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와 이 여자 1
그 남자와 이 여자 1
레드홀릭스에 가입하고 ‘어머! 이 남자 괜찮다!’하고 들이대서 같이 자 본 남자가 다섯 명, 쪽지 받고 호기심에 이야기해보다 만나서 자 본 남자가 다섯 명. 그 중에 여덟 명은 꽝이었고, 한 명은 쏘쏘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대박이었다. 이 이야기는 나를 들뜨게 했던 대박인 그 남자 이야기다.
레드홀릭스를 살펴보니 애들이 너무 풋풋했다. 클럽 가면 알아서 넘치는 애들이 고추 비벼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딱히 신경 쓰며 활동하지는 않고 쪽지도 읽지 않았다. 주로 여자 게시판 글만 읽었는데 갑자기 쪽지가 왔다. 그렇게 만남들이 시작됐고 몇 명이랑 만나서 잤는데 고추가 너무 부실해서 실망스러웠다. 대충 예의 넘치게 신음 좀 내주고 집에 가면서 차단하기를 반복했다.
또 한 남자는 딱 봐도 유부남이었다. 그는 여자친구랑 동거 중이라고 했다. 그래도 양심이 있는지 여친이라도 있다고 말하네라고 생각했는데 섹스는 얄짤 없이 비양심적이었다. 물론 내가 좀 경험이 많아서 쪼는 데 익숙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싸버리고 미안한 웃음 지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차단했다.
또 다른 남자는 메신저로 매번 자기 복근 사진, 발기한 사진, 허벅지 사진 보내면서 레드홀릭스에서 자기랑 잔 여자들이 연락 와서 귀찮다며 들이댔다. 무슨 사진전 여는 줄 알았다. 그래도 몸매가 되니까 만나서 모텔을 갔는데 테크닉은 고사하고 날 자위 기구쯤으로 알았나 보다. 살다살다 복근으로 배를 공격하는 놈은 처음이다. 내장 터지는 줄 알았다. 게다가 미련이 남았는지 와~ 성병도 안겨주고 갔다. 병원가는 지하철에서 레드홀릭스 탈퇴 버튼을 누르려다가 그냥 참았다.
그리고 그 남자를 알게 되었다.
사실 그 남자, 정신연령이 좀 낮아 보이고 허세도 있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그다지 정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그 남자가 쓴 글 읽어보니 의외로 좀 괜찮았다. 그래서 쪽지를 보냈다.
[글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 시간 되면 한번 뵙고 싶네요!]
그 남자가 쪽지를 안 읽는다. 짜증 나는 건 글은 계속 적고 있는다는 것이다. 이 시키 분명히 내가 보낸 쪽지를 씹고 있는 것이다. 괜히 뻘쭘해졌다. 그래서 그냥 보내본 거라고 다시 쪽지를 적으려고 들어갔는데 그 남자한테서 쪽지가 와있었다. 같은 시간에 접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좀 두근거렸다. 쪽지 보낸 지 이틀이 지났지만 그래도 히죽 웃으며 쪽지함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인연이 되면 볼 수 있겠죠. ^^]
벙졌다. 중인가? 국어 못하나? 뭔가 이상한 놈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심하게 밀어내는 느낌이 들어서 짜증이 2미터 정도 솟구쳤다. 클럽에서 논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놈들 떼어낸다고 탈진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런 대접을 받으니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오기가 생겼다. 얼마나 잘난 놈이길래 나를 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자기소개에 사진도 올렸으니 분명히 나 찾아봤을 건데도 이러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나중에 물어봤는데 내 자기소개도 안 찾아봤다고 했다. 그 남자가 올린 글 다 뒤져서 메신저 아이디를 찾았다. 프로필에 뜨는 사진을 보니 그냥 여기저기 채이는 흔남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걸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ㅋ]
[누구세요?]
[저 XXX이에요. 전에 쪽지 보냈던]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분명히 이 시키는 쪽지 많이 받는 놈이 분명하다. 괜히 짜증이 났다. 그냥 클럽이나 갈 걸 그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
난 프로필 사진을 수십 장 찍어 제일 빨 나온 사진으로 바꾼 상태였다. 그래도 내가 전직 모델인데 이거 보고 안 넘어가면 넌 고자 아니면 고자 혹은 고자라고 생각했다. 이 자식이 허벅지 성애자라는 건 그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내 프로필 사진은 스커트를 살짝 들어 올려 허벅지를 클로즈업하고 있는 사진으로 변경해둔 상태이다.
이제 네가 나에게 꽂힐 차례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 남자 속마음을 모르겠다. 나름대로 연애 엄청 달려봐서 왠만한 남자 속은 논문으로 내는 수준인데 그 남자는 뭔가 담백하고 웃겼다.
‘내 사진이 안보여? 솔직히 한 번 눌러 확대해서 봤잖아!’
맘속으로 외치며 애가 타기 시작해서 재가 되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세면대에서 클렌징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침대에 누워서 대화창을 다시 켰는데 이건 뭐 내 이름과 똑같은데 처음 보는 여자가 그 남자에게 미친 듯이 한번 만나자고 사정하고 있었다. 게토레이 같은 뇬! 이불킥을 수십 번은 했다. 그러면서도 이불 킥하는 내 다리를 보며 예쁘다고 흡족해했다.
‘아… 병의 신 같아!’
어찌저찌해서 그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니 마치 귀국한 가족 만난 것처럼 헤 웃으며 손을 정신없이 흔드는 한 남자가 보였다. 정말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 남자는 자기 보고 맘에 들어서 웃은 줄 알았다고 했다.
커피전문점으로 가서 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웃기는 게 꼴려서 쪽지하고 메신저하고 만난 건데 전혀 꼴리지가 않았다. 그냥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친한 친구 같은 느낌? 레드홀릭스에서 만났던 다른 남자들이나, 예전에 만나봤던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 남자는 느낌이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정말 똑똑하다는 게 느껴졌다. 물론 그러다가 멍청한 짓도 같이 하는 게 어느 것이 그 남자의 진짜 모습인지 모를 정도로 헷갈렸다.
커피전문점 문을 열고 나가는데 차 한 대가 바로 옆으로 지나갔다. 어느새 그 남자가 내 손목을 잡고 당겨서 어디 부딪히지 않았는데 살짝 놀랬다.
“괜찮아요? 왜 운전을 저렇게 하냐...”
가슴팍이 이상하게 넓어 보였다. 숨 냄새도 뭔가 좋았다. 가까이 있으니 몰랐던 그 남자의 모습이 생각보다 강렬했다. 잘은 모르지만 이 남자랑 섹스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밥 먹지 말고 모텔 가요.”
“???”
“바로 올라가야 해서...”
“그래요. 그럼.”
수백 번은 드나든 모텔인데 이상하게 긴장됐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모텔이 총 8층인데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너무 안 갔다. 그리고 그 남자가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해요?”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요.”
웃으며 다시 말했다.
“생각 없어지게 만들어줄까요?”
갑자기 그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내게 입을 맞췄다.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뒤에 앉아있던 커플이 분명 우리를 쳐다봤을 거란 생각이 들었는데도 그것보다 내 얼굴이 얼마나 빨개져 있을지 겁이 났다. 그리고 무슨 남자 입술이 요로코롬 부드럽대? 키스도 아니고 입술 눌린 키스를 했는데 팬티가 살짝 젖은 것 같았다. 그 남자가 들어가자마자 팬티 벗겨버리는 건 아니겠지? 막 요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