져 있었으며 그곳에서 뭔가 계속해서 소리가 나왔다.
책상엔 알 수 없는 책들과 문서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손님이 왔군.”
대한이 일하는 모습을 잠시 살펴보다가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수형군. 손님이 왔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네 교수님.
영상채팅이라도 하고 있었나?
그것보다 교수?
“당신... 원하는 걸 얻었네요...”
대한의 꿈.
그것은 대학 교수.
누구를 짓밟고 올라서거나 경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대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사색하는 즐겼던 대한.
그런 그에게 천직이나 마찬가지였던 꿈의 직장.
그가 많은 부를 이룩한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교수가 되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대한의 막대한 재력을 보고 그것이 교수로는 이룰 수 없는 거대한 것이기에 지례짐작해버린 것이 정확할 것이다.
“교수... 교수라...”
대한도 사색에 잠겼다.
한때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사회에서 성공한 대학 교수.
그리고 그에 곁에는... 단영과 하루가 있었다.
그 어느 가정보다 단란해 보이며 행복해 보이는 모습.
하지만 그 꿈은 이미 산산조각 나버렸다.
“뭐 그것도 이제 끝이지만... 마음대로 생각해.”
대한은 회장과의 계약을 떠올렸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을.. 그 세상 진리를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8년 전.
그는 그 어떤 것보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그 진리를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가족이라는 대가를 바치고서 말이다.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얻은 꿈이지만 공허하다.
그렇기에 그 공허함을 잊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찾는다.
회장과의 계약은 그것의 시작일 뿐이다.
“그래 시작일 뿐이야.”
모든 정리가 끝났다.
어지럽던 책상도 얼추 정리정돈이 되었다.
“그것보다... 늦었군.”
흠칫.
단영은 대한의 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 시간이 몇시지?”
“....”
단영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에 말대로 그가 정한 타임 리미트를 훌쩍 넘겼다.
데구르르 구르는 단영의 동공은 자연스럽게 시게를 쫓는다.
11:20
그가 정한 9시 보다 2시간 이상 초과된 상황.
하지만 단영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대한의 명령을 따르는 것도... 전부 가족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선택.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해치면서 까지 명령을 들을 수 없었다.
오늘 아침 일찍 단영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기적의 출근 준비를 마치고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수란의 병수발을 해줌과 동시에
의사와 진료를 마쳤다.
일과와도 같은 일정이 끝나자 바로 시간을 알아본다.
9 : 17분.
이미 그가 정한 시간은 넘어버렸다.
계속 초조해하며 가슴 졸였다.
그래도 마음속 한구석에서 위안을 찾은 것은 대한이 바로 9시가 넘어서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
그도 9시 까지 오라는 것이 무리한 명령임을 알고 있진 않을까?
전에 병원에 왔었으니... 자신의 생활상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젯밤 그렇게 처절하게 유린 당해놓고서도 잠깐 따뜻하게 대해준 대한의 온기를 기억하며 배려를 갈구한다.
진짜 대한의 이해가 아니면... 오늘도 무사히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단영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그래. 변명이라도 한번 해봐.”
대한은 더욱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채 단영을 바라보았다.
서늘한 대한의 시선 때문에 더욱 몸이 저려온다.
먹잇감을 앞둔 뱀처럼 대한도 이번 기회를 순순히 넘길 리가 없었다.
“흐음... 말도 하기 싫다는 건가?”
계속 추궁하는 대한.
“아니면... 우리의 계약이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해도 되나?”
번뜩
“아니! 아니에요!”
아찔했다.
계약의 종료.
그것은 수란의 죽음을 확정하는 사신의 선고.
제 피붙이가 죽는다는 생각에... 단영은 침묵을 깨야했다.
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그의 페이스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전부 허사로 돌아가고 만다.
“그래? 그럼 이유라도 들어보지. 타당하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
“어쩔 수 없었어요... 난...“
단영은 자신의 사정을 말했다.
새벽녘부터 이어진 자신의 일과를 말이다.
그것은 수란이 아프고 나서도 변하지 않은 진리와도 같았다.
“애초에 시간이 촉박했다구요. 지금도 최대한 빨리 온거에요.“
원래 대한이 명령했던 것이 불가능한 것이며 단영 스스로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 그랬군.”
다행히 대한도 그런 단영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일까?
그 모습을 보던 단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그래서 뭐?”
“...”
다시 치고 들어오는 대한.
“난 교통사고라도 났는줄 알았지. 아니면 천재지변이 발생해서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는 줄 알았어.“
유난히 교통사고와 천재지변을 강조하는 대한.
그것은 인재와 천재가 아닌 이상 그녀의 변명은 전부 그녀의 사정일 뿐이라고 못 박는 것과 다름 없었다.
“킥... 그리고... 그렇게 애가 중요하면... 내 말을 들었어야지?“
단영은 뭔가 착각하고 있었다.
수란의 생명줄은 오로지 대한의 손에 들려 있는 상황.
골수이식을 대가로 그에게 계약하지 않았던가?
안온한 가족의 일상 보다는 제 딸의 생명을 우선시 했던 단영.
벌서부터 각오가 녹아버린 걸까?
대한은 그것을 꾸짖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 피붙이가 소중하다고 그러나?”
다시 한번 약점을 찔러온다.
대한의 비웃음은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하루에게는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단영.
그 모습을 기억하는 대한에게 지금 단영의 모습은 모성애를 연기하는 것.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아니야! 난... 수란이도... 하루도...”
“그렇게 소중하면!!!”
대한이 박차고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거대한 분노가 덩달아 오른다.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단영을 제압했다.
터억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단영은 압도적인 대한의 모습에 도망치려고 했으나 사방이 책장으로 가득 메워진 상태.
결국 뒤로 거칠게 내몰린채로 거친 짐승의 체취를 흠뻑 들이 마쉰다.
“내 말을 들었어야지.”
“하윽...”
그리곤 천천히 단영에 귓가에 숨을 불어넣으며 속삭였다.
긴장과 불안 그리고 대한의 박력에 몰려 단영은 다시 몸이 뜨거워지고 있으믈 느낀다.
더불어 더할 나위 없이 축축해 지고 있는 것도 역시.
“흐윽.”
새빨개진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대한은 단단한 두 팔로 탈출로를 봉쇄했으며 허벅지로 단영의 사타구니를 파고들었다.
완전히 결박된 상태.
대한의 허벅지가 그녀의 음부를 턱턱 쳐올리고 있음에도 그녀는 치맛자락을 쥔 채로 거부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대한의 폭력적인 성향에 더욱 전율할 뿐이다.
스윽
그리고 시선마저도 고정시켜버렸다.
턱을 붙잡아 눈을 마주한다.
“눈 떠.”
파르르... 눈썹이 가늘게 떨리며 천천히 떠진다.
이글거리는 대한의 눈동자가 앞에 있다.
이지적인 그의 겉모습과 달리 그의 안에는 짐승이 살고 있다.
그 짐승은... 단영이 일깨운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내가 명령한 9시 까지 오는 것이... 그렇게 부당했나? 그렇게 불가능한 일인가?“
“....”
단영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의 사정을 제외하고 나면 그렇게 무리한 명령도 아니었다.
“대답.”
“아니...에요.”
대한의 말을 인정하는 순간 눈물이 주룩 흘렀다.
인정하기 싫었다.
그의 페이스대로 이끌려가기 싫었다.
이미 버린 몸이지만... 자존심이라도 세우고 싶었다.
자신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대한에게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반항 아닌 반항은 탄압된다.
“인정하니 다행이군. 그럼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겠지?“
흠칫.
그 말은 지금 이 상황이 벌이 아니고 뭐란 말인지 단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아아... 제발...”
그리고는 깨닫는다.
지금의 이 상황은 정말 그와의 관계에서 일상적인 것임을.
며칠간의 일은 정말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심한 것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헀다.
“내일부터 아침 9시까지 이곳에 오도록. 그리고 집에 가는 시간은... 밤 11시.“
“말도 안돼요!”
단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