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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이야기 - 하 

 

모르긴 몰라도 츠카사는 아마 1미터는 위로 펄쩍 뛰어 올랐던 것 같다. 하긴, 바로 옆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금 마주치기 가장 거북스러운 사람이 와 있다면 얼마나 놀랍겠는가. 

“너...너...” 

“왜 그리 놀라는 거야, 고양이? 내 질문에 대답은 언제 해 줄 거고?”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에 올라와 바로 옆에 누운 규는 츠카사가 누워야 할 자리까지 차지해가며 뺀질거렸고, 츠카사는 그런 규의 행동에 다시 한 번 이마에 혈관 마크를 띄울 수 밖에 없었다. 

“안 나가면 소리 지른다...” 

 

 

하지만 고작 그런 위협에 기죽을 규가 아니었고, 츠카사가 생각하기에도 이 위협은 너무나 형편없었다. 

사실 그다지 싸움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에,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녀석을 위협하거나 아니면 희롱하려는 녀석을 위협한 적이 많은 츠카사였다. 그녀가 볼 때, 위협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힘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가장 효과적으로 먹혀들어간다. 남의 힘에 의지하는 위협은 상대방에게 무시당할 뿐이다. 

“원한다면 질러.” 

“...뭐?” 

“질러도 상관없다는 이야기야.” 

“......” 

츠카사는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몇 번이나 시도를 해 보았다. 하지만 목에서 도저히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의 자유를 빼앗긴 것은 아니다. 그가 자신을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순수한, 본능적인 자신의 의지였다. 하지만 그녀의 이성은 그걸 인식 못 한 듯, 계속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움직이려 애를 썼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규는 천천히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나를 거부하려는 거야?” 

츠카사는 드디어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찾아내었다. 그녀는 규를 노려보면서 재빨리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난 네가 두려워. 넌 너무 강해. 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하질 않나, 내 움직임보다 더 빨리 움직이질 않나, 또 내 옆에 나타나질 않나. 

또, 넌 너무 자신만을 생각해. 내 의견 따위는 생각도 않고 있잖아? 허락없이 내 몸을 만지는 행동 따위 절대 용납할 수 없어, 그런데 너는 아주 심하게 그 행동을 해 버렸잖아. 

그리고...이제는 내가 한 가지 질문을 할 게.” 

규는 츠카사를 멀뚱멀뚱 바라보면서 - 사실 아직까지도 규의 페이스다 - 대답했다. 

“질문은 내가 했지만, 또 만족할 만한 대답도 - 이 부분에서 츠카사는 찔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끝이야’ 라고 말한 주제아닌가 - 아니었지만, 뭐 받아주지.”

드디어 왔다, 기회가. 츠카사는 숨을 한 번 몰아쉬고, 가슴을 진정 시킨 뒤,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는 직설적으로 물어보았다. 

“...너...도대체 누구야?” 

규는 참 뻔한 걸 물어본다는 듯이 코웃음치며 대답했다. 

“아까도 말하지 않았나? 이름은 강 규, 국적은 한국...” 

“그런 게 아니잖아!! 내 말은, 그러니까...그러니까 너는 누구냐는 거야!!” 

츠카사는 소리를 꽥 지른 순간 ‘아차’ 했다. 여기는 양호실인데...자신도 모르게 초조함과 긴장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게다가 규가 와 있어서 조심하는 형편이었는데...아니, 잠깐만...왜 내가 이 녀석이 여기 왔다고 조심해야 하는 거지...이, 일단 바깥의 동정을... 

덥썩. 

“나가지 마.” 

츠카사는 자신의 손목의 규의 손아귀에 잡힌 것을 느끼고는 뿌리치려 하였으나, 규의 손 힘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츠카사가 온 힘을 써도, 보통 인간이라면 팔이 끊어질 정도로 힘을 써도 규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가지 마. 신경쓰지 마. 여기 있어. 내 대답을 듣고 가. 알겠어?” 

“아, 아니 잠깐...” 

“알겠냐고!!!” 

“네, 넷!! 아, 아니...응...” 

규가 소리지르는 순간 기에 밀려 순간적으로 존댓말로 대답한 츠카사였지만, 아무래도 규는 거기에서 더 밀고 들어갈 생각이었던 것 같다. 

“넌 내가 누군지 물어봤어, 즉 내 이름이 강 규고 한국인이라는 사실, 내가 아노즈카 고교 2학년 C반이라는 사실과 1987년 10월 6일 생이고 아무도 신경 쓰지 못하지만 머리카락이 길며 푸른색이라는 사실 외에 다른 것을 알고 싶다는 건가? 그 이상을 알고 싶다는 건가? 눈 떨구지 말고 똑바로 봐! 대답을 들을 때는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는 게 예의야, 똑바로 보라고!” 

규는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나약하게 고개를 떨구고 있는 츠카사의 얼굴을 한손으로 들어 올렸다. 

츠카사는, 등교 했을 때에 이어 다시 한번 그의 눈을, 규의 눈을 깊게 응시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깊고 - 

너무나도 깊고 - 

너무나도 깊어서 - 

두려워지는 - 

하지만 외경심마저 생기는 - 

그러면서도 뭔가 - 

뭔가 - 

함께 있고 싶은 - 

그러나 동등하고 싶지는 않은 - 

무언가를 - 

느끼게 하는 - 

규는 그런 츠카사를 천천히, 더욱 더 천천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가,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어떻게 천천히 할 수 있단 말인가.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봐 보라. 그리고 천천히 바라봐 보라. 어떻게 하여야 천천히 바라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분명히 츠카사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알겠어?” 

“...응...” 

“내가 누군지 알겠어?” 

“...응...” 

규는 츠카사의 턱을 고정시키고 있는 손에 힘을 빼며 천천히 츠카사의 볼 쪽으로 옮겨갔다. 그의 손이 자신의 턱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츠카사는 다시금 숨결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난 네가 누군지 몰라. 내가 아는 건 기껏해야 네 이름이 ‘아카기 츠카사’ 이고 원룸이라고도 불러주면 황송한 상가 다락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것과 주변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학생이고 주제에 진학학교에서 상위권에 들만큼 공부에도 열심이라는 것, 그리고 키는 161 cm 에 몸무게는 44 Kg, 시력은 양쪽 눈 다 2.0으로 의사가 구분하기는 했지만 실상 3.0에 가깝고, 체육점수가 100점 아래로 나온 적은 단 한번도 없으며 조그만 악취에도 민감해서 도시 생활을 꽤나 싫어하고 청각도 예민해서 밤 새 불면증에 시달리는 녀석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어. 넌 누구야? 넌 누구지? 아니, 말 해 볼게. 넌 네가 누군지 몰라, 스스로도 알지 못해. 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지? 내가 넌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넌 뭐라고 대답할까? 지금 한번 대답해 줄 수 있어?” 

츠카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이야. 나는 누구지?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저 사람은, 대답해 주었어, 자신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런데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내가 누구냐는 질문에? 난 누구지? 무어라 대답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난...난...난...아카기 츠카사야...” 

한참 동안이나 더듬거린 끝에 그녀가 내놓은 대답이었지만, 그녀 스스로도 굉장히 형편없는 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대답에 비하면 형편없는 답이라는 거 알지.” 

“...응...” 

“일단, 네가 답을 모르는데 답할 수는 없는 거잖아.” 

“...응...” 

그녀는 완전히 규의 말에 수긍하고 대답만하는 자신을 보며, 규와의 싸움에서 자신이 완패했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다. 자신이 규에게 고개를 숙이고 항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 마당에는. 

“난 네가 누군지 알아낼 수 없어. 네가 누군지, 너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존재인지, 나에게 말해줘, 언제가 되었든지 간에, 답을 알게 되었고 또 말해줄 기분이 든다면.” 

그 말을 마친 뒤, 규는 천천히 츠카사의 손을 놓고 얼굴에서 손을 뗀 뒤, 침대에서 일어나 양호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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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직은 춥네.” 

아직까지는 겨울. 아직까지는 낮도 짧다. 해가 다 져서야 학교 근처의 상가에 있는 자신의 다락방 - 이라고는 하지만 꽤 좋다 - 으로 돌아가며 츠카사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집이 없이 다락방을 세 내어 살고 있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바쁘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는 것이 현실이었다. 사실 창고로 쓰던 방을 빌려 쓰는 것이기는 했지만, 요즘 이것저것 아무 쓸데없는 것에도 돈 붙이는 풍토에서 건물주인 아줌마가 츠카사에게 제시한 가격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선심을 쓰는 것이었다. 

‘아유, 상경해서 공부하는 거여? 힘들 것네, 내도 그래 봐서 그게 힘들대는 거 알제...그런데 우리가 돈을 많이 제시하면 워쩌겠나? 월 만 오천만 받을테니 부담갖지 마유 - ’ 

오사카 방언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억양이 정겨운 아줌마였는데 - 만 오천엔, 맥 뿐 아니라 레스토랑 서빙까지 하고 있는 자신의 입장이지만 그다지 가벼운 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다른 방에 비해 어이없을 정도로 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입주가 그리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츠카사에게 방을 내 주겠다고 건물주가 상인들에게 밝혔을 때, 상인들은 많은 불평이 있었다. 

그렇다면 24시간 건물을 열어놔야 하는 것인가? 건물 관리인의 마지막 역할을 츠카사에게 맡기자는 것인가, 가난한 고학생에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밤 늦게 들어오는 날도 있는 아이에게? 

이 질문을 해결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 츠카사는 결국, 5층 꼭대기에 있는 자신의 다락방 창문을 언제나 열어두고, 다락방 문은 나무 판자로 못 박아두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래서, 츠카사는 언제나 자신의 ‘집’ 에 들어갈 때는 아래층 창문을 밟고 마치 고양이처럼 뛰어올라서 들어간다. 

‘고양이...반은 맞는 말이니까...’ 

고양이라는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츠카사는 잊을 수 없게 되어버린 한 사람이 떠올랐다. 불과 알게 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츠카사는 지금 떠올린 그 사람이 지금껏 몇 년 간 알아온 사람들 보다 더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입...아직도...’ 

츠카사는 벽을 밟고 올라가면서도 낮에 자신의 입안을 애무하던 규의 손가락을 떠올렸다. 그의 손가락에서는 보통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염류와 기타 잡다한 물질들의 맛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의 예민한 미각으로 다시 한번 기억해 봐도 그의 손가락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 따뜻...한 것도 맛이라면 맛일까?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혀를 입 안에서 굴리던 츠카사는 갑자기 자신이 내일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태양이 뜨는 것을 기다린다니. 언제나 밤이 편하고, 그래서 때로는 야행성 생활도 즐기던 자신이었는데, 지금은 어둠이 싫어지고 있었다. 어둠이 너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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