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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의 기억-상

외도의 기억-상

그녀를 본 것은 벌써 몇 년 전 아내와 결혼하기 전이었다.

와이프를 사귈 때 와이프의 친구를 서로 만날 기회가 제법 있었는데 그 친구 중 유독 내 눈에 확 들어온 여자였다.

하얀 얼굴에 깊은 눈동자! 갸름한 얼굴에 오뚝 솟은 콧방울이 절로 사람을 감탄케 하고 한숨에 남자의 맘을 끌어당기는 이미지를 가진 여자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그녀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었고 나 역시 와이프를 사귀고 있어 딴마음을 먹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닌지라 아쉽게 생각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와이프와는 이미 육체관계를 가졌고 또한 그 관계를 인정해야 하며 남자로서 책임감 또한 강하게 작용하였지만, 그녀가 주는 여자로서의 강렬한 이미지와 움직일 때마다 매혹적으로 흔들리는 육체의 굴곡은 여전히 머릿속에 맴돌았다.

몇 달 전, 와이프의 생일로 인하여 놀러 온 친구들 다섯 명 속에 진주, 그녀도 있었다.

다들 이미 아줌마가 되어버린 나이와 애를 낳은 경험으로 인하여 처녀 때의 맵시나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진주, 그녀는 오히려 더 성숙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본지도 벌써 6개월이 넘었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슬을 머금은 듯한 눈빛이며 하얀 얼굴, 귓가로 흘러내리는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그녀를 더욱 고혹적으로 느끼게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의례적인 인사이나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주 씨도 역시 가벼운 인사로 맞받았다.

강남에서 인테리어 관계의 일을 하는 그녀는 비록 가정주부이지만 사회생활을 지속해서인지 몰라도 아직 아가씨와 같은 활동성과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아줌마들의 수다와 몇 잔의 술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지고 분위기도 사뭇 들떴지만 난 진주 씨를 의식해서인지 말을 할 때도 조심스러워 어떨 때는 더듬거리기까지 하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난 한 여자의 남편인데!`

도덕적 가치에 의한 자신의 반성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점점 맘속 더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아 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컨소시엄에 의한 일의 합작으로 인하여 몇 개 회사가 협력하게 되었는데 그 일로 인하여 협력사끼리 일차 회의를 하게 되었다.

`이제 또 새로운 일이 진행되는구나. 몇 달 동안 제대로 집에나 들어가고 밥이나 챙겨 먹을 수 있을지. 휴!`

협력사 중 한 회사의 회의실에서 만나기로 하여 약속 시간에 도착하였는데 전혀 뜻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진주 씨, 바로 그녀였다.

인테리어 회사 대표로 참석한 것이었다.

하기야 이 업계라는 것이 넓어 보이지만 실제로 아주 좁은 게 또한 이 업계이다.

진주 씨 역시 나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공식적인 자리라서 표시를 할 수는 없고 그저 업무 관계의 의례적인 인사 때 소개를 하였다.

콩닥콩닥, 이미 삼십 중반에 들어선 나에게 콩닥 이라니!

일보다도 진주, 그녀가 주는 흥분이 훨씬 컸다.

명함을 받았다.

자그마한 글씨로 적힌 이메일 주소가 뜻밖으로 이것이 나와 그녀의 연결고리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보물인 것처럼 그녀의 명함을 지갑 깊숙한 곳에 넣었다.

사적인 이야기는 할 틈새가 없어 아쉽게도 헤어졌지만 이제 자주 볼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즐거웠다.

난 그 사실을 와이프한테 숨겼고 진주 씨 역시 괜한 오해를 살까 봐 와이프한테는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 일 이후 얼마간 지나 와이프가 물었다.

"자기야, 며칠 후면 진주 걔 생일인데 뭘 선물하지?"

"엉? 생일이야?"

놀라면서도"알아서 해."라고 넘겼다.

`생일이라니! 뭘 해야 하지?`

순간적으로 혼란이 떠 올랐다.

일 관계로 본다면 뭔가 선물을 해야 할 것도 같고 와이프의 친구, 그것도 다른 사람의 아내라는 입장으로 보면 선물을 한다는 것은 곧 다른 마음을 품었다는 오해를 받기 쉽고 하여 선뜻 무엇을 해야 할는지 몰랐다.

마침내 그녀의 생일이 다가왔다.

아침에 회사에 들러 뭘 선물할까 고민해도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아 고민하는데,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이메일을 보내자. 그것도 생일 축하 카드로!`

지갑을 뒤져 저 깊숙한 곳에 있는 그녀의 명함을 꺼내 이메일 주소를 이면지에 적고는 그 명함을 회사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다.

여러 가지 카드가 보였다.

그중 사랑의 카드라는 것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은 되었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생일 카드 중 괜찮은 것을 골라

` 와이프한테 들었다. 생일이라는데 달리해 드릴 것은 없고 명함을 보니 이메일 주소가 있어 카드를 보낸다. 생일 축하한다.`

이런 내용의 메시지였다.

막상 작성은 하였지만 보내고자 하니 또 망설여진다.

`이거, 보내면 뭐라고 오해하지는 않을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오해로 인하여 자신을 인식해 주었으면 하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맴돌았지만 결국 큰 용기를 내어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이미 떨어진 주사위였다.

집에 오니 와이프는 없다. 그녀의 생일에 갔나 보다.

며칠 후 일 관계로 인하여 그녀를 만났다.

카드를 보낸 것도 있어 죄를 지은 듯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있는데

"고맙습니다. 카드 보내주셔서."

한순간 밝아지는 내 얼굴을 그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무심한 척

"보셨군요. 저. 그게 뭔가 선물을 드려야 하는데 ... 그러지도 못하고 ..."

"선물은 무슨. 카드 받은 것도 황송한데요."

"....."

"희진이한테도 자주 카드 보내세요?" 

희진은 아내 이름이다.

"네. 가끔요. 무슨 기념일이라든지, 아니면 싸움할 때요"

"싸움도 하세요? 호호호. 전 그렇게 안 보였는데..."

얼굴이 붉어진다.

화제의 전환을 꾀하였다.

내용은 서로에게 문서로 주고받는 것을 이제 이메일로 보내자는 것이 내 주장이었고 그녀 역시 그 주장에 동조하였다.

일일이 문서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그야말로 전근대적인 방법이므로 이메일을 통하여 업무 진행을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일반화된 지

오래다.

회사에 들어와서 이메일을 뒤져보았다.

카드를 보낸 답장이 와 있었다. 요지는 고맙다는 것이었고 뜻밖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가끔 그녀에게 일 핑계로 이메일을 보내고 그녀 또한 일로 인하여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공적인 내용에 가끔은 사적인 내용도 끼어들었다.

주로 일상사에 관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 몰래 그녀와 내가 이렇게 이메일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짜릿한 비밀로 와 닿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회사관계자와 함께 미팅을 했는데 미팅 후 집에 가는 길이 조금은 같은 방향이라 그녀를 차에 태우고 밀리는 도로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하면서 애 키우는 일이 힘들다는 것이나 남편이 사업을 하는 관계로 가정에 소홀히 하는 점 등이 어렵다는 내용이었고 나 역시 그 장단에 맞추어 여러 가지 일상사를 나누면서 옆자리에 타고 있는 그녀의 향기에 취해갔다.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녀,

뒤에서 바라다보면 작은 히프인데도 조수석에 탈 때는 좌석이 좁은 양 꽉 차는 엉덩이의 순간적인 변화가 놀라웠다.

여자는 겉모습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바지를 입은 늘씬한 다리와 가슴의 굴곡이 여성스럽게 느껴졌다.

다음부터 점점 그녀가 내 차에 타고 퇴근하는 일이 많아졌다.

우리 집에서 한참이나 가야만 그녀의 집이 나오지만 어떤 때는 일부러 그녀의 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녀는 한사코 사양하였지만 내가 고집을 부리자 못 이긴 척 져주는 그녀가 참으로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그녀에게 점점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금요일,

그날도 그녀와 함께 퇴근하고는 그녀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그녀의 집으로 가는 도중 그녀가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 때문이라는 것이 그녀의 말이었지만 난 그녀와 같이 더 있을 수 있어 흔쾌히 받아들였다.

가까운 갈빗집으로 들어가 얼마간의 고기를 먹자 술 생각이 간절하였다.

화장실에 간다고 나와서는 와이프에게 일 관계로 다른 회사 사람을 만나 지금 음식점에 있다고 전화하고 술을 마시면 좀 늦을 것이라고 알린 후

들어와서는 술을 시켰다.

"술을 드시려고요? 운전은 어떡하실 건데요?"

"차는 놔두고 가죠. 오늘 또 금요일인데 술 한잔하고파서요."

그녀도 더 말리지 않고 수긍했다.

내가 술을 권하자 예의상 받아두었던 그녀도 음식점이 사람들로 인하여 시끌벅적해지자 분위기에 동요되어서인지 조금씩 맥주를 들이켰다.

빨개진 얼굴이 이뻐 보였다.

그녀도 집에 전화하여 애를 돌보고 있는 친정어머니에게 늦을 것이라고 한다.

남편은 지방에 내려갔단다.

남편이 지방에 내려갔다는 그 말에 일순간 긴장감이 사라지며 여유가 생겼다.

있다는 것과 여기 없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 큰 차이인가?

두어 잔이나 마셨을까? 얼마 되지도 않은 술에 약간은 취기가 도는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몇 병의 술을 마셔도 끄떡없는 여자! 조금 마셔도 토하고 하는 여자!

그런 여자와는 다른 품위를 잃지 않는 그녀의 맵시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기분 좋은 정도로 식사를 하고 나와서는 내가 그녀에게 노래방에 가자고 제안하자 그녀는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삼십 분 정도야 어떠냐는

내 설득을 받아들여 노래방에 들어갔다.

지하에 있는 노래방에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휘청하는 그녀의 몸짓에 놀라 붙잡았다.

일순간 그녀의 팔과 몸에서 전해오는 그녀의 감촉이 고스란히 손을 통하여 전해졌왔다. 와이프와는 다른 부드러움!

서로 어색해하면서 노래방에 들어가 한두 곡을 내가 먼저 부르고 그녀가 다음에 불렀다.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 난 옆에 서서 동조하였고 간간이 부딪히는 그녀의 몸이 커다란 흥분으로 와 닿았다.

그날은 아무 일 없이 들어갔다.

다음부터 그녀는 나에게 한결 편안하게 대했다.

이야기할 때도 스스럼없이 집안일을 말하고 나 역시 장단 맞추어 주고 하면서 점점 친구처럼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 한잔 사 달라는 것이었다.

술? 아니 왜 그녀가 술을? 이유가 뭘까?

의문을 품으면서도 늦을세라 재빠르게 나갔다.

길거리에는 이미 늦가을이라 낙엽이 뒹굴고 횅하니 지나가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느껴졌다.

약속 장소로 나갔는데 조용한 레스토랑이었다.

앉아 있고 얼마 후 그녀가 들어왔다.

날씨 탓도 있었지만 약간은 초췌해진 모습으로 들어오는데 먼저 식사 후 간단한 안주를 시켜 술을 마셨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그녀도 마음이 풀어졌는지도 연거푸 몇 잔을 마셨다.

그리고는...

"이렇게 진주 씨하고 술을 마시는 건 좋은데.... 무슨 일이 있나요?"

"아뇨...아무 일도...단지 술이 마시고 싶어서예요. 죄송해요"

"아니, 무슨...죄송하다뇨."

그녀는 쉽사리 얘기하려고 하지 않은 채 술잔을 붉은 입술로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도톰한 입술로 친구의 남편 앞에서 술을 마시는 여자, 그녀는 아름다웠다.

몇 잔의 술이 들어가고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그녀는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그녀 남편을 대학교 때 사귀었다고 한다.

오래된 연애 끝에 결혼한 후 그녀 남편은 그녀를 마치 공주처럼 떠받들었는데 문제는 남편의 사업이었다.

제법 부유한 집안 출신인 남편이 주위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다 망한다는 사업을 그래도 성공했다고 할 정도로 일궈 놓았는데 사업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점차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자들을 접하면서 가정에 소홀하게 된 것이었다.

원래는 순박하고 내성적인 사람인데 사업이 그의 성격을 바꾸어 놓고 점차로 밖의 일로 출장도 잦아졌다.

사업이 그녀에게서 남편을 빼앗아 간 셈이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따로 만나는 여자도 생기고 출장을 간답시고 여자와 함께 밖에서 지내는 일이 많아졌단다.

진주 씨 역시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전날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호텔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는 견딜 수 없는 상실감과 배신감에

못내 겨워하다가 오늘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한마디 한마디 말을 하면서 가끔 눈가로 비치는 이슬이 그녀 마음을 잘 알게 해주었다.

`휴...`

무슨 말로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모른 나는 그저 대꾸만 간간이 할 뿐 듣기만 하였다.

내가 달리 무슨 말을 하랴.

이야기가 힘들었는지 진주 씨는 이야기 도중 술이 냉수인 것처럼 마시면서도 또렷한 정신은 살아 있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취기가 도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끼는데...

난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뭔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결국은 그녀 옆으로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면서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네?"

그녀는 나한테 기댄 채로 마음의 상처가 큰지 계속 흐느낄 뿐.

고요한 정적이 맴돌고 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녀에게 바래다주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술이 조금 취한 그녀를 부축하고 차에 올라 그녀의 집으로 가는 도중 갑자기 그녀가 좀 내려 달라고 했다.

차 실내가 더워 속이 더부룩한 모양이었다.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우자 그녀는 차 밖으로 나갔다.

나 역시 밖으로 따라 나갔는데 차가운 밤기운이 제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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