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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베어] 나의 난봉기 97 - 유학시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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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텐인치님께서 한국 유학생사회에 대해서 잘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솔직히 미국 유학이라고 하는 것이 1950년대에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별도의 시험을 봐서 나가는 것이고, 1980년대 초반까지는 정말로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나 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원로교수의 말을 들어보니 유학 가겠다고 I-20  받아서 미국 대사관에서 인터뷰하고 수속 다 마치고 나면 한국은행에서 달러를 바꿔 주는데 딱 250불 바꿔줬다고 하더군요.  250불이라면 그 당시 가치가 지금보다야 높겠지만 지금 돈으로 10배를 하더라도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 물가가 그렇게 미친 듯이 오르지는 않습니다만...) 2,500불 정도인데 그 돈으로 외국땅에 내리면 어떨까 생각하니 갑자기 제 눈 앞에 막막해 옵니다...
 
유학을 가는 사람도 많아지고, 유학의 목적도 다양해지고, 또한 국가 경제수준이 올라서 돈도 많다 보니 요즘 유학생들은 그렇게 목숨을 걸지 않고도 시간을 잘 보내는 것 같습니다.
 
제 기억을 한번 되살려 본다면...
 
TOEFL 시험 보면서 모든 것은 시작되었던 기억입니다...  TOEFL 이라는게 한번에 점수 잘 받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저도 세 번 정도 봤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GRE 공부를 할라 치면 짜증 엄청나게 나고...  원서 보내 달라고 편지 보내고 (아마 요즘은 이메일로 하겠죠?) 원서 작성한 다음 교수들 찾아 다니면서 추천서 받고...  입학허가 (우리나라말보다는 어드미션이라는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긴 하죠...) 오면 그 때부터 현실로 닥쳐와서 돈 걱정 시작됩니다...
 
제가 갔던 곳은 주립대학이었는데 제가 그 주의 주민이 아니다 보니 non-resident fee 인가 뭔가 하는 돈이 엄청나더군요...  우리 집이라고 해 봐야 겨우 밥 정도 먹고 사는 집에서 아무리 거지 생활을 해도 1년에 25,000불은 들어가는 유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습니다...  (그것도 그 당시라서 25,000불이지 지금은 더 들겠죠?)
 
처음 학교에 도착해서 다음날 인사 가면 그렇게 부드럽고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맞아주던 지도교수라는 인간이 말입니다...  유태인이었는데 말입니다...  학기 시작하면 갑자기 악마로 변해버리던 그 순간의 아찔함을 저는 입을 수가 없습니다...
 
토플 점수 600 이상 받으면 뭐합니까...  교과서 거의 외우고 들어가도 수업 들어가면 안 들리는데 말이죠...  노트 필기야 하죠...  그냥 들리는 만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대략 한 2-3주 지나고 나면 쪽팔림이 사라집니다...  미국 놈들 따라다니면서 물어야죠...  생각보다는 여자애들보다 남자애들이 잘 알려 주긴 합디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호모는 아닙니다...)
 
주말에 쉰다구요?  글쎄...  팔자 좋은 애들이야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 같이 돈 없이 몸만 달랑 미국으로 날아온 놈들은 한 과목이라도 Incomplete 나와 버리면 그냥 끝장이거든요...  금요일 밤에 그냥 잠만 좀 충분히 잡니다...  토요일날 미국애들 놀러가는 그 시간에 다음주 수업 준비 해야 합니다...  그거라도 안하면 절대 못 따라가니까요...
 
Normative Time 이라는 것이 있었던 기억입니다...  정해진 것은 없지만 대략 어떤 학위를 따는데는 이 정도 기간이 걸린다는 그런 개념인데...  그 안에 끝내지 못하면 어쩌면 영원히 한국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방학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있었던 학교는 겨울 방학은 있으니 없으니 하고 여름방학이 좀 긴데, 그 시간에 다음 학기 족보랑 교과서 다 위워야 하거든요...  게다가 돈 없이 왔으니 죽어라고 RA 해야 하는데, 우리 같은 동양놈들이 할 짓이 어디 통계소프트웨어 돌리는 것 밖에 더 있습니까...  아 참...  마지막에는 통계학 연습 강의 TA 도 하기는 했네요...  ㅎㅎㅎ...  인도놈들 제치구요...  저 대단하죠?
 
이렇게 살다 보면 솔직히 자살할 생각도 안 듭니다...  그저 이 순간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모든 정신이 집중되는 것이고...  참고로 저는 한국에 한번도 안 오고 끝냈습니다...
 
미국 유학 갔다 오면 영어 잘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죽어라고 메인프레임 컴퓨터하고만 대화했지 사람들 사귄 일이 적으니 그것도 쉽지는 않더군요...  다 아시잖습니까..  논문도 마지막에는 미국놈들한테 부탁해서 proof-reading 해야 한다는 것...  물론 저는 걔를 위해서 통계 돌려주지만요...
 
이런 시절이 있었는데 그래도 요즘 우리 후배들은 그래도 형편이 좋아졌다고 하니 듣기가 좋습니다...  더 이상 교수한테 가서 장학금 받게 해 달라고 구걸할 필요도 없어졌다니 기분이 좋군요...
 
하지만...  한국에 있으나 미국에 있으나, 떡을 치던 아니면 그냥 공부만 죽어라 하던...  목적은 잊지 않는 젊음이 되기를 빕니다...
 
저도 미국 있으면서 딸딸이야 좀 쳐 봤지만 섹스는 딱 한 번 해 봤습니다...  그거 좀 한다고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처음 자기가 미국 땅에 발 디딜 때의 그 순간은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폴라베어
 
사족 : 그나저나 텐인치님...  아래 글을 보니 사모님과 결혼 전에 섹스하신게 1,000번이 넘는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러세요?  그러시다면...  힘도 좋으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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