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스토리 9 (NTR야설)
〈 9화 〉
그녀가 응원단에 없는 한, 나는 굳이 응원단이 응원을 하거나 공연을 하는 것을 볼 이유가 싹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렇게 전역을 하고 한 달이 훨씬 넘게 지났을 때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그녀와 도서관 앞에서 마주쳤다.
삼 미터 정도 앞에서 정면으로 딱 마주친 상황이었다. 따로 피하고 그럴 구멍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우연은 분명히 아니었다. 내가 그녀가 오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그런 상황을 만들어 냈었기 때문이었다.
"선배 제대한 거에요?"
그녀는 너무도 당당했다.
환하게 웃으면서 이번에는 맨 손으로 내 팔목을 잡은 그녀였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크게 웃은 적은 없었던 것 같은 큰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스가 달린 흰 장갑이 아닌 맨 손으로 내 팔목을 잡아준 그녀였다.
군대에서 그녀에게 총 열여섯 통의 편지를 보냈었다.
물론 그 중의 열한 통은 배달사고가 났었다.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였다.
내가 결혼을 하던 서른다섯 살에 알게 된 이야기였다.
열여섯 통의 편지 중에 열한 통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빼돌렸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녀의 주소를 몰랐었기에 영문과 과사무실로 편지를 항상 보냈었다.
열한 통은 배달 사고가 났었던 것이 십수 년이 지난 이후에 밝혀졌지만 그래도 다섯 통은 그녀에게 전달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녀는 단 한 통의 답장도 보내지 않았었다.
결혼 이후에 그녀에게 그 이야기를 슬며시 물어 본 적이 있었지만 그녀는 잘 기억하지 못 했었다.
어찌되었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전역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글을 쓰기 위해서 매일 같이 도서관에 온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 그렇게 서로 마주보면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그동안의 안부를 정말 짧은 대화 속에 다 녹여낸 이후에, 그렇게 다시 재회를 한 이후에 그녀는 너무도 스스럼 없이 나에게 레포트와 써머리를 부탁했었다.
힘들다는 생각은, 그녀가 나를 이용해먹는다는 생각 같은 건,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내가 뭔가 해준다는 그 자체가 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녀 인생에서 그 어떤 일이든 간에 내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자체가 나에게는 행복이 되는 시간들이었다.
레포트 제출한 것이 내용이 너무 좋아서 교수님에게 따로 칭찬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그녀는 나에게 학교 매점에서 라면을 사주었다.
그녀와 마주 앉아서 라면을 먹는데 얼마나 많은 남자 녀석들이 흘끔거리는지 정말 내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항상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의 그녀가 온 몸에서내뿜어내는 아우라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나 화려한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뭔가 촌스러운 복학생과 같이 앉아서 라면을 먹는 것이 뭔가 언발란스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너무 행복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녀와 같이 먹었던 학교 매점의 라면 맛은 아직도 내 인생 최고의 라면 맛이었다.
* * *
아내가 내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이 세상에서 아내가 따라주는 맥주가 제일 시원하고 맛있었다.
내 잔에 술을 따라주자마자 아내는 스테이지로 나가서 춤을 추었다.
서른일곱…….
솔직히 클럽에 저렇게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와서 저렇게 열정적으로 춤을 추기에는 뭐랄까 조금 어울리지 않는 나이일 수도 있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기는 했지만, 젊음이라는 것을 그렇게 언어유희처럼 치부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아내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아내는 정말 몸이 유연했다.
묶고 있던 머리를 풀어헤치고 리듬을 타면서 그루브하게 온 몸을 흔들어대는 그녀를 보면 스물한 살 시절에 무대 위에서 저 긴 생머리를 나풀거리고 그 매끈하고 긴 다리를 쭉쭉 뻗어가면서 응원단의 춤을 추었던 그녀가 내 눈 앞에 살며시 오버랩이 되는 것 같았다.
아내와 클럽에 처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비교적 자주 오는 편이었다.
아내는 클럽에 같이 갈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나를 데리고라도 오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내와 같이 춤을 추고 그럴 수 있는 유연한 몸을 가진 남자는 분명히 아닐 텐데 말이다.
현란한 사이키 조명 스피커가 찢어져라 터져 나오는 묵직한 베이스가 깔리는 빠른 음악들, 그런 상황에서 그냥 미친 듯이 흔들기만 하는 것이 아닌 아내의 부드러운 몸놀림, 나는 그런 아내의 춤을 보고 있다가 용수철처럼 몸을 튕겨서 스테이지로 나가고 있었다.
뭐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내가 혼자 춤을 추고 있으면 꼭 놈팽이들이 달라붙는다. 꽃에 나비가 꼬이는 것처럼 말이다.
아내의 앞에 바짝 붙어서 춤추는 남자 사이에 내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내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춤에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앞에 바짝 붙어서 어깨에 손을 올리자 아내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내 허리를 두 손으로 끌어안았다.
아내에게 바짝 붙어서 집적대던 놈은 이 황당한 상황에 똥 씹은 표정을 하면서 저만치 스테이지의 다른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십 대의 사혜연에게 다른 놈들이 집적대는 것은 내가 한숨 속에 이해를 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 때는 내 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내 여자였고 내 아내였다.
아내 주변에는 남자들이 아예 근처에도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이제는 그런 거 이해하지 않는다.
나는 아내만 바라보고, 아내 역시 나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와 몸을 밀착시키고 조금 느려진 음악에 춤을 추고 있었다.
아내는 춤을 추고 있었지만 나는 그냥 아내의 손길을 따라서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기억에서 지우려고 했지만 자꾸만 그 생각이 나는 것이 괴로웠다.
아내가 싱가포르 출장을 간 사이에 보았던, 어떻게 보면 아내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것이나 다름 없기는 했지만, 아내의 것을 도둑질 한 것이지만, 그 기억을 쉽사리 지울 수가 없었다.
아내가 다른 남자의 성기에 입을 맞추고 있는 그 사진,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새하얀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로 무릎을 꿇고 다른 남자의 성기에 입을 맞추고 있는 그 사진, 나는 결혼 전의 일이라고 애써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그게 참 어려웠다.
결혼 4년차…….
스물네 살에 내 동정을 가지고 갔었던 여자, 내 첫사랑, 그리고 지금은 내 아내가 된, 지금 나와 살을 맞대고 춤을 추고 있는 이 여자는 단, 한 번도 내 성기 근처에 입을 대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나는 야설을 쓴다, 아니 마음 속으로는 야설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결코 입 밖으로는 야설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성인들이 보는 소설을 남몰래 쓰고 있다.
나이 서른여덟…….
진짜 사무실 하나뿐인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은 나 혼자 뿐이었다. 남는 건 여유로운 시간 뿐이었다.
메이져 일간지 기자였을 때보다 소득이 확 줄어버렸다. 그때는 정말 돈 걱정 같은 건 안 했었는데 말이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향후 몇 년간 꾸준하게 출판사로 들어오는 돈이 있었다.
소액들이 여러 군데서 나뉘어져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게 내 소득이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살 수는 없었다. 나는 출판 편집 일을 외주 용역 비슷하게 받아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 십 년 동안 종이책 시장은 학생들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제외하고는 말도 못할 정도로 침체를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종이책 출판사들은 이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일부 대형 출판사와 특별한 분야만 전문적으로 하는 전문 출판사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외주로 받아서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모두 받아다가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원래 주특기인 글쟁이 특기를 살려서 가뭄에 콩 나듯이 들어오는 원고 의뢰를 받아서 글을 쓴다.
내 이름으로 나가는 경우는 의뢰가 열 건이면 그 중의 한 건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대필이었다.
국문과를 졸업했고, 메이져 일간지 기자 생활을 제법 오래 했었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글 쓰는 건 자신이 있었다.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는 대필의 경우에, 나에게 일감이 오는 경우가 은근히 있었다.
신원이 확실했고 그걸 추후에라도 까발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분들이나 돈이 많은 분들은 대필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문장을 매끄럽게 만진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내 생활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글을 썼다.
수필이든 일기든 단편 소설이든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시간이 나는 경우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