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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더블 데이트 - 1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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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더블 데이트 - 15부 

 

유월이 되자, 정석의 집은 장미 향기로 가득찼다. 미자는 담장 밑에 장미묘목을 가득 심어두었고, 

 

 

그 결과 담장을 따라 장미덩쿨이 가득 올라가 담장 원래의 블록은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장미가 흐드러지게 가득 피어있는 정원에서 두 아이가 뛰어놀고 있었다. 정원 한쪽에 놓여진 테이블에는 정석과 미자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사실 찻잔을 들고 마시는 건 미자뿐이었고 정석은 앞에 놓여진 서류뭉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얏!"

"저런..."

자기 오빠를 따라 정원을 달리며 놀던 효진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미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효진에게 달려가 일으켜주었다. 울먹이는 효진을 달래고 태근을 시켜 손수건을 적셔 오도록 한다. 그녀가 그렇게 아이를 돌보고 다시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정석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미자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아저씨."

"....."

"이봐요. 아저씨!"

"응?"

거듭 불러 겨우 정석의 주의를 이끌어낸 미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기왕 모처럼 아이들이랑 보내는 시간인데 관심 좀 줘요. 평상시에는 집에도 안 들어오느라 그렇다고는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휴일이잖아."

"아아. 이게 오늘 안에 검토가 되어야 하는 사안이라."

"흐음..."

정석의 변명을 들으며 미자는 가볍게 툴툴거렸다. 정석은 멋적게 웃으며 이미 식어버린 찻잔을 들이켰다. 미자는 정석에게서 시선을 떼고 정원에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태근이가 효진이를 데리고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프로레스링 흉내를 내며 놀고 있었다. 미자는 태근이에게 살살 하라고 이르곤 정석에게 물었다.

"그 하영이라는 애는 잘 지내고 있나요?"

"응... 그렇다고 하더군. 춘희가 가끔 내려가서 돌봐주는 모양이야."

광주에서 나온 하영은, 다시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정석은 그녀의 친인척을 수배해 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결국 하영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지내기로 했다. 정석은 하영의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물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정석의 비서인 춘희가 수시로 내려가 돌보며 하영의 생활에 대해 정석에게 보고하곤 했다. 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학교는 서울에서 다닐테니, 그때는 여기서 지내게 하세요. 똑똑하고 인정이 많은 아이이니 태근이나 효진이와 좋은 친구가 될 거예요."

"걔가 똑똑한지 어떻게 알...겠군. 자네라면."

미자는 하영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정석이 광주에서 하영을 데리고 나왔지만 곧 탈진증상을 보이며 쓰러졌기에 서울까지 데리고 올 수 없었다. 근처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그래서 미자는 정석에게서 하영이의 이야기를 지나가는 길에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그 아이의 미래에 대해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미자의 빙글거리는 표정을 보고 정석은 고개를 저었다. 

"뭐 한가지 물어봐도 돼?"

"아뇨. 안 돼요."

 

 

딱 잘라 거절하는 미자의 태도는 정석으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내가 무슨 질문을 할지 알고..."

"네."

이번에도 자신의 말이 잘렸지만 정석은 개의치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질문을 하게 되면 어떤 질문을 할지..."

"법대요. 그리고 졸업도 하기 전에 고시를 패스할 거예요. 검사로 임용은 되지만, 본인이 사양하고 변호사의 길을 택하죠. 그리고 그동안 학비를 대준 박 회장님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아저씨 밑에서 일하게 돼요."

정석의 질문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지만 벌써 답을 구했다. 정석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곰곰히 생각하다 말했다.

"만약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도 그 아이의 학비를 대주지 않는다면? 자네가 어머님의 사고에서 그러했듯 나한테도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건가?"

"에이, 설마요. 아저씨는 제가 아니잖아요. 그럼 그냥 내가 아저씨에게 거짓말을 한 게 된 거죠.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말했다고 해서 무조건 다 비가 오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자네는 그것을 보았다는 거잖아. 내가 그 아이에게 학비를 주는 모습을...."

"아저씨는 살면서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 장면을 떠올리거나 상상한 적 없나요? 제게 보이는 광경도 그런 막연한 거예요.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모습이라...."

"그런가..."

정석은 들고 있던 펜으로 종이에 뭔가 끄적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날 밤, 내가 자네에게 전화를 한 것도, 그리고 내가 광주에 가리란 것도 자네는 알고 있었나? 광주사태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미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석은 그것이 긍정을 뜻하는 것임을 알았다. 미자는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니까.

"그랬다면... 진작에 윤희에게 광주에 가지 말라고도 할 수 있었고... 동생들을 서울에 미리 데려올 수도 있었잖는가. 그렇다면 그녀와 남동생은 죽지 않고...."

"아저씨."

미자가 정석의 말을 끊었다.

"저랑 같이 지낸지... 벌써 1년이 넘어가죠? 그런데도 아직 절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네요. 그렇죠?"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이렇게 생각하세요. 원래 아저씨는 대박을 맞을 사람이었고 그저 제가 옆에서 이상한 마권을 샀을 뿐이에요. 마찬가지로 아저씨가 가지 않았더라도 그 아이는 나올 수 있었어요. 그저 아저씨가 변덕을 부려 광주에 간 것 뿐이죠."

"이봐, 그게 말이 돼?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거지, 자네의 말은 마치 결과를 위해 원인이 있었다는듯이...."

"왜 말이 안 돼요? 사람은 어차피 죽어요. 그러기 위해서 태어난 거잖아요?"

정석은 여태껏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눈빛이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음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미자의 말은 일반적으로 보자면 철저히 궤변이었지만, 정석은 그런 그녀에게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 논리는 옳다. 정석을 쏘아보던 미자는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는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제가 요새 신경을 좀 날카로워져서.... 이 아이도... 나중에 하영이의 도움을 받게 될테니까요. 그러니 아저씨가 그 애를 좀 많이 도와주세요."

정석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미자의 손이 배를 감싸고 있는 것을 본 그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비록 직접 낳은 것은 아니라고해도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였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되었어?"

"이제 8주 가량..."

 

 

정석은 손을 내밀어 미자의 손을 붙들고 껄껄 웃기 시작했고, 미자는 미소를 지었다. 정석은 웃느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미자는 그런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

정석이 첩보를 입수한 것은 날씨가 완연히 쌀쌀해진 11월 달이었다. 원래 일본에서의 일은 윤희가 일임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부재 이후 적당한 후임을 아직 구하지 못한 터였다. 그래서 정석은 직접 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예정일이 불과 두 달 밖에 남지 않은 미자의 배는 이미 만삭이었다. 요새 정석의 유일한 즐거움이 있다면 미자의 배에 손과 귀를 대고 아이의 태동을 느끼는 것이었다. 예정일이 가까워질수록 뱃속의 아이는 힘찬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석 역시 아내를 두고 일본으로 가야하는 일이 다소 껄끄러웠다. 

"그러면 안 가면 되잖아요."

"그러고 싶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별러 왔던 일이야. 이번에 종지부를 찍겠어."

"꼭 찍어야 직성이 풀리겠어요?"

"그래야 내가 밤에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거든."

고집을 부리는 정석을 보며 미자는 쓸쓸한 표정으로 정석의 여행가방을 챙겼다. 정석은 그런 미자의 표정을 보며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신이 오랜 기간 집을 비워서 서운해하는 거라 생각했다.

"걱정마. 이제 완전히 외통에 몰아넣은 터라 금방 확인할 수 있을거야. 장군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꼭 돌아오니 걱정마."

"난 그 이름 싫은데... 딸이라니까...."

"어때? 씩씩한 이름이잖아."

"......에휴. 맘대로 생각하세요."

정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미자가 딸이라고 하면 딸일 것이다. 그녀의 능력을 알고 있는 정석은 괜한 고집을 피웠다. 그는 효진이를 예뻐했지만 그래도 아들이 하나 더 있었으면 했다. 내년이면 4학년에 올라가는 태근이는 어쩐지 공부보다는 몸을 쓰는 일에 더 소질이 있어보이기에, 자신의 사업을 물려주기 위한 대상으로 아들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 하나 더 낳으면 되겠지만, 일단 정석의 바람은 아들이었다.

"만약 아저씨가 일본에 안 가면, 아들이라고 나도 말해줄게요."

"내가 일본에 가는 게 그렇게 싫어?"

"네."

"내가 가면 죽어?"

정석이 웃으며 말하자 미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건 아니에요."

정석은 묘한 기분이었다. 미래를 볼 줄 아는 미자와 지내면서, 그는 종종 그런 기분을 느꼈다. 미자는 미래를 보지만, 그걸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미 자신의 어머니를 구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가 되려 부모님 두 분 다 잃었던 경험을 가진 그녀였다. 미자의 말에 의하면,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그에 반하는 선택을 하게 되면 일종의 반작용 같은 일이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미자의 삶은 일종의 연기나 마찬가지다. 정해져 있는 길이 있고, 그에 순종하며 따르는, 미래의 노예와도 같은 삶이다. 

 

 

그것이 미자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정석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미자가 내놓은 어떤 조언에 있어서 귀를 기울이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말이 쉽지,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래를 아는 사람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강한 파괴력을 가진다. 미자가 미래를 볼 줄 안다는 것을 정석이 모른다면 모를까. 이미 알고 있는 마당에는 그에 대한 생각을 떨치기 쉽지 않다.

미자가 말한 일은 이미 벌어지게끔 안배되어 있다. 정석은 그것이 원래대로 이뤄지기 위해 자신에게 그런 조언을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애초에 자신이 그 일을 하겠다고 생각을 떠올린 것, 그것까지도 예비되어 있던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예정대로 일을 진행하면서도... 정석의 마음은 의혹투성이가 된다. 혹은 미자가 어떤 일에 대해 반대를 한다. 정석은 반대에 대해 생각하면서 되려 그 일에 대해 자꾸 생각을 하게 된다. 반대에 반대로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 반대를 따르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결론은 쉬이 나오지 않고, 사후 영향을 정석이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의심과 의심이 반복되다보니 어느 순간, 정석은 미자의 말은 흘려듣게 되었다. 그녀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말할 뿐이고, 그도 그냥 아무 생각없이 들으려고 노력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정석은 노력했다. 이번 일본행에 대한 미자의 의견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준비를 모두 마친 정석은 여행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두 아이와 미자가 배웅을 나왔다. 정석은 태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나 말 잘 듣고, 효진이 잘 보고.... 아빠가 없는 동안은 네가 이 집 가장이다. 알았지?"

"네!"

 

 

"좀 있으면 네 동생 나올테니까... 누나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알고 있어요."

태근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요즘 들어 키가 부쩍 커진 태근이었다. 정석은 키가 그리 큰 편이 아니었지만 태근은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고 있었다. 정석은 조만간 태근의 키가 자신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요새 애들은 잘 먹어서 그런지 키가 크네. 날 닮아 키가 작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키는 몰라도 얼굴은 아저씨 얼굴을 닮았어야 하는데."

미자가 살짝 한숨을 쉬자 그녀의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효진이는 미자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빠가 못 생긴 거예요?"

"응. 아마도? 아빠만큼 잘 생기진 않았잖아."

태근은 씩씩거리며 펄펄 뛰었지만 효진이는 까르르 웃으면서 좋아했다. 정석은 그럼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 앞에 세워져 있던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차가 떠난 후, 미자는 방으로 돌아왔다. 열려있는 옷장을 보며 그녀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벽장에서 커다란 가방 하나를 꺼낸 그녀는, 옷장에서 자신의 옷을 꺼내어 가방에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효진이가 방에 들어오더니 미자에게 물었다.

"언니, 어디 가요?"

"응. 바로는 아니지만 좀 있다가 갈거야."

"나도 같이 가?"

"아니. 효진이는 같이 안 가."

그러자 효진이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미자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효진이를 달랬다.

"멀리 가는 건 아니고... 근처에 갈 거야. 나중에 효진이도 같이 갈테니까, 뚝 그쳐. 응? 착하지?"

"나도 갈거야!"

"그래, 그래. 너도 같이 가자. 응? 알았지?"

한번 울음이 터진 효진을 달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효진이가 우는 소리에 놀라 달려온 태근을 향해, 미자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사정을 모르는 태근이는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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