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은주의 초대-3화
좋아하는 은주의 초대-3화
< 실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
< 어, 누구....들어 오시라구 해 >
다음날 사무실에 출근해 현장자료를 검토하고 있자니 비서실 미스서가 들어왔다
작업인부는 따로 하청업체에서 관리하니까 회사내엔 사무직원 10여명밖엔 없는데도 굳이 사장님이
내방을 안쪽으로 빼고 여비서를 붙혀주셨다
똑똑!
< 네...들어 오세요 >
노크후 문이 열리고 난 나머지 서류를 검토하고 있어서 아직 누가 들어왔는지 몰랐다
< 이......실장님....을 뵈러 왔는데요..... >
뜻밖의 여자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단정한 옷차림의 아가씨가 쭈삣쭈삣 서있었다
< 아...네...제가 이실장입니다만......어떻게 오셨는지요........이쪽에 앉으세요 >
바쁜 시간이었지만 여자가 들어왔길래 얼떨결에 자리까지 권해 앉혔다
자세히 보니 아가씨로는 보이지 않고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적당히 아담한 체구에
뒤로 쫑긋묶은 갈색 웨이브진 머리가 눈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 이분이 사오셨어요...여기다 놓을께요...실장님 >
미스서가 들어오며 손님이 사오셨다며 화병에 한아름 담긴 꽃을 내 책상 한쪽에 놓고 갔다
< 어떻게....오셨.......꽃까지 사오시고..... >
나는 내자리에서 일어나 쇼파로 가며 화병의 꽃을 한번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백에서 명함을 한장 꺼내며 내게 건넸다
< 청담동 사모님께서 실장님 명함을 주셨어요......제가 다음달에 이근처로 이사오는데.....
아파트 리모델링을 부탁하려고요..... >
< 아하....사모님께서요....잘 알겠습니다....하지만 리모델링이라면 담당부서가 있고 담당자가 따로 있으니까
제가 안내해 드리죠... >
명함은 내것이 분명했다
사모님이 친히 내 명함을 이여자한테 쥐어 보낸것은 특별히 신경써 달라는 부탁의 의미였지만
내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강원도 현장을 내손으로 수습해야했기에 담당부서로 넘기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고개를 돌려 인터폰을 누르려는데 그녀가 손을 가로저으며 다급히 저지했다
< 안돼요.....꼭 실장님께 부탁하라고 하셨어요 >
< 그래야하는 이유가 뭐죠? 저희 직원들 그방면에서 전문가들입니다.....저는 또 다른 급한일도 있고해서....
다른직원만큼 신경을 써드릴수가 없습니다.....사모님께서 보내주셨는데 소홀히 하면 안되잖아요..... >
< ............ 제가 이사갈집이......예전 사모님 딸이 살던 집이여요....전...그딸의 친구구요.....
사모님이 꼭 실장님께 말씀드리랬어요..... >
< ............................. >
< 얼마전 미국에서 귀국했어요....옛친구가 생각나 이제는 없지만 저또한 친딸처럼 챙겨주신
사모님이라도 뵈러 어제 댁에 들렸었어요 >
< ............................. >
< 죽은 지혜가 돌아온것 만큼 반겨주셨어요.....그리곤 제가 집을구하러 저먼저 귀국한 사실을 아시곤
지혜집을 가지라고 하셨어요.....그동안 사모님은 지혜가 죽고나서도 그집을 처분하지 않고
비워 두셨대요.....저는 그럴수는 없다고 사양했지만 사모님의 완강한 부탁을 거절할수는 없었어요.....
제가 돈이 없어서 그집을 받은건 아니랍니다.....제가 아니면 언제까지라도 그집은 비워두실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게 사모님에 대한 도리였다고 생각했어요.....제가......딸 노릇할거여요..... >
작지만 강한 어조로 내게말했고 난 충분히 그녀의 마음과 사모님의 의중을 알수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려 번호를 보니 사모님이었다
< 네...사모님....이실장입니다 >
< 아...이실장...손님 한분 거기 갔죠? >
< 네....지금 얘기 나누고 있었습니다......사모님께서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
< 이실장 바쁜건 내가 더 잘알지만......... >
< 말씀 안하셔도 충분히 얘기 들었습니다 사모님.....미처 제가 신경 쓰지 못한부분입니다....죄송합니다... >
< 아유.....아녀요....괜히 이실장한테만 .......내 딸이라 생각 해주면 고맙겠어요.... >
<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 >
< 공사비는 김기사편으로 보냈어요....더 필요하면 말하고...천천히 은주하고 상의해서 수리좀 해줘요... >
< 알겠습니다.....사장님은 좀 .... >
< 방금 일어나서 약드시고 신문 보고 계세요...어제 이실장 일과 늦게 은주가 다녀가서 그런지
많이 좋아지셨어요 >
< 늦잠 주무셨네요...하하하......이시간에 일어난적이 한번도 없으셨는데..... >
< 호호호....그러게 말여요..... >
난 정말 사장님일로 오랫만에 호쾌하게 웃을수 있었다
어찌됐건 건강을 조금씩 찾아가는 사장님을 볼수 있다는게 여간 힘이 되는게 아니다
통화를 마치니까 그녀도 조금은 안심이 됐는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달형 눈과 눈썹, 오독한 콧날과 작고 붉은 입술...이목구비가 또렷한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전형적인 미인형의 여자였다
< 언제쯤 식구가 귀국하시나요? >
< 다음달 말쯤요....며칠 빨라질수도 있고 며칠 늦어질수도 있어요 >
< 그렇다면......40일가량....남았군요 >
난 다이어리를 보며 인터폰을 눌러 김대리를 들어오라 지시했다
< 김대리! @@아파트 도면하고 자료좀 가지고 와바요 >
< 사모님께서 공사비까지 보내주셨어요...그거라도 제가 낼수 있게 해달랬더니 껍데기만 줄수는 없다면서...>
< 당연히 그러실 분입니다.....신경쓰지 마세요.....그나저나 현장엘 먼저 가봐야겠는데 어쩌죠?
아침 회의도 있고...숙소가 어딥니까? >
< 아빠집에 묶고 있어요....어제는 사모님댁에서 잤구요... >
< 네에......아침식사는 하셨나요? >
< 사모님이 일찍 챙겨 주셨어요....여기에 아침일찍 오지 않으면 이실장님 뵙기 힘들거라면서.... >
< 사실...강원도에 볼일이 있어서요....회의 끝나면 바로 가봐야 할것 같습니다 >
< 어머! 강원도요?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
< ................. >
난감했다......그녀는 마치 어린 소녀처럼 두손을 모으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정말이지 당장 따라나설
기세였지만 이런 미인과 같이 현장엘 간다면 사장님이 안계신틈을 타 애인과 여행다닌다고 순식간에
말이 퍼질것이다
그녀도 나의 그런 곤란한 입장을 눈치 챘는지 풀죽은 목소리로 포기하듯 말했다
< .......죄송해요....제생각만...... >
오랜 외국생활을 하다 방금 돌아온 여자다. 지나가는 모두가 친구같고 가족같고 애인같을것이다
처음보는 남자한테 반사적으로 따라가도 되냐는 이여자는 어쩌면 아무 사심없이 말했을것이다
지금 내가 그녀의 들뜬 마음을 무시하고 안된다고 하면 씻을수없는 상처를 안겨줄건 뻔하고
나역시 안의주의자로 상각될게 뻔했다
그리고....나역시 이런미녀와 여행을 간다는게 이만저만 기분설레는게 아니었다
< 아닙니다.....같이 가시죠.....견학이다 생각하시면 되죠... >
<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부담되시면 안가도 되요.... >
< 괜찮습니다.....현장에서 멀지않은곳에 바닷가가 있고 거기에 숙소를 마련하면 되겠네요......
이삼일 걸릴것 같아서요... >
< 정말 고마워요.....사실 서울온지 나흘됐는데 가본데라곤 백화점 밖에 없었거든요... >
금방이라도 터져버릴것같이 그녀의 눈가엔 잔뜩 이슬이 머물렀다
말하는거나 옷차림, 행동에서 나타나는 전체적인 이미지는 평생 고생이라고는 안해본듯한
품위가 넘쳐나는 여자여서 그런지 싸늘한 타인의 감정은 주체하지못하고 금방 아픔으로 느끼는
그런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