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호수 1
정신을 차려 보니 그 호숫가였다.
작지만... 알 수 없는 웅장함... 음침함...신비로움을 모두 갖춘 호수가 새벽의 차가운 날씨와 더불여서 엷은 안개를 덮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보였다.
그리움.
이 단어가 그 호수를 처음 본 나의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머릿속에 너무나도 맴돌아 눈물을 흘릴 정도 였다.
그 호수 속으로 한 발자국씩 들어갔다.
내 머릿속에서 그곳으로 들어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우와... 이 느낌은...
방금 전까지는 두려움이 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면,
물에 닿음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환희와 욕망이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자를 가질 때 보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보다, 정말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 보다 더 기분 좋은 그런 감정.
“아...”
난 무의식적으로 기분 좋은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게다가 닿는 면적이 넓어질수록... 점점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과 같은 환희가 올라왔다.
‘마셔.’
누군가가 내 머릿속에 소리치는 게 느껴졌다.
여기 오게 된 경위도 그렇지만... 이제 이 머릿속의 목소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꿀꺽
그러자 머릿속에 뭔가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땡... 맞는 듯한 그런 충격이 느껴졌다.
난 그 물을 미친 듯이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머릿속에서 뭔가가 더 소리치는 것 같았다.
‘더 마셔!’
차라리 저 물속에 계속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면...
누군가가 나를 밀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저 멀리에 아까부터 누군가가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운 사람.
엄마? 아빠? 아니면... 그녀?
아무튼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틀림없다.
그녀에게 점점 다가갈수록 포근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아... 내 몸이 잠기고 있는 게 느껴졌고. 이제는 눈 밖에 떠 있지 않았다.
내 입과 코는 숨을 쉬든 말든... 그런 건 상관없어...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열려서 내 몸에 물을 담아 버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으니깐...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죽었다.
내가 뭐에 홀린 건지... 씌인건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난 그 속에 있는 것으로도 만족했고, 덕분에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밤마다 나를 찾아오는 그 악몽.
이제 끝낼 수 있었다.
그렇게 3일 후에 내 시체는 호수 저편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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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이 저주 받은 호수... 메워 버려야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제가 여기 발령 와서 죽는 사람만 몇 명인지 셀수 조차 없군요.”
나에게 불평하며 말하는 사람은 같이 근무하는 강력계 동료 나선호였다.
그가 이곳에 발령 온 것은 아마... 3년 전이였으니까... 대략 20명 정도가 죽었을 것이다.
이름도 없는 아주 깊은 산속에 구성 되어 있는 천연 호수.
경치는 좋지만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찾아오기도 힘들뿐더러... 게다가
유명한 자살호수로 이 근방에서는 명성을 떨치고 있어서 소문을 아는
지역 사람들은 접근조차 못하는 곳이다.
나이, 성별, 직업 등등 관련점이 아무것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살했다.
어떠한 동기나 그런 것도 전혀 없었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우리 경찰서에서 꽤 중요지역으로 취급 되어서 ‘게다가 자살이 너무
심하게 일어나’ 당연히 수사에 착수했지만... 어떠한 소득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주변의 민간인의 입출입을 막도록
이런 저런 철망이나, 표지판이나 그 외 등등도 세우는 것 뿐 이였다.
‘저주야... 저주... 마을을 떠난 저주...’
예전에 이 사건을 조사하다가 마을에 오래 사신 할머니에게 들은
한마디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은 절대로 다른 마을에서 살아서는 안된다는 저주...
솔직히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막으려는
나이드신 분들의 말이 저주로 변화 된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왠지 그 말도 맞는 것 같았다.
귀신이나 저주나 그 딴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나였지만... 이번 사건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위에 있는 유일한 공통점은...
자살자의 고향은 모두 이 지역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 근처 주민들은 이 호수를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
‘애광 호수’
사랑에 미친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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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제. 나이는 32살. 모 대학병원 정신과 의사. 평소에 건강도 이상없고…….
채무관계도 없고... 사귀는 사람과도 불화는 없고... 그랬다는 군요.
병력기록이나 그런 것을 살펴보니... 요즘에 약간 불면증을 호소하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뭐... 언제나 그렇지 않겠어? 원래 그 쪽 지역의 자살사건이라는 것은 흔하니깐...”
선호와 반장님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경찰서 구내식당도 아니고... 일반식당에서 남자 3명이
밥 먹으면서 죽니 사니 자살이니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여기서
식사하시는 모든 분께 민폐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냥 나는
입 다물고 밥만 먹을 뿐이 였다.
“일단 사인은 익사입니다. 해부를 해 봐야 겠지만요.”
“뭐... 물에 빠져 죽었으니 익사겠지. 그런 거야 초등학생도 알 거야.”
반장은 말끝마다 ‘뭐...’ 라는 것을 붙이는 게 습관화 되어 있다.
그는 식사를 다 마쳤는지 숟가락을 놓고는 옆에 있는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면서 말을 이어 갔다.
“뭐... 자살한 인간들의 생각을 우리가 어찌 알겠어. 보고서는
나형사가 알아서 잘 쓰라구. 마찬가지로 주변 좀 찾아가는 거 잊지 말구.”
“넵! 반장님.”
마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형국이었다.
“이형사도 잘 들었지.”
반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는데 집중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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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로 돌아오니 자살한 사람의 간단한 신상명세서가 내 자리에 올라와 있었다.
간단히 뒤적여 보니 ‘아...’ 라는 간단한 탄식이 무의식적으로 내 목에서 기어 올라왔다.
그는 나의 어릴 적 친구였다. ‘김민제’
어릴 때 그의 얼굴이 생각났다.
어린 나이였지만... 조용히... 그렇지만 강한 카리스마를 풍겨 내던 그 녀석.
집안도 나쁘지 않았고... 공부도 아주 잘하는 편이였고, 어릴 때는
친해서 곧잘 잘 놀고 했던 사이였다. 그러다가 아마 초등학교 5학년
쯤에 전학을 간 것으로 기억난다.
무슨 이유였기는 한데...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그 부분만 뿌옇게 되어 있었다.
‘호수...’
그 단어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어릴 적 그의 얼굴과... 신상명세서에 올라와 있는 그의 얼굴. 그리고
아침에 본 그의 퉁퉁 불어버린 얼굴이 겹쳐지자... 갑자기 헛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사람이 죽어간게 한 두 번이 아니였지만... 이처럼 나와
관계가 된 사람이 죽은 건 처음이였다.
난 부리나케 화장실로 뛰어갔다. 지금이라도 오바이트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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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 형사님이 담배를 다 피우고... 무슨일입니까?”
경찰서 밖에서 담배와 커피를 믹스해서 마시고 피우고 있던 나에게 선호가 다가 왔다.
나는 평소에 그렇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답답하기도 하였고... 말할 상대도 필요 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그에게 이런저런 생각했던 것과 김민제와의 관계를 이야기 했다.
“아... 친구였습니까? 죄송합니다. 점심 때 그렇게 이야기 해서...”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어차피 방금전까지만 하더라도 나 또한 제 3자였으니깐...
다 마셔 버린 커피를 쓰레기 통에 던져 버렸다.
“그래도... 업무상 구실을 핑계로 해서 부모님께 인사라도 들여야 겠어.”
“그러시겠습니까? 저도 같이 가죠. 어차피 조사도 해야 하니깐 요. 자살동기나 그런것두요. 이번에 위에서 내려왔다고 하더군요. 너무 자살자가 많아서 그 호수를 메워 버리는 게 어떨까 하고 시청에 건의 한다고 한 다구요. 그리고 이번 사건을 제대로 수사해 달라는 가족들의 수사의뢰도 있었어요. 절대 자살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내 생각도 부모님들의 생각과 동일했다.
어릴 적에 봤던 그의 모습은 자살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초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고 냉정했던 그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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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은 호수에서 차를 타고 3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경찰서에서도 한참을 떨어진 대도시 한가운데에 서 있는 고급아파트.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파트 앞에 도착하자 젊은 경비원이 우리 차를 막고 섰다.
선호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공무원증을 보여 줬다.
“경찰입니다. 참고인 조사차 방문했습니다. 105동 703호입니다.”
보안요원은 안으로 들어가 통화를 하더니 문을 열어 주었다.
“역시 고급아파트라서 좀 철저하네요. 우리는 언제 이런 곳에 살아보나요.
역시 경찰 때려 치고 사업이라도 해야 하나...”
선호의 궁시렁대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새삼스럽게 그 앞에 도착하니 부럽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잘 살았구나... 그런 네가 왜 자살을 한거지...
오랜만에 그의 부모님을 뵈었다.
세월에 흔적 때문에 나도 그리고 부모님도 서로 변하였지만, 어떻게
내 얼굴을 알아 보셨는지 나를 껴안고 반가움을 표시함과 동시에 서럽게 울기 시작하였다.
내 가슴속에도 뜨거운 것이 울컥 나오는 게 느껴졌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단 둘이서 살고 있었다.
그 간의 자초지종을 듣자, 나도 그에 대해서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그가 전학 간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사업 실패로 인한 도피였다.
그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그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는 것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 후에 스스로의 힘으로 학비를 벌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병원에서
승승장구를 하고 있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자... 나 스스로 숙연해 지고...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선호 역시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계속 입만 벌리고 있는 것을 보니...
여기서 하나 확실해 진 것이 있었다.
그렇게 책임감이 있고, 부모님을 위하던 그 녀석이... 그런 부모님을
놔두고 자살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확실해 졌다.
뭔가 있다...
이 자살을... 수많은 자살들을 파헤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부모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오직 나의 앞으로의 사명에 대해서만 생각이 사로 잡혀 있었다.
그것이 내가 어릴 적 친구에게 해 줘야 하는 마지막 선물인 것 같았다.
“정말... 민제에게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근심어린 얼굴이긴 하였지만... 우물쭈물 하면서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모습인 것 같았다. 다년간의 형사 생활 동안... 그 정도도 눈치 못채는
내가 아니었다.
“그게... 너무나 평소에 보았던 아들과는 틀려서...”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방으로 들어가 뭔가를 가지고 나왔다.
두꺼운 공책... 낡은 흔적... 게다가 굉장히 오랫동안에 걸쳐서 쓴 것 같았다.
열쇠로 잠긴 듯한 흔적이 있었지만, 누군가 무리하게 부서뜨린 듯 했다.
아마 어머니겠지.
“이건... 최근에 내 아들이 쓰던 일기장이야. 경찰이 오면 주려고 놔뒀는데...
굉장히 고민 많이 했어.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 아들이 정신병자 취급
받는 건 너무나도 싫었어... 이 내용을 쓴 사람이 내 아들인지 믿을 수가
없었어. 네가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정말...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말고... 너만 읽어.”
그 두꺼운 일기장을 나에게 주었다.
어머니의 눈망울에 다시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덜덜덜 떨리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라도 밖에 위로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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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차안에서 한권의 일기장을 손위에 놓은 채 겉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선호가 이런저런 말을 한 것 같았지만 어떤 내용인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겠다.
이 노트 안에는 그 동안에 나와 떨어져 있던 민제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아마 이 안에는 그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다.
나는 죽은 그를 머릿속에 그리며...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다.
내가 가장 먼저 집은 노트는 가장 최근의 일기장이였다.
개인적으로 느낀 감정이나 수많은 내용들이 적혀져 있었다.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당시에 그가 나에게 어릴 적부터 일기를
쓰고 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게 기억이 났었다.
그러다가, 어느 페이지에 내 눈을 잡아끄는 문구가 선명히 보였다.
호수...
내 머릿속을 그동안 감싸고 있던 뿌연 안개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눈에 비치는 것은 호수의 모습.
애광 호수.
난 어릴 적에 애광호수를 본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와 다른 친구와 셋이서 같이...
2010년 9월 X일
옛날부터 두통이야 가끔씩 있었지만...
요즘에 느껴지는 두통은 예전과 차원을 달리 한다.
아예 정신이 날아가는 듯한 느낌.
이제 점점 일정한 시간이 정해 진 것 같았다.
또 그녀가 보인다.
나를 저편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그녀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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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