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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더블 데이트 - 16부


나의 더블 데이트 - 16부 

 

도쿄 신주쿠역 북동쪽, 환락가로 유명한 가부키초의 뒷골목을 한 사람이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커다란 모자가 달린 외투를 뒤집어 쓴 그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삐끼들의 외침을 가볍게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골목의 끝에 이르자 안쪽으로 들어가는 더 작은 골목의 입구가 나타난다. 그 골목의 안쪽 끝에는 커다란 유리문이 있었다. 고급 맨션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망설이지 않고 지나친 그는 엘레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고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 엘레베이터 안은 따뜻했다. 그는 7층 버튼을 누르고 후드를 벗었다. 그는 - 아니, 그녀는 - 인애였다. 그녀가 서 있는 엘레베이터 공간과는 달리 바깥쪽 복도는 캄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천장에 달린 센서등이 사람이 지나감에 따라 켜져야 하는데 오늘은 어찌된 영문인지 켜지지 않는다. 인애는 관리인에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 문의 간격이 20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은 순간, 누군가가 발을 뻗어 문틈에 끼웠다.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문 바로 앞에는 회색빛 버버리코트를 입은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엘레베이터 안에 있는 인애를 보았다. 그녀도 그를 보았다. 인애의 눈이 커졌고, 남자의 입이 열린다.

"결국 만났군. 인애."

"정...석?"

뜨악해하는 인애를 앞에 두고 정석은 서서히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인애는 안색이 새파래졌다.

"여...여긴, 어떻게...."

"어떻게라니. 그렇게 말하면 섭섭한데.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아주 열심히 왔지. 오로지 널 보겠다는 일념으로 말이야."

인애는 뒷걸음질 쳤지만 그래보았자 엘레베이터 안이었다. 정석이 다가올수록 인애의 안색은 급변했다. 처음에는 파래졌다가 나중에는 하얘졌다가, 말 그대로 악마라도 본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자 발악하듯 소리쳤다.

"미안해... 미안하다고....그렇지만... 그건 꼭 나만을 위해 그런 건 아니었어! 당신을... 그래. 정석, 당신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정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남의 회사 돈줄을 죄고 계약을 취소시키려 했던 행위가 어째서 인애가 아닌 정석을 위한 행동이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미자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그를 "죽이려" 했었다. 정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헛소리 하지마."

"헛소리가 아냐! 내가 다 알아봤어! 근데도...."

"알아보기는 나도 충분히 알아봤지."

 

 

"아냐, 넌 몰라! 양숙이 고년은 한사코 아니라고 했지만, 난 다 알고 있었어! 그년이 딴 놈이랑 붙어먹고 있다는 걸 말야! 그래서 내가 벌을 준 거야!"

정석의 걸음이 멈췄다. 난데없는 이야기에 그의 사고가 일시 정지되고 말았다. 갑자기 효진의 모친인 김양숙의 이름이 여기서 왜 나오는지 정석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집 앞 도로에서 뺑소니 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범인은 찾을 수 없었고, 정석도 경찰도 어느 순간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 그저 겁만 주려고 했어! 그런데... 그런데... 그 년이 그렇게 죽어버리다니..."

"...그게... 네가...."

"결코 죽이려던 건 아냐!"

정석은 인애에게 자신의 회사에 대해 왜 그런 보복을 가했는지, 아무리 자신이 인애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왜 그렇게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 짓을 했는지 물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인애는 전혀 엉뚱한 걸로 정석이 자신을 쫓아온 것이라 오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양숙에 대해 더 엄청난 사실을 스스로 폭로했다.

"태근이도 그렇지만... 효진이도 네 애가 아냐! 그걸 모르고 애만 챙기는 니가 불쌍했다고! 난 널 풀어주고 싶었어!"

"그...그게 무슨 소리야."

정석은 인애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뒤에서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엘레베이터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태근이나.. 효진이가... 내 애가 아니라니! 너, 이 씨발년이 대체 무슨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뭐? 몰랐....어? 그럼... 그걸 알고 온 거 아냐?"

"그거라니."

"........"

 

 

이야기가 뭔가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한 인애는 입을 다물었다. 정석은 그녀를 끌고 그녀의 아파트로 향했다. 그녀의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내고 안으로 들어간다. 고급 맨션이라고는 하나 공간은 터무니없이 좁았다. 정석은 인애를 거실에 내팽개치고 소리쳤다.

"네가 아는 걸 다 말해."

"싫어."

"흥. 싫다고?"

정석은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일본에 도착해서 인애를 만나러 갈 채비를 하면서 갖춘 여러 준비 중에 하나였다. 인애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정석에게 있어 그녀는 "자신을 죽일 수 있었던" 여자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인애는 그것을 보고도 별로 겁이 난 표정이 아니었다. 한 때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치열하게 부대끼며 중견기업을 이끌던 그녀였다. 오히려 이런 순간에 그녀의 강단이 빛을 발한다.

"쏠테면 쏴봐. 그러면 넌 영원히 모르게 되겠지. 태근이 아버지가 누군지, 효진이 아버지가 누군지."

정석의 손에 들린 총구가 부르르 떨렸다. 손에 힘이 자꾸 빠진다. 머리 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두 번의 결혼, 두 명의 아내. 그녀들... 모두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믿을 수 없는 사실이 그를 괴롭게 했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외쳤다.

"거짓말 하지마! 네 년이 지금 살려고 발악하느라 지어낸 거짓말이지? 그렇지!"

"거짓말?"

 

 

인애는 코웃음쳤다. 바닥에 쓰러져 정석을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기세는 전혀 죽지 않은 그녀였다.

"십년전... 아니, 네가 우리 회사에 처음 들어올때니까 말야. 십이년 전이구나. 그때 회사 사람 다같이 건강정밀진단을 받은 거 기억나지? 그 중에서 정액검사를 하면서... 넌 두 번을 받았어. 기억나지? 이것도 내 거짓말일까?"

정석은 인애가 말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정석이 있던 회사의 사장이자, 인애의 남편이었던 정 사장은 병원 원장과 각별한 사이였다. 단순한 건강진단이 아닌 풀코스의 정밀진단을 저렴하게 받을 수 있다며 전 직원이 그런 검사를 행했다. 그런데 정석의 정액을 담은 시험관이 분실되었다며, 병원에서는 한 번 더 채취해달라고 요청했었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그 채취 작업을 또 해야한다는 걸 전해 듣고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난다. 결과적으로 그는 정액검사를 두 번 받았다. 정석도 그 사실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별다른 일이 없어 그대로 넘어갔었다. 인애는 지금 그 사실에 대해 폭로하고 있었다.

"네 시험관을 잃어버린 게 아냐. 첫번째로 검사를 했을 때, 네게 무정자증의 징후가 발견되었어. 아직 결혼도 안 한 총각이 그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검사받게 한거야. 혹시나 오진이 아닐까 해서. 그렇지만 두번째에도 판정이 나왔지. 강 원장이랑 우리 남편이 농담 삼아 이야기를 나누다 하게 된 검사에서 그런 결과가 나와서 우리 남편도 몹시 놀랐었지. 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도 하고 말야."

인애의 말은 마치 해머처럼 정석의 뇌리를 강타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그의 정신은 가드 풀린 권투선수처럼 너덜너덜해졌다.

"말도 안 돼.... 내겐 두 아이가...."

"정신차려! 이 병신아! 바보퉁이야! 그 아이들이야 말로, 네 아내들이 저지른 부정의 증거라고! 너는 여자를 잉태시킬 수 없어! 그런데 네 아내들은 아이를 가졌어."

다리에 힘이 풀린 정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총구는 바닥을 향했다. 그런 정석을 보며 인애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과 나는 그 사실을 꽤 오랫동안 고민했어. 너에게 알려주느냐 마느냐.... 그렇지만 결국은 알려주지 않았지. 의심간다면 지금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 네 자지를 검사해달라고 해보라고. 이 고자새끼야."

"말도 안돼... 말도 안된다고...."

"내가... 내가 왜 널 애틋하게 생각했는지... 넌 모를 거야. 나 역시... 애 못가진다고.... 결혼 후 남편에게 돌밭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멸시당했어. 그래서 난 너를 지켜본 거야. 너라면, 날 이해해줄거라고 생각했어."

"말도 안돼...."

 

 

처음 인애가 자신을 올라타던 때를 떠올린다. 정석이 얼굴이 좀 잘 생긴 편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여자에게 막 인기있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런데 별다른 접점도 없었던 인애가 갑자기 정석을 유혹하고, 올라탔으며, 집착까지 하는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정석은 인애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말이 왜 안 돼! 게다가 은주, 고 년은 원래 남자가 많은 년이야! 내가 잘 알아! 밖에서 어디선가 씨를 받아왔겠지."

"그럼... 그럼 양숙이는...?"

"너희 집을 관찰하던 중에 묘한 걸 발견했지. 네가 출근하고나면 주인집으로 올라가던 네 마누라. 한참후에야 나오더군. 그게 하루이틀이 아니었어.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애를 낳더군. 씨없는 남편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이 정도면 충분한 증거 아니겠어?"

정석의 뇌리 속에서 두번째 부인, 양숙의 장례식이 떠올랐다. 장례식장에서 자신에게 효진이를 어디 다른 집에 보내지 않겠냐고 넌지시 권하던 주인집 윤 씨. 그는 정말 정석을 걱정해서 그런 말을 꺼냈던 걸까. 그저 단순한 염려였을까. 이전에는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이들을 향한 의심이 시작되자, 이제는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석이 아무 말도 없자 인애는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네가 결혼하고... 그렇게 부인을 떠나보내고.... 난 네게 다가가지 않으려고 했어. 그렇지만 양숙이 그 년이 하는 짓을 보고 있으니 너무 괘씸했어. 그래서 그날 집밖으로 불러내어 경고했지. 다른 남자 만나러 다니지 말라고. 네게 충실하라고 말야. 그렇지만 한사코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더군. 자신은 그저 일 도우느라 주인집에 다녔을 뿐이라고. 그걸 누가 믿어? 그래서 돌아서서 가는 그년을... 내가 차로 밀어버렸어. 후회는 없어. 사람을 죽인 거긴 하지만.... 난, 내 나름대로 널 사랑한 거야. 내게 죄가 있다면 널 불쌍히 여기고 사랑한 죄라고."

인애는 두 손과 두 발로 기어, 마치 네 발 달린 짐승처럼 정석에게 다가왔다. 정석의 얼굴을 쓰다듬고 그의 목을 어루만졌다.

"불안했어. 누가 뭐래도 사람을 죽인거잖아. 그런데 누가 나한테 편지를 보내더라. 내가 양숙이를 죽인 걸 알고 있다며... 그게 드러나고 싶지 않다면 해외로 도망가라고 말야. 그래서 널 두고 도망쳤어. 내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서. 그렇지만 이렇게 네가 찾아오다니.... 역시 우린 운명인가봐."

인애는 정석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풀린 정석은 인애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 이내 알몸이 된 정석을 두고, 인애가 올라탔다. 그녀 역시 알몸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정석의 아랫도리를 보고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일이 어찌되었건 그녀는 정석을 좋아했었고, 정석의 몸도 좋아했었다.

"하아...이거...이건...너무 좋아...우웁......"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그와 별개로 정석의 자지는 꼿꼿히 발기되어 있는 상태였다. 인애는 정석의 자지를 열심히 빨았다. 

추웁- 추웁- 

불알을 만지고, 육봉을 쓰다듬으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익숙한 행위를 다시 한번 행한다. 그렇게 한참을 입에 넣고 삼킨 인애는 스스럼없이 그에 올라탔다. 그녀의 비부는 젖어있었다. 허벅지를 벌리고 정석의 위로 자리한다. 오랜만의 행위이긴 하지만 이미 익숙한 행위였기에 삽입은 쉽게 이루어졌다. 간만에 느껴보는 꿰뚫리는 기분에, 그녀의 정신은 고양되었다.

"하앙...하윽....역시.. 난 너 없으면 안 돼... 너 없으면.... 흐윽...."

정석의 가슴을 짚은 채, 그녀는 요분질을 격하게 시작했다. 벌름거리는 보지는 자지의 들락거림에 거칠게 반응하며 벌름거렸다. 쩔컥거리는 음란한 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정석은 어떤 결정을 내렸다. 그는 입을 열었다.

"아니.. 내 생각은 달라."

 

 

"다르다니....흐응?"

몸을 젖히고 천장으로 얼굴을 향한 인애는 정석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분노를 바로 캐치하지 못했다. 정석은 벗어놓은 옷가지를 더듬었다. 상의를 던져놓은 그 즈음에서 딱딱한 무언가를 찾아냈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감촉만으로 그것을 집어 들고 자신의 위에 올라탄 인애를 겨눈다.

"그렇군. 너만 없으면 되는 거야. 너만."

"무슨 소리지?"

"내가 무정자증이라는 사실을... 너와 네 남편만 알고 있었다는 거 아냐. 네 남편이 죽고 없으니... 이제 너만 죽어 없어지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제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지."

정석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올라간다. 인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미쳤...구나...너..."

"그래. 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 나도 미쳤어."

정석은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는 인애의 젖가슴 사이를 정확히 누르고 있었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녀의 살이 일종의 소음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등뒤로 터져나간 피는 벽과 천장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인애는 입을 뻐끔거리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그래. 이젠 아무도 없군."

인애의 몸이 앞으로 스르륵 쓰러졌다. 행위를 마치고 정석에게 안기던 자세 그대로, 정석 역시 팔을 둘러 그녀의 목을 안아주며 말했다.

"내 아이들은... 내 아이들로 키울 거야. 그건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야."

정석을 인애를 밀어냈다. 단순한 고깃덩어리로 바뀐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굴렀다. 정석은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 자리에 쓰러져 잠시 숨을 골랐다. 한참만에 일어난 그는 거실에서 전화기를 찾아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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