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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썰 나는 전설의 변태다


야썰 나는 전설의 변태다 

1부. 원탁의 너드.

이번에도 옛날이야깁니다.

최근 이야기도 있지만, 혹시라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제는 기억 속에서 조차 찾아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지금도 있나 모르겠지만, 관심도 없고 하도 오래 그쪽을 안 가봐서, 어쨌든 리버사이트 호텔에 나이트클럽이 있던 그때 이야깁니다.

그 당시 사무실이 신사동 사거리 근처였습니다.

빌딩의 사무실이 아니라 리버사이드 건너편 쪽, 압구정으로 가는 길 뒤쪽에는 주택이 많이 있는데, 그 중간 쯤 있는 2층집의 2층을 빌려 사무실을 꾸몄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초저녁에 시작합니다.

새로 만든 기획이 통과가 되고, 꽤나 큰일을 따냈던 날입니다.

술을 마시며 시작한 축하파티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습니다.

미술을 하다 프로그래머가 된 레이는 탁월한, 공돌이가 보기엔, 미적 센스 때문에 레이아웃을 주로 담당해서 레이라고 불립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웃풋의 레이아웃을 프로그래머가 공돌이를 위한, 공돌이에 의한 공돌이의 마인드로 만들어서 미적 센스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그렇다고 실용적인 것도 아닌 기괴한 아웃풋을 가진 어플리케이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때입니다.

그런 시절 레이란 특이한 존재는 우리에겐 커다란 무기처럼 훌륭한 능력을 발휘하곤 했었죠.

그런 레이와의 인연은 무척이나 오래됐습니다.

그를 프로그래머의 세계로 끌어온 것도 저였고, 지금도 여전히 제 곁에 있습니다.

조금 취한 레이가 그대로 끝낼 수 없다며 선동을 시작합니다.

“형, 나이트 가자.”

“나이트는 무신, 시끄러워서 싫다.”

“아씨, 만날 시끄럽다고 안간데. 그러지 말고 가자. 내가 졸라 깔쌈한 애들로 부킹해줄게.”

“지난번처럼 들러리만 설 텐데, 싫다.”

레이는 잘생기기도 했지만 운동광이라 몸매에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즉석에서 쓱싹 그려내는 그림과 그럴듯한 얼굴 그리고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를 무기로 여자를 잘도 꼬입니다.

문젠 그 관계가 그리 오래 가진 못한다는 거지요.

“이번엔 무조건 제일 예쁜 애는 형한테 양보할 테니까. 가자. 응!”

다른 놈들은 이미 레이에게 동조된 상탭니다.

분위기는 완전히 기울어졌습니다.

예쁜 여자는 무조건 나한테 양보하겠다니 일단 동의를 합니다.

10시가 넘은 상태, 우린 리버사이드 호텔 나이트로 진격합니다.

우리의 상태를 보자면, 전형적인 너드(nerd)입니다.

하루 종일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컴퓨터만 가지고 놀며, 컴퓨터에서 기쁨을 찾는 그런 부류.

여자들이 굉장히 싫어하는, 요즘말로 하면 컴퓨터 오타쿠입니다.

나이트 간다고 그나마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왔다지만, 체크무늬 남방 혹은 티셔츠에 편할대로 편한 기지바지는 스테이지에서 춤추는 남녀들과는 분명한 이질감을 들게 하는 패션입니다.

우린 테이블에 앉고, 레이가 수색에 들어갑니다.

사방으로 더듬이를 펼쳐 부킹이 가능한 여자들을 찾습니다.

그의 더듬이에 걸린 테이블, 레이가 출동합니다.

첫 번째 시도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여자 때문에 실패합니다.

레이는 계속 도전합니다.

쉬지 않고 계속되는 도전!

일을 그렇게 해봐라

하지만 계속 실패.

“아놔, 오늘 여기 물이 안 좋아.”

레이가 불평불만이 가득합니다.

머피의 법칙을 아실 겁니다.

버스를 기다리지 않을 땐 잘도 지나가다 담배를 물면 그 순간 나타나는 그런 법칙.

삼십분이나 레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한 사람도 낚지 못했습니다.

시간은 11시를 넘어갑니다. 가장 피크 타임인 12시 근방에선 쇼부를 보고, 좀 놀다 2시 근방에서 각개전투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니면 나이트가 끝나는 시간을 기다려 떨이타임에 도전을 하든가.

맥주를 좀 마셨더니 화장실이 가고 싶더군요.

화장실 앞에 줄이 깁니다.

아직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되돌아오려는데 갑자기 모르는 여자가 내 팔짱을 낍니다.

나는 누구세요? 하는 눈으로 그녀를 봤습니다.

“자기야, 왜 이제 왔어!”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자기랍니다.

슬쩍 돌아서며 사정없이 뽀뽀를 했습니다.

술 냄새와 얼마나 흔들었는지 땀 냄새가 나는 군요.

눈을 휘둥그레 뜨는 여자.

나는 뻔뻔한 얼굴로 씨익 웃으며 묻습니다.

“재미있게 놀았어?”

그녀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나는 팔짱낀 그녀의 팔을 잡아끕니다.

엉거주춤하게 딸려오는 그녀입니다.

그렇게 우리 자리로 갔습니다.

내가 여자를 데려오자, 그것도 팔짱을 끼고, 다들 아는 사람을 만난 줄 압니다.

모두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 우릴 맞이합니다.

그때 여자가 팔짱을 거칠게 빼며 말합니다.

“당신, 뭐하는 작자야?”

나는 그녀가 아니라 레이에게 말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면 보따릴 내놓으라고 하는 게, 인간사란다.”

레이가 해맑게 웃으며 말합니다.

“어서 오세요. 누님. 헤헤.”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그녀를 자리로 이끕니다.

이놈은 조금 괜찮게 생긴 여자만 보면 헤헤거립니다.

어떨 결에 자리에 앉은 그녀.

그녀가 다시 나를 째려봅니다.

레이가 말합니다.

“누님, 이 형이 쓸데없는 짓했죠? 변태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이 쉑끼가 언제 봤고 누님이야? 그리고 변태는 니가 변태지.

그녀가 우리를 쭈욱 둘러보더니 조금 신경질적으로 말합니다.

“전부 변태 같은데!”

레이가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립니다.

“형, 이 분이 우리 비밀을 알았어. 어떡하지?”

“최후의 수단을 써야지.”

나는 지갑을 꺼내 운전면허증이 있는 부분을 펴서 흔듭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입니다.”

“장난치지 마!”

“네네.”

대충 이정도면 어이없어 웃어야 하는데 장난이 안 통하는 상대군요.

매우 실망입니다.

지갑을 도로 집어넣었습니다.

“너네들 도대체 뭐야?”

“그 말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 도대체 누구세요? 제 팔짱은 왜 끼시고, 자기야, 왜 이제 왔어, 라고 하셨나요?”

그녀가 나를 째려봅니다.

뽀뽀 한번 했다고 너무 갈구는 군요.

아무래도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였어 하는 느낌인가요! 참을 수 없습니다.

그녀가 나의 승부욕을 자극합니다.

“한 시간 동안이나 싫다는데도 들러붙는 자식이 있어서 그랬다.”

뭐 안 봐도 비디오, 나이트에서 흔히 있는 술 취한 놈의 엉겨 붙기, 그러리라 예상은 했습니다.

레이가 우려가 가득한 얼굴로 말합니다.

“누님, 고생이 많으셨군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생긴 것도 멸치대가리 같이 생긴 게, 어딜 감히.”

씨근덕거리던 그녀가 나를 보더니 다시 도끼눈을 떴다.

“야, 너! 왜 뽀뽀는 하고 그러는 건데?”

"엌, 형 저질러 버린 거야?"

레이 이쉑끼는 눈치가 없습니다.

본인은 너무 순수해서 그렇다지만 난 바보라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술을 한잔 따라 그녀에게 줍니다.

“일단 한 잔 쭈욱 드시죠!”

속이 탔는지 단번에 받아 마시는 그녑니다.

역시 사람은 무언가 마시면 차분해지는 법이지요.

그녀도 사람.

조금 차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굳이 그 상황을 설명을 하자면, 가장 자연스럽게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당신에게 들러붙는 멸치대가리에게 내가 확실한 애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 아니겠습니까? 그러려면 제일 좋은 방법은 연인들만이 할 수 있는 뽀뽀! 확실한 방법이지 않습니까!”

레이가 박수를 칩니다.

“역시 형의 잔머리는 최고! 누님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이런 잔머리를 굴린다는 게, 보통 사람으론 할 수 없는 일이죠. 헤헤헤.”

제발 말끝에 채신머리없이 웃지 좀 마라.

막상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그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뭔가 많이 손해 본 얼굴이지만, 논리하면 어디가서지지 않을 만큼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는 접니다.

다음 단계로 나갑니다.

"우리 통성명이나 하시죠."

그녀의 이름은 리나,

이젠 조금 익숙하시죠?

리버사이드 호텔 나이트에서 만나서 리나입니다.

미모와 몸매가 제법 되는 것 같더니 모회사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을 하는군요.

레이의 눈이 휘번뜩입니다.

"일행은 어디 계세요?"

부대자루만 주면 당장이라도 보쌈해올 기셉니다.

하지만 레이가 찾지 않아도 그녀들이 알아서 찾아왔습니다.

오호라 같은 곳에 근무하는 처자들이라 미모가 다들 봐줄만 합니다.

발정기의 오 분 대기조 레이와 떨거지들이 전투태세로 들어갑니다.

자신들이 가진 모든 재주를 동원합니다.

보고 있자니, 유치원 재롱잔치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린 다섯인데 그쪽은 여섯명입니다.

남자가 남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남는 놈은 알아서 찌그러지니까.

하지만 여자가 남으면 곤란합니다.

파트너가 없는 여잔 결사적으로 전체를 파토 내려고 하니까.

오늘도 내가 희생이 되어야 하나. 고민입니다.

결국 나는 두 사람을 책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찌어찌하여 대충 파트너가 정해지는 상황, 제 파트너라 생각했는지 리나한테 아무도 들이대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은 한명, 이게 미묘합니다.

리나를 빼고 남은 다섯 중에 제일 가슴의 위용을 자랑하는 여자입니다.

애들이 인상적인 가슴을 가진 그녀에게 미리 겁을 먹고 돌격의 방향을 좀 더 낮은 고지로 결정했나 보군요. 바보들이라니까요. 이럴 땐 차라리 튀는 여자 쪽이 쉬운데 말입니다.

어쨌든 그녀의 리버사이드에서 만난 예쁜 처자니까. 리얘로 하지요.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레이의 선동으로 춤을 추러 스테이지 나갑니다.

테이블엔 제각기 춤을 아무도 들이대지 않는 리얘와 리나 그리고 나까지 셋이 남았습니다.

여자가 하나 남는 상황, 이 판이 깨지지 않려면 제가 잘해야 합니다.

제가 이런 거앤 또 일가견이 있습니다.

여자 둘을 상대할 땐 간단한 조건만 지키면 됩니다.

둘을 경쟁 시키세요.

두 여자는 제법 친한 듯 소곤소곤 귓속말을 합니다.

가끔 나를 힐금 거리는 게 내 흉을 보는 게 틀림없습니다.

"원래 말이 없나요?"

제가 가만히만 있으니까 재미없다는 얼굴로 리얘가 묻습니다.

통상 그녀와 같이 예쁜 여자들은 남자의 재롱을 지켜보는 입장이지 스스로 재롱떠는 입장이 아니지요.

"예, 제가 승마를 안해서요."

"에?"

너무 황당했나, 리얘가 어이없어 하다가 피식피식 웃습니다.

"유치하지만 재미는 조금 있었네요.“

당시에는 먹히던 농담인데 말입니다.

리나가 끼어듭니다.

"봐, 내가 말했잖아."

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한 겁니까?

에잇, 가만있을 수 없습니다.

난 리나를 힐금 보곤 해맑게 웃으며 리얘에게 말합니다.

"리얘씨, 나 방금 말이 생겼어요."

리얘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합니다. 당황해하는 리나.

이제 시작입니다. 전 리얘를 공략합니다.

리나가 쓸데없는 질투를 유발하도록 말이죠.

리나는 뽀뽀까지 당하고 끌려왔는데 본인이 따돌림 당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리나를 따돌리면 판이 깨지니까. 적당히 리나의 비위도 맞춰가면서 리얘 쪽으로 관심이 있는 듯, 마는 듯 줄타기를 시도하는 겁니다.

"축하파티였단 말이군요."

"그렇죠."

"그럼, 축하주라도 한잔 드려야겠네요."

"아니, 이런 미녀분들의 축하주라니,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될 징조군요! 프로젝트 마무리가 잘 되면 제가 크게 한 턱 쏘지요."

"정말요?"

"그럼요. 그런데 미녀분들께선 이런 누추한 나이트엔 무얼 축하하러 오셨나요?"

리얘가 힐금 리나를 보았다.

그것으로 리나가 오늘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았다.

리나가 말하지 말라는 고개를 젓는군요.

하지만 리얘가 장난스럽게 말합니다.

"맞춰 봐요!"

"저 그런 거 잘 맞추는데."

"그러니까 해봐요."

리나는 신입사원이 아니니 신입축하자린 아니고, 결론은 뻔합니다.

게다가 저런 번쩍이는 반지라니.

"결혼하시나 봐요. 축하드려요."

내가 단박에 알아맞추자 리나가 놀란 듯 보입니다.

"어머, 눈치가 정말 좋은 사람이네."

"오우, 처녀파티였군요! 언제 결혼하세요?"

리나가 마지못해 말합니다.

"다음 달!"

"축하의 의미로 제가 오늘 술값은 책임지지요."

리얘가 웃습니다.

"어머, 화끈하시기도 하셔라."

리나는 그것도 불만인가 봅니다.

"왜, 니 맘대로 낸다는 거야?"

저것이 내준대도 불만입니다.

"우리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한 축하라니까요."

우리 애들이 여자들과 즐겁게 놀고 있잖습니까.

돈 몇 푼으로 얹기 힘든 사기진작입니다.

열심히 노예처럼 일을 시키는데 당근으로 써먹는 겁니다.

그나저나 리나는 자신의 결혼이 썩 달갑진 않은 모양입니다.

아니, 결혼을 결정했는데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갑자기 후회가 밀려오는 상황 같습니다.

"가자!"

리나가 리얘를 재촉합니다.

"한참 재미있는데 흥 깨지마."

"뭐어?"

리얘가 우리 편이 됐습니다. 리나가 물주였을 땐 그녀의 의견이 중요했지만, 방금 물주를 갈아탔습니다.

영악해 보이는 리얘가 나를 포기할리 없지요.

그녀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사용해온 듯 보입니다.

"너, 이럴 거야?"

"리나, 참아. 그런다고 해결 될 일은 하나도 없어."

리나가 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 초기 증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선한 충격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큰 실수를 했습니다. 뽀뽀를 하다니, 리나는 우울증과 신선한 충격 사이에서 오는 격렬한 반응에 혼란을 겪고 있고 그래서 나한테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분이 꿀꿀 할 땐 흔드는 게 최고야.”

리얘가 나와 리나를 끌고 스테이지로 나갑니다.

리얘는 확실하게 남자의 눈길을 끄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번쩍이는 사이키 조명 아래서 그녀의 잘빠진 몸매와 크고 아름다운 가슴이 부각되도록 양팔을 들어 올리고 춤을 추자 뭇 남자들의 시선을 끕니다. 억지로 끌려나왔을 뿐 춤출 기분이 아닌 리나는 분위기를 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리얘를 둘러싸고 그 속에서 그녀는 여왕처럼 군림합니다.

리나는 그런 그녀를 부러운 듯 바라봅니다.

"리나씨."

큰 음악소리 탓에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왜?"

"내기 한 번 안할래요?"

"내기?"

"나랑 딱 열흘만 사귀지 않을래요?"

"뭐래?"

기가 막힌 듯한 리나의 표정.

나는 그녀를 끌고 테이블로 돌아갑니다. 그녀는 팔짱낀 채 내 말을 듣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중세의 성처럼 견고해 보입니다.

"내기는 열흘 동안 내가 리나씨를 꼬시면 내가 승리, 꼬임에 안 넘어오시면 리나씨 승리. 물론 이 내기는 리나씨와 나 둘만의 비밀! 어때요?"

"웃기지도 않아."

완전히 무시하거나 화내지 않는 걸 보니 흥미가 없진 않은 듯 합니다.

"나 같은 녀석의 꼬임에 넘어오지 않을 자신이 없나 보죠?"

"나를 뭘로 보고 그딴 수작을 거는 거야?"

"당연히 리나씨가 예쁘니까. 어쨌든 나는 자신 있는데, 리나씬 자신 없나 봐요."

리나의 승부욕이 반응을 합니다.

"감히 나한테 도전을 하겠다는 거야?"

예쁘다 칭찬하니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나 봅니다.

"자신 있으시면, 콜?"

리나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외칩니다.

"콜!"

둘이 내기의 성립을 알리는 건배를 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기묘하게 시작했습니다.

2부로 돌아옵니다.

보지돌이 뚜비 나나 뽀옹.....응?

- 나는 전설의 변태다. -

2부. 뛰는 놈 그 뒤에 쫓는 년.

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내기의 조건은 현찰 십만 원!

내기 돈의 액수가 너무 작아도 커도 재미없어지잖습니까. 서로 부담 가지 않는 정도에서, 하지만 동기부여를 할 만큼은 걸어야 재미가 있지요.

전화를 걸었습니다.

리나는 조금 쌀쌀 맞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기는 잊지 않았겠죠?”

“당연히.”

“저녁에 데이트 하자면 안 된다고 할 거죠?”

“하는 거 봐서.”

어서 나를 재미있게 해줘, 라고 들립니다. 방어하는 입장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재미있게 해주마!

“하는 거 보려면 직접만나야 하지 않겠어요? 저 아주 잘하는데.”

“뭘?”

약간의 당황이 섞인 짧고 퉁명한 목소리입니다.

나는 여전히 농담처럼 말합니다.

“리나씨가 지금 상상하는 거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어이없다는 그녀의 목소리지만, 화를 내거나 전화를 끊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기, 그녀도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는 웃으며 말합니다.

“무슨 상상했어요?”

“아무 상상 안했어!”

"나는 상상했는데."

"뭘?"

"리나씨가 상상하는 거요."

"아무 상상 안했다고!"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그녑니다.

"왜 화를 내세요?"

"니가 장난만 치니까. 그렇지."

"장난이라뇨? 장난치는 거 아닙니다."

"그러면 뭔데?"

같은 장난을 여러 번하면 짜증냅니다. 이제 말꼬릴 돌릴 시간입니다.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

"약혼자를 사랑하세요?"

조금 강렬한 스매싱을 날립니다.

대답이 늦습니다.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 외간 남자와 이런 말도 안 돼는 내기라니, 그녀 스스로 배덕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놀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배덕감 때문에 생기는 신선함과 흥분이죠.

"그-건 왜 물어?"

배덕이 그녀를 괴롭히지만, 배덕이란 스릴 또한 그녀를 괴롭힙니다.

"궁금해서요. 어떤 사람이기에 리나씨 같은 여잘 잡아나 궁금해서."

"좋은 사람이야."

확신 있는 목소리라기보다는 확신하려고 하는 목소리 같습니다.

"저도 좋은 사람입니다."

"흥, 어디가?"

"그럼 나쁜 사람인가요?"

"말장난 하려고 전화한 거야?"

천만에 말씀 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인상을 남겼으니 끊어야겠지요.

"리나씨 급한 일이 생겨서 내일 전화 할게요. 아참, 리나씨, 제가 첫눈에 반했다는 거 아세요?"

리나가 대답하기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것으로 떡밥은 뿌렸으니 적어도 그녀는 두 번째 전화가 오기를 기다릴 겁니다.

다음 전화는 5일 후에 걸었습니다. 충분한 인터벌이 중요한 부분이니까. 적어도 왜 전화를 하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식상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왜 사람들이 이런 식상한 방법을 계속 써왔을까요? 그것은 이 식상한 방법이 사실 가장 잘 먹히는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사람의 마음이란 당연할 거라 예상하는 곳에서 빗나가면 그때부터 없던 관심도 생기는 법입니다. 매일 연락하고 만나자고 졸라야 하는 상황에서 연락을 뚝 끊는다면 분명 그녀는 없던 관심도 생길거란 거죠.

게다가 내기의 기한을 열흘로 못을 박고 시작한 거니까. 하루하루 아까워 집요해져야 하는 시간에 무의미하게 5일을 버렸으니까. 그녀로서는 매우 궁금하게 여길 겁니다.

"전화 기다렸죠?"

"전혀!"

아니라고 부정하는 목소리에 신경질적인 느낌이 없더군요. 오히려 묻습니다.

"무슨 일 있었어?"

"큰일은 아니지만, 조금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며칠을 고민했죠."

"무슨 일인데?"

"전화론 좀 그렇고, 저녁에 시간 있어요?"

그녀가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런 얄팍한 속임수는 안 통해."

나는 장난기 어렸던, 지금까지완 다른 정색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이런 들켰군요.”

분위기를 눈치 채길 바랐습니다. 여자들은 이런데 민감하니까.

"진짜 무슨 일 있는 거야?"

"--별일 없어요."

"아니,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짧게 한 숨을 쉬며 말합니다.

"술이나 한잔 사줘요."

잠시 대답이 없는 리나. 그녀는 호기심과 무시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말합니다.

"좋아."

일 단계 공사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저녁에 리나를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평소 모습을 처음보지만, 제법 공들여 꾸몄음을 알 수 있겠더군요.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나는 굉장히 기쁜 듯 과장되게 손을 마구 흔듭니다. 마치 강아지가 주인을 맞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야아, 하지 마!"

창피해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진 그녑니다.

"도대체 뭐야. 창피하게."

"보니까 좋아서 그렇죠."

"거짓말!"

"말했잖아요. 첫눈에 반했다고."

"흥."

콧방귀를 세게 뀌지만 제 말이 싫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뭐 좋아해요?"

"커피."

커피를 주문하자마자 리나 서둘러 묻습니다. 아무래도 제게 기회를 안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여자 친구랑 헤어졌어요."

언제라곤 말 안했습니다. 헤어지 건 맞지만 말입니다.

"에엑, 왜?"

"끝날 때가 된 거--겠죠."

"싸웠어?"

"미래가 안보인데요."

"에에, 그쪽일 돈 많이 벌지 않아? 요즘 다들 컴퓨터 쪽이 비전이 좋다고 난리던데."

당시엔 그랬죠. 컴퓨터 관련 학과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던 시절이니까.

"돈 문제보단. 만날 바빠서,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그러다 약속도 제대로 못 지키고."

"그건 너무했다. 여자는 시간이 없다, 바쁘다는 말을 관심이 없어졌다로 듣지,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전화 한 통화 할 시간이 없을까."

"그런가요?"

"당연하지,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사과하라고."

"이미 끝났어요."

"왜?"

"미래가 보이는 남자랑 만난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여잔 한 번 마음이 바뀌면 절대로 안돌아 온다면서요."

"그건 그렇지."

“리나씨는 어때요. 미래가 보이는 분과 만나셨나요?”

“나, 나야-.”

말을 하려 멈춘 리나가 한 숨을 쉬었다.

“내가 남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는 아니지. 약혼식을 할 때까진 괜찮았는데, 그 이후 서로 싸움도 잦아지고, 연락도 뜸하고, 만나도 데면데면해졌거든. 안 그러면 또 싸울 것 같아서 말이야.”

“아니 왜요? 약혼까지 했으면서.”

“그걸 모르겠다는 거야. 내가 잘 결정한 건지, 이 선택에 후회가 없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결혼하면 지금까지 평생을 살아왔던 집을 떠나는 거잖아. 그런 거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달까. 머리가 복잡 하달까.”

그녀는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겁니다. 스스로에게 책임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 거죠.

그녀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만, 결혼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결혼이란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관계를 알지 못하면 희생이란 이름의 잘 포장된 자위밖에는 얻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아버지가 되어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는 자위, 어머니가 되어 평생 남편과 자식의 뒷바라지를 했다는 자위. 그런 것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이란 나란히 걷는 게 아니라. 앞선 사람의 등을 보고 그 뒤를 따라가며 힘에 부칠 때 밀어주고, 끌어주며 혹은 자리를 바꿔가며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입니다.

“에엑, 나보다 나이가 많았단 말이야?”

그녀의 표정이 가관입니다.

“거짓말!”

“그런 걸로 거짓말 안합니다.”

제가 좀 많이 동안입니다. 지금은 그나마 흰머리도 생기고 나아졌지만, 어릴 땐 나름 고민이었습니다. 특히나 회사일로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입장에서 어리게 보인다는 건 마이너스일 때가 많았거든요.

여튼 리나는 제 나이를 듣더니 황당해 합니다.

“도저히 못 믿겠어.”

운전면허증을 깠습니다. 면허증의 생년월일을 뚫어져라 보는 그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습니다.

“어쩐지 능글능글 하더라니.”

“그래서 제가 싫어졌나요?”

“처음부터 좋아하지도 않았어!”

“이제부터 좋아하면 되겠네.”

“조금 있음 유부녀야!”

“아직은 아니죠.”

갑자기 그녀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왜 그러는 거야? 다 알면서 왜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냐고?”

“혼란스러우세요?”

“당연하지.”

“좋다고 따라다닌 남자 없었어요?”

“결혼하잖아.”

“아하! 그러면 혼란스러울 것도 없잖아요. 이미 경험해 봤다면 말이죠.”

“원하는 게 뭐야?”

나는 그녀의 기억을 상기시켜야 했습니다.

“우리 내기 중 아니었나요?”

그녀의 눈이 표독스러워 집니다.

“내기라서 이러는 거야?”

나는 웃으며 말합니다.

“내기는 핑계죠. 말했잖아요. 첫눈에 반했다고.”

“그걸 믿으라고?”

“사람은 말이죠. 자신이 진정 원해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 해요. 하지만 자신이 정말로 원해서 선택했던 적은 거의 없지요. 무언가에 떠밀려서, 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지못한 선택을 하고, 그걸 자신이 원했다고 믿으려 해요. 리나씨는 어때요. 진심으로 약혼자와의 결혼을 원하고 선택했나요?”

그녀를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할 수 있다면 그건 거짓말쟁이 뿐일 겁니다.

“가끔은 자신이 주인이 돼서 선택을 해보시는 건 어때요. 그러면 뭔가 바뀔 수도 있지 않겠어요? 한 번의 선택으로 모든 게 바뀔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니까.”

그녀의 눈이 갈등으로 흔들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입니다.이제 흔드는 건 그만해야 합니다. 감나무를 흔들 때 감이 떨어질 만큼만 흔들어야지, 너무 심하게 흔들면 감나무가 부러지게 되니까. 부러진 감나무에선 감이 열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리고 이건 내기입니다. 그녀는 잊을지 몰라도 전 잊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술 한 잔 할래?”

그녀로선 장족의 발전입니다.

“한 잔으로 끝나진 않을 텐데요.”

“많이 마셔?”

“술만 먹고 끝나진 않을 거라고요.”

그녀가 처음으로 웃습니다.

“하는 거 봐서.”

“저 아주 잘합니다.”

그녀가 소리 내어 웃습니다.

“뭘?”

“리나씨가 지금 상상하는 거요.”

“나는 아무 상상 안했어.”

“전 상상했어요.”

그렇게 그녀와 나는 술을 마시러 갔습니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잊어버렸던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해집니다.

짧지만 강했던 기억인데,

어째서 인지 시작과 끝만 기억하고,

중간에 벌어진 일은 잊고 살았을까요.

이야기는 3부로 이어집니다.

뚜삐 컨티뉴.

나나 컴.

- 나는 전설의 변태다. -

그간 사업을 하면서 접대며 뭐며 업소에 많이 다녔지만,

업소처자 안 좋아합니다.

이놈저놈 했던 처자는 재미없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엉성한 신음소리에 서던 좆도 죽습니다.

우연을 가장한 인연으로 치장해서 서로 즐기는 건 좋아합니다.

끈적이는 거 싫어해서 쿨하지 않으면 손가락 하나 안댑니다.

대화가 안 통하는 머리 빈 여자는 더 싫어합니다.

나름 화려한 언변과 뻔뻔함으로 승부합니다.

이건 그런 기록 중 하나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3부. 승부는 9회말 투아웃부터.

나무로 만든 칸막이가 되어 있는 술집엔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소주를 시킵니다. 안주가 도착하기도 전에 소주를 한 잔씩 마십니다.

“이렇게 여자를 자주 꼬시나봐?”

“방법론적으로 말하면, 이런 식은 처음입니다.”

“이런 식은 처음이라니, 평소엔 어떤 방법을 쓰는데?”

“남들하고 똑 같죠. 인연이 되면 만나고, 아니면 못 만나고. 우리도 인연이죠.”

“우리가 인연이었단 거야?”

“굉장한 인연이었을지도 모르죠. 그런 곳에서 우연히 그런 식으로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통계적으로 따져 봐도 어마아마하게 적은 확률로 만났으니 인연이라고 할 수 밖에요.”

“좋은 인연 같진 않아.”

“인연이 악연이 될지 필연이 될지는 지나봐야 아는 거죠.”

“우린 악연이 될 거야.”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죠?”

그녀가 소주를 연거푸 두 잔을 마셨습니다.

“결혼식 한 달 남겨놓고, 딴 남자랑 이러고 있는데 악연이 아냐?”

그건 마치 내가 미친년이지 하는 소리 같았습니다.

“전 아직 아무 짓 안했습니다만.”

“할거잖아!”

“하게 냅둘 겁니까?”

그녀가 피식 웃습니다. 그리고 가슴을 내밀며 도발적으로 묻습니다. 그녀 나름의 공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떨 거 같아?”

“이럴 거 같은데요.”

나는 곧장 팔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잡았습니다. 제법 손안에 잡힙니다. 뽕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건 벗겨봐야 알겠죠.

갑작스런 직구에 그녀의 어깨가 움찔했지만, 피하지 않더군요. 오히려 가슴을 만지는 내 손을 봅니다. 그러다 의자에 등을 기대는 척하면서 내 손을 피합니다.

“당신이란 남잔 참 뻔뻔하구나.”

“왜요?”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만지면, 내가 더 당황하잖아.”

“뽀뽀도 했는데, 가슴 만질 땐 조심해야 하는 건가요?”

그녀가 쓰게 웃습니다.

“말을 말아야지.”

“약혼한 남잔 잘해요?”

“뭐? 그거?”

“네.”

그녀가 갸웃 거립니다.

“경험이 많지 않아서 어떤 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어.”

“몇 명이나 되는데요?”

“두 명.”

“약혼자 포함?”

그녀가 고개를 젓습니다.

“아니, 약혼자까지 경험이 세 명이나 되는데 잘하는 게 뭔지 몰라요?”

“처음엔 너무 어려서,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첫사랑이었던 남자친구와 했는데, 기분이 나빴어. 아프기만 하고 좋은 건 하나도 없었거든, 남자친구는 대학에 떨어지면서 잊혀지고, 두 번째는 대학교 때 선배였는데, 많이 좋아하진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친해지고 술을 자주 먹다가 어느 날 인사불성이 되게 취했고, 그렇게 됐지, 하지만 그 선배도 경험이 별로 없었다고 생각해. 그보단 아무데서나 하고 싶어 해서 곤란하고 짜증나서 헤어졌지. 그리고 약혼자인데, 이 사람은 너무 정중해. 소심하달까. 유유부단하달까. 사귄지 일 년이 훨씬 넘도록 손가락하나 제대로 못 댔거든, 그러다 술 한 잔 먹고 겨우 같이 잤지. 그런데 아침에 자기한 일에 책임을 지겠다고 그러는데 막 짜증이 날 정도였어. 집안도 괜찮고, 능력도 있고, 거기다 성실하기까지 하니까 결혼하면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약혼도 하고 결혼 준비도 하는데.”

한 숨을 막 내쉬던 그녀가 화를 냅니다.

“내가 왜 이런 소릴 당신한테 해야 하는 거야!”

“이런 거 아닐까요.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말이죠. 누군가 옆자리에 앉게 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로 하다보면, 가족이나, 친구처럼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게 되죠. 그건 아마도 익명성과 비밀이 지켜질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내가 하는 말의 비밀도 지켜질 수 있다는 그런 거 말이죠.”

“당신은 나 알잖아.”

“이름이 리나씨라는 것과 전화번호만 알죠. 그 외엔 아무것도 묻지 않았잖아요. 그리고 나를 신뢰하잖아요.”

“웃기지마, 당신을 언제 봤다고 신뢰를 해.”

“그럼 왜 말했어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일 텐데.”

“오늘은 역시 내가 미쳤나봐. 이런데 오는 게 아니었는데.”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어떻게 생각하는데?”

“뭔가 부족한 게 있는데, 그걸 잘 몰라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해요.”

“부족한 거? 그런 거 없어.”

“있어요.”

“뭐?”

“저한테 말하지 않았나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잖아요.”

결혼을 앞두고 그녀는 여러 가지 문제로 고민을 하는 중입니다. 그 모든 원인은 하나뿐입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부족 한 거죠.

“자신이 옳은 결정을 내린 건지, 이대로 행복한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고, 누구에게 묻고 싶고 답을 얻고 싶은데, 가족이나 친구, 주변 사람들은 당신이 얼마나 좋은 남자를 만났으며, 그 남자와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본인은 그런 확신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누군가에게 확신을 얻고 싶은 거죠. 안 그런가요?”

“당신 상담사야?”

“경험이겠죠. 리나씨가 생각해보지 못한 여러 가지 경험을 했으니까요.”

“그거 궁금한데.”

“기회가 되면 나중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곤 묻습니다.

“당신 생각은 어때?”

“해답은 언제나 하나예요. 경험해 보세요. 새로운 것들을.”

“예를 들면?”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봅니다.

“섹스, 연애, 이별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런 게 무슨 도움이 되지?”

“적어도 경험은 되죠. 경험은 사람을 자라게 하잖아요.”

“부정을 저질렀단 죄책감은 없고?”

“그것도 포함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죄를 짓고 살아요. 나도 당신도 단지.”

나는 젓가락을 가로로 놓았습니다.

“이렇게 선을 정해놓고 넘어서느냐 아니냐로 자신의 죄의 무게를 정하죠. 이 선의 아래쪽에 있거나 경계에 걸쳐 있으면 죄가 아닐까요? 약혼자와 섹스를 할 때 다른 남자 생각을 하면 그건 죄가 아니고,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해야만 죄가 되는 걸까요? 예전에 했던 섹스에 대한 것은 어때요? 그건 시효가 만료된 것이라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건가요?”

“후회를 하잖아.”

“왜요?”

“철모를 던 시절에 했던 잘못된 결정에 대한 거지.”

“거기서 모순이 생기는 거예요. 생각해봐요. 그 당시에 당신은 거짓이었나요? 첫사랑의 남자와 섹스를 결심했을 때 잘 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했나요? 두 번째는 어때요.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를 했나요?”

“아, 싫다 이런 진지한 토론은.”

그녀가 소주잔을 채웁니다.

“당신 말이야. 말로 성욕을 채우는 변태지?”

소주를 마십니다.

“말로 상대를 상처주고 기쁨을 느끼는 변태 맞지?”

“눈치 채셨군요.”

내가 웃자 그녀도 따라 웃습니다. 소주잔을 채워 건배를 하며 단번에 마십니다.

“가죠.”

“어딜?”

“섹스하러요.”

“싫어.”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러갔습니다. 계산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다가옵니다. 계산을 마치고 술집을 나올 때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마치 꼬리처럼 내 뒤를 따라옵니다. 그녀의 팔을 잡아 내 팔에 둘렀습니다. 길거리를 걷는 보통의 연인처럼 그렇게 팔짱을 끼고 걸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얼큰하게 올랐던 취기가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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