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 하편
운명 - 하편 2)또 다른 특별한 인연 한편 할머니는 누가 간병은커녕 밥을 해 주는 사람도 없자 거의 굶어 죽었고 할머니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마을 사람이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이 출동을 하여 보니 할머니는 이미 싸늘한 시신으로 바뀌어 있었고 마을 사람 그 누구도 할머니 시신에 손을 대려 하지 않자 면사무소에서 시신을 수습하여 처리를 했고 그래도 미운 정이지만 정이 들었기에 하직 인사라도 하려고 하였으나 무거운 몸으로 상가에 가면 안 된다는 주변의 만류로 난 할머니의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 하였다. 대신 법적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 밑에 호적이 올라있고 그 밑에 아버지와 내 이름이 올라가 있었기에 행방을 모르는 아빠 대신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거의 강제로 빼앗듯이 자기 명의로 해 둔 논밭 그리고 집은 모조리 내 명의로 상속이 되었고 상속이 되자마자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의 집터가 문제라면서 집을 허물어 버리라고 하는 통에 나는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집을 허물어 밭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몇 달 후 할아버지의 아들딸 그리고 손자손녀들의 비아냥거림 속에 난 아들을 출산하였고 대신 마을 사람들로부터는 축하의 인사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아들딸 그리고 손자손녀들이 걱정을 하였던 재산 문제에 있어서 할아버지의 명의로 된 논밭의 명의가 하나도 변함이 없자 그들은 내가 할아버지의 재산에 욕심을 내고 아이를 낳은 것이란 자신들의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알고부터는 딸 같은 나를 어머니로 대우를 해 주었고 친구 또래의 나를 할머니로 인정을 해 주었다. 물론 그전에 할아버지가 내가 낳은 아이의 장래를 위하여 얼마간의 논밭을 아이 명의로 해 주겠다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였다. 꼭 하려고 든다면 전 재산은 분할하여 아들딸들에게 먼저 주고 자투리만 내 아이 명의로 해 준다면 몰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 한은 손바닥만 한 땅 아니 지푸라기라도 내 아이 명으로 하면 안 된다고 거절을 하였다. 내 아이는 할아버지 같은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아빠라고 부르며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할아버지 아니 영감님은 내가 낳은 아들이 18살이 되던 82살의 나이로 임종을 하였다. 영감님의 임종은 말 그대로 아주 깨끗한 임종이었다. 82살이라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임종을 하기 전날 밤에도 나를 안아 주었고 그리고 자신의 분신을 내 몸에 뿌렸고 그리고 같이 잠자리에 들었는데 일어나 아침을 짓고 영감님에게 식사를 하라고 불렀는데도 대답이 없기에 놀란 나머지 방으로 들어가 봤더니 숨은 멎은 상태였고 119에 연락을 하였고 내 아들은 할아버지 같은 형님들 그리고 할머니 같은 누나에게 연락을 했다. 장례를 무사히 치루고 삼우제가 끝난 후 난 아버지 어머니 같은 영감님의 아들딸에게 가족회의를 소집하였다. 조용한 재산 분할을 의논하기 위하여서였다. 아버지 같은 영감님의 큰아들은 모든 형제가 골고루 공평하게 재산을 분할하기를 원하였다. 엄마 같은 영감님의 딸들도 오빠의 의견에 동조를 하였다. 하지만 내가 반대를 하였다. 영감님의 아들딸들은 나의 반대에 바짝 긴장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개진한 의견을 듣고는 모조리 환한 얼굴이 되었다. 장자 우선 원칙을 나는 고수하자고 했고 또 서열에 따라 분배를 하자고 주장을 했던 것이다. 또한 법적으로 영감님의 처인 나는 내 권리를 모조리 포기하고 형제들끼리 내가 주장하는 방법대로 분배를 하라고 했다. 거의 만 석지기는 안 되었지만 몇 천 석지기 정도는 되었던 영감님의 논밭 그리고 과수원과 임야는 주변의 걱정과는 전혀 달리 아무런 분쟁이 없이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장례를 치른 아버지 같은 아들들과 엄마 같은 딸들은 나에게 개가를 하라고 하였다. 그때 내 나이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였기에 얼마든지 누구 말마따나 총각 시집을 갈 수 있는 나이였다. 난 한사코 거절하고 혼자 살기로 결심을 하였다. 할머니 아닌 할머니 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가 않았다. 고마운 것은 아버지 같은 큰아들의 배려였다. 자기 지분을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처분하지 않았고 자기에게 분배가 된 재산을 딸 같은 어머니가 집안으로 들어와서 아버지의 재산을 불렸다며 딸 같은 나에게 위임 관리를 시켜준 것이다. 아들 같은 동생을 자기가 사는 도회지로 불러올려 공부를 시켰다. 그리고 아들은 여자 친구가 생겼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버지 같은 형님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아들은 명절이면 꼭 여자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고 여름휴가 때면 일찍 혼자가 되어버린 자기 아빠도 동행하여 우리 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갔다. 서로가 홀몸인데 바깥사돈의 우리 집으로의 여름휴가는 저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며느리 될 아이의 효심이 저로 하여금 그 부담을 줄이게 하여주었습니다. 두 해를 그렇게 지내더니 삼 년이 되던 해에 처녀 집에서 결혼을 시키자고 한다는 말을 아들을 통하여 전달을 받았다. 두 번의 여름휴가를 우리 집에서 보냈기에 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미 상견례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영감님의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들이 같이 상견례를 하자는 바람에 난 큰아들이 사는 곳으로 올라가 정식으로 상견례를 하였다. 사돈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열여섯이란 어린 나이에 아들을 낳았기에 아들은 30살이었고 나는 고작 46살의 나이였고 아들과 혼인을 하기로 한 아가씨는 28살의 나이였고 나중에 안 것이지만 사돈 나이 34살에 본 딸이라 사돈은 62살로서 거의 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버지나 다름없는 그런 바깥사돈이었다. 바깥사돈 역시 나처럼 혼자가 된 몸이었지만 딸아이 하나를 믿고 살았다. 바깥사돈은 건설회사의 형장 소장 일을 주로 맡아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출장이 많았습니다. 며느리의 결혼 준비도 바깥사돈이 주는 돈으로 직접 장만을 하는 그런 형편이었다. 하지만 상견례 이후 아들의 결혼은 급물살을 타고 진행이 되었다. 결혼식을 할 날짜까지 밭아 놓은 상태였고 곧 청첩장도 나올 것이라는 연락을 아들에게서 받았고 그리고 성질 급한 저 나름대로 동네 사람들을 모시고 갈 대형 관광버스도 대절을 예약했고 떡도 주문을 하였고 보통 결혼잔치라면 돼지를 잡는 것이지만 내 바로 낳은 아들은 아니고 아버지 같은 아들이 소를 한 마리 잡으라고 하여 도살장에 부탁을 해 놓은 상태였고 결혼식 삼 일 전부터 음식을 해야 아들이 사는 도회지의 결혼식장에 가지 못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는 사람들에게도 같이 사전에 접대를 할 음식 장만을 위하여 사람가지 구해 놓은 그런 상태였다. “사돈 마침 지나가는 길에 들렸습니다.”결혼을 한 달여 남겨두고 느닷없이 바깥사돈이 우리 집에 왔지 뭔가. 당혹스러웠습니다만 아들 결혼 문제로 한 번쯤 상의를 드려야 할 일이 있던 참이라 집안으로 모셨다. 딸을 주는 사돈인데 감히 접대를 소홀하게 할 수가 없었다. 바깥사돈을 평소 며느리가 될 딸과 휴가를 지내기 위하여 오면 가장 있기를 즐겨하는 과수원과 과수원 사이로 흐르는 작을 계곡 옆에 영감님께서 살아생전에 마련하여둔 대나무를 역어서 만든 평상으로 모셔놓고 나는 아주 분주하게 음식 준비를 하였다. 한 시간 여에 걸친 준비 끝에 초라하지만 갖가지 음식과 밥 그리고 불고기에 우리 집에서 직접 내 손으로 담근 막걸리를 준비하여 과일을 따서 저장 창고로 운반을 할 때 사용하는 운반용 기계에 실고 평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그만 난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다. 얼마나 자위에 몰두하고 있었던지 바깥사돈은 운반용 기계소리도 듣지 못 하였던지 자신의 좆을 내려다보며 자위를 하고 있었다. “으~~~~”좆 물이 나오자 바깥사돈의 시선이 나와 마주치고 말았다. 바깥사돈이 놀라 몸을 돌렸지만 이미 볼 것을 다 본 상태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운반용 소형 차량이 언덕을 오를 때는 바깥사돈의 귀에 운반용 소형 차량에서 나오는 소리가 허공으로 울려 퍼졌지만 바깥사돈의 귀에는 들리지 않다가 마침 자위 끝에 좆 물이 나오는 신호탄과 같은 신음과 함께 바깥사돈이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내가 몰고 있던 바깥사돈을 접대 할 음식을 실은 운반용 소형 차량이 언덕 위에 올랐고 그리고 운명적으로 나와 시선을 마주하여 버리고 만 것이었다. 조금을 기다린 끝에 바깥사돈이 바지를 주섬주섬 고치자 난 다시 운반용 소형 차량을 몰고 천천히 내려갔다. 그리고 평상 위에 음식을 차리고 가지고 간 숯불 화덕에 고기를 구우면서도 나와 바깥사돈은 서로 애써 시선을 마주하려 들지 아니하였다. 안 그래도 어렵다는 사돈 그도 바깥사돈과 거기다가 자위를 하다 들켜버린 바깥사돈과의 자리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집에서 담근 건데 한잔 받으세요.”음식들을 평상에 올리고 고기가 숯불에서 익는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내 일생에 가장 긴 시간 같았다. “미안합니다. 못 볼 것을 보게 해서.............”바깥사돈이 잔을 들고 말을 잇지 못 하였습니다. “아닙니다.”하고 말하자 “안사돈께서도 제 잔을 받으세요.”바깥사돈이 내 손에 들려진 주전자를 빼앗듯이 쥐고 말하였다.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고 는 것이라고는 술 밖에 없었다. 아니 술은 나에게 약이나 같았다. 아마 술이 없었더라면 난 이미 많은 남자들의 좆을 받아들였을 것이고 걸레가 되었을 것이다. 밤이면 생각나는 영감의 좆은 나로 하여금 술을 부르게 만들었다. “고맙습니다.”바깥사돈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에 어색한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안사돈은 혼자 사시는 게 힘들지 않으시나요?”바깥사돈이 나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픈 곳을 찌르자 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안사돈께서도 애지중지 키운 아들을 우리 딸애에게 빼앗긴 기분이실 텐데 우리끼리라도 서로 왕래하며 지내면 어떨까요?”술잔을 잡고 있던 내 손을 덥석 잡고 말하였다.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바깥사돈의 잡은 손을 뿌리치지 못 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안사돈”하고 나작하게 부르는가 싶더니 바깥사돈이 갑자가 내 옆으로 왔고 그리고 보듬는가 싶더니 어느새 바깥사돈의 입술이 내 입술에 포개져 있었다. 사실 영감님이 죽기 전날까지 거의 매일 빠구리를 하는 사이였지만 일반적이고 교과서적인 체위로 빠구리를 하였지만 고작 별다른 행동이라고는 나의 젖가슴을 주무르는 것 말고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46살이 되도록 그 흔한 키스 한 번 해 보지 못 한 그런 처지였는데 뜻밖에도 바깥사돈이 생애 처음으로 나의 입술을 가져 간 것이었다. 13년 동안 내 마음 밑바닥에 숨겨두고 지켜온 여자의 본능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 본능은 나로 하여금 내 입안으로 들어온 바깥사돈의 혀를 빨게 만들어버렸다. 저항을 예상하였던 바깥사돈의 입장에서 안사돈인 내가 자신의 혀를 빨아주자 자신감이 생겼던지 나의 젖가슴을 주물렀고 나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자 안사돈인 나도 가지처럼 흥분을 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는 치마를 들쳤고 들치는 순간 본능적으로 바깥사돈의 팔목을 잡기는 잡았지만 힘이라고는 전혀 없는 말 그대로 형식적으로 잡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또 나의 보지구멍에서도 13년 동안 나오지 않았던 묵은 물이 마구 흘렀다. 그날따라 난 평소 잘 입지 않았던 치마를 입고 있었고 또 지난 장날 큰마음을 먹고 사온 새 팬티를 입고 있었기 망정이지 전날까지 입고 있었던 거의 걸레나 다름없는 팬티를 입고 있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지금 생각하여도 끔찍하다. 바깥사돈의 손이 팬티 안으로 들어오는가 싶더니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역시 13년간 수절을 하여온 내 보지둔덕의 털을 손바닥으로 비볐다. 가만히 입술만 받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바깥사돈의 목을 두 팔로 감고 매달리며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자 바깥사돈의 손가락이 난생 처음으로 내 보지구멍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왔고 그리고 내가 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깥사돈의 손가락을 보지구멍 안을 마구 헤집고 다니며 나를 흥분의 세계로 몰아넣기 시작하였다. 며느리가 될 아들의 여자 친구의 말에 따르면 안사돈은 걔가 고등학교에 들어갔던 해의 가을에 피똥을 싸자 놀라 동네 병원으로가 진찰을 받으니 의사가 소견서를 써주면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였고 큰 병원에 갔더니 바로 입원수속을 받게 하고는 각종 검사를 하더니 대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하였고 진단 결과가 나오고부터 일주일도 버티지를 못 하고 세상을 하직했다고 했다. 그렇게 혼자가 된 자기 아빠는 주위에서 재혼 권유를 수도 없이 받았고 심지어 외갓집의 외할아버지할머니는 사위인 자기 아빠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재혼을 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죽은 아내가 이 세상에서 살았었다는 유일한 흔적인 딸아이인 자기를 찬밥 신세로 전락을 시키고 싶지 않다면 한사코 재혼을 거부하였다고 했다. 결국 바깥사돈은 나보다 햇수로만 본다면 일찍 홀아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옛말에 있다. 나처럼 청상과부는 혼자 살 수가 있지만 늙은 과부는 혼자 살지 못 한다고 말이다. 그 말을 다른 편으로 생각한다면 좆 맛과 보지 맛을 잘 모르고 과부나 홀아비가 되었다면 혼자 살 수 있지만 좆 맛과 보지 맛을 잘 알고 나서 과부나 홀아비가 되었다면 혼자 살기 어렵다는 말과 같은 뜻일 것이다. 바깥사돈이 나보다 일찍 홀아비가 되었지만 부부생활을 나보다 훨씬 많이 하였기에 여자의 맛을 나보다 훨씬 더 잘 알았고 그리고 지나가던 길에 들른 안사돈이 될 나의 집에 들렀더니 자기의 잠재된 성의 욕구를 생기게 만들었고 그 욕구는 어려운 안사돈의 집에 딸린 과수원이란 곳인 것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좆이 섰고 서 있는 좆 때문에 생긴 텐트가 부담스러워 죽이려고 용두질을 쳤는데 그것을 그만 내가 보고 말았고 이와 안사돈인 내가 봤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나에게 슬며시 수작을 걸었고 거부를 한다면 그만 둘 각오까지 하였는데 내가 바깥사돈의 입술을 거부하기는커녕 안사돈이 내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자 내가 게걸스럽게 빨자 자신감이 생기더라는 것이 나중에 바깥사돈이 웃으며 나에게 한 말이었다. 나의 호흡이 아주 거칠어지자 바깥사돈이 나의 팬티를 밑으로 당겼다.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자연스럽게 들어졌다. 춘 삼월을 얼마 안 둔 날씨라 쌀쌀하게만 느껴졌던 것이 내 몸에서 나는 열기로 인하여 쌀쌀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던 말이 반복이 되지만 해야겠다. 영감님이 죽기 전날까지 거의 매일 빠구리를 하는 사이였지만 일반적이고 교과서적인 체위로 빠구리를 하였지만 고작 별다른 행동이라고는 나의 젖가슴을 주무르는 것 말고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46살이 되도록 그 흔한 키스 한 번 해 보지 못 한 그런 처지였는데 이번에는 여상치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내 입 앞으로 바깥사돈의 좆이 보이는 싶더니 바깥사돈이 내 몸 위에 몸을 포개고 내 생애 처음으로 나의 보지를 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안 빨아 봤어요? 빨아 봐요”내 보지를 빨던 바깥사돈의 상체가 들려지더니 나와 바깥사돈의 몸 사이로 나를 보고 말하더니 다시 빨기 시작하였다. 이미 딸딸이를 쳤었기에 비릿한 냄새가 베인 바깥사돈의 좆은 생각보다 흉측하게 생기지는 아니하였다. 손을 가져다 만지려고 하다 말고를 반복 한 끝에 난 떨리는 손으로 겨우 바깥사돈의 좆을 잡을 수 있었다. “아~흑”13년간 아니 46살이 먹도록 느 어느 누구에게도 빨리지 않았던 내 보지를 바깥사돈은 아주 능수능란하게 빨았고 그 빨림은 나의 몸을 마구 떨게 만들었으며 그리고 동시에 바깥사돈의 좆을 혀로 날름대게 시작할 수가 있었다. “빨아 봐요”바깥사돈은 내가 혀로 날름대기만 하자 다시 상체를 들고 나를 보고 말하였다. “...........”바깥사돈의 말은 나로 하여금 용기를 가지게 만들었고 나는 그 용기를 살려 바깥사돈의 좆을 덥석 입으로 물었다. “하하하 처음이나 보네요. 이빨이 닿으면 아파요 이빨을 닿게 하지 말고 빨아요.”바깥사돈이 호탕하게 웃으며 나에게 무안함을 가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시 나의 보지를 발기 시작하자 그 무안한 마음은 사라졌고 가도 용기를 가지고 아미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빨듯이 빨기 시작하였다. 중학교 이학년에 지나지 않은 나이부터 할머니 아닌 할머니와의 빠구리 나에게 고게 했고 그러면서 나를 먹을 준비를 착착 진행을 해 가면서고 고작 보여준 것이 할머니 몸 위에 올라가 할머니 보지구멍에 좆을 박고 펌프질을 하는 것이 빠구리의 전부로만 알아왔던 나로서는 마치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그런 뿌듯함을 느끼며 바깥사돈의 좆을 혀로 날름대고 혓바닥 위에 올려놓고 혀로 말아도 보고 입술을 동그랗게 말하 보지구멍처럼 만들어 바깥사돈의 죽을 줄 모르는 좆을 엄지와 검지로 말아 잡고는 그것이 죽은 영감님이 살아생전의 좆이라고 생각하고 동그랗게 만 애 입을 내 보지구멍이라고 생각하며 영감님의 좆을 내 보조구멍에 넣고 영감님 대신 힘차게 펌프질을 하자 나도 모르게 죽은 영감님의 잔영이 뇌리를 스쳤고 스치는 잔영을 나의 눈에 물기를 나오도록 만들어버렸다 내가 과연 지금 바깥사돈하고 하고 있는 행위가 돌아가신 영감님을 욕 되게 하는 일이 아나가 싶어 무척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몸은 이미 쾌락의 절정을 향하여 마구 달리고 있었다. 낸 머리는 천사가 되어 그만하라고 육신에게 명령을 하였지만 악마의 지배하에 있는 쾌락에 빠진 육신은 전혀 그만 둘 생각이 없어보였다. “안사돈! 비리고 쓰다지만 그래도 한 번 삼켜 봐요”하고 말을 차지자마자 바깥사돈을 벌떡 일어나며 좆을 빼는가 싶거니 돌아앉아 좆을 다시 내 입에 대고는 스스로 손을 잡고 아주 빠르게 용두지질을 치더니 “으~~~~~”하는 심음이 나오는가 싶더니 “웩! 웩!”쓰고 비린 맛아 놀라 구토를 하며 눈피를 보자 바깥사돈 안색이 변하였다. “꿀~꺽! 꿀~꺽!”난 바깥사돈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는 급기야 난 바깥사돈의 좆을 다시 잡고 입안에 대고 좆 물을 억지로 삼켜야했고 그러자 바깥사돈의 안색이 월래대로 돌아왔다. “막걸리 일단 한잔 하시죠”바깥사돈이 매 몸 위에 있으면서 말하였다. “예”대답을 하고 일어나 앉으려고 하였으나 바깥사돈이 몸 위에서 누르고 있어서 앉을 수가 없어 바깥사돈의 행동만 주시히였다. “!”바깥사돈을 나더러 막걸리를 마시라고 권하더니 자신이 마셔버렸다.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바깥사돈이 다시 내 몸 위에 몸을 포갰고 입술을 다시 덮쳤다. 나도 모르게 혀가 들어오도록 입을 조금 벌렸다. 기다리던 바깥사돈의 혀가 입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나라 내 입으로 들어온 것은 바깥사돈의 입안에서 머금고 있었던 막걸리였다. 내가 겨우46년의 삶을 살라온 젊은 나이지만 그 나아가 되도록 그렇게 맛있는 막걸리는 처음이었다. 난 보답을 하기 위하여 주전자를 들었고 그리고 막걸리를 내 입에 머금고 환하게 웃으며 나의 향동을 내려다보는 바깥사돈의 목에 매달려 입술을 포개고는 머금고 있던 막걸리를 바깥사돈 입 안으로 흘려보냈다. “누워요”막걸리를 바깥사돈 입안으로 흘려보냐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하는데 바깥사돈이 가슴을 슬며시 밀며 말하였가. “..................”다시 부끄러움이 살아났다. “퍽퍽퍽,퍼-억,퍽퍽,퍽퍽”꼭 13년만의 방문이었다. 주인은 전혀 달랐지만....................... 난 내 팔자가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30년 전 중학교 3학년 학생의 몸으로 겁도 없이 육순을 한참 지나 칠순으로 향하던 할아버지뻘의 영감님에게 영감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도 몸을 준 것이 마지막이었고 그로부터 1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하루에 한 번 이상 샤워를 하지 않았었더라면 묶은 때로 막혀버려 좆은커녕 바늘이 들어 갈 틈도 없었을 보지구멍으로 그때처럼 육십 대 초반의 남자 좆이 13년이란 세월을 건너 그대로 들어왔다. “흐응....응....나 죽어.....제발.....”이미 바깥사돈의 좆과 불알을 빨고 핥으며 13년간 잊어버린 쾌감을 느꼈던 터이지만 입을 사용하였기에 심음을 낼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라 신음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 “퍽퍽퍽,퍼-억,퍽퍽,퍽퍽 나도 전할 오래간만에 하는 것이지만 안사돈도 그렇죠?”바깥사돈이 나 젖가슴을 짚고 천천히 펌프질을 하며 물었다. “하……..하…영암님….하아…하…돌아가시고…아…처음”난 바깥사돈의 젖가슴을 짚은 팔목을 잡고 몸부림을 치며 대답했다. “퍽퍽퍽~~~퍽~음~~~~퍽~퍽~음음음……퍽퍽…….학학학~~~~”바깥사돈도 나처럼 하지 않았던지 아님 발기를 심히게 하여 거기에서 힘을 많 뺐었던지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아흑~~~음~~~음~~~`음~~~아~흑~~어떻케~~~어~~떻~~케~~이젠~~아~~이젠~~어떡허니~~~” 갑자가 걱정이 생겼다 13년을 하루같이 달아오르려는 성욕을 자제하고 잊어가며 말았는데 46살이란 나이에 외간남자 그도 아들의 장인이 된 남자이고 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어렵고 어렵다는 바깥사돈으로부터 13년간 잊어온 성욕 눈을 뜨고 말았고 성욕에 대안 눈을 뜨고 나서의 뒷날이 캄캄하였다. 차라리 전혀 모르는 외간남자라면 남들의 이목을 피하여 엔조이라는 돌리기 쉬운 핑계거리를 만들어두고 간혹 만나서 엔조이를 하면 그만이지만 홀아비 바깥사돈이 과부 안사돈 집을 들락날락하게 되면 분명히 이상한 손문이 날 것이 자명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입장임을 알았다. “퍽억,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하지만 나의 적정과는 달리 바깥사돈은 현실에 충실하겠다는 듯이 열심히 펌프질을 하였다. “아~아~ᄋ~~음~~~~~~ᄒ~~~흠~~~~~음음음~~~~ 아후~ 어떡허니~~~아~~하흑.”걱정 뿐은 아니었다. 난 걱정을 하면서도 바깥사돈의 목을 두 팔로 감아 매달리고 볼에 볼을 대고 비비고 있었으니 말이다. “퍽. 퍽…질퍽... 퍽.. 질. 퍽 .. 질퍽. 질퍽..”또 붚벌레 소리들과 하모니를 이루는 바깥사돈의 펌프질로 인하여 내 보지구멍 안에서 나는 질퍽이는 소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하……”13년의 한을 일시에 투는 그런 기분이었다. “퍽억,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바깥사돈은 초지일괸되게 천천히 펌프질을 하였다. “음…음…..아….아…그래….조금.........빠르게…..음..음..이렇게…..음음…그래…그렇게….음…음…”상대가 바깥사돈이란 생각은 잊어버린 것 같이 주문까지 하였다. “퍽억,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요청을 받아주었다. “아…….. 음…아….아…………..아……어떡해…아…아…어떡하니…음…음……음”하지만 다시 걱정이 생겼다. 언제 누구에게 어디서 이 같은 대젖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말이다. “퍼~벅! 타~다닥 퍽! 철~썩, 퍼~버벅!!!!!!!!!!!!!!!!!!!!!!!!!!!!!!!!!!!! 타~다닥”바르게 펌프질을 하다가 “아……아……음…음………음……음…..아…그래…….아…..아..천천히…..천천히해…천천히해”몸부림을 치며 천천히 하라고 하자 천천히 하였다. “!”막상 말을 해 놓고는 난 너무나 민망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사돈사이 그 도 둘 다 홀아비에 고부이고 바깥사돈은 육순을 넘긴 분이고 거기에 비하여 과부이기에 홀아비와는 동급으로 친다고 하더라도 나이 겨우 46살 먹은 년이 감히 육순을 넘기신 바깥사돈에게 반말을 지껄였느니 에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말이다. 결례도 아주 큰 결례를 범하였지만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퍼~벅! 타~다닥 퍽! 철~썩, 퍼~버벅! 타~다닥”반말을 흘려 들었던지 바깥사돈은 요구대로 천천히 펌프질을 했다 “아….아….음…잠깐..잠깐,..조금만 천천히 ..그래 잠깐만..음….음…..음..됐어…해…..음…음…”대나무 평상 가장자리에 있는 쪼개지 않고 몸통 역할을 하는 부분이 엉덩이에 걸려 아파 몸을 조금 이동시키면서고 난 무례하게 반말로 하였다. “퍼~벅! 타~다닥 퍽! 철~썩, 퍼~버벅! 타~다닥 이제 서로 자주 교류 가지자고 어때?”바깥사돈은 내가 반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반말로 자주 만나자고 의견을 물었다. “하…….하…….흠…사람들……흠……눈이 있어……하…집에서는…….하……….하……그래요…………흠…”신음 반 대답 반이었다. “전화하면 나오기야? 퍽퍽퍽, 퍼-억,퍽퍼윽, 퍽-억,퍽-억!,퍽퍽퍽퍽”an물으면서도 펌프질은 쉬지 아니 하였다. “악악…..아……더…더…더 빨리 악악…악…그래요 거기..거기…아니 ..거기 거기…그래요”나의 말은 내가 들어도 대답인지 신음인지 구문이 안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자고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말이 끝나기 무섭게 빠른 펌프질을 하였다. “악…악……아….미치겠어…악…악….악…..어쩌니 ..어쩌니…악…악…..”그건 분명히 비명이었다. 오르가즘을 가득 느낀 그런 비명이었다 “퍽,퍽퍽, 철썩,퍽퍽퍽!!!!!!!!!!!!!!!!!!!!!!!!!!!!!!!!!!!!!!!!!!!!!!!!!!!!!!!!!”펌프질을 멈출 줄 몰랐다 “아흑~~아아아……악…아……….”나의 도리질도 마찬가지였다. “퍽퍼퍽, 퍽퍽퍼거, 퍼억,푸욱 퍽퍼퍽퍽!!!!!!!!!!!!!!!!!!!!!!!!!!!!!!!!!!!”혹시 접대용 음식들을 준비하는 동안에 몰래 거실로 들어가 영감님이 담근 사주를 훔쳐먹은 것이 아니가 하는 의구심이 나게 만들었다. 요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비아가라나 시아리스 같은 것이 발기부전인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라고 하는데 그건 일회용이라면 사주는 적어도 한 달 이상을 버텨내는 천연 약제이다. “아~…학..아….아….아…음….음..음음…..아…후~.아후~………아…학~…….”정정한 젊은이들도 울고 갈 그런 힘을 가진 바깥사돈이었다. “퍽퍽퍽, 퍼-억,퍽퍼윽, 퍽-억,퍽-억!,퍽퍽퍽퍽!!!!!!!!!!!!!!!!!!!!!!!!!!!!!”무서울 정도였다. “악 ……악…….아아아….학….음..아…흑..악……야…..악….악…사돈…그만….그만…악.”과수원과 과수원 사이의 계곡인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영감님 살아생전에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영감님은 평상 둘레에 모깃불을 피워두고 평상에서 빠구리를 하였는데 마을은커녕 우리 집에서 내 아들도 나의 비명과 신음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위치 하나만은 좋은 곳이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무서울 정도가 아니라 무서웠다. “악~~악~~~~아아하악~~~~~아~~악악~~~~헉~~으~음~~~악악~~악~~~~아~~~악”이러다가 죽는 것인 아닌가 싶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하지만 바깥사돈의 펌프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악악아아….아…..하…………….하…하…………하…………하………하………후~~~~~~우”숨이 턱에 차 손목으로 목을 부여잡아야 하였다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이러다가 아들 결혼식도 보지 못 하고 영감님을 따라 가는 것이 아나가 싶었가다. “푹쟉…음..푹쟉….음음…하..푹….아….푹……아..”임에서 게거품이 나와 아상한 소리를 나게 만들었다 “퍽억,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이런 사람이 이 세상에 도 있을까 하는 기분이 들게 할 정도였다. “처음이라 기년을 안에 싼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일바적으로 통고를 하더니 다시 빠르게 펌프질을 하였다. “아학, 좋아, 살살 어서 더 깊이 어서어서, 영감 좋아, 나 죽겠어, 어서어서, 아학”나도 모르게 바깥사돈은 영감이라고 불러버렸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으~~~~~~좋았소?”바깥사돈이 젖가슴 사이에 얼굴을 묻고 숨을 고르며 물었다. “정말 대단하세요.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 이러면 왼 되잖아요?”눈을 흘기며 물었다. “물론 애들이나 주변 사람들 안면 안 되죠. 하지만 우리 둘이 비밀만 지키면 두려울 게 없잖아요?”휴지를 집더니 보지ㅐ구멍에서 흐르는 좆 물을 닦아주며 말하기에 “노을 바깥사돈 차 본 사람 많을 텐데.......”하고 말을 흐리자 “아차차 그렇죠?”대충 정리하서 실고 집으로 가세요.“바깥사돈이 음식들을 함지박과 광주리에 챙기기에 “그래서요?”나오 바깥사돈을 따라 챙기며 말하자 “그리고 대청마루에 상을 폅시다. 그리고 올리고 데울 거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이웃한 집 사람들 블러요, 안면이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이 부락과 제가 인연을 맺게 되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왔다고 할게요.”역시 배운 사람은 아디가 달라도 달랐다. 집으로 온 난 뒷물 질과 양치질을 하였고 바깥사돈도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하였다. 그리고 바깥사돈 말대로 난 음식들을 대청마루 상 위에 올리고 데울 것은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고기와 막걸리도 더 내어 놓고 마을 사람들을 불렀다. 그런데 내가 마을 사람들을 부르고 왔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선물 꾸러미들이 듬뿍 놓여 있었다. “불청객이었던 사람이 이번에는 이 부락의 일원이 된 기분으로 여러분들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준비해온 이 부락이 키운 아들을 가져가는 대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고 이렇게 찾아 왔더니 고맙게도 저희 안사돈께서 조촐하게라도 주안상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렇게 준비를 해 주셨습니다. 저희 안사돈의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가시면서 한 집에 하나씩 가져가시면 고맙겠습니다.”엉큼하게 인사를 하자 “여보게 이장 선물이란 선물을 주는 사람 앞에서 보는 것의 예의라던데 이장 자네가 마을 대표로 한 번 보게나.”하고 말하자 “그래 이장이 먼저 봐”하고 떠들자 “자~조용히 그런 여러분의 말씀대로 그럼 제가 먼저 보겠습니다”하더니 선물 봉투를 한 번 개봉 해 보겠습니다. “야~~”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명절로 아들딸 사위 며느리가 사오는 선물세트하고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그런 것을 보면 비누 치약 샴푸 린스 그리고 일 년을 두고도 한 번도 쓰지 못 하는 것 일색인 반면 바깥사돈이 준비해온 선물세트는 대강 짐작을 한다고 하여도 5~6만원 상당의 것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안사돈 가구 수를 몰라서 예전에 놀라와 대충 헤아려두었던 기익으로 준비한다고 했는데 아마 몇 개 여분이 남을 겁니다. 이 부락 분들이 아니라도 섭섭하신 분이 계시다면 노나 드리세요.”하고 일어나자 “주인장 그 어렵다는 바깥사돈께서 이렇게 우리 부락 사람들을 생각해서 선물까지 w가져 오셨는데 그냥 보내면 섭섭하지, 안 그렇소”하고 나이가 지긋한 분이 말하자 “바깥사돈 제 얼굴을 봐서라도 앉아계시면사 함께 자리했으면 좋겠네요.”하고 말하면서도 난 바깥사돈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바깥사돈은 이미 바깥사돈을 넘어서 나의 내연 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어차피 막걸리라도 한잔 하게 되면 주무실 곳이 마땅치는 않겠지만 저희 집에서 저와 한 잔 더 하시고 주무시고 새벽에 가시면 되잖소?”이웃한 바깥사돈 연배의 아저씨가 잠자리를 제공하겠다며 바깥사돈의 팔을 끌어당겨 앉히고는 술을 권하였다. 나와 금방까지도 빠구리를 하였던 바깥사돈은 멋쩍은 얼굴을 하고 나를 한 번 씩 보고는 술잔을 받았다. 다음 날 새벽 같이 일어나더니 우리 집에 와서는 간다는 인사만 하고 가버렸다. 가고 나서 난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전화번호라도 알아 두었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급한 나머지 바깥사돈도 나의 전화번호를 물어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렇다고 여자인 내가 먼저 바깥사돈에게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기에도 뭐하여 물어 보지도 못 한 것이 그렇게 후회가 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바깥사돈이 근무하는 현장은 우리 집에서 멀어 사무실까지 가려면 고속주행을 해야만 현장 노가다 근로자들보다 일찍 도착을 할 수 있는 그런 곳이라 사고 걱정이 되어 아침밥도 앉히지 못 하고 행여나 하는 마음에서 집 전화 앞에서 목이 빠지라고 기다렸다. 벨이 울린 것은 집 전화가 아니라 휴대폰이었고 모르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받고 보니 바깥사돈이었고 막 현장에 도착을 했으니 안심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말마다 우리 집 부근을 지나야 자기 딸이 혼자 아니 이미 결혼 전부터 아들과 동거를 하는 자기 집으로 가기에 현장에서 출발을 하면 00로 나오라고 하였고 또 내려가면서도 집에서 나서면서 전화를 할 것이니 그곳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였다. 나오라는 말보다 바깥사돈의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런 기다림이나 생각 없이 그저 무의미한 삶에서 난 하나의 기다림이 생긴 것이다. 그날 난 돌아가신 영감님에게 죽을죄를 지은 기분이 들어 막걸리에 과일을 들고 영감님 산소에 갔다. 그리고 그 음식을 차려 놓고 사죄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큰절을 올리며 죽을죄를 지었으니 용서를 해 달라고 눈물로 애원을 하였으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영감님께 가서 사죄의 절을 올렸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아 멍청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날 밤 겨우 잠자리에 들었는데 돌아가신 영감님이 꿈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자기에게 그만큼 해 준 것만으로도 자기는 고맙게 생각한다며 되레 어린 나이의 나를 범하여 임신까지 시키고 아들까지 낳게 만들고 또 좆 맛을 알게 하고 나를 혼자 두고 간 자신을 용서 해 달라고 하였다. 놀라 꿈에서 깨서 벽에 걸린 영감님의 영정을 올려다보았더니 평소 무표정한 영감님이 빙그레 웃고 계시는 것 같았다. 지금 아들을 바깥사돈의 딸과 혼인을 시키고도 난 바깥사돈하고 일주일이면 무슨 일이 없는 한은 두 번씩 꼭 잡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군도 다른 지역의 한 모텔의 단골손님이 되어서 빠구리를 즐기는데 최근에는 나에게 무서운 제안을 해 와 나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기도 하였다. 딸과 내 아들인 사위가 우리 관계는 눈치를 차리고 있는 것 같다면 이와 뽈록이 난 이상 숨길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자기 아들 하나만 낳아달라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 목하 심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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