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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카페 알바녀 1


카페 알바녀 1  

 

겨울이 한걸음 물러난 어느 봄날이었다. 결혼을 앞두게 되면 남자건 여자건 오만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내가 하는 결정이 맞을까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노는 것은 끝났다는 젊음의 사형선고를 받은 느낌도 든다. 남녀관계가 가장 위험할 때는 결혼 후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가 아니라 바로 결혼 전후라고 봐야 옳다.

 

 

나는 결혼을 앞둔 예비 유부남이었고, 당시 주업 외에 아르바이트 비슷하게 실내건축 수주를 따는 일을 했었다. 당시 나는 종로에 있는 공사를 따냈고, 좋든 싫든 내장공사 기간 동안 현장에 자주 들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저마다 결혼 축하해, 혹은 청첩장 나오면 말해 꼭 갈게 등등의 마음에 없는 말을 하기 바빴다. 나는 겉으로는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가슴 한구석에 쌓이는 착잡함을 남모르게 감추고 있었다.

 

답답해서 먼지 날리는 현장에서 나와 담배를 피웠다. 봄이 되니 여자들의 치마는 짧아졌고, 패딩이나 코트에 감추고 있던 몸매들을 경쟁하듯 드러내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먼지 낀 목으로 넘어가는 담배가 더 쓰고 맛이 없었다. 어차피 그림의 떡이요 못 먹을 산해진미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후회가 밀려왔다. 억울하기까지 했다. 어떤 놈들은 길거리에서 헌팅을 하거나, 혹은 나이트에서 여자를 만나 황홀한 원나잇을 즐긴 것을 술자리에 안주로 가져오는데, 나는 20대 때 뭘 하고 살았나 싶었다. 이제부터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 된다고 생각하니 초조하고 짜증이 났다. 이제 곧 결혼인데 나도 헌팅이라는 것을 해보고 마지막을 불태울까? 하는 생각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론, 20대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시기이지 아랫도리에 물주는 시기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 생각은 참 한심하기 그지없는 자기 합리화였다. 그러나 사람은 특히 남자는 누구나 그렇듯이, 간절하고 억울할 때 드는 자기 합리화가 굉장히 합리적인 이유인 줄 착각한다.

 

목이 말라 길 건너 카페에 들어갔다. 종로에 한 100개는 있을 법한 카페들 중 하나인 곳이었고, 평일 오후 카페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맨 구석진 자리에서 혼자 공부를 하는 여학생인지 남학생인지 구분 안가는 여학생 한 명이 있을 뿐이다.

 

‘그래. 아무리 궁해도 쟤는 아니야.’

 

“어서 오세요.”

 

카운터에 앉아있던 알바생이 일어나 인사를 했다. 뭔가 한참 동안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족히 170cm는 되어 보이는 키에 카페 유니폼으로 아주 훌륭하게 잘록한 허리라인이 보였다. 위생상 착용한 모자와, 묶은 머릿밑으로 보이는 하얀 목선이 예뻤다. 순식간에 내 시선이 봉긋한 그녀의 가슴에 약 0.5초 머물렀다가 다시 얼굴로 올라오는 순간, 그녀가 자본주의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문하시겠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내 카드를 받아 결제하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손님이 없어서인지 알바생도 그녀 한 명뿐이다. 나는 커피를 내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치마 밑으로 뻗은 다리를 미술작품 보듯이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한 마디 내뱉었다.

 

“몇 살이에요?”

 

“네? 아… 스물 세 살이요. “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나이를 물었다. 여기가 나이트 부킹 자리도 아닌데 나이를 왜 물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녀의 다리에 홀린 것이 틀림없다. 홀린 것 치고는 자연스럽게 줄줄 질문들을 쏟아내었다.

 

“대학생이에요?”

 

“네. 맞아요. “

 

“여기 자주 오는 편인데 처음 보네요. 언제부터 일했어요?”

 

“아…… 저 사실 오늘이 4일째에요.”

 

“어쩐지.”

 

그 카페는 머리에 털 나고 처음 가보는 카페인데도 불구하고, 내 뻥은 이상하게 잘 맞아 떨어졌다.

 

“일을 잘하나 봐요? 4일 된 직원을 혼자 두는 걸 보니까.”

 

“아. 사실 다른 카페에서 일했었거든요. 방학 때마다.”

 

그녀는 내 질문에 꼬박꼬박 성의 있게 대답해 주었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시간은 너무 순식간이었지만 그사이에 나는 몇 개의 질문을 더 던졌고, 그때마다 그녀는 성의 있게 웃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이쯤 되니까 먹고 살려고 상대해 주는 건지, 호감이 있는 건지, 아니면 사장의 서비스 교육이 투철한 건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래도 착하시네요. 나 대학교 때는 알바 안하고 부모님께 손만 벌렸는데.”

 

“하하. 아니에요. 요새 다들 그래요.”

 

“알바 하면 애인 만나서 데이트하기도 힘들 텐데.”

 

이 얼마나 아재스러운 말인가. ‘애인’과 ‘데이트’라니. 내 말에 그녀는 대답 대신 웃으며 내 커피를 내밀었다.

 

‘남자친구 없어요.’ 라든지 ‘가끔 만나요.’라든지 남친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은근히 암시해줘야 예의 아냐?’

 

아니, 생각해보니 무슨 상관인가 싶다. 나는 뭐 솔로인가? 오히려 조금 있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회사-집을 반복해야 하는 운명 아니던가? 그녀가 남자친구가 있던, 섹스 파트너가 한 50명 되든 간에 상관없는 일이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아쉽게도 그녀가 내민 커피에 우리의 대화는 이어지질 못했다. 이래서 여자도 후려본 놈이 후리는구나 싶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짜릿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걸어 대화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가여운 나의 20대. 다시 돌아간다면 여자만 보이면 말을 걸고 나이를 물어볼 테다.

 

“그럼 내일 또 봐요.”

 

“네?”

 

잘 나가다가 나도 모르게 또 실언을 했다. ‘내일 또 봐요.’라니. 그녀의 당황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지만,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내일 또 봐요.’ 였다.

 

“아. 이 시간에 여기 또 올 거 같아서요. 내일도 이 시간에 알바 하시죠?”

 

“아….네.”

 

좋아! 자연스러웠어! 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지만, 아마도 속으로 ‘별 미친놈이 다 있네’라고 생각하고 있을 그녀를 뒤로하고 나는 쪽팔림이 담긴 조금 빠른 속도의 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왔다. 역시……해본 놈이나 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나는 다음날, 정확히 1분의 오차도 없이 같은 시간에 그 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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