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을 만나다 (No sex)
오늘 서울 하늘은
당장에 비가 내릴 것 같은 회색구름과 바람이 휭휭 들어치는 미친하늘이었다.
하늘도 이렇게 미쳤는데
나도 살짝 미치고 싶어서 한국에서 몇번째로 크다는 초대형 서점으로 갔다.
교내 서점도 있지만 - 대학교재를 거기에서
고시 서점도 있지만 - 수험교재를 거기에서 .. 사들고 돌아올 계획이었다.
비오는 날 .. 미용실 가는건 피하라고들 한다. 머리카락이 습기를 먹어서 스타일링이 힘들다고.
비오는 날 피해야 할 곳이 있는데
서점이다.
책이라도 살라치면 습도 99%의 날씨에 책끝이 물결을 치게된다. 가방에 물기라도 들어가는 날에는
쭈그렁탱이 책을 봐야 하고 .. 암튼, 날씨도 미친거 같고 나도 같이 미쳐서 불편하고 위험한
서점으로 향했다.
상콤하게 책 쇼핑을 하고 "아. 어머니"를 외치며 이 우라질 교재값에 땅을 치고 카드를 주고
할인카드로 겨우 몇 천원을 세이브 한 것에 기쁜.. 아주 기쁜 마음으로 돌아섰다.
뒤로 돌았을 때 내 뒤로 계산할려고 오는 여성(여자?? 여성?? 뭘 써야되지, 아가씨???)이 보였고
순간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외부에서 봤을 때 쪽 팔리지 않는가?? 않는가? 과연 그런가?? 1초간 수천번을
자문했다.
눈 앞에 아주 오래전에 몇년을 사귀고 헤어진 "님"이 있었다.
눈이 마주치고 서로를 알아 보고 서로 너무 갈구하던 눈빛, 기다리던 눈빛, 그날의 사랑하던 눈빛
그 모든 사랑의 추억이 담긴 눈빛...... 이었으면 좋겠지만
"ㅎ ㅓ ㄹ ~~~~" 이라는 눈빛이었다.
내가 1초간 수천번을 "나 이정도면 안 쪽팔린 모습이겠지?? 응? 응? 그치"라고 자문할 동안
그녀도 똑 같이 자문했으리라. 순간 그녀의 눈이 자기 옷을 훑었으니까 .....
아.. 부박한 추억이여.
몇년을 사랑하고 나의 독단적 이별을 선물하고 내가 보내고 내가 아파하던 몇년 ..
겨우 겨우, 우연처럼 만나서 "ㅎ ㅓ ㄹ ~~" 이라니 . 부박한 추억. 부박한 나.
묘한 표정으로 서로를 잠시 쳐다보고 "이거 쌩까야돼? 말아야 돼?" 고민하는 사이에
"어. 오랜만이네" 라는 그녀의 목소리..
아~ 제발. 첫 마디는 남자한테 양보하란 말이다. 제발. 왜 날 더 바보 같이 만드니.
"어? 어.. 어.." 어버버 어버버 어버버 - 이런 븅딱
"그래, 은애야. 난 널차고 난 뒤에 뒈질것 같아서 승현이랑 맨날 놀러다녔어. 너 승현이 알지? 집에 돈 많고
착한 놈. 그렇게 1년동안 놀고 나니까 좀 낮던데 그래도 계속 뒈질것 같았어. 더 고상하게 말할 수 있는데
그냥 가장 적합한 말은 뒈! 질! 것! 같았다는거지. 하하. 뭐, 난 시험준비하고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잖아? 나이들어도 시험공부하고 싶으면 하는거지. 아! 너 결혼한거 알고 있어. 남편 좋은 사람이지?
사진 보니까 나보다 못생겼던데, 변호사니? 의사니? 그럼 돈많은 집 외동아들이니? 난 솔직히 이해가 안돼.
아? 니 남편 사진 어떻게 봤냐구? 내가 너 싸이월드 비밀번호 알고 있잖아. 그래서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니 싸이에 들어가서 봤어. 너 약혼사진 보고 난 뒤였던가? 니가 비번을 바꾸는 바람에 다시는 못들어 갔지만.
솔직히 나도 니 싸이에 몰래 들어가는거 비참하다고 생각했는데, 술 취해서 너한테 전화하는 것보다야
괜찮지.. 뭐?? 병신 같다고?? 그래. 사랑 앞에 병신 안되는 남자가 어딧겠니"
이 모든 사연을 난 한마디로 그녀에게 전달했다.
"어? 어. 어."
"그래. 은애야. 시간되면 가까운 커피빈에 가서 까라멜마끼아또 한잔 할까? 나? 나는 에스프레소~"
라는 말을 나는
"꿈뻑 꿈뻑" 눈으로 이야기 했다. 꿈. 뻑. 꿈. 뻑.
"잘 지내지? 그래도 아직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네.. 다음에 기회되면 또 보자"
눈 인사를 남기고 지나가는 그녀..
첫 대화도 그녀가 시작하고 끝도 그녀가 맺고, 나는
"어?" "꿈뻑꿈뻑"
내가 여자를 볼때 엉덩이에 첫 눈이 가는 이유를 오늘 새로 깨달았다.
아.. 그녀의 엉덩이가 너무 예뻣던 것이다.
오늘은 그녀의 뒷모습을 볼 잠깐도 없었지만
순간 내가 왜 엉덩이에 집착하는가? - 에 대한 답이 머리를 때렸다.
"그래. 너 때문이다. 너."
(무슨 심리분석상담 같지. "아! 선생님. 알았어요. 저의 폭식의 원인은 어릴 때 엄마가 밥을 잘 안챙겨 줘서...")
그리고 그녀에게 했던 침대 위에서의 속살거림이 생각났다.
"내가 나중에 돈 벌면 뭐 부터 할것 같아?"
"뭐 부터 할껀데? "
"보험"
"무슨 보험?"
"니 엉덩이에 보험들꺼야. 아마 한국 최초??"
"하하하~ 말이 돼?"
"세상에 이런 엉덩이는.. 없어"
"그렇게 예뻐?"
"너무 너무"
씨발..
몇년의 사랑.
잠깐의 이별.
몇년의 고통.
그리고 몇년 만의 재회.
첫키스, 고백, 추억, 여행.. 그 많은 낭만을 놔 두고
왜 내 썩어빠질 머리에 "엉덩이"가 박히는 거냐.
어후.. 씨발..
서점을 나와 책가방을 매고
담배를 한대 피웠다.
그리고 제기랄.. 이 저주 받은 책들을 몽땅 환불해 버리고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눈을 감고 펑펑 울었다.
이렇게 펑펑 운건
.. 10살 이후, 아니 스무살 이후.. 아니 군대제대 후.. 아니..아니구나.
얼마전에도 혼자 펑펑 울었었구나 ;;;
암튼
참혹하고 독특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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