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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풀리는 저주에 걸린 사나이.....

리스회사를 다니면서 참으로 많은 사기꾼들을 만났습니다.
정말 많은 사기꾼들을 만나면서도
다행이 노골적인 사기를 당해 치명적인 손실을 회사에 끼친 적 없지만
그 직장생활을 통해 제가 배운 것은 사람에 대한 혐오 였습니다.
 
리스회사를 상대로 사기 치는 방법은 대표적으로 몇 가지 있죠
공리스 라는 방법 즉 아예 리스 물건을 도입 하지도 않으면서 서류 만으로 장난 치는 부류
중복리스 라는 방법..한 물건을 여러 공장에 돌려가면서 설치하고 자금 빼는 방법
오버밸류 라는 방법..납품가를 공급자와 짜고 부풀려 차액을 운영자금으로 돌리는 방법
등등등....
이런 부류들의 공통점은 일단 번듯한 사무실에 번듯한 외제차 끌고 다니며 툭하면 담당자들을 접대라는 명목으로
술로 돈봉투로 구워 삶으려고 덤비죠
일견 보면 베테랑 사업가로 보이지만
워낙 제 상사였던 분이 날고 기던 베테랑 팀장인 관계로 일찌기 그 습성을 배울 수 있었죠
저런 부류들은 어찌 상대 해야 하는지.....몸으로 가르쳐 준 내 팀장......
절대 휘말리지 말고 절대 페이스 잃지 말고 반드시 메뉴얼 대로만 일 해라......
 
그러나 열 명이 한 명의 도둑 못 잡듯
사기 치자고 덤비는 사람 수백 건을 취급 하다보면 문제 반드시 생기죠
우리 팀장과 나도 그 사실 앞에선 어쩔 수 없었죠
 
무려 10억이 넘는 프로젝트건이 자금 기표 되고 만 3개월 만에 부도 나버린 상황
리스물건은 설치 되자 마자 해체 되어 어느 현장으로 갔는지 어디로 팔려 갔는지 알 수 없는 상황
더구나 감사 나온 모은행 감사역들은 우리 팀장을 배후인물로 지목하고 있는 상황.......
 
이대로 당할 순 없지만
가장 중요한 부도업체 대표이사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
대표이사가 나타나 상황을 정리 해야만 팀장과 나 의혹을 벗고 어찌 수습이라도 할텐데
 
석 달을 시달리다가 팀장과 나 묘안을 찾았습니다
연대보증인으로 입보한 그 대표이사의 절친을 구워삶아 그 사람의 행방을 찾자....
그 사람 애초부터 자기는 행방을 모른다 모르쇠였지만 우린 그 사람과 대표이사가 은밀히 연결된 정황을 알죠
해서..그 사람을 불렀습니다
말이 등기이사지....거지나 마찬가지엿던 그 사람에게 배팅을 했습니다
불어라...니가 불었다 이야기 안할테니 불어라 그러면 이걸 주겠다...라고 돈봉투를 내밀었습니다
 
흔들리는 눈빛....
그래 니네가 말하는 의리가 뭔지 나도 안다....돈 앞에서 비루하기 짝이 없는 니네 부류들의 의리...
 
아 이러면 안되는데...라면서 드러운 손수건을 꺼내 번들거리는 이마를 닦으며 비굴하고도 비굴한 표정으로 그가 말하길
절대 내가 말하더라고 이야기 하면 안된다..
난 사실 입보만했지 나도 피해자고 어쩌고...
그런데 두 분 실무자님들 참 고생하셨는데 억울한 일 당하시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말씀드리니 제 마음 이해해달라
그러면서 그 사람의 행방을 불더군요...
친절하게도 약도 까지 그려주면서....
그리곤 우리가 내민 돈봉투 황송한 표정으로 받아 챙기곤 사라졌습니다
 
강원도 태백...
바로 팀장과 나 차몰고 영동고속도로를 밤새 달려 새벽에 그 문제의 주소에 도착했죠
저 참으로 놀랐습니다
폐광촌의 두 동짜리 5층 주공아파트 건물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가 된 주공아파트 건물도 처음 봤지만 퇴락한 아파트가 그리도 괴기스러운 모습인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베란다 문틀은 다 떨어져 나가고 창문 성한 것 하나 없이 새벽 여명속에 서 있는 그 건물
우린....그 사람이 우릴 속인것으로 알았죠
설마...저 폐가 속에 사람이 살고 있으리라곤 상상을 못하겠더군요
 
그러나 일러준 동호수로 조용히 은밀히 다가가보니....합판으로 가려진 그 1층 아파트 안에
분명 사람이 살고 있었고...불빛이 새어 나왔습니다...
전기도 이미 끊어진 아파트 일텐데....이상하다...
 
그렇게 그 동 앞 으슥한 그늘에서 한 시간 남짓 기다리다 해가 밝자
팀장과 나 그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오시죠..김사장....
 
이미 경찰을 불러 둔 상태였으니 그 사람.....결국 순순히 문열고 나오더군요
경악했습니다
불과 석 달 전에 봤던 그 사람이 맞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죠...
 
그 사람의 첫마디
미안합니다.......
여기서 이러실게 아니라 일단 갑시다...라면서 경찰과 팀장은 먼저 경찰서로 가고
뒷처리를 하라 지시 받은 나...
그 집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두어번 본 적 있는 그 사람의 아내......
아침 식사를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는지 부탄가스 렌지위에 무언가가 끓고 있고 양은으로 만든 밥상위엔
소박하나마 정갈한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인의 눈물
남편 하나 믿고 살다 이 낯선 강원도의 폐가로 숨어들어와 숨죽이며 살다 결국 남편을 보내고 혼자 망연자실 한 여인
 
난 그보다 먼저
그 황망한 지경에서도 그녀가 차린 아침밥상에 놓여진 그 남자의 하얀 사기 밥그릇이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녀는...그냥 흔한 식당의 스텐레스 밥공기였지만 남편의 밥그릇은 하얀 사기그릇이라는 사실이
제 눈에 확 박혔습니다
 
그리고 흘낏 둘러 본 그 좁은 주공아파트 안의 풍경
전기는 없지만 베터리를 들여와 켜논 알전구 하나...
안방에 놓여진 야전용 매트리스와 싸구려 이부자리들...
그러나 그 폐가 안에서도 그 나름의 정갈함은 보였습니다
 
달리 할 말도 위로의 메세지도 부질 없는 상황
다만 사실만을 전달 해야 할 거 같아 이야기 했죠
이제 남편분은 여기에 못오신다 그러니 여기를 떠나 집으로 가시라 우리 말곤 채권자 없으니 아이들 있는곳으로 가시라
공포에 질린 그녀에게 대충의 상황을 설명하고 나오려는데
그녀가 급히 날 불렀습니다
잠시만요...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런 그녀 안방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들고 나옵니다
이거 우리 남편에게 전해주세요 라면서 내민 쇼핑백 안에는 몇 벌의 속옷과 양말 그리고 내복....
그러죠..전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나오는데 아차 싶은 생각이 듭디다...다시 문을 두드렸습니다
 
저 이거로 움직이세요 서울 올라가시려면 경비 필요하실텐데 급한대로 이걸로 움직이시고
도움이 필요하시면 이리로 연락 주세요 라면서 지갑 안에 있던 얼마의 현금과 명함 놓고 나왔습니다
 
그리곤 그 곳을 떠나 태백의 도로를 달리는데
뭐라 말 못할 묘한 기분이 계속 들었습니다...
 
결국 어느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커피 한 잔 마시는데......
커다란 고민거리를 해결한 허탈감도 아닌....삶의 비루한 속성을 보고난 후의 허탈감도 아닌
묘한 허탈감이 절 어지럽게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옆자리에 놓여진 그 쇼핑백을 보는 순간 그 허탈감의 원인을 알겠더군요
 
난...
나는 죽어도 저 남자의 인생 처럼 살 수다 없다.......
그렇다고 저 여자의 인생 처럼도 살 수가 없다....라는 생각
 
남자가 여자를 만나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놓고 그리고 같이 늙어가고
장성한 아이들을 보면서 그래..인생은 계속 되는거지...라면서
가족이라 불리는 테두리 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인생은 절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애초부터......
나에게 주어진 인생은 축복이 아닌 저주였어....그것도 살아선 절대 풀리지 않는 지독 하고도 무서운 저주
내가 죽어야 그 순간 풀리는 저주...
그런 깨달음이 순간 들었죠......
무섭더군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었지만
막상
그런 느낌을 그리도 강렬하게 받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비록 도피의 나날들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도피 였기에
그 황망함 속에서도 남편의 밥그릇을 그나마 나은 것으로 구하고
그 황망함 속에서도 남편의 옷을 갈무리하고 다듬고....그런 남편을 위해 눈물 젖은 얼굴로 속옷을 챙기는 여자...
비록 의도 했던 안 했던 범죄자로서 체포되는 순간에도 아내를 바라보면서 걱정 하던 그 남자....
 
그 순간 순간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제 마음을 후벼팠습니다
내가 원천적으로 절대 가질 수 없는 것들
내 어떠한 노력이나 인내로도 결코 만질 수 없는 것들
그 엄연한 현실이 갑자기 너무나 무섭더군요.
 
슬펐죠
해서 서울로 들어와 사무실 들어가니 다른 직원들 수고했다 등 두드려주는데
제가 그랬죠
술 사라 시바.....
그 동안 받은 압박감에 제가 그러는 줄 알고 선배 대리들이 술을 사더군요
입사 후 처음 폭음을 했죠
괴롭고 무섭고 억울하고 슬프고 무엇보다 너무 고독해져서 밤새 폭음을 했습니다
오히려 다른 직원들이 쟤 오늘 넘 달린다 걱정하며 말릴 만큼...
 
그후로 가끔 어떤 장벽에 부딪힐 때면 그 순간이 생각나 스스로 위축 될 때가 있었죠
그래도 용케 오기 하나로 버텨오긴 했지만
힘 빠지고 지칠 땐 어김없이 그 저주의 검은 잿가루가 내려 앉는 거 같아 소스라칩니다
오늘 까지도 말이죠.....
 
정말 죽어야 풀리는 저주 ....이걸 살아 풀고 싶네요
내 영혼을 팔아야 하는 딜을 하더라도 말이죠
아니면 내 인생 중 10년 아니 20년을 달라 그러면 그걸 주고서라도  말이죠
 
아 지나치게 급하게 벚꽃들이 피어 납니다
앞다투어 뭉게구름처럼 말이죠
나도 저 하얀 구름같은 축복을 받고 싶은데......정말로...
봄밤은 깊습니다
꽃들은 어둠 속에서도 은성하게 피어나면서 말이죠....두런두런 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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