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사-3
나의 가족사 - 3 편
허얼신 320136
이제 곧 환갑을 맞이하면서 굳이 자랑스럽지도 않은, 아니 보통 사람들의 경우 누가 알까봐 숨길만한 사실들을 제가 왜 글로
남기려는 걸까요 ? 1편과 2편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신 많은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 저의 어머니가 항상 하신
말씀이 "아버지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말거라... 다 이 시대와 엄마의 팔자 소관... 너를 태어나게 해주신 분 아니니 ?" 였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셨고 당신의 행적을 자랑하거나 또는 부끄러워 하시지도 않으셨던 아버지... 2000년에 밀레니움 맞으러 미국에
오셨을때 40대 성인으로 아버지께 물었더니 6.25 사변중에는 진짜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신이 뭐라고 안해도
마을에서 알아서 보내주는 (거의 수청 들러오는...) 색시들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고, (또 만약에 거부하면 마을 사람 대부분이
불안해 하면서 또 다른 색시를 보냈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른 마을로 옮겨 다니다 보니 수 많은 처자들과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고...
휴전후에는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이 행방불명/사망 처리가 되면서 졸지에 홀애비 신세가 되었는데 저의 어머니를 비롯해서
전쟁중에 군인의 아이를 낳은 처자들이 아버지 이름도 모르거나 찾을수 없어서 호적도 없는 사생아를 만들거나 아니면
고아원에 보내는 것이 안타까와서 아이들에게 호적과 성이나 주려고 당신의 호적에 입적 시킨 것이지 사실 누가 당신의
핏줄인지는 당신도 모르신다고... 그중에는 인민군의 아이도 있을테고, 전쟁중에 아버지를 잃은 민간인의 아이도 있다고
하시면서 당신이 진짜로 원했던 여성은 몇명 안된다고 하시더군요... 그중에 한분이 저의 담임 선생님/작은 어머니였습니다.
제가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호적상의 나이가 2년 정도 늦게 기록되는 바람에 국민학교를 9살때 들어 갔습니다. 1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음악과 무용을 전공하신 분이셨는데 (학교에 한대뿐이던 풍금을 치시던분...) 저를 굉장히 귀여워 해주셨고
2학년때도 저의 담임을 맡으셨다가 갑자기 휴직을 하시고 사라지셨습니다. 그리곤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날무렵 갓난아이를
안고 저의 집으로 오셨습니다. 그 뒤에 한동안 계시면서 집안일과 저의 학교 공부를 도와 주시다가 또 어느날 갑자기 아이를
데리고 사라지셨지요... 30 여년 뒤에 미국 텍사스주의 부동산에서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담임 선생님/작은 어머니 이야기 (그분 시각에서...)
충청도 공주에서 태어난 나는 우연히 교회에서 미국 선교사가 놓고간 낡은 피아노를 가지고 선교사와 몇몇분의 도움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하지만 피아노 실력만으로 대학을 가기는 역 부족이었고 선교사 추천으로 서울의 XX 여대 체육과에
무용 전공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몇몇 학생들 피아노를 가르치며 번 돈으로 대학 등록금과 자취방세를 내면서 대학을
졸업했고 곧바로 XX 국민학교에 취직되었다. 아직 전쟁의 후유증속에서 한참 어수선 할때이고 대부분의 국민학교 선생님은
남자였고 몇명 안되는 여자 선생님은 1~2 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대부분 결혼을 하면 그만 두던 시기였다. 즉 여자 선생님의
근무 기간은 대학을 졸업해서 결혼 할때까지라는 불문율이 존재하고 있었다.
남자 선생님들 대부분이 이미 결혼을 하신분들이었고 그들중에는 선생님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분들도 몇명 계셨다. 특히
고학년 체육을 가르치는 김선생님은 체육과를 나온 내가 보기에 체육의 기초도 모르면서 매번 뭉둥이로 아이들 때리는 것이
그의 유일한 교육 방법이었다. 그는 체육과의 선임 교사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며 은근히 수작을 걸어왔는데
부인과 아이 둘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3월이 되어서 나는 1학년 담임을 맡았고 입학식날 풍금으로 노래 반주를 맡아서 했다. 내가 맡은 반에는 150 여명의 학생이
아침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중에 유난히 **라는 학생이 눈에 띄었는데 7살이라고 보기에는 덩치도 컸고 이미
글자도 다 읽을 줄 아는 학생이었다. 당연히 **는 아침반의 반장으로 임명되었고 같은반 아이들도 **의 말을 잘들었다.
거의 4월이 다 되서야 아이들의 학적부가 정리 되었는데 왜냐하면 학부모들 중에는 문맹인 사람이 반도 넘었고 호적의
이름이나 생년월일이 학교에 낸 서류와 맞지 않는 경우등등의 이유로 150 여명의 서류를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중에 **의 호적에는 너무 많은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아버지는 현직 장군이고 어머니는 그 장군의 수 많은 첩들중에
한명이었다. 일단 학급 반장의 어머니시니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편에 편지를 써서 어머니께 드리라고 했다.
한 2주일쯤 지나서 오후반 수업을 끝내고 집에 갈려고 하고 있는데 군인 한명이 들어와서 나를 찾는다. 장군님이 보잔다며...
따라나가니 길거리에서 흔히 보았던 군용 지프카에 40대 중반의 남자가 별이 달린 장교복을 입고 지프카 뒷자석에 앉아
있었다. 군복을 입고 있어서인지 웬지 알수없는 중압감을 느끼게 했다. 지프카에 타니까 자신을 **의 아버지라고 소개하며
나의 이름과 용건을 묻는데 웬지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동안 침묵이 계속 되었는데 그가 갑자기
가족중에 군대 가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오빠가 군대에 가있다고 하니까 이름, 계급과 부대이름을 묻는다. 다른것은
잘 모르고 군대간지 6개월이 좀 넘었다고 하니까 운전병에게 알아보고 행정관에게 말해서 조치를 취하란다... 그러면서
다른 가족 이야기를 묻고 대답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편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미안하지만 지프카에 엎드리라며 나의 상체를 눌러서 머리가 그의 허벅지 사이로 들어갔다. 지금 가는 곳이
장교들만 출입하는 비밀 클럽인데 민간인에게 위치가 노출되면 곤란하다고 한 20 여분간 그러고 있으란다. 그의 군복 바지
중앙엔 묵직한 텐트가 쳐져있었고 나의 얼굴은 바로 그 텐트위에 걸쳐있었다. 차가 덜컹거리면서 나의 입술과 코는 그 텐트에
계속 부딪쳤고 그때마다 그 텐트안의 물건은 요동치며 점점 더 솟구쳐 올라왔다.
어딘가의 건물 지하로 들어가니 군용 지프카들이 많이 서있고 입구에는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들이 나열해있다가
장군님을 맞이한다. 탁자와 그 주변이 소파로 둘려 쌓여진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방으로 들어가니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이
한 쟁반 나오면서 술도 함께 나왔다. 싱싱한 사시미라면서 한번 먹어 보라는데 생전 처음 먹는 생선회의 비릿한 냄새가
역겨웠다. 술과 함께 먹으면 낫다면서 갈색의 액체를 따라주는데 고급 위스키라며 한번에 삼키라고 했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술을 마셔보지 않았던 나는 그냥 그가 말한대로 반컵 정도의 위스키를 마셨는데 목에 들어가면서부터 목구멍이
타는듯이 따끔거리더니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몸에 열이 올랐다.
잠시 있다가 정신도 가물거리며 그의 몸쪽으로 쓰러지는데 그가 쓰러지는 나의 상체를 안았다. 좀 있다가 그의 얼굴이 내게
다가오며 입술에 키스를 했고 그의 손은 나의 브라우스 단추를 끌르고 젖가슴을 애무했는데 나의 입에서는 알수없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얼마 안되서 나는 벌거 벗은체로 소파에 뉘여졌고 내 몸위로 역시 벌거벗은 그의 몸이 덮쳐왔다.
엄청난 고통속에 나는 그곳에서 첫 경험을 치루었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는 그 곳 마담에게 내가 깨어나면 집까지
데려다 주라고 부탁 한뒤에 그곳을 떠났다. (분명한 첫 경험이엇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피를 흘리지 않았다. 아마 대학교
다닐때 무용 연습을 하면서 잘못해서 처녀막이 찢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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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시간이 경과한 뒤에...
주한 미군 장교인 스미스는 오랫만에 친구들과 장교클럽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삼십분쯤 일찍 도착해서
룸안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다가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서 나와서 자기 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잘못해서 다른 룸의 문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몸매가 환상적인 아름다운 미녀가 발가 벗은체로 누워서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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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다말고 무엇인가 육중한 것이 나의 몸을 누르는 것 같은 답답함에 눈을 떴다.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는 얼굴은 생전
처음 보는 백인이었고 나는 곧 그가 지금 나의 보지를 그의 자지로 박아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고 나는 신음소리를 뱉어 내었지만 그는 아랑곳없이 계속 박아댔다. 얼마후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나의 질안에
그의 정액을 쏟아 붓더니 몸을 일으키며 원더풀 이란다...
자신도 옷을 챙겨입고 나도 옷을 줏어입기를 기다리더니 나의 손목을 잡아 끌고는 다른 방으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두명의
다른 장교와 세명의 아가씨가 앉아 있었는데 그가 나를 자기옆에 앉히고는 뭐라고 말하니까 한 아가씨가 방을 나간다.
조금 있으니까 마담이라는 여자가 와서 나를 불러낸다. 따라나가니까 다짜고짜 뺨을 올려치며 "어디서 놀던년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하며 마구 욕을 퍼부었다... 그 상황에서 도져히 나는 국민학교 선생님이라고 말할수 없었다. 마담은
"오늘 하루만 봐줄테니까 미군 장교를 잘 모시고 다음에 한번 더 이곳에 얼쩡거리면 국물도 없다면서..." 나를 방으로 다시
들여 보냈다. 방에 있던 두 아가씨도 나를 보면서 속닥이더니 신고식을 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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