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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 클럽 7부


바닐라 클럽 7부 

 

7장

 

벨이 울리는 소리에 나는 의자에서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내 손목 시계로는 정확하게 12시 2분 38

초였다. 나는 문을 열자 마자 신경질을 냈다. 

[이 분 삼십팔 초나 늦었잖습니까?] 

문 밖에는 역시 카마의 선물을 배달하러 온 사람이 서 있었다. 그러나 지난 번 배달원과는 복장이 틀렸

다.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직 일 분 남았는데요.] 

그러면서 자기 시계를 보여주었다. 정말 그 사람 시계로는 정오까지 1분 10초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렇

다면 내가 쓸데없이 2분 38초 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는 건데, 그걸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인

상을 쓴 채 인수증에다 사인을 해주고 선물을 건네 받았다. 그리고는 소리나게 문을 닫아 버렸다. 곧장 

전화기 앞으로 달려가 수화기를 들고 116을 눌렀다. 

[뚜... 현재 시간은 열한 시 오십구 분 이십 초입니다. 뚜...] 

놀랍게도 내 시계가 틀렸다.

[이런...] 

나는 수화기를 든 채 컴퓨터를 켜 컴퓨터의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전화국에서 알려주는 시간과 컴퓨터의 시

간은 5초밖에 차이가 나 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내 시계를 컴퓨터의 시간에 맞췄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카마가 또 뭘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할까 궁금했지만 풀어보기가 망설여졌다. 그렇

다고 마냥 쳐다만 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 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었다. 그런데 달랑 비디오 테

이프 하나뿐이었다. 아무튼, 카마가 보낸 선물이니 고맙게 받기로 하고 텔레비전 아래에 있는 브이티알

에 테이프를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침대로 가 비슴듬이 기댄 채 리모콘을 눌렀다. 잠깐동안 치지직거리

더니 곧 화면이 나타났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약간 사각으로, 그러니까 키보다 높은 창문을 통해 방 안

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비스듬하게 아래로 고급스런 어떤 방이 비춰지고 있었다. 화면의 중앙에는 대리석 

질감이 느껴지는 파란 더블 침대가 있었다. 침대 시트는 자주색 천에 기하학적인 초록색 무늬가 어지럽 

게 그려진 것이었다. 그 위에 발가벗은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그순간 나는 벌떡 일어났다. 웨이브가 큰 파마 머리를 허리까지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여자는 양반 다

리로 앉아 있는 남자의 허벅지에 올라탄 채 목을 감싸 안고 키스를 퍼붓는 중이었다. 둘은 침대 중간쯤

에서 서로 마주보는 자세로 있었지만 여자의 머리카락 때문에 둘의 얼굴 모두 보 이지 않았다. 나는 더 

자세히 보려고 텔레비전 가까이로 자리를 옮겼다. 포르노 테이프를 수없이 보아온 내 판단에 따르면 카

마의 테이프는 홈 비디오로 촬영된 것이었다. 이렇게 촬영된 아마추어들 테이프라면 일본에서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카마가 포르노 테이프를 보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

을텐데 정확한 의도가 뭔지 알아채기 힘들었다. 일단은 지켜보는 도리밖 에 없었다. 오랜 키스가 끝나자 

남자는 시트와 같은 색 베개 쪽으로 스르르 쓰러졌다.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의 허벅지 위로 올라

갔 다. 그 놈의 머리카락이 문제였다. 여자의 길고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때문에 여자의 몸은 물론 남자

까지도 가려져 버렸다. 보이는 거라고는 남자의 다리와 여자의 머리카락 뿐이었다. 화면으로는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어 소리로라도 상황 판단을 해볼까 해서 볼륨을 잔뜩 키웠다. 그러자 남자의 웃음 섞인 신

음 소리와 여자의 간드러지게 웃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해요?]

나는 텔레비전에서 들려오는 간지러운 여자의 목소리에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일제가 아니라 한국제 포르노

였다. 일본까지 가서 왜 한국제를 사 보냈을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섹스 산업을 통해 내 모든 

스트레스를 해소해 왔다. 그러나 나는 성기 삽입을 병적으로 싫어했습니다. 

[안돼요. 고집 피우지 마요.] 

여자는 약간 심드렁한 표정으로 침대 밖으로 나와 커다란 여행 가방을 열었다. 그 속에서 여자는 검은 

가죽으로 된 물건들을 한 아름 꺼내 침대로 돌아갔다. 당당한 체격의 남자는 침대에 기댄 채 여자가 침

대 위에 올려놓는 물건들을 만족스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 물건들을 다루는 남자의 손놀림은 아주 

조심스러웠다. 여자는 남자에게 등을 돌린 채 침대에 걸터 앉아 있었다. 남자는 은빛 쇠장식 박힌 가죽 

개목걸이를 여자의 목에 걸었다. 

[아파요. 너무 조이지 마요.] 

여자는 보지 못했겠지만 나는 남자가 능글맞게 웃는 걸 보았다. 그 다음으로 남자는 여자 앞으로 가서 

가죽 마스크를 여자에게 씌웠다. 그리고는 톤을 높여 장난같이 말했습니다. [죽이는데?] 

페티시즘이나 새디즘을 소재로한 포르노라는 걸 나는 직감하고서야 그 테이프가 일본까지 수출이 된 이

유를 헤아릴 수 있었다. 남자는 역시 가죽으로 된 브래지어를 여자에게 입혔다. 브래지어에도 마스크와 

마찬가지로 은빛 쇠장식이 치렁치렁 달려 있었다 . 여자를 세우더니 가죽으로 된 콜셋을 입혔다. 여자는 

남자가 끈을 조일 때마다 교성을 질렀다.

[아아... 아하아... 너무 조이지 마하요. 아아... 아파요.] 

남자는 여자의 소리에 전혀 반응이 없는 듯 했습니다. 남자는 여자 등 뒤로 가 브래지어 끈과 팬티 끈을 잡

아 당겨 꽉 조였다. 여자 의 살과 가죽 옷이 만나는 부분에는 살들이 불룩 튀어나서 보기 흉했습니다. 남자

는 그것도 부족한지 여행 가방으로 뛰어가 뭘 잔뜩 꺼내 왔다. 미국 영화에 나오는 폭주족들이 차고 다

니는 쇠 장식이 주렁 주렁 달린 가죽 팔찌와 발찌가 여자에게 채워졌다. 남자는 여자를 아래 위로 훑어

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자기도 가죽으로 된 조끼를 걸쳐 입었다. 옷에 만 신

경을 쓰느라 몰랐는데 그새 남자의 성기가 완전히 커져 있었다. 하지만 별 거 아니었다. 남자가 위협조

로 말했습니다.

[꿇어.]

 

한국제나 일제나 할 거 없이 그 다음 스토리는 뻔한 거였다. 아침을 건너 뛴 바람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

가 나서 빨리 감기 버튼 을 눌렀다. 비명 소리, 채찍 소리, 신음 소리같은 건 무성 영화처럼 빠르고 우

스꽝스럽게 움직이는 두 사람의 행위 뒤로 숨어 버 렸다. 내 예상대로 너무 판에 박힌 진행이라 아예 정

지 버튼을 누르고 빨리 감기 버튼을 다시 눌렀다. 혹시나 다른 장면이 있나 싶어 중간에 한두 번 재생 

버튼을 눌러 보았지만 같은 등장인물에 똑같은 방이었다. 

테잎은 내버려두고 책상으로 가 컴퓨터를 켰다. 카마에게 선물을 받았다는 편지를 쓸 참이었다. 컴퓨터

가 위잉 소리를 내며 켜 지는 사이에 왼팔을 쭉 뻗어 텔레비전을 향해 리모콘 버튼을 눌렀다. 정지 버튼

을 누른다는 게 실수로 재생 버튼을 누른 모양이었다. 텔레비전에서 화난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 나

왔다.

[...했어요. 그때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해하겠어요?]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쭉 뽑아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여자의 목소리는 다름아닌 카마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화면은 아까 보았던 방을 계속 비춰주고 있었는데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커튼이 젖혀져 

있고 창 밖이 환했습니다. 그런데도 카마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

시킨 채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 화면은 일그러져 있었지만 똑 같은 모습이었다. 잠시 후 아까 본 여자 

와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나는 재빨리 재생 버튼을 눌렀다. 어색하게 여자가 남자에게 키스를 하는 장

면에서 갑자기 화면이 밝아지더니, 아무도 없는 환한 방이 나타났다. 그러나 아무 소 리도 들리지 않았

다. 그것도 잠시, 딸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카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얼른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갔다.

[역겹나요? 혹시 내가 조금 전에 보았던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혹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면, 틀렸어

요. 벌써 목소리부터 틀 리잖아요. 일본에 오기 전까지는 나도 모르는 여자였어요. 지금은 잘 알게 되었

지만요. 아까 그 남자 있잖아요? 내 남편이에요. 후우...] 

카마의 웃음 소리에는 빈정거림이 잔뜩 묻어 있었다. 

[참, 여긴 일본이에요. 창 밖을 보세요. 건물들이 보이죠? 당신도 도쿄에 온 적이 있으니까 금방 알 수 

있을 거에요.] 

내 시선은 건물들이 보여주는 스카이 라인을 훑었다. 정확히는 어딘지 모르겠지만 신주쿠 근처가 아닌가 

싶었다. 카메라는 다시 방을 비추었다. 

[당신에게 내 남편을 이런 식으로 소개하게 돼서 유감이에요. 차려 입고 있을 땐 얼마나 멀쩡하다구요. 

얼굴을 잘 살펴봤다면 낯이 익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죠. 가끔 뉴스 시간에 얼굴을 내비치기도 하거든요.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난 돈이 참 많아요. 당 신도 상속받을 재산이 많다는 거 알고 있어요. 당신 아버

지도 서울지방 국세청장 시절에 저희 집에 몇 번 오셨죠. 당신 아버지 일은 안됐어요. 국세청장뿐만 아

니라 경제부총리도 욕심낼만한 분이라고 들었는데...] 

아버지가 집으로 직접 찾아갔을 정도라면 보통 거물이 아니었다. 상대가 공무원이라면 최소한 차관급 이

상은 되야 하고, 재계 인물이라면 대기업 대표이사 정도는 되야 했습니다. [당신이 전혀 인연이 없는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당신이 사는 모습도 좋았구요. 이제 고백하겠어요. 전 오래 전부터 당

신을 관찰해 왔어요. 당신이 나에게 거부감을 느낄까봐 일부러 피씨 통신을 통해서 당신에게 다가간 거

에요. 화내지 말 아요.]

기가 막혀 저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난 참 따분하게 살아왔어요. 대학 시절까지 어딜 가든 경호원과 함께 가야 했어요. 지나친 상상은 마세

요. 누구 소설에 나오는 대통령의 딸은 아니에요. 내 아버지가 아주 까다로운 분이셨어요. 특히 제 순결

에 엄청 집착을 하셨죠. 외동딸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겠지만요, 제가 얼마나 아버지의 과보호 아래 

짓눌려 신음했는지는 모를 거에요. 그래서 제가 택한 길이 뭐였는지 아세 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집

을 가는 거였어요.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었거든요. 그래서 아버지가 정해주는대로 따랐죠. 휴...]

화면은 침묵을 보여주고 있었다. 카마는 한참을 아무 말 없었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빨기 감기를 할 수

가 없었다. 그렇게하면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처음 볼 땐 근사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남편 말이에요. 알고 보니 저런 꼴이에요. 신혼 여행을 다녀

온 후로 나는 남편과 침 실을 같이 쓰지 않아요. 대신 남편이 준 테이프를 보죠. 사실 처음엔 안 봤어

요. 남편의 정사 장면이 담긴 테이프를 보는 게 얼 마나 끔찍한 일인지 당신은 모를 거에요. 남편은요, 

성중독증이에요. 남편이 보내준 테이프에는 페티시즘, 의상 도착, 밴디즘, 오랄, 애널, 그룹 섹스, 채찍

질 등 없는 게 없어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피부의 여자들과 섹스를 하고 그 장면을 촬영 해서 

내게 줬어요. 어느 날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아요. 무척 짜증나고 무료해서 새벽까지 잠을 못 잔 

날이었던 것만은 분 명해요. 침실에 비디오만 꽂아두는 장이 있거든요. 거기에 가득 들어 있는 남편의 

테이프를 바닥에 다 쏟아놓고 하나씩 보기 시 작했어요. 그때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해하겠어요? 난 

정말이지 창녀보다 못하다는 참담한 기분이었어요. 나중에 보게 되면 알겠지만 난 완벽한 여자에요. 아

버지가 날 그렇게 만드셨어요.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흥분했나 봐요. 어쨌든... 그 테이프들 을 보면

서 남편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나를 쓰레기처럼 취급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해 주

고야 말겠다구요.] 

카마의 차가운 목소리는 내 온 신경을 일으켜 세웠다. 예전의 우아하고 고상한 음색은 어디론가 달아나

고 없었다. 카마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 본 남편의 모습은 가장 최근 거에요. 현장 검증을 하는 기분으로 여기 왔어요. 당신과 보는 각

도는 다르지만 나도 지금 남편이 뒹굴었던 침대를 보고 있어요. 보세요. 평화스럽지 않아요? 모든 일은 

한 번 지나면 끝이죠. 영원히 지속되는 일은 없어 요. 누가 이 방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상상이나 

하겠어요? 막상 여기 와 보니 마음이 편하네요. 뭔가를 깨달은 기분이에요. 그게 뭔지는 시간을 두고 생

각해 봐야겠어요. 서울로 돌아가면 당신을 가까이서 볼 작정이에요. 당신은 나를 못 보겠지만요. 억 울

하다거나 기분 나쁘게 생각 말아요.]

나는 인터넷으로 들어가 카마에게 편지를 썼다. 

[선물 잘 받았습니다. 그쪽은 나를 놀라게 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군요. 내가 뭘 도와

줄 수 있을까요? 당신이 원합니다면 돕고 싶습니다.]

나는 잠시 손가락을 멈추었다. 당장이라도 카마를 위해 뭔가를 해 주고 싶었다. [지금 나갑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나를 지켜볼지 모르겠지만요. 옷차림이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모르겠지만 내 모습이 당신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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