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국에서 - 단편상
중국의 항저우는 무척이나 습했다. 바다인지 연못인지 모를 거대한 소주의 영향으로 아침엔 늘 안개로 희뿌연 세상을 짜내고 있었다. 항저우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장가계공항에서 내렸다. 장가계공항의 느낌은 솔직히 고속버스 터미널 같았다. 바글바글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어지럽게 짐을 찾는 여행객의 모습이 절대 상해의 푸동공항이나 북경 공항과는 비교조차 할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출입구를 나서며 마중나와있는 가이드를 찾았다. 고객들의 짐을 다 찾아 주고 난 후라 약간 시간이 지체되었다. 다행히 짐을 찾는 장소와 가이드가 마중나와 대기하는 장소의 거리가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운지라 내 짐을 미리 찾아둔 나는 얼른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쉽사리 우리 가이드를 찾은 나는 내가 당신의 여행객을 인솔한 인솔자라는 듯 손짓을 했다. 순간 그의 눈빛이 찌뿌려 지는 것을 느꼈지만 인솔자로 이제 겨우 두번째 오른 여행에서 그런 그의 눈빛을 이해하기에 퍽없이 없는 내공이었다. 손님들의 짐을 다 찾은 후 비자 체크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약간 마른 몸매에 어깨까지 기른 머리를 흩날리며 가이드가 우리 앞에 섰다. 역시나 길림성 연변 말투로 안내하는 그를 따라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이드의 뒤를 조그마한 소녀하나까 따르고 있었다. 예쁘고 귀여운 용모의 그 소녀는 어깨에 제 몸집만한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니고 있었다. 작은 키가 인상적이었다. 어느새 시각은 8시. 공사중이라 여기저기 패여있는 웅덩이를 지나며 차가 움직였고 그때마다 덜컹거리는 버스의 움직임을 느끼며 10분 거리의 호텔을 거의 30여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각자의 방으로 몸을 옮겼고 나역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배정받은 호텔방으로 들어섰다. 짐을 가볍게 풀고 일단 배정받은 방들을 돌아보았다. 혹시 부족한 것은 없는지 필요한 것을 체크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거대한 소주를 돌아보고 나서인지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몸을 씻고 자리에 누으려니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오히려 잠이 오질 않았다.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대충 옷을 꿰어 입고는 밖으로 나섰다. 위도상 아열대성의 기후였지만 그래도 아직 4월이라 그런지 습기차면서도 약간 차가운 바람이 느껴졌다. 더더군다나 오전에 비가 왔었다고 하니 더욱 그런듯 했다. 호텔 맞은 편에 줄지어 있는 가게 중 한곳에 들어가 맥주 3캔을 샀다. 막상 술을 사고 돈을 지불하려하는데 가이드가 옆에 나타났다. "술사시려구요?" "네, 맥주나 한잔하고 자려구요." "잠깐만요."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로 가게 주인과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45원이라고 하네요." 우리나라돈으로 4000원 정도 하는 가격이었다. 따져보면 그것보다는 싸겠지만…. 가격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가이드가 다시 내게 말을 붙였다. "인솔자님, 혼자 술 드시게요?" 약간 어눌한 말투의 연변말과 섞인 표준어였다. "그럴려구요. 혼자 술마시는 것두 좋잖아요." 그는 약간 굳은 표정을 풀며 말했다. 왠지 나와 친해지고 싶다는 포스를 가득 풍기고 있었다. "저기 저랑 술한잔 하실래요?" 혼자 술마시는 것보다는 났다고 생각했다. "그러죠뭐." "그럼 올라가셔서 조금만 쉬고 계세요. 조금 있다가 방으로 전화할께요." 그의 말을 뒤로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방으로 들어와 TV를 키니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이런 저런 방송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적막한 방보다는 났다는 생각에 그냥 켜두었다. 가져온 물을 꺼내어 한모금 마시고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중국에서는 차가 생수보다 훨씬 싸다. 차는 공짜로 주지만 생수는 돈을 주고 꼭 사야한다. 그만큼 중요하기에 약간 아껴서 마시는 편이었다. 어쨌든 30여분이 지나고 있을때 전화가 왔다. 가이드였다. "인솔자님, 내려오세요." "네, 금방 갈께요." 상해에서 함께 있던 가이드는 약간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북경에서 만난 가이드와는 수시로 술도 한잔 했었지만 그는 나이도 나보다 어렸고 약간 딱딱한 편이었다. 그에 비해 장가계의 가이드는 왠지 서글서글 하면서도 능글맞았다. 1층 로비로 내려오니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요 앞에 양꼬치하는데 있는데 같이 가시죠? 양꼬치 드실줄 아시죠?" 약간 비린내가 나는 양꼬치는 비위가 약한 이는 쉽사리 적응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먹는 것 만큼은 가리지 않는 성격의 나였기에 쉽사리 따라나섰다. 그 곳에는 이미 한사람이 더 있었다. 같은 여행사 직원이라며 인사를 건네기에 함께 인사를 전해주며 명함을 주고 받았다. 여행 가이드는 대부분 현지 가이드를 많이 활용한다. 특히 중국여행에서는 자국의 가이드를 보호하기 위해 자국에 등록된 가이드를 써야한다. 그래서 대부분 한국인의 안내를 맞는 가이드들은 길림성 출신들이다. 어쨌든 술이 한두잔 오고가며 역시나 한민족 답게 술기운이 오르자 자연스레 친해졌다. 이런저런 말이 오고가며 어느새 가이드는 나에게 형이라 부르고 있었다. "근데 형은 인솔자 별로 안해보셨죠?" 솔직히 이것이 약점일 수도 있기에 보통은 경험이 있는 것 처럼 말하는게 통례였다. 하지만 고지식한 나는 고지곶대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응, 지난달에 북경가보고 여기가 처음이다. 잘좀 부탁해." 그제야 가이드는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솔직히 아까 형 공항에서 보고 무척 까다롭다고 생각했거든요." "왜?" 그런 인상은 처음이라 솔직히 놀랐다. "대체로 처음 공항에서 보고 그렇게 손가락으로 지적 할 정도되면 되게 까다롭거든요. 약간 현지 가이드 무시하기도 하구요." 정말로 몰랐었다. "그래? 이런 어쩌냐. 난 그냥 수속이 늦어질것 같아서 그랬는데." "하하하. 어쩐지 아무튼 다음부턴 그러지 마세요. 다들 오해해요." 소중한 것을 하나 얻은 기분이었다. 맥주병이 하나둘 비워가며 어느새 세명이서 앉아서 거의 10병을 먹어댔다. 술을 마시는 와중에 옆에 앉은 가이드는 연신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그러더니 또 한사람이 합류를 했다. 제법 점잖은 모습의 그는 딱보기에도 나보다 연배가 높아보였다. "이 형이 저보다 후밴데요. 솔직히 저보다 많이 벌어요." 가이드는 인센티브제다. 기본 페이가 하루 300위안이지만 여행객들이 얼마나 쇼핑을 많이 하는지 혹은 추가 옵션을 하는지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참, 오늘도 애인 못봐서 어쩌냐?" 새로 합류한 가이드 형이 내 옆에 앉은 우리팀 가이드에게 물었다. "그러게요, 나 힘들어 죽겠어요. 이거 연짱으로 무슨 짓인지." 대충 들어보니 오늘 한팀을 보내고 곧바로 공항에서 우리팀을 맞이 한것이라고 한다. 쉴틈도 없이 일하는 그를 보니 약간 안쓰러웠다. "저놈이 제법 재주가 좋아서 연상이랑 사귀고 있어요." 마주앉은 그가 말했다. 이야기를 마저 들어보니 함께 가이드를 하고 있는 여성이라고 했다. "근데 인솔자형은 애인 있어요?" 애인이라는 소리에 또다시 그녀가 떠올랐다. 이번 여행길에 오르기 2주전에 결국 헤어진 그녀. 조금이나마 외로운 객지생활에서 위안이 되어준 그녀. 그녀와 헤어졌다. "2주전에 헤어졌어." 너무 무거운 대답이었는지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이런, 여기서 한번 구해볼래요? 괜찮은 애 많은데." 농담하듯 나이많은 가이드가 말했다. "그럴까요?"하고 농담으로 대답해주고는 앞에 놓인 잔을 일제히 비워나갔다. "형은 어떤 스타일 좋아하는데?" 스타일이라... 솔직히 별로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냥 마음 맞는 여성이면 좋았다. "글쎄, 별로 생각해본건 아닌데. 뭐 일단 너무 마른 여자보다는 약간 통통한 여자가 좋겠지. 뭐 그렇다고 뚱뚱한건 사절이야.하하하." "역시 형도 나이 먹었나봐. 대체로 나이 먹은 사람들이 그런 스타일 좋아하던데." 그렇게 네명이서 술을 마시다보니 어느새 12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9시 반쯤 나와서 술을 마셨는데 제법 시간이 지난 것이었다. "제법 취하네. 오늘은 적당히 하지." "그럴래요? 근데 형. 나 오늘 형네 방에서 자면 안돼요?" 인솔자 방은 트윈이지만 혼자서 잔다. 옆에 누가 자더라도 별 상관 없기에 흔쾌히 허락했다. 함께 방에 올라와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내일은 빠듯한 일정이었기에 술기운에 또 피곤한 상태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은 식권을 배분하고 밥 먹는 것을 챙기며 시작되었다. 약간 멍하긴 했지만 할일을 빼먹을 순 없기에 서둘러 움직였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일정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예로부터 절경이라 이름난 곳인 만큼 어디든 사진기를 들이대면 한폭의 그림이 펼쳐졌다. 기괴한 기암절벽과 험준한 산세가 거대한 수묵화를 펼쳐놓은 듯 해보였다. 유니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이 거저된것은 아니었다. 나와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신 덕에 나나 가이드나 별로 힘이 없었다. 하지만 일은 일인 만큼 가이드는 설명하느라 온힘을 짜냈고 나는 타고 내리는 인원을 체크하느라 정신을 바싹 차렸다. 그런 우리의 중간에 어제 본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조그마한 몸집에도 제법 재빠른지 앞에 있다가 갑자기 뒤에 서있고 또 어느새 앞쪽에 서서는 연신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겨우 일정을 마치고 내려오니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모두 주린 배를 움켜쥔터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이동했다. 각자의 방으로 여행객들을 보내고 나니 가이드가 슬며시 다가왔다. "오늘도 술한잔 어때요?" 평소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오케이였다. "응, 좋지." 오전에 숙취로 힘들었었다는 생각은 어느새 멀리 던진 후였다. "일단 위에 올라가셔서 쉬고 계세요. 한 30분 후에 부를께요."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방으로 올라갔다. 침대위에 몸을 던지며 온몸에 기지개를 폈다. 피곤한 하루였고 약간 힘들었다. 험준한 산새를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온몸이 끈적거렸다. 대충 몸을 씻고 나와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제야 약간 개운해짐을 느꼈다. 담배를 한대 피고 있으려니 전화벨이 울렸다. 가이드였다. 어슬렁거리며 로비로 내려가니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가이드가 손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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