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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을 가진 한 방화범의 사연 5


관음증을 가진 한 방화범의 사연 5   

 

남자가 샤워를 하고 나오자 여자가 욕실로 씻으러 들어갔다. 남자는 여자가 씻는 동안 모텔 가운을 걸치고 프론트에 전화를 걸어 맥주와 마른안주거리 등을 시킨다. 베란다 창 밖에서 유영진은 남녀의 행동을 세세하게 살피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여자가 나오면 둘이 맥주를 마시면서 분위기 잡다가 곧 하겠지. 아.... 정말 저 사람들 쓸데없는 짓 하느라 사람 애간장을 다 태우는 구만. 모텔에 들어왔으면 먼저 빠구리를 쳐야지. 술도 어지간히 마신 것 같은데 또 무슨 맥주를 시킨담....’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그들의 행동거지에 맞춰 담배를 아껴 태웠는데도, 이제 남은 담배는 두 가치. 두 병이나 사온 소주도 거의 떨어져간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소주 한 병 더 사올걸 그랬나? 담배도 더 사오고....’

 

유영진의 입안도 바싹바싹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조급함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두 남녀는 유영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그가 본인들을 줄곧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으니, 그저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입 안에 서로 안주를 넣어주면서 공허한 수다만 떨고 있다.

 

‘아..... 도대체 언제 하는 거야.’

 

뙤약볕에서 세, 네 시간 그렇게... 눈 앞에 펼쳐질 진한 섹스장면의 파노라마만을 위해 줄곧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그의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빠구리도 안 칠거면서 왜 씻은거야. 저렇게 맥주나 마실거면 술집을 가던지. 아.... 짜증나 폭발해버리겠다.’

 

그 둘은 맥주를 12병이나 추가로 더 시켜먹으며 계속 횡설수설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여자가 우는 듯하더니 이내 남녀 모두 낄낄거리고... 남자가 버럭 화를 내는 것 같더니 또 둘이 서로 웃기도 한다. 그러다가 거울을 보며 남자가 나체로 춤을 춘다. 거시기를 흔들며 춤을 추는데 유영진 입장에서는 같은 남자로써 못 볼 꼴이었다. 차라리 여자가 하면 좋으련만, 어찌된 건지 여자는 가운을 얌전히 입고는 도무지 벗을 생각을 안 한다.

 

시간은 한 나절을 지나 이미 오후 네 시가 지나고 있었다. 이 둘은 아마도 대실이 아닌 숙박으로 들어온 것 같다. 프론트에서 나가라고 독촉 전화가 안 오는 것을 보니 말이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저리고, 덥기도 하고, 술기운도 올라왔다. 유영진은 그들의 섹스를 보는 게 간절하고 또 간절했다.

 

‘눈 앞에서 섹스만 펼쳐진다면, 자위를 하며 모든 근심, 걱정, 애태움을 다 날려버릴 수 있을텐데..’

 

성질 같아서는 “야, 니들 언제 할래?” 라고 확 질러버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유영진의 존재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치며 카운터에 항의할 것이 불 보든 뻔 한 일이다.

 

이런 충동으로 가득찬 생각을 잠재우고, 부글부글 끓는 속을 겨우겨우 억누르고 있는데, 드디어 남자가 술에 거나하게 취한 듯이 침대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자기야...이리와.”

 

손짓하는 남자를 보더니 여자도 술기운이 바짝 오른 얼굴로 비틀거리며 침대로 쏙 들어갔다. 유영진은 이미 다 말라비틀어진 침을 억지로 모아 꼴깍 삼켰다.

 

‘드디어 하는 건가’

 

피우던 담배를 서둘러 비벼 끄고, 그는 마치 잠복근무하던 형사가 용의자를 발견하고 무기를 꺼내는 양, 신속하게 바지춤을 끌러 성기를 꺼냈다. 나름대로 그의 준비태세였던 것이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에게 팔베개 해주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이내 그대로 코를 곤다. 여자도 술에 완전히 곯아떨어져 같이 코를 곤다. 어쩌면 그리도 동시에 잠이 들 수 있는지.

 

한 편 바지를 내리고 한참 준비태세에 있던 유영진의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세상을 다 잃은 듯한 낙심한 표정으로 멍한 상태였다. 어찌나 허탈한 지 다리에 힘이 쫙 풀려서 비틀거리며 넘어져버렸다.

 

넘어져 아픈 것도 못 느끼고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아껴마시던 남은 소주 반 병을 병째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가치를 꺼냈다. 하늘이 노랗다.

 

풀린 동공으로 잠시 허망하게 하늘을 응시하던 유영진은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 피우면서 세상 누구보다 억울한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고 순간 그의 심리는 극도의 허탈감이 분노, 원망으로 전환되어, 잠을 자고 있는 남녀를 죽이고 싶을 정도의 강한 살인충동이 일어났다.

 

이제 그의 머릿속엔 딱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결국 풀리지 않은 화를 감당하지 못해 피우던 담배를 몇 모금 더 빨다가 방 안 창을 열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커텐에 담배불을 붙이고야 만다. 불은 빠른 속도로 커텐을 타고 올라갔고, 이내 벽지에 옮겨 붙고, 싸구려 나무테이블로 옮겨 붙었다.

 

그렇게 유영진은 화재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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