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거리 1 프롤로그
우리의 거리 1 프롤로그
그들의 마지막 친구는 들어올 때 피어오른 연기에 당황해 했다. 삼겹살 굽는 냄새와 소리가 신경을 자극했다.
“어휴 냄새.......자취를 왜 이렇게 멀리서 해.”
낯선 동네라 길을 헤매었다며 한 친구가 투덜거리며 윗옷을 벗었다.
좁은 집에 건강한 남자 다섯이 신문지를 깔고 휴대용 가스레인지 앞에 모여 앉았다. 다들 저녁을 먹고 왔음에도 젓가락을 들고 눈에 빛을 내고 있었다.
“거지새끼들.”
“먹자!”
노릇노릇 함을 넘어 갈색으로 탄 것 같은 고기까지 청년들은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술을 마시며 기름진 바닥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던 친구들이 지쳐 모두 돌아가고 성현과 현수가 남았다. 친구들이 가니 조용하고 적적한 분위기다.
성현은 벌건 얼굴을 하고 그들만의 작은 연회 후 남은 술을 병째로 들이키며 현수를 보았다.
“왜?”
현수는 조금 불편한 내색으로 성현의 눈을 맞추며 물었다.
“어때?”
“뭐가.”
“좀 어떠냐고.”
“응. 괜찮아.”
성현의 물음에 무언가의 응어리를 건들고 현수는 이야기를 피하듯 끝맺었다.
“자자.”
“그래.”
현수는 밤에는 포근했던 이불이 해가 뜨자 점차 더워져 발로 걷어차고 일어났다.
“숨이 턱턱 막히네.”
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어제 난장판이 된 물건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
“아이, 개 같은 놈.”
현수는 눈을 반쯤 뜨고 자는 성현이 얄미워 몸을 발로 차는 시늉을 하며 청소했다.
그는 웬만하면 잠든 누구를 깨우지 않았다. 그와 그의 집식구는 잠귀가 예민한 해서 누군가 깨우면 불쾌함을 느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일어날 것을 권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성현의 집은 생활패턴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일찍 일어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현수의 규율과 거리가 있었다.
“야 왜 안 깨웠어 오전 수업 있는데!”
방 정리를 마치니 성현이 핸드폰을 본 후 솜이불을 다급히 치우며 말했다.
“알람 맞췄어야지.”
현수는 콧잔등을 긁으며 청소기를 돌렸다.
성현은 서둘러 씻고 옷을 입은 뒤 집에서 뛰쳐나갔다. 현수는 청소가 끝난 후에 흥얼거리며 싸구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셨다.
그리고 오후가 다 돼서 학교로 향했다. 시간 맞춰 집에서 나왔지만 버스에서 졸아 그도 지각을 했다.
강의가 모두 끝나고 성현은 술자리를, 현수는 집에서 조금 먼 영등포 시장에 있는 힙합 학원으로 랩을 배우러 갔다. 힙합 가수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자신을 위로하고 가슴 뛰게 하는 것은 힙합이었다.
많은 수식어가 붙은 현역 래퍼에게 랩을 배웠다. TV에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힙합 쪽에서 유명한 래퍼였다.
“저희 6개월이나 같이 배웠는데 술 한잔하고 가요.”
같은 학원의 여학생이 현수에게 말했다.
“저 술 못해요.”
현수는 남색 백팩을 메고 발볼이 커 잘 들어가지 않는 하얀색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었다.
“야야, 청춘이 아깝다. 이 화려한 영등포 바닥에 두 젊은 남녀가 술 한 잔 안 하고.”
랩 선생은 학원 슬리퍼를 서둘러 신고 학원 문을 열고 나와 말했다.
“진짜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학원 냉장고에 조금 있어. 그거라도 셋이 마시고 가자~.”
랩 선생은 머쓱한 표정으로, 도망치는 현수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술자리를 권했다.
“나중에요.”
현수는 고사하고 엘리베이터로 도망쳐 문을 닫았다.
“철옹성이네.......”
여학생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창 아래 유유히 걸어가는 현수의 등을 바라보았다.
“네가 이해해라. 현수 쟤 아직 제정신 아닐 거니까.”
랩 선생은 여학생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제정신이 아니라니요?”
“우리끼리 술이나 한잔하면서 얘기할까 그럼?”
어리둥절한 표정의 여학생을 데리고 랩 선생은 빙긋 웃으며 다시 학원으로 들어갔다.
그 시각 현수는 성현과 통화하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늦게 오겠네 그럼?”
“응. 너도 올래?”
“뭐 하러 남의 학교 술자리를 가냐.”
“그래 그럼 수고해.”
“응.”
기운 빠지는 대답과 함께 현수는 통화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향했다.
어두운 원룸에서 싸구려 소파에 앉아 한숨만 푹푹 쉬었다.
“흐음.”
그는 핸드폰에 저장된 강아지 사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반려견이라도 키워 볼까......’
그는 이불을 깔고 누웠다가 스며드는 달빛에 발작하듯 일어나 집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현수는 다시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향했다. 그저 불안한 밤에 누군가와 살을 닿고 싶은 본능적인 마음이 들었다. 학원 건물 앞에 서니, 간판불이 꺼져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단을 통해 학원으로 올라갔다.
불 꺼진 학원 유리문을 들여다보았다. 빛이 반사돼서 안이 잘 비치지 않는 유리문을 손으로 가리니 복도에 있는 하얀 소파에 랩 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엔 여학생도 보였다.
늘어진 술병과 과자봉지 뒤로, 서로의 몸을 매만지는 둘이 보였다. 번들거리는 타액을 나누며 서로의 옷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유리문을 통해 희미하지만 신음소리도 들려왔다.
“으익!”
현수는 깜짝 놀라 한걸음에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같은 시간 성현은 신입생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가슴속에 스며들어 술을 불렀다.
형식적인 선배들과의 자리에서 신입생들을 빼내어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상큼 상큼하네!”
성현은 후배들의 목에 팔을 두르고 큰소리로 웃었다.
투박한 골목, 주황색 가로등 아래 성현은 한 후배의 손과 깍지를 끼고 서서 담배를 피웠다. 둘은 그대로 유유히 어디론가 사라지는 듯했다.
“아이 참.......”
어색하고 서먹함이 감돌았다.
평소 씀씀이가 헤픈 성현을 대신해 생활력이 조금 나은 현수에게 카드를 모두 맡겼다는 걸 잊고 모텔 카운터 앞에 선 성현은 당황해했다.
“이걸로 해주세요.......”
후배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신의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럼.......”
성현은 개미만 한 소리로 헛기침을 하며 말하고 체면이 구겨짐을 느꼈다.
“완전 개 쪽 당했다.”
성현이 오후 1시에 집에 도착해 가방을 던지고 내뱉은 첫마디였다.
“현수, 자?”
“........”
“자냐구우.”
대답 없는 현수를 성현은 이불 채 흔들었다.
“........오전 11시에 잠들었어.”
현수는 목소리가 잠긴 채 깨우지 말라는 애원처럼 말했다.
“아 얘기 좀 들어봐!”
“아 쫌~, 병신아-!”
방방 뛰는 성현을 현수는 기력 없는 손으로 밀쳐내며 다시 이불 속으로 숨었다.
“그럼 카드 줘. 나 어제 신입생이랑 모텔 갔는데 3천 원 있어서 진심 당황했어.”
“안 돼.”
“넌 친구가 건전한 성생활도 못하고 다니는 게 좋아?!”
“그래서. 돈 없고 쪽팔려서 못했어?”
현수는 이불을 걷고 나와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물었다.
“아니. 쪽팔린 게 뭐 대수야. 해준다고 하면 발이라도 핥아 나는.”
“푸흡. 그럼 왜. 매번 발 핥아주고 모텔비 대 달라고 하면 되지.”
“진지하게 사귀어볼까 해. 그리고 선배가 어떻게 그러냐.”
“근데 돈하니까 생각났는데, 너 다음 학기는 어떻게 하냐?”
“장학금 못 받으면 휴학해야지 뭐.”
“흠.......”
“왜?”
“일 구할 때가 온 것 같다.”
둘은 거리로 나왔다. 인터넷이나 구인광고를 봐도 되지만 무작정 돌아다니며 생각하는 게 둘의 생각이었다.
“주방 어때?”
성현은 전봇대의 광고를 보며 말했다.
“수업 끝나면 학원 가.”
“야간 편의점?”
“지금도 겨우 자는데 아예 자지 말라고?”
“이거 좋다. 동네 여성 치안센터.”
“네가 더 위험할 것 같은데.......”
기각의 연속이었다.
“아 어쩌라고 그럼.”
“근데 이 동네 치안 되게 안 좋은가 봐.”
“유흥업소도 있고, 이 동네 학교 다 양아치 학교라잖아.”
“그래?”
현수는 넓고 평온한 도로 옆 어두운 골목에 몰려있는 고등학생들을 보았다.
“음?”
얇은 후드나 비싼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들이 담배를 피우며 현수를 바라봤다. 현수는 바로 시선을 거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는 삼촌네 가게는 어때?”
성현은 가능성을 거의 놓고서 찌르듯 물어봤다.
“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