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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더블 데이트 - 2부


나의 더블 데이트 - 2부 

 

"조건이 있습니다."

 

 

다시 원종서를 만났을 때, 난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서두를 꺼냈다.

"조건?"

"네. 혹시 아시려나 모르겠는데...제가 여기 들어온 까닭은.."

"강간이라며?"

너무도 쉽게 입에 올려버리는군. 쳇. 

"일단은 그렇기는 한데... 거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저는 결백합니다. "

"흐음. 누명을 쓰셨다?"

미심쩍어 하는 그에게 명희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었다. 오로지 자기 본위였던 그년에게 끌려다녔던 나의 어리석은 과거를 털어놓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여기에 들어오게 된 것이 그년의 계략에 말려들어서 였음을, 그리고 그것을 갚아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년에게... 꼭 복수하고 싶습니다."

"어허. 이 사람아..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말도 모르나?"

유명한 경구이긴 하지만...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애써 고개를 저었다. 역시 목사라서 그런지 꼰대질을 하려고 든다.

"모릅니다."

"저런... 자네를 위한 좋은 성경 구절을 하나 들려주지.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이야기일세."

살짝 짜증이 났다. 내딴에는 큰 맘 먹고 과거까지 털어놓아가며 도움을 청하는데 뭔 놈의 얼어죽을 성경말씀? 그는 살짝 눈을 감고 천천히 읊조렸다.

"예레미야 20장 12절에 이렇게 나와있다네. 만군의 주님, 주님은 의로운 재판관이시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저의 억울한 사정을 주님께 아뢰었으니, 주님께서 제 원수를 그들에게 갚아 주십시오."

깜짝 놀랐다. 뭐야, 아까는 원수를 사랑하라며? 눈을 뜬 종서는 나를 보며 힘을 주어 말했다.

"제가 그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종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만 해준다면야, 그런 사소한 일은 어렵지 않네. 물론 나가고 당장은 어렵지. 나도 기반을 닦아야 하니 말일세. 그러나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면.... 내 적극 자네를 돕도록 하지."

그의 확고한 말에, 나는 결심했다. 종서의 손을 잡았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그가 소개한 김태윤이라는 목사를 만나 그의 교도소 방문 심방에 내가 매달 열렬히 참여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그게 도움이 되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초여름이 다가올 때쯤, 나에 대한 가석방 심사는 합격으로 결론났다.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입감한지 만 2년 2개월만이었다.

"어때? 소감이?"

옆에서 원 목사가 물어보았지만 딱히 대답할 게 없었다.

"그저... 그렇습니다. 허무하기도 하고."

"연락할 곳은 따로 없는가?"

고개를 저었다. 원래 나의 출감 예정일은 올해 말이었다. 그렇지만 난 아무에게도 가석방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오늘 내가 출감하게 될 거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문에 나를 마중나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딱히 그들에게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돌아갈 염치가 없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날 기다리고 있다.

"없습니다. 아무 곳도요."

그러자 원 목사는 씨익 웃었다. 

"좋은 자세구먼. 그럼 나와 함께 가세나."

원 목사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함께 가석방된 사람 중에서 원 목사의 입김이 닿은 사람은 나말고도 두어명 더 있었다. 그들은 원 목사에게 감사를 표하고 연락처를 주고 받은 후 먼저 자리를 떴다. 나중에 그들도 원 목사의 사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원 목사를 따라 가보니 교도소 후문에서 약 백여미터 떨어진 곳에, 그를 기다리는 차가 한 대 있었다. 차 앞에는 몸 전체를 가리는 회색 옷을 입고 있는 여자가 두 손을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다가오자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했다. 원 목사를 껄껄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아~ 김 권사님. 오랜만입니다."

"격조하셨습니다. 원 목사님."

원 목사가 그녀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쪽은 제가 안에 있으면서 만난 재원, 최한석 군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목회 사업에 큰 힘이 되어줄 친구입니다."

그녀의 째진 눈이 날 향한다. 위아래로 짧게 훑어보는가 싶더니 이제 고개를 숙인다. 나 역시 고개를 숙였다.

"김은혜라고 합니다."

"최한석입니다."

 

 

은혜는, 빈말로라도 예쁘다고 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피부는 몹시 거칠었고 한쪽 광대뼈가 심하게 돌출되어 있었다. 눈은 작았으며 입술은 탁한 빛을 띄고 있었다. 얼굴 전체에 마치 가면이라도 쓴 것처럼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목소리는 마치 젓가락으로 쇠냄비의 바닥을 닥닥 긁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차로 안내하며 말했다.

"일단은 대전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거기서 오빠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은혜가 운전석에 앉았고 원 목사는 뒷자리 상석에 앉았다. 어디 앉아야 되나 우물쭈물하던 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운전석의 은혜가 날 한번 힐끔거렸지만 딱히 뭐라고 하진 않았다.

가면서 듣자하니 그녀는 김태윤 목사의 동생이었다. 태윤은 원 목사가 심복처럼 부리는 사람이었고 은혜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도로 위를 달리면서 원 목사는 은혜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그녀는 착실히 대답했다. 원 목사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사업구상"은 은혜와 태윤을 통해 진행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에는 농장, 시설... 뭐 이런 말이 많이 나왔다. 아마도 어딘가에 교회라도 세우는 걸까. 그러던 차에 묘한 이름이 나왔다. 원 목사가 은혜에게 물었다.

"바텐더는? 연락이 되었습니까?"

바텐더? 그건 바에서 칵테일 만드는 사람을 말하는 거 아닌가? 검은색 조끼 같은 걸 입고 말이다. 그런 사람을 왜 여기서 찾는 거지? 이 시간에 낮술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닐테고.

"바텐더는 오빠가 데리고 오기로 했습니다. 현장의 온실에 기거하면서 온갖 참견은 다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기분 탓일까. 그녀를 안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녀의 목소리 자체가 퍽 듣기 좋은 편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바텐더를 언급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내심 불편해보였다.

"허허. 역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로군요. 보기 좋습니다."

그녀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원 목사는 껄껄 웃으며 바텐더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은혜는,

"목사님. 정말 그 자를.... 중히 쓰시는 겁니까?"

하고 묻는다. 내 뒤에서 원 목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렴요. 그와 저의 만남은 가히 성령의 축복이라 할만합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바를 같이하는 이를 만나기란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그는 종종 성스러운 이름을 삿되게 부르고 공공연히 이단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어찌 그런 그가 성전을 짓는데에..."

"김 권사님."

 

 

원 목사의 낮은 목소리가 은혜의 불평불만을 가로막는다.

"디오데후서 2장 20절에 이런 말씀이 나오죠.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말입니다."

"아멘. 알고... 있습니다."

"그자의 삿된 행동거지를 제가 모를 리 없습니다만... 알면서도 데려왔습니다. 그의 쓰임은 큽니다. 그런 그를 잘 사용하여 우리의 사역이 땅 끝까지 도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 또한 주님의 영광 아니겠습니까?"

은혜의 안색은 고개를 살짝 돌리는 것만으로 가능하다. 정면을 바라보며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옆 얼굴은 다소 그늘져 있었다. 피곤해 보였다. 

"알겠습니다. 명심하죠."

그후로 다른 대화는 더 없었다. 창밖을 보는 척하며 사이드 미러에 비친 원 목사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시트에 몸을 깊숙히 묻고 있었다. 

방금 들은 그의 말을 떠올린다. 그는 바텐더라는 사람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어찌보면 별 문제없는 말이겠지만... 그의 전과, 그러니까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그가 나를 비롯한 교도소 사람들을 굳이 원하여 감방에서 데리고 나온 일이나 자신의 사업에 동참시키고자 한 일이, 결코 나에게 득이 되는 일만은 아닐거란 예감이 든다. 제아무리 그가 목사라고 하지만 자원봉사자는 아닐게 분명하다. 선량한 목회사업일 리도 만무하다. 

그러나 나 역시 또다른 속셈과 욕심이 있었기에 그를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원 목사가 내게 일러준 성경구절을 떠올린다. 

- 만군의 주님, 주님은 의로운 재판관이시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저의 억울한 사정을 주님께 아뢰었으니, 주님께서 제 원수를 그들에게 갚아 주십시오. 제가 그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원목사의 그 이야기를 듣고 와서 해당 구절을 찾아본다. 빵에는 성경책이 있었다. 많은 이들의 손때가 타서 너덜너덜한 그것을 펼쳐 그 구절이 실린 예레미야서라는 걸 찾아보았다. 

그것은 하나의 처절한 기록이었다. 예레미야라는 예언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동족들에게 갖은 멸시와 고난을 당하면서도 끝끝내 하나님의 뜻을 펼치고 그에 복종하는 것만이 유일한 살 길임을 주장하고 다닌 이야기였다. 늘 진실만을 말하는, 혹은 말한다고 자기가 주장하는 예레미야를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거짓"이었다.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증언을 늘어놓는 자들로 인하여 그는 항상 곤경에 처했다. 그를 묶고 때리는 사람 앞에서도 예레미야는 주님을 향한 찬양을 멈추지 않는다. 원 목사가 일러준 구절은 그런 예레미야가 다른 이들에게 고초를 겪으며 외친 일종의 발악과도 같았다.

거기까지 읽은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대체 나는 여태까지 무얼 하고 있었나. 

대체 나는 지금 여기서 무얼 주저하고 있는가 싶었다. 

 

 

자신을 향해 욕을 퍼붓고 박해를 가하는 이를 향하여 신의 힘을 빌어 복수를 하겠노라며 외치는 예언자의 절규를 읽으며,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욕을 퍼붓고 있었다. 내 인생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린 년이 저기 저 밖에 멀쩡히 살아 숨쉬고 있는데, 난 그저 여기 앉아 한탄만 하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미안함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살았다. 어느 순간, 내가 내 죄를 인정하고 죗값을 치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그런게 진정한 죗값이 아니었다. 죗값이란, 정말 죄를 지은 자들이 받아야 하는 거고, 진정 내가 선량하고 결백하다면 그를 증명해보이면 될 것이다.

이것은 나의 각성이었다. 그래서 나는 원 목사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아니, 방금 원 목사가 바텐더라는 사람을 "사용"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나 역시 그를 "사용"하여 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그게 내 목표다.

"이제 곧 대전입니다."

은혜의 쇠 긁는 목소리에, 상념에 빠져있던 나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창 밖에는 삐죽삐죽 솟은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를 태운 차는 대전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외곽으로 빠졌다. 시 경계상에 있는 산 언저리를 따라 달리다가 길가에 있는 어떤 카페 앞에 차를 세운다. 나와 원 목사, 은혜는 차에서 내려 카페로 들어갔다.

"아! 여기입니다!"

김 목사는 미리 와있었다. 교도소에서 몇 번 만났던 터라 나는 그와 면식이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리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테이블에는 그 혼자가 아니었다. 덩치는 작지만 허리가 꼿꼿한 노인 한 명이 그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노인이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본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는 분명 얼굴 한가득 주름이 자리한 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은 전혀 노쇠하지 않았다. 젊은이의 눈빛 같았다.

원 목사는 태윤과 힘차게 악수를 나누곤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앞에 있는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석 군. 인사하시죠. 저희 회사의 핵심 브레인이신 바텐더입니다."

"이분이... 바텐더?"

엉겁결에 손을 내민다. 바텐더의 마르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손을 덥썩 잡는다. 

"반갑군. 내가 바텐더일세. 켈켈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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