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피-4
황제의 피-4
음란한 꿈
그 꿈을 꾼지 이틀이나 지났다.
그런데 이틀 동안 발정이 오지 않았다.
은은한 단내는 몸에서 계속 풍겼지만 발정기에 경수를 흘리는 것처럼 그렇게 지독하고 진한 단물은 흘리지 않고 이틀이 지났다.
그래서 해원은 자신의 발정기가 다른 때보다 일찍 끝났다고 생각했었지만 이틀이 지나는 밤, 거짓말처럼 발정이 시작되었다.
매달 발정기가 끝날 때면 징후가 보인다.
달거리 때 나오지 않던 경수가 발정이 끝나면 아주 조금 비치는 것이다.
그래서 속곳에 경수가 비치면 발정이 끝났다고 판단하고 본궁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아직 경수가 비치지 않아 발정이 오지 않는 이틀 동안 기다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시 발정이 시작되었다.
초저녁부터 몸이 조금씩 더워지더니 한 밤중이 되자 도무지 옷을 입고 있지 못할 정도로 전신에 땀이 차올랐다.
덥고 가려웠다.
특히 가랑이 사이가 뜨겁게 달아올라 아무리 만져도 소용이 없다.
이미 한번 사내의 맛을, 그것이 비록 꿈이라 하더라도 이미 사내의 맛을 알아버린 몸은 스스로의 손으로도, 그리고 나무 남근으로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진짜 사내가 필요해...’
하지만 진짜 사내가 필요하다고 해서 사내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하아..하아...”
너무 괴로운 나머지 해원이 방문으로 기어갔다.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작은 바람이라도 느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끼이익.
문에 기댔을 뿐인데 문이 열린 것이다.
‘또다...또 엊그제처럼...’
대못으로 박아서 열리지 않게 해놓은 문이 너무 쉽게 열렸다.
‘설마 난 또 꿈을 꾸는 걸까...’
몸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잠이 든 것일 수도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어서 다시 그 꿈을 꾸는 거라면, 어쩌면 그 사내를 또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나무 숲으로 가면 그 사내를 만날 수 있을까. 만약 그 꿈이 아니라면 어쩌지...’
해원이 방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바람에 해원의 알몸을 휘감았다.
꿈이라는 생각에 해원은 옷을 입지 않고 알몸으로 방 밖으로 나와 뜰을 걸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곧장 대나무 숲으로 이어진 길로 걸어갔다.
바람이 불자 대나무가 쏴아아 쏴아아 소리를 내는 소리가 그날 밤처럼 울렸다.
맨발로 걸어도 발이 아픈 것을 몰랐다.
대나무 숲으로 걸어 들어오자 시원한 바람 때문인지 몸의 괴로움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여전히 열기가 몸 안에 웅크리고 있지만 방 안에 갇혀 있을 때보다는 한결 나아졌다.
발바닥에 밟히는 작은 흙 알갱이를 느끼며 해원이 대나무 숲 한 가운데까지 걸어들어 갔을 때였다.
“오늘도 만났구나.”
그 사내가 거기에 있었다.
완연한 만월의 달빛 아래에 유난히 살결이 흰 사내가 꼿꼿한 허리를 편 채로 거기에 서 있었다.
꿈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발정기의 열기로 뛰는 두근거림과는 다른 느낌의 두근거림이다.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꿈에서 똑같은 이를 만났다는 생경하고 기묘한 체험 때문일까.
아니면 두 번째 만남이라고 반가운 나머지 가슴이 이렇게 뛰는 걸까.
발정기 때는 물론이고 발정기가 아닐 때에도 부왕을 제외한 어떤 사내도 만날 수가 없어서 열 여섯 살 이후로 해원은 사내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아마 6년 만에 처음으로 보는 사내가 저 사내일 것이다.
처음으로 제대로, 말을 나누며 서로의 눈을 쳐다보게 된 사내가 저 사내다.
“오늘도 단내를 풍기는구나.”
사내가 해원을 향해 걸어왔다.
그가 가까이 오자 그의 체취에 공명하듯 해원의 몸 안에서 열기가 물이 끓듯 끓어올랐다.
지금 자신의 몸이 알몸이라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었다.
‘아, 안 돼...’
너무 뜨거운 나머지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해서 해원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조금 전까지는 버틸만 했는데 사내가 제게 가까이 다가오자 힘이 풀린 것이다.
“얼굴이 새빨갛구나.”
주저앉은 그녀의 앞에 무릎을 내리고 앉은 사내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맥을 짚었다.
‘의원이구나...’
꿈이지만, 꿈 속의 사내지만 이 사내의 신분을 알게 되었다.
이 사내는 의원이다.
“맥이 요동치고 있구나.”
손목을 놓은 사내가 해원의 이마를 짚었다.
“뜨겁고...”
그리고는 이번에는 해원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숨결이 뜨겁기까지 하지.”
“나는 저주를 받았어요...”
“저주?”
사내가 피식 웃었다.
“나는 그런 건 믿지 않는다. 저주라니, 그런 것은 없단다.”
“나는 믿어요. 내가 저주에 걸렸으니까요. 매월 달거리 대신에 이렇게 음란하게 사내를 원하게 되는 저주를요.”
“누가 네게 저주를 걸었다는 것이냐?”
“그건 나도 몰라요. 확실한 건 이 저주는 죽을 때까지 나를 갉아먹을 거라는 거예요.”
“사내가 있으면 되지 않느냐.”
지금 몸이 달아오르고 있다.
“그건 모르겠지만,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해원이 사내의 소매를 잡고 매달렸다.
지금 이 사내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너무 힘들다.
숨이 차오르고 몸이 덜덜 떨린다.
가랑이 사이는 이미 더 이상 젖지 못할 정도로 젖었다.
“아...”
무랑군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해원을 제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대나무를 등지고 앉은 사내가 제 무릎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해원의 젖가슴을 손바닥으로 받쳐 올렸다.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
사내의 말처럼 해원의 젖꼭지는 이미 단단해졌다. 젖꼭지만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가슴도 부푼 느낌이다.
“이쪽도 벌써 흘리고 있구나.”
사내가 해원의 음부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세로로 길게 갈라진 구멍 안을 손끝으로 누르자 이내 끈적한 애액이 주르륵 딸려 나왔다.
“으응, 응...”
전신이 저릿저릿 울려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신음을 들으며 사내의 손이 그녀의 음순을 더 넓게 벌렸다.
뒤에서 끌어안은 자세로 그녀의 음순을 벌리고 다른 손으로 그 벌어진 구멍 안쪽의 붉은 속살을 긁자 해원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사내의 손목을 붙잡았다.
“하윽! 아!”
싫은 것이 아니지만 너무 저려서 숨이 막혔다.
마치 이게 처음인 것처럼 사내의 손이 저를 만질 때마다 가슴이 마비가 되고 눈앞이 흔들렸다.
“몸 안에 음기가 가득 차서 그런 것이니 음기를 다 빼내면 후련해질 것이다.”
음기. 자신의 몸 안에서 흘러나오는 단물을 사내는 음기라고 부르고 있다.
정말 이것이 음기일까. 음기가 넘쳐서 이러는 것이라면 고칠 방법도 있는 것일까.
‘나중에 물어볼까? 이 음기를 어떻게 고치는지...’
방법이 있다면, 정말 이 저주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면 벗어나고 싶다.
이 저주에서 벗어나서 다른 여인들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
사랑하는 사내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읍의 대로도 마음대로 다니고, 해가 지는 강가의 석양을 함께 바라보며 거닐기도 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삶이다.
그렇게 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응! 아! 하앙! 앙!”
사내의 손이 해원의 젖꼭지를 비틀었다.
젖꼭지에서 번진 쾌감이 배꼽으로 이어내려갔다.
여전히 벌어진 음부 안으로 들락거리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해원의 몸이 앞뒤로 흔들리며 젖가슴이 출렁거렸다.
제 애액 때문에 사내의 허벅지까지 축축하게 젖은 것을 해원도 느끼고 있었다.
“애액과 함께 음기가 빠져나오는 것이니 잔뜩 싸게 해주마. 여인이 가장 잘 느끼는 곳이 이곳이지.”
사내가 해원의 음핵을 손끝으로 둥글게 문질렀다.
“아앗! 아! 하으읏!”
사내의 말이 맞다.
자신이 가장 잘 느끼는 곳이 지금 사내가 문지르고 있는 곳이다.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게 숨어 있다가 지금처럼 흥분하면 불거지는 작은 살점을 사내는 잘도 찾아내서 애무했다.
이 사내는 여인에 대해 잘 아는 것이 틀림없다.
특히 여인의 몸.
어떻게 여인을 만져야 흥분을 하고 쾌감을 느끼는지, 어떻게 해야 절정에 이르는지 잘 알고 또 능숙하게 하는 사내다.
어쩌면 아내와 첩이 있을 수도 있다.
“하아아앙! 아! 아아아!”
집요하게 음핵을 문질러오는 애무에 해원이 사내의 허벅지 위에서 위아래로 엉덩이를 들썩였다.
철벅철벅 젖은 소리가 음란하게 울렸지만 해원은 엉덩이짓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래에서 밀려 올라오는 쾌감에 잠식되어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숨을 쉬고 있는데도 숨이 막힌다. 너무 숨이 막혀서 견딜 수가 없다.
“아아아아!”
지독한 쾌감이 정수리까지 저릿하게 울리는 것과 동시에 해원이 허리를 파르르 떨었다.
허리를 휘고 하체를 앞으로 내민 채로 해원이 벌린 무릎을 세웠다.
덜덜덜 떨리는 그녀의 음문에서 말간 물이 세차게 쏟아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그런 물줄기를 쏟아낸 것은 그녀도 처음이다.
한번 쏟아진 물줄기는 멈추지도 않고 쏟아졌다.
그리고 그 물줄기가 잦아든 다음에야 해원은 사내의 허벅지 위에 다시 앉을 수 있었다.
“하아...하아...”
제 가슴에 기댄 채로 축 늘어진 해원을 사내가 제 허벅지에 눕혔다.
사내의 옷은 엉망으로 젖은 채로 구겨져 있었다.
사내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해원이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바로 위에 저를 내려다보는 사내의 얼굴이 있었다.
그 달빛을 닮은 눈동자에 제 얼굴이 담겼다.
제 새빨갛게 달아오른, 입을 벌린 채로 음탕한 숨소리를 헐떡이고 있는 얼굴이 송두리째 담겼다.
“이제 좀 낫지 않느냐?”
사내의 말이 맞다.
한바탕 쏟아내자 몸의 열기가 조금은 식었다.
하지만 이대로 열기가 식었다고 그때처럼 해주지 않으려는 건 아닐까 문득 걱정이 되었다.
“맨 땅에 눕힐 수는 없어서 말이다.”
해원을 허벅지에 눕힌 사내가 그녀를 바라보며 겉옷을 벗었다. 그리고 그때처럼 땅에 겉옷을 깔아 그 위에 그녀를 눕혔다.
‘옷이 두꺼워...’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 보니 겉옷이 두껍다. 지금은 한 여름인데 이 사내는 덥지도 않은 걸까.
‘꿈이니까 그런 거겠지.’
그래, 꿈인데. 그래봤자 꿈인데 옷이 두꺼운 것이 무슨 상관일까. 지금 갑자기 눈이 내려도 꿈이니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느냐?”
“무, 무랑군...”
“기억하고 있구나.”
이 사내는 몇 살일까.
저보다는 나이가 많을 거라는 걸 안다.
서른? 서른살이 넘었을까?
하지만 단정하고 고운 눈매나 잡티 하나 없는 살결을 보면 생각보다 나이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봤자 저보다는 나이가 많을 테지만 말이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사내가 물어볼 때마다 그 숨결이 해원의 얼굴에 부딪쳤다.
사내의 숨결이 살결에 닿자 겨우 진정이 되었던 몸이 다시 슬슬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해원입니다.”
“고운 이름이구나.”
자신이 남월 황제의 딸이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것을 말해서 좋은 것은 없다.
황제의 딸. 그런 것만으로도 자신을 멀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이제 서로 이름을 아는 사이가 되었구나.”
“그러네요.”
“그러니 접문을 해도 되겠지?”
접문.
입을 맞추겠다는 뜻이다.
조금 우스웠다.
몸을 섞고 서로의 가장 은밀한 곳을 봤으면서도 정작 접문은 미리 허락을 받으려는 사내의 모습이 조금 우스워서 해원이 작게 웃었다.
그리고 그 웃는 입술에 사내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으응...”
사내의 입맞춤은 부드러웠다. 달빛이 입술에 내려온 것만 같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제 입술을 지그시 누르다가 입술 틈 사이로 혀가 밀고 들어오자 해원이 순순히 입을 열어 그 혀를 받아들였다.
다정한 숨이 제 입안에 흩어지며 그보다는 뜨겁고 사뭇 격정적인 혀가 제 혀를 휘감아 빨아당기자 해원이 사내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쥐었다.
엊그제 제 음부 안으로 파고 들어와 제 안쪽을 헤집고 빨아당기던 혀가 지금은 제 입안을 꼭 그렇게 만들고 있다.
해원의 귀와 뺨이 마치 저녁 무렵의 노을처럼 붉게 물들었다.
입술을 살짝 떼었다 다시 제 입술을 찾는 사내의 손이 제 허벅지를 아래쪽에서부터 잡아 들어올리는 것을 느낀 해원이 숨을 들이마셨다.
잡힌 허벅지가 벌어지며 단단하고 뜨거운 것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뜨거워...!’
제 음부를 가르고 거침없이 파고 들어오는 사내의 남근에 해원의 등이 휘어졌다.
이미 한 번 맛 본 남근이다.
그때의 그 전율과 지금의 환희가 뒤섞여 또 다른 새로운 황홀경 안으로 해원을 끌고 들어갔다.
지금 제 몸 안에 사내의 것이 가득 차있다.
제 입안에는 사내의 혀가, 그리고 제 음부에는 사내의 남근이 채워진 채로 그 둘이 동시에 꿈틀거리며 제 안을 탐하고 있다.
‘너무 좋아...이를 어쩌면 좋아...’
이런 희열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발정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 희열을 가지고 싶어 밤의 잠을 설치게 되지 않을까.
발정기의 저주에 의해 사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 희열 때문에 사내를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건 한번 알아버리면 끊어버릴 수 없는 중독의 맛이다.
어찌하면 좋을까.
이건 꿈에 불과한데, 음란한 꿈에 불과한데 이 꿈의 맛에 중독되어 버리면 나중에 자신은 어찌해야 하는 걸까.
“하아...!”
사내가 입술을 풀어주자 해원이 참았던 교성을 질렀다.
“하응! 아! 아! 아아아!”
한번 터져 나온 교성은 멎을 줄을 모르고 열기를 머금고 퍼졌다.
두 사람의 몸이 이어진 하체에서 철벅철벅 젖은 소리가 새어나와 해원의 교성에 엉망으로 뒤섞였다.
“아아아아!”
황홀경에 취한 해원의 허벅지를 아래에서 잡아 올린 채로 사내가 허리를 쳐올렸다.
그가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해원이 오싹한 짜릿함에 바들바들 떨며 경련했다.
“아아아아아!”
자신의 몸 안에 퍼지는 뜨거운 것을 해원이 선명하게 느꼈다.
사내가 파정한 것이다.
하지만 제 안에서 파정한다 하더라도 당황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건 음란한 꿈에 불과하니까 이 파정으로 자신이 잉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 해도 되겠느냐?”
사내가 속삭여왔다.
파정했지만 사내의 남근은 여전히 해원의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당연히 더 해도 좋다.
아니 더 해주기를 바란다.
여기서 꿈이 끝난다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이 꿈은 오랫동안 깨지 않아도 된다.
혼자 있는 현실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이 꿈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더 낫다.
“그러면 엎드려 보아라.”
해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다시 속삭여왔다.
펼쳐놓은 겉옷 위에 해원이 엎드리자 사내가 그녀의 엉덩이를 쥐고 들어올렸다.
‘이런 자세는 창피해...’
이런 자세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건 마치 짐승같지 않은가.
고양이나 개처럼 이렇게 엎드려 자신의 둔부를 사내에게 전부 보여주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부끄러워 해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마주 보는 자세라면 사내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지금은 보이는 것은 겉옷과 눈 앞에서 흔들리는 대나무 밖에는 없다.
그래서 해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뒤에서 뻗어온 손이 그녀의 젖가슴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애액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뒤쪽으로 사내의 남근이 다시 단번에 찔러 들어왔다.
“아아아아!”
뒤에서 파고 들어온 사내의 남근이 제 안 깊은 곳까지 후벼대며 찔러대기 시작하자 해원의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철벅거리며 흘러내린 거품 섞인 애액이 허벅지에 주르륵 미끄러져 무릎 아래로 고였다.
몇 번이나 허물어지려는 해원의 엉덩이를 잡아 올리며 사내가 그녀의 안으로 그의 분신을 밀어넣었다.
등에 닿아있는 사내의 가슴과 제 뒷목덜미에 번져오는 뜨거운 숨결에 해원이 정신없이 숨을 헐떡이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꿈이라는 것이 믿을 수가 없다.
이렇게 뜨겁고, 이렇게 황홀한 꿈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 제게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걸 어떻게 믿어야 할까.
“아아아!”
절정의 순간에 사내의 손이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두근거리는 사내의 심장이 제 심장과 똑같이 뛰고 있었다.
*
“병이 아니라니까요.”
해원이 제 손목의 진맥을 짚고 있는 사내를 쳐다봤다.
무랑군이라는 이름의 이 사내는 해원의 저주를 계속 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풀리지 않는 저주가 아니라 고칠 수 있는 병이라고 말이다.
꿈이니까 이 사내가 말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둘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게 꿈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만 같아서 그러기 싫다.
“약은 써보았느냐?”
“병이 아니니까 약을 쓸 리가 없잖아요.”
“가족들은 뭐라고 하더냐.”
“아버님은...”
해원이 손목을 살며시 빼냈다.
“달거리 때가 오면, 그러니까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날 방 안에 가둬놓아요.”
“모진 아비구나. 왜 해결책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가둬두는 것이지? 얼마나 갇혀 있었던 것이냐?”
“6년이요.”
“처음 증상이 나타난 것이 몇 살 때냐.”
“열 여섯 살에 처음 이 저주가 나타났어요.”
“지금 스물 두 살인 것이냐?”
“당신은 몇 살인가요?”
“나는 스물 여덟살이다.”
“서른이 넘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늙어 보이느냐?”
사내가 짐짓 곤란한 표정을 짓자 해원이 눈을 휘며 웃었다.
“말투가 나이 들어 보여서요.”
“버릇이 되어 그렇다. 환자들에게 말하는 버릇이 들어서.”
“의원이신가요?”
“돌팔이는 아니지.”
어떻게 하면 이렇게 생생한 꿈을 꿀 수 있을까.
마치 진짜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몸 안에 쌓인 지나친 음기가 문제라면 매일 지속적인 교접을 통해 음기를 빼내는 것도 어쩌면 방법 중의 한 가지가 될 수 있는데 네 아비는 어찌하여 딸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가둬두기만 한 것인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부왕은 왜 저를 고치려고 하지 않았을까.
이 저주가 처음 발현된 날을 해원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놀라고 당황해서 울음을 터트렸던 그때 부왕이 저를 어떤 식으로 보고 있는지 해원은 똑똑히 봤었다.
두려움, 혹은 공포.
그 커진 눈과 창백한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그것이었다.
어의를 부르지도 않았고 약을 써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저주...]
부친은 첫마디로 저주라는 단어를 내뱉었었다.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병이 아니라 저주라는 것을 증상을 보는 순간 확신하고 말했었다.
“보통은 이런 경우 병이라고 생각하지 저주라고 먼저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상적인 아비라면 당연히 의원을 부르고 그 의원이 병명을 알아내지 못하면 전국 방방곡곡에 의원을 수소문해서 딸의 병을 고치려고 하지 저주라는 간단하고 편리한 말로 끝내버리고 딸을 가둬두는 그런 짓은 하지 않겠지.”
사내의 말이 구구절절 옳다.
그러나 자신 역시 지금까지 부왕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게 당연하다 여겼었다.
제 몸에 일어난 저주이니 자신이 감당하는 것이 옳다 생각했었다.
“그렇게 말해주신 분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정상적이라면 다들 이렇게 말을 하겠지.”
해원이 제 몸을 덮고 있는 옷을 여몄다.
사내가 그녀의 알몸에 덮어준 옷이다.
땅에 깔았던 겉옷이 아니라 그 안에 입는 옷을 덮어준 사내는 물론 지금 상반신을 드러내놓고 있다.
“춥지 않으세요?”
“내가 추워할 것이 걱정이면 다음부터는 옷을 걸치고 나오거라.”
다음. 이 꿈에 다음이 있는 걸까.
깨어났다가 다시 이 꿈을 꾸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꿈에서의 이별이라니, 이건 너무 슬픈 일이다.
“내일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꿈 속의 사람에게 이런 것을 묻는 게 너무 우습다.
이 사내는 스스로가 진짜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건 자신의 꿈이다.
자신의 꿈에 등장하는 이 사내는 스스로가 꿈의 존재라는 걸 모를 것이다.
그러니 이 사내는 당연히 내일이 있다고 믿겠지.
이게 꿈이라는 걸 아는 건 자신 밖에 없으니까.
“나는 매일 이 대나무 숲에 오니까 여기로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단다.”
“매일...”
“그렇지, 매일.”
“이 밤에 왜 이런 대나무 숲에 오시는 건가요?”
“쓸쓸해서?”
사내가 조용히 웃었다.
“많은 이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데 그들은 병이 낫거나 필요한 것을 얻으면 나를 떠나지.
밀물에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다가왔다가 다시 썰물에 파도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사라지고 나면 남는 것은 쓸쓸함 뿐이란다.”
“혼인은 왜 안 하셨나요?”
“내가 혼인을 안했다고 말했었나?”
“혼자라고 했잖아요.”
“그렇군.”
희고 고운 눈매를 가진 사내가 조용히 웃는 것은 마치 달빛이 흔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자, 다시 물어볼게요. 왜 혼인을 안 하셨나요?”
“나는...”
사내가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나는 마치 세상의 찌꺼기와 같은 존재라서...이런 나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곁에 있어줄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지.”
“세상의 찌꺼기라니요.”
“내 어머니는...”
사내가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내 어머니는 신을 섬기던 신녀였었지.”
“신녀라는 건 처음 들어요.”
“오래 전에 이 땅에서 신을 섬기는 건 금지되었으니까.”
“신당이 불탈 때 내 어머니는 그 불타는 신당에 뛰어들어 당신이 섬기던 신과 함께 사라졌지.
나는 그때 고작 여섯 살이었고 왜 어머니가 오지 않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고, 왜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었지.”
이 사연들은 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
꿈 속의 존재일 뿐인, 현실에는 없고 오직 꿈에서만 존재하는 사내에게 이런 사연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 걸까.
자신의 기억이 이 사내의 사연을 만들어내는 걸까 아니면 실은 꿈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세상인 것일까.
꿈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그 세상 어딘가에 이 사내가 실제로 살고 있을 테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나는 이곳 저곳을 떠돌았지. 어디에도 내가 속할 곳은 없었고 나를 반겨주는 곳도 없었고...실은 핑계지만 내가 더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되었지.”
“그래도 사람들의 병을 고쳐줬잖아요.”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어머니가 가르쳐 주셨으니까.”
“사람을 믿고 마음을 주었다가 어머니처럼 돌아오지 못할까봐 무서워서 혼자 지내는 건가요?”
“그럴지도.”
“이 대나무 숲에 오면 외로움이 좀 사라지나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계시던 곳에도 이런 대나무 숲이 있었지. 사람은 때때로 그리운 것에서 위로를 받으니까.”
“이젠 대나무를 보면 나를 생각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주겠어요?”
“오늘 대나무 숲을 거닐면서 어쩌면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지.”
“나는 일부러 만나러 왔어요, 당신을.”
사내의 손이 해원의 이마를 짚었다.
“이젠 열이 나지 않는구나.”
사내의 말이 맞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었지만 몸에서 단내가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전신을 괴롭게 만들던 열기도 가라앉았다.
‘설마...’
해원이 제 다리 사이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음부를 쓰윽 문지르고 손을 빼냈을 때, 손바닥에 묻은 혈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달의 발정이 끝난 것이다, 지금 막.
“헉!”
눈을 뜬 해원이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별당의 제 방이었다.
제가 사용하던 보료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잠들었다 깨어난 것이다.
‘역시 꿈이었어...’
꿈을 꾸고 있을 당시에는 너무나도 생생해서 그게 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깨어나면 역시 꿈이다.
제 알몸을 덮고 있던 사내의 옷도 없고 제 발에는 흙 알갱이를 맨 발로 밟았던 흔적도 없다.
그 정도면 아주 조금이라도 발바닥이 더러워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발은 깨끗했다.
열어보지 않아도 저 닫힌 문은 아마 대못으로 굳게 박혀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
이불을 들춘 해원이 작게 소리를 냈다.
제 속곳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경수가 나온 것이다.
이로서 이번 달의 발정기가 끝이 났다.
이제 이 별당에서 본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