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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해 비밀이야


조용해 비밀이야 

 

“한 선생, 이것 좀 빨리 처리해 줘.”

 

“네, 알겠습니다.” 

“그것 오늘 오후까지 부탁 받은 것이니 퇴근 전까지 반드시 처리해야 해.” 

“네.” 

내가 퇴근 전까지 부탁하며 전달한 서류는 그리 급한 일이 아니었다. 항상 바쁘고 과다한 업무량에 허덕이고는 있지만 지금은 그녀를 내 옆에 더 오래 두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시급하지 않은 일이지만 언젠가는 처리해야 할 일을 지시하고야 말았다. 내가 그녀와 자연스럽게 사무실에 남게 될 건 수를 만들기 위한 방법이다. 

“사... 사장님, 이걸 오후까지 모두 다 처리해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내가 지난 분기까지는 작성을 했는데 그 뒤로 작성하지 못했어, 미안한데 한 선생이 좀 처리 해줘.” 

“하... 하지만 이 많은 양을...” 

“왜? 싫어?” 

전달 받은 일을 확인한 한 선생은 당황스러운 모습으로 내 앞에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만일 거부라도 한다면 나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위기였다.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일이 많아서 퇴근 후에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됐다. 한 선생이란 여직원이 내가 내민 미끼를 덥석 물고야 말았다. 이제 한고비를 넘게 되었으니 음흉한 마음으로 혼자 자축을 할 시간이다. 침착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 한 선생을 향해 진지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 그렇게 많은 양이면... 하는 수 없지, 나랑 같이 야근이나 하자고.” 

“사장님도요?” 

“내가 했던 일이니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야, 겸사겸사 다른 일도 할 겸...” 

“아, 알겠습니다.” 

“어서 가서 일 해.” 

“네.” 

우리가 근무하는 회사는 작은 소규모 중소기업이다. 그리 넉넉지 않은 자산으로 사업을 꾸려나가다 보니 직원들이 과다한 업무량에 치여 산다. 그게 나는 항상 미안했고 직원들의 복지를 최선으로 두려고 노력하는 오너 중 한 명이다. 직원의 수는 총 4명, 직원의 비율은 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이 여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몇 년 째 착실히 근무하던 한 여직원이 임신과 함께 출산을 하는 바람에 한 선생이란 여직원이 보조 인력으로 근로공단에 지원을 받아 일을 하고 있다. 사회경험이 전무한 터라 처음에는 그녀를 받아 쓸 때 많은 고민을 했었다. 행정일이 다반사인 우리 회사에서 기초가 부족한 보조 인력을 지원받으면 그만큼 타격이 컸기 때문이다. 

며칠 일을 시키다보니 싹싹하기도 하고 나름 능력도 있어 이제는 출산을 위해 쉬고 있는 여직원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기특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보다 요즘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그녀의 외모와 잘록한 허리에 이은 히프 라인이었다. 소위 말하는 S라인이 나의 시선과 욕망을 사로잡고 있다. 

어떻게 하면 한 선생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그녀의 모든 것을 갖을 수 있을지 고민을 하던 중, 일을 핑계로 야근을 시키고 내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로 했다. 나쁜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의 손이라도... 허리라도... 한 번 잡아 볼 수 없을 것 같아 내린 결정이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가 지나가고 있었다. 

“와, 이제 곧 있으면 퇴근 시간이네!” 

“오늘 퇴근하고 찜질방이나 갈까?” 

“오, 좋은데요? 콜!” 

여직원들은 금요일 밤, 다 같이 찜질방으로 갈 모양이다. 물론 나에게 함께 가자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찜질방이라는 특성도 있겠지만 평소에도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일 같이 일에 대한 잔소리와 핀잔만 주다보니 인기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듯하다. 

“오늘 모두 수고했으니 일찍들 들어가.” 

“네, 사장님은 퇴근 안 하세요?” 

한 여직원이 나에게 퇴근을 하지 않느냐며 물었지만 책상에 고개를 숙인 채 한 선생 쪽을 응시하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의 대답이 없자 질문을 했던 여직원이 민망했던지 나에게 목례를 하며 자신은 퇴근을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한 선생에게 다가가 찜질방에 함께 갈 것을 말하는데... 

“한 선생은 오늘 시간이 어때?” 

“저는 아직 일이 남았는데요.” 

“무슨 일? 오늘 급한 일은 우리가 다 했는데.” 

“아까 오전에 사장님이 주신 일인데... 퇴근 전까지 모두 처리해야 한다고 하셔서...” 

“뭐라고?” 

한 선생의 말을 들은 아까 그 여직원이 나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성격 참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게 나를 쳐다보지 않아도 충분히 느끼고 있는 점이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한 선생이 다시 낭랑한 목소리로 그 여직원에게 말을 했다. 

“저는 괜찮으니 어서들 퇴근하세요, 저도 이걸 서둘러 끝내고 퇴근할게요.” 

“그래, 그럼. 그래도 금요일에 자기 일을 직원에게 시키는 사장이... 어디에 있어.” 

“괜... 괜찮아요, 그런 말씀 마시고 어서 퇴근들 하세요.” 

“그럼, 우리 먼저 갈게. 즐거운 주말 보네.” 

“네, 안녕히 들어가세요.” 

두 명의 여직원은 퇴근을 하며 내 욕을 바가지로 하고 있는 눈치다. 벌써부터 내 귀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찜질방에 가면 얼마나 심한 욕을 할지... 보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다. 찝찝한 마음에 다음 주에는 회식이나 한 번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요즘 회식을 언제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 사장님, 여쭈어 볼게 있어서요.” 

“어, 응... 뭔데?” 

“아까 저에게 주신 서류 중에... 이 부분은 제가 할 수 없는 부분 같아서요.” 

“어디?” 

한 선생이 들고 온 서류를 바라보며 살짝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백옥이 따로 없는 하얀 손... 엄지손가락은 너무 귀엽고 예뻤다. 내 입에 넣고 한 번만 빨아 봤으면 좋겠다는 나만의 망상을 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계속 쳐다보다가는 변태로 오인 받을 것 같아 다시 서류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 그렇군.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내가 하도록 하지.” 

“아, 그러면 저는 그 밑에만 하면 되나요?” 

“응, 그러면 되겠어.” 

“알겠습니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자 내가 평상시 바라고 원했던 그녀의 늘씬한 뒤태가 적나라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저... 저 S라인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져 볼 수 있다면... 아니 그보다 옷을 벗겨 두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단 말인가. 나이 40살에 결혼도 못한 내가 올해 22살의 한 선생에게 하는 생각은 주책인 것인가. 

“탁탁탁...” 

자리로 돌아간 한 선생의 빠른 타이핑 소리만이 작은 사무실에 남아 있는 나의 귀에 들려오고 벽에 걸려 있던 벽시계에서 뻐꾸기가 울기 시작했다. 

“뻐꾹~ 뻐꾹~” 

정시 때 마다 알리는 알림 소리인데 보통 직원들은 이 뻐꾸기 소리로 퇴근 시간을 맞추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시킨 터라 사무실에서 들려오던 여직원들의 기지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한 선생이 작업 중인 컴퓨터의 타자 소리만 은은하게 들린다. 이제 두 번째 행동을 개시할 타이밍이다. 

“아, 배가 살짝 고프네. 한 선생.” 

“네?” 

“일이 아직 많이 남았지?” 

“네, 조금 많이 남았네요.” 

“지금 당장 끝낼 수 없는 일이잖아.” 

“......” 

“그러면 우리 밥 먹고 할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전 저녁을 먹지 않는 걸요, 다이어트 중이라. 출출하시면 식사하시고 오세요.” 

매몰차게 나의 제안을 거부하는 한 선생이 야속하기만 했다. 나의 초기 계획은 이렇게 말하며 다가가면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팠다는 등의 말을 하며 식사를 하는 것이었는데... 계획이 빗나가버렸다. 일부러 사무실 앞에 있는 고급 식당에 예약까지 해 놓았는데. 이런 빌어먹을... 하지만 이렇게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그렇지? 그래도 시간이 되면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 나가서 밥이나 먹고 오자고.” 

나의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에만 열중하며 짧은 대답을 던진다. 

“아닙니다.” 

단호한 한 선생의 말에 더 이상 제의를 할 수 없었고 나는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한숨 소리에 행여나 한 선생의 심기라도 상할까 소리도 내지 못하고 조용해야 했다. 다른 묘책을 찾아야 했는데 첫 작전부터 어긋나자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가 된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쩌지... 이렇게 나의 제의를 거절할지 몰랐는데... 거참...’ 

한참을 멍하니 고민을 하던 중 어디선가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륵... 꼬르륵...” 

이 소리는 내 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 퇴근한 다른 여직원들의 배에서 들리는 소리도 아니다. 지금 나와 단 둘이 앉아 있는 이 좁은 사무실에서 나 말고 배에서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한 그녀, 바로 한 선생이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내 신경을 모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먹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배가 고프면 먹어야지.” 

“......” 

나는 계속해서 한 선생에게 밥을 먹자는 어투의 말로 유혹했고 좀 더 강한 말이 필요했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이... 

“요 앞에 가면 양념 불고기에 상추와 깻잎을 싸서 한 입 먹으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 

“가시죠!” 

미각을 자극하는 말을 하자 말이 아직 다 끝나지도 않은 상태인데 한 선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나에게 밥을 먹으러 가잔다. 당황한 표정으로 한 선생을 바라보자 손짓으로 밖을 가리키며 어서 나가자는 신호를 주며 말을 한다. 

“진짜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 할래요.” 

“어... 그래, 그래.” 

실패로 끝날 것 같은 나의 작전에 다시 탄력이 붙었다. 첫 작전부터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아 많이 당황했는데 이렇게 다시 성공으로 회유가 될 줄이야... 서둘러 한 선생과 함께 예약을 해 놓은 식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나는 당연히 정해진 식당으로 걸음을 옮기자 한 선생도 내 뒤를 졸래졸래 따라오기 시작한다. 

“사장님, 이곳은...” 

“응, 여기가 아까 내가 말한 그 곳이야.” 

“비싼 곳이잖아요.” 

“응? 그랬나?” 

“여기는 다음에 오고 우리 그냥 요 앞에 있는 국밥집 가요.” 

“국밥집?” 

“이번에 새로 개업한 집이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더라고요, 어서 그 곳으로 가요.” 

“......” 

예약을 해 놨다. 다른 곳으로 갈 수는 없다. 제발 내 말을 듣고 그냥 얌전히 따라왔으면 좋으련만... 더군다나 이곳에서 2차 작전을 펼쳐야 하는데 다른 곳으로 가면 내 작전이 또 모두 망가져 버리지 않는가. 어떻게 해서든 한 선생을 데리고 예약을 해 논 식당으로 들어가야 했다. 변명 거리가 필요했는데... 

“그 곳이 어딘데?”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에요.” 

“식당 이름이?” 

“돼지국밥 本家요, 가보셨어요?” 

“음... 돼지국밥 本家라...” 

그 곳이라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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