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팬티 여자들과의 조우-3
노팬티 여자들과의 조우-3
군에 있을 때 쑥고개 그러니까 오산 비행장의 외곽 경비대장을 한 1년 했었다. 그때 휴가를 받으면 서울에 오기도 하지만 안성이나 수원 등에서 며칠 푹 쉬며 먹고 자고 그리곤 좆에 굶주린 여자들을 찾아 내 짙펀하게 씹을 한 후 귀대하곤 하였다.
수원 남문 옆에 중앙극장이 있었다. 한국영화 전용관. 항상 사람이 많아 앉아 보는 사람과 서서 보는 사람의 숫자가 거의 비슷했는데 나는 말할 것도 없이 사람들이 빽빽히 서있는 뒤를 좋아했다. 극장 안에서 렁탕도 하고 끝나면 중국집에서 한 탕 뜨거나 운 좋으면 밤새 씹을 할 여자가 반드시 거기서 나를 기다리니까.
그날도 나는 극장에 들어간지 15분도 안되어 야리야리 하게 생긴 서른 쯤 되어보이는 젊은 유부녀의 어깨를 끌어 안고 화기애애하게 젖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은밀하고 재빠르게 그리고 말 없이 서로의 의사를 확인해 맞추고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허리를 감고 하는 일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노련한 선수끼리만 가능한 작업이다.
바짝 꼴려 바지 속에서 꺼떡대는 좃을 슬그머니 그녀의 엉덩이에 비비는데 느낌이 다른 거라. 뭐 걸리는 거 없이 따뜻한 살맛이 전해 오는 거다. 노팬티? 내가 기대를 걸고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훑어보니 요년 맨엉덩이야. 아이구 이쁜년.
당시 시골 여자들은 거창한 외출복 대신으로 위에는 얇은 봄 스웨타 같은 걸 입고 밑엔 긴 한복형 치마를 입는 게 평상 외출 패션이었는데 고 이쁜 유부녀도 그 차림이었다. 치마단 속으로 손을 넣어보니 뜨근한 맨보지가 헐떡이고 있는 거라. 아이고 이쁜 거. 고 이쁜년 손에 선물로 뜨끈한 좆방망이를 쥐어 주었지.
우린 극장안에서 자리를 조금씩 옮겨다니며 살짝살짝 키스도 하고 서로의 자지와 보지를 진탕 주무르고 비볐다. 곧바로 나가 씹을 하는 거완 또 다른 깊은 맛을 선수인 둘이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관중이 꽉 찬 극장 안에서 내 손가락에 의해 두 번 까무로쳤고 나도 그녀의 손에 한 번 싸고 말았다. 그리곤 나와서 중국집에서 짜장면 곱빼기 시켜놓고 먹기 전에 씹 한 번 하고 농대 뒤 서호 뚝방에서 서서 한 번 박고 엎어져서 또 한 번 박고 그리고 여인숙에 들어가 밤 새도록 보지가 헐도록 쑤시고 또 쑤셨다.새벽녘엔 아무리 용을 써도 좆물이 나오지 않았다.
요샌 조개들이 자글자글한 곳을 자주 못 가 노팬티 여자를 만날 행운을 못 가져 봤는데 날 잡아 다시 출근길 전철을 타고 노팬티 여자의 구원길에 나설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