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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11


녀석의 덫(아내의 비밀) -11

 

 

“뭐, 선배님도 비밀 하나 말씀해 주셨으니까, 저도 제 얘기를 좀 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스물 몇 살 정도 되었을 때였어요. 군대 제대한지는 좀 됐었던 것 같고, 이제 취직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때였죠. 사귀던 여자들도 좀 있었는데, 일부러 안 만났어요. 괜히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아, 그래?

나는 조금 실망했다. 솔직히 내가 기대한 건 이런 얘기가 아닌데. 그건 아내와 관련된 더욱 자극적이고 사실적인 고백이었다. 그러나 난 시간을 한 번 확인하고 그냥 녀석의 이야기를 듣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그 때 쯤 되면, 한 풀 꺾이잖아요? 그러니까 섹스에 대한 엄청난 열망이 말에요. 뭐 암튼, 지금 다니는 회사에 지원을 했고, 어떻게 운이 좋아서 합격을 했죠. 뭐, 언제부터 나와 출근을 해라. 이런 통지도 받고. 그런데 정작 그렇게 목표했던 걸 이루고 나니까, 슬슬 몸이 동하는 거에요. 여자도 만나고 싶고, 또 섹스도 하고 싶고. 이해하시죠?”

-어 뭐. 사실 그렇지.

“그래서 나이트도 다니고,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들도 다시 만나고 그랬죠. 뭐 단순히 걔들의 몸이 목적이긴 했지만. 그런데 재미있는게, 어쩐지 섹스가 재미없는거에요. 꽤 오래 갈구했었던 여자의 몸인데, 어쩐지 그게 혼자하는 자위보다 별로였거든요. 그래서 뭔가 좀 새로운 경험을 동경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뭔지는 모르는 그런 상태였죠.”

-흠.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어떤 여자를 만났어요. 그러니까 원래 전 육감적인 여자를 좋아하는데, 가슴도 히프도 막 큰 그런 여자요. 그 여자는 그러니까 뭐 제법 컸어요. 근데 막상 까보니까 가슴은 생각보단 조금 작더라고요. 그래도 손바닥에는 꼬옥 들어오니까, 많이 작은편도 아니었죠, 사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바디 밸런스는 좋았어요. 체형이라던지, 특히 허벅지랑 엉덩이는 만지면 만질수록 자꾸 만지고 싶은.”

-아 그래?

“네. 하지만 단순히 그런 것 때문에 끌린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뭐랄까. 그동안 만나왔던 여자들이랑은 좀 달랐거든요. 얼굴은 뭐 예쁜 편이긴 한데, 그 성격이 지랄맞았거든요. 근데 그게 참, 뭐랄까. 저 여자를 내가 한번 꺾어보고 싶다. 뭐 그런 막연한 정복감이 슬슬 생기더라구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녀석이 말을 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녀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녀석은 살짝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그 여자도, 저보다 3살 연상이었어요.”

이제야 녀석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짐짓 알맞은 리액션을 보내고 가볍게 술잔을 손에 쥐었다. 녀석은 나와 마찬가지로 한 모금을 목구멍 뒤로 삼켜 넘기더니,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말, 저 발정난 놈 같았어요. 진짜. 그 여자랑 한 번만 자 볼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까지 이르렀으니까요.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다른 여자를 안으면서 사정의 순간엔 그 여자를 떠올릴 정도였어요. 최악이죠, 저?”

-큭. 아니, 오히려 솔직해서 좋네.

“좀처럼 기회가 없었어요. 이리저리 이야기도 나누고 부딪히면서 안면도 트고 그랬는데, 좀처럼 저를 남자로 보질 않더라구요. 후우. 근데,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는데요. 어느 날인가 그 여자랑 결국 잤어요.”

-아 정말?

“네. 그게 정말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였거든요. 그래서 딱 잤는데, 우와. 정말 너무 좋은거에요. 역시나 벗은 몸도 괜찮았고. 특히 엉덩이가 정말. 후우. 저 속물이죠?”

-그게 속물이면,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속물이지.

그 중의 가장 탑은 나일테고.

“그런데, 그게 그 여자한테는 좀 충격이었나봐요. 그 후에 연락을 해도 씹고, 말을 걸어도 무시하고. 저는 이해가 안 되는 거에요. 솔직히 처녀였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는데, 제법 경험이 있어 보였거든요. 그런데 그런 반응을 보이니까, 후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또 미치겠더라구요. 그 여자만 떠올리면. 이상하죠? 한 번 안았는데, 또 안고 싶어지는게.”

-그건, 뭐.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가요? 그런데요. 결국 또 기회가 왔어요. 신기하게도.”

본게임을 앞둔 복싱선수처럼, 나는 이빨을 꼬옥 깨물었다. 어떤 각오를 하고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봐서, -나를 놀리는 듯- 이 녀석은 나에게 거짓을 고하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그럼 또다시 나에게 사실을 고하게 될 텐데. 후우. 나는 다시 술을 한 모금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녀석이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계속할까요?”

-응. 재미있게 듣고 있어, 지금.

“후우. 그게, 단 둘이 여행을 가게 됐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같이 간 게 아니라. 똑같은 목적지를 정하고 도착해 보니, 거기에서 만나게 된 거죠. 엄청난 우연이죠?”

그게 우연일까? 우리는 그걸 차라리 치밀한 계획이라고 부른다네.

“절 보더니, 되게 당황하더라구요. 뭐 저도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일단 가서 말을 붙여보기로 했죠. 그런데 끝내 저를 무시하더라구요. 후우. 할 수 없이 포기했죠. 오늘은 안되겠어, 하고. 그런데 놀라운게 뭔지 아세요? 글쎄 그 여자랑 저랑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된 거 있죠?”

-호오.

“선배님, 호오가 아니에요. 이건 엄청난 우연이라구요. 큭. 암튼, 그 여자랑 같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섹스가 간절해 지더라구요. 뭐 저란놈이 그렇죠. 그래서 슬쩍 문을 열고 그 여자 숙소를 훔쳐보는데, 이 여자가 어디서 술을 마시고 왔는지 비틀 거리면서 방으로 들어가는거에요?”

결국, 이 녀석은 또 아내를 강제로 범한건가? 그런데 왜 아내는....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이걸 따라 들어가서 또 해야 하나? 후우. 그런데 결국 그만두기로 했어요.”

-응? 아니 왜? 욕망이 쌓여있었다면서.

“그냥, 술 마시고 하는 건 딱히 제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아쉽지만 그날은 그냥 바이?”

괜히 내가 안심이 되어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다음날이 됐어요. 뭐 저는 당장 그 날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 여자는 어떻게 되는지 알 길이 없잖아요. 그리고 섹스는 하고 싶고. 그래서 제가 먼저 숙취 해소제를 하나 사서 여자 방문을 두드렸죠.”

-거기에, 뭐.. 이상한 걸 타거나..

“에이~ 선배님. 저 그 정도로 나쁜놈은 아니에요.”

아니야. 너 그 정도로 나쁜놈이야. 아니지. 상상 이상으로 더 나쁜놈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잠깐 뜸을 들이더니 결국 저를 받아주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최대한 걱정하는 표정으로 약을 내밀었어요. 물론 또 신경질 내더라구요. 이거 뭐냐고. 그래도 전 최대한 미안해하면서 이것저것 썰을 풀었죠. 어제 봤다.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느냐.”

-흠.

“그랬더니 조금 긴장이 풀어지는게 보이더라구요. 여자란 사실 다 그렇죠. 저는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어요. 어차피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으니까. 슬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죠. 물론 가장 처음은, 먼저번의 섹스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물론 사과했죠. 내가 미쳤었다. 뭐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데요? 그런 얘기는 더 하지 말자, 그냥 나도 잊고 싶다. 그런데 말이에요. 여자 중에서 정말 공략하기 쉬운 여자가 어떤 유형인지 아세요?”

-글세.

“그건, 자존심, 혹은 자존감이 정말 쎈 여자에요.”

-그래?

“네. 이건 뭐 딱히 설명하기 힘들지만, 제 경우엔 늘 그랬어요. 되게 공략하기 힘들 것 같지만, 막상 한 번 몸을 섞고 나면 그 이후엔 공략하기 쉬운 타입. 제 눈 앞의 여자가 그런 타입이었죠. 게다가 전 이미 그 여자랑 몸을 섞었으니까. 본능적으로 여자가 그걸 신경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럼, 나는 지금부터 잘 하면 또 한 번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것도 역시 본능적으로.”

녀석은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목이 마른지 살짝 술 한 모금을 마셨다. 나도 목이 바싹 말라 왔기에, 녀석을 따라 가볍게 한 모금을 입술에 가져다 대 적셨다.

“잠깐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여자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얘기들. 헤어진 여자친구 이야기, 돌아간 엄마 이야기. 여자의 감정에 기댈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꺼냈어요.”

-그런.. 이야기가 먹혀?

“왠만한 여자한텐 안먹히는데요. 자존감이 쎈, 그리고 그 자존감이 누군가에 의해 살짝 꺾여버린 여자의 경우엔 먹혀요. 혀가 좀 아팠을 뿐이죠. 거진... 보자. 한두 시간은 떠든 거 같아요. 눈물 흘리면서.”

조금 믿기 힘들었다. 아내가 그런 상투적인 방법에 몸을 허락했을까? 정말?

“여자가 말이 없더라구요, 어느 순간부터. 그 순간을 놓치면 안 되죠. 자존심이 쎈 여자에게 상처를 줬으니, 이번엔 그걸 어르고 달래 줘야죠. 달콤한 사탕 발림으로.”

-그 사탕발림이라는건?

“음. 너하고 나눈 섹스는 정말 충동적인 일이었지만, 그만큼 내가 지난날 받은 상처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 날 이후에 내 상처가 조금은 아문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상처를 너에게 나누어 준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우엑!!! 후우. 큭”

-... 그런 말에 여자가 넘어갔다고?

“근데, 잘 들어보면, 그러니까 더욱이 여자가 완전히 취기가 해소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제법 잘 먹히거든요. 실제로.... 성공했구요. 큭.”

-성공?

“네. 또 잤어요. 여자랑. 조금 다른 거라면, 이번엔 여자도 저를 흔쾌히 원했다는 것 정도?”

흔쾌히 원했다라. 흔쾌히 원했다라?

“근데 조금 놀랐던게 있어요.”

-뭔데?

“음. 목덜미를 핥고 슬슬 본게임으로 들어가려는데, 여자가 잠깐 저를 막아 세우더라구요.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걸 보니까, 여자가 주섬주섬 뭘 꺼내요? 그랬더니, 저한테 뭘 내미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콘돔?

“그렇죠! 후우. 그런데 그게 참 재밌는거에요. 생각해 보세요. 분명 여자는 저랑 따로 왔다구요. 여행지까지. 그런 여자가 아무렇지 않게 콘돔을 내민다는 건, 뭘 생각할 수 있을까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나 아닌 다른 남자와의 섹스를 기대하고 있었다? 혹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애당초 콘돔은 없었어요. 그런데 전날에 나를 보고 어떤 촉이 왔던지 해서, 인근 편의점에 가서 콘돔을 사 왔다거나. ‘분명 저 놈하고 또 다시 섹스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 혹은 기대에 꽉 차서는. 뭐 암튼, 나쁠 게 없었죠. 콘돔이든 뭐든, 전 또 많이 흥분이 되었거든요. 여자가 원한다면 기꺼이 써 줘야죠, 콘돔정도는. 그리고는 뭐. 후우.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할 정도의 일들이 있었죠. 큭.”

그 민망한 일들을 마저 듣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녀석이 입을 닫아버린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때마침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두 번째 이유였다.

집까지 너털 걸음으로 걸었다. 잘 마셨다는 말 대신, 그 놈은 또 내게 ‘잘 먹었다’는 말을 건내 왔다. 이건 마치 내 심정을 알고, 그것을 호미로 긁어내는 것 같아 너무 괘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내가 할 수 있는 건, 길을 따라 걸으며 녀석이 했던 일을 떠올리는 것뿐이었다.

“콘돔. 섹스. 조건...”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리고 더 짜증나는 건, 빌어먹을 내 감정이었다. 이게 질투인지, 화인지, 분노인지, 증오인지, 아니면 쾌락을 갈구하는 그 무엇인지. 좀체 쉽게 정리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놈이 내게 해 준 일련의 이야기들을 나 나름대로 정리할 때, 아내의 그 태도를 떠올리며 미간에 주름을 몇 개 쯤 새겨 넣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그 날 밤, 아내의 몸을 탐했다. 그리고 아내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리고, 나의 인생을 조금은 바꿔 놓은 ‘그 일’이 일어난 건, 불과 며칠 후였다.

“그러고 출근해?”

 

 

나는 멍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신세준을 불러내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의 아침이었다. 나는 아내가 출근 복장으로 선택한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직감적으로 바로 오늘, 무슨 일인가가 생길거라는 걸 알아챘다.

“무슨 말이 그래??

-어? 아니, 뭐. 그래도, 왠만하면 치마는 잘 안 입잖아?

“그 왠만하면 안 입는걸, 오늘 한 번 입어보려고 한다. 왜? 이상해?”

-아니, 이상하긴.....

이상할 리가 없었다. 아내가 몸에 걸치고 있는, 짧고 갈색의 빛을 띠는 그 ‘스커트’ -바로 얼마가지 않아, 아내는 나의 ‘치마’라는 표현을 이렇게 정정시켜 줬다.- 는, 아내가 아끼는건지 어쩐건지는 모르겠지만, 옷장속에 감춰놓고 정말 자주 입지 않는 옷이었다. 굳이 산술적인 표현을 쓰자면, 분기당 한 번 정도? 그나마 근무 복장으로는 바지를 선호하는 아내가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무슨 바람이 불었어? 안 입던 옷을 다 입고.”

-그냥 입고 싶었어. 여자 직원들이 하도 뭐라고 해서. 그나저나 나도 살이 쪘나?

섹스도 그냥 하고 싶어서, 그리고 옷도 그냥 입고 싶어서. 나에게 있어 그런 대답은, 어쩐지 몇 프로쯤 부족하게 느껴졌다. 전신거울 앞에 서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대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고쳐 잡던 아내를 나는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내의 적나라하게 벗은 몸이래야, 매일 밤, 아주 잘 보고 있다. 그래서 단언컨대, 살이 찌기는커녕, 아내의 몸매는 –내 아내라서가 아니라 벌써 서른 다섯이라는- 그 나이에 맞지 않게, 군살하나 내려앉지 않은 아주 ‘육감적’인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나는 내 아내의 스커트에 계속 시선을 내던졌다. 그러고 보니, 엉덩이 부분이 조금 신경이 쓰인다.

“그.... 이런 말 어떨지 모르겠는데.”

-응.

“여고생... 같아. 요즘애들 말이야.”

-뭐? 너무 심하게 비행기 띄우는 거 아니야? 너무 멀리 가는 것도 좀 그래.

아내는 피식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짧은 눈웃음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렇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5년이나 살았는데, 나는 정말 이 여자에 대해 뭘 알고 있는 걸까? ‘그 놈’이 내게 해 준 얘기를 떠올리면, 그렇게 완벽할 것 같은 아내가, 의외로 허술한 구석이 있다는 점에 벌써 몇 번이고 놀라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래도 결국 나는 아내의 ‘요즘 여고생 같은’ 엉덩이를 계속해서 쳐다봤다.

“스타킹.. 도?”

-뭘, 그렇게 놀라? 맨다리로 갈 수는 없잖아? 이 차림에.

아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스타킹 하나를 꺼내 천천히 자신의 발에 기워넣기 시작했다. 스타킹이라. 아내가 마지막으로 스타킹을 신었던 건 또 언제였더라? 나는 가만히 침대에 걸터앉아 아내가 스타킹을 잡고 자신의 다리에 그것을 감싸는 모든 광경을 천천히 주시했다. 그리고, 아내가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팬티를 드러내며 자신의 육감적인 엉덩이를 검정색 그것으로 스스로 완전히 가릴 때까지 지켜봤다. 고작 이런 것에, 내 물건이 반응한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는 물끄러미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는 아내를 쳐다봤다. 아름다운 몸의 곡선. 그리고 땅바닥과 맞닿아 있는 그녀의 팁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아내를 안을 수 있다. 더 이상 섹스마저 아내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내가 아니다. 지금 당장 아내를 안고, 섹스를 나누고 싶다. 그것이 인간과 인간의 성적 교합이든, 아니면 수컷이 암컷을 탐하는 단순한 ‘교미’에 지나지 않던.

“뭐해? 늦겠어. 빨리 출근하자.”

하지만 결국,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또 기다려야 할까?

회사 일 때문에 과장님과 이리저리 밖으로 쏘아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내 모든 신경은 이미 아내에게 향하고 있었다. 아내의 엉덩이, 아내가 신고 나간 검은색 스타킹. 당장이라도 아내의 회사에 달려가고 싶다. 그래서 복도든, 아내가 일하고 있는 5층 사무실이든 할 것 없이, 샅샅이 돌아다니며, 어딘가에서 ‘그놈’과 섹스를 나누고 있을 아내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고, 그리고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하루종일 반복했다. 하지만, 오늘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때 까지 아내에게 한 통의 전화도 걸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 역시, 한 통도 없었다.

그건, 내가 과장님께 억지로 양해를 구하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했을 때였다. 행여라도 ‘늦을까‘ 아내에게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고, 무작정 아내의 회사까지 차를 타고 달려와 지금부터 벌어질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핸들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몇 번씩 튕겨내면서, 나는 가만히 아내를 기다렸다. 이제까지 ’무얼‘ 했을 아내를, 아니면 이제부터 ’무얼‘ 하게 될 아내를.

얼마쯤 지났을 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받을까 받지 말까, 잠깐 고민하다가 주위를 살피려 고개를 돌리는데, 아내가 회사 현관문을 지나 빠져 나오는 게 보였다. 잘못한 게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운전대 아래로 고개를 푹 숙였다. 뭐지? 나는 손에 들린 휴대폰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쉼호흡을 한 번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 난데? 어디야?“

“어, 나 아직 회사. 끝났어?”

이 상황에서 정직하게 너네 회사 앞, 이라고 말하는 등신이 또 있을까?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아내와의 통화를 계속했다. 그런데 아내가 조금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잠시 후에 걸겠다’ 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아내를 찾았다. 그랬더니, 언제왔는지 신세준이 아내 곁에 바짝 다가가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내 직감이 들어맞았다는 기쁨보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긴장감에 사로잡혀 운전대를 꼭 잡고 두 사람을 지켜봤다.

당연하게도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 다만, 너무나 여유로워 보이는 신세준과 달리, 아내는 계속 주위를 살피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거짓말처럼 일전에 회식자리에서 몰래 훔쳐들었던, 아내와 신세준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그럼 저도 조건이 하나 있어요. 치마 좀 입어 주세요. 예쁜 몸매 좀 감상하게.’

정확히는 아니었지만, 분명 놈은 내 아내에게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럼 뭐지? 결국 아내는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 놈이 원했기 때문에 치마를 입은 건가? 조금 약이 올랐지만, 나는 다시 놈과 아내를 지켜봤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신세준이 먼저 자리를 떴다. 따로 약속 장소를 잡은 걸까? 왜 혼자 사라지는 거지? 나는 아내를 지켜봤다. 아내는 잠깐 인상을 쓰다가 어디론가 걸어갔다.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다가, 아내가 얼마가지 않아 택시를 잡아탔기에 나는 쏜살같이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나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아내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온 건, 불과 몇 분 후였다. 아내가 타고 있는 택시를 제법 그럴싸하게 미행하면서 나는 핸즈프리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것보다 기어이 아내의 입에서 늦을 것 같다는 말이 나왔을 땐, 정신이 멍해져 사고라도 날 뻔 했다. 나는 늘상 있었던 일처럼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보니, 예전부터 아내는 이런 식으로 나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게 다반사였다. 나 역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그런 생활이 계속될 수 있을까?

아내는 자신의 회사에서 20분쯤 떨어진 곳에서 내렸다. 뭐지? 뭔데 이렇게까지 멀리 오는 거지? 인적이 드물다고 해도 좋을 어떤 길 위에 멍하니 서서, 아내는 연신 분주하게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나 역시, 아내와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두고 그런 아내를 바라봤다. 그리고 정말 얼마가지 않아, 낯 선 자가용 한 대가 아내에게 다가가 멈춰 섰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지켜봤지만, 결국 아내는 그 차에 올라탔다.

“아 씨발, 어디까지 가는 거야?”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8시를 넘기고 있었고, 운전대를 잡고 나보다 앞서 달리는 낯선 자동차를 미행하는 것도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모텔? 아니면 먼저 간단하게 식사라도 할까? 그리고 나서 몸을 비비러 가게 될 까? 온간 잡생각이 내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 생각이 겨우 멈추게 된 건, 나보다 얼마쯤 앞 선 자동차가 인적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곳의 비탈길을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봤을 때였다.

“아 제길. 뭐하는 거야, 도대체?”

나는 차를 세우고 멍하니 자리에 멈춰 섰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자동차로 따라가는 건 여러모로 위험하다. 주변에 차도 없고. 나는 그제야 고개를 여기 저기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밤. 나를 제외하곤 정말 아무도 없다. 아까 표지를 살짝 봤을 땐 무슨무슨 산인가? 하는 간판이 있었건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것보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아니 무슨 생각으로 차를 몰고 산까지 올라가는 걸까? 나는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가 ‘종착’을 알 수 없는 그곳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맙소사.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숨이 차서 미칠 지경이다. 벌써 얼마를 걸어왔단 말인가? 것보다 참 겁도 없다. 이렇게 무서운 밤 산을 겁도 없이. 아, 물론 이건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것보다, 나의 와이프와 그 놈이 타고 있는 차는 어디에 있단 말일까? 서두른다고 서두르고 있지만, 벌써 몇 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괜히 다급해진다. 나는 어두운 밤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쯤 더 걸어갔을 때였다.

‘무슨 소리지?’

내 숨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가까운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들짐승일까? 아니면 나 몰래 어딘가에서 몸을 합치고 있을 두 마리의 또 다른 ‘날짐승’일까? 나는 자리에 멈춰서고 주위를 살폈다. 어두웠지만 정말 얼마가지 않아, 분명히, 그리고 똑바로 내 눈에 그것이 들어왔다. 그건 분명, 아내가 아까 올라탔던 그 ‘낯선’ 자동차였다.

숨을 죽이고 자동차까지 슬금슬금 다가갔다. 나도 놀란 건, 쓸데없이 그 순간에 너무 과감하게 변해버린 내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건 다분히 본능적이고 욕구에 충실한 움직임이었다. 자동차가 낼 수 있는 모든 빛을 없앤 채, 나는 -가까이 갈수록 크게 들려오는- 조용한 엔진 소리를 내뿜고 있는 그 자동차로 바싹 다가가 주저앉았다.

‘발?’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자동차에 미세한 진동이 점점 크게 느껴졌다. 그건 엔진이 켜 져있는 자동차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보단 훨씬 크게 요동치고 있었으니까. 것보다 내가 자동차 뒷좌석으로 걸어갔을 때, 창문에 요란하게 부딪히고 있는 건 분명 사람의 발이었다. 다만 너무 어두워서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다가 창문으로 얼굴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 때, 꼼지락 거리던 발가락이 창문을 세게 강타하는 바람에, 놀라버린 나는 그대로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결코 쉽게 다시 일어설 수 없었던 건, 방금 전 내 두 눈에 정확하게 들어온 여자의 스타킹 발바닥 때문이었다. 버퍼렁에 걸린 동영상처럼 나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천천히 자동차의 창문을 올려다봤다. 이제야 확연히 볼 수 있었다. 팁토를 드러낸 여자의 발이 자동차 창문을 짓이기듯 이리저리 꿈틀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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