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증을 가진 한 방화범의 사연6 (마지막)
관음증을 가진 한 방화범의 사연6 (마지막)
범행 심리 세 번째 상담을 통해 유영진은 비로소 얼굴이 편안해졌다.
“유영진씨, 말하고나니 어떤가요?”
“이제 살 것 같네요..”
“아직도 화가 안 풀린 건 아니죠?”
“네..”
피해자 입장에서라면 누가 누구한테 화를 내냐며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말하겠지만, 최종 목적은 그의 내면을 드러내어 그가 범행 동기를 잘 진술할 수 있게끔, 법의 심판을 잘 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담가로서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유영진이라는 내담자를 대해야 했다.
“모텔이 불 타 재산피해가 큽니다. 당시 투숙했던 대부분의 손님들은 대피했지만, 314호에 계시던 두 분은 깨어나지 못해 돌아가셨습니다. 유영진씨의 충동적인 행동이 피해자들에게 어떤 영향를 끼쳤는지 생각해보셨음 합니다“
유영진은 전과 달리 조금은 수그러진 태도로 고개를 떨구곤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 모텔 주인분.. 모두에게 죄송합니다.”
비로소 그는 폭발할 것 같은 분노에서 벗어나, 피해자를 생각하고 반성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내면, 분노를 일으키게 된 역동심리는 누군가에게 잘 꺼내놓기만 해도 분노감이 잠잠해진다. 그리고 나서는 비워진 마음으로 본인의 어긋난 행동을 되짚어 보게 하고, 역지사지로 피해자의 입장을 돌이켜 보게 한다.
‘만약 내가 모텔 주인이었으면 한 순간에 생계를 잃었는데, 어쩔 것인가?’
‘만약 내가 314호 투숙남이었다면 잠을 자다가 순식간에 화재로 목숨을 잃었는데, 얼마나 억울한가?’
이 두 가지 역지사지 사고법을 그에게 훈련시키고 나서야 그는 드디어 반성이라는 걸 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이 저와의 마지막 상담입니다. 상담을 마치고 김경장님과 함께 경찰서로 돌아가실 텐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
“유영진씨”
“면목이 없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연탄가스를 맡고 죽을 고비를 넘겨본 사람인데 화재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면서도.. 그 연기가스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아는데… 그런 일을 저질렀다니.. 죄송합니다.”
“저에게 죄송할 건 없지만, 피해자 분들과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저랑 세 번에 걸친 상담내용, 앞으로 누가 묻더라도 동일하게 진술하시면 됩니다. 예전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하시면 안되고요. 아셨죠?”
“네.....”
진술내용은 유영진의 동의하에 이미 녹음해 둔 터였다. 나는 오늘 이 녹음파일을 김경장님에게 보낼 것이다. 만약 경찰서로 돌아가서 혹시라도 그가 상담 전으로 회귀하여 똑같은 범행 동기만 앵무새처럼 진술한다하더라도,이 녹음파일이 그의 진술내용이 되기 때문에 그는 진술파일과 함께 서울지검에 송치된다.
어릴 적 가정 속 왕따로 외롭게 성장해 온 유영진. 더군다나 일산화탄소 중독증으로 어눌한 말투, 경미한 지적 장애를 갖게 된 그. 그렇게 힘겨운 삶을 유지하던 중 배우자의 배신, 아들의 죽음을 연달아 겪으먀 아주 심한 관음장애와 분노조절장애를 함께 앓게 됨으로써 분노와 억압이 함께 표출되어 저지르게 된 범죄로 보여진다.
누군가 주변에서 그에게 따스한 손길이라도 내밀었다면, 조금이라도 관심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더 과거로 돌아가 어렸을 적 조금만 더 따스한 사랑을 받았었다면.
그의 과거를 역순하여 되짚어보며, 이 정도의 무모한 범행을 한 그의 성장배경, 관계적 배경이 안타까웠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타인과의 관계가 틀어짐으로 해서, 가족과의 관계가 좋지 않음으로 해서 결국은 내면적 상처를 갖게 되고, 그 상처가 심리적 딱지에 의해 고정되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무딘 마음으로 살게 되지만 어떠한 계기로 인해, 예를 들면 상처를 잘못 긁어 피딱지가 뜯어지면서 상처 속 고여있던 피가 샘솟듯, 갑자기 한 번에 무모한 행동으로 분출될 수가 있다.
누구라도 내 주변을 한 번 돌아보고, 소외된 이웃은 없는지 살펴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게, 이런 외톨이 분노형 범죄를 막는 유일한 길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