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더블 데이트 - 1부
나의 더블 데이트 - 1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 곳곳에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발길질을 피하려고 바닥을 구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입술도 터져 있었다. 손등으로 대충 문질러 닦아낸다.
"어이~ 젊은이. 괜찮나?"
운동장 끄트머리에 있는 벤치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가 내게 말을 붙인다. 그쪽을 힐끔 쳐다 보았지만 굳이 대답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중얼거렸다.
"많이 맞은 모양이던데..."
자리에서 일어나 잠자코 옷을 털었다.
"놈들이 말야, 여러 명이서 한 명을... 에이 못난 놈들."
신경이 거슬렸다.
"지금 그렇게 신경 쓸 거면 아까 두드려 맞기 시작할 때부터 신경을 써주지 그러셨습니까."
톡 쏘는 내 말투에 그는 껄껄 웃었다.
"아까부터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네."
남자는 이제 마흔이 좀 넘어 보였다. 그는 내게 다가와 등 쪽을 털어주었다.
"미안하네. 나도 도와는 주고 싶었지만... 그놈들 세가 워낙 등등해서 말야."
"마음만이라도, 퍽 고맙기 짝이 없군요."
분명 그는 호의를 베풀고 있지만 비꼬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내 심사는 뒤틀릴대로 뒤틀려 있으니 말이다. 남자는 그저 껄껄 웃을 뿐이었다. 그를 힐끔거렸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쩐지 뒤가 구릴 것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내 이름은 최한석. 스물 다섯살. 그리고 여기, 교도소에서 2년째 복역중이다.
교도소 재소자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어떤 파벌이 형성된다. 대개는 같은 지역 출신끼리 묶이는 것이 일차적인 집단이고 그 다음으로는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인간들끼리 묶이는 것이 통상적이다. 도둑질을 한 놈들은 도둑질을 한 놈들끼리, 사기를 친 놈들은 사긴를 친 놈들끼리... 라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가장 재수없는 놈" 그룹에 속해있었다.
누가 내 "피의사실"을 알게된 모양이다. 강간범이라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졌다. 개인정보는 분명 보호되어야 할텐데 여기서는 전혀 그러질 못한다. 이내 곧 "배운놈"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비록 대학 졸업을 목전에 두고 퇴학처리 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기 사람들에 비하면 꽤나 고학력이긴 하다. 나를 고깝게 보는 놈은 점점 더 많아졌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사실은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엄밀히 따져서 태어난 곳은 경상도고, 어린 시절은 전라도에서 보냈지만 철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타지생활을 해온 나는 고향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그럼에도 경상도 쪽 놈들은 괜히 이죽거리며 나를 툭툭 치고 지나갔고 전라도 쪽 놈들 역시 사투리를 쓰지 않는 나보고 흰둥이 새끼라며 욕을 해댔다.
결과적으로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게 되었다.
방금 전, 운동시간을 맞이하여 운동장 한쪽에서 가볍게 일어났던 소요는 나를 위한 일종의 "파티"였다. 초대받은 내가 전혀 반기질 않았고 저들 역시 맛좋은 술과 음식을 권하는 게 아니라 주먹질과 발길질을 쏟아부어주는 게 아주 특징적인 파티였다.
"나는 원종서라고 하네. 저쪽 B동에 있지."
아까부터 말을 걸어오는 남자를 무시하며 혼자 걸어가는데, 그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고 있었다.
"요 며찰전부터 자네를 죽 지켜보고 있었는데 말야. 꽤 강단이 있어 보이더군. 자네랑 같은 동에 있는 최 씨랑은 꽤 잘 아는 사이지."
방금 전 두들겨 맞고 있던 사람에게 강단이 있다니... 코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비꼬는 겁니까?"
"그럴 리가. 칭찬하는 걸세."
"고맙네요. 하지만 그런다고 나올건 아무 것도 없어요."
쏘는 듯한 말투에도 종서라는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하. 내가 뭐 흑심이 있어서 자네에게 이런 소리 하는 걸로 보이나? 내가 그런 사람 같아 보여?"
솔직하게 말한다.
"네."
그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사람 좋은 웃음을 꾸며 껄껄거리고 만다.
"음음... 뭐 정히 그렇다면 말야. 알았네. 다음에 또 보세나."
그는 인사를 남기고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멀어져가는 종서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운동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실내 입장 점호를 위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B동 쪽을 힐끔 보았다.
그후로도 그는 종종 나타나 내게 말을 걸었다. 어떨 때는 날씨 이야기, 또 어떤 날은 그날 나온 엿같은 점심 반찬 이야기. 한 마디로 쓸데없는 이야기만 줄창 늘어놓고 저 혼자 웃다 가버린다.
모퉁이 방 최 씨를 세탁 노역실에서 만나 종서에 대해 물어보았다. 최 씨는 교도소에 들어온지 오래된 사람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들락날락거리기가 예사였고, 나이 먹은 지금에 와서는 바깥보다 교도소가 더 편하다는 사람이었다. 최 씨는 담배 한 갑이면 뭐든지 들어주고 털어놓는 편리한 사람이었고, 나는 담배를 피지 않아 배급품인 담배를 그저 가지고만 있었다. 그것들을 건네주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 목사 말이지?"
"목사입니까? 그 사람이?"
"그래, 아주아주 훌륭한 목사님이지. 낄낄낄."
최 씨는 주름이 가득 패인 이마를 찡그리며 웃어보였다. 듣기로는 나이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얼굴의 주름만 보자면 우리 엄마보다도 훨씬 늙어보인다. 아아.. 엄마에 대한 생각이 이르자 다시 기분이 우울해졌다. 여기 들어온 이후로는 바깥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에게 오는 편지도, 소포도 죄다 뜯어보지 않고 모두 버리고 있다. 그들로 하여금 나를 버리게 하고 싶은 심정이다.
"말이 좋아 목사지 그 놈은 실상 사기꾼이야, 사기꾼."
"네?"
내가 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최 씨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뭘 그리 놀래? 여기 있는 놈들 전부 다 나쁜 짓 하고 들어온 나쁜 놈들인데 말여."
"그래도 방금 목사라고..."
"크크큭. 목사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사기꾼이 어디 그 놈 하나뿐인가? 모르긴 몰라도 사기꾼으로 잽혀 들어온 놈들 직업 조사 해보면 목사가 다섯 손꾸락 안에는 들어올거란 말일세."
"그런가요..."
사기꾼이라니. 인자해보이는 그 얼굴로 남을 등쳐먹고 다닌다는 건가. 나에게 접근하는 것도 일종의 밑작업일지도 모른다. 친분을 쌓은 후 사기를 치려는 걸까. 나는 빼먹을 것 하나 없는 종자인데 굳이 왜 접근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이제 앞으로 그를 멀리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최씨는 괜히 고개를 빼어 주변을 둘러보는 척 했다. 그래보았자 세탁실의 그 누구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고 있지 않았다.
"쓰러뜨린 계집만 해도 두 자리는 된다고 하더군."
"쓰러뜨리다뇨....?"
여자를 쓰러뜨려? 종서에 대해 무시하려던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것은 나에게 필요한 정보다.
"자빠뜨렸다고. 키키키. 자네도 그걸로 들어온 거 아니었어?"
젠장. 그런 쪽의 의미였나. 난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알아, 알어. 결백하다면서?"
".......제 이야기는 됐습니다."
입맛이 썼다. 내가 아무리 결백을 주장한다해도 여기서는 한낱 개소리에 불과하다. 어차피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왔다. 여기서는 죄를 저지르고 들어온 게 보편적이라는 거다. 아니라고 더 말해보아야 입만 더 아프다. 입을 다물고 최 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원 목사 앞에서 가랑이를 벌린 년이 한 둘이 아니라는 소리는 옛날부터 유명했어. 이 사람 재주가 어찌나 비상한지 신세 망친 년이 한 트럭은 된다고 하더군. 크크크."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신세 망쳤다"라는 부분만 내 귀에 들어와 박힌다.
"목사라니까 오죽 말빨이 좋겠나. 계집이 저 스스로 벌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 하더군. 말이 좋아 사기혐의로 붙잡혀 들어왔지, 사실은 유부녀까지 자빠트리는 바람에 열받은 남편 새끼가 잡아와서 엮어 넣은 거란 이야기도 있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 뇌리에 자리한 것은 단 두 마디. "신세 망쳤다"라는 이야기와 "계집이 저 스스로 벌리게 만들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최 씨에게 남은 담배를 모두 주고 종서에 대한 이야기를 더 전해들었다. 오전 노역을 마치고 운동장에 나가게 될 오후 운동시간만을 기다린다.
다시 운동시간이 되었고 이번에는 내가 그를 찾았다. 전과 같은 벤치에 앉아 있던 종서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아주 환대했다.
"이봐요. 원 목사님."
"허허. 자네 왔는가?"
나를 보며 종서가 빙긋 웃었다.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였다.
"내가 목사라는 건 어디서 들었나."
"글쎄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죠?"
"최 씨구만. 뭐, 정말 그럼 내가 자네를 좋게 본다는 사실도 전해들었겠구만."
"그 밖에 여러가지 일도 들었습니다."
"어떤 일?"
"여신도와 아주 사이가 좋으셨다고..."
종서는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살폈다.
"으흠. 저쪽으로 가지 않겠나? 여긴 눈이 많군 그래."
종서를 따라 걸어가면서 최씨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원종서. 그는 원래 대형교회의 잘 나가는 목사였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 신도 중 여신도와 간통을 저질렀는데 그를 알게 된 그녀의 남편이 그를 고소했다.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가 저질러온 교회자금 횡령 및 부정축재까지 낱낱이 까발렸다. 궁지에 몰린 그는 감옥에 들어올수밖에 없었다.
"이번 달 말에 가석방 심사 있다는 거 알고 있나?"
"들었습니다."
"형기 1년 이내로 남은 재소자를 상대로 한다고 하더군. 자네나 나같은..."
"그런가요."
가석방이라. 거지 같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건가. 그렇지만 애써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도 했다. 왜냐하면 여기서 나간다면 그들을 마주해야 하니까. 내가 슬프게 만들어버린 사람들, 그 사람들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난 말이지. 이번 가석방 심사에서 나갈 가능성이 높다네. 그리고 내가 조금 도와주면... 자네도 나갈 가능성이 높아지지."
"어떻게요?"
종서는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사기꾼의 너그러운 미소.
"내가 아는 후배 중에 여기 시설로 목회 활동을 오는 목사가 하나 있네. 녀석에게 부탁하면 그가 자네에 대한 좋은 말을 써줄 수 있지. 일종의 추천장이나 마찬가지일세."
"목사가 보기에... 충분히 반성하고 있고 많이 감화되었다?"
"역시 똑똑하구만. 그런 거지."
귀가 솔깃할 제안이긴 하지만 덥썩 물지는 않는다. 제아무리 너그러워 보여도, 그는 사기꾼이다.
"원하는 게 뭡니까?"
대놓고 물어보는데도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오히려 껄껄 웃는다.
"이제 말이 통하겠구만. 전처럼 틱틱거리지 않고 말야. 허허."
"저는 가진 재산 같은 건 없습니다만..."
"재산? 까짓것 재물이야 모으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아."
"사람이요?"
"그래. 예수님의 재산이 어디 쌓아놓은 황금과 향유였겠는가. 복심과도 같은 열두 제자와 예수님을 따르는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었지."
그 복심과도 같다는 열두 제자중에 배신자가 나오고, 수천 수만의 사람들은 성난 군중이 되어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졌지. 여기에서 강제로 참석해야 하는 종교활동을 통해 배운 지식을 굳이 목사님에게 말하진 않고 잠자코 있었다.
"내가 나가기만 하면 아주 기막힌 사업을 하나 하려고 하는데... 중요한 건 사람이거든. 그래서 이 중에서 나와 비슷한 시기에 나갈 이들을 눈여겨 보고 있었지. 그 중 하나가 자네일세."
"왜죠? 왜 굳이 접니까?"
종서는 날 빤히 쳐다보았다.
"자네는 초범이지?"
"네."
"그럼 아직 모르겠군. 빨간 줄이 그어진다는건 말야. 이제 자네가 이전 같은 정상적인 생활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걸 말하지. 여기에서 죄값을 다 치뤘다? 그걸 사람들이 인정해줄거 같나?"
"으음... 그거야...."
"내가 비록 목사질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기도만 하면 모든게 다 잘 될거라는 그런 헛소리는 하지 않아. 노아가 기도만 잘해서 살아났다고 생각하나? 웃기지 말라그래. 그는 자기가 살 배를 만들어냈어. 그랬기에 살아남은거야."
"역시 목사님이라 비유가 그쪽이군요."
"어쩌겠나.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내가 나가서 할 일도 일종의 목회사업이라네."
"전 기독교인이 아닌데요?"
"상관없네. 석달만 안수받으면 목사도 되는 마당에 신도야 지금 나한테 인정만 받으면 바로 되는건 일도 아니지."
그의 제안은 달콤했다. 그리고 검은 무언가가 숨어있었다. 기막힌 목회사업이라... 거기에 대놓고 전과범을 영입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일의 성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도 내 죄목을 모르진 않을거다. 한 두 명에게만 물어봐도 금방 나올 이야기니까.
난 종서에게 더 생각해보겠노라며 여유를 달라고 했다. 그는 가석방 심사를 위한 서류 접수는 다음 주라는 말로 내가 결정해야할 시기를 알려주었다.
빵에 돌아온 나는 계속 생각했다.
대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이게 누구 때문이다. 그 누구를 만나고 나면, 나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거듭된 생각은 아주 뾰족한 침이 되어 뱃속을 굴러다니며 내면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그 침이 가리키는 대상은 오로지 하나 뿐이었다.
이명희. 이 씹어먹을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